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1:55:23

금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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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孝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금효왕릉3. 관련 기록4. 기타

1. 개요

장비일거야화향(獐妃一去野花香): 장부인은 간 지 오래인데 들꽃은 향기롭고
매몰잔비거효왕(埋沒殘碑去孝王): 땅에 묻힌 낡은 비는 금효왕의 흔적이구나
삼십웅병추대발(三十雄兵酋對發): 크게 일으킨 군사 삼십
와우각상투천장(蝸牛角上鬪千場): 달팽이 뿔 위에서 천 번은 싸웠으리라[1]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중[출처]

감문국(현 경북 김천시 일대)의 군주로 전해지는 인물. 김효왕이라고도 한다. 반파국금림왕과 마찬가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만 등장한다.

무덤과 관련된 기록밖에 없는 군주기 때문에 재위시기나 업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2. 금효왕릉

현재 남아있는 금효왕릉의 봉분은 높이 6m, 지름은 15m에 달한다.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금효왕릉은 말무덤으로 불렸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일제시대 여러 차례 도굴을 당했다고 한다.#] 2017년 금효왕릉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나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감문국의 왕비로 구전된 장부인(獐夫人) 묘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인데, 금효왕릉은 김천시에서 관리를 받고 있으나 장부인묘는 완전히 훼손되어 형태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다.#

3. 관련 기록

금효왕릉(金孝王陵)은 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큰 무덤이 있는데 감문국 금효왕의 능이라고 전한다. 장릉(獐陵)은 현(縣)의 서쪽 웅현리(熊峴里)에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감문국 때의 장부인릉(獐夫人陵)이다.” 한다.
金孝王陵。在縣北二十里。有大塚,俗傳甘文金孝王陵。獐陵。在縣西熊峴里。俗稱甘文國時獐夫人陵。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29권 경상도 개령현

4. 기타

  • 2018년 소설 왕의 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 금효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 930번지의 밭 한가운데에 남아있다고 한다. 주변 주민들에게는 말무덤으로 불린다고.


[1] 이종휘가 집필한 동사에서 '아포가 배반을 해서 대군 30인을 일으켜 밤에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牙浦叛大發三十夜渡甘川水見漲而退)'는 기록이 등장한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감문국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