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2 15:14:27

히카르두 카카

카카에서 넘어옴
카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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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UEFA 올해의 팀
FW
사무엘 에투
FW
티에리 앙리
MF
호나우지뉴
MF
카카
MF
세스크 파브레가스
MF
스티븐 제라드
DF
필립 람
DF
카를레스 푸욜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잔루카 잠브로타
GK
잔루이지 부폰
HC
프랑크 레이카르트

2007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카카
2위
리오넬 메시
3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07 Ballond'or
수상
카카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위
리오넬 메시
월드사커 2007 올해의 선수
카카
2007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카카

2004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카카
2007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카카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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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xjr31UWgAQAHu7.jpg
히카르두 이젝송 두스산투스 레이치[1][2]
(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생년월일 1982년 4월 22일 ([age(1982-04-22)]세)
국적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3]
출신지 브라질리아
종교 개신교
신장 186cm[4]
혈액형 B형[5][6]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7]
유소년 클럽 상파울루 FC (1994~2000)
프로 클럽 상파울루 FC (2001~2003)
AC 밀란 (2003~2009)
레알 마드리드 CF (2009~2013)
AC 밀란 (2013~2014)
올랜도 시티 SC (2014~2017)
상파울루 FC (2014, 임대)
국가대표 92경기 29골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1. 소개2. 선수 경력3. 카카의 포지션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카카에 대한 말말말7. 어록8. 기록
8.1. 대회 기록8.2. 리그 기록8.3. 개인 수상

1. 소개

브라질의 축구선수로 AC 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마에스트로이자 호나우두 - 히바우두 - 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브라질리언 발롱도르 위너의 계보를 이은 마지막 선수이다. 축구계의 대표적 엄친아이자 치달의 상징인 선수이기도 하다.[8]

대다수 브라질계 축구선수들과는 달리 제법 유복한 가정[9]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축구가 아닌 테니스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축구는 미래의 꿈이라기보단 취미생활에 가까웠다. 카카는 상파울루 정식 유스팀이 아닌 서포터즈 유스팀에서 볼을 차기 시작했고, 교사였던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축구보다 공부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또한 어린 시절의 카카는 지나치게 깡마른 체구 탓에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한다.

2000년, 18세 때 수영장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축구생명을 접을 뻔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기적적으로인체개조수술이 성공하여 재활에 성공한 카카는 향후 인생의 목표 10단계를 세운다.

1. 다시 축구선수가 된다.
2. 상 파울로 FC에 들어간다.
3. 상 파울로 1군 25 엔트리에 들어간다.
4. 거기서 다시 17명 엔트리에 들어간다.
5. 베스트 일레븐에 뽑힌다.
6. 브라질 U-20에 선발된다.
7. 브라질 A팀에 선발된다.
8. A팀 주전으로 뛴다.
9. 월드컵에서 우승한다.[10]
10. 유럽 명문 구단에서 뛴다.

이렇게 거창한 목표들을 설정한 것도 대단하지만, 저 목표들을 23살에 전부 달성했다는 것이 더욱 대단하다.

2. 선수 경력

파일:katopia.jpg

카카/선수 경력 문서로.

3. 카카의 포지션

오늘날 축구계는 미드필더진에 철저한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한 선수에게 전권을 맡기지 않는 추세인데, 이에 반하는 플레이메이커들 중 하나였다.[11]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전성기의 폼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는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가 거의 사라졌는데 이유는 그들의 능력 때문이라면 때문이겠지만,선수들이 모두 마라도나는 아니니까 전술 변화와 축구 규칙의 개정, 경기수의 증가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가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12] 카카가 공격의 전권을 쥐게 된 것은 카카의 능력과 더불어 당시 밀란의 상황이 맞아 떨어진 까닭이지, 결코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을 능숙하게 소화해 내서는 아니다. 카카보다는 차라리 비슷한 시절의 호나우지뉴프랑크 리베리가 비록 측면에서 뛰더라도 훨씬 더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 상에 가깝고, 카카 자신도 고전적인 플레이메이킹을 훨씬 우월하게 펼칠 수 있는 후이 코스타를 주전에서 밀어낸 전력이 있다. 만약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였다면 당시 밀란의 공격수를 맡고 있던 질라르디노의 득점이 훨씬 늘어났어야 한다. 마치 뮌헨 시절의 토니 크로스마리오 고메즈처럼. 그러나 질라르디노는 충실히 카카를 위한 미끼 역할을 수행하며 카카의 스피드와 득점력을 이용할 공간을 창출해 줬다. 카카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이지만 2선에서 최전방으로의 침투와 드리블 돌파, 정확한 슛팅으로 득점을 많이 올리는 등 일반적인 전통적 플레이메이커들 보다 조금더 포워드스런 선수이다.[13]

밀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카카가 현대 축구에 반하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카카의 능력이라기보단 AC 밀란과 안첼로티 감독의 능력이다. 카카의 공격력을 최대한 쓸 수 있게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인 안정적인 볼 배급 및 전체적인 경기조율은 안드레아 피를로가 맡았고 중원에서 개싸움을 펼치고 볼경합을 통해 전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암브로시니, 클라렌스 세도르프가 맡았다. 이로인해 탄탄한 중원 장악이 받쳐줘 카카는 전성기인 2006/07 시즌 공격에 치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밀란에서까지의 이야기. 그는 레알 이적함과 동시에 전성기때의 모든 기량을 상실하고 축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14]

그 후, 레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AC밀란으로 복귀한 카카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아무래도 과거 전성기의 기량과 주력이 아닐뿐더러, 현대축구가 발전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을 점점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경험이 많이 쌓였는지, 어느 정도의 조율능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애초에 잘했던 킬패스 같은 능력이 돋보이면서 중앙 미드필더로도 꽤나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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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블[15], 중거리 슈팅, 골 결정력, 크로스, 패스가 모두 일품인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퍼스트 터치와 오프 더 볼 움직임도 훌륭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치고 달리기 하면 카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압도적인 최대 속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이 월등했다. 스페인의 사비 알론소 같은 킬패스를 찔러대는 선수가 아르옌 로번만큼 빠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기술과 속도, 패스가 강점인 선수는 몸싸움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카카는 몸싸움마저 훌륭했다. 또 부상으로 먹튀가 됐다는 오명과 달리, 팀원의 노쇠화를 홀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07-08 시즌 이전에는 매 시즌 50경기 가까이 소화할 정도로 부상이 적었다. 절정의 폼이었을 때에는 사실 완벽초인이나 다름없었고 이러한 모습 덕분에 신계 두 명을 제치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16]

최전성기를 보냈던 AC 밀란 시절에는 치달의 임팩트가 부각되었지만 다른 능력도 뛰어났다. 2004-05 시즌의 리버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었던 이스탄불의 기적에서 리버풀을 절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건 카카의 날카로운 공격 전개와 킬패스였다. 특히 경기를 3:0으로 굳히는듯했던 크레스포를 향한 어시스트는 문자 그대로 대지를 가르는 킬패스. 또한 전성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득점력도 무시무시했다. UCL에서 86경기 동안 30골을 넣어서 지금도 역대 득점 기록 20위 안에 들어가고, 특히 2006-07 챔스에서는 10골을 넣어 득점왕이 됐다. UCL 득점왕이 발롱도르를 타는 징크스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졌는데[17], 이 징크스를 시작한 선수가 바로 카카였다는 것은 유념할 만하다.

카카의 능력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바로 역습상황인데 좌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역대급 치달과 뛰어난 킬패스, 골 결정력으로 커리어 대부분의 공격 포인트를 역습상황에서 쌓았다. 세밀한 드리블 기술과 중거리 슛도 뛰어나 역습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반쪽짜리 선수도 아니었다.[18] 전성기 때는 헤딩과 수비 가담을 제외하면 완벽한 선수였다.

물론 이러한 장점들 중 가장 독보적이고 또 다른 장점들을 잘 받쳐준 건 카카의 경악스러운 스피드였다. 때문에 카카의 전성기를 지켜본 세리에 팬들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이지선다[19]의 플레이를 펼치던 정상급 선수가 스피드가 죽으니 다른 능력들마저도 어정쩡해져서 폭망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부상으로 신체 균형이 깨지면서 몸싸움이 약해진 것도 한 몫 한다. 테크닉과 축구지능도 뛰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신체능력에 바탕을 둔 선수였고, 그 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선수. 현역 선수 가운데 가레스 베일의 플레이 스타일과 폼 저하 양상이 카카와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20] 한편 카카처럼 스피드가 죽으니 다른 장점까지 죽어버린 케이스로는 마이클 오언, 셰브첸코, 페르난도 토레스가 있다.

레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AC밀란으로 돌아온 카카는 과거 전성기때의 주력은 유지하지 못했다.[21] 부상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랬다. 결정적으로 현대축구가 발전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이 사라짐에 따라 카카도 조금 더 밑에 내려와서 뛰는 경기들이 많아졌다. 비록 주력이 조금 줄었다고 하나, 기존에 찬스를 메이킹 할 수 있는 킬패스 능력은 역대급이였기 때문에 중앙 미드필더를 완벽히 소화하는 모습이다. 오랜 경험과 어느정도 타고난 축구지능은 이러한 전술 수행을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했다.

카카의 이런 유니크한 플레이스타일과 준수한 외모 때문에 많은 축구 팬들이 제 2의 카카를 기대하지만, 현재까지 이런 유형의 선수는 찾기 어렵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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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2.bp.blogspot.com/Sport-Ricardo-Kaka-HD-Wallpaper-FIFA-WORLD-CUP-201415.jpg
축구계에서 가장 잘생긴 선수 중 하나인데다가 이것 저것 다 가지고 인생의 승리자 기믹까지 붙어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각같은 외모와 축구 실력은 물론이고 파파라치들도 포기했다 할 정도로 성실하고 가정적인 성격, 여신 미모에 브라질에서도 내로라하는 자산가의 딸인 이웃집 첫사랑인 카롤리니 셀리쿠(Caroline Celico)를 부인으로 얻은데다, 본인을 빼닮은 자식들까지 있으니 거의 전 인생을 100점으로 살아온 격...축구외 다른 분야에도 관심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MBA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주식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디강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형과 마찬가지로 축구선수로 뛰고 있으며 빼어난 조각외모를 자랑한다. 다만 실력은 현시창 수준으로 카카에 비하자면 안구에 쓰나미가 몰려올 정도라고...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형과 같은 팀인 AC 밀란에 입단했는데, 이는 감독인 안첼로티와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카카의 마음을 붙들어 놓기 위한 도구로 데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결국 2008년 벨기에 리그 스탕다르로 이적했는데, 1년 뒤인 지금 카카가 레알 마드리드로 옮긴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방출이 예상됐던 바 오히려 미래를 예견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임대복귀해서 아직도 밀란에 적을 두고 있다. 2009/10시즌에는 하부 리그에 적을 둔 팀에 임대되었지만 제대로 경기조차 못나왔다.

여담으로 결혼했다가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 전 부인을 약 15살 때부터 사귀어왔다는데 서로 혼전순결[22]이었다고 한다. 카카가 AC 밀란에서 뛰고있었고 카롤리니는 밀라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카카는 그녀에게 일이 있으니 베네치아에 가자[23]고 했고 카롤리니는 별 생각없이 따라갔는데 레스토랑에서 반지를 꺼내 프로포즈 했다고...오오 로맨티스트 오오 그리고 그녀는 크리스챤 디오르 브라질 지부 부사장의 영애. 한 마디로 인생의 승리자.

파일:external/845f8d5c0b419927fcfdb778aa46d356ca7643145e62d6d6a201b1deb047b248.jpg
아들 루카는 아빠를, 딸 이사벨라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러나 2014년 11월 5일 부인과 이혼했다.# 카카가 AC밀란 - 레알 마드리드 - AC밀란 복귀 - MLS 올랜도 시티 계약 - 상파울루 임대 라는 꽤 복잡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시에 부인 역시 브라질 내 패션 사업이나 기타 영리 단체를 운영하는 등, 서로 만날 시간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진 모양이다. 축구선수들 중 가장 이상적인 워너비 커플이었기에 충격이 크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이혼하고서도 계속적으로 만나고 있다. SNS 등을 통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있다. 가족 모임에도 같이 참가하고 있고. 그것도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올리는게 아니라 카카와 카롤리니 두 사람의 SNS에서 쌍으로 올리고 있다. 크리스마스 부터 새해까지 이어지는 연말이 압권이었는데 카카가 카롤리니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하는 사진까지도...뭐야, 이 커플.

그러더니 2015년 1월 5일에 재결합을 선언했다(...). 이혼 파문은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어난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그런데 2015년 8월 카롤리니가 SNS에 이혼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재결합 후 인스타에 올렸던 닭살돋는 사진들도 전부 삭제한 상태였다.
파일:external/cde.peru.com/vanessa-siqueira.jpg
이윽고 카카가 사진 속 여인인 바네사[24]와 만나고 있다는 뉴스가 터졌다. 처음부터 카카의 첫 이혼에 불륜 루머가 있긴 했었다. 카롤리니의 글을 보고 팬들은 '응? 또 헤어지고 만나고 또 헤어졌어?' 그런데 취향 알겠네라는 반응을 보이며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카카와 바네사가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되었고 현재 카롤리니하곤 완전히 끝났다.
2016년 12월경 또 새로운 여친이 공개되었다. 그간 알려진 취향(...)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이며 배우 겸 모델인 카롤리니 디아즈라고 한다. 카카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전부인 카롤리니와 낳은 두 자녀와의 사이도 원만한듯 하다. 2018년 현재까지도 잘 사귀고 있다.

이탈리아 방송에 나와서 진행자가 '님은 대체 못하는게 뭐임?'이라고 질문했더니 춤을 정말 지독하게 못춘다고 밝혔다.[25] 역시 신은 공평한가? 그러고 보니 브라질 국대 에이스 치고 발놀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여기서부터가 차별점. 옛날옛적의 호마리우도 그렇고 최근에 아드리아누, 호비뉴같이 브라질엔 멘탈이 영 썩어들어간(...) 선수들이 오히려 더 많은데 어째 카카는 기분 나쁠 정도로 멘탈이 좋다. 위 선수들 덕에 애국자 줄리우 밥티스타 장군[26]과 더불어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AC 밀란 시절에 있던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오랜만에 훈련 후의 뒷풀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들이 선수들의 소위 X파일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추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여러 선수들이 술집에서 놀다가 여자를 하나씩 끼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들이 포착되었고, 카카 또한 매의 눈으로 노려지고 있던 상황. 아무리 사생활이 깨끗하다해도 남자가 이럴 때는 놀거라고 생각한 기자들이 포착한 것은...
  • 선수들과 그냥 헤어진 뒤 공원 벤치에서 성경을 읽는 카카
  • 성경 책을 접어 가방에 넣고는 공원을 산책하며 성경 구절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카카

이런 세상에 맙소사.

소문으로만 듣던 카카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지켜본 기자들은 잔뜩 질려서 바로 철수해버렸고 그 날로 카카는 기자들의 관심 따위 못 받게 되었다.(...)[27]

실제로 카카는 워낙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은퇴 후에는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뿐만 아니라 매춘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적도 있다. 심지어 존경하는 사람이 한국의 정바울이라는 목사라고 한다.[28]

2006/07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AC밀란이 맨유와 4강에서 만났는데 그때 카카가 경기 중 라이언 긱스의 목을 붙잡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당시 박지성의 영향으로 맨유팬이 절대다수였던 한국 내 해외축구 팬들에게선 카카가 예의가 없다고 비판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그 후 몇년 뒤 알려진 긱스의 불륜사건으로 카카가 건실한 신앙인으로서 죄인을 미리 알아봐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냐는 농담도 있었다.

긱스의 목덜미를 움켜쥔 것도 있고 레알 마드리드 이후 AC 밀란에 돌아와서 경기 도중 혼다 케이스케에게 화를 마구 내는 장면도 찍혔다. 어떤 상황이었냐면 밀란이 상대에게 코너킥을 허용한 뒤 잠깐의 문전 위기상황이 있었다 클리어 했는데 그때 혼다가 상대 공격수 마크를 놓쳤고 카카는 이에 혼다에게 역정을 부렸는데 혼다도 지지않고 카카에게 소리를 지른 듯 했다. 이렇게 보면 신앙심이 독실하고 모범적이긴 해도 성깔은 있는듯.

카카 자신이 올스타를 뽑았다.

2016년 6월 27일 기준으로 페이스북 팔로워가 3223만여 명(축구선수 중 6위)이다.

두 팔을 벌려 하나님께 기도하는 세레모니로 유명하다.

카카의 개신교 신앙은 두 후배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그 둘은 자기들 신앙의 롤모델은 카카라고 인터뷰에서 종종 얘기한다.[29]

드리블만으로 상대 수비수의 십자인대를 파열시킨(…) 경력이 있다. 상대는 왓더 월터 사무엘. 그는 밀란 더비에서 카카의 드리블 테크닉을 무리하게 쫓아가려다 경기 도중 생방송으로 그의 몸 방향과 무릎의 방향이 다른 꽤나 소름 끼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센카쿠? 십자인대 파열로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에 대한 집념으로 다시 일어나 공을 보다가 같은 팀의 수비가 공을 취득한 걸 보고 그제서야 쓰러졌다. 결론은 둘 다 대단하다.

아무래도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광속 드리블 실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오른발은 위협적이고 무엇보다 활동량이 후덜덜하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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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는 어딜가고 료토 마치다가 레알 유니폼을 입고 있다.

또한 레알 입단 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망가졌다. 옛날과 비교해보면 같은 얼굴은 같은 얼굴인데 마음 고생이 심해서 그런지 뭔가 많이...분위기랄까 인상이랄까 하여튼 나쁜 의미로 달라졌다.브루스 배너? 특히 레알 시절에는 안 기르던 수염까지 기르고, 광대뼈가 튀어나올정도로 어딘가 수척해보이는 인상.그런데 스페인에만 가면 많은 선수들이 외모 관리를 하지 않기 시작하고, 유독 수염을 잔뜩 기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근데 그 인상도 밀란와서 감량과 심적 안정 등으로 꽤나 돌아와서 정말로 마드리드 지맥이 카카랑 맞지 않는 건가...
여담이지만, 많은 탑급 선수들이 유독 레알 마드리드에만 들어가면 버로우 타는 경우가 많긴하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감독들 역시 모두 모두 희한하게(?) 다른 곳에서는 날라다녀도 레알에서는 죽상 쓰는 경우가 많아서...오죽했으면 선수 장악력이 강하다는 '스페셜 원' 무리뉴조차도 락커룸 장악에 실패하고 감독 시절 끊임없이 불화에 시달렸다. 스페인 언론에 시달리고서 EPL로 돌아갔던 것만 보더라도 그 압박이 EPL보다도 심했다는 판단이 들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레알 마드리드라는 큰 구단에 대한 부담 뿐만 아니라 매일 압력을 주는 언론, 팬들, 그리고 보드진까지(...) 여러가지 레알이 갖는 특수적 상황이 선수들과 감독들을 괴롭게 하기는 하는 모양. 하긴, 회장이 직접 여론몰이 하는 곳은 드물긴하다!
지네딘 지단 마저도 레알 마드리드 입단 초반에는 몸값 하지 않는다는 팬들 및 언론의 압박에 못이겨서 때려치고 싶었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한 바 있다.물론,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 현재 레알의 감독까지!
어쨌든 카카는 그 부담감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국에서 열성팬이 많은 선수다. 인기 구단인 AC 밀란의 마지막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전성기에는 플레이메이커로서 모든 공격전권을 부임받은 상태에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플레이로 유럽을 석권했다. 이 때는 한국에서 해외 축구 중계가 도입기를 지나 최초의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이라 그 퍼스트 임팩트가 대단했다. 게다가 박지성 선수의 맨유 입단으로 관심이 모아지던 시기에 2006/07시즌 맨유 상대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해축팬들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겨준 것도 컸다.[30] 상술되다시피 젠틀한 사생활과 얼굴로 브라질 귀공자 이미지까지 더해 인기가 폭발했다. 아무튼 좋은 것만으로 가득 끌어모은 팬들이고 퍼스트 임팩트가 너무 대단한 탓이었는지 많은 열성팬들의 애틋한 팬심으로 카카에 대한 미련을 일찍 떠나보내지 못했다.

여담으로 카카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똥(...)이란 뜻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탈리아에 올 때 AC 밀란 말고도 유벤투스가 그를 영입하려 하는 한편 저런 이유를 대며 예명을 고쳐달라고 했다. 허나 카카는 거절하며 예명 안 고쳐도 상관없다고 한 AC 밀란으로 간 것.

영어 구사력이 수준급이다.[31]

2018년 6월 유니버셜 올랜도 리조트 광고영상을 촬영하였다.

월드클래스로 성장하는 선수들에게 하나같이 따라붙는 제 2의 OO라는 수식어처럼, 카카도 한 때 '제 2의 지코', '하얀 펠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제 2의 카카로 불리던 유망주들인 오스카, 루카스 피아존, 루카스 실바 등 하나 같이 다 실패했다.
마찬가지로 제 2의 카카란 수식어가 따라붙던 루카스 파케타AC 밀란과 계약을 맺었다. 카카가 이사진으로 있기 때문에 특히 관심이 모였지만, 카카 본인은 파케타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며 자신과의 비교는 하지 말아달란 인터뷰를 했다.
왠지 모 만화에 나오는 모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32]

6. 카카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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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차 때문에 피곤해 보이는 소년이 필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천국의 광경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졌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선수를 내려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카를로 안첼로티[33]
"그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맨시티로부터의 이적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항상 흥미롭고 흥분된다. 우리는 그를 영입하고 싶다." -마크 휴즈
"그는 완벽한 선수다." -펠레[34]
"카카가 밀란을 떠나서 아쉽다. 2~3년 동안 카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안드레아 피를로[35]
"전에도 카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직접 지도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다. 카카를 지도해 행복하다." -마누엘 펠레그리니
"내가 보기에 카카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그의 축구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의 재능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축구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자신감을 올려준다."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모든 걸 다 갖춘 엄친아같은 선수다. 잘 생기고, 공도 잘 차고 돈도 잘 번다. -차두리

7. 어록

닮고 싶은 선수는 있지만 되고 싶은 선수는 없다.
노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8. 기록

8.1. 대회 기록

  • 상 파울루 (2001 - 2003, 2014)
    • Torneio Rio-São Paulo (1) : 2001

8.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1 상 파울루 브라질 세리에 A 27 12 - 7 1 - 5 0 -
2002 22 9 - 9 6 - - - -
2003 10 2 - 5 0 - - - -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3/04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0 4 4 0 0 10 4 1
2004/05 36 7 5 1 0 0 13 2 5
2005/06 35 14 3 2 0 0 12 5 2
2006/07 31 8 6 2 0 0 15 10 5
2007/08 30 15 10 0 0 0 9 3 2
2008/09 31 16 9 1 0 1 4 0 2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9/10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25 8 6 1 0 0 7 1 2
2010/11 14 7 5 3 0 0 3 0 1
2011/12 27 5 9 4 0 0 8 3 5
2012/13 19 3 3 2 1 0 6 1 1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3/14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7 4 1 0 0 6 2 1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4 상 파울루 브라질 세리에 A 19 2 1 0 0 0 0 0 0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15 올랜도 시티 SC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28 9 7 1 1 0 - - -
2016 8 3 5 0 0 0 - - -

8.3.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3) : 2003-04, 2005-06, 2006-07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 : 2003-04, 2006-07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 : 2004-05, 2011-12
  •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 2004-05
  • UEFA 올해의 팀 (3) : 2006, 2007, 2009
  • FlFA/FlFPro 월드 Xl (3) : 2006, 2007, 2008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 2006-07
  •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 : 2006-07
  •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 2006-07
  • FlFPro 올해의 선수 : 2007
  • FlFA 올해의 선수 : 2007
  • 발롱도르 : 2007
  • 월드사커 올해의 선수 : 2007
  • lFFHS 최우수 플레이메이커 : 2007
  • 옹즈도르 : 2007
  • Fl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 2007
  • FlFA 클럽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 2007
  • 마라카낭 명예의 전당 : 2008
  • 마르카 전설 상 : 2009
  • Fl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볼 : 2009
  • FlFA 컨페더레이션스컵 베스트 Xl : 2009
  • FlFA 월드컵 도움왕 : 2010
  • 밀란 명예의 전당 : 2010
  • MLS 최우수 선수 : 2015

[1]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그의 동생 호드리구(Rodrigo)가 형의 이름 '히카르두'를 잘 발음하지 못하고 그를 '카카(Kaká)'로 불렀는데, 이것이 이름으로 굳은것이라고 한다. 다른 브라질 선수들도 본래 이름이 아닌 것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름이 기니까 펠레, 베베투, 히바우두 역시 원래의 이름이 있다.[3] 혈통은 포르투갈이탈리아[4] #[5] 링크에 걸려있는것은 짱깨사이트여서 안정확하다 짱깨 블로거가 지어낸거다. 2005년도에 카카 혈액형 B형이라고 나왔었다. #[6] #[7]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였지만 세컨드 스트라이커중앙 미드필더 역할 또한 수행했다.[8] 공식적으로 카카가 역대 축구 선수 중 치달의 최고봉으로 평가받은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엄친아 속성으로 인한 스타성과 제2의 밀란 전성기, 그 와중에 무려 호날두메시까지 제치고 파고 들어가는 미친 주력과 임팩트로 치달의 대표격 선수로 통한다. 치달을 논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선수.[9] 본인 말로는 중산층이라고 하지만 상당한 부자로 알려져있다. 부모님 인심이 넉넉하신 건지 10대 시절 카카는 돈이 없거나 집이 너무 멀어서 귀가하기 어려운 팀 동료 선수들을 자기 집에 데려가 재워주기도 했고, 카카가 없을때도 동료 선수들이 찾아갔을 때 잘 대접해줬다는 일화가 있다.[10] 비록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 했지만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카카가 뛴 시간이라고는 코스타리카전 잠깐, 그것도 브라질이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으니까 들어간 게 전부다. 사실상 자기 이름만 올려놓고 월드컵 우승멤버가 된 셈이다.호나우두도 1994년 미국 월드컵엔 엔트리에 이름만 올리고 우승멤버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은 지금이랑 달랐다. 정말 세계 최고만이 들어갈 수 있던 팀이었다. 그 당시 브라질의 주축 공격진이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였음을 생각해보자. 어지간한 유럽 빅클럽은 쌈싸먹는 수준의 스쿼드였다. 카카로서는 그 나이에 브라질의 월드컵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11] 유럽 주요 1부 리그에서.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는 여전히 플레이메이커가 판친다. 그리고 유럽 주요 1부 리그 내에서도 여전히 플레이메이커 쓰는 구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12] 이에 대해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플레이메이커는 최전방 공격수 바로 밑에서 공격수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센터포워드가 열심히 빈공간을 찾아들어가고 밑에서는 수비랑 전방에 공 뿌리느라 바쁠 때,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은 선수는 공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공을 받으면 공격수가 골 넣을 수 있게 잘 찔러주는 플레이를 주로 구사한다. 지네딘 지단, 후이 코스타, 후안 로만 리켈메 등이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아 상술한 플레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술의 흐름이 바뀌어, 압박이 더욱 강해지고 모든 선수가 공격 및 수비에 개입하게 되자 정적인 온 더 볼 플레이를 주로 구사하는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는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13] 최대한 비슷한 유형이라면 같은 국적인 호나우지뉴이다. 역시 전성기 때는 플레이메이킹을 했지만 직접 뛰어들어 득점하는 플레이도 많았다.[14] 라사나 디아라가 가투소, 페르난도 가고가 세도르프 내진 암브로시니, 그리고 사비 알론소가 피를로의 역할을 맡아줄 수 있었지만 이 선수들은 밀란 선수들과 비슷해 보여도 스타일이 상이했고 그리고 갈락티코 2기의 공격의 중심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카카가 무릎부상을 당했고 그로인해 밀란 2006/07 때 만큼 파괴적인 활동은 못보여 줘도 그래도 공격을 이끌 능력은 충분했지만 레알에서 카카의 역할이 상당히 애매했다. 카카를 호날두 보조로만 쓰기엔 능력이 너무 아까웠고 그렇다 해서 호날두와 카카를 공존시키자니 둘 성향이 겹치는데다 호날두가 그때 전성기를 진입한 상황이었으니...그래서인지 나중에 들어온 좀 더 플레이메이킹에 치중된 메수트 외질에게 완전히 밀려버렸고 카카는 공격이 진짜 드럽게 안풀릴 때나 가끔 나오는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15] 대부분의 브라질 에이스들이 화려한 개인기를 시전해 왔던 것과 달리 간결한 드리블을 선보였다.[16] 덕분에 레알에서 먹튀가 된 사실이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17] 특히 2015년에는 공동 득점왕이었던 메시/호날두/네이마르가 발롱도르 포디움에 모두 들어갔다. 이 징크스는 2018년 루카 모드리치가 수상하면서 비로소 깨졌다.[18] 이 부분이 2000년 후반대에 세리에 정상급 공미로 활약한 웨슬리 스네이더와 확실히 대조되는 부분. 자세한 비교는 항목 참고.[19] 킬패스 혹은 직접 돌파 후 득점[20] 사실 베일은 카카처럼 폼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건 아니고 부상이 너무 잦아졌다.[21] 물론 레알 마드리드에 있었을 때에도 부상으로 인해 주력이 줄어들고,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전술 상 카카에게 있는 찬스메이킹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경기도 많았다.[22] 카카의 나이 23세, 카롤리니의 나이 18세 때 결혼했다.[23] 물론 일이 있다는 건 뻥이다.[24] 국내에는 이름이 올리비에라라고도 알려져있는데 이전에 열애설이 난 상대가 미스 브라질 올리비에라다.[25] 사실은 카카는 브라질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유일하게 삼바를 못 춘다고 하며, 동료 선수가 골을 넣고 다른 선수들과 브라질 국민들 앞에서 삼바를 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카카만 유독 엉성했다.[26] 멘탈 하나만큼은 카카에 버금갈 군자급이며 국대에 클럽보다 잘하는 애국자다. 최근엔 장군이란 별명도 얻었지만...클럽에서는 먹튀. 세리에의 4대 먹튀 콰밥만훈 가운데 밥이 바로 밥티스타다.[27] 비슷한 예로 박지성이 있는데 한국인을 비롯한 여러 파파라치들이 박지성의 사생활을 털려고 계속 붙어다녔지만 훈련 끝나고 나면 집에 들어가서 위닝이나 하고 가끔 불러서 같이 위닝하는 정도가 전부에 바깥에 나가는 것도 생활용품 쇼핑이나 차에 기름넣는 정도 밖에 없었다. 참고로 박지성의 부모님의 종교는 불교라 알려졌고 박지성은 딱히 종교에 관해 이야기가 없다.[28] 아마 2002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를 치룰 때 간 교회로 추정된다. 당시 브라질이 조별리그 3차전 코스타리카전을 수원에서 경기를 치룬 적 있기 때문에.[29] 믿을 수 없지만네이마르는 자신이 출석하던 교회에 자기 연봉을 가지고 십일조를 줄곧 한다고 한다.[30] 그리고 이 해에 챔스 우승을 견인하고 발롱도르까지 수상한다. 관심을 안받을래야 안받을 수가 없다...[31] 2007년 발롱도르 시상식 에서 성경구절을 언급하며 시상 소감을 전했는데 이때 전부 영어로 했다.[32] 이름 때문인 듯[33] 자서전에서 카카가 처음 훈련장에 출근했을때를 회고하며. 참고로 카카가 처음 영입될 당시 정보가 없어서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기자회견 당시 기자들이 이번 영입에서 기대하는 강점을 말해 달라고 했는데 카카에 대해 토니누 세레조와 비슷한 타입의 선수라고 설명했다고...그리고 첫 연습날에도 실력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는지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 줘야 찾아올 것 같은데"란 생각을 하거나 "부모님께 학교 안 간다고 말씀드렸니?" 같은 시답잖은 농담이나 던졌는데, 필드로 들어가서 공을 만지자 그 플레이 하나하나에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고.[34] 2007년 카카의 발롱도르 수상 이후 펠레의 발언. 그래서 그 이후에 버로우를 탔나[35] 2009년 카카가 밀란을 떠난 후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