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20:26:24

한신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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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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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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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ruby(阪神, ruby=はんしん)]タイガース
구단 법인명 ㈜한신 타이거스
(株式会社阪神タイガース)
창단 1935년 12월 10일
연고지 효고현 니시노미야
구단 연고지 변천 효고 현 (1952~)
오사카 부 (2005~2007)
구단명 변천 오사카 타이거스 (1935~1939)
한신군 (1940~1946)
오사카 타이거스 (1947~1960)
한신 타이거스 (1961~)
홈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1935~)
교세라 돔 오사카 (코시엔 기간 및 홈 개막전)
2군 구장 한신나루오하마 구장 (1995~)
주요 주주
(모기업)
한신 전기철도 주식회사 100%
감독 야노 아키히로 (矢野 燿大)
킷 스폰서 미즈노
마스코트 파일:Hanshin_Tigers_Mascot.png
토라키(トラッキー)[1], 키타(キー太)[2], 럭키(ラッキー)[3]
일본시리즈 우승
(1회)
1985[4][5]
센트럴 리그 우승
(5회)
1962, 1964, 1985, 2003, 2005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1회)
2014
일본야구연맹 리그 우승[6]
(4회)
1937 추계, 1938 추계, 1944, 1947
역대
한국인 선수
오승환 (2014~2015)
공식 홈페이지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1984) 한신 타이거스 세이부 라이온즈(1986)
1962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61-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1963-요미우리 자이언츠
1964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63-한신 타이거스 한신 타이거스 1965-요미우리 자이언츠
1985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4-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1986-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3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02-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2004-주니치 드래곤즈
2005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04-주니치 드래곤즈 한신 타이거스 2006-주니치 드래곤즈

1. 개요2. 구단 명칭3. 홈구장4. 유니폼5. 인기
5.1. 팬덤
6. 관중수 추이7. 구단 역사8. 응원곡9. 징크스?
9.1.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냥 은퇴하고 해설이나 해!9.2. 국제대회
10. 안티 요미우리11. 미디어12. 이야깃거리
12.1. 한국선수 영입 낚시12.2. 켄터키 할아버지와의 악연
13. 시즌별 성적14. 대표적인 선수들
14.1. 현역 선수들(2019년 기준)
14.1.1. 투수14.1.2. 포수14.1.3. 내야수14.1.4. 외야수
14.2. OB
14.2.1. 영구결번, 준영구결번14.2.2. 출신 선수들
14.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14.4. 흑역사
15. 역대 감독16. 역대 성적17. 둘러보기

1. 개요

일본프로야구(NPB)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일본 한신[7] 일대로, 효고현 니시노미야[8]에 소재한 한신 고시엔 구장을 본거지 구장으로 보유하고 있다. 구장 위치가 효고현 동쪽 끝[9], 그러니까 오사카부효고현의 경계 쪽에 있어서 사실상 간사이 지방의 대표구단적인 존재이며, 일본인들조차 오사카(大阪)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의외로 NPB 규약에 의한 보호지역 (프랜차이즈) 은 오사카가 아닌 효고현으로, 사실 오사카부 연고 프로야구단은 오릭스 버팔로즈다.[10] 고시엔 구장이 오사카에 있다는 말을 듣고 화내면 효고 사람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대충 오사카에서 고베 가는 길에 있다고 보면 된다. 오사카에서는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 고시엔 구장을 내줄 때에 한해 오사카 돔 경기를 열고 있다.

팀의 상징은 호랑이. 팀 컬러는 옐로우.[11]한신의 팬들은 한국의 KIA 타이거즈의 팀 컬러가 왜 빨강인지 궁금해한다.[12] 그리고 홈 유니폼의 버티컬 스트라이프(세로줄무늬). 모기업은 이 팀 덕분에 먹고 사는 한신 전기철도다.[13] 한신대학교 아냐? 덕분에 경기 열리는 날엔 한신 전철 카오스 확정.

일본의 모든 프로야구 팀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우승을 못한 팀이지만, 간사이권을 대표하는 초인기팀이자 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프로야구 출범 시절부터 계속 이어진 뼈대 깊은 야구단이다. 또한 둘과 달리 지역명칭을 팀명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다.[14]

2. 구단 명칭

영문 표기는 HANSHIN Tigers로 해태/기아 타이거즈 때문에 한신 타이거즈로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15] 구단 정식명은 어디까지나 탁점을 붙이지 않은 阪神タイガー이다. 물론 일본어 표기 때문에 한국어로도 한신 타이거로 적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한신 타이거스 측에서 원한다면 그렇게 적어주는 게 좋겠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요청이 들어온 것이 아닌 이상 딱히 강요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프로야구 팀의 '스' '즈' 표기도 일본어로 일관성 있게 옮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16]

구단 이름에 걸맞게, WWF 일본지부와 협력하여 호랑이, 표범을 비롯한 고양이과 동물 보호 운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이자 WWF 일본지부 회장인 도쿠가와 츠네나리도 한신 팬. 그런데 가족들은 요미우리 팬이라고 한다 링크

3. 홈구장

파일:external/12cd184aaeac4aaf303d39238836d8d8bd4c72082fa600c95a75ca6ec1f4c254.jpg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
1군구장 고시엔 기간 2군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교세라 돔 오사카 한신나루오하마 구장

홈구장은 효고 현 니시노미야시[17]에 위치한 한신 고시엔 구장 (阪神甲子園球場). 1924년에 지어진 야구장으로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임과 동시에 고교야구의 성지라고 불리운다[18]. 이 때문에 철저한 개보수를 하고 있어 연식에 비해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구장 내부도 구장 외부 못지 않게 고급스러우며, 내부는 리모델링 공사를 거치며 최근에 지어진 구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담으로 홈구장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3월 말과 8월 중순에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옥의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3월의 경우는 아직 개막전이라 큰 지장이 없지만 가끔 프로야구 개막전과 일정이 겹쳐서 개막전을 원정경기로 치르는 경우도 있으며, 8월에도 프로야구 시즌은 계속되기 때문에, 한신 타이거스는 가장 더운 8월초 중순의 약 3주일에 가까운 기간동안 원정경기만 다니는 일명 '죽음의 원정(死のロード)'을 치뤘었으나, 오릭스 버팔로즈의 홈구장인 교세라 돔 오사카를 빌려서 홈경기를 하기 시작한 때부터 죽음의 원정까지는 안 한다.[19] 그리고 성적 저하가 죽음의 원정 탓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편 오릭스의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에는 한큐의 니시노미야 구장이 고시엔에서 단 3km도 떨어지지 않았었다. NPB가 양대 리그로 갈라지지 않았다면 한신의 최대 라이벌은 이쪽이었을 수도 있는데, 간사이권의 나머지 3개 구단이 모조리 퍼시픽 리그로 가는 바람에 요미우리와 맞서는 한신이 간사이 대표로 자리매김한 것.

농담으로 도쿄에 있는 메이지진구 구장도 한신 홈구장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20] 팬수가 많아서 보다는 야쿠르트 홈구장에 가서 야쿠르트는 안 까고 요미우리를 까기 때문(…). 한신-야쿠르트 전에서는 한신 팬들이 야쿠르트 공식 응원가인 도쿄온도(東京音頭)에서 야쿠르트 팬들이 외치는 '죽어라 요미우리'[21] 부분을 더 크게 따라 부르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한신-오릭스 전 한신의 홈경기로 개최되든, 오릭스의 홈경기로 개최되든 교세라 돔 오사카도 'Here is another Koshien Stadium'을 외칠만큼 한신팬 수가 압도적이다. 심지어 오릭스 홈 경기때는 엄청나게 한산하던 경기장이 한신 홈 경기때는 어퍼덱까지 꽉 차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 그나마 홈구단인 오릭스 굿즈 매장이 먼저 들어왔다는 건 위안거리.

4. 유니폼

한신 타이거스/유니폼 항목 참조.

5. 인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일본 프로야구 구단 중 가장 많은 팬 수를 보유한 팀 중 하나.
야구를 넘어선 간사이 그 자체

파일:external/pds.exblog.jp/c0058764_15104121.jpg
간사이권에서 한신의 인기를 보여주는 짤.[22]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TV에서 볼 수 있는 팀이 요미우리 뿐이라 요미우리 팬이 됐던 사람들이, 미디어의 발전으로 다른팀의 경기를 보는게 쉬워졌고, 응원팀을 옮겨가는 일이 많아져서 요미우리 팬의 숫자가 좀 줄어들었다. 그리고 간사이 지역의 팀은 1980년대까지 4나 현재는 2로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한신에 인기가 집중되게 된 탓도 있다. 인기는 엄청 좋은데 성적이 시원치 않다는 점은 비밀이다. 인기는 성적순이 아니라는걸 증명해 주는 구단.[23]

인기가 많은 만큼 극성팬이 많다. 팀 선수가 특정 경기에서 활약하면 거의 찬양하다시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애정을 쏟아붓는 반면에 못하면 간판 선수고 뭐고 상관 없이 전범 취급을 하며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 한신 팬들의 모토. 그 임팩트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까인다. 그래서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 시합이 끝난 뒤 팀 내 인기 선수 중 하나인 니시오카 츠요시가 신명나게 까이고 또 까였다. 그 전 날엔 이 분이(...)[24] 그리고 이 날 시합은 소프트뱅크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확신하던 시합이었던 만큼 한신팬들의 분노가 절정으로 치솟아 있던 상태였던지라 후쿠오카 야후 옥션 돔 외야 쪽엔 분노로 가득찬 한신 팬들이 집어던진 것으로 추정 되는 아니 확신 되는 무수의 한신 응원도구들이 쫙 깔려 있기도 했다.

특히 상황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마무리투수라는 포지션 같은 경우, 오승환으로 예를 들자면 조금이라도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면 한신팬들은 트위터나 2ch 실황 중계에서 기다렸다는듯 후지카와 큐지 데리고 와라, 오승환 죽어라ww 등의 욕으로 도배 되고 한신-교진전과 같은 중요경기에서 일이 터지면(?) 거의 반년이 넘도록 우려먹어지는데[25] 그 다음 날, 곧바로 퍼펙트 피칭으로 지난 경기를 만회하는 피칭을 보여주면 하루만에 태세전환을 하면서 역시 한신 수호신은 승환이야, 승환 대단해라며 언제 그랬냐는듯 태도를 바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흔한 일상이다.[26]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 센트럴 리그 대표.[27] 훌리건급의 열광적인 팬들을 가진 구단으로 유명하다. 거기다 지역밀착형이라 간사이 지방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구단[28]. 이 반작용으로 성적만 안 좋으면 언론에서 가루도 안 남을 정도로 까이고 또 까이며, 뭇 간사이인들의 술안주가 된다. 정말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나 미국의 보스턴 레드삭스 그 자체(…).[29] 오죽하면 간사이 지방을 빗대서 한신국(阪神国)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어느 정도냐 하면 팀 성적이 바닥을 긁던 1990년대 말에도 "관중석에 빈 자리가 좀 보이더라" 레벨이었고[30] 팀 성적이 좋아진 2000년대에는 원정 서포터즈석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조건 만원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막장 OB감독들이 지휘권을 잡던 시절이나 팀성적이 바닥을 헤메던 1980년대 중후반~1990년대 중후반에는 관중 동원력이 떨어져 그 넓은 고시엔 구장의 절반가량을 공기로 채우고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1992년처럼 잠깐 반등한다 싶으면 금새 다시 꽉 찼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올드팬들로부터는 "그때는 아무 때나 가도 표가 있었는데 요새는 성적이 좋아지니까 표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면서 배부른 푸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카와사키 구장처럼 외야가 황량해도 나가시소멘을 먹는다든지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처럼 외야가 널럴해도 삼겹살구울 순 없다.

한신 타이거스 팬 자격시험을 돈을 받고 보기도 하며,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서 팔기까지 한다. NPB 구단 중 유일하게 특정 팀만을 위한 게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름하여 '한신 타이거스 DS'라고…. 흠좀무.

때문에 우승 한 번 했다 치면 간사이가 난리가 난다. 2003년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했을 당시에는 오버좀 섞어서 전 도시가 세로줄무늬(한신 유니폼)로 칠해졌었으며, 우승 기념으로 출시된 세로줄무늬에 한신 엠블렘이 박혀있는 한신 우승 기념 게임큐브 한정판#[31]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게임큐브의 제작사인 닌텐도의 본사가 간사이 지방인 교토에 위치하고 있어서 만들어진 한정판. 사실 이 한정판은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이 올해 한신 우승하면 게임큐브 한정판 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던 것에 대한 실제 제품에 해당된다[32][33] .

그 인기가 높은 만큼 시구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하는데, 그 방탄소년단정국이 2017년 시구를 하고[34] 멤버 7인 전부가 전부 1루 덕아웃에 서기도 하여 간사이권에서 화제가 되었다. # 이 때 멤버들의 싸인볼이 고시엔 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고시엔 역사의 한 장을 새로 쓴...[35]

5.1. 팬덤

파일:일본의 취미.jpg


어지간한 야덕이 아니라면 오사카 및 간사이 지역[36]에 가서 절대로 한신 이야기를 하지 말 것. 괜히 얘기 꺼냈다가 밤새도록 한신 얘기를 지겨울 정도로 듣게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한신 팬이라는 걸 알면 아마 크게 놀라면서 밤새도록 같이 술마시며 롯코오로시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한신이라 가능한 이야기인데, 일본에서 야구를 보다보면 야구장에 혼자 오는 사람을 꽤 많이 볼 수 있지만 혼자 온 관중끼리 스스럼없이 대화를 틀 수 있는 구단은 아무래도 한신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타 구단 팬이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보통 초면 및 타인에게 조심스러운 일본인 특성상 같은 구단을 응원한다고 해도 옆사람에게 쉽게 말 걸면서 대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하지만 한신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한신 팬심을 공유하고자 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 일본의 TV등에서 여러 사례로 증명되어 있다. 참고로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한 실험으로, 오사카 지역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신 얘기를 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있던 생판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이 매우 높은 확률로 대화에 끼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한신 관중석에 혼자 앉아 있다고 해도 분위기가 좋아지면 초면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타 구단에 비해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이렇게 무시무시한 팬심과 유명세에 비해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역대 성적 탓에, 구단 직원들 중에서도 "솔직히 말해서 역사가 긴 팀이고요, 간사이에 있고요, 무엇보다 '안티 거인'이라는 이유로 살아남는 팀이죠"라고 평가하는 사람까지 있다. 또한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한테 "너무 인기가 좋은 팀이라서, 그리고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습니다." 라는 이유로 기피대상이라고 한다. 성적이 좋지 않은 1990년대는 "민주당과 한신의 공통점이 뭔줄 아냐? 집권할 능력도 안 되면서 집권당(요미우리)의 라이벌을 자처한다는 점" 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6. 관중수 추이

연도별 연 평균 일일 평균
2013년 2,771,603명 (+1.6%) 38,494명
2014년 2,689,593명 (-3.0%) 37,355명
2015년 2,878,352명 (+7.0%) 39,977명
2016년 2,910,562명 (+2.5%) 40,994명
2017년 3,034,626명 (+2.8%)[37] 42,148명
2018년 2,898,976명 40,831명

7. 구단 역사

구단 창단은 무려 1935년. 그러니까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등과 더불어 일본야구 초기 창단 구단 중 하나이다. 창단 당시의 이름은 "오사카 타이거스". 1940년에 당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의 언어인 영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일어나 이름을 '한신군'(阪神軍)으로 바꿨으나 태평양 전쟁 패전 후인 1946년에 이름을 '오사카 타이거스'로 환원했다가 팀명 연고지와 실제 연고지가 일치하지 않기에 1961년에 이름을 지금의 한신 타이거스로 바꿨다.

센트럴 리그 팀들 중 유일하게 마이니치 오리온즈 가입에 찬성했던 구단이다. 그러다 리그가 분열할 모양새가 보이자 '마이니치의 프로 참여는 인정하지만 우리는 자이언츠와 같은 리그에 뛰겠다'라고 하며[38] 찬성 측 중 유일하게 센트럴리그에 참가한 구단이 되었다.

그러나 열광적인 팬에 비해 솔직히 과거 성적은 초라할 정도. 그래도 1970년대까지는 주니치와 더불어 요미우리의 독주에 딴죽을 거는 라이벌이었지만, 우승 경력은 믿을 수 없을만큼 적은데, 만년 2위 주니치 드래곤즈나 답 없기로 유명했던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조차 두 번 해본[39] 일본시리즈 제패를 이 유명한 구단이 딱 한 번[40]한 것은 지금도 일본의 미스테리. 카케후 마사유키-랜디 바스-오카다 아키노부 클린업을 앞세운 1985년이 한신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이다.[41][42] 이게 감이 안온다면 KBO 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는 2번이나 우승을 했고 최근의 우승이 1992년이다[43]. 더 치욕적인 사실은 1982년 KBO 리그 창설이래 1980년대 이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지 못한 팀들은 아무도 없다.[44] 롯데 자이언츠의 뒤를 잇는 최장기간 한국시리즈 비우승팀들인 LG 트윈스한화 이글스도 모두 90년대에 우승을 맛본 팀들이다[45]. 일본 국내로 눈을 돌리면 라이벌 퍼시픽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창단 9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는 역사를 만들었을 정도다[46]. 메이저리그 팀들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하고있는 팀들을 꼽자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47]를 비롯, 뉴욕 메츠[48], 볼티모어 오리올스[49], 디트로이트 타이거스[50],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51]가 있다[52]. 더 심하면 1979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있기도 하고[53], 가장 오래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있으니 치욕스럽진 않으나 적어도 1번이상 우승을 했던 기록이 있는 팀이어서 한신과는 전혀 다른 레벨에 속한다. 게다가 KIA 타이거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 호랑이를 구단 이름으로 사용하는 구단들 가운데서도 우승횟수에서 마저 꼴지를 기록중이다.[54]

그나마 주니치는 콩라인이더라도 강팀의 반열에 들어가니까 쪽팔릴 게 없는데, 센트럴 리그 3약으로 분류되는 야쿠르트(일본시리즈 우승 5회), 히로시마(일본시리즈 우승 3회), 요코하마(일본시리즈 우승 2회)보다도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적다. 이 우승으로 충격받은 일본인 중 하나인 소설가 타카하시 겐이치로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優雅で感傷的な日本野球)>라는 정신줄 놓아버린 듯한 소설을 써서 내놓기도 했다. 한국과도 비교해도 창피한게 키움 히어로즈, NC 다이노스, 그리고 kt wiz가 아직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들은 2000년대 창단한 팀들이라 어느 정도 쉴드는 쳐줄 수 있다는 점이다. KBO의 유일한 1회 우승팀인 한화 이글스가 있지만 그럼에도 여기는 1999년에 우승했다는 사실만으로 고려대상이 된다. 메이저리그 소속팀들 가운데 아직까지 우승하지 못한 팀들이라면 텍사스 레인저스, 콜로라도 로키스, 시애틀 매리너스[55], 워싱턴 내셔널스, 그리고 밀워키 브루어스,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그리고 탬파베이 레이스가 있다[56].

더욱 충격적인 건 1985년 폭풍간지로 리그우승-시리즈 우승을 따놓고 그 다음 리그우승은 무려 18년이 지나서 호시노 감독 2년째인 2003년이다(…). 2003년 우승[57] 때는 그 고이즈미 총리까지 떠벌릴 정도로 나라에 난리가 났었다. 더 웃기는 건 고이즈미 총리는 카나가와현 출신이다.

리그 우승도 1950년 양대리그제로 나뉜 때부터 따지면 5회뿐이다. 이는 2리그 분할 이후로 따져서 센트럴리그 6개 구단중 5위. 아래로는 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뿐이다.[58] 60년대 후반 전까지 시민들이 성금 모아서 간신히 연명하던 히로시마 카프보다도 리그 우승 횟수가 적다.[59]. 거기다 2003년까지는 통산 승률이 5할 아래로 밑돌 정도였었다.
박동희 : 대통령이 4번 바뀔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팀은 롯데가 유일하다. 1992년 이후로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었다.
누마자와 : (한신은) 1935년 창단해 1985년 딱 1번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대통령이 몇 번 바뀌도록 우승을 못했다고? 4번? (한숨을 내쉬며) 한신은 수상이 18번이나 바뀌도록 우승을 하지 못했다.[60] 얘네는 천황이 바뀌어도 우승이 한번인데??
2008년 박동희 기자와 누마자와 쇼지 본부장의 인터뷰에서.##

8. 응원곡

오사카 타이거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응원곡인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阪神タイガースの歌), 일명 롯코오로시(六甲おろし)가 유명하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당시 제목은 오사카 타이거스의 노래(大阪タイガースの歌)였는데, 1962년에 팀 이름이 한신으로 바뀌면서 자연히 제목도 한신 타이거스의 노래로 바뀌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식 제목보다는 곡의 시작부분 가사에서 따온 '롯코오로시'라는 통칭을 사용한다. 여담이지만 이 곡의 작곡자인 코세키 유우지는 다름아닌 영국동양함대궤멸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사람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응원가인 "투혼을 담아(闘魂こめて)" 와 주니치 드래곤즈의 옛 응원가인 "드래곤즈의 노래(ドラゴンズの歌)" 의 작곡가이기도 한 사람이다(...)



(원래 올라와있던 영상이 저작권 문제로 한국 IP 시청이 불가능해져 일본시리즈 V1을 달성한 해인 1985년 버전으로 교체함.) 참고로 해당 버전을 부른 사람은 아사히 방송의 전직 아나운서이자 한신 타이거스의 광팬으로 유명한 도죠 요조(道上洋三). 이 사람은 2000년엔 오케스트라 버전까지 불렀다. 유튜브 롯코오로시 항목에선 보통 토죠상 버전이라고 나와있다.


가사 원문 한국어 번역
1절 六甲颪(おろし)に 颯爽(さっそう)と
蒼天(そうてん)翔(か)ける日輪(にちりん)の
青春の覇気(はき)美(うるわ)しく
輝(かがや)く我(わ)が名(な)ぞ 阪神タイガース
※(후렴)
롯코의 강풍에도 기세좋게
푸른 하늘 가르는 일륜의
청춘의 패기 아름답게도
빛나는 우리 이름이다 한신 타이거스
(후렴)
2절 闘志溌剌(とうしはつらつ) 起(た)つや今
熱血(てっけつ)既(すで)に 敵(てき)を衝(つ)く
獣王(じゅうおう)の意気(いき)高(たらか)に
無敵(むてき)の我等(われらぞ)阪神タイガース
※(후렴)
투지가 발랄하게 솟구치네 지금
열혈은 이미 적을 꿰뚫었네
수왕의 의기 드높게도
무적의 우리들이다 한신 타이거스
(후렴)
3절 鉄腕強打(てつわんきょうだ)幾千度(いくちた)び
鍛(きたえ)てここに 甲子園
勝利(しょうり)に燃(もゆ)る 栄冠(えいかん)は
輝(かがや)く我等(われらぞ)ぞ 阪神タイガース
※(후렴)
철완강타 몇천번이나
단련하여 여기에 코시엔
승리에 불타는 영광의 왕관은
빛나는 우리들이다 한신 타이거스
(후렴)
※(후렴구) オウ オウ オウオウ 阪神タイガース フレフレフレフレ
오,오,오오 한-신 타이거-스, Hooray- Hooray- Hooray- Hooray-

여담으로 같은 동네에 있던 한큐 브레이브스의 응원가 중 하나인 한큐 브레이브스 구단가(阪急ブレーブス団歌)도 가사에 롯코오로시가 들어가서 또 하나의 롯코오로시 란 별명이 있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어느 사람이 잘가라 노무현(さらば盧武鉉)이라는 고인드립 게임을 제작, 그 동영상을 니코동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 때 BGM이 이 노래의 가사를 노무현, 한국에 대한 조롱이 담긴 가사로 바꿔 부른 버전이었다. 제작자가 한신 팬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사실 한신이 위치한 오사카의 경우 재일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인만큼 혐한도 적지 않기에 해당 니코동 영상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오사카에서 오사카 와사비 테러 사건을 비롯해서 2016년에 혐한 사건이 문제가 되었다.

9. 징크스?

9.1.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냥 은퇴하고 해설이나 해!

불구대천의 숙적 요미우리가 감독 선임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대로 구단의 선수출신들이 감독을 맡으면 팀이 막장화되는 경향이 있어서[61] 구단에서 활약했던 스타선수들이 은퇴하고 감독을 맡는 것을 팬들이 달가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바다 건너 비슷한 팀에도 이런 경향이 있다 2009년에 부임한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도 야구의 급격한 예능화로 2011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돼버리고 말았고 그 뒤를 이은 와다 유타카는 아예 투타 모두 폭망. 예능야구도 못하는 지경이다.

1962년의 양대리그 이후 첫 센트럴리그 우승과 2년 뒤인 1964년 센트럴리그 우승은 요미우리 출신후지모토 사다요시 감독 밑에서 거두었다. 1985년의 유일한 일본시리즈 우승은 팀 레전드인 요시다 요시오 감독 밑에서 일구어냈지만 불과 2년만에 최하위로 전락하면서 막장화. 그 후 무라야마 미노루[62]-나카무라 카츠히로[63]-후지타 타이라-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감독을 맡은 요시다 요시오 등등 선수시절에는 팀을 대표하던 스타들이 줄줄이 감독을 맡았지만 돌아온 것은 길고 긴 암흑기.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6년간 6-6-5-6-6-2-4-4-6-6-5-6-6-6-6-4(...). 중간에 2(1992년)가 하나 보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뭔가가 잘못돼서 1년 반짝한 거다.[64] 무엇보다도 최하위인 6만 10번을 찍었다.

그 후 야쿠르트를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세리그의 신흥강호로 만든 데이터야구(일명 ID야구)의 대가이자 난카이 호크스 출신노무라 카츠야 감독을 기용하면서 3년 간의 리빌딩을 거쳐[65], 주니치 드래곤즈 출신목메달 콩라인(~2013) 호시노 센이치를 데려오고 나서 첫 해인 2002년은 비록 B클래스인 4위로 끝났지만 2003년 18년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두면서[66]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명예회복에 나서기 시작했다. 2003년 세리그 우승 후 2005년 오카다 아키노부 휘하에서 또다시 세리그 우승을 거두고 그러나.. 2010 시즌까지 A클래스(3위권)를 유지하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밑에 2008, 2013년 시즌 요약을 보면 알겠지만 상위권에 있었다고 해서 막장기가 안 보였던 건 아니다. 그리고 2013년 호시노는 콩라인 탈출과 교진군 타도라는 인생목표를 동시에 달성~~

하지만 그 회복세도 거듭되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의 삽질로 빛이 바래던 중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오카다 아키노부에 이어 또다시 구단 OB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2009년부터 감독을 맡으면서 다시 안습 상황이 되어 버렸다.[67] 설상가상으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했지만 결국 마유미 감독에 의해 방출되었던 외국인 투수 라이언 보겔송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가서 괴물급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지톸ㅋㅋㅋㅋ를 대신한 5선발로.[68]

이 때문에 같은 간사이 지방의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감독이 되고 나서 킨테츠와 닛폰햄의 두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끈 명장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을 선임하자는 주장이 팬들 사이에서 나왔고 보도매체에서도 그렇게 전망[69]했으나 웬걸. 오카다-마유미에 이어 구단 OB인 와다칸 와다 유타카 타격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OB 감독으로 3연타를 날렸다. 그리고 나시다는 2016년 도호쿠 감독행 과연 와다 감독이 다시 한신을 일으켜 세워서 OB 감독 막장화 징크스를 털어낼 것인지 아니면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 계속 된 암흑시대 시즌 2를 찍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으나... 2012년 와다 감독은 우려했던 대로 센트럴리그 5위를 찍으며 한신의 흑역사를 찍고 있다. 특히 2012년 한신 타선은 아예 멸종된 상태라, 10게임 연속 2득점 이하라는 굴욕적인 기록까지 선보였다. 한점 타이거스 바다건너 이름 같은 팀도 고생 좀 했다 특히 타코 출신이라는 와다가 지휘봉을 잡은 뒤 마유미 시대보다 타선이 더 폭망해, 결국 시즌 후반에 접어들며 팀이 리빌딩에 들어간 상태. 이제부터 우리는 위대한 도전에 나섭니다

그리고 2013년엔 그나마 정규시즌 2위로 올라섰으나, 센트럴 콩라인 주니치도 아닌 오랫동안 얼굴을 못 내민 승률 5할도 안 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발리고 광탈. 2014년에는 2013년의 수모를 되갚고 숙적 요미우리를 4연승으로 일축하면서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여 지긋지긋하던 플레이오프 징크스를 털어내나 했더니 일본시리즈에서 우세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1차전 승리 뒤에 내리 4연패로 또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게다가 X맨 니시오카 츠요시의 3피트라인 룰 위반에 따른 수비방해라는 사상 초유의 막장플레이로 시리즈의 막을 내리면서 모처럼 분전했던 2014년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며 마무리했다. 이어진 2015년에도 1위인 상태로 9월에 돌입했으나 이제 신 가을의 풍물시라고 불릴만큼 고질화된 막판 붕괴로 3위로 추락. 그 와중에 야쿠르트의 14년만의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조력자 노릇이나 하고, 히로시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패하면서 시즌의 운명을 히로시마 손에 맡기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결국 히로시마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진 덕분에 홈런 오심에 어부지리로 간신히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와다 감독도 2015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서도 이번에는 OB에 외야수이기까지도 한 카네모토 토모아키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2016년 코치경력도 없던 카네모토호는 B클래스를 기록했으나, 2017년 시즌초 1위까지 올라갔으나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약진과 한신의 DTD본능[70]이 겹치며 잠시추락, 공동 2위까지 내려갔으나 3~6위 팀들을 잡으며 8월말 단독 2위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가을야구 경험 부족 및 우천중단 크리를 맞고 다음해를 기약해야 했다. 시즌 종료 후 주전 유격수였던 야마토가 요코하마로 이적하고, 장타력 보강을 위해[71] 한화 이글스에서 윌린 로사리오를 영입했다. 그러나 로사리오는 한국 프로야구의 개막장 타고투저의 수혜자였음이 드러났고 2017시즌 막판에 싹수가 보이기 시작하던 유망주들은 죄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폭망해서 2001년 노무라 카츠야 시절 이후 17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노무라 시절하고 비교하면 안 되는 게 그 때는 10년동안 비밀번호를 찍어서 황폐화 된 팀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가네모토는 우승을 목표로 선임한 감독이다. 이미 노무라의 후임인 호시노 시절 이후로는 우승이 목표이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 그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족하게 지원을 해 준 가운데 기록한 최하위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을 거두면서 이 팀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감독을 하면 팀이 망한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그리고 2018년 시즌 종료 후 야노 아키히로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구단은 니시 유키 등을 사오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돈이야 연선에서 벌어오면 된다

9.2. 국제대회

여담으로 올림픽, WBC 등 국제대회에 선수가 차출되어 나가면 꼭 한둘씩 망가져서 돌아오는 안 좋은 징크스가 있다.

10. 안티 요미우리

일본 최대 인기 구단이라 할 수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대항하는 전선의 선봉은 단연 요미우리에 맞먹는 팬덤을 보유한 한신이다. 2016년 기준 평균관중은 요미우리가 42,172명으로 일본프로야구 1위, 한신 타이거스가 41,276명으로 일본프로야구 2위를 기록했으며, 양쪽 성적에 따라 순위가 오갈 정도로 치열하다. 각종 매체에서도 한신은 요미우리의 라이벌로 묘사된다. 한신의 反 요미우리 정서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어떤 한국 야덕이 일본에 가서 홀로 한신 원정석에서 관전을 하다가 우연히 옆에 앉은 한신빠 간사이 아재와 이야기를 트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경기가 진행되는데 한신빠 아재가 "너는 외국인인데 한신 팬인게 신기한걸? 왜 한신 팬이 됐나?"라고 물었단다. 이에 기지를 발휘해서 "요미우리가 싫어서요"라고 대답하자, 그 순간 한신빠 아재가 낯빛이 변하더니만 그 자리에서 맥주 판매원을 불러세워서 말없이 맥주를 쏘더라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실화다. 특히 관동 지역 한신 팬의 반감은 더 유난맞아서, 도쿄 돔 뿐만 아니라 관동 쪽에서 벌어지는 원정 경기에는 상대가 야쿠르트세이부든 상관 없이 응원단이 일단 '죽어라 요미우리 아자아자' (くたばれ読売 それいけいけ)부터 부르고 시작할 정도.[72]

그리고 한신 타이거스의 레전드 투수인 무라야마 미노루[73]는 요미우리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74][75]으로 인해 계약금을 4배나 더 주겠다는 요미우리의 러브콜을 걷어차고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을 만큼.. 선수부터 팬까지 아주 살벌한 팀이다.

한신과 요미우리의 대립 구도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프로야구 최초의 구단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신인 '거인군'이고, 다음으로 한신 타이거스의 전신인 오사카 타이거스가 생겼다. 또한, 일본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36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프로야구가 중단되기 전인 1944년까지 우승을 기록한 팀은 요미우리와 한신, 둘뿐이었다. 한신은 요미우리의 우승을 3회(1937, 1938, 1944년) 저지했다. 양대리그제가 시행된 1950년 이전을 기준으로 해도 우승구단은 요미우리, 한신, 킨키 그레이트링[76] 등 셋뿐이다. 지역적 배경으로는 관서의 한신과 관동의 요미우리라는 대립 구도가 성립한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호남의 해태 타이거즈 VS 영남의 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라 할 수 있다.

11. 미디어

두말할 것 없이 간사이 미디어계를 먹여 살리는 화수분이자 영원한 신문 1면 주제. 간사이권에서 한신 타이거스의 대중 인기가 높은 만큼 시즌 중, 오프시즌을 막론하고 미디어에서의 주목도와 화제성 모두 압도적이어서 간사이권 준키국 공중파 야구중계의 거의 대부분은 한신 중계다. TV 방송 와이드쇼에서는 연예, 시사가 중심이 되는 다른 지방[77]과 달리 한신 타이거스의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 실황이 아침부터 생중계되기도 하며[78], 한신 출신 해설자와 현역 지도자, 선수가 와이드쇼와 뉴스에 나와 경기 해설 및 비평을 한다. 웬만한 정보 및 뉴스 프로그램에선 한신 담당코너가 따로 있으며, 심지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관련기업인 요미우리 TV가 앞장서서 최초의 한신 응원 프로그램 '주간 토라토라 타이거스'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거기 거인의 별 제작회사인데... 라디오 중계에서도 마이니치 방송아사히 방송[79]이 시즌 중 매일 저녁마다 한신 편파중계를 하며 독립방송국선 텔레비전의 경우 아예 <선테레비 박스석(サンテレビボックス席)>으로 원정, 홈 경기 모두 한신전이 시작될 때부터 종료될 때까지 중계하여 간사이에 사는 한신 팬들은 모바일, 인터넷 중계[80]를 보지 않는 이상 유료방송 서비스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홈그라운드에서의 높은 방송중계 접근성은 그 어떤 구단도 따라올 수 없는 강점.[81]

스포츠신문의 경우에도 간사이권의 1면은 한신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고베신문사의 자회사인 데일리스포츠[82]꺾이지 않는 데일리[83]라고 불릴 정도로 독보적인데, 웬만하면 한신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뤄 주고 전직 편집장이 "지구가 거꾸로 돌아도 1면은 한신"'#이라는 코멘트를 할 만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월드컵 경기 결과, 이치로의 3천안타, 일본시리즈 우승 소식, 심지어는 정권교체[84]도 가뿐히 제끼고 웬만하면 한신 소식이 1면이 된다. 하지만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가 나오면 어떨까[85] 그래서 TV 아사히의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분노신당'에서도 2013년에 토픽으로 다뤄지기도 했다.#[86] 광고주도 한술 더 떠서 진격의 거인 전시회 광고를 데일리스포츠 1면에 실어 놓고 "한신팬들에게는 약간 저항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는 드립을 친다.

12. 이야깃거리

NPB 역사상 최단시간 시합과 최장시간 시합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는 구단이다.

최단시간은 1946년 7월 26일의 55분(쇼치쿠 로빈스 전).
최장시간은 1992년 9월 11일의 6시간 26분(야쿠르트 스왈로스 전). 참고로 한국프로야구기록은 최단시간 1시간 33분, 최장시간 5시간 58분.

또 1952년 연고지 제도 확립 후 12구단 중 홈구장을 옮긴 적이 없는 유이한 팀이며[87], 양대리그제 시행 이전 현재까지 남아있는 6 유일하게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지 않다.(오사카 돔코시엔 때만 쓰니까)

예전에 비해 FA영입 등에 돈을 많이 풀고 있는데 용병, 일본 내 FA 중 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대어를 낚아대는 바람에 히로시마 구단 팬들과 미묘하게 사이가 안 좋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4번타자이자 재일교포인 카네모토 토모아키라든가 아라이 타카히로라든가, 앤디 시츠 등 이상하게 히로시마 제들을 데려오면 대박 성공. 때문에 농담으로 히로시마는 한신의 팜(2군)이냐 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 어쨌든 이런 투자 확대등으로 현재는 과거의 강호의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근데 우승은?(...).

그 예로 2003 시즌과 2005 시즌에 세리그 우승으로 일본시리즈에 진출했지만 2003 시즌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2005 시즌에는 당시 이승엽이 소속된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4전 전패의 치욕을 당하고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게다가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는 4게임동안 총 득점 4대33으로 처절하게 발렸다. [88]

호시노가 건강문제로 사임한 뒤 오랫동안 2군 감독을 맡으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구단출신 오카다 아키노부가 감독자리에 오르게 된다. 오카다가 감독을 맡은 2005년에 다시 리그우승을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는 노무라-호시노가 남겨준 유산 덕분. 다만 센트럴 리그는 우승했지만 그 해 일본시리즈는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2006년, 2007년에도 우승전선에는 뛰어들었지만 뒷심 부족으로 주니치, 요미우리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일본 야구계의 양대 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죠 츠요시이가와 케이가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구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자는...

포켓몬스터야빠 캐릭터 나진이 좋아하는 에레브스는 바로 이 한신 타이거스를 모델로 한 야구팀이다. 이미지 컬러가 노랑이고 세로 줄무늬[89]가 특징이며, 성적이 안습한 점이 유사하다. 특히 포켓몬스터가 제작된 90년대 말은...

대운동회야나기다 이치노가 팬으로 항상 노란색의 검은 줄무늬 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유니폼 잠옷을 입고 방에 마크가 걸려 있다.

파일:external/www.asahi.com/OSK200809250037.jpg
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렸던 데즈카 오사무도 한신의 팬이었다고 한다. 1950년의 연하장에는 "한신이 부진해서 야구만화 그릴 생각이 안 든다"(!)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연하장에 꼬박꼬박 한신 유니폼을 입은 호랑이를 그려서 보낸 건 기본. 저렇게 푸념한 1950년이 마침 호랑이 해인 경인년이기도 해서 연하장에다 데즈카 선생이 그린 호랑이 마스코트가 바로 위의 그림이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시리즈 우승은 했으니까 여한은 없었겠네.

유명 성우이자 가수 미즈키 나나도 아버지의 주입식 교육[90] 덕분에 한신 타이거스의 골수팬. 특히나 야노 아키히로 선수의 팬이라고 하며 콘서트에서 직접 사인을 전달받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 에피소드도 있다. 여러모로 애착이 강한지 '다 함께 롯코오로시' PV[91]도 찍고 시구도 하고 절찬리에 한신빠 인증을 진행중이다.

일본 방송계에서도 굴지의 한신 빠로 알려져 있는 치아키라는 여성 탤런트는 아예 "어렸을 적엔 요미우리 선수들을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집안 자체가 골수 한신 팬 집안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요미우리에 대한 편견을 지운건 성인이 되어 방송계에 입문한 후 은퇴한 요미우리 출신 선수들과 관계를 갖게 된 뒤부터라고 할 정도. 물론 지금도 2017 롯코오로시 영상에도 출연했으니 한신팬인건 어디 가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진출 실적은 영 좋지 않은 편이다. 이가와 케이양키스에 악몽을 남기고 돌아왔고,[92] 후지카와 큐지는 가서 별 활약없이 망해서 돌아왔다.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가 세실 필더오승환 정도. 그러나 둘 다 외국인 선수인데다 세실 필더는 원래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선수였고, 오승환은 도박 사건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케이스라...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되어 있는 작품중엔 호텔 퀸시라는 제목으로 정발된 컨시어지라는 만화에 골수 한신팬이 등장한다. 퀸시호텔 사장인 마츠오카 슌이치로와 그 일족들인데, 아예 이 캐릭터가 개그하는 장면의 90%는 한신 관련일 정도다. 작중에서도 4컷만화의 소재[93]로 쓰이기도 하고, 본편에도 한신관련 소재는 심심하면 등장하는 수준.중요한 업무관련 이야기는 10분 정도 나누고 한신의 가상 라인업 짜기로 2시간 통화하기라던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의 제작사인 파워프로 프로덕션도 한신과 밀접한 관서지방에 있어서인지 제작진 대부분이 한신빠이다. 그래서인지 시리즈 대대로 한신 타이거즈의 선수들은 실제의 활약상보다 능력이 좋게 나오는 편. 그러다보니 페넌트레이스 모드에서도 거의 만년 상위권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프로야구 스피리츠 2013에서 한신 타자들의 능력치 책정에는 자비가 없었다.

오토타케 히로타다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팀이다.

작고한 성우 타테카베 카즈야도 생전에 열혈 한신 팬이었다고 전해진다.

아즈망가 대왕의 등장인물 타키노 토모가 한신의 열성팬이다. 그런데 미하마 치요가 요미우리의 팬인지라 http://blog.naver.com/pianndi/1002284594이걸 가지고 대차게 놀린다.본인도 놀릴 처지가 아닐텐데

여담으로 노랑색, 검정색, 회색을 팀컬러로 쓰고 있고 이중 노랑색을 메인 팀컬러로 쓰고 있지만, 정작 양대리그 창설 이후로 센트럴리그 우승을 달성한 해엔 유니폼에 노랑색이 들어간 적이 없었다.[94] 이것도 징크스랄지 뭐랄지..

12.1. 한국선수 영입 낚시

유독 한국 선수를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언론에 많이 흘리지만 실제로 영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가 드디어 오승환을 영입했다.
  • 이승엽 : 일본 진출 시 영입의사를 표시했고,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계약이 끝날 때 쯤 또한번 미끼를 던졌으나 결국 영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5년 일본시리즈에서 이승엽에게 호되게 얻어맞으며 스윕을 당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타자로서 센트럴리그에 합류한 이승엽의 충실한 샌드백 역할을 했다. [95]
  • 김동주 : 2008년, 첫 FA를 맞이한 김동주를 영입하고 싶다는 보도를 흘렸으나 결국 김동주는 두산과 계약했다.
  • 이택근 : 일본 언론에서 베이징 올림픽 이후 한신이 이택근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나중에 사실무근이라는 정정보도를 냈다. 이젠 친절하게 정정보도까지.
  • 김태균 : 소문 뿐이었다. 결국 치바 롯데 마린스로 갔다.
  • 이범호 : 소문 뿐이었다. 결국 후쿠오카 소프트뱅크로 갔다.
  • 임창용 : 소문 뿐이었다.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갔다. 이후 야쿠르트와의 계약이 끝날 때 한신이 엄청난 거액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퍼졌으나 임창용 본인이 미국무대 도전을 원하여 시카고 컵스로 떠났다. 어차피 여기서 우승 못하나 거기서 우승 못하나
  • 이대호 : 소문 뿐이었다. 결국 오릭스 버팔로스로 갔다. 그리고 2013년 이대호가 일본야구에 적응하고 펄펄 날아오르자 한신이 2013년 이후 오릭스에서 FA가 되는 이대호를 관심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 또다시 관심 줄듯 결국 2013년 12월 5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에 합의했다.
  • 김광현 : 2009년자 보도로 2015년 김광현의 FA를 대비하여 한신이 무려 6년동안의 장기 영입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라는 초특급 설레발기사가 나왔다.
  • 오승환 : 2013년에 FA가 되는 오승환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소식에, 일본 언론쪽에서 한신이 시즌후 구단동의 해외FA가 가능한 오승환에 대해 영입조사를 착수했다는 설레발 기사가 떴다. #, 위의 경우와는 달리 신빙성이 뒷받침 되는 이유는 2012시즌부로 한신을 떠난 마무리투수 후지카와 큐지와 오승환의 스타일이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96] 오승환의 경우는 위의 경우와 또 다른 것이 시즌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오승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며 오승환을 보기 위해 단장인 나카무라 카츠히로가 직접 내한했고, 이제는 오승환 영입을 위해 7억엔이라는 실질적인 금액과 대우까지 제시된 상태이다. 결국 2013년 11월 22일, 2년 최대 9억엔 조건으로 계약에 성공.#
  • 손승락 : 오승환이 팀에서 떠날때를 대비해서 오승환의 대체선수로 손승락을 눈여겨보고있다는 닛칸스포츠의 설레발 기사가 나왔다. #
  • 양현종 : 손승락과 비슷한 맥락으로 오승환이 한신을 떠날 걸 염두해두고 앞서 거론 된 김광현과 더불어 양현종에게 눈독 들이고 있다며 일본 언론은 늘 그렇듯 설레발 언플질을 했다. #
  • 김현수, 최형우 : 2015년 들어서 김현수와 최형우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떡밥을 흘렸다. ##
  • 이대호 : 시애틀과의 계약만료 후 미국에서 주전이 아니라면 아시아로 돌아온다는 설이 나왔다. 일본에선 소프트뱅크나 지바롯데, 라쿠텐, 한신등이 언급되었고 특히 한신은 연봉 5~6억엔처럼 구체적인 액수까지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대호가 요구한 풀타임 1루수 출전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렬되었다.

이러다 보니 국내 야구팬들에게는 양치기 소년 이미지가 굳어졌으나 오승환의 영입으로 이제 한국에서도 관심받는 팀이 되었긴 한데, 이대호와는 달리 케이블 방송국에서도 중계권 구매를 안 해서 일본에서는 아침방송에도 하이라이트가 나오는[97] 오승환의 활약을 한국에서는 아프리카TV로만 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오승환 본인도 라디오 스타에서 일본프로야구에 관심 좀 가져달라고 MBC를 디스한탄하기도...[98]

12.2. 켄터키 할아버지와의 악연

1985년 센트럴리그 우승 후의 에피소드 때문에 32년 동안 우승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커넬 샌더스의 저주 항목을 참조. 고시엔에도 KFC 매장이 있다.

13. 시즌별 성적

항목이 길어져 분리했다. 한신 타이거스/시즌 참조. 2005년부터 기록.

14. 대표적인 선수들

14.1. 현역 선수들(2019년 기준)

14.1.1. 투수

2019 한신 타이거스 투수 엔트리
배번 등록명 한글명 생년월일 비고
13 岡本 洋介
おかもと ようすけ
오카모토 요스케 1985.09.27
14 能見 篤史
のうみ あつし
노우미 아츠시 1979.05.28
16 西 勇輝
にし ゆき
니시 유키 1990.11.10 2018년 시즌까지 오릭스에서 뛰다가, FA행사 후 한신으로 이적
17 岩貞 祐太
いわさだ ゆうた
이와사다 유타 1991.09.05
18 馬場 皐輔
ばば こうすけ
바바 코스케 1995.05.18
19 藤浪 晋太郎
ふじなみ しんたろう
후지나미 신타로 1994.04.12
21 岩田 稔
いわた みのる
이와타 미노루 1983.10.31
22 藤川 球児
ふじかわ きゅうじ
후지카와 큐지 1980.07.21
26 呂 彦青
ル イェン チン
뤼옌칭 1996.03.10
27 尾仲 祐哉
おなか ゆうや
오나카 유야 1995.01.31
28 小野 泰己
おの たいき
오노 다이키 1994.05.30
29 髙橋 遥人
たかはし はると
타카하시 하루토 1995.11.07
30 石崎 剛
いしざき つよし
이시자키 츠요시 1990.09.09
34 谷川 昌希
たにがわ まさき
타니가와 마사키 1992.10.06
35 才木 浩人
さいき ひろと
사이키 히로토 1998.11.07
36 浜地 真澄
はまち ますみ
하마치 마스미 1998.05.25
40 福永 春吾
ふくなが しゅんご
후쿠나가 슌고 1994.05.14
41 髙橋 聡文
たかはし あきふみ
타카하시 아키후미 1983.05.29
43 守屋 功輝
もりや こうき
모리야 코키 1993.11.25
46 秋山 拓巳
あきやま たくみ
아키야마 타쿠미 1991.04.26
47 川原 陸
かわはら りく
카와하라 리쿠 2000.12.12
48 齋藤 友貴哉
さいとう ゆきや
사이토 유키야 1995.01.15
50 青柳 晃洋
あおやぎ こうよう
아오야기 코우요 1993.12.11
52 ピアース・ジョンソン
P.Johnson
피어스 존슨 1991.05.10
54 メッセンジャー
R.MESSENGER
랜디 메신저 1981.08.13
56 飯田 優也
いいだ ゆうや
이이다 유우야 1990.11.27
61 望月 惇志
もちづき あつし
모치즈키 아츠시 1997.08.02
64 桑原 謙太朗
くわはら けんたろう
쿠와하라 켄타로 1985.10.29 7회 담당
65 湯浅 京己
ゆあさ あつき
유아사 아츠키 1999.07.17
66 牧 丈一郎
まき じょういちろう
마키 죠이치로 1999.02.23
67 岩崎 優
いわざき すぐる
이와자키 스구루 1991.06.19
69 島本 浩也
しまもと ひろや
시마모토 히로야 1993.02.14
77 オネルキ・ガルシア
O.GARCIA
오넬키 가르시아 1989.08.02
92 伊藤 和雄
いとう かずお
이토 카즈오 1989.12.13
97 歳内 宏明
さいうち ひろあき
사이우치 히로아키 1993.07.19
98 ラファエル・ドリス
R.DOLIS
라파엘 도리스 1988.01.10 2017시즌 새 마무리

14.1.2. 포수

2019 한신 타이거스 포수 엔트리
배번 등록명 한글명 생년월일
12 坂本 誠志郎
さかもと せいしろう
사카모토 세이시로 1993.11.10
39 長坂 拳弥
ながさか けんや
나가사카 켄야 1994.04.28
44 梅野 隆太郎
うめの りゅうたろう
우메노 류타로 1991.06.17
57 岡﨑 太一
おかざき たいち
오카자키 타이치 1983.06.20
59 小宮山 慎二
こみやま しんじ
코미야마 신지 1985.11.26
94 原口 文仁
はらぐち ふみひと
하라구치 후미히토[99] 1992.03.03

14.1.3. 내야수

2019 한신 타이거스 내야수 엔트리
배번 등록명 한글명 생년월일
00 上本 博紀
うえもと ひろき
우에모토 히로키[100] 1986.07.04
0 木浪 聖也
きなみ せいや
키나미 세이야 1994.06.15
1 鳥谷 敬
とりたに たかし
토리타니 타카시 1981.06.26
2 北條 史也
ほうじょう ふみや
호조 후미야 1994.07.29
3 大山 悠輔
おおやま ゆうすけ
오야마 유스케 1994.12.19
4 熊谷 敬宥
くまがい たかひろ
쿠마가이 타카히로 1995.11.10
31 ジェフリー マルテ
J.MARTE
제프리 마르테 1991.06.21
32 山崎 憲晴
やまざき のりはる
야마자키 노리하루 1986.12.13
33 糸原 健斗
いとはら けんと
이토하라 켄토 1992.11.11
37 森越 祐人
もりこし ゆうと
모리코시 유토 1988.08.11
38 小幡 竜平
おばた りゅうへい
오바타 류헤이 2000.09.21
55 陽川 尚将
ようかわ なおまさ
요카와 나오마사 1991.07.17
58 荒木 郁也
あらき ふみや
아라키 후미야 1988.04.25
62 植田 海
うえだ かい
우에다 카이 1996.04.19
99 エフレン ナバーロ
Efren Navarro
에프렌 나바로 1986.05.14

14.1.4. 외야수

2019 한신 타이거스 외야수 엔트리
배번 등록명 한글명 생년월일
5 近本 光司
ちかもと こうじ
치카모토 코지 1994.11.09
7 糸井 嘉男
いとい よしお
이토이 요시오 1981.07.31
8 福留 孝介
ふくどめ こうすけ
후쿠도메 고스케 1977.04.26
9 髙山 俊
たかやま しゅん
타카야마 슌 1993.04.18
25 江越 大賀
えごし たいが
에고시 타이가 1993.03.12
51 伊藤 隼太
いとう はやた
이토 하야타 1989.05.08
53 島田 海吏
しまだ かいり
시마다 카이리 1996.02.06
60 中谷 将大
なかたに まさひろ
나카타니 마사히로 1993.01.05
63 板山 祐太郎
いたやま ゆうたろう
이타야마 유타로 1994.03.27
65 緒方 凌介
おがた りょうすけ
오가타 료스케 1990.08.25
68 俊介.[101]
しゅんすけ
슌스케 1987.08.17

14.2. OB

14.2.1. 영구결번, 준영구결번

한신 타이거스 영구결번
No. 10 No. 11 No. 23
후지무라 후미오 무라야마 미노루 요시다 요시오

이하 굵은 글씨는 영구결번.
  • 10. 후지무라 후미오 : 초대 미스터 타이거스로 사랑받았던 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호쾌한 장타로 홈런타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선수로 일본프로야구 양대리그 이전 일본 야구연맹 시절부터 1950년대까지 한신을 이끌었던 클럽하우스 리더이기도 했다. 물론 당연히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자다.
  • 11. 무라야마 미노루 : 일명 자토펙 투수. 역시 한신의 전설적인 투수로 양대리그 이후 대졸 출신으로서는 유일무이한 통산 200승 투수(통산 222승)이기도 하다. 특히 나가시마 시게오와의 불꽃튀기는 명승부가 유명할 정도로 교진군 킬러이기도 했다. 이 선수는 그냥 요미우리 킬러도 아니고 입단 전부터 '골수 한신팬+반 요미우리'를 표방했는데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입단교섭 당시 요미우리가 한신보다 4배나 많은 계약금을 제시했음에도 요미우리를 뻥차버리고 한신에 입단했을 정도였다.
  • 53. 아카호시 노리히로 : 1번타자로 활약하며 많은 안타와 도루를 기록하였으나, 안타깝게도 2009년 시즌 종료 후 잦은 부상의 여파로 생긴 중심성척수증후군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해 조기 은퇴하게 되면서 아카호시의 번호를 준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 6. 카네모토 토모아키 : 연속이닝 출장 기록은 물론, 한신 타이거스의 2000년대 중흥기를 이끈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2012 시즌이 끝나고 영구결번을 지정하기로 했으나 카네모토 본인이 고사하면서 일단은 준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참고로 한신의 6번은 나름 의미있는 번호인데, 한신의 역사를 빛낸 교타자인 후지타 타이라와다 유타카가 썼던 번호이기도 하다. 3명 다 감독으로써의 행보는 명장이라기엔.. 특히 후지타는 대폭망

14.2.2. 출신 선수들

14.3. 구단출신 메이저리거[102]

14.4. 흑역사

  • 루퍼트 존스 : 원조 "바스의 재래". 랜디 바스의 공백을 메꾼답시고 데려왔지만 53경기동안 2할 5푼의 타율에 8홈런을 때리는 데 그쳤다.
  • 마츠나가 히로미 : 한큐 브레이브스의 호타준족 스위치 히터 3루수였으나 한신에게는 강렬한 먹튀. 1992 오프시즌에 대형 트레이드로 데려왔으나 부상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둔 뒤 이적한 지 1년만에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FA 선언 선수가 된다. 여기에 팀을 떠나면서 "고시엔은 유치원의 모래밭"이라는 한신 디스 발언을 남겼다...라는 보도가 나와 한신 팬들을 분노하게 하기도 했다.(나중에는 오보로 밝혀졌다.) 게다가 그의 대가로 한신에서 오릭스로 보낸 우완 포크볼러 노다 코지는 이적 첫 해 17승 5패 2.56 209탈삼진으로 맹활약했으며, 1995년에는 1경기 19탈삼진의 일본 최다기록을 세우기도 하는 등 5년 가까이 오릭스의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95, 96년 리그 우승에도 공헌하였다.
  • 마이크 그린웰 : 불과 8경기 뛰고 몸에 공을 맞은 후 신이 야구를 그만 하라고 계시를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만 남기고 귀국해 버렸다.
  • 케빈 멘치 :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박찬호한솥밥을 먹었던 적이 있는 거포. 중심타자로서의 활약을 기대하고 데려왔지만 24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 브룩스 콘래드 : 그 많고 많던 외인 타자 중 유일하게 단 한 타점도 기록하지 못한 타자.
  • 에가와 스구루 : 한신 입단할 했던 투수.
  • 오승환 : 활약은 뛰어났으나...
  • 33-4 : 이건 할말이 없다 한신한테는 큰 흑역사...

15. 역대 감독

한신 타이거스 역대 감독
대수 성명 일본어 재임기간 연수 비고
1 모리 시게오 森 茂雄(もり しげお) 1936 4개월
2 이시모토 슈이치 石本 秀一(いしもと しゅういち) 1936~1939 3년 6개월
3 마츠키 켄지로 松木 謙治郎(まつき けんじろう) 1940~1941 2년 1차
4 와카바야시 타다시 若林 忠志(わかばやし ただし) 1942~1944 3년 1차
5 후지무라 후미오 藤村 富美男(ふじむら ふみお) 1946 1년 1차
6 와카바야시 타다시 若林 忠志(わかばやし ただし) 1947~1949 3년 2차
7 마츠키 켄지로 松木 謙治郎(まつき けんじろう) 1950~1954 5년 2차
8 키시 이치로 岸 一郎(きし いちろう) 1955 2개월 중도해임
9 후지무라 후미오 藤村 富美男(ふじむら ふみお) 1955~1957 2년 6개월 2차
10 타나카 요시오 田中 義雄(たなか よしお) 1958~1959 2년
11 가네다 마사야스 金田 正泰(かねだ まさやす) 1960~1961 2년 1차
12 후지모토 사다요시 藤本 定義(ふじもと さだよし) 1961~1965 5년 1차, 팀 최초의 1962, 1964년 센트럴리그 우승 감독
13 스기시타 시게루 杉下 茂(すぎした しげる) 1966 4개월 중도해임
14 후지모토 사다요시 藤本 定義(ふじもと さだよし) 1966~1968 2년 4개월 2차
15 고토 츠구오 後藤 次男(ごとう つぐお) 1969 1년 1차
16 무라야마 미노루 村山 実(むらやま みのる) 1970~1972 2년 4개월 1차
17 가네다 마사야스 金田 正泰(かねだ まさやす) 1972~1974 2년 8개월 2차
18 요시다 요시오 吉田 義男(よしだ よしお) 1975~1977 3년 1차
19 고토 츠구오 後藤 次男(ごとう つぐお) 1978 1년 2차, 팀 역사상 최초로 최하위를 찍은 감독(...)
20 돈 블레이싱게임 Don Lee Blasingame / ドン・ブラッシンゲーム[104] 1979~1980 2년 팀 역사상 유일한 외국인 감독
21 나카니시 후토시 中西 太(なかにし ふとし) 1980 ~ 1981 2년
22 안도 모토오 安藤 統男(あんどう もとお) 1982~1984 3년
23 요시다 요시오 吉田 義男(よしだ よしお) 1985~1987 3년 2차, 팀 유일의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 감독 하지만 2년 후에 암흑기의 서막을 열었다.
24 무라야마 미노루 村山 実(むらやま みのる) 1988~1989 2년 2차
25 나카무라 카츠히로 中村 勝広(なかむら かつひろ) 1990~1995 5년 7개월 역대 한신 타이거스 최장수 감독[105]
중도해임
26 후지타 타이라 藤田 平(ふじた たいら) 1995~1996 1년 2개월 중도해임
27 시바타 타케시 柴田 猛(しばた たけし) 1996 1개월 [106]
28 요시다 요시오 吉田 義男(よしだ よしお) 1997~1998 2년 3차
29 노무라 카츠야 野村 克也(のむら かつや) 1999~2001 3년
30 호시노 센이치 星野 仙一(ほしの せんいち) 2002~2003 2년 2003년 센트럴리그 우승 감독
31 오카다 아키노부 岡田 彰布(おかだ あきのぶ) 2004~2008 5년 2005년 센트럴리그 우승그리고 33-4 감독
32 마유미 아키노부 真弓 明信(まゆみ あきのぶ) 2009~2011 3년
33 와다 유타카 和田 豊(わだ ゆたか) 2012~2015 4년 팀 최초의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감독(시즌 순위는 2위)
34 카네모토 토모아키 金本 知憲(かねもと ともあき) 2016~2018 3년

도쿄의 라이벌 팀하고 비교해보면 팀과 감독들이 얼마나 막장이었으며 역대 감독 리스트가 얼마나 난잡한 지 실감할 수 있다. 팀내 파벌다툼 및 정치구도의 변화에 따라 한번 물러난 감독들이 폭탄돌리기 식으로 앉고 또 앉고 해서 한 감독의 임기가 1차, 2차로 나뉘는 건 비일비재하고, 요시다 요시오의 경우에는 3차 임기까지 있을 정도. 1996년까지는 툭하면 시즌 도중에 감독이 교체되거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경질되는 감독도 많았다. 그래서 2000년대 이전까지 감독 리스트에 있는 감독 대부분의 임기가 2년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16. 역대 성적

리그 우승[107]
2위
3위
B클래스
연도[108] 정규시즌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진출

17. 둘러보기

한큐한신토호그룹 계열사
{{{#!folding [ 펼치기 · 접기 ]운송사업 계열사
오사카부, 교토부, 효고현 오사카부, 효고현 오사카부 효고현
한큐 전철 한신 전기철도 키타오사카 급행전철 호쿠신 급행전철 고베 전철 노세 전철
비운송사업 계열사
다카라즈카 가극단 한신 타이거스 도호 도호시네마 H2O 리테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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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왼쪽에 있는 호랑이 마스코트이며, 호랑이를 뜻하는 일본어인 토라(虎)와 '행운(lucky)'을 합친 이름이다.[2] 가운데에 있는 꼬맹이작은 호랑이 마스코트. 한신의 어린이 팬을 상징한다.[3] 가장 오른쪽의 분홍색 모자를 쓴 호랑이 마스코트, 토라키의 여친이다.[4] 얼마나 오래됐는지가 감이 안 잡힌다면 KBO가 창설된게 1982년이다. 게다가 한국 프로야구 팀들 가운데 가장 오래도록 우승을 하지 못한 롯데 자이언츠의 첫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 1984년이다. 아울러 호랑이를 구단명으로 쓰는 ,, 3개국 구단들 가운데 우승횟수에서도 꼴지다.[5] 참고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더불어 헤이세이 연간에 일본시리즈 우승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 그나마 히로시마는 우승을 세번이나 했었지만 한신은 30년 이상 우승이 없다....[6] 양대리그 출범 이전[7] 사실 이렇게 표현해도 맞긴 맞다. 한신(阪神)은 모기업명이기 이전에 오사카(大)-고베(戸) 일대의 간사이 지방을 말한다. (阪神을 음독으로 읽으면 한신이다.) 교토(京都)까지 붙여서 케이한신(京阪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역명이 아니라기엔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나 한신칸 모더니즘 등 용례가 상당히 많다. 모기업명에 지역명이 있어 별도로 연고지를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케이스. 지역명 우선표기 전 K리그에서 다른 팀은 몰라도 포항제철 아톰스의 모기업만 봐도 '아, 포항시 연고구나'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별칭도 인정해야 하나라고 시비 건다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도 있으니 문제 없다. 무엇보다도 퍼시픽 리그도호쿠를 팀명으로 쓰는 데도 있고.[8]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배경이 된 그 니시노미야 시 맞다. 참고로 니시노미야 시는 상당한 부촌이라고 한다. 반대로 옆집 아마가사키는….[9] 사실 효고현의 동쪽 끝은 아마가사키시이다.[10] 한신 타이거스는 원래 오사카 대표로 창단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홈구장 위치 탓에 1952년 보호지역 제도가 도입된 이래 계속 효고현을 보호지역으로 삼고 있다. 2004년 오사카 연고의 긴테스 버팔로즈가 효고현 연고 오릭스에 흡수되면서 3년간 두 팀에 오사카부를 더블 프랜차이즈로 부여한 적이 있으나, 2008년부터는 다시 효고현만을 보호지역으로 하고 있다. 다만 오릭스가 원래 고베 연고이던 터라 서로의 이해가 맞아 양 지역에서의 활동에는 서로 협조하고 있다.[11] 하지만 노란 유니폼을 쓰는 일은 잘 없다. 이는 주황색이 팀컬러인 원수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마찬가지다.[12] 해태그룹에서 제작했던 술 '런던 드라이진' 라벨에 그려진 영국 근위병 복장에서 해태-KIA 타이거즈 팀 색이 나왔다.[13] 모기업은 한큐한신홀딩스. 그래서 2000년대 경영 통합 이후 타카라즈카 가극단과 함께 한큐한신의 엔터사업의 쌍두마차이기도 하다. 일본판 빌보드차트의 제작 및 배포를 담당하는 곳도 한신 전기철도의 자회사인 한신 콘텐츠링크.[14] 사실 주니치도 중부일본의 약자로 지역 흔적이 남아 있지만, 한신에 비하면 지역 가리킬 때 용례가 거의 없어서 지역명이다 하기는 힘들다. 주니치도 주부 드래곤즈였으면 취급했겠지만[15] 심지어 한국 영업중인 한큐한신토호 계열사에서도 한신 타이거즈로 부른다(…). #[16] 세이부 라이온즈는 구단명에 탁점이 붙어있어 해당 사례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17] 일본에서도 고급 주택가이고 오사카에서도 가까우며 치안도 좋아 살기 좋은 동네이다. 하지만 경기 있는 날 한신고시엔역을 필두로 한 한신고시엔구장은 헬게이트.[18] 1924년은 십간십이지 상으로 갑자년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19] 3일마다 옮겨다니는 것과 본거지와 아주 살짝 먼 곳이지만 1주라도 정착해 있는 것은 체력적으로 천지차이다. 그래서인지 홈개막전을 고시엔이 아닌 교세라 돔에서 치루는 일도 적잖다.[20] 한때 메이지진구 구장의 홈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인기는 안습 수준이어서 원정팀인 한신 굿즈 매장이 홈팀 야쿠르트 굿즈 매장보다 먼저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참고.[21] 공식 가사에는 당연히 빠져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야쿠르트 공식 응원단에서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가사 때문에 이 부분을 부르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문제는 올스타전때도 11개팀 팬들이 하나가 되어서 '죽어라 요미우리'를 외친다는것. 한신과 야쿠르트가 경기하는 날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2] 위에가 한신 마스코트 토라키. 아래가 자이언츠 마스코트 쟈비트. 벤클 5분전[23] 그러나 롯데와는 비교하기 힘든 게, 시원치 않다고 하더라도 한신은 평소 센트럴 리그에서 그나마 잘하는 축에 들어가는 팀이고 투고타저의 일본프로야구 사정까지 합쳐서 롯데보다는 실책 및 예능야구가 적다. 항상 더 잘하는 팀이 있어서 그렇지[24] 자세한 사정은 2014년 일본시리즈 항목을 참조.[25] 대표적인 게 2014 일본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 나카무라에게 끝내기 쓰리런 맞은 경우, 2014년 7월 요미우리와의 홈경기에서 대타로 나온 다카하시 요시노부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던 경우 등[26] 사실 강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식의 선수 취급은, 딱히 한신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고, 야구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27] 퍼시픽 리그는 치바 롯데 마린즈. 33-4 자매구단 팬들하고 닮았다.[28] 한신이 오랜 기간 간사이를 대표하는 센트럴 리그 구단이었던 것도 있지만 오사카 부근의 다른 야구 구단들이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연고지나 구단명을 왔다갔다하는 등 밉상짓을 하거나 해서 지역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탓도 있다.[29] 농담이 아니다. 오사카와 부산, 보스턴 사람들은 성질이 비슷하다.[30] 엄밀하게는 노무라가 취임하고 한신팬들에게 희망고문을 시작한 시기부터 이 정도.[31] 보통 큐브보다 정가가 1만 엔 가량 비쌌다.[32] 그런데 닌텐도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한정 닌텐도 64를 판 적도 있었다. #[33] 참고로 닌텐도의 본사 소재지는 교토로 도쿄가 아닌 간사이권에 본사를 둔 몇안되는 유명 기업중 하나이다[34] 투수판에서 던졌는데 구속이 100km/h를 넘긴 것 같다는 구단 관계자의 전언이 있다.[35] 고시엔은 10대 야구선수들이 한 번쯤 서보고 싶은 로망이기도 한데, 정국은 고교를 졸업한 해 마운드에 섰다![36] 시가 현은 제외. 거긴 신칸센 때문에 나고야돔, 도쿄돔이 훨씬 시간 적게 걸린다 시가 현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팬이 많은데, 오미 철도도 있고 세이부 그룹의 발상지가 시가 현이기 때문.[37] 7년 만에 연 평균 300만 관중 돌파[38] 애초 최대 라이벌이 자이언츠인데다 한교센이 사라지면 그만큼 인기를 보장하기는 힘들게 된다.[39] 심지어 리그 우승도 먼저다!(전신인 다이요가 1960년, 근데 한신은 1962년;;)[40] 현존하는 일본 구단들 중에서 비교적 빨리 일본시리즈 우승한 어린 구단과 함께 가장 적다.[41] 참고로 이 해 우승은 일본 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전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의 영전에 바치는 선물이기도 했다.[42] 심지어 무려 1세기동안 우승을 못했던 어느팀마저 2016년 우승을 했다.[43] 게다가 첫번째 우승조차 한신보다 1년 먼저이다.[44]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KBO 리그 소속팀들 상당수가 이미 1980년대에 구단 첫번째 우승을 기록했을 정도다. 그나마 유일하게 한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팀이 삼성 라이온스인데 구단 첫 우승을 1985년, 즉 한신과 동년에 이뤘다. 다만 차이점은 한신은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룬 것이고 삼성 라이온스는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을 해서 당시 규정상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고, 때문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2년이다. 후술했지만 유일한 1회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한화마저 1990년대 말기에 우승을 한 실정이다.[45] LG 트윈스: 1990년, 1994년; 한화 이글스: 1999년[46] 창단: 2004년 일본시리즈 우승: 2013년.[47] 1988년[48] 1986년[49] 1983년[50] 1984년[51] 1989년[52] 그럼에도 이 팀들은 한신보다도 우승횟수는 더 많다.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저스의 1988년 우승은 구단의 6번째 우승이었고, 메츠의 86년도 우승은 구단 사상 2번째, 오리올스의 83년 우승은 구단의 3번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84년도 우승은 구단의 4번째, 애슬레틱스의 89년도 우승은 구단의 9번째 우승이었다.[53] 감이 안 오신다고? 전두환이 대한민국 정권을 장악한 계기가 된 12.12 사태가 바로 이 해에 일어났다. 또한 이 12.12사태가 일어나기 2개월 전엔 대한민국 헌정사상 대통령이 암살당한 사건도 있었다. 참고로 이효리가 이때 태어났다.[54] 이와는 반대로 '자이언츠'를 구단명으로 사용하는 3개국들 가운데는 반도의 구단이 꼴찌를 기록중. 자이언츠를 쓰는 구단은 일-미-한 순이고 한-미-일 순이네? 정반대[55] 심지어 이 팀은 월드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리그 우승조차 없다(...).[56] 휴스턴 애스트로스 역시 이 그룹에 속해있었으나 2017년 월드 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이뤄내 탈퇴(?)했다.[57] 자력우승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여지가 남아있던 야쿠르트를 요코하마가 박살내면서 자동 우승을 거두었다. 한신이 경기 쉬고 있는데 숙소에서 만세...는 아니고 한신은 낮경기, 야쿠르트는 야간 경기로 시간대만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경기 끝나고도 선수들과 팬들은 고시엔에 남아서 야쿠르트 vs 요코하마 경기를 보았고, 요코하마 승리로 끝나자 고시엔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58] 그나마 요코하마는 1960년, 1998년 두 번 한 리그 우승에서 모두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해서 한신보다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가 많았으며, 2017년 후쿠오카에게 패하기 전까지는 일본시리즈 승률 100%였다.[59] 히로시마는 총 8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2016, 2017(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년도)[60] 단, 웬만하면 대통령 임기 5년이 보장된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일본의 경우 내각제로 수상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61] 멀게는 후지무라 후미오, 가네다 마사야스 항목 참조.[62] 참고로 1970~1972년에도 플레잉 매니저(감독 겸 선수)를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성적 부진을 이유로 1972년 선배 가네다 마사야스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그해를 끝으로 선수로서도 은퇴했다.[63] 한신-오릭스에서 감독이나 프론트 직을 맡으면서 맡은 트레이드나 FA, 외국인 선수 영입 등에서 재미를 본 적이 거의 없고 오히려 내보낸 선수들이 맹활약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별명은 이름 '카츠히로'를 비튼 '마케히로'(...) 이 정도로 한심한 감독임에도 의외로 팀 역사 상 가장 긴 임기를 기록한 최장수 감독이다. 2015년 9월 23일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64] 사실 그 해 우승팀 야쿠르트의 성적은 69승1무61패로 우승팀 치고는 그리 좋은 성적도 아니었고(그래도 일본시리즈에서는 세이부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물러섰다.) 1위와 최하위간의 게임차가 9.0게임밖에 나지 않았다. 1위 야쿠르트와 4위 히로시마와는 3.0게임차였고 히로시마조차도 66승64패의 성적으로 우승을 노릴 정도로 대 난전이었다. 이 해 한신도 67승 2무 63패로 2위팀 치고는 승률이 높은 편도 아니었다. 그나마 그 2위도 요미우리하고 공동 2위였다. 참고로 이해 감독은 나카무라 카츠히로. 그리고 이 성적이 나카무라가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5년 7개월이라는 팀 역사상 최장수 임기를 기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다음해부터 다시 폭망 여담으로 괴짜가족의 작가 하마오카 켄지의 작품인 4학년 1반 차렷!에서 소재로 썼는데, 그 해 센트럴리그 우승 팀을 응원한 캐릭터는 11권 단독 표지 출연이란 상이, 꼴찌 팀을 응원한 캐릭터는 1달간 출연 정지라는 벌칙이 걸렸다. 참고로 주인공 카나가와 켄은 한신을, 반장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키요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부는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를, 히데노야 분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코지는 주니치 드래곤즈를 응원했다. 참고로 분타는 오사카 출신인데, 한신은 역시 무리라면서 카프를 응원했다.[65] 하지만 노무라 감독 시절에도 3년 연속 꼴찌(666)를 찍을 정도로 성적은 썩 좋지는 않았다. 결국 이 똥같은 성적과 아내 노무라 사치요의 탈세혐의로 인한 체포 등이 악재로 겹치며 노무라는 2001년을 끝으로 감독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이 3년 연속 꼴찌 대신의 리빌딩이 막장이던 팀을 재건시켰다고 재평가받으며 최근 평은 그닥 나쁘지 않다.[66] 일본시리즈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 OB이자 영구결번 No.1 오 사다하루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게 3승 4패로(2연패-3연승-2연패..) 패배하고 말았다.[67] 승률 5할에 근접한 4위가 뭐가 안습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2011년의 한신은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거의 만장일치의 우승후보였다. 게다가 이미 한신이 요미우리를 제치고 팀 연봉지출 1위까지 먹은 요미우리더러 돈지랄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리멸렬한 경기 내용으로 4위에 그쳐 시즌 막판에는 고시엔에서 열리는 홈경기에서 관중동원 2만명 대를 찍는 등 팬들의 불신도 커진 상태였다. 한마디로 2011년의 두산 베어스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68] 참고로 라이언 보겔송의 아내인 니콜은 한신 타이거스 구단 CF에도 출연했다.[69] 그 외에는 팀에서 수석코치를 한 번 역임했으며 2010년까지 2군 감독으로 2군팀을 우승으로 이끈 한신의 프랜차이즈 유격수 스타 히라타 카츠오가 강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이쪽도 구단 OB이고 외압에 의해 2군 감독에서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래도 한 주에 6일씩 예능을 찍어댄 마유미보단 나을 거 같은데?[70] 8연패+히로시마전 열세[71] 2017년 한신 타선은 요미우리 OB 스즈키 타카히로도 CS 직전 "(타선의) 폭발력이 없다"라는 평가를 했을 만큼 중요한 경기에서 타선이 안 터졌다.[72] 물론 '죽어라 요미우리' 부분은 정식 레퍼토리는 아니다. 박자가 딱 맞으니 몇몇 팬들이 구석에서 갖다 붙인 게 퍼진 것. 또한 진구 원정에서는 아예 야쿠르트의 7회 응원가 도쿄온도를 스틸해 버렸다. 심지어 퍼시픽리그 팬들이 더 크게 따라 부르는 경우도...[73] 2차 대전 이후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에 유일하게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엄청난 투수다[74] 다만 무라야마 미노루와 요미우리 OB인 나가시마 시게오와는 서로에게 경의를 표할 만큼 각별한 사이였고, 무라야마의 장례식 때 나가시마 감독은 구장에서 먼 거리를 달려와 장례식장까지 와서 눈물로 애도를 표했다.[75] 안티 요미우리의 선봉장 호시노 센이치도 요미우리 OB와 사이좋게 지내고 백스크린 3연발의 주인공 카케후 마사유키와 당시 홈런을 맞은 투수 마키하라 히로미가 사이좋게 방송에 같이 나오는 등 한신 OB와 요미우리 OB들 간의 관계는 상당히 좋은 편. 선수들도 시즌 끝나고 같이 밥 먹으러 가는 등 관계가 좋은 편이다. 요미우리 선수 : 야 아시야 근처는 뭐가 맛있냐[76] 게다가 킨키 그레이트링의 당시 연고지는 한신과 겹치는 오사카였다. 킨키 그레이트링은 지금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현재 연고지인 후쿠오카에 이전한 건 1989년부터이다.[77] 도쿄권 방송국은 와이드쇼와 저녁뉴스에서 한국의 종합편성채널처럼 지역소식 없이 같은 전국뉴스만 계속 틀어줘서 시청자들이 짜증내기도 하는데, 기요하라 가즈히로 각성제 파동 때는 이 소식이 너무 심하게 다뤄져 시청자들이 불평하기도 했다.[78] 단 한큐한신홀딩스가 대주주기도 한 간사이TV는 아침에 후지TV의 '메자마시TV'를 그대로 방송해서 제외.[79] 두 방송국 모두 JRN, NRN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전국에 한신 주최 경기를 제작, 전송한다.[80] 한신 홈경기와 인터리그 인터넷 유료 중계는 한신 구단 자체에서 제공하는 '토라테레(虎テレ)' 서비스 또는 2018년부터 요미우리를 제외한 11개 구단의 공동 중계 플랫폼인 DAZN을 이용해야 한다.[81] 정반대 사례가 오릭스 버팔로스. 이쪽은 NHK를 제외한 공중파 방송에서 아예 중계를 안 하는 상태라 유료방송 서비스 가입이 필수다.[82] 히로시마판의 경우엔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뤄 준다.[83] ブレないデイリー(부레나이 데이리)[84] 사실 스포츠지에 웬만하면 정가 소식이 오를 이유는 없으므로, 그냥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한신이 1면이라는 사실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2009년 정권교체 당시에는 정권교체의 임팩트가 너무 커 스포츠지들도 스포츠 소식 제끼고 정권교체 소식을 1면에 실었는데, 정권교체 당시 요미우리전에서 토리타니가 홈런을 치는 소식을 1면에 실으면서 G민당 드립을 친 적은 있는데, 정작 도쿄는 선거철이면 23구 서부 및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우경화된 오사카보다 반자민당 표도 더 많이 나온다.[85] 이로 인해 SMAP 해산 공식발표, 아라시 2021년부터 활동중단, 니시코리 케이 동메달 등의 뉴스로 인해 한신 소식이 1면이 안 되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데일리가 변절했어요! 그러나 2019년 3월 21일 스즈키 이치로 은퇴는 거의 모든 스포츠신문과 일간신문이 이치로 은퇴를 1면에 실었을 정도로 그 임팩트가 상상을 초월하였다. 주니치도 최종판을 이치로로 갈아엎었다[86] 그러나 도쿄판의 경우 한신팬이 간사이 지방에 비해 적어 다른 스포츠신문과 비슷하게 가는 경우도 많다. 이 실례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간사이권에서 스프링캠프 당시의 활약으로 1면에 실렸으나 도쿄판에서 1면에 실리지 못하고 맨 뒷면에 실린 윌린 로사리오.[87] 즉, 명목상 연고지가 오사카일 때에도 니시노미야에서 홈경기를 했다. 홈구장 안 옮긴 다른 팀은 막내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익히 알려진 것만 해도 자이언츠는 고라쿠엔 구장에서 도쿄돔으로, 주니치는 나고야 구장에서 나고야 돔으로, 도쿄 야쿠르트는 고라쿠엔을 같이 쓰다 메이지진구 야구장으로, 히로시마는 현 홈구장으로 옮기기 전에 이미 히로시마 종합 구장에서 히로시마 시민 구장으로 옮긴 바 있다. 나머지 구단들은 연고지 자체를 옮겼으니 말할 것도 없고.[88] 올해야 말로 우승이라던 한신 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고, 33-4라는 아름다운 스코어는 05년 한신의 약진을 시기하던 타 구단 팬들에게 한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어떤 선수의 방어율이 3.34이거나 타율이 0.334거나, 어떤 경기의 경과시간이 3시간 34분이거나, 3년만의 34회째 센트럴리그 우승이라거나 여튼 한신이든 아니든 야구 관련해서 334라는 수열이 들어가면 なんでや!阪神関係ないやろ!(머꼬! 한신 상과읎다카이!)라고 달아주는 식. 8888577[89] 합스부르크 가문 문장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구단의 엠블럼 역시 같은 형태다. 셋 다 DTD 테크를 탄 적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90] 그것 말고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돈지랄에 실망해 반 요미우리 성향이 강한 한신 타이거스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신도 돈지랄은 똑같이 하잖아! 히로시마 팬들이 화낸다...[91] 방송, 예능, 성우, 가수, 아티스트 등 미디어계에서 유명한 한신 팬들이 직접 롯코오로시를 부르는 영상으로, 2017년 시즌 초반에 촬영하였다.[92] 정말로 양키스가 다나카 마사히로 이전까지 일본인 투수를 영입하기 주저했던 이유가 이가와 때문이었다.[93] 업무중 실수를 해서, 보고를 하다가 혼날 걸 걱정하는 다른 사원에게 각각 한신이 대승했을 때와 대패했을 때를 골라서 보고를 하라고 조언해 준다. 결과는 대승으로 기뻐해서 그런 사소한 일은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과 충격적 대패로 인한 허탈감에 그딴 사소한 일에 열 낼 기력도 없다였다.자기회사 이익에 관계되는 일을 그딴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한신팬의 팬기[94] 스타킹과 왼쪽 소매의 구단기에도 들어가 있는 호랑이 마크 제외. 이마저도 호랑이 마크는 2001년에 잠시 회색으로 바꾼 적이 있었다.[95] 대표적으로 이승엽의 한일통산 400호 홈런의 희생양이 되었다. 또한 이승엽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뽑아낸 상대팀이 한신 타이거스.[96] 양국 언론에서도 묵직한 직구위주의 투구를 하는 둘을 동일시 취급하는 경우가 많으며 두 선수도 서로에 대한 언급을 몇 번 한 적이 있다.[97] 농담이 아니라 요미우리 TV 방송, 아사히 방송에선 오승환의 활약상을 로컬 아침방송 스포츠 코너에서 하이라이트로 보여주곤 했다.[98] 대신에 엠스플에서는 한국 프로야구팀과 일본 프로야구팀의 연습경기를 중계해 주기도 하는데, 오키나와 리그에서 한신과 KIA 타이거즈의 경기를 중계해 주기도 했다.[99] 등록은 포수로 되어있으나 주전 내야수로 출장중이다.[100] 준수한 외모로 일본 내 얼빠들이 많은 선수 중 하나. 허나 사마귀를 연상케하는 특유의 타격 자세로 국내 넷상에선 영원히 고통 받고 있다.[101] 본명은 후지카와 슌스케(藤川 俊介)이지만 성이 투수 후지카와 큐지와 겹친다는 이유로 등록명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등록.[102] 세실 필더는 한신에 오기 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한 경력이 있으므로 제외한다.[103] 다만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으로 인해 한신 팬들 사이에서는 흑역사로 취급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도박 자체보다는 조직폭력배와 연루되었다는 사실 때문에.[104] 일본에서는 돈 블레이저(Don Blazer)로 줄여서 불렀으나 본명이 블레이싱게임이다. 따라서 이 분만 영어 스펠링을 같이 표기한다.[105] 총 재직연수로 따지면 나카무라보더 더 많은 연수를 재직한 감독도 있지만 단일 임기로는 팀 역사상 최장이다. 그렇다고 감독직 수행을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106] 바로 위 후지타 타이라의 해임으로 인한 대행이지만 일본어 위키에서는 정식 대수로 세고 있다. 따라서 대행이 아닌 27대 감독이 되는 셈.[107]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108] 양대리그 분리 이후 성적만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