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8 19:39:51

iPhone(1세대)

아이폰/1세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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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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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iPhoneGen1.jpg
Say Hello to iPhone.[1]

1. 개요2. 사양3. 상세4. 논란 및 문제점5. 한국에서의 반응6. 기타

1. 개요

Apple2006년에 개발을 최종적으로 완료하고, 한국 과 미국에도 2006년 11월부터 일부 블로그와 언론에서 애플 아이폰 관련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https://www.engadget.com/2006/12/18/cisco-not-apple-announces-iphone-branded-voip-phones//https://m.blog.naver.com/elanix/20032604874/http://naver.me/GBq8CpZp/http://naver.me/xMkpfLdR 그리고 얼마후 이듬해 2007년 1월 9일(한국 시각 1월 11일)에 공개한 첫번째 iPhone. iPhone OS를 장착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형태의 스마트폰들의 원조라고 평가받으며 iPhone The Original 아니면 그냥 iPhone이라고 불린다.

2007년 6월 29일부터 미국 AT&T를 통해 판매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2GGSM으로 서비스했던 이동통신사가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통신망이 호환되지 않는 문제로 출시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GSM을 서비스했던 통신사가 단 한 곳이라도 있었다면 한국 아이폰 초창기의 독점 통신사는 KT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2]

2013년 6월, 아이폰 1세대에 대한 기술 지원이 종료되었다.

2. 사양

프로세서삼성 S5L8900 SoC. ARM11 412 MHz CPU, PowerVR MBX Lite 3D GPU
메모리128 MB eDRAM,[3] 4 / 8 / 16 GB 내장 메모리
디스플레이3.54인치 HVGA(480 x 320) RGB 서브픽셀 방식의 TFT-LCD(163 ppi)
멀티터치 지원 정전식 터치 스크린
네트워크GSM & EDGE
근접통신Wi-Fi 802.11b/g, 블루투스 2.0+EDR
카메라후면 200만 화소
배터리내장형 Li-lon 1400 mAh
운영체제iPhone OS 1.0 → 2 → 3.1.3
규격61 x 115 x 11.6 mm, 135 g
단자정보USB 2.0 Apple 30-pin x 1, 3.5 mm 단자 x 1
기타가속도계, 근접 센서 탑재

3. 상세

파일:external/images.anandtech.com/box3.jpg
초창기 아이폰의 구성품. 다른 세대의 아이폰 구성품과는 달리 독(Dock)[4]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면에서 진일보한 스마트폰이었는데, 세계 최초의 정전식 멀티 터치 스크린을 탑재한 제품으로 Quad band GSM 버전으로 미국, 유럽 일부 국가에만 판매되었다.[5] 당시 기준으로 200만 화소의 쓸만한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3.5인치 디스플레이는 당시로썬 꽤 큰 편이었고, 무엇보다 별도의 키패드가 없는 전면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최초였다. 스티브 잡스가 발표하면서 했던말이 "버튼은 너무 거추장스럽다. 스타일러스(터치펜)는 대체 왜 써야 하냐?" 몇년 후 애플은 스타일러스 펜이 나옵니다[6]

파일:external/www.telegraph.co.uk/iphone1_1419283k-large_trans++qVzuuqpFlyLIwiB6NTmJwaLZSda5aZtNQNzY7CWqnYQ.jpg
스티브 잡스 : 이게 바로 아이폰입니다.

문자메시지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른 기기들은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마치 이메일을 받듯이 순차적으로 문자를 받게 되는데, 아이폰의 메시지 앱은 인물별로도 분류를 하는 것. 그래서 대화 내용을 종합해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방식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블랙잭의 SMS 비교 리뷰. 아이폰이 보낸이를 기준으로 정렬하는데 반해 블랙잭은 문자가 온 순서대로 정렬한다.

소프트웨어 부분은 그야말로 애플이 매킨토시에서 얻은 경험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키노트의 설명대로 스마트하면서도 사용하기 쉬운 컨셉을 제대로 구현한 기념비적인 휴대폰이다. 단순히 터치로 뭔가를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쉽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조작되게끔 연결하였으며, 최적화 등도 매우 신경썼다. 안드로이드 초기 버전이 스크롤 등에서조차 버벅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폰의 OS는 초기부터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제품의 디자인 면에서도 굉장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애플의 컴퓨터나 아이팟에서 떠오르고 있던 미니멀한 디자인을 한층 더 세련되게 다듬어 물리적 버튼은 단 하나만 남긴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물론 미니멀리즘을 애플과 아이폰이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신이 희미해진지 오래인 시기에 다시금 유행시켰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의 디자인은 핸드폰 제품 디자인을 비롯한 광범위한 분야에 미니멀리즘의 유행을 촉발했다.



아이폰이 처음 소개된 프리젠테이션도 화제였다. 간결한 화면과 딱딱하지 않으며 유머스러운 잡스의 연출은 다른 CEO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장난전화까지

4. 논란 및 문제점

iPhone 논란 및 문제점
iPhone iPhone 3G
  • 키노트에서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대로 아이폰은 멀티미디어성을 강조한 단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초기에는 지금은 전설이 된 '앱스토어'의 부재로, 과연 이 단말기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7] 다만 당시에는 소프트웨어적으로 기능이 다양한 스마트폰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대상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후 iPhone OS 2 업데이트로 앱스토어가 추가되었다.
  • 전화/문자 기능이 당시엔 정말로 아쉬운 수준이었는데, 통화 품질 측면에서는 한참 후대 모델인 아이폰 4에서까지 계속 지적되었을 정도였고, 문자의 경우 당시의 피쳐폰이 수 초이내에 문자메세지를 수/발신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몇분이 지나도 문자가 안오거나 자꾸 메시지 발신 실패가 뜨는 현상이 있었다.
  • 가격면에서도 출시 당시부터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2년 약정 기준으로는 최초 출시가가 4GB 모델 기준으로 499달러(55만원), 8GB 모델 기준으로는 599달러(65만원)였다. 이는 약정 할인 적용 후 가격으로, 실제 출고가는 4GB 모델이 949달러(100만원), 8GB 모델은 1049달러(110만원)에 달했다. 당시 휴대폰 시장은 피쳐폰과 PDA폰으로 양분되어 있었고, 피쳐폰은 고급형 출고가가 60만원대, 블랙베리 등 의 PDA폰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이는 초기 수요 예측의 어려움에 따른 문제임으로 어느정도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긴 하다. 특히, 외형이나 그래픽 성능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단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매 당시 3G 기술이 이미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2G 통신 모듈을 탑재하여, '인터넷 브라우징'이 되는 폰으로서는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2007년 6월에 판매가 시작된지 4개월만에 판매량이 엄청나게 늘어나자 출고가를 200달러나 인하하는 바람에, 먼저 구매한 미국 소비자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 당시 출시된 PDA폰에서는 별도로 강한 보안력의 푸쉬 서버를 두고 메일을 전송해주어 굳이 통신사의 데이터 요금을 낭비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업무처리가 가능했던 점을 보면 그러한 기능적 지원의 부재가 아쉬웠다. 특히 당시 블랙베리는 업무처리를 위한 통신망을 사용하는 블랙베리 7100i 같은 모델들도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아이폰은 PDA[8]과는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러한 단점은 iPhone OS 2와 3에서 해소되었다.

5. 한국에서의 반응

해외 리뷰들을 읽어보면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들을 비교하는 내용이 많은데, 마치 미래에서 온 휴대폰과 비교하는 느낌이다(...).

아이폰이 유독 국내에서는 경쟁사들의 언플 때문에 실컷 까여왔는데, 어차피 GSM인데? 사실 1세대부터 하드웨어적으로도 상당히 빠방한 스마트폰이었다. OpenGL ES 1.1[9]의 3D 가속 및 2D 가속(Bit Blip) 지원, 블루투스(OS 업데이트로 사용 가능), 근접 센서, 조도 센서, 중력 센서, 멀티 터치 등 웬만한건 다 갖춘 휴대폰이었다. 괜히 기념비적인 휴대폰이 아니다.

아이팟에 이어 애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스마트폰 대중화를 촉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출시 제품이라 나무위키 항목 설명이 매우 빈약하다(...). 당시 한국에서의 반응은 신기하네 정도.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이전 설명에는 아이폰 1세대의 출시 당시에 국내 이통사나 해외 휴대폰 제조사나 내일모레 부도날 것처럼 걱정하진 않았다는 지적이 있는데 근거 없는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아이폰을 무시하기에는 터치 스크린을 십분 활용한 유저 인터페이스가 충격적인 수준으로 직관적이기도 했고 운영체제의 기능성이나 유용성에 있어서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 얼리어답터들과 IT 리뷰어들도 긍정적인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고 대중도 새롭게 재정의된 "스마트폰"에 대해 관심을 보이던 때였기 때문에 휴대폰 제조사들이 하루바삐 대응을 해야 했던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었다. 다른 휴대폰 제조사들도 역량만 된다면 정전식 터치 기반 스마트폰으로 갈아타고 싶어했고 안드로이드 OS가 등장하자마자 여러 제조사들은 덥썩 안드로이드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마음은 얼른 애플을 따라가고 싶지만 소프트웨어적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친국내기업 정서가 매우 강해서 아이폰 뿐만 아니라 노키아나 소니 등의 해외 단말기[10]를 WIPI(위피) 의무적 탑재 등으로 막은 전례가 있어왔었기 때문에 당장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11] 그리고 한국 기업들은 LG의 프라다폰이나 삼성의 터치위즈가 탑재된 웨이브처럼 터치 기반 휴대폰을 아이폰의 등장 이전이나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바가 있었고(지금은 피쳐폰이라 불리는 단말기들이지만) 이미 여러 기능을 실험적으로 추가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한국 기업 입장에선 기술적으로 충분히 경쟁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폰이 3세대가 출시될 때까지 한국 기업에서 내놓은 소위 스마트폰이란 물건들이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아이폰만큼의 높은 사용자 경험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은 계속 되어 왔고 한국 기업들 역시 다른 기업들처럼 안드로이드로 갈아타게 된다.

6. 기타

  • 2013년 6월 아이폰 1세대의 기술 지원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즉, AS를 더이상 받을 수 없다는 것. 소프트웨어는 iPhone OS 3.1.3에서 지원이 멈췄다.
  •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지만 의외로 기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 애플에서 아이폰을 출시한다는 루머는 2004년부터 쭉-있어왔으며 루머만 굉장히 무성하던중 출시되어 많은 사람들이 충공깽이 되었다. 아이폰 출시 이후 아이팟 → 아이팟 나노 처럼 아이폰 나노가 출시한다는 루머도 돌았다.그리고 아이폰나노가 출시되었다#
  • 아이폰이 출시되고 난 다음 전화 기능이 제거된 아이팟 터치가 출시되었다.
  • 출시된지 5년이 지난 2012년에 미개봉제품이 무려 1,100만원의 시작가로 경매에 올라온적이 있다. 링크참조.
  • 위 제품이 개발되던 2006년에 애플 내부에서 사용되던 프로토타입이 경매에 나왔다.#
  • 위에서 선술했듯이 콜렉터나 IT덕후들 사이에서 활발히 중고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애플 아이폰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제품임과 동시에 현대식 스마트폰의 원조, 원형이라는 역사성 때문에 상태가 좋은 제품은 상당한 레어템 취급을 받고있다.


[1] Macintosh부터 내려온 Apple의 캐치프레이즈.[2] 하지만 GSM을 서비스한 통신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출시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바로 WIPI 때문. 한국에서 작동이 가능한 아이폰 3G 출시시기가 아닌 3GS 출시시기부터나 들어온 이유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3] 인텔 코어 i 시리즈4세대하스웰에 탑재된 Iris Pro 5200 내장 그래픽에 탑재된 L4 캐시도 eDRAM(128MB)이며,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4MB), XBOX 360(10MB), Wii U(32MB)에도 사용되었다.[4] 요즘은 '독'이라고 많이 표현하지만 당시에는 '크래들'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이폰뿐만 아니라 일반 휴대폰이나 PDA를 구매해도 기기를 거치하여 충전이나 데이터전송을 할 수 있는 크래들이 거진 기본 구성품이었다.[5] 위에서 언급했듯이 GSM만을 지원해 우리나라에서 개통할 수 없다.[6] 이때 잡스가 스타일러스와 관련해서 했던 말은 전후 맥락과 당시 시대상을 잘 살펴보지 않으면 단순히 스타일러스는 무조건적으로 필요 없다라고 왜곡해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애플 펜슬이 등장했을 때도 이 말을 왜곡해서 어거지를 부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당시 터치 기반 스마트폰은 대부분 스타일러스를 썼다는 점을 꼬집은 말일뿐 스타일러스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건 아니다.갤럭시 노트 쓸 때 S펜으로 키보드 치는 사람 없잖아[7] 분명 인터넷도 되고, MP3도 재생되고, 전화도 되는 단말기지만 그 외에 할 수 있는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선탑재 앱도 15개를 넘지않아 검정 배경화면에 덜렁 몇개의 아이콘만 있는 것이 전부였으니. 아이러니하게 요즘은 통신사가 기본으로 수십개씩 깔아먹는 지경이라 줄이는게 인기가 많다.[8] 현재 스마트폰에 비하며 보급률은 훨씬 낮았지만 PDA폰도 나름의 상당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엔 블랙베리 vs 심비안 vs 윈도우 모바일의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9] OpenGL ES 1.1을 지원한 기기는 아이폰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이폰만큼의 퍼포먼스를 구현한 사례는 없었다. 참고로 휴대용은 아니지만 거치형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3의 UI인 XMB도 OpenGL ES 기반이다.[10] 2009년까지 유일한 해외 단말기는 다름아닌 모토로라. 모토로라는 아예 WIPI와 통메를 꾸준히 탑재해주고 있었고 한국전용 모델로 v14w, MOTOKLASSIC(RAZR 3, 이쪽은 원래 한국전용이 아니었는데 한국 이외의 국가에서 죄다 출시를 취소했기 때문에 졸지에 한국전용이 되어버린 경우다.)같은것도 있었다.[11] 왜 Windows Mobile에서도 WIPI가 들어갔는지 알것이다. SK텔레콤으로 출시된 엑스페리아 X1과 같은 소니의 초창기 스마트폰도 WIPI가 탑재되어있었다. 문제는 출시된 지 하루 지나서 WIPI 의무탑재가 폐지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