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8 02:00:12

파일:에반챈들러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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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마이클과 93년 당시 13세였던 조단 챈들러 (오른쪽) 1차 혐의 사건을 주도한 조단의 아버지 에반 챈들러.

에반의 직업은 치과의사지만 원래 꿈은 시나리오 작가였다고 하며 실제로 시나리오 공동작업을 몇 번 하기도 했던 영화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
치과의를 하며 의료 사고로 손해배상에 휘말리기도 했고 마이클에게 민사소송을 걸 당시 빚도 상당했다고 한다.
85년에 조단의 어머니 준과 에반은 이혼했고 조단은 준과 함께 살았다. 준은 슈워츠와 재혼했고 에반도 이미 재혼한 상태였다.
조단이 마이클과 가까워졌단 걸 알기 전에 에반은 떨어져 살던 조단한테 그리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준이 증언했었다.

마이클은 조단과 조단의 어머니인 준(히스패닉계로 조단은 준과 닮았다. 준과 마이클이 아주 잘통해서 특히 더 가까워졌다고 함.)과 친하게 지냈으며 이 사실을 에반이 알게된 후 에반도 나중에 마이클을 소개받았다. 에반은 마이클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마이클의 영화관련 지인이 검토했으나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혹평에 가까웠다고 함) 마이클이 준과 조단에겐 계속 연락하면서 에반에게는 연락을 끊자 그때부터 에반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마이클이 고용했던 사설탐정 앤서니 펠리카노가 입수한 에반의 통화녹음 테이프에 따르면 에반은 마이클과 자신은 아주 좋은 대화를 했고 자신은 마이클을 아티스트로 이해하는데 왜 마이클이 연락을 끊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했고 준과 조단이 계속 마이클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샘내했다고 한다. 이후 에반은 조단에게 마이클이 나쁜 짓을 했던 거 같다며 조단에게 묻기 시작했고 조단은 계속 부인하다가 진정제를 투여받은 상태에서 마이클에게 더 나쁜 일이 벌어지게 될거란 에반의 압박에 이때 처음으로 조단이 '네'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에반은 변호사를 고용했고 조단을 대리해서 마이클을 고소할 수 있도록 정신과 의사를 동원해 93년에 조단의 양육권을 어머니 준으로 부터 가져갔다. 05년 재판 증언에서 어머니 준은 마이클이 조단을 성추행 하는 걸 본 적 없으며 94년 이후 11년 동안 아들 조단과 대화를 한 번도 못했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조단은 93년 8월부터 11개월 정도 형사 수사에 응하면서 마이클이 성추행한 걸 진술했지만 형사들의 압박에 조단의 진술이 추가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일례로 조단이 정확한 성기묘사를 했다고 톰 스네던과 당시 수사관들이 주장했으나 사후 부검결과로 완전히 틀렸음이 밝혀져 수사당국의 거짓말이 드러났던 경우를 봐도, 마이클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하고 아이들과 목격자 수백명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자 수사관이 조단에게 성기 그림을 그려보라 했고 조단이 일반적인 포경한 남성의 성기 모양을 단순하게 그리자 이걸론 특징이 안되기에 다른 점 같은건 없었냐며 형사가 유도했고 이에 조단이 점을 하나 찍자 이걸로 마이클의 신체수색을 감행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90년대엔 대부분이 포경수술을 할 시절이었으니 조단이 아는 일반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나 58년생 마이클은 포경 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또 신체수색을 한 수사관은 왼쪽 하단에 얼룩덜룩한 점 같은 게 있다고 했으나 톰 스네던은 오른쪽에 점이 있다고 말해 수사당국 끼리도 서로 말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톰 스네던은 조단과 상대적으로 비슷하다는 억지 문구를 넣어 인터뷰 하기도 했는데 조단의 신체 진술은 신체 수색과 완전히 달라서 혐의점을 나타낼 증거로써 인정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또한 톰 스네던의 면피성 거짓말 중 하나이다. 이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는 FBI 문서로도 확인 가능하다. 실제로 기소판정을 위해 소집되었던 대배심은 마이클에게 불리한 증거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마이클은 멜라닌 색소를 잃어가는 백반증 환자로 몸 전체에 얼룩덜룩한 반점들이 있었는데 신체수색을 한 수사관은 하나의 점이란 표현도 쓰지 않았다. 얼룩덜룩한 점 같은게 있다고 말해서 조단의 1개의 점에 억지로 갖다붙였으나 얼룩덜룩은 여러 개의 불확실한 반점들을 표현하는 말이지 1개의 점일 때 쓰는 표현이 아니다. 왼쪽 오른쪽 서로 말이 맞지 않았던 것만 봐도 마이클에겐 전체적으로 여러 개의 반점들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 조단이 마이클의 엉덩이가 얼룩덜룩 했단 말을 했으나 마이클이 에반의 집에 방문했을때 두통으로 마이클에게 엉덩이 주사를 놔준 적이 있어 이를 조단에게 알렸을 가능성이 있고 이를 몰랐더라도 백반증 환자이니 얼룩덜룩한 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며 당시 댄져로스 앨범 곡의 뮤직비디오만 봐도 마이클의 반점들이 보인다. 또 조단은 엉덩이 반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했고 점 모양이 어떠했는지 묻는 질문에 곰돌이 같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아이다운 수준으로 말을 지어낸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가 대부분 끝났는데도 아무런 증거가 안나오자 기소 판정을 늦추어서 이를 숨겼고 따라서 민사가 먼저 진행됐으며 민사 재판의 재판부는 마이클에게 불리한 판정을 계속 내리면서 민사 재판의 부담을 증가시켰다. 마이클의 비즈니스 관계자들은 당시 히스토리 앨범 발매를 준비하던 상황이라 민사 소송 지연으로 홍보에 지장이 가는 걸 우려하여 마이클에게 합의를 권유했고, 합의 직전까지 반대하던 마이클은 결국 이를 수락하여 94년 1월에 민사합의를 하고 만다. (비즈니스로 수익을 얻는데 치중하면서 마이클 개인에겐 합의가 두고두고 갈취시도를 하는 명목이 될 수 있고 이미 적대적인 언론과 함께 마이클 개인에겐 어떤 위험이 될지 그들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벌어졌다. 마이클도 99년에 자신의 주변엔 믿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후 몇개월 후에 검찰의 기소는 모두 무산됐음이 알려졌고 증거불충분 불기소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민사합의에서 마이클은 조단에게 대부분의 합의금을 신탁했고 에반에겐 10프로의 합의금만 주었었다. 그리고 이후 95년에 조단이 법적으로 독립하면서 에반은 조단에게 신탁된 합의금에 관여할 수 없게 됐고, 96년에 다시 마이클에게 60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으나 2000년에 기각됐다. 에반은 05년에 조단을 폭행하여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으며 마이클이 2009년에 사망하고 5개월 뒤에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했다.

마이클은 조단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을 앓기 시작해서 평소에 2시간 밖에 잠을 못잤다고 하고 09년에 'This is it' 콘서트 준비로 스트레스가 올라가 사망할 즈음엔 약을 쓰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면증 증상이 심해졌다고 한다. 이 약물들은 모두 의사의 합법적인 처방으로 의사가 투여하는 처방약들이지 마약이 아니다. 마이클은 독실한 종교적 신념을 가졌었고 생전에 담배, 마약은 물론 커피도 안마셨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마이클의 죽음은 09년에 주치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대리 의사로 와있던 콘래드 머레이가 심박동을 진단하는 의료 장비도 없이 치사량의 프로포폴을 투약하여 심장마비를 일으킨, 즉 과실치사로 살해당한 것이고 콘래드 머레이는 이후 감옥에 갔다. 또 마이클의 불면증이 이 상황을 만들었으니 마이클의 죽음은 조단 사건이 애초의 원인이기도 하다.

마이클 사망 후 조단이 양심고백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으나 조단이 직접적으로 고백한 적은 없다. 당시 조단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페이스북 글이 올라오긴 했으나 지금은 삭제되어 있다. 그 페이스북 글 내용은 에반의 사기극으로 인해 조단과 자신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가족이 망가졌다며 에반을 비난하는 내용이었으나 실제 조단의 여동생이 쓴건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05년 재판에서 조단이 아버지가 시킨 거짓말이었다고 말한 것을 들은 지인들을 섭외했었고 조단의 절친이 마이클을 존경한다며 마이클 관련 음악작업을 해왔던거 보면, 또 위에서 언급한 진술과 증거없음의 결과, 또 마이클이 형사수사 결과를 알기 전에 민사 합의금을 받아내려고 에반이 형사 진행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작전을 쓴 것도 드러나서 내막은 뻔하다. Money 에반이 05년에 접근금지 처분을 받은 뒤로 조단은 다시 친어머니 준과 여동생과 교류하기 시작한 걸로 보인다. 이후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또 에반의 자살 당시 에반 몫의 합의금을 이미 탕진했던 것은 맞으나 조단은 별 다른 직업 없이 합의금으로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울러 94년 합의 전까지 조단이 아버지한테 끌려다니던 것과 반대로 합의 얼마 후에 미성년자 신분인데 과감하게 소송을 걸어 95년에 법적 독립을 받아냈고 이로써 에반의 조단 신탁금 탕진을 막았던거 보면 마이클 측에서 귀띰을 해준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즉 어차피 줘버릴 돈이고 또 조단의 양육권을 가져간 에반이 아버지로써 어떠한 인물인지 알기에 최소 조단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줘야겠다고 판단해 마이클이 트릭을 쓴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마이클은 조단을 친아들 처럼 아꼈다고 마이클의 경호원들이 진술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조단은 마이클이 아끼던 그 아이는 더 이상 아니리라

한편 사건종료 일년 뒤인 95년에 마이클이 인터뷰에서 성기진술 마저 완전히 틀렸고 자신의 결백을 말하자 당시 검찰이었던 톰 스네던에 대한 표적수사 인종차별 의혹이 일었다. 이에 톰 스네던이 반발하여 성기묘사가 완벽히 일치했다는 거짓말과 함께 민사합의 때문에 수사를 진척 못한거라며 면피하는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하여 이후 언론이 마이클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단초가 되게 만들었다. 톰 스네던은 조단 사건으로 부터 십년 후인 2003년에 개빈건으로 마이클을 다시 수사하면서 강압수사, 표적수사, 유도심문, 증거조작, 증인 금품제공 등이 형사 재판과정에서 드러났으나 당시 미국 언론은 이걸 부각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배심원 전원 무죄판결 받은 마이클에게 꼬투리를 잡는 인종차별적인 편파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무죄판결 당시 여론 조사에서 마이클이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유죄로 믿는 대다수는 백인이고 마이클의 결백을 믿는 대다수가 유색인종 임이 드러나 당시에도 만연한 차별의식을 실감케 했다. 마이클은 히스토리 앨범에서 톰 스네던을 간접적으로 저격하는 D.S.란 곡을 실어 영원히 박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