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4:20:56

하서회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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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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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西回鶻
1. 개요2. 역사

1. 개요

키르기스에 의해 원래 몽골 지역에 있던 위구르 제국이 멸망한 뒤 흩어진 위구르족의 한 갈래가 남쪽으로 이동, 지금의 중국 간쑤성 일대 하서회랑에 웅거하여 건국한 나라. 감주회골(甘州回鶻)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840년, 키르기스의 침입으로 위구르 제국이 붕괴되자 위구르족은 서진 또는 남진했다.

847년, 그 중 한 갈래가 감주(甘州)에 정착해 하서회골의 근간을 뿌리내렸다. 처음에 하서회골은 토번에 예속되어 있다가 귀의군절도사 장의조(張義朝)가 토번세력을 몰아내자 하서회골은 당나라에 복속되었다. 그런데, 당나라가 농민반란으로 변경을 관리할 여력이 떨어진 틈을 타 하서회골은 당나라와 관계를 단절하였다. 하서회골은 지금의 간쑤성 일대를 장악하고 동서교역로를 확보했다.

905년, 둔황을 중심으로 한 귀의군이 '서한의 금산 제국(西漢之金山帝國)' 건국을 선포했다. 이 국가가 타 위구르족을 복속시키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911년, 하서회골은 군사를 이끌고 둔황을 공격해 항서를 받아냈다. 이로써 하서회골은 서역의 독립국가로 발전해 나아갔다. 당이 멸망하고 오대십국 시대가 들어선 후에도 하서회골은 중국 왕조와 상호협력 관계를 유지했고[1], 중앙아시아 나아가 서아시아까지 무역을 주도했다.

10세기 요나라가 서쪽으로 친정하면서 하서회골은 요나라에 복속되었다. 이후 11세기 하서회골은 탕구트족과 여러차례 교전하다가 끝내 하서회골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서하에 병합된 이후 하서회골인들은 송대에 황두회흘(黃頭回紇) 또는 원나라 때의 살리외올(撒里畏兀) 등으로 불렸다가 일부 일파는 기련산맥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현재 유고족이라 불리는 소수민족으로 이어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신장 쪽으로 이동한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한 천산회골과 달리 이들은 티베트 불교를 믿고있다.

[1] 주로 무역을 통하여 관계를 유지했다. 특이하게 하서회골은 중국에 조공을 보낼때마다 옥이 빠지지 않았는데, 후주 세종은 회골이 옥을 보낼때마다 조공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