최근 수정 시각 : 2024-05-15 15:05:06

나이젤 마틴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nigel_martyn.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나이젤 마틴
Nigel Martyn
본명 안토니 나이젤 마틴
Antony Nigel Martyn
출생 1966년 8월 11일 ([age(1966-08-11)]세)
잉글랜드 콘월주 세인트오스텔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세인트 블레이지 AFC (?~1987)
브리스톨 로버스 FC (1987~1989)
크리스탈 팰리스 FC (1989~1996)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6~2003)
에버튼 FC (2003~2006)
국가대표 23경기 (잉글랜드 / 1992~2002)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지도자 경력5.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프리미어리그에서만 372경기, 풋볼리그 시절을 합치면 1부리그 565경기를 소화한 리그 탑 티어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리즈 시절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의 주전 수문장이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본래 유소년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골키퍼를 시작하게 된 후 아마추어 팀들에서 골키퍼 포지션으로 뛰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1987년 탄광, 공장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었던 세인트 블레이지 AFC에서 뛰던 그는 프로팀 브리스톨 로버스 FC의 제의를 받게 되어 프로 선수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3부리그에서 곧바로 주전 키퍼를 차지해 세 시즌 동안 리그 101경기에 출전한다.

하부리그였지만 어린 나이에 곧바로 주전 키퍼로 활약하는 재능을 상위 리그 팀들이 놓칠 리가 없었고, 런던 연고의 중견팀 크리스탈 팰리스 FC가 1989년 당시로는 파격적인 액수인 100만 파운드에 그를 영입했다. 이로서 그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첫 100만 파운드 이적료를 돌파한 골키퍼가 되었다. 팀의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팰리스에서 역시 곧바로 주전 키퍼로 도약했고, 7시즌 동안 리그 272경기, 총 349경기를 출전하며 부동의 수문장으로 오랜 기간 활약한다. 특히 두 번의 강등을 경험했음에도 팀에 남아 한 번의 재승격과 한 번의 승격 플옵 진출을 이끈 의리도 과시했다. 그러면서 만년 중위권 팰리스가 1990-91 시즌 풀 멤버스 컵을 들어올리게 견인하기도 했다.

이후 1996년 225만 파운드에 리즈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 이 또한 영국 축구 역사상 골키퍼 최고 이적료였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역시 주전 키퍼로 이름을 올린 그는, 1999-00 시즌 리그 3위와 UEFA컵 4강, 2000-01 시즌 리그 4위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의 핵심 멤버로서 유럽 무대에서도 대활약을 펼친다. 특히 1999-00 시즌, 마땅한 세컨 키퍼가 부재한 팀의 상황과 맞물려 그는 한 시즌에만 무려 55경기를 뛰는 강철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00-01 시즌, 팀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고 안일한 지출로 인한 재정난이 도래하면서 팀 전력은 점차 약화된다. 여기에 2002-03 시즌 부임한 테리 베너블스 감독이 리즈의 전면 리빌딩을 선언하면서 폴 로빈슨과의 주전 경쟁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고, 충격적이게도 아예 리그 단 한경기도 이 시즌에 뛰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이에 마틴은 이적을 결정하고 에버튼 FC로 이적한다.

에버튼으로 이적해서는 당초 리처드 라이트와의 주전 경쟁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라이트가 시즌 초반 큰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한 뒤 자연스레 부동의 넘버 1 키퍼로 도약했으며, 그 자리를 쭉 놓치지 않았다. 2004-05 시즌에는 3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이며 에버튼이 리그 4위로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는데 크게 공헌한다. 그러면서 에버튼 팬들에게 네빌 사우스올 이후 최고의 키퍼라는 찬사도 듣게 된다. 그리고 2005-06 시즌 전반기에도 쭉 주전으로 뛰었으나, 발목 부상을 크게 당하면서 결국 그 시즌 이후 은퇴를 하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

1992년 독립국가연합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원정 평가전에서 처음 A매치에 데뷔했다. 그리고 UEFA 유로 1992 본선 엔트리에 깜짝 승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팰리스와 리즈에서 전성기를 누릴 시기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부동의 1인자 데이비드 시먼이 존재했고, 그는 항상 세컨 키퍼로서 국가대표팀에 소집되는 위치였다. 유로 1996 당시엔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은 시먼에게 밀려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 출전한 기록은 유로 2000 조별리그 최종전 루마니아와의 경기로, 여기서 이기면 극적인 8강 진출이 가능했던 잉글랜드였지만 그는 3골을 실점하면서 팀의 2-3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래도 월드컵, 유로 예선과 여러 평가전에서 출전 경력을 쌓으며 그는 A매치 통산 23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그는 브래드포드 시티 FC의 골키퍼 코치를 맡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재직했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다시 지도자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

5. 여담

  • 영국에서도 고유 언어와 민족이 따로 존재하는 곳인 콘월 출신 인물이다.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콘월 출신으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며, 사상 첫 콘월 출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멤버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