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8 08:20:11

평양시

평양에서 넘어옴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평양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장수왕 이후 고구려의 수도 - 평양성
  • 서진 ~ 명대에 걸쳐 평양이라 불린 중국의 도시 - 린펀시
  • 조선시대 평양을 통치하던 행정구역이자 도시 - 평양부
  • 2018년까지 평양을 비롯한 북한에서 쓰였던 시간대 - 평양시간
아시아의 국가별 수도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동아시아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 일본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파일:중국 국장.svg 베이징시 파일:도쿄도 도기.svg 도쿄도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평양시 파일:타이베이시 휘장.svg 타이베이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n_flag_ulaanbaatar.png 울란바토르 특별시
동남아시아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파일:자카르타 수도특별구 휘장.png 자카르타 수도특별구역 파일:방콕 시기.svg 방콕 파일:마닐라광역시 휘장.png 마닐라 특별시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쿠알라룸푸르 연방 직할구 / 푸트라자야 연방 직할구 싱가포르 파일:하노이시 휘장.svg 하노이 중앙 직할시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파일:캄보디아 국기.svg 캄보디아 파일:라오스 국기.svg 라오스
네피도 프놈펜 비엔티안
파일:브루나이 국기.svg 브루나이 파일:동티모르 국기.svg 동티모르
반다르스리브가완 시 딜리 시
남아시아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방글라데시
뉴델리 카불 다카 시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키스탄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이슬라마바드 파일:Kathmandu Flag.png 카트만두 광역시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파일:몰디브 국기.svg 몰디브 파일:부탄 국기.svg 부탄
말레 시 팀부
서아시아, 캅카스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파일:터키 국기.svg 터키
파일:베이루트-ff.gif 베이루트 마나마 앙카라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파일:바그다드시 휘장.png 바그다드 파일:리야드 시기.png 리야드 파일:암만시 휘장.png 암만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파일:바쿠 시기.png 바쿠 도하 파일:사나 시기.png 사나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예루살렘(정치) / 텔아비브(경제) 파일:테헤란 인장.png 테헤란 파일:예레반 시기.gif 예레반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쿠웨이트 트빌리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cosia_city_fl_n7160.gif 니코시아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무스카트 다마스쿠스 파일:1920px-Flag_of_Abu_Dhabi.svg.png 아부다비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파일:아르차흐 공화국 국기.svg 아르차흐 공화국 파일:압하지야 국기.svg 압하지야
라말라(사실상) 스테파나케르트 수후미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남오세티야 파일: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국기.svg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츠힌발리 레프코샤
중앙아시아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키르기스스탄
파일:타슈켄트시 휘장.jpg 타슈켄트 누르술탄 비슈케크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파일:투르크메니스탄 국기.svg 투르크메니스탄
두샨베 아시가바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024FA2 10%, #FFFFFF 10%, #FFFFFF 12%, #ED1C27 12%, #ED1C27 88%, #FFFFFF 88%, #FFFFFF 90%, #024FA2 90%, #024FA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D1C27> 파일:북한 국장.svg북한
광역행정구역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6px"
<tablebgcolor=#FFF,#191919>
수도
평양시
남포시 개성시 라선시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북한의 명목상 행정구역 보기[다]
[주의]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OO특별/광역시'라고 표기하는 것과 달리 'OO직할/특별시' 식으로 하지 않고 'OO시' 라고 표기한다.
[가] 북한 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상으로는 '직할시'만 명시적으로 존재하며, 평양시,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를 모두 동급의 직할시(혹은 특별시)로 간주한다.
[나] 북한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해방지구는 명목상 행정구역일 뿐 실질적인 광역행정구역이 아니다.
[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북5도위원회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변화를 인정하므로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틀로 연결한다.
}}}}}}}}}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e40001>
파일:북한 국장_White.svg
평양시
행정구역
}}}
{{{#!wiki style="color:#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구역
대동강구역 대성구역 동대원구역 락랑구역
력포구역 룡성구역 만경대구역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 사동구역 삼석구역 서성구역
선교구역 순안구역 은정구역
소재지
중구역
평천구역 화성구역 형제산구역
강남군 강동군
[가]
방현동
시소재지: 중구역
[가] 2018년에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평양시로 편입됨.
}}}}}}}}}
[[북한|]]
북한직할시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ffffff,#1f2023><tablebgcolor=#ffffff,#1f2023>
파일:북한 국장.svg
평양시
平壤市
Pyongyang City
}}}
<colbgcolor=#e40001><colcolor=#fff> 시소재지[1]시의 중심지는 오직 '시소재지'만 쓴다. 소재지란 한자를 풀어서 해석하면 무언가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므로 시가 있다는 뜻이다. 평양직할시는 한국에서 쓰긴 하나 '인민위원회 소재지'는 평양직할시가 틀리다는 논리로 보면 당연히 틀린 표현이고, 한국 연구자가 쓰는 건 맞다고 가정해도 쓰지 않기에 틀린 표현이다. 북한은 지방행정을 맡는 기관이 잘게 쪼개져 있어 점으로 어떤 관청의 주소로 중심지를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라 관청이 몰려있는 곳의 개념으로 중심지를 나타낸다. 자세한 사항은 북한/행정구역 문서 참조. 한국 연구에서는 관청들이 몰려있는 곳을 나타날 때 '시청 소재지'까지는 쓴다.] 중구역 중성동[2]
하위 행정구역 19구역 2 1[3]
면적 1,849㎢[4][5][6]
인구 약 2,999,466명[7]
인구밀도 1,622명/㎢
당위원회
책임비서[8]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김영환
인민위원장[9]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최희태
최고인민회의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81석[10]


파일:천청당 흰.png
1석[11]
상징[12] 버드나무
지역번호 02[13], 0195
IATA 도시 코드 FNJ
ISO 3166 KP-01
파일:평양시 위치.png
평양시의 위치

1. 개요2. 명칭3. 지리
3.1. 도시 구조3.2. 지형3.3. 풍수3.4. 지질3.5. 기후
4. 역사5. 현재
5.1. 정치
5.1.1. 역대 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5.1.1.1. 책임비서/당위원장5.1.1.2. 인민위원장
5.2. 경제5.3. 교통
5.3.1. 도로교통5.3.2. 철도 & 궤도 교통5.3.3. 수상교통5.3.4. 항공교통
5.4. 문화5.5. 교육
6. 건축
6.1. 공공시설6.2. 예술시설6.3. 체육시설6.4. 고건축 및 유적
7. 행정구역
7.1. 구역7.2. 군7.3. 동7.4. 행정구역 개편7.5. 과거 행정구역
8. 남북통일 이후 전망
8.1. 낙관론8.2. 비관론
9.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10. 기타
10.1.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평양시의 경관 및 영상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파일:Kim_Il-sung_Square_Pyongyang.jpg
파일:ryugyong-hotel-3602.jpg
김일성광장 류경호텔과 그 주변 경관
파일:20201114_204756.jpg
파일:rhkgkt.png
려명거리 과학기술전당
파일:평양역.jpg
파일:attachment/문수 물놀이장/Example.jpg
평양역 문수물놀이장

타임랩스 기법으로 찍은 평양의 모습[14]
}}}}}}}}} ||

북한수도이자 한반도 이북 최대 도시. 북한에선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북한의 정치, 경제, 인구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한 최대 도시이다. 분단 전까지는 대한제국에서 제2의 수도로 육성하려 했었고, 경성(서울)과 더불어 "조선의 양대 도회"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위상의 도시였다. 때문에 조선시대 평양부는 조선 팔도에서 한성부에 다음가는 대도시로 손꼽혔다.

한반도 전체로 봐도 인구로는 추산에 따라 서울, 부산에 이은 3위[15]의 대도시이다. 평양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특권 계층과 함께 당국으로부터 불순 분자가 아니라고 판명받은 서민[16]이다.

평안도의 '평' 역시 평양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안'은 안주이다.

2. 명칭

언어별 명칭
한국어 평양
평안남도 평양시[17] / 평양시[18]
부루나()
영어 Pyongyang / Pyongyang City
스페인어 Pionyang
포르투갈어 Pionguiangue
루마니아어 Phenian
에스페란토 Pjongjango
베트남어 Bình Nhưỡng
러시아어 Пхеньян[19]
중국어 平壤(Píngrǎng)
일본어 平壌(ピョンヤン[20] / へいじょう[21])

순우리말로는 부루나[22]라고 부른다. 평양이라는 지명은 순우리말을 한문으로 옮기면서 생긴 말이다. 평양시민들이 애칭으로 평양을 부루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별칭으로는 버드나무의 고장이라는 뜻의 유경(류경, 柳京)이 있다.[23] 류경호텔의 류경도 여기서 따온 명칭이다. 고려시대의 명칭에서 비롯한 서경(西京)이라는 역사적 표현도 있다.

로마자 표기 시에는 Phyŏngyang이 길기 때문에 종종 P'yang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서북(평양)방언으로는 피양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을 의식해 P'yang이라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스펠링이 평창(Pyeongchang)과 유사해서, 평창을 평양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흥행이나 이미지 문제를 거론하며 평창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IOC 위원들도 있었다. 실제로 한 케냐 사람이 평창을 가려다가 실수로 평양을 간 사례가 있다고 한다.#출처 그나마 남북한의 로마자 표기법 차이로 인해 평창의 평은 Pyeong, 평양의 평은 Phyŏng(또는 Phyong)으로 표기될 수 있다지만,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도 'Pyongyang'은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표기이므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는 'Pyong'과 'Pyeong'의 차이가 더 자주 나타난다.

우편 주소를 비롯한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평양직할시'가 아니라 그냥 '평양시'라고 부른다. 기관 명칭을 절대로 줄여서 말하지 않는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도 '평양직할시'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직할시니 특별시니 하는 것은 분류를 위하여 도와 동급이라는 의미로 부여하는 행정적 용어일 뿐, 실제 지명에 붙여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평양직할시'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며, 단순히 '평양시'라고 적는 것이 맞다. 이는 남포, 라선, 개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는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라고만 적지, '남포특별시', '라선특별시', '개성특별시'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도급의 위상을 가진 도시는 맞으며, 평양 출신 탈북민이 만든 한 단체는 자신의 사이트에 '평양특별시'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국 통일부의 북한정보포털도 편의상 '평양직할시' 같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 북한에서는 한국의 특별시나 광역시도 그냥 '시'로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역으로 적용하면 아예 이상한 것은 아니다.

3. 지리

서울에서 철도로 약 260km 거리에 있다. 대구광역시[24], 광주광역시[25]보다 가깝다. 직선상 거리로는 약 190km 정도로 전라북도 전주시[26]경상북도 안동시[27], 김천시[28], 강원도 삼척시[29]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30] 휴전선에서의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휴전선에서 세종특별자치시까지의 거리와 비슷하여, 서울 수준의 군사적 최전방도 아니지만 딱히 휴전선에서 멀다고 볼 수도 없다. 물리적 거리도 가깝지만 남북분단 이전 일제강점기 시점까지는 대륙과 서울 남쪽을 잇는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넓이는 약 1,800km²(광복 당시 275km²), 인구2008년 기준 3,255,288명[31][32]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한반도 전체 통틀어서 서울, 부산에 이은 3번째의 대도시였다. 반면 북한이 데모그라피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108,000명으로, 이 기준으로 보면 인구로는 인천광역시대구광역시를 제치는 한반도 3번째 도시가 된다. 이후에는 정확한 통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인구 변화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상하며, 자료에 따라서는 300만 명 이상으로 보는 기사도 있다. 2017년에는 260만의 인구를 200만으로 감축한다는 기사도 있다.#

주간조선에서는 2005년의 평양의 17세 이상의 주민등록 현황을 입수했다는 보도를 하였다. 군인을 포함한 주민의 직업, 혈액형까지 등록된 자료다. # 이 보도를 통해 연고자의 생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였다. 평양 17세 이상 주민은 210만명이 등록되어 있다. 평양 주민 중 토박이는 절반 수준이고, 노동당원이 주민의 3분의 1 수준이다. 남성 42명당 여성 58명이라는 여초 도시라고 한다. 총 인구는 평양에 들어온 군인을 평양 주민으로 가정해도 260만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이 자료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

3.1. 도시 구조

고대의 주력 도시들은 강이나 산 같은 자연지형을 방어 시설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고 이는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였다. 때문에 한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북한산 일대를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던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 또한 대동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보통강을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다.[33] 다만 평양의 경우 한반도 내 오래된 고을과는 다르게, 인근에 요새로 삼을만한 산이 별로 없으며 방어 시설의 토대가 산이 아닌 강으로만 형성되었다는 점[34]에서 여타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평양은 본평양, 서평양, 동평양, 남평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 본평양: 대동강 북안의 전통적인 평양 중심지를 일컫는다.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서성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동평양: 일제강점기 대동강 동안에 형성된 시가지. 동대원구역, 대동강구역, 선교구역, 사동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남평양: 충성의다리를 통해 연결되는 대동강 남안의 시가지를 말한다. 락랑구역 일대다.
  • 서평양: (신)보통강 서쪽에 광복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를 말한다. 만경대구역 일대다.

6.25 전쟁 이후 남한이 서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한강 이남까지 서울로 편입시킨 것[35]처럼, 북한도 평양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동강 이남 지역으로까지 시가지가 확장되어 현재는 대동강이 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며[36]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이 평양에서 합류한다.

다만 북한에서 강남지역은 강북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편으로 강남은 평양 노동인력 거주지이고 통일거리 사업 이후 사실상 방치 되어있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주는 주요기관은 강북지역을 중심으로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북한정권 차원에서 강남개발에 대한 뜻이 없던것은 아니고 평양의 인구증가가 통제정책에도 급속히 늘자 해당지역을 개발했고, 아예 지하철 건설까지 하면서 강남개발을 대대적으로 밀어주려했는데 건설 도중에 하저터널이 붕괴하는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많은 부분이 백지화될수밖에 없었고, 이후로 평양전차 건설로 도시철도로는 연결은 되었기는 했지만 오래지나지 않아 고난의 행군이 닥치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방치하고 있는것이다. 즉, 도시개발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여유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냅두는것이다.

평양의 독특한 도시 구조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이념을 반영하기 위한 계획이다. 대한민국이 경제가치에 따라 도심은 주로 부가가치가 높은 고밀도의 업무·상업지구가 형성된 것에 비해,[37] 평양의 중심지는 정부 기관이나 공공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한이 블록 중심의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한다면 북한은 통일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 거리 중심의 신도시 개발을 한다는 것. 예전부터 '버드나무거리' 같이 신도시를 조성하고는 했다. 대로변에는 아파트가 위치하여 있으며, 주택가 내부에 공업·상업지구가 위치하여 집과 직장이 근접한 구조다. 즉 보행도시다. 그러나 2020년대의 최근에 들어서는 송신·송화지구, 화성지구, 대평지구 같이 블록이나 지구 단위에 가까운 건설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는 대놓고 블록 단위로 지었다.

당장 직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배치구조지만,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르는 남한으로 보자면 '명동 대로가에 주거지가 위치한 것과 비슷한' 도시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게, 서울도 1970년대까지는 그랬다. 서울도 시 중심가인 중구, 종로구에 수많은 주택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울시내가 확장되기 이전까지는 비슷했다. 지금의 남한 중소도시에 가보면 번화가라 할지라도 조금만 지나면 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자가용은 물론이고, 대중교통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주거지는 필연적으로 일터와 가까워야 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지가 상승과 교통수단의 발전이 도심지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구조를 가진 오늘날의 도시구조 형성에 기여한 것이다.

쉽게 말해,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부동산 거래도 이루어지고는 하지만 토지를 사는 개념은 없고, 주택이나 건물 거래를 하는 수준인데 이게 상당히 불분명한 개념이기 때문에 도심 공동화가 이루어 진다거나 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중소도시이던 시절 그때의 그 느낌으로 이때까지 발전해 온 것.

사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도시가 이러한 구조를 띠고 있다.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동유럽 국가들의 도시나 소련의 도시들은 공장지대 주변에 상업지구가 위치하고 있고, 상업지구 가까이에 주택가가 위치해 있고, 그 주변에 가족단위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이나 녹지, 경기장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서방 세계에서는 이렇게 나름대로 깔끔한 구조 때문에 도심의 쇠퇴(Urban Decay)를 막을 수 있는 구조로 호평 받은 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개발 한 번 하려고 해도 엄청난 시간과 조율과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도시가 아예 새로 짓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심시티를 해본다면 이해가 될지도. 예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과거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중구역의 중심인 해방산동, 중성동 일대에는 북한의 중앙행정기관이 다수 자리잡고 있다. 서성구역과 대성구역에 걸쳐 있는 아미산 일대에는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등 권력 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평양 일부 구역, 특히 동평양 쪽에는 거대한 건물들 뒷쪽으로 아직 60년대식 주택 단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유는 북한의 발전 속도가 남한에 비해 더딘 것도 있고,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이사가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한국처럼 대규모 도시개발로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멀쩡한데 걍 그대로 집을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다만 이것도 2010년대 들어 건설붐이 불면서 남한이나 중국처럼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식이되면서 본평양과 그 근교 지역은 남한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주택 건설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는데,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짓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쉴새없이 일을 시켜 딴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 사업을 벌인다는 주장까지 나올 지경이다. 2008~2012년에는 평양 10만호 건설사업이 있었으나 2~3만호 정도만 완공했다. 그 이후 창전거리(2012년),미래과학자거리(2015년), 려명거리(2017년)만 그나마 제대로 지었다. 2020년대에는 5만 세대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사동구역의 송신·송화지구부터 시작하여 2022년에는 구 룡성구역 '화성지구'[38]에서도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3.2. 지형

대동강과 그 지류들인 보통강, 무진천 등 여러 하천들에 의해서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서부와 북부 일대에는 오랜 기간 동안 침식작용을 받아서 낮은 구릉성 산지들이 많이 분포했다. 평양평야는 경작이 가능한 낮은 구릉지들이 많고, 근처에 안주평야와 재령평야가 있으므로 굉장히 넓은 평야를 주변에 가지고 있다.

3.3. 풍수

택리지에 의하면 100리 정도 되는 평야가 앞뒤로 펼쳐져 있어서 기상이 크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평양의 풍수를 행주(行舟)형[39]이라고 하는데, 평양 전체가 하나의 와 같기 때문에 우물을 만드는 것은 선박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고 여겨서 우물을 파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실제로 우물을 판 이후로 평양 시내에 많은 화재가 발생해서 우물을 다시 메웠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떠다 판 이야기는 평양의 풍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주형의 풍수를 보완하는 비보[40]로서 배를 묶는 닻과 같은 상징물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배는 재물을 뜻하고, 재물을 담고 있던 배가 떠나지 않으려면 닻으로 묶어둬야 된다나. 이러한 비보로서 연광정 밑에 닻이 묻혀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까지 풍수지리설이 퍼져 있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이런 것에 무관심했다고 한다.[41]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닻을 건져 올렸는데, 하필 닻을 건져 올렸던 1923년에 평양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에 기겁한 평양 주민들은 그 닻을 다시 찾아 다시 제자리에 묻어놨다고 한다.

3.4. 지질

시생대에 생긴 낭림층군을 포함하여 원생대층, 고생대층, 신생대층이 분포했다.

3.5. 기후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냉대동계건조기후(Dw)에 속하기 때문에 연교차가 서울보다 조금 큰 편이다. 연 평균 기온은 10.9℃, 1월 평균 기온은 -5.4℃, 8월 평균 기온은 24.9℃로 서울보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조금 시원한 편이다.[42] 대략 서울보다 겨울은 3도, 여름은 1도, 나머지는 2도 평균기온이 2도 정도 낮다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남한 철원군 시가지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1월 평균 -5.7℃, 8월 평균 23.9℃이다. 물론 중강진이나 함경 지방보다는 당연히 따뜻하다. 같은 위도에 있는 스페인 이비자의 1월 평균 기온은 무려 12℃다. 북위 60도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헬싱키와 겨울철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 연 평균 기온은 시카고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것은 한반도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여 중부 지방 기준 북위 45~50도는 가야 한다. 반면 상반기에는 온도가 정말 빠르게 올라가는 것인지, 아래에 나와 있듯 1~3월은 추움에도 불구하고 4~5월 평균은 서울보다 1~2도 낮고 6~7월 평균은 서울보다 조금만 낮다.8월 서울보다 1°C 정도 낮기는 하지만, 초고온이 왔던 2021년 7월 평균기온을 27.0도나 기록해 점점 여름도 서울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43] 심지어 2019년 7월에는 26.2°C로 서울보다도 높다.

연 평균 강수량은 936.4mm인데, 한반도의 강수량 특징이 그러하듯이 강수량의 70% 가량이 여름에 집중되어 내린다. 특히 7~8월에만 484mm가 내려 두 달 동안 한 해 강수량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반대로 겨울에는 한국의 서울특별시보다도 강수가 적다. 실제로 12~2월의 평균 강수량은 각각 18, 9.6, 14.5mm로 서울의 60%에 불과할 뿐더러[44] 세 달을 합쳐도 50mm가 채 안 된다. 남한 소우지대구와 비교해도 이곳은 1064.6mm라 더 적다. 다만 660mm 정도의 연강수량을 기록하는 베이징 수준은 아니다. 백령도의 825.6mm보다는 많다. 북한에서 베이징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하는 곳은 청진시, 신포시 등 함경도 일대다. 다만 함경도라도 겨울 강수량은 평양 수준은 된다. [45] 매년 눈은 오는 수준이라 북한 매체가 눈이 오는 평양을 다루며 제설차량이 돌아다니는 도시다. # 김정일 영결식 때는 이례적이지만 폭설이 내렸다. 베이징의 12월~2월 강수량은 2.8mm, 2.7mm, 4.9mm로 평양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베이징 수준이면 겨울에는 한 두 번 눈 섞인 비가 간혹 오는 수준이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900mm가 넘으므로 세계 평균 정도는 되기에 적지 않은 강수량이지만, 6~9월의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 8달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271.3mm이다. 그래도 베이징조차 BSk가 아니라 베이징보다 40% 가량 강수량이 많은 평양은 스텝 기후까지는 아니다. 겨울 가뭄이 더 문제되는 곳은 개마고원 일대의 수력발전소인데, 실제로 전력난이 발생하여 갈수기에 평양 중심구역조차 하루 10시간만 전력이 공급되는 사태가 있다고 한다. #

여하튼 서울조차 겨울 강수량의 합이 사막 국가 1년치 수준인데, 그 보다 더 적은 평양은 대도시로써 대도시의 인구를 감당할 수리시설 확충과 수원 확충, 상수도, 하수도 정비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북한 정권에서 이 사업이 제대로 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만든 문수물놀이장(워터파크)의 수질이 매우 나쁘다는 보고서가 공개된 적도 있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
평균 기온(℃) -5.4-24 11.1 17.4 21.924.724.920.2 12.9 4.8 -3.410.9
평균 최저 기온(°C) -9.8-6.6-0.95.6 12 17.4 21.421.515.6 7.8 0.5 -7.46.4
평균 최고 기온(°C) -0.43.1 9.7 17.3 23.527.529.129.6 25.718.8 9.7 0.9 16.2
강수량(mm) 10142445759027521091473918936[A]
습도(%) 57565760657281817367665866.1
평균 강수일 334568121054646

4.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평양시/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rowcolor=black> 시기 당시 명칭
고조선 왕검성
원삼국시대 낙랑군 조선현(朝鮮縣)
고구려 안학궁/대성산성장안성
남북국시대 평양주(平壤州)
고려시대 서경
조선시대 평안도 평양부
구한말 평양부 평양군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양부
1914년 대동군(大同郡) 신설
1946년 평양특별시(平壤特別市)
1952년 평양시(平壤市)(직할시)

평양은 약 기원전 3세기(고조선, BC 194년 이전)에 건설되어 경주(신라, BC 57년), 서울(백제, BC 18년)보다 약 200여 년 더 앞서 건설되었다. 이른바 '단기위고 3천년'[47]의 도읍으로, 고조선[48], 고구려, 고려[49]고도이자 현재는 북한수도. 한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큰 곳이다. 손꼽히는 고도인 서울특별시경주시, 개성시에 못지 않는데, 평양은 한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수도였고[50], 고구려 후기의 수도[51]였다. 수도의 지위를 잃은 이후로도 고려시대의 3경[52] 중 하나였고, 조선시대 한성에 이은 제2의 도시, 북한 정권의 정치적 중심지이자 수도가 되었다. 이에 평양에는 남한의 서울이나 공주, 부여, 경주, 김해 못지않게 전통유적이 많다. 동명왕릉을 비롯한 고구려의 유적과 고려시대 유적이 특히 많은 편이며 비록 이후에 개건한 것이고 날조 논란도 많지만 단군왕검을 모시는 단군릉도 있다. 북한이 개발되거나 통일되면 이러한 전통유적 보존 및 교토 같은 고도의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로 발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한국전쟁 당시 평양이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으로 인해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지라 근교의 왕릉급 무덤 정도를 제외하면 평양 소재 문화재들은 싹다 재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려 시대에는 개경과 라이벌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고 특히 고려 전반의 지역사는 개경과 서경의 대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맞설만한 정치적 힘과 문화적 정통성을 가진 도시는 평양 즉 서경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개경 귀족 입장에서도 서경(평양)이 아무리 뻗대도 고조선고구려의 수도라는 엄청난 정통성 때문에 쉽게 건들지 못했다. 묘청의 난이 발생한 걸 보면 두 수도 사이에도 위상의 차이가 있던 정도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평양부는 수도인 한성부와 지역감정에 기반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었다. 단, 고려시대에는 개경과 어느정도 경쟁이 가능했지만 중앙집권제가 발달한 조선시대에는 '2위 도시'라는 상징성 빼곤 한양과 경쟁 자체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조선은 삼조선과 고구려의 고도라는 이유로 평양의 역사적 가치를 중시했으나 정작 평양 출신들은 조선조 내내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

다만 한국사에서 딱 한 번 평양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 바로 남북국시대이며, 신라에게도 발해에게도 수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사실상 양국의 완충지대에 위치해 있어 고구려 멸망 후 고려가 서경으로 삼기까지의 253년간(668~921) 폐허로 방치되었다. 수도인 기간은 길게 잡아도 약 500년으로 의외로 짧은 편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에서는 원래 다른 곳을 수도로 삼다가 왕조 후기에 평양으로 옮긴 것이었고 고려 서경은 위상은 높았다지만 결국 개경에 밀려 수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였던 기간만 치면 서울이나 경주에는 확실히 밀리고 개성에 비해서도 확실한 우위라고 말하기 힘들다.[53] 그러나 수도가 아니었을 때에도 한사군의 중심지, 고구려 제 2도시(국내성 시기), 고려 제 2수도, 조선 제 2도시였기 때문에 꾸준함의 측면에서 인정받는다.

분단 직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남북한 영역에 있는 도시 중 가장 현재의 북한과 동떨어진 색채를 띠던 도시 중 하나였다. 특권계층이 자리잡은 현재의 북한과 달리 신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던 곳이며, 조선 후기부터 상업으로 번성하던 곳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조만식 같은 우파가 득세하던 곳이었고, 북한 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교세도 가장 강했다. 그래서 북한이 펴낸 《조선향토대백과》에서 이러한 광복 전의 평양을 두고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인 상업소비도시'라고 깎아내릴 정도였다.

원래 1948년 제정된 북한 헌법 10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성립 초창기에는 한반도 정치체의 정통성이 서울에 있음을 은연중에 인정한 상태에서, 적화통일을 전제했던 조항으로 보인다. 이 때까지는 평양은 일종의 임시수도와 같은 위상이었던 셈인데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서울에 엄청 집착했다. 그러다 남북분단 상황이 고착화되자 나중에 김일성 일인 독재 체제를 확립한 197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이 부분은 삭제되고 대신 평양을 혁명의 수도로 규정하였다.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기준으로 서울은 지방 대도시라는 것이다.

혁명의 수도라는 이름 하에 사실상 수도임을 인정한 다음부터 북한은 지금의 북한 지역에 중심지를 두었던 고조선이나 고구려, 고려와 그 뒤를 잇는 현재 북한정권의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며 단군릉, 동명왕릉 등을 크게 개건하였는데,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한반도 정치체의 정통성이 남한과 서울이 아닌 평양에 있다는 선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54] 다만 고대 국가는 고조선이라도 노예 소유 국가라는 등 모조리 깎아내리고 인민의 역사성을 강조할 때만 평양을 강조한다. 그래서 동학농민운동 같은 남부 중심의 민란도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만 왕은 시조 정도만 제대로 나온다. 보통 북한 교과서는 왕은 잘 안 나오고 장수, 예술가만 나온다.

5. 현재

5.1. 정치

평양시는 혁명의 수도인 것만큼 당을 옹호하는 사람밖에는 그 누구도 살 권리가 없습니다.
- 김일성 -

평양은 북한 당국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는 도시가 되었다. 북한의 평양시관리법은 ‘평양시의 환경을 개선하고 인구집중을 막는 것은 수도관리에서 나서는 기본요구'라고 밝히고 있으며, 식량과 전기 등을 우선 공급하도록 명시한다. 여기에 평양시 '주변지역'에서 '중심지역'에 거주하려는 공민까지 당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

특히 '중심지역'은 평양 내 거주 허가 외에도 중앙행정기관인 내각이 관여하는 여러 특혜가 부여되는 곳이다. 대놓고 평양시관리법에서 "주민과 도시환경을 특별히 관리하기 위하여 정한 지역"이라고 명시한다. 중구역 종로동에 있는 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55], 한국에서는 '장대현'이라고도 불리던 고개가 있던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정한 지역이라고 한다. '주변지역'에는 보호지대와 평양 내의 '위성도시', 농촌지역이 속한다. 지방과 평양 뿐만 아니라, 평양사람끼리도 차별이 있는 셈이다.

중심지역의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주변지역으로의 인구집중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며, 농촌지역도 중심지역을 고려해서 지정된다. 보호지대도 중심지역의 환경을 보호하고 주민들의 문화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지역이다. 공해를 일으키는 시설, 차량, 보일러도 '중심지역'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 중심지역 근방의 한국의 '구'로 비유되는 구역을 '중심구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중심지역에서도 조금만 떨어져도 나름 중심구역으로 인정받는 평천구역 같은 곳에 있는 평양화력발전소, 평천오수정화장 같은 곳 근처는 미세먼지(사진)와 악취가 심하다. #

본래 북한의 행정구역 책임자는 시, 도, 군 당 책임비서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2016년 5월 제 7차 당대회 이후 당 위원장으로 직함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2021년 1월부터 다시 책임비서로 직함이 변경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평양에 거주 중인 사람들은 핵심계층~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의 충성도가 높은쪽에 속하는 사람들로, 평양시민증을 가진 인민은 타 지역민과는 차원이 다른 특혜를 주고 있다. 이런 성분보다는 충성도가 더 중요해서, 핵심계층이라도 충성도가 낮다고 판명되면 쫓겨나며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도 살 수는 있다. 일례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모란봉 클럽 탈북인 패널 토크를 보다보면 평양 출신과 그 외 지방 출신 출연자들의 배경지식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똑같은 주제로 자신의 경험담 이야기를 하다가도 서로가 "그랬어요?"하며 놀라는 경우도 부지기수. 그나마도 일반 탈북민들이나 전공자들이 보고 욕 할 정도로 대본 따라 가는 프로그램인데도 그렇다. 사실상 서로 다른 나라나 다름없는 수준.

북한의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양, 특히 '중심지역'은 북한에서 최고의 부촌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지방 사람들은 포상휴가를 받거나 수학여행을 갈 때에나 방문하는 수준. 평양은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특권층 도시이기 때문에 일반 북한 주민들은 사는 게 쉽지 않은 데다가 출입도 쉽지 않기 때다. 갈 돈도 없을 뿐더러 평양시 여행증을 받는 건 타 지역 여행증 받는 것보다 수 배는 더 어렵다. 그만큼 평양은 북한 당국이 간판으로 내세우는 도시이기 때문에 북한 전국 인민들의 피땀을 모아서 평양 꾸미기에 공들이고 있다.

일단 평양시민들은 도를 넘어가는데 제약이 심한 타 지방과 달리 그나마 다른 지방을 여행할 때 북중 국경지대, 휴전선 인근, 자강도 일대를 제외하고 통행증이 필요없고, 평양 중심지역은 생필품과 수도/전기 공급 제 1순위이며, 인트라넷이 그나마 공급되는 곳이다. 인터넷은 외국인이나 정부가 외부 동향을 확인할 경우에 제한적으로 허용된다.[56] 다만 라디오 청취는 불법이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의해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적발만 되어도 사형이라고 한다. # 자가용 소유가 거의 불가능한 타 지역들과는 달리 평양에선 자동차가 생각 외로 많으며 출퇴근 시간때에는 교통 체증이 있다.

이렇게까지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1972년 김일성 유일체계가 확립되고 평양이 혁명의 수도로 격상되면서 충성도가 낮은 주민들을 타 지역으로 쫓아내었기 때문이며 그만큼 감시도 심한 곳이라, 불법 체류자 등을 잡아내는 숙박검열이 다른 지역보다 잦으며, 북한 당국의 규범에서 벗어난 옷차림을 하는 등 충성도가 낮은 사람을 찾기 위한 다른 감시도 마찬가지다.

이는 뒤집어서 본다면 평양 거주민들의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은 타 지역에 비해 굉장히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도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소식 당시 조용조용한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평양 지역은 그야말로 난리법석. 다만 그만큼 중앙 정부의 집중적인 통제를 받기도 하여 신흥 부유층들이 인근의 평성시 등을 선호하는 현상도 최근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차별대우를 한다해도 다른 개발도상국의 도시보다 부족한 모습도 있는데, 전력난이 이곳에도 있다든가, 치적사업으로 지은 아파트도 날림 공사를 한다든지 동시대에 지어진 한국의 어느 아파트보다도 시설이 나쁘다는 주장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외부 정보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타 지방엔 이미 끊긴 배급으로 일종의 정치적 선전 효과의 대상이 되며, 외국과 비교하면 완화도 아니나 일부 제한 완화는 열심히 선전하기에 이런 대접이 어마어마하다고 느끼게 된다.

한국(남한) 국적의 사람이라면 통일부의 방북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북한과 관계가 없는 제3국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광이 열려있는 곳이다.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 우방국뿐 아니라 영국인이나 일본인 등 여러 서방권 국민들도 방문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오토 웜비어 치사사건 전까지는 미국인도 방문할 수 있었다. 사건 후 2017년 9월 1일부로 미국인의 북한 관광은 전면금지되었고, 북한 방문하려면 국익 관련이나 취재, 인도적 지원 목적이 있음을 미 국무부에 예외사례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비자가 필요하고 항공편 구하기가 까다로운 문제는 있지만[57], 패키지 상품은 물론 자유여행도 받아주고 있으며, 그들의 시점에서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혼자 다니는 것도 딱히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만약 평양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pyongyang[58]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셀 수 없이 나오므로 참고하도록 하자. 탈북자들의 유튜브에서도 평양에 살았던 사람의 증언까지 있으며, 이런 것은 정치 성향이 강한 유튜브[59]를 빼면 믿을만한 정보가 있으며, 북한이 보여주지 못하는 다소간의 사상적 이완도 언급한다. 한국 방송에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2018 남북정상회담 전후의 평양을 취재했다.

북한 관련 관광상품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이다. 북한 당국이 주민을 통제하는 것이 용이하고, 호텔 같은 인프라나 교통수단도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주 등장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지 다른 지역은 안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라는 관광사는 북한의 모든 도의 관광상품을 내놓은 적도 있다. # 북한도 관광업에는 열심이라 신의주 같은 곳을 무비자로 중국인에게 방문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개천, 해주 같은 신의주보다 개발이 덜 된 곳도 유튜브에 고려투어 같은 곳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2019년에는 양덕 온천, 원산을 개발하려다가 코로나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칠보산 같은 곳도 외국인에게 개방된 곳이다. 평의선, 부전군 문서를 보면 낙후한 북한 시골의 영상이 올라와 있으며, 혜산시에는 아예 강변을 따라 북한 흙수저들이 모여 사는 '하모니카 주택'이 있어 강 너머 중국에서 주된 촬영대상이 되지만 아파트 몇 채 세우는 것 빼고는 철거는 안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볼 수는 있는 지역이 숫자로는 적지 않다. 북한은 그냥 주민과의 대화를 막거나, 군사 시설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외국인들이 아무리 북한이 가난하다고 여겨도 내부적으로 안 알리면 정권 유지에 문제가 없다. 실제로 보여주지 않는 곳은 군사 시설이 많은 자강도[60], 개성이나 금강산을 제외한 휴전선 인근 지역 정도가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 등의 아파트는 골조는 건설부대, 나머지는 주민의 강제 동원과 '세외부담'이라는 강제적 부담금으로 건설된다는 주장이 있다. 기관이 중앙당 간부 출신의 돈을 받으면, 이 간부가 분양을 하여 기관에 낸 돈 보다 훨씬 큰 소득을 얻고, 이런 이윤에서 다시 김정은이 땅과 노동력을 주었다며 절반 이상을 떼 간다는 주장이다. #

흔히 평양의 이미지로 손 꼽히는 중심지역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평양 인구의 20~30%, 40~60만 정도이며 나머지 70~80%는 일반 노동자, 농민 등으로 지방도시 주민과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평양의 모든 시민이 특권계층이 아니며, 평양의 서민보다는 지방에서 좀 부유한 계층이 더 잘 사는 모습도 흔하다.[61] # 본평양 근교에는 교도통신, AP통신, AFP의 지부가 있는데, 여기서 취재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북한 사람이다. 평양 시내에서 군인은 기본적으로 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금지되며 부대가 이동할 때도 평복으로 갈아입게 한다. 평양시민은 외국인과 말을 많이 하거나 대응이 나빠도 비판될 수 있다. # 한국으로 치자면 방문객들에게 청담동 같은 부촌이나 강남역 일대, 여의도, 종로 같은 중심지구만 안내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진입은 통제하며, 그 주민에게 함부로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평양 골목의 사진도 있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남한의 1960년대 초(혹은 그 이하)를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반전세계(反轉世界)가 펼쳐진다. 게다가 평양의 행정구역은 서울보다도 두 배 이상 넓으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이 얼마나 많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62] 다만 그런 모습을 구경하려면 가이드의 매의 눈깔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점이 문제. 실제로 일본 언론 아시아프레스의 한 기자가 몰래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가니 상점에서는 어떤 백화점으로 가라면서 팔이 잡힌 채로 호텔로 끌려갔으며, 다시 몰래 나가니 한 남자가 "위험에 처하면 안 되니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며 또 호텔로 데려 갔다고 한다. 이건 신고 당한 것이라고 한다. #

그래서 북한의 잘 사는 모습은 평양 일부만 불과하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기도 한다. 북한에서 중심지역처럼 잘 사는 곳은 없어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인데, 북한 정치에 대한 반발심으로 저곳 아니면 모두 끼니조차 잇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방에도 평균적인 평양 시민보다 부유한 사람이 많으며, 탈북자의 경우 평양보다 못사는 함경도 북부 출신이[63] 많은데도 2016~2019년 경에는 90% 이상이 세 끼를 잇고 있다. # 이는 2000년 이전에 32.1%에 불과하던 것이다. 위성사진으로 봐도 동평양 쪽의 허름한 곳보다는 지방(사리원, 함흥 같은 내륙 포함)의 중견 도시 중심부가 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2020년 북중 국경인 혜산시 같은 경우에 여성의 경우 남한 기준으로도 살찐 사람이 유튜브 영상에 등장, 많은 사람이 중국이냐고 믿지 않으려는 바람에 편집자[64]가 같은 장소에 인민군이 걸어가는 모습을 올려 북한이 맞음을 증명한 사례도 있다. # 북한이 생각보다는 잘 살 때도 있다는 것이야 장사로 부업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65] 당연히 돈을 버는 사람 가운데서도 비만한 사람이 있는것은 당연한 것이고, 실제로 북한 전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활동 자체가 아예 불법[66]인데 그게 부패[67]로 검열이 무력화된 것이라는 증언도 많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특이한 증언도 새어 나오고 있다. 외부에 보여주는 정치의식마저 실제 평양시민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평양에서 2017년 탈북한 탈북자의 언급에 따르면, 뒤에 설명하듯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여론이 50~60대 사이에서도 흔하고, 그 아래 세대는 더하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의 정수분자(精粹分子, 어떤 사회나 조직체에서 가장 우수하고 기본 주축이 되는 사람.)’, ‘김정일주의 정수분자’는 20대에는 없다고 한다. ‘국가가 어떻든 내 입만 굶지 말자, 내가 잘 먹고 잘살자’는 인식이 삶을 지배한다고 한다. 학교 다닐 적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를 열심히 공부했으나 다 헛소리로 여긴다고 한다. 다만 이건 어른들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10대가 더 심해서, 김정은 때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면 나중에 먹힌다는 인식도 강하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 젊은 세대는 사상적으로 이완된 모습도 보인다. # 당국에서는 이런 외부 문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약 사범보다 중대하게 여겨 감옥에 넣으려고 하지만, '걸리는 놈이 머저리'라는 말이 돌 정도로 이런 문화가 퍼져 있으며, 심지어 "김태희 이민호 장나라 팬이 평양에 특히 많다."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옛날처럼 무조건 충성은 안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지, 위와 같은 주장에서도 아직은 정치적으로 과거에 머물러있거나 그 잔재가 남은 사람도 많다고 주장한다. 노인, 노병 같은 경우는 흔히 알려진대로 충성심이 강하다고 한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학생 이하의 나이대에서는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려고 애국심으로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한 명도 없으며, 심지어 당국의 코로나 환자가 없다는 주장을 믿지 못하기도 하지만, 주부 같은 경우에는 배급을 주고 생활을 좀 개선시켜주면 농촌에 동원시켜도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5.1.1. 역대 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5.1.1.1. 책임비서/당위원장
5.1.1.2. 인민위원장

5.2. 경제

해외 관광객이 촬영한 2017년 4월 경 평양시내의 모습
흔히 생각하는 북한의 모습보단 생활상에 여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 특히 본평양 일대와 그 밖의 지역의 생활 수준은 눈에 띄게 차이가 크며[68], 2017년 현재 평양 시민, 특히 본평양 지역 주민의 생활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중산층에 준하는 수준이다. 2019년 한국 역도 선수들이 평양에 가서는 '90년대 한국 모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실제로 평양 시내의 식당들에는 매일 저녁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며, 북한(평양)내에서 대한민국의 고급 백화점 위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류경관(구 해당화관)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외화로 판매함에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데다가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고층건물도 크게 늘고있다. 평양시민도 욕하지만 대성백화점 같이 돈주나 고위 간부를 위한 곳은 샤넬페라가모 같은 진짜 명품을 팔기도 한다. 대북제재를 뚫고 밀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

주성하 기자는 평양에서도 상위 1%와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주말에 3명이 1,000유로, 한화 130만원을 하루에 탕진하기도 한다고 한다. 보통 즐기는 술은 50유로짜리 스카치 위스키라고 한다. 이 부자는 한국 사람들도 이건 믿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사권에 관여하여 뇌물을 받아먹는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한 번에 1만 달러를 받는 경우도 있어 굉장히 잘 산다. 백화점은 비싼데 상설 시장 중 평양에서 가장 큰 통일거리시장에서 밍크코트도 팔아 여기서 명품을 산다고도 한다. #

특히, 평양에는 2010년대 들어 헬스클럽과 같은 사회 체육 시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평양에 한정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평양 내부를 촬영한 영상에선 살이 찐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북제재 속에서도 살까기 열풍이 분다고까지 할까. #

아무튼, 이렇게 평양 시민에 대한 특별한 대우 때문에 북한사람들은 평양에서 살고 싶어서 안달 한다. 탈북자들도 과거 습관 때문에 남한도 북한 같은 줄로 생각해 정착 초기에는 서울 거주에 매우 집착한다. "북한에서는 피양가고 싶어서 병아리도 피양피양 하고 운다."나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평양 공화국과 지방공화국으로 나뉘어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2017~2018년경 호황기 기준 평양의 일부 방 5개짜리 최고급 아파트들은 시세가 2억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4억 아파트까지 있다고 한다. 인구가 적은 이상 서울은 남한 수준으로 경제가 발달해도 못 따라잡아 인천, 대구 급의 도시와 비교하면 적절한데, 호황기에는 2017년 동시기와 비교해서 좋은 아파트는 절대 못사지만 대구 수성구 중위가격 아파트를 살 수는 있었다는 것이다. ## 가장 비싼 아파트는 북한의 소득수준을 생각할때 북한에서 2~4억 원은 정말 엄청난 거액이며, 실제로 명품도 사는 극 부유층이 사는 곳이다. 평양 주변과 비교해도 56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은 집값이 폭등하고 북한은 폭락하여 다시 넘보기 힘든 격차가 발생했다.

공식 경제비중은 13.3%, 비공식 경제비중은 86.7%로 파악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했다. # 평양도 부패가 만연하며, 잊을 만하면 들이닥쳐 검열을 한다. 돈을 찔러달라는 뜻이다. 반대로 돈만 많으면 평양처럼 살기 좋은 곳도 없다. 돈을 무한대로 찔러줄 수만 있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봐야 한다. '불법'적인 사업이 많은데, 대포폰으로 단속을 피해야 한다. 권력기관도 부패하여 대포폰도 잘 만들어진다고 한다. #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남한의 불법과는 다르다. 후진국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경제시스템의 효율적 운영을 막는다. 가령 북한 같은 경우에는 사업을 크게 벌이거나, 자본주의적 경영을 하는 사업을 꾸리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규제가 뇌물을 통해서 무력화되어 경제가 그나마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국에서도 법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아직 남은 경우가 있지만, 북한이 이것이 매우 심하다. #

그리고 평양의 1인당 GDP가 $2,700 내외로 지방들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의 GDP보다 10배 이상 낮으며, 남한의 1986년도 GDP보다 낮은 수치다. #. 이집트보다도 낮다. 한마디로 상위 10%만 모아둔 도시가 이미 우리보다 30년 이상 뒤쳐져 있다는 말.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아는 제법 잘 사는 평양의 모습은 평양 내에서도 극히 일부라는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숙명여대 곽인옥 교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평양 중심구역에서조차 한 달에 1,000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15%요, 100달러 미만 버는 사람도 중심구역 주민의 26.7%라고 한다. # 한국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110~120만원 정도 벌면 2015년 한국에서 맞벌이를 해도 가구소득 하위 20%인 235만원이 될까말까 한다.

경제 수준이 높아 북한 내에서도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화된 곳 중 하나라고 한다. 2017년 기준 평양 출신 탈북자의 언급에서는 '책임자 동지'라는 사장이 종업원을 고용하고, 해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탁구장과 빵 생산, 휴대전화 판매 등 개인사업을 통해 수입이 많을 때는 월 1,500달러(한국 돈 170만 원)를 번다고 한다. 일정 금액을 여러 사람들과 투자하여, 그 지분에 따라 수익을 나눠가진다고 한다. 평양 시민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북한이 발전하려면 개혁·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라는데, ‘중국식 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50, 60대 어른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 때는 주체사상이 약화되었어도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김정은을 지지했다고 하였다. 호텔이나 모텔은 없는데, 커플을 위한 집을 빌려주는 서비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또한, 재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의 주택을 두고 투자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주택을 사두면 재개발 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 평양에서는 고층보다 저층이 선호된다. 승강기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전기 사정 탓에 자주 멎어 고층에 살면 힘들다. 재개발이 유력시되는 곳에 집을 사둔 평양 사람들은 당국이 다음 개발 지역을 선정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

그러나 대북제재 여파로 2019년경부터는 경기 침체가 심하다고 한다. 평양의 집값이 거의 반값이 되었으며, 택시회사가 있는데 사납금[69]을 못내서 자살한 택시기사가 있다는 보도가 있다. # 고소득층이 대북제재의 타격을 입어, 이들이 주로 사용할 수 있었던 택시도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납금이 하루에 80~130달러로, 한국 택시회사도 이 당시 사납금이 하루 110달러(13~14만원 가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다. 불황에도 깎아주는 법은 없다고 한다. 2018년만해도 사납금을 납부한 뒤에도 50~100달러(5~11만원)를 택시기사가 가져갈 수 있었다는 언급이 놀라운데, 월 26일 근무를 가정하면 130~270만원 정도를 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에서는 2018년 기준 서울시 법인택시 평균 총수입이 217만원이라고 한다. # 북한치고는 꽤 고소득이라 그만큼 인기 있던 직업이었다.

다만 북한의 시장경제란 것이 제도적인 장려가 있기 보다는, 주민들이 알아서 자본주의를 터득한 것을 조금씩 허용한 것이라 시장경제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보호장치가 부족하다. 이 사례에서도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의 택시회사가 평양의 사업을 독점하려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2020년경부터는 코로나19, 수해, 대북제재의 삼중고로 극심한 불황 상태일 것으로 추산된다. 방역을 한다고 그동안 어느 정도의 허가가 있던 도 간의 이동이 거의 막혔으며, 중국으로부터 수입마저도 전년대비 4~5분의 1 가량으로 줄었으며, 지방도 피해를 입어 평양에서 가져갈 것도 줄었기 때문이다.

5.3. 교통

5.3.1. 도로교통

평양은 북한의 중심지로 각 지방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되었다. 현재 평양개성간 고속도로, 청년영웅도로, 평양순안간 고속도도로 & 평양향산간 관광도로[70], 평양원산간 관광도로, 평양강동간 고속도로가 평양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또한 구 평양남포간 고속도로[71]청년영웅도로 개통 이후 일명 강안도로라 불리는 일반도로로 격하되었는데, 대안, 천리마, 룡강 등 주요 위성도시를 커버해주지는 못하지만 서해갑문과 직결되는 이점이 있다.

한편 평양신의주간 고속도로가 현재 평양 서부로 계획되어 있다. 묘향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별개의 노선이다. 신의주시에서 압록강대교를 통해 선양시-단둥시간 고속도로 지선과 연결된다.

평양시내 가로망은 주로 본평양 및 동평양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평양시내에서 대동강을 건너는 다리는 총 6개가 있으며, 옥류교를 제외한 다리들은 모두 왕복 4차로[72], 옥류교는 왕복 6차로로 건설되어 있다. 원래 북한은 철도를 수송의 중심으로 삼고 도로를 철저히 단거리 보조교통수단으로만 인식하였으나, 2000년대 중후반 들어 수도건설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도로망을 부쩍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양 도로교통수단의 중심은 무궤도전차와 시내버스이다. 그 밖에 시외버스도 운행 중인데, 평양에 위치한 터미널로는 서성려객뻐스주차장, 락랑려객뻐스주차장, 평양역버스정류장이 있다.

무궤도전차는 헝가리 및 체코제 일부 차량을 제외하고는 북한제 차량이 주로 운행되고 있다. 평양의 무궤도전차는 크게 련못, 서평양, 평천, 문수에 무궤도전차사업소를 두고 있으며 련못사업소에 역전대대와 룡성대대, 서평양사업소에 모란대대, 문수사업소에 사동대대가 각각 배속되어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평양의 무궤도전차 노선은 다음과 같다.
  • 련못무궤도전차사업소
    련못동~룡성
  • 서평양무궤도전차사업소
    서평양역~서포
    서평양역~평양역
    개선문~황금벌역
  • 평천무궤도전차사업소
    화력발전소~서평양역
  • 문수무궤도전차사업소
    문수~평양제2백화점
    문수~락랑
    대동강동~평양제1백화점

무궤도전차는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특성상 매연이 없고 소음이 적은 점은 유리하지만, 일단 북한의 열악한 기술로 제작한 차체의 노후화도 심각할 뿐더러 북한의 전기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73] 멈춰서기 일쑤. 이렇게 무궤도전차 운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전기가 없어도 운행 가능한 일반 버스에 점점 비중이 실리고 있다.

평양의 시내버스 운행은 제1~4 려객 자동차사업소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파악된 평양의 시내버스 노선은 다음과 같다.
  • 북평양권(평양제1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대성산~강동
    대성산~삼석
    대성산~모란봉
    대성산~미림
    대성산~팔골
    련못동~과학1동
    련못동~순안
    련못동~평양역
    룡성~미림
    서성~룡성
    서성~력포
    우의탑~산업동
  • 동평양권(평양제2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대동강동~대동문
    대동강동~미림
    대동강동~평양제1백화점
    대원리~력포도자기공장
    사동~대동문동
    선교~평양역
    선교~평양제1백화점
    송신~장진
    문수~대보동
    문수~금수산태양궁전
    정백동~평양제2백화점
    탑제동~대동강역
  • 남평양권(평양제3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락랑~대극장
    락랑~대보동
    락랑~산업동
    락랑~원암리
    락랑~전승탑
  • 서평양권(평양제4려객자동차사업소 추정)
    광복역~평양제2백화점
    만경대~대평
    만경대~부흥역
    팔골~련못동
    팔골~월로리

그러나 석유가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전기조차 부족한 판에 석유로 굴러다니는 버스가 제대로 다닐 리가 없다(...). 덕분에 선교 등 평양 외곽지역 버스 정류장들은 종종 이런 꼴을 보인다고 한다.

2011년부터 평양의 일부 전차와 시내버스에 교통카드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관광버스도 종종 보이지만 90년대에 일본에서 퇴역한 시외버스로 굴린다. 하지만 당연히 선전 차량만은 토요타 하이에이스 같은 최신형 신차만 굴린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d96d2161e5b12c7b9ab435f9b8e78b5.jpg
[74]
이 사진처럼 한국산 차도 꽤 돌아다니는데 이 차들은 대북지원 차원에서 넘겨주거나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중고차를 들여온 것이다. 이 버스는 슈퍼 에어로시티6분 30초부터 확인 가능하다. 한국 내수용 모델과 별 차이는 없어 보이나, 뒷면의 '슈퍼 에어로 시티' 엠블럼은 붙어있지 않다. 평양 이외에도 북한 전역에서 한국차를 꽤 볼수있다.

그 외에 고속버스를 담당하는 평양고속도도로려객자동차사업소와 시외버스를 담당하는 평양제1먼거리자동차수송대가 있으며, 평양시 밖으로 나가는 시외버스들은 기본적으로 붉은별역, 락원역, 광복역 등 지하철 종점역을 기점으로 하여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시외버스의 운행회수는 대부분 하루 1~2회 정도로 극히 적은 회수만 움직이기 때문에 북한 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써비차(서비스차)라 불리는 사설 여객운수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써비차들은 대부분 트럭 등을 이용해 사람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주는 서비스로, 지방민들이 합법적으로는 얻기 쉽지 않은 평양입경 허가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받아내준다고 한다. 대략 평양입경비용만 1 ~ 2만원 정도 들어간다는 듯. 재미있는것은 이 입경비용은 평양이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평양을 경유하기만 하는 경우[75]에도 얄짤없이 적용되며, 평양시내 구역이 아닌 강동군도 똑같이 까다로운 입경심사(혹은 높은 입경비용)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황해남도 지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서해갑문은 출입통제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써비차들은 이에 맞춰 다소 일찍 출발한다고 한다.

최근에 평양 시내의 자동차 수가 급증하면서 출퇴근 시간[76] 이외에도 교통 체증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으며, 주유소, 유료주차장도 늘고 있다고 한다. 기사

5.3.2. 철도 & 궤도 교통

평양은 철도교통과 수송전선의 중심지로서, 경의선(평의선·평부선), 평라선, 평덕선, 평원선, 평남선이 지나며, 평양역은 북한 철도의 중심역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특유의 이동 억제 정책[77]과 평양 진입 통제정책, 북한 철도의 노후화 등으로 인해 우리의 서울역과 같은 활기를 찾기는 힘들다. 다만 2013년 말 북한과 중국신의주- 평양 -개성에 이르는 고속철도 건설에 합의한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도시교통수단으로는 평양 지하철 2개 노선과 3개 궤도전차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지상 전철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주로 강동역, 순안역, 대평역으로 운행되는 통근열차가 와전되었거나,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아래의 평양 지하철 노선도로 인한 오해로 보인다. 뭐, 80% 이상 전철화가 되기는 된 북한 철도인데다, 통근열차로 운행하는 차량도 노후화된 평양지하철 전동차를 개조해서 운행하는 듯 하니, 광역전철 비스무리한 것이라 볼 수도 있긴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비유로는 부산의 도시통근열차경의선 통근열차 같은 계통인데, 열차를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 같은 걸로 쓴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그 통근열차라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 자세한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통근형 무궁화호 같은 물건일 수도 있고, 동해선 광역전철같은 물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개집표도 따로 하면서(=직환승 안 됨), 지하철과 똑같은 전철 전동차를 사용하고, 통근열차처럼 운행하고 배차도 딱 그정도 수준이지만, 광역전철 딱지를 붙이고 있는 동해선 광역전철과 같은 예시도 있으니까.

파일:attachment/평양직할시/41851.jpg

인터넷 상에서 자주 보이는 평양 지하철 노선도인데, 여기서 말하는 국철은 그저 말 그대로의 국철, 즉 국영 철도일 뿐이다.[78] 몇 가지 자잘한 오류, 이를테면 릉라도릉나도로 표기했다든가, 동대원이 있을 자리를 동대문역으로 표기했다든가. 서포로 표기된 것 역시 련못에서 서포를 거쳐 룡성으로 나갈 경우 엄청 빙 돌게 되어 있어 정말 계획이 저럴까 싶긴 한데 서포를 찍어야 거칠 수 있는 룡문역이 표기되어 있으니 애매하다. 그렇지만 일본인이 계획선 내용까지 수집해 한글 표기로 이 정도 퀄리티의 노선도를 만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또 잘 보면 대한민국의 환승역과는 다르게 환승역에 2나 3을 붙여서 구분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을 카피한것으로 보인다.

노선도 자체만 본다면 또 특이한 점이 보이는데 다름 아닌 혁신선과 천리마•만경대선이 광복역과 부흥역을 통해서 직결이 되는 것처럼 표현이 되어 있다. 마치 우리나라 서울 1기 지하철 계획 당시의 4호선을 보는 느낌이다.[79] 하지만 이 역시 계획이 확실하다고 하기가 좀 애매하니...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위의 노선도에 나오는 것처럼 천리마선룡성구역 방면으로 연장할 계획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수립되었다고 한다.[80] 다만 련못동 이북에 무지막지하게 큰 수맥이 흐르고 있어서 터널을 못 뚫는다나(...). 이를 피하려면 결국 심도를 조정해야 할 텐데 핵전쟁에도 견뎌야 할 지하철을 얕게 파는 건 죽어도 안 할 테니 이래저래 안습.



트램, 즉 궤도전차는 원래 6.25 전쟁 직후 폐지되었으나, 1991년 기존 도시교통수단의 포화로 인해 재도입되었다. 현재 서평양역-락랑, 토성-문수, 만경대(송산)-평양역, 송신-주체사상탑의 4개 노선이 운행중이며, 전구간 표준궤로 운영중이다.[81] 지하철 이외의 교통수단들은 보안사항도 아닌지 북한에서 펴낸 지도나 지리지에도 당당히 표기되어 있다(...). 많은 도시들이 궤도전차를 도로 중앙에 설치하는 데 비해 평양 궤도전차는 송신-주체사상탑 노선을 제외하고는 가변차로 형태로 되어 있다.[82]

체코제 Tatra KT8D5K/T6B5K/KT4K/T4D/B4D 등이 운행 중이며, 이 중 KT4 차량 일부는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어떤 차량은 5만km 무사고마다 별을 달아 30만km를 무사고로 운전한 영웅차량이 존재한다고 한다. 저런 별 하나 못 달고 다니는 차량이 수두룩하니 얼마나 대단한 위업을 세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별 표시는 버스 등에도 도입하고 있으며, 간혹 가다 70년대에 서구 공산권 국가에서 수입한 차량 같은 경우에는 측면의 별이 30개(...)가 넘어가는 엄청난 버스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오래 썼다는 뜻. 2019년에는 저 동영상처럼 새 차량도 도입되고 있다.

이 밖에 김일성종합대학 앞에서 금수산태양궁전 앞까지 연결해주는 금수산선이 1996년 개통되었다. 이 노선은 특이하게도 1,000mm 협궤를 쓰고 있다. 이름에서도 보이듯 광명역 폐역 이후 궤도교통수단이 끊어져버린 금수산태양궁전의 셔틀 노릇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 차량은 취리히 트램에서 운용하던 4/4 1b 모델인데, 각각 1947년과 1954년에 제작되어 1995년에 퇴역된 차량을 1996년에 북한에서 이탈리아를 통해 들여온 것이다.참고자료 명색이 국조로 모시는 양반 참배용 노선인데 이런 닳을 대로 닳은 차량이나 끌어다 써야 했던 당시 북한의 사정에 그저 안습. 물론 체코의 공업 수준은 동구권 1위 겸 세계적인 수준으로, 구 오스트리아 제국의 산업 생산량 75%를 차지했던 지역이며,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프랑스의 1인당 소득을 앞질렀던 적도 있었다. 아마 오래된 차량이라도 쓸 만하기 때문에 투입된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걸 아직도 쓰는 다른 나라들은 신형 차량이 더 많다.

그런데 2015년 9월 들어 궤도전차가 철폐되었다는 설이 돌고 있다. 대동강 이남 구간이 잘렸으며, 해당 구간은 노선버스로 대체되었다.

5.3.3. 수상교통

북한당국이 도로를 투자하기에는 돈이 영 없기 때문에 별 다른 인프라 투자 없이도 운영 가능한 수상운송이 나름대로 발달했다. 평양시 해운부 수상운수관리국에서 운항을 담당하고 있으며, 선착장은 만경대, 미림, 평천, 락랑구역 금대리, 강동군 맥전리 등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한강 유람선과 비슷하게 옥류 1~3호까지 운영되고 있다. #
  • 평양 주변 교통
    • 금대~평양
    • 금대~남포
    • 만경대~강남군
    • 미림~맥전
    • 평천~두루섬
    • 평천~송림
  • 평양 내 교통
    • 김일성광장-주체사상탑
    • 김일성광장-5월1일경기장
    • 옥류교-대동강다리
    • 김일성광장-과학기술전당

5.3.4. 항공교통

북한 국제공항인 평양순안국제공항이 북쪽에 있다. 정확한 명칭은 평양국제비행장.

일단 국내선은 청진시, 해주시, 함흥시, 개성시, 강계시, 길주군, 남포시, 삼지연시, 신의주, 원산시으로 운행한다고는 되어 있는데#, 실제로 민간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며 현재는 모든 국내선 항공편이 부정기 운항중이다. 다만 삼지연시-평양 구간은 이따금씩 중앙 경축행사가 있을 때 량강도 대표단을 수송하곤 한다. 간혹 라선시 대표단도 행사에 따라 열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청진비행장이 소속되어 있는 함경북도 대표단은 얄짤없이(...) 청진청년역에서 열차를 타는 것을 봐서는 청진이 아닌 다른 비행장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비용 문제 때문에 라선시 대표단은 비행기를 타지만[83] 정작 함경북도 대표단은 비행기를 못 타는 안습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국제선은 현재 베이징시, 상하이시, 선양시, 블라디보스토크를 운행 중. 외항사는 유일하게 중국국제항공은 베이징-평양 노선이 하계 기간에만 취항한다.[84] 중구역 해운동에 위치한 조선국제려행사와 평양국제비행장 사이에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대원 이북지역에 공항이 있었으나 이 지역은 현재 당창건기념탑, 동평양대극장, 문수유희장, 평양산원 등이 들어선 동평양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사동구역 미림동에 미림비행장이 있으나 활주로 규모 자체가 워낙 짧아서 제대로 된 항공기능은 순안이 담당하고 현재는 주로 열병식 비행 연습장용 정도로 이용하고 있다.

5.4. 문화

옛날부터 평양은 강계시, 진주시와 더불어 '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이와 관련해 "여자는 서울 말씨에, 평양 인물에, 강원도 살결이라야 한다."[85]라는 속담도 있다. 또한 평양 사람들이 대체로 인심이 좋다는 것을 나막신에 빗대어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이라는 속담도 있다. 함경도 계열 사람들과 달리 거절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말해야 한다는 완곡어법이 존재한다는 평이 있다. #

북한의 문화 활동은 기본적으로 군중문화고, 또 모든 예술 단체가 국가 아니면 당, 혹은 군 같은 집단에 소속된 공립 단체다. 그리고 이것들의 중심지도 당연히 평양이라서 문화 인프라는 상당히 다양하고 대규모로 갖추어져 있다.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조선인민군협주단, 조선국립교향악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 은하수관현악단 등 북한 내 1급 예술단들은 모두 평양을 본거지로 하고 있고, 각자 전용 극장이나 콘서트홀을 갖고 있다.

다만 이들 시설도 대부분 북한의 리즈시절이었던 1960~70년대에 지어졌고, 그 뒤로는 고난의 행군으로 노후화가 심해졌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지 2000년대 이래 순차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해 현대적으로 개건하고 있다. 시설들은 건축 문단에서 나열한다.

평양에는 이런 국가 주도의 문화 말고도, 비공식적인 문화도 삶의 일부다. 태영호 같은 인물은 한국 문물의 범람으로 드라마를 북한이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아이들이 서울 말투를 쓴다고 하였다. 기 들릴이 방문한 2003년에 비해 린지 밀러가 방문한 2017~2019년은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든가, 사진도 V자를 하며 찍는 등 외부 문물이 좀 더 들어오고 여성이 남편을 게으르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생기는 등의 차이가 있다.

비록 지방보다 검열 시도가 강하여 대놓고 북한 당국이 싫어하는 문화를 즐기지는 않는다지만, 경제력, 도시화로 역설적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 사상과 맞지 않는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평양 주민들의 삶에는 이런 문화가 더 영향력이 클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탈북자들은 흔히 더치페이 같은 건 문화충격이라고 하며, 심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묘사한다. 그러나 평양의 중산층 이상으로는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문화가 무너진다고 한다. 연상 연하 커플이 늘어나고, 경제력 있는 여성들이 데이트 비용을 책임지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 한국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있으며, 권력 기관과의 유착으로 이런 것의 단속이 무력화되는 일이 벌어진다. 단속이 심해지면 잠시 주춤해지다가 음지에서 다시 퍼지는 현상이 이어진다. 시장에서 CD 같은 걸 팔다가, 팔지는 못하니 아는 사람끼리 인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더 숨기기 쉬운 USB, SD카드 같은 것을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2020년 기준 수년 전부터 빼빼로 데이를 기념하는 경우가 생겼으며#, 현재는 지방의 일부 젊은이에게도 퍼진다고 한다. 중국이나 한국의 영향을 받아 경제력이 되는 계층을 중심으로 집에서 결혼식을 하던 풍습이 무너지고, '결혼식전문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음식도 이런 식당에서 해준다고 한다. 평양이 이런 추세가 가장 이르게 나타나고, 이런 문화가 지방에 퍼지는 중이라고 한다. ##

한편 고유 사투리는 평안도 방언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서북 방언'이라는 구분도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유래가 서울말에 가까운 문화어를 '평양문화어'라고 세뇌시키고 문화어가 아닌 말을 평양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대외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평양말'이 서울말과 매우 비슷하다는 주장, 평양말이 서울말과 다르다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이 도는 것이다. 사투리가 사라져가지만 '기다' 같은 표현은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서북 방언, 문화어 문서 참조.

5.5. 교육

마찬가지로 서울보다 주요 교육 시설의 집중 현상은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일단 김일성종합대학부터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김형직사범대학, 평양교원대학, 평양외국어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평양철도대학,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무용대학, 평양미술대학 등 분과 별 북한 최고의 대학교들이 몰려 있다. 재학생들도 어지간해서는 평양 시민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다가 지방에서 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정말로 드물다. 2010년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 개교되었다.

대학교 외에도 유치원과 소학교, 중학교 같은 교육 기관도 지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개중에는 김일성훈장이네 3대혁명붉은기훈장이네 하는 것들을 받고 엘리트 학교마냥 취급되는 학교도 있다. 당연히 평양 시민들 중에서도 웬만큼 빽있고 출신 성분 좋은 학생들만 다닌다고 보면 된다.

6. 건축

모든 것의 선전효과를 노리는 독재정권의 특성상 일단 권위주의적으로 큰 것과 특정 형상을 그대로 본따는 형태주의 건축물, 민족성을 강조하는 제관양식 건축을 엄청 좋아한다. 남한으로 유신이 반공을 강조하여 정치적 정당성을 얻으려 했던 자유센터나 독재와 북한을 의식해서 만들었다는 세종문화회관,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건축 양식이 북한에서 아직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독재라는 것을 놓고 보기에는 소위 서방의 자본주의 건축에 적대적이고 문화가 완벽히 통제되는 구 공산권 특성상 남한의 유신 독재시설 보다 더하다고 할수 있는데 평양의 거의 모든 공공 건축물들은 당의 주도로 지어졋고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유로운 동선이나 개인의 성향이 담긴 자유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보기 힘들다.

2009년경이나 그 이전부터 도심지의 건물에 대한 페인트칠이 진행되었다. 2015년경이면 파스텔 톤의 모습이고, 2018년 이후에는 러시아 아나디리 마냥 파스텔톤 내지 강렬한 색채의 페인트가 도시를 덮은 모습이다. ## 평양 건물이 무채색인 것은 2005년경까지 적용된다. 그래서 평양을 찍은 사진은 건물의 색을 통해 대강의 촬영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 평양만 이런 것은 아니고, 2010년대 후반의 경우 사리원시, 개천시 같은 지방도시도 색을 칠한 상태다.

현재 북한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평양 행정의 중심지이자 상류층 주거지인 사실상 강북지역에 몰빵되었다. 참고로, 평양 중심부에서의 건물 신축은 금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상하수도망 등의 인프라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2010년대 들어 평양에 고층아파트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소문일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북한에 대한 정보자체가 불분명한 게 많다보니... 이에 대한 설명으로, 사실 수도 공급도 잘 안되지만 그냥 짓고 본 것이며, 관리비를 걷어 발전기를 돌리거나, # 20층에서조차 그냥 물을 긷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

6.1. 공공시설


평양 시내에 그나마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6.2. 예술시설

6.3. 체육시설

6.4. 고건축 및 유적

평양 근교에 있는 것들도 포함.

7. 행정구역

파일:평양시 행정구역도.jpg
파일:external/oi58.tinypic.com/1zfc6o.gif 파일:external/oi62.tinypic.com/21kdukk.jpg
평양시 행정구역 전도 평양시 시가지 구역도
(단 이 위의 지도들에는 황해북도로 이관된 승호구역, 상원군, 중화군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신설된 화성구역이 나타나 있지 않다.)
2012년 발간된 북한에서 제작된 평양지도

7.1. 구역[90]

7.2.

7.3.[92]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정치적 이유로 평양에 편입한 사례. 즉 월경지이다.
  • 방현동(方峴洞)
    구성시 방현동. 북한의 미사일 관련 시설이 밀집해있는 곳으로[93] 2018년 2월 10일 평양에 편입되었다.

7.4. 행정구역 개편

2010년 하반기에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북한이 매년 펴내는 조선중앙연감의 내용에 의거하면 평양시에 속해있던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과 승호구역 등 남부 행정구역을 황해북도로 편입시켰다. 이는 기존 면적 대비 약 57% 정도가 줄어든 것. 북한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결국 평양 시민에게 더 이상 특혜를 모두 주지 못하게 되자 평양 면적을 줄여 평양 시민의 인구를 줄이자는 심히 괴랄한 의도로 추측하고 있다. 기사 1 기사 2 다만 지도를 보면 여전히 면적만으로는 평양이 서울보다 큰 상황.

다른 이유도 제기된다. 이 기사를 보자. 이런 방법을 쓴 이유를 보면 평양에서 쫓겨난 4개의 지역이 다소 외국인들의 눈에 거슬릴까봐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실제로 그 쪽 지역들을 보면 평양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도 사동구역, 력포구역 같은 동평양역, 송신역 근처 허름한 주택가를 포함한 구역이 남아 있으며, 이는 구글 어스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이 아니면 그냥 외국인의 출입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주된 이유는 전자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승호구역이 떨어져나간 것은 의문이 남는다. 승호구역은 평양시 내에서 승호 수용소라는 최악의 정치범수용소를 굴리던 구역이었는데 이 승호구역이 2010년에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승호구역이 평양시에서 떨어져나가면 외지인들의 승호구역 방문이 자유로워지는데, 승호구역에 1994년까지 정치범수용소를 굴려놨기 때문에[94] 이 승호구역을 평양에서 떨어냈다는 것은 북한 일반 주민들한테 승호 수용소에 대한 정보가 퍼질 리스크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1991년에 이미 까발려졌고, 정보통제도 100% 완벽한 것은 아닌데다 암시장과 연계된 돈주라 하는 신흥 중산층을 기반으로 외국의 정보가 역으로 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진짜 진작에 흔적까지 싹싹 다 지워 없앴을 수도 있다. 일단 승호 수용소의 폐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발언한 내용이 있는 시점은 1994년.

2011년경에는 강남군 전역을 다시 평양에 편입시키고, 2011~2012년 사이 또다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평성시의 일부 지역을 강동군에, 중화군의 일부 지역을 력포구역에 추가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 이 이후에도 관할구역이 크게는 안 바뀐 것으로 보이나, 위의 2012년 평양 지도와 2021년 력포구역의 경계가 남쪽이 약간 다른 것을 보면# 미세한 경계조정이 있을 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이후에도 동·리 급의 행정구역 변동도 잦아 매체에는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동을 평양시로 편입시켰다거나,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를 조성한 중구역의 경루동 신설, 화성지구 개발을 위해 룡성구역에서 화성구역을 떼어내 신설했다는 소식 정도만 제대로 나오는 수준이나 실제로는 미래과학자거리 일대에 '미래동'을 신설하는 등의 조치 또한 있던 것으로 보인다.

7.5. 과거 행정구역

아래 행정구역들은 2010년을 기점으로 황해북도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지역들은 평양시에 흡수되기 이전에는 모두 평안남도였던 지역들이다.

8. 남북통일 이후 전망

이하의 낙관론/비관론 문단에서는 평양시가 통일 후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느냐에 대해 다룬다. 전체적으로 평양은 북한의 수도라는 어마어마한 상징성 때문에 낙관적인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낙후지역의 거점을 개발하는 정책을 높으신 분들이 선호한다는 점에서 볼 때 평양은 이에 완전히 부합한다.

만약 현 대한민국 정부 주도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현재 남한의 행정구역 체계상으로도 최소한 평양광역시로 전환 또는 승격되거나, 행정구역 체계를 개편한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높은 위상의 행정구역으로 설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 정부에서 1997년 울산광역시를 마지막으로 광역시 난립을 막기 위해 광역시 승격 사례를 더는 만들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평양은 이미 직할시로서 광역시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북 5도 대표 중심지라는 위상 때문에라도 광역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 북한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 및 정치적 이유로 평양특별시가 되리라는 예상도 있다.[95]

8.1. 낙관론

평양특별시[96]라는 서울과 동급인 특별시가 될 수도 있으며, 평양광역시로 승격되어 대한민국의 8대 광역시가 되거나,[97] 정 아니면 부산과 함께 특별시-광역시 중간 단계의 (예시) "부산직할시" 및 "평양시"를 유지할 수도 있다.[98] 평양특별자치시 제안도 있다. [99]

평양 발전에 낙관적인 사람들은 최소 통일한국 제2의 도시, 최대 서울과 대등한 도시가 될 것임을 전망한다. 세계적으로 독특한(...) 도시인 현 평양 도심은 잘 보존해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고, 이쪽으로 자본이 몰려드는 한편 평양 인근의 드넓은 평야에 일산신도시, 분당신도시같은 신도시를 개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평양은 북한의 주요 기관들이 밀집되어 있는 만큼 북한에서 그나마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면 다른 지역을 개발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들 수 있다.

또한 도시를 개발할 때 대동강 남쪽으로 탁트인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서울, 부산처럼 이미 포화상태인 남한의 다른 도시들보다 개발 여력이 많이 남아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황해북도로 이전된 상원군, 중화군, 승호군 이 3곳 중 일부라도 다시 평양의 행정구역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더불어 오랫동안 북부지방의 요충지답게 서울만큼이나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북한의 수도로써 제대로된 고속도로의 대부분이 평양을 향해 연결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양은 이미 인구 300만 명 정도의 대도시[100]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노동력과 소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통일 뒤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제일 먼저 진출할 곳들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101] 애초에 인구 300만 명 정도의 대도시에 자본이 들어서면 몰락하기는 힘들다. 인구가 많은 곳에 인프라가 우선 배치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일자리 때문에 인구가 몰리고, 그만큼 경제력이 성장하고, 또 인프라가 들어서는 이러한 무한루프의 결과물이 서울 공화국이다.

한편, 서울특별시에 과하게 밀집된 인구를 분산하는 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그나마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인 데다가 평양이라는 도시의 네임드는 남북은 물론 해외에서도 잘 먹히기 때문에[102], 통일 이후의 북으로 진출하는 남측의 거주민들이 선호할 확률이 높다. 통일 이후에는 기존 북한 전역에 걸친[103] 개발이 요구되며, 쏟아져 내릴 공무를 처리할 공무원들도 필요한 상황이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만으로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무리이고, 이 때문에 좋든 싫든 간에 몇몇 남한인들은 이주가 불가피하다.

또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져 새로운 터전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이주 희망 지역 1순위인 곳이다. 물론, 북한 주민들은 아예 남한으로 이주하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의 삶이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든 남한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든 힘겨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2순위는 평양. 어쨌든 평양은 서울만은 못하지만 북한에선 발달된 도시다. 더군다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평양이 최고라는 인식이 상당하다. 단순히 경우의 수지만, 오히려 예상 외로 북한 주민들이 집값이 비싼 남한의 수도권보다도 평양을 선호할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못 해도 북한 주민들의 수도권으로의 이주 수요를 분담할 수 있는 도시이다. 또한 평양은 수도인 주제에 아직도 농지나 미개척지인 부분도 상당하다. 물론 실제로는 군부대인 지역도 있겠지만, 군부대도 결국 철거된 후에는 개발 대상이기 때문에 상관없다.[104] 이곳에다가 예전에 강남을 개발했던 방식으로 신도시를 건설해 놓으면 지금에 비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균형개발을 좋아하시는 높으신 분들의 특성상 평안권, 함경권, 황해권, 북강원권에 거점을 설정하고 인프라를 확충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우선 순위로 유력할 도시는 평양이다.

무엇보다 평양은 관광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평양은 적어도 고조선의 후기 수도로 추정되며, 낙랑군의 치소 조선현이였던 걸로 추정되며, 고구려의 후기 수도[105]였으며, 고려, 조선시대 때 평양부라는 명칭과 지위를 누리며 성장한 제2의 도시였다. 그리고 북한 정권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평양은 여러 역사적인 상징성이 크다. 아쉽게도 과거의 흔적이나 유적들은 6.25전쟁 당시 싸그리 가루가 되어버렸지만... 또한 평양냉면과 평양의 한정식 등 각종 요리들은 예로부터 전주와 양대산맥을 이룰 정도였으며 현 남한에서도 굉장히 유명하다. 이러한 콘텐츠를 잘 살려서 관광도시로 내세우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양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높기 때문에 기타 지역보다 투자를 우선 받을 확률이 충분하다. 평양의 입지가 라선, 원산에 비해 밀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수도였던 데다가 그로 인한 북한 사람들의 동경, 남한에서까지 가지는 존재감, 그리고 역사성[106], 그간의 정치적 입지가 주는 상징성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곧, 평양의 발전이 북한의 발전으로 인지될 것이다. 그나마 상징성이 강한 개성도 평양에는 상징성이 밀린다.[107] 괜히 미래의 북한의 경제발전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다.

한 가지 잘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 있는데 통일 이후 평양 메트로폴리스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사실 중 하나로 평양은 평야에 있다는 점이 있다. 이 점은 산지로 둘러싸인 서울 수도권보다 훨씬 강력한 이점이 되는데, 실제로 교통공학/도시공학 전공자들이 평양 배후지역을 서울 수도권처럼(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위례, 운정 등등) 도시개발을 진행하는 것을 가정으로 평지에 가능한 권역을 시뮬레이션했더니 최대 300만 명 이상 추가 수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광역전철을 순환선 포함 한 7개쯤 지어야 한다. 정부에서도 이 점은 인지하고 있기에 적화통일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남으로 내려오는 인구결집을 막기 위해 정책적으로 평양의 분산수용을 밀어줄 가능성이 높다.

8.2. 비관론

통일 뒤에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하기 좋은 곳은 이때까지 휴전선과 가깝다는 이유로 개발에서 소외되었던 경기도 북부 일대와 개성[108]이 더 매력있는 곳이다.[109] 특히 파주고양의 개발이 비교적 최근에 되었고 경기남부보다 개발이 띄엄띄엄되었다는 점을 보면, 오히려 일산-운정 확장이 더 쉬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중국/러시아 접경 지대인 라선시강원도 (이북 5도함경남도) 원산시, 신의주시 등과 같이 교통이 편리한 곳이 우선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통일 후 북한의 인구가 남한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고 남한의 인구 역시 구 북한 지역으로 가는 것을 반길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인프라 개발 일자리 따라 북한 가는 사람은 있을테고 북한에도 잔류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현재로선 남한으로 가는 북한이주민보다 많을 확률은 적다.

인프라가 갖춰져있기는 하나 북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개발했다는 점이 독이 될 수 있다. 근래에는 '속도전'을 핑계로 '빨리 지어서 우리의 위상과 힘을 과시하자'라는 식으로 지은 건물 때문에 일들이 터지고 있다. 어쩌면은 평양에는 수백 채의 삼풍백화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정부 주도로 안전 점검을 통해 전부 재건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기존 시설까지 다 갈아엎느라 철거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

평양을 통일한국의 새 수도로 지정하는 것 역시 정치적인 문제가 산재해 있다.

심지어 평양은 경주와 부여 등과 같이 과거에 왕도였던 곳으로 매장문화재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마 통일이 된다면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발의 제한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독일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통일독일이 그렇게 구동독 지방의 발전에 투자를 했고 그로부터 30년 넘게 지났음에도 여전히 구서독 지방의 도시들과 위상 및 경제력 차이가 무척 크다. 베를린 역시 반쪽은 서독의 관리를 받았음에도 경제적 패권은 구서독 본토 지방에 있다. 그런데 평양은 그나마 베를린처럼 남한의 관리를 받지도 못했고 북한은 동독보다도 환경이 훨씬 열악하며 평양이 베를린과 같은 분단 이전의 수도였던 것도 아니라 상징성도 베를린에 훨씬 밀린다. 따라서 평양 지방이 무조건 부산을 제치고 서울과 경쟁할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낙관론으로 보여지며 실제로 대구, 인천은 커녕 광주, 대전, 울산과 같은 100만대 말단 광역시조차도 넘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9.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6d8d4c>
파일:평안남도 휘장(이북5도위원회).png
}}}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or: #181818"
파일:평안남도 평양시 휘장.svg
평양시
파일:진남포시 상징.png
진남포시
파일:평안남도 대동군 휘장.svg
대동군
파일:순천군 상징.png
순천군
파일:맹산군 상징.png
맹산군
파일:양덕군 상징.png
양덕군
파일:덕천군 상징.png
덕천군
파일:성천군 상징.png
성천군
강동군 파일:중화군 상징.png
중화군
파일:용강군 상징.png
용강군
영원군
파일:강서군 상징.png
강서군
파일:평원군 상징.png
평원군
파일:안주군 상징.png
안주군
파일:개천군 상징.png
개천군
명목상 도청소재지 : 평양시 }}}}}}}}}

파일:평안남도 평양시 시기.svg
[110]
파일:평양시.jpg

대한민국에서 북한 지역 행정구역은 광복 이후의 행정 구역 변경을 반영하지 않으며, 광복 직후의 것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시내 지역에는 일본인들이 붙인 일본식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일부 지명 옆에 적힌 일본어는 일본인들이 부르던 이름인데,큰 도시 시가지에 붙은 일본식 지명은 일본인이 직접 지은 지명인지라 정말 일본 국내에서 쓰이는 경우와 똑같이 읽었으며 개중 훈독으로 읽는 지명이 많았다. 1946년 미군이 만든 지도에서 왼쪽 아래에 있는 범례 칸에 한국식, 일본식 발음이 병기되어 있어 이것으로 일본식 발음을 알 수 있다. 취소선을 친 발음은 100% 확실하지는 않은 것이며 주석으로 부연설명한다.(고로 취소선 필터 적용 시 내용 이해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끄기 바란다) 또한 이러한 일본식 지명은 원래 '정'(町, 마치 or 초)으로 끝나던 지명이다. 예를 들면 산수동은 산수정(山手町, 야마테마치)으로.

광복 당시 기준 91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시청 소재지는 산수동이었다. 평양에서는 일본인 거주 지역은 '정'(町), 조선인 거주 지역은 '리'(里)로 구분했으며, 일제 당국이 명칭을 정으로 통일하려 하자 반대 의견이 크게 일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국내의 오래 된 도시들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가(街)'[111]로 끝나는 법정동이 하나도 없긴 한데, 대구의 행정(幸町)을 태평로1가, 금정(錦町)을 태평로2가로 바꾸었듯이 정상적으로 평양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행정동 법정동·리
기림동 경제리(鏡齊里)·기림리(箕林里)·능로리(陵路里)·신창리(新倉里)·아청리(衙廳里)·박구리(磚九里)·진향리(眞香里)
남문동 남문동(南門洞)·대화동(大和洞)·산수동(山水洞)·수동(壽洞)·욱동(旭洞)·천동(泉洞)·항동(港洞)
남산동 교구동(橋口洞)·남동(南洞)·남산동(南山洞)·동동(東洞)·죽원동(竹園洞)·팔천대동(八千代洞)·행동(幸洞)
문수동 대신리(大新里)·문수리(紋繡里)·불당리(佛堂里)·오야리(梧野里)·율리(栗里)·의암리(衣巖里)·장진리(將進里)
미산동 감북리(坎北里)·내리(內里)·미산리(嵋山里)·상흥리(上興里)·오촌리(鰲村里)·용흥리(龍興里)·청암리(淸巖里)
사동 미림리(美林里)·빈리(蘋里)·사동리(寺洞里)·석암리(石巖里)·정백리(貞柏里)·조왕리(助王里)·토성리(土城里)
상수동 경상리(慶上里)·본동(本洞)·상수리(上需里)·설암리(薛巖里)·앵동(櫻洞)·진동(賑洞)·창전리(倉田里)
서성동 능라리(陵羅里)·당산리(堂山里)·동대원리(東大院里)·서성리(西城里)·인흥리(仁興里)·채관리(釵貫里)·평천리(平川里)
선교동 구정리(九井里)·대타령리(大馳嶺里)·봉수리(鳳岫里)·서내리(西內里)·선교리(船橋里)·신리(新里)·양각리(羊角里)
수옥동 계리(鷄里)·대찰리(大察里)·수옥리(水玉里)·순영리(巡營里)·이향리(履鄕里)·장별리(將別里)·하수구리(下水口里)
신양동 감점리(甘店里)·경창리(景昌里)·관후리(舘後里)·상수구리(上水口里)·신양리(新陽里)·이문리(里門里)·죽전리(竹典里)
장지동 구동창리(舊東倉里)·송신리(松新里)·신동창리(新東倉里)·장지리(長池里)·장천리(將泉里)·추을리(秋乙里)·칠산리(七山里)
황금동 빈동(濱洞)·서동(西洞)·암동(巖洞)·약송동(若松洞)·유동(柳洞)·홍매동(紅梅洞)·황금동(黃金洞)

이들 법정동의 대부분은 북한 행정구역상 중구역에 몰려 있는 터라, 이들 지역은 중구(서울특별시)/행정 문서에서 하듯이 해당 위치에 무엇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광복 당시 없던 것은 이탤릭체로 표기) 평양은 6.25 전쟁 이후 한 번 석기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망도 광복 당시와 달라져서 대조에 어려움이 있다.

※ 여러 문헌들에서 평안남도청 소재지가 상수리로 되어 있는데, 산수동으로 옮겨갔다. 상기 미군 제작 지도에서도 Provincial Office, 즉 도청이 29번(산수동)에 있으며, 1927년 신문기사에서 산수동의 일본인 주택에 불이 났는데 평남도청이 가깝다는 내용 등이 있다.
  • 산수동(山手洞) (야마테마치) - 시청 소재지[112]
  • 항동(港洞) (미나토마치)
  • 수동(壽洞) (코토부키마치)
  • 남문동(南門洞) (난몬초)
  • 대화동(大和洞) (야마토마치)
  • 욱동(旭洞) (아사히마치)
  • 천동(泉洞) (이즈미초)
  • 남산동(南山洞) (난잔마치) - 인민대학습당
  • 팔천대동(八千代洞) (야치요마치)
  • 행동(幸洞)[113]
  • 남동(南洞) (미나미마치) - 평안남도상품진열소
  • 동동(東洞) (히가시마치)
  • 죽원동(竹園洞) (타케조노초)
  • 교구동(橋口洞)[114]
  • 홍매동(紅梅洞) (코바이마치) - 평양역 소재지
  • 약송동(若松洞)[115]
  • 서동(西洞) (니시마치)
  • 황금동(黃金洞) (오곤마치)
  • 암동(巖洞) (이와오마치)[116] - 창광산(48.7m)
  • 유동(柳洞) (야나기마치)
  • 빈동(濱洞)[117][118]
  • 진동(賑洞) (니기와이마치)
  • 본동(本洞) (혼마치)
  • 앵동(櫻洞) (사쿠라마치)
  • 상수리(上需里) - 만수대의사당
  • 설암리(薛巖里)
  • 창전리(倉田里) - 일명 '만수대'라는 언덕이 있다. 창전리 일대가 만수대이고, 상수리는 창전리 남쪽 동네로 만수대의 아랫단이다.
  • 경상리(慶上里)
  • 경제리(鏡齊里) - 옥류관
  • 신창리(新倉里)
  • 기림리(箕林里) - 기림운동장
  • 박구리(磚九里) - 전구리(塼九里)는 잘못이다.
  • 아청리(衙廳里)[119] - 김일성광장
  • 육로리(陸路里) -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는 능로리(路里)로 잘못 기재되었으나, 당시 신문 기사를 보건대 육로리(路里)가 옳다.
  • 진향리(眞香里)
  • 수옥리(水玉里)
  • 순영리(巡營里)
  • 이향리(履鄕里)
  • 대찰리(大察里)
  • 하수구리(下水口里)
  • 장별리(將別里)
  • 계리(鷄里)
  • 관후리(舘後里)
  • 상수구리(上水口里)
  • 신양리(新陽里) - 보통문, 숭실학당·숭의여학교
  • 경창리(景昌里)
  • 죽전리(竹典里)
  • 감점리(監店里) - 감점리(店里)로 잘못 기재되었으나, 염점리(店里)가 옳다.
  • 이문리(里門里) - 대동문, 평양 종각, 연광정
  • 채관리(釵貫里)
  • 평천리(平川里)
  • 서성리(西城里)
  • 당산리(堂山里)
  • 인흥리(仁興里) - 대동군청 소재지
  • 능라리(綾羅里)
  • 동대원리(東大院里)
  • 신리(新里)
  • 선교리(船橋里)
  • 양각리(羊角里)
  • 구정리(九井里)
  • 서내리(西內里)
  • 봉수리(鳳岫里)
  • 대타령리(大馳嶺里)
  • 내리(內里)
  • 상흥리(上興里)
  • 감북리(坎北里)
  • 용흥리(龍興里)
  • 미산리(嵋山里)
  • 청암리(淸巖里)
  • 오촌리(鰲村里)
  • 의암리(衣巖里)
  • 문수리(紋繡里)
  • 율리(栗里)
  • 대신리(大新里)
  • 불당리(佛堂里)
  • 장진리(將進里)
  • 오야리(梧野里)
  • 정백리(貞柏里)
  • 석암리(石巖里)
  • 토성리(土城里)
  • 조왕리(助王里)
  • 사동리(寺洞里)
  • 빈리(蘋里)
  • 미림리(美林里)
  • 추을리(秋乙里)
  • 송신리(松新里)
  • 장지리(長池里)
  • 신동창리(新東倉里)
  • 장천리(將泉里)
  • 구동창리(舊東倉里)
  • 칠산리(七山里)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1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1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0. 기타

  • 이름에서 보듯 평양냉면의 본진이다. 실제로 북한 사람이든 탈북민이든 실향민이든 서북 출신들이 평양냉면에 갖는 자부심은 매우 대단한데, 그래서 옥류관을 북한 입장에서 아주 띄워주고 으리으리하게 지어놓았으며 하루 5천~1만 2천 그릇이 나간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18세기 조선왕조 시절 평양에는 '냉면 거리'가 있었는데, 현재의 옥류관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정확하게 그 평양전도에 나타난 냉면가 중심의 대동강변 쪽에 있다.
  • 2009년 4월 16일: 평양에서 엔하위키(당시 명칭)에 접속한 사실이 대시보드에 기록되어 뭇 위키러들이 "김뽀글위키니트냐?"며 경악했다. 다수의 위키러들이 목격했고, 이에 운영진이 즉각 로그 추적에 나섰지만 어찌된 일인지 위키와 자게 쪽 로그에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대시보드 공급자가 IP 분류를 잘못해서 다른 국가의 아이피가 북한 쪽으로 분류되어 오류가 일어난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지만 리그베다 위키에 달린 대시보드는 북한 접속도 추적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모를 일이 되었다(…). 결국 그 이후에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으나, 2010년 2월 23일에 북한에서 리그베다 위키에 접속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62명이나 접속하는 듯. 근데 사실 2012년 6월엔 한국어 위키백과북한 정부가 반달한 일이 있어서(…)[120] 대부분은 보위부 산하 정보전 전담 조직이나 김책공대 같은 곳으로 추측. 사실 김일성종합대학 같은 기구에서는 학술 목적으로 인터넷을 연결해놓고 있기 때문에 학술 목적의 검색 도중 우연히 접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 2013년 11월: 스웨덴의 속옷 회사 비외른 보리에서 세계의 도시를 선정해 자사의 섹시 팬티를 공중투하하는 이벤트를 하기로 했는데, 소문을 들은 한국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평양이 선정되었다. 반 장난성으로 선정되었지만 이 대인배 회사는 정말로 했다. 규모는 좀 줄어서 조촐해졌지만. 외국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수준. 자세한 내용은 평양 속옷투하 참조. 그전에는 저스틴 비버의 월드 투어 예정지로 북한의 평양이 안티팬들의 트롤링으로 추천당했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 배틀필드 4의 새로운 DLC에 평양을 배경으로 하는 맵이 나 것이라는 루머가 나왔으며 사실상 스크린샷 등지에 나오는 북한의 선전문구 등으로 인해 기정사실화된 상태. 게다가 DLC소개 문구 중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폭군의 기념물사이에서 시가전을 벌이세요!" 라는 문구가 삽입되있다고 하여 확인사살. 그리고 실제로 맵이 나왔다.. 아쉽게도 김일성동상은 파괴하지 못한다.. 자세한 것은 배틀필드 4/맵 문서를 참조.
  •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세계관에서는 이곳에 템플 오브 노드가 세워질 정도로 Nod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거점 중 하나로 나온다. 더 재미있는 건 같은 시기에 서울은 GDI 지역사령부가 있고 한반도 전체가 블루 존에 속하는 등 GDI의 중요한 거점이었다는 것. 이 기묘한 관계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 2015년 4월 27일 발매한 영국 밴드 블러의 8집 앨범 The Magic Whip의 10번 트랙 제목이라는 것이 2월 19일에 발표되었다. 멤버 데이먼 알반이 평양 관광 중 느꼈던 것을 담은 곡이라고. 참고로 그는 양각도 호텔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고 아리랑 공연을 봤으며 김일성광장 등을 둘러봤다고 한다. 데이먼이 찍은 평양의 영상은 'Blur - The Magic Whip: Made in Hong Kong'이란 영상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 'Everyday Robots'의 수록곡 'Heavy Seas Of Love' 뮤직비디오에도 평양의 모습이 나온다. 자세한 것은 블러데이먼 알반 문서 참고.
  • 2016년 8월 3일: 경비행기를 타고 평양상공을 관람하는 관광상품이 소개되었다.
  • 2016년 스팀 유저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가 공개되었는데 점 하나가 북한 평양에 찍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 김정은???
  • 평양역에서 1994년 4월 15일[125] 오전 5시 ‘김일성 장군의 노래’같은 음악을 틀어놓은 뒤로 계속 시보 기능으로 이런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한다. 2001년 2월 16일[126]부터는 현재와 같이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라는 김정일이 만들었다고 주장되는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다고 한다. # 유튜브에서는 외국인 방문객들이 초현실적이고 음산한 음악이 아침 5시, 6시, 7시, 간혹 자정에도 울려퍼진다는 반응을 드러내며 이를 촬영한 영상을 찾을 수 있다. 구체적인 음악을 틀어놓는 시간대는 그때그때 다른 듯하다.[127]
  • 주민종합 편의시설이라는 '류경관[128]'이라는 건물은 북한에서 유일하게 지하주차장이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
  • 평양 해방탑에는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북한은 소련의 도움을 받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진공하여 광복이 있었다고 하여 김일성을 이순신 이상의 인물로 미화한다. 여기에는 이를 반박하는 내용이 한국어(조선어)[129]로 적혀 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부터 조선 인민을 해방하고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 군대에 영광이 있으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러시아 대사관 직원 등이 헌화하는 곳이라 함부로 부수지 못하고 있다. #
  • 아카라이브의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북한 출판사 등이 만든 장식을 평양 공식 휘장으로 오인하여 위키미디어 등에 퍼나르기도 하였다. 이런 것이 개성, 라선 같은 다른 지역에도 적용된다. 위키미디어에 퍼나른 결과 러시아어 위키백과 등에도 공식 휘장이 아닌데 공식 휘장으로 등재되는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평양이라고 적힌 노란 로고, 라선이라고 적힌 빨간 로고을 보아도 진짜 휘장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10.1.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아시아의 국가별 수도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동아시아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 대한민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 일본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파일:중국 국장.svg 베이징시 파일:도쿄도 도기.svg 도쿄도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평양시 파일:타이베이시 휘장.svg 타이베이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n_flag_ulaanbaatar.png 울란바토르 특별시
동남아시아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인도네시아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파일:필리핀 국기.svg 필리핀
파일:자카르타 수도특별구 휘장.png 자카르타 수도특별구역 파일:방콕 시기.svg 방콕 파일:마닐라광역시 휘장.png 마닐라 특별시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말레이시아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쿠알라룸푸르 연방 직할구 / 푸트라자야 연방 직할구 싱가포르 파일:하노이시 휘장.svg 하노이 중앙 직할시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파일:캄보디아 국기.svg 캄보디아 파일:라오스 국기.svg 라오스
네피도 프놈펜 비엔티안
파일:브루나이 국기.svg 브루나이 파일:동티모르 국기.svg 동티모르
반다르스리브가완 시 딜리 시
남아시아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방글라데시
뉴델리 카불 다카 시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키스탄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이슬라마바드 파일:Kathmandu Flag.png 카트만두 광역시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
파일:몰디브 국기.svg 몰디브 파일:부탄 국기.svg 부탄
말레 시 팀부
서아시아, 캅카스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파일:터키 국기.svg 터키
파일:베이루트-ff.gif 베이루트 마나마 앙카라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파일:바그다드시 휘장.png 바그다드 파일:리야드 시기.png 리야드 파일:암만시 휘장.png 암만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파일:카타르 국기.svg 카타르 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파일:바쿠 시기.png 바쿠 도하 파일:사나 시기.png 사나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파일:아르메니아 국기.svg 아르메니아
예루살렘(정치) / 텔아비브(경제) 파일:테헤란 인장.png 테헤란 파일:예레반 시기.gif 예레반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파일:조지아 국기.svg 조지아 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쿠웨이트 트빌리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cosia_city_fl_n7160.gif 니코시아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파일:시리아 국기.svg 시리아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무스카트 다마스쿠스 파일:1920px-Flag_of_Abu_Dhabi.svg.png 아부다비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파일:아르차흐 공화국 국기.svg 아르차흐 공화국 파일:압하지야 국기.svg 압하지야
라말라(사실상) 스테파나케르트 수후미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남오세티야 파일: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국기.svg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츠힌발리 레프코샤
중앙아시아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키르기스스탄
파일:타슈켄트시 휘장.jpg 타슈켄트 누르술탄 비슈케크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파일:투르크메니스탄 국기.svg 투르크메니스탄
두샨베 아시가바트
}}}}}}}}} ||


[1] 북한에서는 지역행정 등의 중심지를 나타낼 때 '소재지'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쓴다.[2] 평양시당 위원회는 서문거리, 인민위원회는 서성거리에 있다.[3] 방현동. 2018년에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평양시로 편입되었다.[4] 2019년 12월 기준 통계청 공식 자료[5] 서울특별시의 거의 3배에 이른다.[6] 제주특별자치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7] 북한의 모든 통계가 그렇듯 평양의 정확한 인구는 다소 불분명한데, 가장 최근의 2008년 인구조사에서 조사된 평양시의 인구는 3,255,288명(도시지역 인구 2,823,414명)이었다. 여기서 201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떨어져나간 승호·중화·상원을 제외한 인구는 2,999,466명으로 계산된다. 참고로 통계청이 추정한 2008년 인구는 2,822,000명, 2022년 인구는 3,133,000명이다.[8] 평양시 서열1위. 인민위원회를 지도하는 '당위원회'의 가장 높은 지휘자이다.[9] 평양시 서열2위. 한국의 행정부시장 역할 정도를 가지나 농촌에 대한 업무는 교육 정도만 맡고 농촌 생활에 중요한 농업은 관장하지 못한다. 북한은 노동자보다 농민이 많다고 할 정도로 국가 경영에서 농업에 대한 비중이 크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당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권한이 적은 기관이다.[10] 만경대, 광복, 팔골, 장훈, 갈림길, 축전, 대평, 원로, 경산, 교구, 련하, 서창, 평천, 안산, 봉학, 륙교, 새마을, 보통강, 류경, 붉은거리, 개선, 비파, 전승, 긴마을, 서성, 장경, 하신, 중신, 대성, 룡흥, 안학, 을밀, 과학, 동문, 청류, 탑제, 사곡, 동대원, 율동, 신리, 삼마, 선교, 등메, 률곡, 영제, 락랑, 정오, 정백, 충성, 관문, 승리, 원암, 룡성, 림원, 룡궁, 은하, 어은, 마산, 순안, 석박, 사동, 두루, 휴암, 리현, 력포, 능금, 형제산, 하당, 상당, 신미, 삼석, 도덕, 강남, 영진, 강동, 봉화, 삼등, 상리, 흑령, 송석, 방현[11] 문수[12] 한국, 일본의 지자체와 다르게# 공식적으로 차별화, 지역홍보를 위해 지정되었다기보다는 관습적인 상징이다. 시화니 시목이니 하는 것도 한국은 70년대 후반 이후부터 고유 특성을 담을 상징물을 내무부가 갑작스럽게 정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에서 비롯되었다. ## 더군다나 북한은 '유일적 영도체계'를 강조하는 등 분권을 싫어하여 지방의 지나친 독자성을 드러낼 수 있는 행위도 좋아하지 않는다.[13] 서울특별시와 지역번호가 같다.[14] 설명에 따르면 북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체제 선전 동영상 아니며, 실제로 이런 모습은 일부 평양 시민에게는 일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양은 외국인이 다닐 수 있는 지역이 정해져 있으며, 이곳에서는 아무리 살펴봐도 깨끗한 풍경만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 심지어 평양 지하철에서는 옷차림도 제지할 수 있다. #[15] 인천보다 인구가 많은지는 추정에 따라 다르다.[16] 대동강 서쪽 평양 중심부(본평양)뿐만 아닌, 대동강 동쪽의 동평양을 위성으로 보면 허름한 집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는 노동자들이 주로 산다고 한다.[17] 이북 5도 행정구역 기준[18] 북한 행정구역 기준[19] 발음은 '프혜니얀'에 가깝게 한다. 원칙대로라면 Пхёнъян(프효니얀)이라고 쓰는 것이 맞지만 관용으로 굳어져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서울도 원칙적으로는 Соуль(소울)이 맞지만 관용적으로 Сеул(세울)로 굳어져 이렇게 쓰고 있다.[20] 평양, 한국어 발음 기준.[21] 헤이조, 일본식 음독 기준,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이 발음으로 읽었다.[22]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루나'는 평양의 순우리말에 해당되는 단어를 이두식으로 읽은 것이고 평양의 순우리말을 현대 한국어식으로 나타내보면 벌판을 의미하는 '벌'과 하천을 의미하는 '내'를 합쳐 '벌내'로 표기할 수 있다. '부루나'와 서라벌의 이두식 발음인 '서부루'의 '부루'라는 공통된 표기, 서라벌의 신라시대 재현음인 '*ᄉᆡᄫᆞᆯ[\*sɔjβɔl\]'과 '서부루', '벌내'와 '부루나'의 차이를 비교해볼 때 '부루나'는 발음상으로 실제 순우리말과는 거리가 멀 확률이 높다.[23] 그래서 조선 후기 평양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상인들을 유상(柳商)이라고 불렀다.[24] 서울역-동대구역 경부본선 이용 시 약 325km, 경부고속선 이용 시 약 285km.[25] 용산역-광주송정역 호남본선 이용 시 약 345km, 호남고속선 이용 시 약 300km.[26] 철도 기준 용산역-전주역 호남본선-전라선 이용 시 약 270km, 호남고속선-전라본선 이용 시 약 240km.[27] 철도 기준 청량리역-안동역 중앙선 선형 개량 이전 기준 약 245km, 선형 개량 이후 기준 약 220km.[28] 철도 기준 서울역-김천역 경부본선 이용 시 약 255km, 서울역-김천구미역 경부고속선 이용 시 약 230km.[29] 철도 기준 청량리역-삼척역 중앙본선-경강선-영동본선-삼척선 이용 시 약 265km.[30] 가수 신형원의 노래 '서울에서 평양까지'에서도 이 부분이 언급된다.[31] 출처: 여기에서 북한통계>인구일제조사>2008>인구>도, 시/구역/군, 도시/농촌별, 성별인구 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32] 이 자료는 2008년 북한에서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알아낸 자료이다.[33] 한양, 뤄양 같은 양(陽)자 돌림 도시는 강북을 의미한다. 평양의 양(壤)은 다른 한자이지만, 역시 강북을 의미한다.[34] 분지 지형에서 생긴 춘천, 개성, 한양도성안쪽이나 배산임수의 공주, 충주, 나주, 성저십리까지의 한양, 또는 요새로 삼을만한 산성 밑의 고을인 광주(경기), 청주, 전주처럼 한반도 대부분의 오래된 고을들은 산을 끼고 있다.[35] 사실 원래는 북한의 재침을 걱정해서 아예 강남을 수도로 삼고 한강을 북쪽 방어선으로 삼으려던 계획도 있었으나 결국 둘이 합쳐져서 원래대로 강북을 복원하면서 강남도 서울에 편입시켜서 지금의 서울이 완성된 것이다.[36] 다만 강남지역이 처음 평양에 흡수된 것은 해방 이전이다. 서울특별시도 1936년에 한강 이남 일부인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되었다.[37] 물론 서울의 광화문같은 곳에는 정부기관이나 공공시설있긴 하지만, 이건 예외의 사항이다.[38] 채소를 기르는 온실이 있던 자리를 밀고 건설하는 것으로 추정된다.[39] 도시 구조가 강에 둘러싸 지역이 마치 배와 같은 지형을 뜻한다. 남한에는 청주시가 행주형의 지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산에 의해 둘러싸인 지역을 장방형이라고 하는데, 개성경주가 이러한 지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40] 풍수의 모자라는 바를 채워주는 인공 지형물을 뜻한다.[41] 중국은 좋은 땅이 많아서 대충 골라도 좋은 땅이니 구태여 '좋은 땅'이란 개념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고, 반대로 일본은 나쁜 땅이 많아서 뭘 골라도 나쁜 땅이니 마찬가지로 '좋은 땅'이란 개념에 무관심했다. 한반도에서만 좋은 땅과 나쁜 땅이 확연히 구분되었기 때문에 좋은 땅이란 개념에 관심이 많아서 풍수지리가 발달한 것이다.[42] 1973년 이후 관측된 평양 최저기온은 2001년 1월 12,15일 -26.5℃이며, 비공식적으로 1917년 1월, 1920년 1월에 기록한 -28.5℃라는 기록이 남아있다.[43] 이게 얼마나 더운 것이냐면, 한반도의 초열지옥으로 유명한 대구의 7월 평균기온이 26.9도였다. 다만 서울은 28.1°C라서 그보다는 다소 낮았다.[44] 서울의 12~2월 평균 강수량은 각각 21.5, 20.8, 25.0mm이다.[45] 실제로 함경도의 두만강변을 배경으로 하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 함경도의 철도 노선인 백무선이 배경인 이용악의 《그리움》같은 작품에도 '눈보라', '함박눈' 같은 단어가 나온다.[A] 연합계이다.[47] 대한제국 말기 즐겨 불러진 평양가 1절의 가사이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 모두 평양에 도읍했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인데, 후술 하듯 상징적인 표현일 뿐 고조선 후기와 고구려 장수왕 ~ 보장왕까지의 수백년만 수도였다.[48] 보통 연나라 소왕이 진개를 보내 고조선을 격파한 해를 기원전 281년으로 보기 때문에 그 이후에 요동 지역에서 평양 일대로 수도를 옮겼을 것이라는 게 현재로선 다수설이다.[49] 921년부터 1136년까지 215년간 고려 '제2수도'였으며 수도로서의 서경의 입지는 훈요십조, 지방행정, 분사제도, 서희의 담판 발언, 서경별곡 등에서 드러난다. 1136년 묘청의 난 이후 서경의 지위는 '부수도' 지위로 격하되어 개경이 아닌 동경, 남경의 그것과 비슷해졌다.[50] 중심지 이동설에 따라 고조선 후기에만 평양 일대가 수도였던 것이 다수설이다. 고조선 문서 참조.[51] 건국 자체는 졸본성(현 오녀산성)에서 이루어졌고 2대 왕인 유리왕 대에서는 국내성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미천왕한사군을 축출한 이후 평양의 중요도가 늘어나다가 장수왕 대에 들어서야 수도가 된 것.[52] 개경, 동경, 서경. 서경은 특히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로 인해 수도 개경보다는 격이 낮으나 동경과 남경보다는 격이 높은 제2의 수도였다. 다만 묘청의 난 이후로 격하당해 분사제도가 폐지되어 동경, 남경과 격이 같아지고 원간섭기 이후 고려 말에는 제2도시 위상을 남경에게 빼앗긴다.[53] 다만 신라와 백제 역시 삼국사기상의 건국 연대에 비해 실질적인 형성 연대가 늦기 때문에 천년고도라는 상징성과 달리(서울: 백제 500년+조선 500년, 경주: 신라 1000년) 실제적으로 수도 역할을 한 기간이 줄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래도 평양보다는 여전히 훨씬 길다.[54] 대만도 2000년도 중반까지 헌법상 수도가 난징시였으나 타이베이시가 실질적인 수도이고, 민진당 정부에서 난징 = 명목상 수도라는 표현을 자제하게 되었다. 국민당 정부에서는 명목상 수도가 난징이라는 주장을 1년에 한 번씩 한다. 그나마 대만은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지만, 북한은 6.25 남침 때 몇 달간 서울을 점령해 본 게 고작이다.[55] 이 지명 자체도 일제강점기에도 존재하였다. 숭실대학교 전신 숭실학교 교가에서도 언급될 정도다.[56] 유튜브 등에서 보이는 북한식 어법을 쓰며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조선족 등의 교포, 극소수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사람이다.[57] 평양행 항공편은 베이징, 상하이, 선양, 블라디보스토크에서만 있다. 이유는 당연히 수요 문제. 다들 알다시피 못사는것도 그렇고 국내에서의 이동조차 막고있는데 맘먹고 탈북할수 있는 해외여행을 허용할리가 없다.[58] 남한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으로는 pyeongyang,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으로는 P'yŏngyang이다.[59] 종북이나, 극우 성향의 유튜브가 모두 있다. 정치관을 홍보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앞뒤가 안맞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60] 이것도 묘향산 일대 같은 예외가 있다.[61] 사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평양 시민이 모두 특권계층이라면, 그들에게 특권을 주는 절차에 필요한 노동은 대체 누가 하는가? 평양이 선진국 대도시처럼 위성도시와 연담화가 된 도시도 아닌데 말이다.[62] 당장 서울만 하더라도 미개발지역이 많은것을 생각하면 평양은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다.[63] 전체 탈북자의 70%대[64] 탈북자로,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아이들을 세뇌시키려는 이 정권은 뒤집힐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65]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북한 사람들은 다 배급으로만 먹고 사는 줄 아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소위 '가난한 나라' 들도 생각보다는 잘 산다. 북한 출신 스스로도 북한은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보다 못 산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런 나라들이 휴대폰도 많이 보급되어 있고 인프라도 북한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의 수도나 대도시도 나이로비, 라고스, 아디스아바바 같은 곳은 빌딩 숲이 가득하고 차들도 많다.[66] 실제로 북한 형법 제114조에는 "개인의 기업 및 영업죄"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대량의 이득을 얻으면 최대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징역)에 처한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법제데이터서비스에서 법령정보>북한법령으로 들어가 형법을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67]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부패로, 한국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응과 사상적 통제의 약화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경제 문단 참조.[68] 앞서 언급했듯, 평양의 가난한 지역보다는 지방의 중견 도시가 잘 사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평안남도 평성시, 평안북도 신의주시는 이런 평양의 치적 사업물과는 달리 주민의 자생경제로 일구어 낸 건물들이 있어 인테리어에도 신경 쓴다고 한다.[69] 북한에서는 입금비라고 부른다.[70] 사실상 동일 노선.[71] 1978년에 개통되었던 기존 평양-남포 고속도로다. 남한으로 치면 경인고속도로 같은 포지션.[72] 락랑과 평천을 잇는 충성의다리는 양옆을 전차궤도가 잡아먹어서...[73] 평양의 휘황찬란한 야경은 선전용이다. 2014년 들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여전히 밤시간대 평양시내의 민가 불빛이 어둡다고 증언하고 있다.[74] 도로를 보면 작은 점들이 찍혀있는데 용도는 교통관련이 아니라 이 쪽 관련이다.[75] 예를 들어 사리원에서 평양을 거쳐 안주나 신의주 등지로 가려 할 경우.[76] 평양 출신 탈북자들에 의하면, 출퇴근 시간에는 원래 교통 체증이 있었다고 한다.[77]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라도 이 수준으로 이동을 억제하지는 않았다.[78] 일본에선 시내에 자리한 JR노선도 광역전철(한국으로 치면 수도권1호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처럼)처럼 타고 다니니 어떻게 보면 철도망이 이렇게 보이는 것이라 할 수도. 그리고 우리나라도 2000년 까지만 해도 경의중앙선 용산~청량리 구간과 일산선, 과천선, 안산선, 경인선 같은 광역전철 구간을 국철이라 부르기도 했다.[79] 당시 4호선은 강북 지역에서 한 바퀴 돌아서 리본 모양으로 빠져나가는 형태였다.[80] 주로 은정구역평성시에 밀집된 과학자들을 유사시에 평양시내의 대피시설로 불러들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81] 일반적으로 앞의 두 노선과 만경대(송산)-송신 노선을 하나로 묶어 3개 노선으로 설명하는데, 대략 2000년대 초반 평양역-주체사상탑 구간이 철거되었다. 이 구간에서 대동강을 건너는 대동교가 워낙 좁은 다리다 보니 교통체증(!)이 심해져 철거한 것으로 추측된다.[82] 다만 송신-동평양백화점 노선도 송신종점 - 송신2동 구간은 가변차로로 운행 중이다.[83] 라선시는 경제무역지대라 북한에서는 평양 다음으로 부유하고 라선시 대표단은 수가 얼마 되지도 않는다.[84] 이 덕분에 평양순안공항 내의 유일한 고려항공 비지니스 라운지는 스타얼라이언스 카드로 입장이 가능. 단, 아시아나항공 카드로는 평양착발 노선에 대해 마일리지 적립도 안 될 뿐더러, 순안 공항 라운지 입장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스얼 골드에 대한 우선 탑승수속권도 해당 노선에 대해서는 아시아나 항공 골드는 제외 되는 것으로..[85] 여기서 말하는 서울 말씨는 상경민들의 영향으로 지방 억양이 가득 섞인 요새 서울말이 아니라 부드럽게 들리는 옛 서울 사투리다. 평양 사투리도 옛날엔 북한 표준인 문화어와 크게 다른 말투를 썼기에 서울에 비해 억셌다.[86] 구 평안남도 상품진열소. 일본 국회의사당과 비슷하게 생겼다.[87] 구 평양공회당[88] 과거 평양의 대표적 유적으로 유명했으나, 6.25 전쟁기 폭격으로 파괴됨.[89] 원래 모란대에 있었으나 현재는 본전과 대문만 남아 평양학생소년궁전 곁으로 옮겨졌다.[90] 위계만 따지면 특별시의 자치구지만, 기능으로 따지면 일반구에 가깝다. 평양시에 속한 행정구역이라는 기능이 강하다.[91] 당정면, 양정면, 신흥면, 해압면[92] 구역 아래의 과 같으나 어떤 구역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행정구역이다.[93] 외부에서는 이 곳에 거주하는 미사일 관련 종사자에게 특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평양 직할로 두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으나 그것이 곧 특권 부여를 목적으로 했다는 뜻은 되지 않는다.[94] 1991년 국제 앰네스티의 폭로로 승호 수용소가 전 세계에 까발려졌고, 1994년에 김일성이 죽자마자 김정일이 전격적으로 승호 수용소를 폐지했다.[95] 단, 현 북한 행정체계 상 특별시는 우리와는 다르게 직할시 아래에 있다 보니 평양 시민 입장에선 순간적으로 강등당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것이다.[96] 과거 북한 정권의 수도(였)다는 점을 보면 서울과 함께 특별시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있다. 다만 이럴 경우 평양보다 인구가 더 많은 부산광역시에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산은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평양은 통일 이후 북한 지방 인구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평양특별자치시 제안도 있다. 특자시 논의를 할 만 한 곳은 위상에 비해 인구가 적은 개성시나진시. 그 외엔 북한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특별시가 직할시보다 급이 낮아서, 평양특별시라는 이름이 될 경우 구 북한인 입장에선 평양이 강등당한 느낌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는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97] 심지어 네이버와 구글에는 평양광역시가 자동완성에 뜬다.[98] 다만, 이 경우 명칭은 어감 문제 등으로 직할시가 아니라 명칭을 새로 만들 가능성도 높다. 이미 과거 1963년부터 1994년까지 부산직할시(1963년), 대구직할시(1981년), 인천직할시(1981년), 대전직할시(1989년), 광주직할시(1986년)가 있었다가 나중에 광역시로 전환한 것이었기 때문에...[99] 특별시 승격은 어렵지만 상징적 의미가 있으니 행정수도 역할을 하도록 특별자치시로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는 광역행정구역으로 삼기에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은 지역을 행정수도로 삼기 위해 억지로 광역자치단체로 만든 것에 가깝다. 반면 평양은 이미 250만 명 이상으로 광역시로 승격되기엔 인구가 충분하다.[100] 인구 규모만 놓고 보면 서울과 부산에 이어 통일한국 제 3의 도시이다. 인천보다 조금 크다(2022년 기준).[101] 이러한 직후로 남북통일 직후 서울-평양간의 국도및 고속도로, 그리고 철도건설이 최우선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102] 물론 고구려나 고려시대의 중심지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동아시아 안에서라면 모를까 동아시아 밖으로 나가면 평양의 인지도가 절대로 긍정적이지가 않다는게 문제지만... 물론 이것도 평양을 개발해서 "평양의 환골탈태"식으로 세상에 알리면 회복할수 있다.[103] 예산 문제로 일부 지역만 우선 개발하더라도 최소한 평양-남포, 사리원, 개성, 라선, 함흥, 청진, 원산은 우선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104] 다만 이는 강남군 등도 포함했을 때의 이야기다.[105] 물론 704년 고구려사에서의 수도 중에서는 424년간 수도였던 국내성이 가장 오래갔지만 국내성보다 평양성이 지리적 이점이 더했고, 안학궁 등이 세워지며 번영했다. 그리고 국내성은 건국 초기와 발전, 성장기에 수도였던 데에 반해 평양성은 최대 판도를 이룬 전성기와 삼국통일전쟁 시기에 수도였다는 점도 의미 있다. 다만 국내성의 고구려사 내 중요성이 평양성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일단 국내성기가 183년이나 더 길고 그때문에 집안 지역이 평양보다 고구려 유적이 더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313년 이전에는 평양이 고구려 영토가 아니었다. 즉 704년 사직 중 절반인 349년간은 평양은 고구려 소속조차 아닌 것. 또한 국내성은 평양 천도 이후에도 고구려의 제 2수도로서 마지막까지 정치적 중요성을 잃지 않았다. 평양에서 밀려난 연남생이 국내성을 본거지로 삼은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106] 전술했다시피 고조선, 고구려, 북한 정권의 수도였고, 고려시대에는 제2의 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도 제2의 도시 역할을 했다.[107] 고려시대(+ 조선 극초기)를 제외하곤 개성의 위상이 평양보다 위였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경주도 수도론 오래 가봤지만 신라만의 수도이기에 고조선, 고구려, 북한 등 여러 시대의 수도였던 전적이 있는 평양엔 밀린다. 평양을 앞서는 유일한 도시는 서울밖에 없는데 서울도 마찬가지로 백제,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등 여러 시대의 수도였으며 수도 지속 기간이 평양보다 두 배 이상 길며 무엇보다 북한 정권 수립 이전 수도로서의 역사가 고대사에 치우친 평양에 비해 수도로서의 역사가 고대사, 근세사, 근현대사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평양의 상징성이 서울의 그것을 능가하지 못한다. 또한 한국과 북한의 대외적인 위상 차이를 고려하면 현대사의 수도로서의 입지도 결코 대등하지 못하다. 북한 스스로도 서울>평양이라는 인식을 원체 갖고 있었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도 김두봉이 '서울은 조선의 심장부다'라는 표현을 썼으며 분단이 고착화되는 1972년 이전까지 북한 정권에서도 공식 수도를 서울로 내세웠다. 1990년대 이후 북한에서 단군릉, 동명왕릉 등에 대한 무리한 복원을 진행했는데 이 또한 민족사적 정통성에서 평양의 서울에 대한 열등감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108] 특히 개성은 수도 이전 후보로도 많이 언급되는 곳이며, 당장 원주와 함께 경의중앙선 전철의 연장 최우선지가 되는 곳이다.[109]해당 항목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문화 유적지와 특히 지형적인 문제로 인해 수도 이전 후보지로서 제약이 많다.[110] 사실 밑의 글씨가 원본과 조금 다르다.[111] 일제 강점기의 町目을 광복 후 바꾼 명칭[112] 광복 당시 평양부청은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그 위치를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점유하고 있다. '산수(山手)'는 야마노테선의 그 '야마노테'인데, '고지대'라는 뜻이다. 40m가 안 되는 언덕인 서기산(瑞氣山) 아래 동네여서 그렇게 이름붙였는데 북한에서는 해방산이라고 개칭했다.[113] 미유키마치가 있긴 한데, 한국어가 '행정'이 아닌 '향정'으로 적혀있다. 참고로 미유키는 幸의 일반적인 독음은 아니다.[114] 하시구치마치가 있긴 있는데, 한국어가 '교구정'이 아닌 '교정'으로 적혀있다.[115] 와카마츠초가 있긴 한데, 한국어가 '약송정'이 아닌 '송정'으로 적혀있다.[116] 참고로 한국어가 '암정'이 아닌 '엄정'으로 적혀있으나, 단순한 오자로 추정된다.[117] 하마마치가 있긴 한데, 한국어가 '빈정'이 아닌 '함종'('함정'에서 반달표가 빠진 것으로 추정)으로 적혀있다.[118] 광복 직전 대한민국 내 시(당시에는 부)에 가장 많던 지명 중 하나였다. 심지어 포항시는 이를 분동하여 동빈1가동, 동빈2가동, 남빈동으로 남아있다.[119] 한국어 발음은 '이위편리'라고 엉뚱하게 적혀 있지만 일본 발음으로는 아청리의 일본식 발음인 "가쵸리"로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120] 그리고 나무위키가 리그베다 위키시절이었을 때도, 김일성 문서를 북한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반달한 적이 있다.[121] 날짜는 1950년 10월 30일.[122] 2000년 6월 13일.[123] 2007년 10월 2일. 영부인 권양숙이 최초로 동행.[124] 2018년 9월 18일. 영부인 김정숙이 동행했으며, 위원장 부인 리설주까지 참여하여, 최초의 부부동반 정상회담이었다.[125] 김일성의 생일. 그런데 김일성은 이 해 7월에 사망했다.[126] 이 날짜 역시 김정일의 생일이다.[127] 참고로 이런 전통(?)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매일 오후 6시 역에서 울려퍼지던 사이렌으로, 당시에는 이 사이렌 신호에 맞추어 히로히토 덴노가 있는 도쿄를 향해 고개 숙여 경례를 해야 했다고 한다.[128] 해당화관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2016년경 바뀌었다고 한다.[129] 문화어 제정 이전에 해방탑이 건립되었다.[130] 목은 이색의 후손(호장공계)가 주축을 이루는 한산 이씨 대종회 측은 권지공계의 존재를 부정[131] 대한민국에는 경기도 포천시가 유일하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