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4 17:53:23

Extra Ecclesiam nulla salus

extra Ecclesiam nulla salus에서 넘어옴
1. 개요2. 교회는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다3. 이 교리의 신학적 주의점
3.1. 리옹의 성 이레네오3.2. 오리게네스3.3.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3.4.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3.5.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3.6.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3.7.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3.8. 피렌체 공의회3.9. 이교도들은 (고의적 비고의적 이교도)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교황청의 단죄3.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4. 결론5. 관련 문서

라틴어 :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영어 : Outside the Church, there is no salvation
한국어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1. 개요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에 관련된 교리이다. 말 그대로 가톨릭 교회와의 일치에서 끊어지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서기 3세기의 성 치프리아노(치프리아누스)이다.

2. 교회는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기독교(가톨릭)의 입장에서,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구원의 수단이나 구원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현존하기 때문이다.

먼저, 성경, 각종 세계 공의회와 사도전승에 의해 확고하게 공인된 구원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의 신자가 되어,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 교회가 규정한 믿어야 할 교리(도그마)를 모두 충실히 믿고, 교회법에 명시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대죄를 짓지 않았거나 이미 지은 대죄를 회개+고해성사로 용서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불가항력적(자기 탓 없이) 무식이나 무지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몰랐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충실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한의 최대한의 선과 보편적 도덕률과 양심의 명령을 따르며 종교적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천주교 신앙을 악의적 의도 없이 알지 못했다는 전제 하에 구원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반면,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가톨릭 신앙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믿어야 할 교리를 알게 되었지만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고의적으로 냉담자나 타종교로 이탈하거나, 배교하거나, 대죄=중죄를 알고, 이를 지었으면서 상등통회[1]를 거부하거나, 지속적으로 대죄에 머물기를 고집하거나, 고해성사를 거부하거나 등으로 참다운 회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는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위한 믿음과 세례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히 선언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맏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요한 복음서 3,5)" 여기서부터 추론되는 것은, 자신의 탓으로 인해 교회 밖에 고의적으로 머무는 사람은 자신의 처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명백히 말한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로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가 진정한 교회임을 알면서도 가톨릭 교회를 고의로 떠나는 행위(냉담, 배교), 그리고 가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운 참 교회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교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가톨릭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 상태로 세상을 떠난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지옥행)

또한 어떤 것이 진정한 교회인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을 기도로 계속 청하면서 답을 얻을 때까지 진리에 관한 연구를 나름대로 계속할 의무가 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영혼 구원 문제라는 중대한 일에서 태만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을 가망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2]

3. 이 교리의 신학적 주의점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모든 이들이 어떤 상황에 있든지 모조리 전부다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신자의 영적 상태에 따른 신학적인 조건이 여러가지 붙게 되고, 이 조건에 따라서 비신자의 구원 여부가 갈라진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음 해설의 출처는 20세기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정평있는 교리해설서로 꼽히던 윤형중 마태오 신부의 <상해천주교요리> 상권 254p ~ 258의 내용을 다수 참고하였다.

1. 가톨릭 신학에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방법상의 필요(Necessitas medii)이고, 다른 하나는 '명령상의 필요(Necessitas praecepti)이다. 방법상의 필요는 그것이 없다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며, 명령상의 필요는 해당 사항을 알고도 일부러(고의적으로) 게을리하면 죄가 되고 구원받을 수 없게 되나, 불가항력적(도저히 자기 탓으로가 아닌) 무지나 불가능으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할 때에는 그것만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요소를 의미한다.

2. 전자인 방법상의 필요의 예시를 들자면, 구원에 필요한 주님의 '은총'을 들 수 있고, 명령상의 필요의 예시를 들자면 영성체, 미사 참례 같은 것을 예로 들수 있다.

3.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물리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 있고, 마음으로도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를 흔히 육신적 교회, 영적 교회라고도 구분하는데, 육신적 교회(물리적으로 소속된 교회)란 교황과 가톨릭 주교들의 지도를 따르는 가톨릭 신자들의 외견적이고 외적인 집합체를 의미한다. 영적 교회(마음으로 소속된 교회)란 신앙과 하느님의 은총을 가지고 있는, 즉 대죄가 없는 영혼들의 비가시적이고(눈에 보이지 않고) 내적인 집합체를 의미한다.

4. 구원을 위하여 가톨릭 교회의 일원으로 '물리적으로' 소속되는 것은 명령상 필요에 들어가고, '마음으로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방법상 필요에 들어간다. 따라서 불가항력적 무지의 상태에서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가톨릭 교회의 일원에 물리적으로 소속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적으로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고 가톨릭의 계명을 지키지만, 속으로 불신에 가득차있거나 특정 교리를 거부하거나, 마음속 죄나 몰래 짓는 죄에 빠져있다면, 마음으로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 못하므로 겉으로 가톨릭 신자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

5. 불가항력적 무지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의 경우, 첫째 수단인 물리적인 가톨릭 교회의 소속을 할 수 없으니 가톨릭 교회에 적어도 '마음으로라도' 속하는 것이 방법상 필요하다. 여기서 마음으로라도 속한다는 의미는, 어떤 것이 진정한 종교인지, 또는 진정한 기독교 종파인지 모르지만, 모든 일에 신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교를 알기만 하면 곧 거기에 입교할 만한 정신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라도' 속한 사람들에 들어간다.

6. 그러나,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흔히 무시하곤 하는 대단히 중요한 점이 있다. 불가항력적 무지는 절대로[3] 고의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해도 구원 가능하다는 식의 교리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가톨릭 교리를 잘 모른다는 식으로 흔히 표현되는 신앙적 무지가 가항력적인지, 불가항력적인지의 범위를 개개인의 기준대로, 자기 멋대로 재단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6-1. 불가항력적인 무지의 대표적 예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다.[4]
- 가톨릭 교회의 존재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
- 가톨릭 교회의 존재는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 부지런히 세례 준비를 하다가(예비신자) 갑자기 죽게 되는 사람들

7. 또한 이 불가항력적 무지는 '선의'의 불가항력적 무지여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6번 항목에서 이미 말했지만 정말로 진실되게 몰라서 믿지 않은 것이여야 되고, 알면서도 영적 진리 탐구를 게을리 하거나 고의적으로 무지의 상태를 자처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위키러들에게 익숙한 대표적인 예시로, 천주교와 범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단히 해박하고 종교 전반에 관해 알것 다 알면서 천주교를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자유사상가, 무신론자, 불가지론자들의 대표적인 인물이나, 천주교를 비난하는 데 앞장서는 개신교인이나 타종교인 등은 명백히 악의적 무지의 상태에 있기에,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7-1. 설령 선의의 불가항력적 무지로 구원받을 수 있다 하여도, 이 구원은 절대로 해당 사람이 믿는 타종교/또는 무종교적 상태가 해당 사람을 구원한게 아니라, 오직 그 개인의 선의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바다를 건널 만큼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은 배를 타고 항해하다가 파선될지라도 몇몇 사람들은 헤엄쳐 살아날 수 있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일에 흔히 비유된다. 또한 비가톨릭 신자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가톨릭 신학적 기준의 대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이 대죄의 기준은 1. 이 행위가 대죄임을 고의적으로 알고 있으며, 2. 자기 의지로 지어야 하는 죄악이다. 비신자 상당수는 천주교 기준의 대죄에 대해 지식이 없을 것이기에 상당수가 불가항력적 무지로 감면은 되긴 하겠으나, 대죄에는 교리적 의무가 아닌 비신자에게도 익숙한 일반적 도덕률 상당수도 범주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모든 기독교파들의 대표적 윤리관으로 비신자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혼전순결, 성적 정숙이나 혹은 동성애행위, 간통하지 말 것, 폭행이나 절도, 살인하지 말 것, 각종 국법상 범죄를 짓지 말 것 등이다. 이를 어기고 회개하지 않았다면 가톨릭 기준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 이점은 신자나 비신자나 평등하며, 대죄 하나라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8. 또한 가시적으로, 물리적으로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었다 가톨릭 교회를 고의적으로 떠난 배교자들은 회개하지 않는 한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태어나면서부터 가톨릭 교회 밖의 종파(예를 들면 지금의 개신교, 정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이단자라고 부르지 않으며, 고의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버린 사람들이 이단자라고 불린다고 하였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고의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버린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

9.마지막으로, 가톨릭의 무오류한 세계 공의회 중 하나인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특정 신자가 과학적, 합리적 근거가 부족해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합리적 근거를 바라면서 가톨릭 신앙 가지기를 미루거나 등한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신앙을 가질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 만으로 냉담하거나 가톨릭을 거부하는 것은 선의의 무지에 들어갈 수 없다(=악의의 무지이므로 구원받을 수 없다).

통상적으로 교부들과 가톨릭 신학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전제 하에 교회 밖에 있는 비고의적인 불가항력적 무지 상태에 있는 의인들이 구원될 수 있다는 점을 수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신론자의 양심 관련 발언이나 김수환 추기경의 구원관 발언 등도 기본적으로 이런 교리를 전제로 두고 발언한 것이다.

아래의 증언들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리에 대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말이다.

3.1. 리옹의 성 이레네오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교회를 괴롭히는 이들에게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성령의 활동에 있어서 어떤 부분도 갖지 않는다. 자신들의 나쁜 가르침들과 증오할만한 행위들로 인해 그들 자신은 생명으로부터 배제된다."라고 했다. 이 때 유의할 것은 그가 교회를 괴롭히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는 것이다.

3.2. 오리게네스

"그 누구도 변명하거나, 자신을 속일 수 없다. 이 집 밖에서는, 즉 교회 밖에서는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5]

3.3.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Extra ecclesiam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명제는 아프리카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운동들을 거슬러 싸웠던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에게서 드러난다. 그는 분열이 구원의 길이 아니라 상실의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에서 성 치프리아노의 명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교회에 내분을 일으키는 행위를 지적한 것이지, 결코 다양한 환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상황에 이 명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다.

이 명제에 근거하여 그는 이단자들에 의헤 교회 밖에서 수여된 세례는 무효이며, 교회 밖에서 있었던 순교도 무가치하다는 귀결을 이끌어 내었으나 교회는 이러한 견해를 정죄하였다.[6]

3.4.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5세기 교부인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7]는 "잘못되고 왜곡된 것일지라도 그의 의견을 방어하는 이, 어떤 고집스런 원한 없이, 특히 이 의견이 자신의 대담한 추측의 결과가 아니라 잘못으로 인해 처참한 생활을 하는 현혹된 선조들의 유산일 때, 만일 그들이 용의주도하게 진리를 찾는다면, 그들이 이 진리를 인식하는 한에서 이를 곧 끌어안게 될 것이며 이단자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비슷한 근거로 개신교에 나면서부터 소속되어 있으나 끊임없이 신앙적 진리를 찾는 사람의 경우, 개개인을 전부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티노가 "Extra ecclesiam nulla salus"를 사용할 때, 이는 도나티우스파 이단들이 가톨릭으로부터 결별할 때 그들을 지칭하여 이 말을 한 것이지, 선한 의지를 가진 이교도들이나 이단자들마저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한스큉(2011)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노는 경미한 이단과 지독한 이단을 구별하였으나 가벼운 이단의 경우에도 구원의 가능성을 부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제자 루스페의 풀겐티우스는 "가장 정확한 것을 고수하고 결코 의심을 품지 말라. 모든 이방인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과 현재의 가톨릭 교회 밖에서 죽은 모든 이단자들과 배교자들 또한 악마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8]

3.5.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덕스러웠지만 세례 받지 않고 죽은 발렌티니아노가 의화에 대한 원의로 인해 구원에 이른다는 점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는 받아들였다.

3.6.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지 모르니 이교도라고 해서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3.7.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믿는 이들의 교회는 유일하며 "이 교회 밖에서는 그 누구도 절대 구원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이 또한 역시 모든 이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교회의 일치를 깨트린 그룹으로 간주한 알비파와 카타리파 이단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3.8. 피렌체 공의회

피렌체 공의회에서 공포된 교령 pro iacobitis에는 의심할 바 없이 Enchiridion에 나오는 아주 엄격한 표현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교령 또한 강독을 통해서는 오직 가톨릭교회의 일치를 의식적으로 찢어놓는 사람들만을 염두에 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9. 이교도들은 (고의적 비고의적 이교도) 모두 지옥에 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교황청의 단죄

17세기~18세기의 대표적 이단이었던 얀센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엄격한 예정론적 신앙관을 피력하며, 교회 밖에는 은총도 구원도 없고, 그렇기에 이교도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얀세니즘은 1713년에 교도권에 의해 단죄되었다.

또한 교황청은 이와 비슷하게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명백히 속하지 않는 모든 이들은 단죄된다"라고 주장했던 소위 '보스턴 이단'이라고 불린 예수회 신부 레오나드 피니 (Leonard Feeney 1897–1978)와 그의 주장 피니즘을 거슬러서 단죄했으며 파문에 처하였다.

3.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한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사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결론

가톨릭 교리에서 "extra ecclesia nulla salus(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공리는 유일하고 비가시적인 가톨릭교회 외에는 더 이상 어떤 구원의 체계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교회론적 명제이지 구원론적 명제는 아니다. 다시 말해 교회 밖에서도 구원될 수 있는 선한 의지를 갖는 이교도들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는 (개신교를 포함) 타 종교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지 그 종교를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게 아니다.
무신론자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산다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9]
-프란치스코 교황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846 교부들이 자주 반복했던 이 단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이해할 때, 이 말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공의회성경과 성전에 의지하여 이 순례하는 교회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개자요 구원의 길이시며,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분명한 말씀으로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셨다. 사람들은 마치 문과 같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톨릭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저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847 이 단언은 자신의 잘못 없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848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자기의 탓 없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실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화의 필요성과 동시에 그 거룩한 권리를 가진다.”

가톨릭 교리서 846~848항

에큐메니즘과 관련하여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데, 특히 개신교, 정교회 등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 개신교 일각에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회관, 구원관이라 하여 가톨릭을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일부 전통 가톨릭에서는 교회의 범위를 '가톨릭 교회'로 한정지어서 보기 때문에 개신교, 더 나아가서는 정교회는 배제되는 것으로 본다.

5. 관련 문서



[1] 고해성사 항목 참조.[2] 신학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악의적 무지를 자처한다고 표현한다.[3] 예를 들어, "아 그래? 그럼 난 불가항력적 무지 상태니까 그럼 천주교 안믿어도 구원받지?" 식의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말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상태부터가 이미 불가항력적인 무지가 아니다(...) 천주교를 믿을 생각이 안든다면, 1번에서 말했듯 끊임없이 기도를 계속하면서 은총을 청하고 이미 알려진 천주교의 교리를 지속적으로 힘껏 연구할 의무가 있다. 이를 게을리한다면 구원받을 가능성조차도 받을 수 없다.[4] 동 저서, 255p.[5] 한스 큉, 『교회』, 한들 출판사, 2011, 446p 이하 한스큉(2011)로 표기[6] 한스큉(2011), 447p[7] 잉글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아우구스티노)와 다른 사람이다.[8] 한스큉(2011), 447p[9] 다만 이 발언은 상당한 논란이 있다. 먼저 이 발언을 기록한 고령의 무신론자인 스칼파리 기자가 정확한 녹취 없이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썼다는 것, 저 발언의 진위여부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본인 스스로 밝혔고,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도 저 발언을 가톨릭 신앙의 거부=구원가능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함에도 불구하고 추후에라도 제대로 된 보충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가톨릭 교리에 엄격히 입각하여 다음 발언을 정리하자면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무신론자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산다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에 이르는 은총을 주셔서, 그에게 구원에로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다만, 무신론자 스스로도 끊임없이 영적 진리를 탐구하려 노력하고, 가톨릭 교리에 대한 연구와 신앙을 가지려는 노력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