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003458><colcolor=#fff> 프랭크 게치 Frank Goettg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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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프랭크 브라이언 게치 Frank Bryan Goettge |
| 출생 | 1895년 12월 30일 |
| 오하이오주 캔턴 | |
| 사망 | 1942년 8월 12일 (향년 46세) |
| 솔로몬 제도 과달카날 | |
| 학력 | 바버턴 고등학교 오하이오 대학교중퇴 |
| 복무 | 미국 해병대 |
| 복무 기간 | 1917년 ~ 1942년 |
| 최종 계급 | 중령 |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바나나 전쟁 태평양 전쟁 |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시절부터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해 우수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1년간 수학하다가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병대에 사병으로 입대해 훈련 중 우수한 성적과 리더십을 보이며 장교로 전향했다. 1918년 소위로 임관해 서부전선 뫼즈-아르곤 공세에 투입되었다.귀국 후 뉴욕 자이언츠에서 프로 스카웃제의가 왔으나 거부하고 해병대 소속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아이티에 파견되었으며 1927년 중국주재무관으로 복무했고 해병대사령관 벤 풀러의 부관으로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제1해병사단 정보참모로 임명되어 과달카날 전역 당시 사전정보가 부족해 직접 지프차와 도보를 통해 주변지형과 일본군의 형세를 파악해야했다. 제5해병연대에서 정예 24명을 차출해 보트를 타고 마타니카우강인근을 수색했다. 하지만 인근 모래톱에 좌초되어 육지로 상륙했으나 일본군 영역 한가운데였고 일본군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게치는 어깨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전사했으며 그를 포함한 21명이 전사, 실종되어 3명만 귀환했다.
이후 뒤에 온 정찰대가 모래톱에 도착하니 신체가 절단되어 있고 부패해가는 해병 시신들을 발견해 완벽한 신원확인은 하지 못했다. 다만 생존자 3명이 모두 게치의 죽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