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00:16:44

구인사

파일:구인사의 절경.jpg
1. 개요2. 역사3. 전각
3.1. 비판
4. 기타

1. 개요

한자 : 救仁寺 / 로마자 : Guinsa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소백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1][2], 계곡을 따라 건물이 빼곡이 줄지어 있다. 계곡을 안은 수리봉의 정상에 있는 적멸궁[3]까지 포함하면 산자락에 소백산 구인사라 적힌 큰 바윗돌부터 계곡 전체와 산 정상까지 경내에 들어간다. 규모가 어마어마하지만 설법보전과 대조사전, 관음전을 제외한 건물이 기도실 내지 대중생활실이라 주로 불공 드리는 용도로 건물을 사용하는 조계종의 사찰과는 다르다.

2. 역사

파일:구인사 5층법당 들어오기 전의 초가집.jpg
파일:구인사 현 광도실 위치에 자리한 1960년대 중반 보타전과 주변 모습.jpg

한국 천태종의 중창조인 상월원각대조사는 1930년 중국티베트에서 곤륜산, 오대산의 문수도량과 아미산의 보현성지를 순례한 뒤 1936년에 귀국하여 1945년 초 소백산에 초가집을 지었는데 이것이 구인사의 시작이며 1966년에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개축하여 큰 절로 발전하였다.

구인사에 가서 3일 기도를 하면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유명한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구인사에 찾아 왔고 3일 기도를 하였으며 이곳에서 3일 기도를 한 후 실제로 소원을 이룬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후 눈에 띄게 번창하기 시작하였다. 독특한 점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구인사를 찾아 온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구인사는 큰스님의 증명을 받은 아주까리 기름을 팔았는데 환자들은 이 기름병을 사서 복용하기도 하였다. 다만 지금은 이런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렵다.

천태종은 작복 불교를 지향하기 때문에 관음 정진으로 마음을 닦고 그렇게 닦인 마음으로 선업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가르침을 체계있게 소화하는 스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90년대만 하여도 구인사의 승려들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기도 수행을 하느라 피골이 상접할만큼 철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승려들의 수행열이 이전 같지 않아 보인다. 덩달아 신도들의 기도열도 상당히 감소했다.

요즘 천태종은 불공 중심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전통불교의례 보전 목적이지만 상월원각대조사의 가르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3. 전각

경내 건물로는 설법보전, 광명당(강당), 광명전, 역대조사전, 삼보당, 판도암, 설선당 등이 있다. 사천왕문에는 국내 최대의 청동 사천왕상이 안치되었다. 2013년, 구인사 입구에 거대한 천태중앙박물관(성보박물관)을 완공하였다. 2003년에 첫 삽을 떴는데 10년만에 완공하였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운영하는 성보박물관 중에서도 최대규모라고한다. 구인사에서는 여러 부처님과 더불어 천태종의 역대 법사들도 모신다는 차이점이 있다. 경내에 불전보다는 강당과 요사채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경내에 우체국이 따로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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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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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보전.

일반 사찰의 대웅전 격으로 중앙 석가모니불과 좌우 협시로 대세지·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구인사의 주법당으로 5층에 법당이 있고 나머지 1~4층은 승려, 일반 신도들을 위한 수행처, 기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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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전.

사찰 전각이면서도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원래 엘리베이터가 없었지만 높은 곳을 노약자들이 오르내리기 불편해서 설치하였다. 대법회나 행사들을 이곳에서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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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사전.

광명전 위쪽에 있으며, 전각을 뒤덮은 금박 단청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1992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0년에 완공하였다.

대조사전이 완공되자 불교계 언론만이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나름대로 지면을 할애하여 소식을 보도하였다. 구인사 측이 돈도 많으면서 콘크리트 공구리질로 만든 건물만 올리고 제대로 문화재다운 건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자, "우리도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건물을 만들면 될 거 아냐!" 하고 작정하였다. 안은 통층이지만 겉으로는 3층이라 법주사 팔상전과 구조가 비슷하다. 문화재 복원에도 여러 번 참가하여 유명한 신응수 대목장[4]이 도편수가 되고 오세필 기와장이 참가하는 등 전통건축의 장인들을 불러모아 만들었다.

완공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세필 기와장이 특별히 개발한, 금빛 나는 기와를 사용했다고 한다. 도금이 아닌 유약을 발라 구워 금빛을 낸 기와라서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고 한다. 단청옻칠에 금가루를 섞었다고 한다. # 세월이 흐르면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건물이다.

불상보다는 사천왕상이나 코끼리 탑 등의 조각품이 주로 있다. 그 때문에 산 한 쪽면을 통째로 차지하는 거대한 절 경내에서 법당을 제외하면 불상을 보기 힘들고, 역사 깊은 절이 아니라 고즈넉한 풍경을 기대하기는 무리이다. 법당 계단 벽면에 지옥도 그림이 있어 묘사가 조금 잔인하여 그림을 보고 어린 아이들이 충격을 받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부모들이 밥 남기는 버릇, 거짓말하는 버릇에 대해 훈육할 때 이 그림을 상기시키면 즉각 개선된다. 이따금씩 큰 행사가 있을 때 본전에 가면 바라춤을 추는 스님들도 볼 수 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외부에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이는 웅장하고 화려한 대형 개신교 교회들을 보는 비판적 시각과 일치한다. 부처님의 뜻을 생각한다면 자성이 필요한 부분.

3.1. 비판

구인사의 건물 대부분이 불공이 아닌 수행 기도 용도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구인사의 수행 기도 열기는 매우 높은 편이다. 다만 지금은 그 열기는 다소 줄어든 듯 하다. 예전에는 기도실인 설법보전의 3층과 4층이 주말마다 가득 차 발 디딜 틈 하나 없었지만 지금은 꽤 비어 있는 편이다.

1980년대 2대 종정인 남대충 대종사의 지도 아래 지어진 구인사의 건물은 전통적 감성에 맞게 지어졌다. 사실 이때 지은 건물들도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그러들었다. 왜냐하면 최근 지어진 판도암, 광명당, 역사박물관 같은 건물들이 구인사의 계곡 크기와 주경 야선이라는 풍토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
소문에 따르면 과거 상월원각대조사와 대충대종사는 구인사를 안고 있는 계곡의 바위를 깎아내지 말라고 하였다는데 그래서인지 대충대종사의 지도 아래 지은 건물들은 계곡 바위를 깎지 않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4. 기타

대한민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아주 외딴 곳이 아님에도 구인사에서는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터지는 장소가 없지는 않아서 식당 아래 자판기 쪽과 상월대조사 적멸궁이 위치한 산 중턱에서는 통화가 가능할 정도로만 터진다. 공중전화가 있긴 하지만,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5]

산을 따라 올라가며 절을 지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대학보다도 크고 아름답다. 다만, 바닥은 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라 산을 오르는 느낌은 전혀 없고 경사와 계단만 계속하여 등장한다. 눈앞에 보이는 큰 건물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올라가면 그 뒤로 또다시 건물이 등장하여 관광객을 좌절시킨다. 방문 후기를 보면 최상단부까지 오르는게 엄청나게 힘들다는 사람도 많다.

공양의 맛은 상상 이상으로 엉망이다. 정 먹기 힘들면 덜어달라 하면 되니 걱정하지 말자. 그저 수행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참고 먹는 것이 번뇌를 떨쳐내는 길. 어차피 아래 식당까지는 왕복 30분 가량 걸린다. 여기서 신도들은 비빔밥처럼 밥에 나물과 고추장을 비벼 먹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각 테이블마다 고추장이 담긴 통이 있어서 비비면 먹을 만 하다.

절을 올라가다 보면 장독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신도들의 공양에 쓰일 된장, 고추장독이다. 다 먹을까 싶을 정도로 많아 보이지만, 기도하는 신도들 숫자를 생각하면 그리 많지도 않다. 공양 재료 대부분은 스님들이 손수 농사 지어 얻은 소출로 충당하며, 고추장, 된장으로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인다.

인근에 시외버스 정류소가 위치하여 버스를 타고 단양시외버스공영터미널, 동서울터미널 등 일부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구인사공용정류장 문서로. 자가용으로는 595번 지방도를 타는데, 보통 영춘면 소재지 지역 방향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반대쪽인 보발재 고갯길은 헤어핀 구간이 여럿 있어 험하기 때문.

중앙고속도로 신림IC, 제천IC, 남제천IC, 북단양IC, 단양IC 다섯 군데 표지판(...)에 구인사가 병기돼 있다. 2021년부터 관광지는 고속도로 나들목 표지판 대신 별도의 관광지 표지판을 사용하는데, 구인사는 신림, 제천, 남제천, 북단양, 단양IC 1.5km 위치에 있는 주변 관광지 표지판에 전부 포함돼 있다.(...) 실제로 신림, 제천, 남제천, 북단양, 단양IC 모두에서 구인사로 갈 수 있는데 구인사로 가는 길이 전부 다 다르다. 신림IC에서는 88번 국가지원지방도를 통해 영월군 주천면을 통해 들어오고, 제천IC에서는 38번 국도, 남제천IC에서는 82번 국가지원지방도, 북단양IC에서는 5번 국도-59번 국도, 단양IC에서는 31번 국도-59번 국도를 통해 접근하게 된다. 게다가 평택제천고속도로에서 제천JC-남영월IC까지 개통할 때 단양구인사IC라고 아예 구인사 이름을 박아넣은 나들목까지 만들 예정이다.

가수 웅산비구니 시절 이 사찰에 머물렀으며, 그때 받았던 법명을 가수 활동을 하면서 그대로 예명으로 사용하였다.

생활불교를 강조하는 천태종 특성상 오계를 수지하기 위해서는 구인사 안거와 지역 말사 안거를 8년 이상 성만해야만 한다.

[1] 참고로 규모가 두 번째인 천태종 사찰은 부산광역시에 있는 삼광사다.[2] 사족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회서울특별시에 있는 연세중앙교회고 규모가 두 번째로 큰 교회는 서울특별시에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다.[3] 한국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 대조사의 묘역이다.[4] 2008년 광화문 복원작업 중 문화재청이 제공한 금강송 4그루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되어, 2017년에 1심과 항소심에서 벌금 7백만 원을 선고받은 그 사람이다.[5] 최근에는 가능한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