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인들의 역사[1] |
1. 개요
- 사하어: Хаҥалас 또는 Хаҥалас улууһа
- 러시아어: Хангала́сский улу́с(Хангаласский улус) 또는 Кангалассы
- 라틴 문자 표기: Khangalas(khangalassy) 또는 Kangalass(kangalassy)
'한갈라스' 및 '칸갈라스' 또는 '캉갈라스(Каҥалас)'라고도 불린다.
2. 역사(항갈라스 토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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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갈라스 부족을 비롯한 사하의 9개 이상의 울루스들은 주로 지금의 야쿠츠크 일대 등 주변 남부 일대를 포함하여 정착 및 이곳들을 다스렸으며, 서서히 사하 북부에도 진출하기도 했다. 1620년대에는 사하 공화국 남부 일대의 사하인들을 통합하려 했다. 결국 1625년, 트근 다르한이라는 영웅이 나타나서 남부 지역에 한정하여 사하인들을 통합시켜서 항갈라스 토욘국(Khangalas Toyonate)를 세웠다.[2] 이후 사하인들 뿐 아니라 기존의 토착민이기도 했던 퉁구스 민족들을 사하 남부에서 쫓아내기도 했었으며 그 외, 퉁구스족, 유카기르, 사모예드족 등 주변 민족들이 있는 곳들도 점령 및 복속시켜 사하 연맹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1628년 루스 차르국의 코사크 및 루스 차르국 군대들이 사하까지 처들어간다. 사하인들은 루스 차르국 군사들과 맞서 싸웠으나 총으로 무장했던 루스 차르국 군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며 결국 1632년 사하를 멸망시켰다.
3. 영향
그러나 이후에도 반러 저항운동 및 반식민지 운동이 일어났으며, 대표적으로 1633년 및 1634년까지의 봉기, 1636년부터 1637년까지 한 번 더 항갈라스 울루스를 계승한 세력들의 부흥운동들이 나타났다. 그 외에 1639년과 1640년, 1641년, 1642년까지도 여러 반란, 봉기들이 일어났다.4. 여담
척박하고 인구가 많지 않은 북아시아 동부 지역에서 반쯤에 가깝긴 했지만 드물게 준국가로서 존재했다.[5]기존의 튀르크계 민족들이 유목이었는데 비해 항갈라스 및 사하 공화국(자치국)을 세운 사하인들은 예로부터 경제적으로 수렵채집사회 및 어로가 주된 사회였으며[6], 종교도 텡그리 신앙을 유지하는 몇안되는 튀르크 민족에 해당되는 등 문화적으로도 달랐다.[7]
한 편 항갈라스 부족들이 중앙아시아 북부의 호라즘부터 볼가 강까지 활동했던 캉글리족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어 논문.
다른 북방민족들처럼 항갈라스 부족들도 수리과 동물을 신성시여겼으며 신화에도 언급이 되고 있다. #
사하인들이 세운 왕국이어서 그런지 이를 기념하여 이 이름을 단 산업단지도 있다. #
5. 관련 문서
[1] 영상을 보는 법: 거꾸로 흘러가고 있으며, '야쿠트 연맹(confederation of yakuts)' 또는 '사하 토욘국(sakha toyonate)'이라고 쓰여져 있는게 항갈라스 부족도 있었던 시기다.[2] '토욘(Toyon)'은 17세기부터 사하 일대의 지배 귀족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서, 몽골족의 '노얀(Noyan)'과 비슷한 개념이다.[3] 중심 도시는 포크롭스크.[4] 참고로 사하 공화국에는 항갈라스 뿐 아니라 그 외 주요 씨족 및 부족 이름들로 불리는 지명들도 많다.[5] 겨울에는 지리상 당연히 워낙 춥고, 라스푸티차 등 겨울이 지나 봄 후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동토가 녹아 진흙이 되는 등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살만한 곳이 되지 못해서 교통 등이 불편했고 이 점 때문에 북아시아 동부에는 나라가 세워질 조건들이 불리해서 나라들이 많지 않았다. 당장 항갈라스만 해도 부족들은 통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나라로 갖추긴 애매했다.[6] 유목을 아예 안한건 아니지만 워낙 춥기에 유목만 하기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순록을 방목하거나 다른 동물들도 사냥하는 수렵채집문화 및 어로가 발달되었다.[7] 물론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교회를 받아들였지만 어디까지나 식민지배 이후로 영향을 받은거였지, 전통적으로는 샤머니즘이나 텡그리 신앙을 믿었고, 지금도 이 전통종교들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