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21:44:00

후쿠도메 고스케

후쿠도메 코스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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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쿠돔 퍽유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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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스 시절. 염소의 저주를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설레발이 적혀있다
한신 타이거스 No.8
후쿠도메 고스케(福留孝介)
생년월일 1977년 4월 26일
국적 일본
출신지 가고시마소오오사키 정
출신학교 PL학원고등학교 (오사카)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체격 183cm 91kg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주니치 드래곤즈 (1999~2007)
시카고 컵스 (2008~201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1)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2)
한신 타이거스 (2013~)
2006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가네모토 도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후쿠도메 고스케
(주니치 드래곤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반지
2006 2009

1. 개요2. 일본 시절3. 미국 시절4. 일본 복귀5. 연도별 성적

1. 개요

일본의 야구선수.

2. 일본 시절

1977년 생으로, 오사카 지역의 야구명문교인 PL가쿠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1] 1995년도에 개최된 드래프트 회의에서 5툴 플레이어로 주목받으며 지명 순위 1순위로 무려 7개 팀이 경합한 끝에 킨테츠 버팔로즈가 교섭 우선권을 따냈다. 하지만 본인은 주니치나 요미우리가 아니면 프로에 가지 않겠다라며 지명을 거부하고 사회인야구팀 일본생명에서[2] 1996~1998년 3년간 뛰다가 1998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게 되었다.[3] 이 와중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 은메달 획득에 기여하기도 했다.[4]

1999년 데뷔 시즌부터 주전 유격수로 뛰며 신인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121삼진으로 최다 삼진+1년차 선수 삼진 통산 1위(...)기록을 찍는 등 선풍기도 아낌없이 돌렸다. 흔히 이종범이 후쿠도메에게 유격수 자리를 뺏겼다고 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이종범은 부상당하기 전부터 호시노 센이치 감독에게 "유격수의 기본이 안되어있는 선수" 라는 혹평까지 들어가며 까이다가 부상을 당한 이후 3루수를 거쳐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즉 1998년 후반기에 이미 이종범은 외야로 옮겼기에 후쿠도메는 이종범 자리를 뺏은 것이 아니라 무혈입성한 셈.[5]

그러나 차세대 주니치 드래곤즈의 유격수로 생각되던 후쿠도메 역시 수비력에서 꽤나 문제를 보였다. 루키시즌 페넌트레이스때나 일본 시리즈 때 패배로 직결되는 에러를 수도 없이 저지르며 호시노 센이치에게 개갈굼을 먹고 이종범 테크를 그대로 밟는다. 3루수를 거쳐 외야수로 전향한 것.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주니치 드래곤즈는 이바타 히로카즈가 자리잡기 전까지 주전 유격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돌림빵으로 막아간다.

외야수로 전향한 후에는 골든글러브급 수비와 함께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활약하며 MVP 1회, 타격왕 2회, 베스트나인 3회, 골든글러브 4회를 수상했다. 특히 MVP와 타격왕을 차지한 2006년에는 붙박이 우익수-3번타자로 .351/.438/.653 OPS 1.091의 리그 최고 비율스탯과 31홈런 104타점 117득점을 기록하며. 홈런왕-타점왕 2관왕을 차지한 타이론 우즈와 함께 공포의 중심타선을 꾸렸다.

2006년, 2009년 두 번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였는데, 특히 2006년 대회 준결승 한국전에서 김병현에게 결승 2점홈런을 쳐 낸 바가 있다. 이 대회 결승전에서도 9회 대타로 나와 훗날 크보에서 뛰게 되는 한 투수를 상대로 일본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타를 때리며 우승에 기여했다.

3. 미국 시절

2007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으며 시카고 컵스4년간 4,800만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거가 되었다.[6] 이때만 해도 마쓰이 히데키의 활약을 통해 일본의 정상급 타자들도 미국에서 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지라 후쿠도메를 영입하기 위해 미국에서도 경쟁이 있었고, 컵스가 최종 승자가 되었다.


2008 시즌, 시카고 홈에서 열린 밀워키 전에서 데뷔전에서 첫 타석 2루타에 이어 0대3으로 지고 있던 9회에서 사이영상 마무리 에릭 가니에를 상대로 만화같은 동점 쓰리런을 기록하며 컵스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시즌 중반까지 적절히 활약하며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뽑히는 등 성공적인 미국 데뷔를 하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기에 들어 대 삽질을 하며 3할을 훌쩍 넘던 타율은 온데간데없고 2할 5푼대의 최종 성적을 찍고 말았다. 신인왕 투표에서도 6위를 차지했으나 팀이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9 시즌도 역시 시즌 초반에는 타율 3할대를 기록하며 잘 나가다가 5월 이후 또다시 삽을 푸며 역시 2할 5푼대로 시즌 종료. 특히 좌완투수 상대 타율이 1할 6푼대라는 처참한 좌상바 기질을 보이며 좌투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기 일쑤였다.

2010시즌 역시 좌투수가 선발로 나올 경우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 그 와중에 6월 18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치며 나름대로 살아있음(!)을 과시했으나, 여전히 타율은 2할 6푼대. 8월 10일에는 팀 린스컴을 상대로 아시아 최초로 샌프홈구장을 넘기는 '스플래시 히트'라는 장외홈런을 쳤다!

2011시즌부터는 더이상 봄쿠도메가 아니었다! 다만 처음부터 평범한 성적을 냈을 뿐. 이쯤 되면 먹튀 확정. 시카고 컵스 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지 못하다고 하니 지못미

7월 29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부족한 외야진을 보충하기 위해 영입했다. 추신수그래디 사이즈모어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트레이드가 성립된 것. 클리블랜드에 대해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었지만 클리블랜드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쓰지 않았다고... 컵스 팬들은 드디어 꼴보기 싫은 선수 들어냈다고 환호한 반면 인디언스 팬들은 돈은 없는데 선수보강할 자신 없으니까 전력보강 시늉만 했다며 단장을 깠다.(...)

영어로 표기,발음하기 애매한 이름(Fukudome = F*ck You Do Me)을 가지고 있어 부진할 경우 컵스 팬들로부터 이름과 비슷한 욕을 듣기도.(...)

2012년 2월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1년 1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지만 6월에 방출되었고 7월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한번도 콜업되지 못하고 웨이버 신세. 이적시장에서도 오퍼가 없어서 일본 복귀가 확정되었다.

여담으로 국내 팬들에게는 에만 잘한다고 봄쿠도메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한때 같은 외야수인 닉 마카키스와 더불어 추신수와 비교할만한 선수로 거론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결국은 '5월까지의 후쿠도메'와 '5월까지의 추신수' 성적만 비교되는 신세(...)

결과적으로 컵스에서 4년간은 평범한 성적을 찍었다. 내리막을 탄 마지막 해를 제외하면 3년간 2할 5푼대의 애버리지에 10개 좀 넘는 홈런으로 100을 좀 넘기는 wrc+인,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그럭저럭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다만 받는 돈이 연 1000만불을 넘는 대형 계약이어서 그렇지...5년간 fwar 4.2, 최고 커리어 하이 시즌은 2.4까지도 찍은 평범한 외야수 정도였다. 당시 추신수와 비교되며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그 추신수도 텍사스에 가서는 후쿠도메보다 3배나 되는 돈을 먹어치우는데 거의 비슷한 fwar을 찍으며(...) 인생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이상하게 후쿠도메 비웃는 사람들이 가성비 더 나쁜 추신수 계약은 먹튀까지는 아니라로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4. 일본 복귀

2012년 12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와 3년 6억엔에 계약을 맺고 국내로 복귀하였다. 타율이 2할을 밑도는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가 5월 들어서는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메쟈 방출생 출신 니시오카 츠요시는 날아다니고 있는데... 결국 왼쪽 무릎수술이 확정되면서 사실상 시즌 아웃...

게다가 2014년에는 개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니시오카 츠요시와 수비 도중 충돌하며 니시오카가 전반기를 날려먹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본인도 타율 2할대를 밑도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한신의 대형 먹튀 계보를 이어갈 기세, Aㅏ... 결국 6월 초순경 타율 1할대를 뚫고 들어가는 부진끝에 2군으로 강등되었다.

이처럼 정규시즌에 죽을 쑤며 한신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한신 타이거스가 센트럴리그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 타선에서 맹활약을 하며 한신의 2014년 일본시리즈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비록 MVP는 오승환이 받았지만 후쿠도메 역시 마우로 고메즈와 함께 타선에서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계약 마지막 해인 2015년에는 반등에 성공, 140경기 0.281, 20홈런, 76타점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시즌 후에 구단과 1년 2억엔에 재계약에 성공했다. 특이사항으로 외야수로서 무실책 시즌을 보내며 주니치 시절이던 2006년 이후 9년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6년 6월 20일 오릭스전에서 일본통산 1500안타를 쳤고, 며칠 후인 25일 히로시마전에서는 일미통산 2000안타를 기록했다. 2016년 7월 30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홈경기에서는 4번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 4타수 4안타 1홈런 5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하며 개인 통산 두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였다. 이날 후쿠도메는 만 39세 3개월 3일로, 1983년 4월 30일 한신전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야마모토 코지의 만 36세 6개월을 훌쩍 뛰어넘어 일본프로야구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였다. 일본어 기사

2017년에는 40세의 나이를 숨길 순 없는건지 비율스탯이 전년에 비해 다소 감소했으나, 장타는 살아있어 팀내 2위인 17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입단 초기인 2013, 2014년엔 안좋았지만 2015년부터 3시즌동안 OPS 8할 이상을 꾸준히 찍는 등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전임 40대 좌익수이자 현 감독와는 달리 좌익수 수비 지표도 약간의 +를 찍고 있다. 타고난 운동능력은 아직 죽지 않은 모양.

2018년에는 41세의 나이로 5번타자, OPS 8할 후반대를 찍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종 성적은 14홈런 72타점 .280 .389 .454

2019년에도 한신의 외야를 지켰다. 결장도 늘어나고 스탯도 많이 깎였지만, 이젠 정말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를 고려해보면 상당히 분전하고 있는 중. 특히 시즌 막판 꾸준히 안타를 쳐주며 팀의 역전 CS행에 크게 공헌했다. 9월 24일에는 10호 홈런을 치며 5년연속 2자릿수 홈런 시즌을 만들었다. 최종 기록은 103경기 출장에 10홈런 47타점, 타율 0.258 출루율 0.348 장타율 0.397.로 한신의 물타선에서 오오야마, 마르테와 함께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낸 타자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선수는 나이가 마흔 두 살이다.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도 활약.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2차전에서 리드를 굳히는 적시타, 이후 다시 점수가 뒤집힌 9회에는 동점을 만드는 솔로홈런을 때려내는 등 4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중심타자로 활약하였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도 분전하였으나 팀은 4-1로 교진에게 패하여 탈락.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1999 주니치 드래곤즈 132 526 .284 131 25 2 16 52 76 4 .451 .359
2000 97 368 .253 80 18 2 13 42 50 8 .446 .350
2001 120 442 .251 94 22 2 15 56 51 8 .440 .352
2002 140 608 0.343
(1위)
186 42
(1위)
3 19 65 85 4 .537 .406
2003 140 617 .313 165 30 11 34 96 107
(1위)
10 .604 .401
2004 92 404 .277 97 19 7 23 81 61 8 .569 .367
2005 142 612 .328 169 39 6 28 103 102 13 .590 .430
2006 130 578 0.351
(1위)
174 47
(1위)
5 31 104 117
(1위)
11 .653 .438
2007 81 348 .294 79 22 0 13 48 64 5 .520 .443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2013 한신 타이거스 63 241 .198 42 11 0 6 31 18 0 .335 .295
2014 104 367 .253 79 8 0 9 34 20 1 .365 .349
2015 140 569 .281 139 24 3 20 76 53 1 .463 .361
2016 131 523 .311 141 25 3 11 59 52 0 .453 .392
2017 127 526 .263 116 20 3 18 79 68 1 .444 .373
2018 123 499 .280 116 26 2 14 72 57 2 .454 .389
2019 104 403 .256 89 16 1 10 47 39 0 .394 .347
NPB 통산
(16시즌)
1866 7631 .291 1897 394 50 280 1045 1020 76 .495 .383


[1] 수많은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을 배출했다. 키요하라 카즈히로, 타츠나미 카즈요시, 쿠와타 마스미, 마쓰이 카즈오, 마에다 켄타, 이마에 토시아키[2] 근데 아이러니한 건 일본생명 소유의 야구장 닛세이 구장이 과거 킨테츠 버팔로즈의 홈구장이라는 것(...) 참고로 닛세이 구장은 1997년 철거되었다.[3] 당시에는 역지명제도가 있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팀에 지명된 고등학교 3학년생은 대학교에 입학해 4시즌을 뛰거나, 일본 사회인야구팀에 3시즌을 뛰면 본인이 원하는 팀으로 갈 수 있었다.[4] 당시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맹활약해 14:4 콜드게임 승을 이끌어 냈다.[5] 이종범의 대체자로 유격수를 보던 쿠지 테루요시골든글러브 수상 경력이 있기는 했지만 타격은 딱 멘도사 라인급 선수였기에 더욱 그러했다.(애초에 이분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최초 무홈런 야수 신인왕이니..) 쿠지는 후쿠도메가 온 이후에는 내야 대수비로 뛰었으며 현재 한신 타이거스 코치로 활동중이다.[6] 후쿠도메는 이미 FA를 얻으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중견수를 보던 외국인 선수 알렉스 오초아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하며 주니치는 외야 공백의 대안으로 큰 이병규를 영입한다. 하지만 이병규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올렸고, 결국 중심타선 + 외야 한 자리의 공백은 세이부 라이온즈의 강타자 와다 카즈히로를 FA 영입하는 것으로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