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급대응팀 Emergency Response Team Groupe Tactique D'interventi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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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설 | 197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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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 |
| 역할 | 특수작전[1] |
| 링크 |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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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ergency Response Team Groupe tactique d'intervention |
2. 역사
왕립 기마경찰은 1977년 캐나다 전역 31개 경찰청에 경찰특수부대인 긴급대응팀(Emergency Response Team)을 창설했다. 긴급대응팀은 기존 기마경찰의 인질 구출 프로그램을 모델로 했으며 파트타임으로 운영되었다.이후 1981년 법무장관은 ERT 내에서 뛰어난 대원들을 선발하여 오타와에 정예 대테러부대를 창설하기 위한 인질 급습 구출 프로그램(Hostage Assault and Rescue Program, HARP)을 개시했고 이들은 1981년 7월 몬테벨로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담에서 경호 및 현장 보안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선발된 대원들은 캐나다군의 지원을 받아 페타와와 기지에서 영국의 특수부대인 제22SAS연대에게 대테러 훈련을 받았고 1981년 6월 말 28명의 대원이 프로그램을 마쳤다.
대원들은 오타와에 영구적으로 본부를 설립해 HARP를 정식부대로 만들어달라 요청했지만, 왕립 기마경찰은 HARP를 정식 부대로 창설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부대는 해체되어 대원들은 ERT로 복귀해야 했다.
그 후 1985년 3월, 테러리스트들이 오타와 주재 터키 대사관을 공격해 경비원 한 명을 살해하고 대사관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당시엔 캐나다군에 특수부대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법무장관이 지난 5월 기마경찰, 캐나다군에 상근 대테러 부대를 창설하자는 제안서를 내각에 제출했으나 기마경찰, 캐나다 군 모두 달가워하지 않았다.
같은해 6월에도 테러범들이 토론토 에어 인디아 182편에 폭탄을 설치했고, 밴쿠버 CP 에어 003편에도 폭탄이 설치되는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반년 뒤인 12월 캐나다 내각은 상근 대테러부대를 창설하기로 결정했고 이듬해인 1월 22일 기마경찰 내에 상근 대테러부대로 특수긴급대응팀(Special Emergency Response Team, SERT)이 창설되었다.
SERT는 49명으로 구성되어 유사 시 전체 배치가 가능하도록 24명씩 팀을 나누어 한 팀은 대기, 다른 한 팀은 훈련을 맡는 식으로 순환되었다. 부대의 임무는 외교관 경호 및 인질 구출이었기 때문에 캐나다 국내에선 작전에 참여할 수 없었다.전직 HARP 대원들은 당시 약 35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던 ERT 프로그램에서 모집된 추가 운영자들과 함께 부대의 핵심 인원이 되었다.
SERT에 지원하려면 기마 경찰에서 7년간 근무한 경찰관이여야 했고 지원자는 바리케이드, 기차, 비행기, 차량 등 육상 사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9일간의 선발 과정을 통과한 후 다시 6개월간의 훈련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이 선발 및 훈련과정은 영국의 제22SAS연대, 미국 FBI HRT, 서독 GSG 9 등 여러 대테러부대의 선발과정을 참고하여 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SERT의 훈련 및 작전 역량은 육상에 치우친 만큼 해상 대테러 능력이 제한적이었고 이에 1987년 기마경찰이 오타와 근교 드위어 힐에서 약 30km, 80ha의 땅을 구입해 대규모 훈련 시설을 건축했다. 훈련 시설은 1989년 완공되었고 건물 안엔 실내 수영장 및 50m 실내 사격, 근접 전투를 위한 킬하우스, 콘크리트 타워, 대형 여객 버스, 저격 에어리어, 비행기 구출 훈련을 위한 DC-8 내부를 본뜬 훈련장이 구비되어 있었다. 이후 1990년 왕립 공군의 제450 전술 헬리콥터대대(450 Tactical Helicopter Squadron)에서 CH-135 트윈 휴이 3대를 차출하여 항공수단을 지원했다. 이는 1987년 캐나다 기마경찰과 캐나다군 사이에 SERT를 위한 상호 훈련 및 헬기 제공을 위한 합의가 이뤄진 결과였다.
하지만 SERT의 임무는 순탄치만은 못했는데 1987년 밴쿠버에서 개최된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와 1988년 캘거리에서 열린 제15회 동계 올림픽 및 토론토에서 열린 제14회 G7 정상회의에 SERT 병력이 파견되었으나 부대 전체가 아닌 한 팀이 동원되는 선에서 그쳤다. 당시 상부에선 SERT를 전부 움직이기엔 규모가 큰데다 부대 특성상 대규모 작전을 진행할 작전 능력이 부족하고 세번째 팀을 창설하자니 거기 또 대량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꺼리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89년 기마경찰 측에서 SERT가 기마경찰 내 경찰부대들과 제대로 훈련을 수행하지 않았다며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는 당시 다른 경찰 특수부대들 역시 공유하는 문제였는데 자신들이 SERT만큼의 대테러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대테러 임무에 기마경찰의 도움이 필요없다고 여겨 기마경찰과의 훈련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결국 1992년 2월, 법무장관이 SERT에 하위 부대를 창설을 허가하며 대원이 72명으로 늘어났지만, 연방 정부가 대테러 관할을 캐나다군에 이관하기로 결정하면서 SERT의 해체가 결정, 모든 연방부처의 예산이 삭감되었다. 이런 결정이 이뤄진 이유는 1985년부터 캐나다군이 특수부대 양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당시 국방부 차관인 로버트 파울러(Robert Fowler)도 대테러 임무를 군으로 이관하는데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캐나다군은 제2합동특무부대(Joint Task Force 2, JTF2)를 창설했고 3월 31일 SERT가 모든 권한을 JTF로 이관하여 다음날인 4월 1일 임무가 시작되었다. SERT 대원들은 캐나다 페트리샤 공주 경보병부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PPCLI)에서 선발된 대원 100여명에게 자신들의 선발과정을 기반으로 선발 교육 및 특수전 훈련을 실시했다. 드위어 힐의 훈련시설도 JTF 2에게 인계되었는데 JTF 2는 기존의 SERT와 동일한 작전 범위를 갖추고 있었으나 1994년 국방참모총장이 대테러 대응 권한을 추가하면서 2001년부터 해상 대테러 능력을 부대에 배양하기 시작했다.
물론 SERT가 해체된 뒤에도 경찰 내 ERT 부대는 남아있었기에 ERT는 1995년 8월부터 1달간 구스타프센 호수 대치 사건에 투입되는 등 계속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0년 뒤인 2006년 해상 대테러 작전을 위해 경찰 내에 해양 보안 긴급 대응 팀(Marine Security Emergency Response Teams, MSERT)이 창설되어 대원들이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역에서 훈련을 받았고 이후 다음해인 2007년 9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칠리웍에서 ERT가 총격범으로부터 3세 영유아를 구출했다.
2009년엔 누나부트의 자치경찰이 풀타임 ERT 부대를 창설했으며 2010년 기마경찰 측에서 대원들을 수송하기 위해 무기가 제거된 장갑차를 보급했다. 장갑차는 첫 실전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칠리웍에서 마약을 재배하던 범죄자들을 기습하는데 투입되는가하면 토론토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지원하고 MSERT는 같은해 개최된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올림픽 선수와 시민들을 보호했다.
다음해인 2011년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서리(Surrey)에서 13세 소녀가 총격범에게 총상을 당하고 집에 화재가 발생한 후 신고를 받고 ERT가 출동했다. 소녀는 집에서 근처 학교로 도망쳤고, ERT 대원들은 총격범과 추가 피해자들이 집 안에 있다고 판단하여 집 안으로 돌입했다. 안에서 자살을 시도한 총격범에게 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총격범은 결국 사망했다.
이듬해인 2012년, 기마경찰과 나비스타 디펜스가 협력하여 ERT 전용 장갑차를 제작하여 캐나다 전역 ERT에 보급했다. 장갑차는 15년간 운용할 예정이며 이후에도 캐나다군 특수부대인 JTF2와 기마경찰 및 자치경찰 내 ERT가 서로 각자 관할에서 대테러 임무를 양분하다가 2020년 캐나다군 측에서 대테러 역할을 다시 경찰에 반환하려 했지만, 반려되어 여전히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3. 선발
ERT는 크게 풀타임 부대와 파트타임 근무 부대로 나뉜다. 어느쪽이든 공통적으로 기마경찰에서 2년간 실무를 뛴 경험이 있어야 하며 PPC 자격에서 총 225점 이상을 이수해야한다.임무 특성상 밀폐된 공간, 고층, 수상 등의 환경에서 작전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심리 평가에 참가해야하며 이론, 총기 및 전술 훈련으로 구성된 9주간의 ERT 과정을 통과해야한다.
ERT 과정은 11분 이내에 1.5마일(약 2.4km)달리기, 팔굽혀펴기 40회, 1분 안에 윗몸일으키기 40회, 턱걸이 5회, 135파운드(약 61kg)의 무게로 벤치 프레스 등으로 구성된 선발과정을 합격해야 한다. 2009년 4월 1일 부터는 여기 시간제한 내에 완주해야하는 장애물 코스가 포함되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지원자는 3단계로 나뉘는 선발 과정에 돌입하는데 1단계는 총기 훈련 및 라펠 하강, 2단계는 농촌 순찰, 3단계는 CQB를 포함한 실내 전투로 이뤄진다. 이 과정을 통과한 대원은 ERT 대원이 될 수 있으며 이후 저격수/관측수 과정, 공수, 해상 작전 과정 등을 추가로 지원하여 수료할 수 있다.
ERT 대원은 풀타임의 경우 일일 교육, 파트타임 대원의 경우 최소 2일간의 교육을 수료한다.
4. 장비
5. 사건사고
2006년 11월 13일 누나부트 주 멜빌섬에 ERT가 배치되었다. 케네스 펠레티에(Kenneth Pelletier)가 총으로 무장하고 날뛰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는데 당시 아내는 경찰이 오기 전 탈출한 상태였다. 펠레티에는 경찰차에 총을 쏜 직후 저격수에게 사살되었는데 이에 유가족은 경찰 측에서 과도한 무력을 행사했다며 소송을 걸어 조사를 촉구했다. 조사 결과 위원회는 ERT 대원들의 정당성을 인정했다.2009년 캠루프스에서 ERT의 전술 보호구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총기류는 도난당하지 않았는데 도난된 장비는 암시장에서 판매된 걸로 보인다.
2012년 캐나다 퇴역군인인 그레고리 매터스(Gregory Matters)를 ERT가 사살했다. 매터스는 사살 직전 도끼를 들고 대원들을 위협했는데 이에 브리티시 컬럼비아 독립수사국과 기마경찰 대중 불만 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고 조사 결과 대원들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