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ta / Keret
1. 개요
미탄니를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영웅. 기원전 1500년경에 살았다고 추정된다.우가리트어로 쓰여진 <크레타[1] 서사시>가 키르타 왕의 일대기를 다루며, 기원전 1500년~1200년에 쓰여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2. 일대기
우가리트 신화의 창조신 엘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는 키르타 왕에게는 일곱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병이나 산고같은 이유로 모두 자식 없이 사망했다. 키르타의 어머니도 자식이 키르타를 포함해서 여덟 명이 있었지만, 키르타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기 때문에 키르타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키르타는 자신에게 후계자를 달라며 기도했고 잠든 키르타의 꿈 속에 창조신 엘이 찾아온다. 엘은 키르타에게 우둠 왕국과 전쟁을 하고 우둠이 평화의 조건으로 바치는 금과 은을 거부하고 푸발라 왕의 아름다운 딸을 아내로 요구하라고 조언했다. 엘의 조언대로 키르타는 대군을 이끌고 우둠 원정에 나서는데, 도중에 바다의 여신 아세라트의 신전에 들러서 이번 원정에 성공하면 금과 은으로 화려한 제물을 바칠 것이라고 기도했다.
우둠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키르타는 푸발라 왕의 딸 하리야를 아내로 데려가고 하리야는 키르타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을 낳았다. 하지만 키르타는 원정 이전에는 승리하면 금과 은으로 화려한 제물을 바치겠다고 한 아세라트 여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2]
시간이 지나 키르타의 아이들이 자란 시점에서 키르타는 여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아세라트 여신의 저주를 받아 앓아 누웠다. 막내아들 엘후는 창조신 엘의 아들이자 반신인 키르타가 죽어서는 안된다고 불평했고 키르타는 딸 타흐마나트를 불러서 신들에게 기도하라고 말했다.[3]
타흐마나트의 기도를 들은 신들은 키르타의 운명에 대해 논하고 있었는데, 엘이 키르타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아세라트 여신과의 약속을 어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엘은 샤티크라는 날개 달린 여자를 만들어서 키르타에게 보내고 샤티크는 키르타의 열을 식혀주었다. 이틀 후에 키르타는 건강을 되찾고 다시 옥좌에 앉았다. 그런데 키르타 왕의 장남 야숩이 아버지는 나태하기 때문에 왕좌에 앉을 자격이 없다며 왕위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고, 이에 분노한 키르타는 호로누 신에게 야숩의 두개골을 박살내달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키르타가 장남을 저주하는 것을 끝으로 서사시의 석판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뒷이야기는 알 수 없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후 키르타의 자식들은 딸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고 그 딸이 키르타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왕위를 계승했다고 추정한다.
3. 관련 문서
[1] 키르타[2] 여기에서부터 키르타 서사시의 석판이 부분적으로 부서졌기 때문에 중간의 이야기는 소실됐다.[3] 타흐마나트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하는 동안 심한 가뭄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다시 비가 왔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