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20:11:54

절일

1. 개요

김부식은, “생일을 절(節)이라고 하는 것은 예로부터 없었던 일입니다. 당현종 때 비로소 황제의 생일을 천추절(千秋節)이라고 하였으나, 신하의 생일을 절이라고 한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고 하니
富軾 言 "生日稱節 自古所無 唐玄宗時 始稱皇帝生日 爲千秋節 未聞人臣有稱節者."
고려사 Vol. 98』, 「열전 No. 11」, 김부식전

중국의 당현종부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천자와 그 일가 중에서도 주로 황제, 황후, 황태자의 생일에 붙이는 명칭이다.

중국 왕조황제, 황후, 태자의 생일에 붙였고 중국의 제후국인인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유교 예법상 사용하지 못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한국이나 베트남, 일본은 시대에 따라 사용하기도 하였다.

2. 사례

2.1. 한국

고대 고조선이나 부여, 삼국, 발해외왕내제 체제를 사용했지만 임금왕족의 생일에 절일을 붙이지 않았다. 이는 절일 제도가 서기 7,8세기인 당 현종시기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고려 이전엔 당제(唐制)가 확고히 자리잡지 않았다. 이후 한반도를 장악한 고려의 제6대 임금 성종이 유교 예법을 통해 나라의 틀을 잡을 때 자신의 생일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나라에 절일 제도가 시작된다.
왕의 생일을 천춘절(千春節)이라 했으니, 절일(節日)의 명칭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以王生日 爲千春節 節日之名 始此.
고려사 Vol. 3』, 「세가 No. 3」, 성종세가

성종 이후 몇몇을 제외한 모든 임금들이 자신의 생일에 절일을 붙였고 자신이 중국 왕조의 황제와 동급이라는 암시를 주어 왕권 강화에 사용한다. 그러나 몽골의 속국이 된 고려는 외왕내제 체제가 없어지고 절일도 붙이지 않게 된다.

다음 왕조인 조선성리학을 숭상하였고, 중화사상에 입각한 제후국을 자처하면서 절일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절일이라는 명칭만 사용하지 않았을뿐, '탄일'이라는 명칭으로 계속 기념하였고, 세조때에 절일을 다시 시행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시행이 무산되고 대한제국 선포까지 시행하지 않았다.
판서운관사 양성지가 전적ㆍ사직ㆍ존호ㆍ경연 등의 일에 대해 상언하다
전략
"1. 생신(生辰)을 절일(節日)로 일컫는 조목입니다. 신(臣)이 듣건대, 옛날의 제왕(帝王)들이 모두 〈생신(生辰)을〉 절일(節日)로 일컫는 것은 어버이의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효도로써 세상을 다스림을 선포(宣布)하는 까닭입니다. 동방(東方)에서는 고려(高麗)의 성종(成宗)이 처음으로 생일을 천추절(千秋節)로 삼았는데, 이로부터 후에는 역대(歷代)에서 모두 명칭(名稱)이 있었으니, 충렬왕(忠烈王) 때에 이르러서는 수원절(壽元節)이라 일컬었습니다. 전대(前代)의 역사를 상고해 본다면, 요(遼)나라와 금(金)나라에서 사개(使价)를 보내어 와서 생신(生辰)을 하례(賀禮)하게 했으니, 매우 성대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본조(本朝)에 이르러서는 다만 탄일(誕日)이라 일컬어 예(禮)가 매우 간략(簡略)했으니, 본시 불가(不可)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臣)이 《당사(唐史)》를 살펴보건대, 발해(渤海)의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前麗]의 옛 장수인데 갑자기 일어났다가 망했으므로 일컬을 만한 것이 없었는데도, 동국(東國)의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의 융성(隆盛)한 것은 다만 발해(渤海)만 일컬었을 뿐이고 삼한(三韓)은 참여시키지 아니하였으니, 신(臣)은 가만히 이를 부끄럽게 여깁니다. 우리 동방(東方)은 요제(堯帝)와 더불어 같이 일어나서 토지(土地)의 넓이가 만리(萬里)나 되고, 생치(生齒)가 번성(煩盛)하고 군사와 마필(馬匹)이 강성하고 백관(百官) 제도가 성대한데, 비록 별도로 연호(年號)는 세우지 못하지마는 유독 고구려(高句麗)의 옛 것을 계승하여 절일(節日)을 일컬을 수는 없겠습니까? 원컨대 대신(大臣)들로 하여금 서로 의논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어서(御書)에 이르기를,
"될 수가 없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1457년) 3월 15일

오랜 시간이 지나 19세기 후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일본제국에 패배하여 조선과 청나라간에 국교가 단절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가 조선의 자주독립국임을 조약으로 공표하자 얼마후 조선대한제국으로 재출범하고 칭제건원한다. 그러면서 고려의 원간섭기 이후 오래간만에 다시 절일을 사용하게 되었다. 절일은 순종황제 때까지 사용되다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게 강제 합병되어 대한제국 황실이 천황친왕급인 왕공족으로 내려가자 다시 사용이 중지되었다.

대한제국 이후 절일은 한국사에서 사라졌다. 해방, 분단 이후 북한은 김씨 핏줄을 중심으로 한 지배체제를 만들려 하기에 결국 절일이 다시 사용되었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절일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독재자를 높이는 절일이기는 하나 전통적인 왕조사회의 군주의 생일과는 다른 것으로, 현재 많은 국가기념일에는 절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3. 절일 목록

3.1. 중국

3.1.1. 당나라

3.1.2. 오대

3.1.2.1. 후량
3.1.2.2. 후당
3.1.2.3. 후진
3.1.2.4. 후한
3.1.2.5. 후주

3.1.3. 십국

3.1.3.1. 전촉
3.1.3.2. 후촉
3.1.3.3. 남당

3.1.4. 송나라

3.1.5. 요나라

[참조]

3.1.6. 금나라

금대에는 흔히 천수절(天壽節)이라 불렀다고 하는데[참조], 절일제도의 시행이 처음 나타나는 희종의 생일은 만수절(萬壽節)이라 했다는 기록이 《금사》『희종본기』에 있다. 아울러 세종의 생일은 만춘절(萬春節)이라 명명한 기록이 《대금집례 大金集禮》에 있다 중문위키 참조.

3.1.7. 원나라

원나라는 절일을 성탄절(聖誕節) 또는 성절(聖節)이라 명명했다[참조].

3.1.8. 명나라·청나라시대

이후 ·대에 이르러 황제마다 별도의 명칭을 붙이지 않고 만수절(萬壽節)로 확정하였다. 비공식적으론 성절(聖節) 혹은 성수절(聖壽節)이라고도 불렀다. 홍무제는 자신의 절일을 천수성절(千壽聖節)이라 했다. 명대황태자의 생일을 천추절(天秋節)이라 하여 만수절과 함께 기념하였다.

조선은 만수절과 천추절 즈음에 이를 경하하기 위한 사신을 파견했는데 이를 각각 성절사(聖節使)와 천추사(天秋使)라하였다. 이는 청조의 입관 이후 조선중화주의가 대두되면서 폐지되었다. 이후 천추절은 조선에서 비공식적으로 국왕이나 대왕대비의 생일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

3.2. 한국

3.2.1. 고려

3.2.2. 조선

조선에서는 왕의 생일을 탄일(誕日)로만 정하고 따로 절일을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왕의 생일을 명, 청대 황태자의 생일인 천추절(千秋節)로 칭하였다.

3.2.3. 대한제국

3.3. 일본

일본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나라 시대코닌 덴노 시기 (서기 775년, 779년)에 천황의 생일을 천장절(天長節)이라 하고 경축행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코닌 덴노 이후엔 행했다는 별도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천황의 생일을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근대인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다.

3.3.1. 일본 제국

3.3.2. 2차 대전 이후

몇몇 천황의 생일은 해당 천황이 사망한 이후에도 그대로 축일로 남았는데 메이지 덴노의 생일(문화의 날,11월 3일)[20]쇼와 덴노의 생일(쇼와의 날,4월 29일)[21]이 그러하다.

3.4. 베트남

베트남은 리왕조 건국 시기 전 부터 외왕내제를 실시하면서 당나라송나라의 제도를 도입하여 절일 제도를 공식화 하였으며, 응우옌 왕조가 8월 혁명으로 문을 닫을때 까지 계속 사용하였다.

3.4.1. 리 왕조

3.4.2. 쩐 왕조

3.4.3. 후 레 왕조

3.4.4. 응우옌 왕조


[1] 본래 천추절인데 고쳐서 천장절로 삼았다.(本是千秋節。改爲天長節.)『당회요』, 권29, 절일[2] 진종의 계실이자, 인종의 적모(嫡母)이다.[3] 영종의 정실이자, 철종의 조모(祖母)이다.[4] 정강의 변이후 고종에 의해 정식 존호가 올려지기 전까진 절일에서 따온 건룡황제로 일컬어지기도 했다.[5] 영종의 계실이자, 이종의 양모(養母)이다.[6] 이종의 정실이자, 도종의 양모(養母)이다.[7] 태종의 모후(母后)이다.[8] 흥종의 모후(母后)이다.[참조] 바이두백과(중문)[참조] 바이두백과(중문)[참조] 바이두백과(중문)[12] 예종의 모후(母后)[13] 김부식이 적극 반대해 지정되진 않았다.[14] 의종, 명종, 신종의 모후.[15] 고려사에서 언급은 안되지만 동문선에 실린 수기절일하전에 따르면 수기절은 왕태자 때의 절일로 보인다. 수기절일하전은 "수기절 날을 축하하며 올리는 전문"이란 뜻이다.[16] 탄일은 단순히 "태어나신 날"을 의미하며 수원천성절 이후 고려는 절일을 쓰지 않았다.[17] 천장절은 휴일이었지만, 지구절은 아니었다.[18] 1988년까지.[19] 2018년까지[20] 1947년 이전엔 메이지절(明治節)[21] 1989년 쇼와 덴노 사망 이후엔 녹색의 날이었다가 2007년 이후로 쇼와의 날로 재지정. 녹색의 날은 5월 4일로 변경되었다.[22]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23] <월사략>(越史略)[24] 정확한 일자 미상[25] 정확한 일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