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6 17:16:20

퀘벡 주

퀘벡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같은 이름의 캐나다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퀘벡 시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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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Québ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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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
파일:Armoiries_du_Québec.svg.png
주 휘장
국가 캐나다
지역 중부
시간대 UTC-4, UTC-5
주도 퀘벡
최대도시 몬트리올
면적 1,542,056km²
인구 8,356,851명(2017)
인구밀도 5.98명/km2
공용어 프랑스어
부총독[1] 조제프 미셸 두아용 (Joseph Michel Doyon)
주 총리 프랑수아 르고 (François Legault) (퀘벡미래연합)
주 의회
퀘벡 미래 연합 74석
퀘벡 자유당 29석
퀘벡당 10석
퀘벡 연대 10석
무소속 1석
캐나다 평민원[2]
캐나다 자유당 40석
캐나다 신민주당 15석
캐나다 보수당 12석
퀘벡당 10석
인민당 1석
공석 1석
캐나다 원로원[3]
무소속 상원의원 그룹 11석
캐나다 보수당 7석
캐나다 자유당 3석
무소속 1석
공석 2석
약자 QC
표어 Je me souviens
(나는 기억하노라)
지역번호 418,438,450,514,579,581,613,819,87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06px-Qu%C3%A9bec%2C_Canada.svg.png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1. 개요2. 상징
2.1. 이름2.2. 깃발2.3. 표어
3. 퀘벡인4. 언어5. 역사
5.1. 프랑스인 이주 이전5.2. 누벨 프랑스5.3. 영국령 캐나다5.4. 캐나다 자치령5.5. 조용한 혁명
6. 정치7. 분리주의
7.1. 자유 퀘벡 만세!7.2. 10월 위기7.3. 두 번의 국민투표7.4. 퀘벡의 분리?7.5. 퀘벡이 캐나다에서 독립하게 된다면?
7.5.1. 퀘벡이나 인접 동부 캐나다 주들의 역분리 또는 분리 가능성
7.6. 이중언어 국가 안의 퀘벡
8. 문화
8.1. 종교8.2. 식문화8.3. 이민8.4. 스포츠8.5. 유명인
8.5.1. 음악가8.5.2. 스포츠 선수8.5.3. 영화계 인물8.5.4. 기타
9. 주요도시10. 그 외

1. 개요

캐나다 동부에 있는 . 캐나다에서 제일 넓은 주이며,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준주까지 포함하면 누나부트가 가장 넓다. 전반적으로 영어가 우세한 캐나다 내 다른 주와 달리 프랑스어가 우세한 언어이며,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분리주의 독립 운동이 존재한다.

생로랑(세인트로렌스) 강 하류에 대부분의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북쪽으로 올라가면 차로도 없고 이로쿼이들이나 크리 족들이 조금 살고 있고, 최북단 지역엔 이누이트가 거주한다. 사실 이렇게 원주민 사는 동네가 퀘벡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도시로는 주도인 퀘벡 시와 상업의 중심지인 몬트리올이 있다. 캐나다의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가 나뉘어져 있다. 주도인 퀘벡 시는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뉘어져 있는데, 구도시는 옛날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어 관광지로 명성이 높다. 생로랑 강가에 세워진데다가 옛날의 요새, 성, 건물들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어 아주 낭만적이다. 퀘벡 시는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세운 유일한 성곽도시이다. 몬트리올은 예전에는 캐나다 제일의 상업도시였으나 분리운동의 영향 때문인지 자본들이 토론토로 빠지면서 요즘은 많이 위축되었다.

주한대표부. 캐나다 헌법에 의해 퀘벡주는 해외에 독자적인 대표부를 둘 수 있으며, 한국대표부는 1991년 설립되었다. 2017년 성균관대학교에서 대표부 후원 아래 국내 최초로 퀘벡 영화제 및 퀘벡 관련 문화행사가 열렸고, 주한 퀘벡 대표부 명의로 책 8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2. 상징

2.1. 이름

'퀘벡'은 영어 발음[4]이고 실제 프랑스어 발음은 [ke.bɛk],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표기하면 '케베크'이다. '퀘벡'은 북미 원주민 언어인 알곤킨어로 '좁은 물길'을 의미하는 kepék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캐나다 소속 퀘벡 주가 생기기 전에는 온타리오 주와 함께 영국령 북아메리카 내 '캐나다 주'(Province of Canada, 1841~1867)를 이루고 있었다. 원래 캐나다라는 이름 자체가 현 퀘벡 주 등을 좁게 가리키는 이름이었고 캐나다인이라고 하면 프랑스계 주민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을 정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퀘벡 주 몬트리올을 연고지로 하는 NHL 팀 이름이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인 것이다. 하지만 영국령 북아메리카가 대영제국 최초의 자치령(dominion)이 될 때 캐나다라는 이름을 가져갔고 원래의 캐나다 주는 퀘벡 주와 온타리오 주로 분할되어 캐나다에 가맹하게 된 것.

만약 향후에 퀘벡 주가 독립하게 되면 자기의 예전 이름을 이웃나라에 갖다 바치고 나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2.2. 깃발

현재 퀘벡 주의 주기는 파란색 바탕의 백합이 사각형 귀퉁이에 들어가 있고 중앙에 십자가가 있는 형태이다. 이름은 플뢰르들리제(Fleurdelisé). 1948년에 지정되었다. 네 귀퉁이의 백합과 중앙의 십자가, 그리고 파란색 바탕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물론 백합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파일:attachment/pt30081.jpg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에 나부끼는 몬트리올 시기(市旗), 캐나다의 단풍기, 그리고 퀘벡의 백합기.

지금은 캐나다 전체의 상징인 단풍 문양은 과거에는 퀘벡 및 프랑스어캐나다의 상징이었으나 그러한 깃발의 의미는 완전히 역전되어 대신 백합의 문양이 퀘벡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관공서, 상점, 주택, 자동차 등 퀘벡 도처에서 단풍기와 백합기가 쌍으로 휘날리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마치 퀘벡인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2.3. 표어

표어는 "Je me souviens(나는 기억하노라)." 이는 자신들의 선조들의 전통, 혈연, 기억을 잇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3. 퀘벡인

퀘벡처럼 언어가 민족의 구분점으로서 확연하게 작용하고 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흔히 퀘벡 출신 사람을 프랑스계 캐나다인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그것은 혈통적 구분이라기보다는 언어적 구분, 즉 프랑스어권 캐나다인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퀘벡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다 프랑스계 조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여느 이민사회가 그렇듯이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도 섞여있기 때문에, 혈통보다는 프랑스어가 모어인지가 퀘벡인을 결정짓는다. 즉 퀘벡인은 퀘벡에 살며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다. 퀘벡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디 사람입니까?'하고 물어본다면 프랑스어 화자의 백 명 중 99명은 스스로를 캐나다인이 아닌 Québécois(e)라고 답할 것이다. 반면에 영어 화자에게 묻는다면 거의 모두 캐나다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성(姓)이 딱 봐도 프랑스계인 사람이라도 다른 주에서 영어를 쓰며 살고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를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퀘벡에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에도 소수나마 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어/프랑스어 양쪽이 공용인 뉴브런즈윅 주에 살고 있는 아카디앵(Acadien)들이 있으며, 이들은 스스로를 퀘벡인들과 완전히 남남이라고 인식한다. 온타리오에도 스스로를 프랑코옹타리앵(Franco-Ontarien)이라 칭하는 소수의 프랑스계가 있으며, 한국에도 《내 생애의 아이들》 등의 작품이 번역된 퀘벡 소설의 대모 가브리엘 루아(Gabrielle Roy)도 매니토바위니펙의 프랑스어권 동네 생보니파스(Saint-Boniface) 출신이다. 아카디앵들과 프랑코옹타리앵들은 각각의 프랑스어 억양이 또 퀘벡 불어와는 다르다.

영어권 캐나다인이 영국인이 아니듯 퀘벡인들 역시 프랑스어를 쓴다고 해서 프랑스인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 전부터 프랑스 본토로부터 방치된 이후 이들은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Canadien(ne)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캐나다 통계에 따르면 28.9%의 퀘벡인이 스스로를 프랑스계라고 답했으나 스스로를 캐나다인이라고 답한 퀘벡인은 60.1%이었다. 7년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퀘벡과 카리브 해 식민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는데 아이티라는 꿀과 비교해서 돈도 안되고 골치 아픈 퀘벡을 버린다. 그렇기에 샤를 드 골이 속죄한답시고 자유 퀘벡 만세를 외친 것. 이들에게 프랑스는 그냥 같은 말을 쓰는 나라 정도(물론 그 한 가지만으로도 받는 문화적 영향이 상당하기는 하다). 한국에서는 퀘벡을 보고 흔히 작은 프랑스, 북미의 프랑스 같은 표현을 쓰는데 프랑스와의 유대감은 크지 않다. 오히려 뉴욕 주,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 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문화적으로 프랑스보다는 미국에 가깝다. 스포츠도 축구, 럭비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과는 다르게 퀘벡인들은 아이스하키, 농구, 미식축구를 많이 보기도 하며 교육 시스템에서도 그랑제콜 과정이 있지만 입학선발과정 및 고등교육을 보면 북미에 더 가까운 편.

대영제국의 일원으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관심이 없는 퀘벡인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보수당 정부는 프랑스를 도웁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벌였는데 반응은,

우리가 왜 남인 프랑스를 도와야 하나요?

완전히 역효과가 나서 항쟁까지 벌어졌다. 보수당 정부는 강제징병까지 실행했으나 전쟁이 1년 뒤에 끝나자 흐지부지 마무리가 되어 더 큰 사건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향후 70년간 연방투표에서는 1958년을 제외하면 모두 캐나다 자유당이 승리하게 된다. 캐나다는 연방국가로 연방의회 선거와 주의회 내 선거가 따로 행해지며, 주의회 내 당도 연방정당과 따로 존재한다. 이러다 보니 지역 제휴정당이 없는 주도 있거나 지역정당 이름에 진보가 들어가는데 정작 실제 이념이 보수당과 가까운 경우도 생기는 편. 마니토바, 온타리오 주의 보수정당 이름이 진보보수당이다. 다만 주 내에서는 보수당 출신의 모리스 뒤플레시가 새로운 보수정당인 국가연합당을 창당, 연방 보수당과의 관계를 단절 후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해 퀘벡의 암흑기(Grande Noirceur)를 이끌게 된다. 심지어 카톨릭 교회와의 유착이 심각해 대놓고 "천국은 파란색(국가연합당), 지옥은 붉은색(자유당)" 식의 색깔론 드립을 치기도 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이때는 연합군을 도와 추축국과 싸우기 위해 퀘벡인들이 상당히 협조적으로 나왔던 것.

4. 언어

4.1. 프랑스어

1977년 퀘벡주 의회에서 통과된 Bill 101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유일한 공용어이다. 이 때문에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 공식 SNS 계정에서도 프랑스어와 영어 게시물을 각각 따로 올린다.

4.2. 영어

퀘벡 주에도 영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이 대략 10% 못 되게 있다. 몬트리올 같은 도시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 큰 불편은 없지만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모든 간판은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고 영어 한 마디도 못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5. 역사

5.1. 프랑스인 이주 이전

원래는 타 지역이 그렇듯이 소수의 원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이 지역을 발견하여 이 일대를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하였다. 1604년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펀디 만 일대를 탐험하고 원주민과 모피를 교환하였으며 이를 통해 겨울을 나는 법을 배운 샹플랭 일행은 그 일대에 일시적으로 정착을 하였다. 하지만 남쪽의 영국인들의 북상에 위협을 느낀 샹플랭은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1608년 모피 교역소를 세웠는데 이 교역소가 퀘벡 시의 시초가 된다.

5.2. 누벨 프랑스

이후 이 일대는 식민지화가 진행되어서 리슐리외에 의하여 일백조합인상사(Compagnie des Cent-Associés)가 설립되어 식민지 교역을 독점하였고 지속적으로 원주민과의 모피 교역을 확장해 나갔다. 몬트리올도 이런 확장을 통해서 1642년 건설된 도시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적은 인구로 인하여 식민지 운영이 쉽지 않았고, 루이 14세는 '왕의 딸들(King's Daughters)'이라 불리게 되는 약 800명의 여자들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 '왕의 딸들'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있다.

1660년 당시, 프랑스 정착민들의 인구는 겨우 2500명이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정착민들이 상당수 왔지만, 죽거나 프랑스로 되돌아가는 수도 많았다. 오늘날 캐나다와 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계 1천만 명은 초기 정착민 2,600명의 후손들이라고 하며, 이들은 유전적 다양성이 적어 관련 의학 연구에 유용하다고 한다.

하지만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맺어진 위트레흐트 조약에서 루퍼츠랜드와 뉴펀들랜드 섬, 노바 스코샤 지역이 영국에 할양되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퀘벡을 포함해 캐나다의 대부분 지역을 통제하고 있었다. 1756년 일어난 프랑스-인디언 전쟁은 퀘벡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오하이오 지역에서 영국군과 충돌한 프랑스군은 몽칼름 후작의 지휘 하에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하며 영국군을 봉쇄했는데 1758년에 이르러 영국의 피트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제임스 울프 장군과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역공을 개시한다. 이러한 역공으로 인해 프랑스군은 퀘벡 시 일대까지 물러났다. 1759년 9월 퀘벡 근교의 아브라함 평원에서 양측 군대가 회전을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몽칼름 후작과 울프 장군 모두 전사를 하는 격전 끝에 영국군이 승리하였고 완전히 포위를 당한 퀘벡시는 결국 영국군에게 항복한다.

그렇지만 아직 몬트리올의 프랑스 군과 총독은 항복을 하지 않았고, 이들은 본국에서의 지원을 기다리며 퀘벡을 탈환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퇴각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본국에서의 수송선은 영국 해군과의 해전에서 패퇴한 시점이었으며 결국 1759년 영국군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7년 전쟁의 종결과 함께 맺어진 파리 조약에 따라서 퀘벡은 영국에게 할양되었다.

말하자면 신세계를 정복하려고 왔다가 자신들이 정복당한 역관광 상황. '정복당한 정복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5.3. 영국령 캐나다

전쟁의 와중에 충성심에 의문을 품고 강제로 축출시킨 아카디아의 프랑스 인들을 제외하면 파리 조약 이후 퀘벡 지역 프랑스인들은 그럭저럭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고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종교 그리고 민법을 고수하는 게 가능했다.

미국 독립과 함께 영국계 왕당파 5만 명이 캐나다에 이주를 하면서 영국은 상 캐나다(Upper Canada)와 하 캐나다(Lower Canada)로 지역을 분할 하였는데 이중 하 캐나다가 바로 지금의 퀘벡 주이다. 이런 상태는 19세기까지 이어졌으며 이 당시 양 캐나다에서 지속적으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자 1841년 통합령을 통해 양 캐나다를 하나로 합친다. 이어 1867년 공표된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안에 따라서 캐나다 자치령이 출범한다.

5.4. 캐나다 자치령

캐나다 자치령은 출범 직후 4개의 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퀘벡 주였다. 캐나다 자치령은 이후 웨스트민스터 헌장에 따라서 주권을 가지고 독립을 하게 된다. 이 당시 퀘벡은 상당 부분의 경제권이 영국계들에게 있었으며, 특히 미국의 산업적 발전과 연계하여 몬트리올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많은 영국계가 몬트리올에 거주하게 되었다. 한편 프랑스계들은 많은 수가 농촌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규범 아래에서 생활을 하였다. 일부 프랑스계들은 도시로 이주하여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그 결과 퀘벡의 주요 자본은 영국계가 장악하고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프랑스계들은 하층민으로 머물게 되었다.

5.5. 조용한 혁명

1960년,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집권한 퀘벡 자유당은 주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제 개발을 실시하며 퀘벡의 경제 주도권을 영국계로부터 빼앗기 시작한다. 중도~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캐나다 자유당과는 다르게, 퀘벡 자유당은 중도우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분류된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영국계들이 소유하고 있던 수력 발전회사인 위드로-퀘벡(Hydro-Québec)의 국유화였다. 현재도 퀘벡 주 내의 전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담당하고 있던 교육, 의료 부문을 정부가 통제하기 시작하였으며, 프랑스어의 사용이나 프랑스계 문화 보존에 대한 법률이 지속적으로 통과되었다. 사회 복지와 노조에 대한 지원도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조용한 혁명으로 불리며 퀘벡의 프랑스계들은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아닌 퀘벡인으로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재의 퀘벡이 완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영어 금지령 등 이러한 퀘벡 정체성 찾기 정책들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퀘벡을 떠나 온타리오 등 영어권 캐나다로 빠져나가고 원래 캐나다 최대 도시였던 몬트리올도 영어권의 토론토에 인구에서 밀려 제2의 도시로 떨어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6. 정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와 함께 진보성향이 강한 주로 유명하다. 특히 현 총리인 쥐스탱 트뤼도의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로도 유명하다. 2011년 총선때는 신민주당과 퀘벡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66%를 득표하였고 보수당은 16%를 득표하였다. 어떤 주와 정반대다. [5]

그러나 이게 예전같지는 않는지 2018년 주 선거에서는 자유당과 퀘벡당이 폭망하고 보수당과 제휴를 맺고있는 퀘벡미래연합이 단독 과반을 채워 집권했다. 퀘벡미래연합은 이민 제한, 공무원 종교 의상 (부르카) 착용 금지 등 보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한자릿수의 지지율을 보였던 퀘벡 연대[6]도 기존 3석에서 16%의 득표율로 10석을 얻는 등 상당히 선전했다.

7. 분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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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의 애국자" 퀘벡 화가 앙리 쥘리앵, 1887년 작품. 이 그림은 훗날 퀘벡 주권 운동의 상징으로 쓰이게 된다.

퀘벡인들에게 사상 최대이자 현재진행형인 떡밥.

7.1. 자유 퀘벡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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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몬트리올 국제박람회. 시청 광장 앞에 모인 군중에게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은 발코니에 나서서 연설을 시작한다. 세인트로렌스 강을 내려오면서 맞이한 수많은 환호하는 군중을 보면서 독일에게서 해방된 파리에 당당히 재입성했을 때를 상기했노라고. 짧은 연설은 이런 말로 맺었다. 위의 영상 5분 55초부터 보면 된다.
몬트리올 만세!(Vive Montréal!) 퀘벡 만세!(Vive le Québec !) (환호)
자유... 퀘벡 만세!(Vive le Québec... libre !) (기나긴 환호)
프랑스계 캐나다 만세! 그리고 프랑스 만세!(Vive le Canada français ! Et vive la France!) (환호)

군중은 열광했고, 프랑스-캐나다의 외교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급냉했으며, 퀘벡의 문제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자유 퀘벡 만세는 퀘벡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구호가 되었다.

드 골 자신도 이 발언이 아수라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이것이 예전 퀘벡에게 행한 프랑스의 배반을 회개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리고 당시 캐나다의 수상이었던 피어슨에게 어그로를...

7.2. 10월 위기

드 골의 이 발언이 있은 후 1970년 캐나다의 퀘벡 해방전선(FLQ)은 몬트리올에서 퀘벡 지방 내각 관료인 피에르 라포르테와 영국 외교관 제임스 크로스를 납치하는 엄청난 짓을 벌이게 된다. 10월 5일 크로스를 먼저 납치한 FLQ는 8일 방송 인터뷰를 신청하였으며, 이어 10일 라포르테까지 납치한 뒤 11일 대대적으로 자신들의 납치 사실을 알렸다. 사실 FLQ는 드 골의 이 발언이 있기 전인 1963년부터 활동을 해 온 조직이었다.

이에 12일 몬트리올에 있는 캐나다 연방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파견되었으며, 14일에는 인질들과 정치범들을 바꾸는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결국 협상은 15일 결렬되고 만다. 이에 퀘벡 주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군대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며 반대로 퀘벡 분리주의자들은 몬트리올 대학에 모여 FLQ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며 과격한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앞서 13일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 'Just watch me'라고 대답하여 흔들림없는 사태 해결을 공헌한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결국 16일 새벽 4시를 기점으로 전시조치법을 발동하고 계엄령을 내린다. 이 'Just watch me'는 피에르를 넘어 전 캐나다인이 기억하는 유명한 명언이 된다.

이에 17일 FLQ는 라포르테를 처형하였으며 남은 사람인 크로스의 목숨을 대가로 FLQ 헌장의 선언, 23명의 정치범 석방, 자신들의 쿠바 및 알제리로의 망명 허용 등을 협상하기 시작했다. 라포르테의 시체는 세인트 허버트 공항 근처 덤불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로 인해 FLQ에 대한 퀘벡 일반 시민들의 지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시조치법에 대한 일부 비판이 일긴 했지만 정부는 결국 11월 6일 FLQ의 중요조직인 셰니어 셀을 발견하고 이를 급습해 3명은 놓쳤지만 1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길어지는 협상과 좁혀오는 수사망에 지친 납치범들은 12월 4일 쿠바로의 망명만을 대가로 크로스를 석방했으며, 납치범 중 5명이 쿠바로의 망명에 성공했다.

12월 23일 트뤼도는 1월 5일까지 군대가 퀘벡에 머물 것을 선포했으며, 12월 28일 도망친 셰니어 셀의 3명의 멤버를 체포함으로서 사건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FLQ는 해체되었으며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퀘벡 분리 운동은 주류에서 멀어져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고, 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독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FLQ의 폭력적이고 테러리즘적인 분리 운동이 오히려 퀘벡 주민들의 반작용을 일으켜 전시조치법에 대한 지지가 되어버렸고, 압박을 받은 FLQ는 결국 자신들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이 때 발동된 전시조치법은 캐나다 역사상 처음이자 아직까진 마지막인 평시 전시조치법 발동이었다고 한다.

7.3. 두 번의 국민투표

20세기 들어서도 퀘벡의 민족주의 열기는 꺼질 줄 모르고 결국 두 차례, 연방에서의 퀘벡 독립을 결정할 퀘벡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총투표가 실시되었다.

1980년 5월 20일, 퀘벡의 입법권, 징세권, 외교권 등 국가로서의 주권 획득을 골자로 하는 분리 독립에 대한 투표가 실시되었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반대: 2187991 (59.56%)
  • 찬성: 1485851 (40.44%)

같은 날 저녁, 퀘벡당의 창시자이자 당시 퀘벡 정부의 총리였던 르네 레베크(René Lévesque)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긴다.
Si je vous ai bien compris, vous êtes en train de nous dire à la prochaine fois!
'제가 여러분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여러분은 지금 저희에게 '다음에 또 봅시다!'라고 말하고 계시는 것이군요.
그리고 이 예언(?)은 실현되어, 1995년 다시 한번 투표가 실행되었다. 프랑스영국은 이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 당시 캐나다의 총리이던 장 크레티앵은 퀘벡 주 몬트리올 지역구 출신이기 때문에, 퀘벡이 독립하게 되더라도 크레티앵이 캐나다의 총리로 남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약 67%가 독립을 반대하리라는 초기 설문 결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약 1% 근소한 차이로 무산되었다.
  • 반대: 2362648 (50.58%)
  • 찬성: 2308360 (49.42%)

두 번째 투표에서 더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는 것이 주의할 만하다. 실제로 첫번째 투표에서는 분리를 지지하는 퀘벡인들도 분리 독립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그리고 1982년의 새로운 헌법 제정 당시 퀘벡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이 안 되었다는 분노감, 이후 개헌을 위한 미치 호수 협정(1987)이나 샬럿타운 협정(1992)이 둘 다 무산되었다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1982년 당시 자유당에 대한 퀘벡인들의 분노는 대단해서 1980년 연방선거 당시 75석 중 1석만을 차지하고 있던 보수당이 1984년 선거에서는 무려 58석, 1988년 선거에서는 63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퀘벡에서 보수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보수당의 1917년 강제징용 사건 이후 처음. 물론 보수당도 개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1993년 선거에서는 다시 1석으로 대패(...)하게 되고, 퀘벡당이 54석을 차지하게 되어 일개 한 주의 정당이, 캐나다 연방 전체 내 야당으로 등극하게 된 분위기 아래서 두번째 분리 독립 투표가 행해졌던 것이다.

지금도 대표적인 주권파 일간지인 르 드부아르(Le Devoir)는 퀘벡 주경일마다 독립이나 세번째 투표에 대한 떡밥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선진국 사회의 민족주의 열기는 많이 수그러들었고, 퀘벡인이 받는 차별도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세번째 투표가 실시될 확률은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2014년 퀘벡 주의회 선거에서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당인 파티 케베쿠아(Parti Quebecois)가 독립 떡밥을 던졌지만 결국 의석을 24석이나 더 잃고, 반독립주의적인 퀘벡 자유당이 압도적으로 이겨버렸다.

독립은 무산되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퀘벡인들은 그다지 '캐나다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경제, 정치의 실리적인 이유로 다른 영어권 주와 연방 내에 동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캐나다인들도 퀘벡이 비록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거의 '다른 사회' 취급을 하고 있다.

2010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퀘벡의 프랑스어 화자들의 3분의 1은 자신을 오롯이 '퀘벡인(Québécois, 퀘베쿠아)'이라고 지칭하고, 39%는 '캐나다인'이라고 인식은 하나 그 전에 앞서 '퀘벡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다고 한다. 오직 20% 미만이 자신을 '퀘벡인이자 동시에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하며, 7%만이 '퀘벡인' 전에 '캐나다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오직 '캐나다인'이라고만 소개하는 사람들은 1%에 그쳤다. 출처[7]

7.4. 퀘벡의 분리?

퀘벡 북부에 살고 있는 수만 명 규모의 원주민들은 퀘벡이 독립한다면 자신들은 그 독립된 퀘벡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퀘벡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영토가 북부의 소수의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는 거대한 땅이며 만약 독립 시 원주민들의 분가를 인정한다면 퀘벡의 실제 영토는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 퀘벡의 인구에서 원주민 비중은 공기에 가깝지만 원주민 비중이 70% 정도인 노르 뒤 퀘벡(Nord-du-Québec) 지역[8]만 빼도 퀘벡의 영토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버린다.

또한 몬트리올과 퀘벡-온타리오 국경지대에는 어느 정도의 영어권 인구가 살고 있으며 몇몇 이들은 '퀘벡이 캐나다와 투표를 통해 분리가 가능하다면 퀘벡 그 자체도 투표를 통해 분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영어권이 많은 일부 몬트리올 지역이나 퀘벡의 마을은 원한다면 캐나다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권 주민들은 노르 뒤 퀘벡(Nord-du-Québec)과 코트노르(Côte-Nord) 북서부 지역은 1898년부터 1912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퀘벡에 편입된 지역들로, 오리지널 퀘벡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 지역의 주민들이 캐나다에 남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데, 독립된 퀘벡이 갖고 가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뉴펀들랜드 래브라도로 가는 짧은 경로를 만들기 위해 이러한 주장들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이들 지역이 인구가 희박해서 캐나다에 잔류해야 한다고 주장되는 북부 지역만을 거쳐서 나머지 캐나다에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로 가기 매우 힘들지만, 남부 퀘벡만 독립하면 캐나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나머지 캐나다에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로 가는 고속도로를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퀘벡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제법을 근거로 반박한다.

2018년 퀘벡 주 지방선거에서 독립을 반대하는 연방주의 보수 정당인 미래연합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독립가능성은 낮아졌다.

7.5. 퀘벡이 캐나다에서 독립하게 된다면?

캐나다의 입장에서 퀘벡 독립이 야기하는 문제는 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퀘벡 독립과 함께 캐나다의 일부 영토가 월경지화된다는 점이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퀘벡과 인접한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동부의 영어권 주(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들이 캐나다 중서부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고립 영토가 된다는 것이다. 마치 미국의 알래스카 주처럼 말이다. 그나마 알래스카는 미국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긴 해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태평양 연안의 미국 본토 지역과 거리가 비교적 가까워 수운이나 항로를 통해서 미국 정부의 통제가 가능하지만 퀘벡은 분리 독립할 시 퀘벡과 인접한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동부 주들이 아제르바이잔나히체반처럼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형국이기에 독립 국가 퀘벡에 가로막힌 월경지가 될 경우 미국의 알래스카처럼 캐나다 정부가 통제하기 굉장히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퀘벡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동부 영어권 주들도 퀘벡과는 별도로 소수지만 연방에서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다.[9]

때문에 지금 퀘벡의 영토가 캐나다에서 떨어져나가 캐나다 중서부 지역과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동부 주들이 독립된 퀘벡의 영토에 가로막혀 고립된 월경지가 된다면 연방 내에 잔류할 확률은 매우 낮다.

윗문단의 내용을 볼 때, 일단 래브라도로 가는 육로형 국토는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뉴브런즈윅으로 가는 육로형 국토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세인트로렌스 강 이남 지역도 미국 국경 바로 인근을 제외하면 프랑스어 화자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국경 지자체에서도 프랑스어 화자가 우세해진 상태이다.

게다가 퀘벡과 캐나다 동부 지역의 영어권 주들만큼은 아니지만 앨버타나 서스캐처원, 브리티시 컬럼비아, 메니토바, 유콘, 노스웨스트, 누나부트 등 캐나다 서북부 지역의 영어권 주와 준주들에서도(특히 앨버타) 두 차례씩이나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분리독립, 연방 이탈을 시도했던 퀘벡처럼 분리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분리 독립을 하거나, 또는 다른 신생 연방 국가로 따로 분리독립해 결성하거나 미국의 연방 주로 가입, 합병하자는 분리주의 의견이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다. 사실 캐나다는 미국이나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다른 아메리카 대륙의 영토 대국들보다 느슨한 국가적 정체성을 지닌 나라인 것이다. 만약에 그리된다면 캐나다는 과거 중남미에 존재했던 대콜롬비아 공화국[10]이나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11], 페루-볼리비아 연합[12]처럼 여러개의 북미 소국들로 분열되거나 아예 캐나다 국가 자체가 해체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7.5.1. 퀘벡이나 인접 동부 캐나다 주들의 역분리 또는 분리 가능성

또는 퀘벡이 독립할 때 퀘벡과 근접한 여타 대서양 연안 캐나다의 주들이 독립국이 된 퀘벡에 병합해 퀘벡 영토가 되어 캐나다 연방에서 나가거나 또는 퀘벡과 이들 캐나다 동부 대서양 연안의 나머지 주들이 한 나라로 통합하여 캐나다와는 다른 독자적인 신생 연방국가로 독립해나가는 방안도 고려해볼수는 있다.

퀘벡 분리론자들은 퀘벡의 일부 지역이 퀘벡에서 분리되면 뉴브런즈윅까지 갈 수 있는 일종의 육로형 국토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되면 퀘벡에서 미국을 바로 갈 수 없어 퀘벡인들의 많은 반발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지 않다. 퀘벡인들 입장에서는 원래 퀘벡 땅이 아니었고 독립 반대여론이 우세한 북부 지역을 원주민이 많다는 이유로 캐나다에 놔두고 나가라는 것도, 앞으로 북극항로를 통해 아시아와 교역하기 힘들어지는 등의 이유로 반발할 텐데, 불어권 주민들이 많은 남동부까지 놔두고 가라고 하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가 캐나다의 월경지가 될 것이다. '캐나다 땅만 밟아서 여행하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래브라도까지 페리를 타고 다시 캐나다 정부에서 건설할 고속도로를 거쳐서 삥 돌아서 가야 한다. 결국 이들 지역은 미국 북동부와 더 밀접해질 가능성이 높고, 미국 합병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이들 3개 주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독립된 연방국으로 분리독립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으로 합병할 경우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주는 인구가 과소하여, 인구가 14만밖에 안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지역에 상원의석 2석과 하원의석 1석을 주기 싫어할 미합중국에서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뉴브런즈윅이나 노바스코샤 중 하나에 통합할 것을 연방 가입 조건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분리독립안도 유력한 방안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 뉴펀들랜드래브라도 등 여타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주들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퀘벡과는 상이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쓰는 퀘벡과 달리 이들 주들은 언어도 영어를 사용하는 등 사용 언어도 다른데다 독립국가가 된 퀘벡에 합병되어 설사 독립국이 된 퀘벡이 이웃국가인 미국이나 캐나다와 비슷하게 지방내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제를 실시하여 이들 지역에게 자치권이나 영어 사용권을 보장받는다고 쳐도 신생국가 내부에서 퀘벡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을 확률이 아주 높다. 그나마 뉴브런즈윅 주는 퀘벡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이력이 있었고 퀘벡보다는 못해도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꽤 되는 등 퀘벡이 분리 독립할 시 퀘벡과 병합해 퀘벡 영토가 되거나 신생국 퀘벡으로의 병합을 조건으로 퀘벡과의 합병 후 수준높은 자치권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지만, 프랑스어 구사자가 적고 영어 사용자가 더 많은 노바스코샤나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같은 다른 나머지 동부 지역 주들은 캐나다 연방에서 이탈해 퀘벡에 병합되는 것을 선택할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떠나서 이들 대서양 연안의 캐나다 동부 주들이 퀘벡에 병합해 연방에서 이탈하게 될 경우 캐나다는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대서양 연안의 영토와 영해들을 전부 잃게 되니 캐나다 입장에서도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퀘벡 시 등이 속해있는 퀘벡 남부 지역만 독립국으로 독립하고 퀘벡 북부의 노르딕 퀘벡 지역이 캐나다 영토에 남게 된다면,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뉴펀들랜드래브라도주와 영토가 연결되어 캐나다가 대서양 영토를 상실하지 않고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고, 뉴브런즈윅이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 등 관리하기 힘든 월경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퀘벡과 인접한 나머지 캐나다 동부 주 영토들은 캐나다가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노바스코샤에 대한 지배권을 신생국 퀘벡에게 이양하고 영유권을 포기하거나 연방 이탈 밑 분리독립을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그렇게 되면 빨강머리 앤의 출신 국가는 캐나다에서 퀘벡이나 캐나다에서 분리된 북미 신생국가 소속이 되는데

7.6. 이중언어 국가 안의 퀘벡

1969년 7월 7일, 공용어에 대한 법이 도입되어 불어가 모든 연방정부의 영역에서 영어와 동등한 위치를 획득하였다. 또한 연방정부는 퀘벡의 분리독립 열기를 사그러트려 분리독립을 막기 위해 갖가지 정치적 편의를 제공하였다. (인구수에 비해 많은 국회 의석, 문화/언어적 인정, 국영 가톨릭학교 제도 등).

총리는 당연히 두 언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실제로 기자가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프랑스어로 질문하면 프랑스어로 답하는 영문영답 불문불답의 진풍경을 볼 수가 있다. 공식 대담을 할 때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번갈아가면서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환경에서도 프랑스어가 우세하여, 한국의 고3, 대학교 1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대학 예비학교인 CEGEP 과정도 프랑스어 학교가 주류이다. 퀘벡 주민들이 퀘벡주 내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선 CEGEP에 진학해야 하며, 대학진학 희망자들은 2년 과정을 밟고 고졸취업 희망자들은 3년 과정을 밟는다. 토론토 대학교 등 지역 바깥 대학교에 들어가려면 굳이 안 가도 된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어권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영어권 CEGEP에 진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 주법 14조를 통해 프랑스어 사용을 강제한 퀘벡 주정부도 고심하고 있는 중. 몬트리올에선 영어권 CEGEP도 있어서 그나마 사정이 나으나 퀘벡시에서는 2016년 시내 유일한 영어권 CEGEP 입학 희망 인원이 정원을 350명이나 초과했다고 밝혔다. 반대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는 초등학교 과정에서의 프랑스어 몰입교육과정 등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거긴 제2공용어가 중국어인데 게다가 2013년 퀘벡주 영어권 CEGEP 학생들이 졸업에 프랑스어 시험을 의무화하는 법률에 반발하여 집단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 에서도 감독을 선정할때 영어, 불어를 유창하게 할수있는 사람들을 뽑는다. 한 때 Randy Cunneyworth가 감독대행으로 취임했을때 불어를 하나도 못한다고 몬트리올 미디어와 팬덤에서 대차게 까여서, 오너인 Geoff Molson이 공개사과를 하고 다음 후임 감독은 영어 불어를 유창하게 할수있는 사람으로 뽑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Cunneyworth 본인도 감독을 하는 동안에 최대한 불어를 배우겠다고 약속했었다.

8. 문화

8.1. 종교

언어 외에 퀘벡을 특징짓는 요소는 가톨릭이다. 종교적 다양성과 세속화가 가속화되는 현재로서야 지금은 그 특징이 많이 약해졌지만, 퀘벡은 서구 사회 중에서도 상당히 늦게 근대화가 이루어져서 20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삶의 전반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곳이었고, 개신교 세력이 지배적이었던 미국과 영국령 캐나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점은 퀘벡의 정체성 중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퀘벡의 지도를 놓고 보면 생(Saint)이나 생트(Sainte)로 시작하는 지명이나 거리 이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성인(聖人)의 이름에 의탁함으로서 거친 퀘벡을 개척해 나가려고 한 과거 이주민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퀘벡의 최대 공휴일은 퀘벡의 수호성인 세례자 요한의 축일인 6월 24일이다. 비록 1960년대 '고요한 혁명'이라고 불리는 퀘벡의 현대화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감소와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이 날의 공식명칭은 민족의 축제(La Fête Nationale)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세례자 요한 축일이라고 널리 불리고 있다. 캐나다 국경일에도 쉬긴 하는데 이들에게는 그냥 쉬는 날일 뿐, 이 날에 이사 등을 한다(...).

2010년 10월 17일, 앙드레 베세트(André Bessette) 수사가 캐나다 최초의 성인, '몬트리올의 성 안드레아'로 시성되었다. 축일은 1월 6일.

8.2. 식문화

퀘벡의 독자적인 식문화라 부를 만한 문화는 없다고 봐도 좋다. 프랑스 식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바게트포도주, 치즈 등이 더 많이 소비되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기름지거나 단 음식, 육류가 많은 것이 특징. 그리고 메이플 시럽(Sirop d'érable)의 최다 생산지이기도 하다. 프랑스어권임에도 캐나다의 다른 지역 음식들처럼 북미권 특유의 투박하면서 기름진 느낌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아침식사부터 계란에 베이컨을 곁들이는 등 영어권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프랑스 본토의 아침식사가 크루아상이나 초코빵에 커피로 땡인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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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Poutine). 1950년대 퀘벡의 농촌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감자튀김체다 치즈와 그레이비 소스를 끼얹은 단순한 음식. 맥도날드에서도 맥푸틴(푸틴)을 팔 정도로 인기가 있다. 맛은 그레이비의 질에 따라서 천차만별. 물론 칼로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대개 1,400~2,000 kcal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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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사이에 훈제한 고기만 잔뜩 끼운 몬트리올 스타일 스모크드 미트 샌드위치. 위 사진은 Schwartz's Deli 라는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80년 된 가게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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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주로 먹는 고기파이 투르티에르(Tourtiè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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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 먹는 설탕 파이.

특이하게 거위보다는 오리 푸아그라를 사용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열량 많은 음식들이 많고 디저트를 즐겨먹지만 캐나다 전체에서 비만률이 제일 낮은 주로 뽑혔다. 링크

8.3. 이민

신대륙답게 이민 유입 인구가 많다. 덕분에 낮은 출산율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아주 서서히 증가하는 중. 2011년에는 8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주로 이민을 받는 나라는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인 모로코, 알제리, 그리고 프랑스. 왠지 프랑스인들에게는 '프랑스(특히 파리)보다 덜 시끄럽고 더 느긋이 살수 있으면서도, 월급은 두 배나 높은 곳'으로 이해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유학도 많이 오는데 몬트리올 대학교의 경우 특히 상경, 이공계의 경우 전체 학생의 30% 가량이 프랑스 국적 학생들로 채워져서 교육 당국에서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 상경은 HEC 몬트리올, 이공계는 에콜 폴리테크닉인데 심지어 이 두 단과대는 그랑제콜 협회에도 가입되어 있다. 협정에 따라 세금 한 푼도 안 낸 프랑스 국적의 학생들도 퀘벡 주민들과 같은 학비를 납부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국에서 500명만 입학 가능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낙방한 학생들의 경우 다른 그랑제콜이나 일반대학으로 진학하기 보다는 몬트리올 대학으로 진학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공동 학위 과정이 있기도 하고, 영어가 주류인 북미에서 유학했다는 자체가 학벌을 중요시하는 프랑스 내에서는 큰 메리트이기 때문. 결국 2015년 퀘벡주로 유학 온 프랑스 학생들도 퀘벡주민들이 내야 하는 등록금의 3배를 내야 하지만 여전히 캐나다 국적이 없는 외국인들이 내야 하는 등록금의 반값이라 원성을 사는 중이다. 기사

다만 이민 유입은 주로 몬트리올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퀘벡 주 전체를 놓고 보자면 다른 캐나다 주에 비해 이민인구 비율은 꽤나 낮은 편이다. 특히 지방으로 들어가면 신대륙답지 않게 거의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상당히 동질적인 인구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흔히 퀘벡 사람들은 몬트리올이 '국제적인 도시'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몬트리올이 북미 대륙의 다른 대도시에 비해 더 국제적이거나 다채로워서 그렇다기보다는 퀘벡 주의 다른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퀘벡 본토인들에게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가 다 그렇듯 한국인 이민도 꽤 있으나 프랑스어가 필요하다는 언어 문제로 밴쿠버토론토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 그리고 얼마 안 되는 한국인들도 프랑스어를 안 배우고 영어만 쓰면서 산다. 그도 그럴 것이 몬트리올에서는 프랑스어 안 쓰고 영어만 써도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를 못한다면 무시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영어를 못하고 프랑스어만 쓰는 사람들은 많아도 프랑스어를 못하고 영어만 쓰는 몬트리올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한국인 이민자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프랑스어 구사 여부라고도 한다. 몬트리올에 이민 온 예전 중국인 이민 세대는 영어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도움이 되는 프랑스어를 배웠기 때문.

2012년 들어 퀘벡 정부가 이민법을 강화해 불어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신규 이민자들은 불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전 세대들보다는 좀 더 잘하는 수준이 되었다. 불어만 잘하면 이민이 오히려 쉽게 되어서 프랑스 쪽에서 건너온 한국인도 늘고 있는 추세.

8.4. 스포츠

캐나다의 묻지마 아이스하키 사랑은 기본이고, 아이스하키의 발상지가 퀘벡 맥길 대학교[13]라, 주의 최고 인기팀은 단연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이다.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별명인 햅스(Les Habitants을 줄인 말)로 부른다. 또한 주도 퀘벡 시에 한때 레 노르딕 드 퀘벡이라는 NHL 팀이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퀘벡 시를 떠나 콜로라도 애벌랜치가 되었다. 그 중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어권 지역이라 선수수급과 관중동원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였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러나 상당수 선수들이 비프랑스어권 선수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 합당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매츠 선딘, 조 새킥, 그리고 페터 포스베리 등은 한때 퀘벡 노르딕스에서 스타 플레이어들로 명성을 쌓았던 비프랑스어권 선수들이다. 또한, 아이스하키계에서 유독 뛰어난 골텐더를 많이 배출하는 주가 퀘벡 주이다. NHL 역사상 최고의 골리로 평가받는 햅스 레전드 파트릭 루아(Patrick Roy), 뉴저지 데블스의 NHL 통산 최다승, 최다경기, 최다완봉 기록 보유자 마르탱 브로되르(Martin Brodeur)등 퀘벡 출신 골리들의 NHL에서의 활약상은 다른 주나 다른 국가를 압도한다. 이는 파트릭 루아를 통해 완성된 이른바 퀘벡 버터플라이라는 하나의 골텐더 수비 방식으로 전승될 정도.

몬트리올의 경우는 퀘벡 주 최대 도시고 빅 마켓이라 MLB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2004년 재정문제로 팀이 매각되어 미국으로 팔려가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었다. 엑스포스가 떠난 이후 햅스 외의 미국 4대 스포츠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외에는 MLS앵팍트 드 몽레알, CFL의 몬트리올 알루에츠가 있다.

또한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재정부담으로 올림픽 개최 후유증을 크게 겪기도 했다.

8.5. 유명인

아직은 퀘벡이라는 곳이 나라가 아니라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곳이기도 하고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쓴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기에 퀘벡인이 외지에서 유명해지면 그냥 '캐나다인' 아니면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퀘벡 하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유명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퀘벡인을 몇 명 뽑아보자면

8.5.1. 음악가

  • 셀린 디옹
    퀘벡이 낳은 몇 안 되는 세계적인 스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로 유명하다. 물론 퀘벡 및 프랑스어권 밖에서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며, 실제 영어 실력도 유창하다. 그래서인지 퀘벡인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며, '디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은 캐나다 가수며, 북미에서의 활동 못지않게 프랑스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는 가수다. 프랑스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셀린 디옹이 말하는 퀘벡 프랑스어가 프랑스인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래서 종종 프랑스 코미디언들에게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앙드레 가뇽
    뉴에이지 작곡가. 첫날처럼(Comme au premier jour), 조용한 날들(Les Jours Tranquilles), 바다 위의 피아노(Un Piano Sur La Mer) 등으로 유명하다. 이쪽은 왠지 프랑스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 스티브 바라캇
    마찬가지로 뉴에이지 음악가로 레바논 이민자 2세 출신이다. 다만 이름은 영어식인 것이 아이러니.
  •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수퍼 비르투오소로 테크닉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피아니스트이며 괴작Circus Galop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 프랭크 밀스(Frank Mills)
    피아니스트. 한국에서는 80년대 뉴스데스크 날씨예보 삽입곡인 'Music Box Dancer'로 유명하다.

8.5.2. 스포츠 선수

  • 마크 가뇽
    쇼트트랙 선수. 1990년대 초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까지 활동했다. 최초로 세계선수권 종합부분 4회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안현수가 2007년에 5년 연속 우승하면서 깨졌다. 한국에서는 '마크 개그넌'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
  • 조아니 로셰트
    몬트리올 출신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 여자 싱글 부문 선수로, 2009년 세계 선수권 은메달, 2008, 2009 4대륙 선수권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5년 ~ 2010년 캐나다 선수권에서 6회 연속 우승하였다. 자국에서 열린 2010년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 직전에 모친상을 당했으나,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총 합계 점수로 202.64를 기록하여 김연아·아사다 마오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퀘백 출신이라서 그런지 캐나다에선 대부분 프랑스어권 방송에 출연하는 편이며, 프랑스에서도 인지도가 꽤 높은 피겨 선수이다.
  • 마리즈
    WWE 프로레슬러
  • 펠릭스 렝겔
    전(前) 오버워치 리그팀 댈러스 퓨얼 소속 메인탱커, 2017 오버워치 월드컵 캐나다 소속인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8.5.3. 영화계 인물

프랑스 문화권이 지배하고 있는 퀘벡이다 보니 영어권계 캐나다 영화계와 다른 퀘벡 영화라는 게 있다. 물론 캐나다 특성상 영어권 캐나다 영화계하고도 교류가 있는 편.
  • 자비에 돌란
    퀘벡 출신 배우 겸 감독. 호러 팬들에게는 프랑스 호러 영화인 《마터스》에 나온 걸로 유명하다.

8.5.4. 기타

  • 도미니크 노엘
    대한민국 방송인으로 미녀들의 수다에서 캐나다 대표로 출연했던 도미니크는 몬트리올 출신으로, 현재는 연세대 유학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다.

9. 주요도시

  • 몬트리올(Montréal) : 퀘벡 주의 최대도시. 프랑스어 발음은 몽헤알에 가깝다.
  • 퀘벡 시(Ville de Québec) : 퀘벡 주의 주도.
  • 셰르부르크(Sherbrooke)
  • 가티노(Gatineau)
  • 트루아리비에르(Trois-Rivières)
  • 시쿠티미(Chicoutimi)

10. 그 외

Phonetic Alphabet에서 Q에 해당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게임 제작 및 유통회사인 유비소프트는 본사를 프랑스에 두고 있지만 게임 개발을 맡은 유비소프트 몬트리올, 유비소프트 퀘벡 등은 각 이름에 맞는 퀘벡 주의 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1] Lieutenant-gouverneur du Québec. 캐나다 총독(gouverneur général du Canada)이 임명하므로 'Lieutenant'가 들어간다. 명목상 주를 대표하는 직책이지만 실권은 없다.[2] 하원[3] 상원[4] 그러나 실제로는 /kwibék/, '퀴벡'에 가까운 발음을 한다.[5] 2011년 총선때 앨버타에서는 보수당이 66%를 득표했고 신민주당은 16%를 득표했다.[6] 신민주당과 제휴 관계를 맺고있지만, 신민주당보다 급진적이며, 프랑스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멕시코의 국가재건운동과 스탠스가 비슷하다.[7] 이런 식으로 두 개의 정체성을 놓고 어느 쪽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지 물어서 설문 대상자들의 정체성 인식에 관해 통계를 내는 것을 모레노 설문(Moreno Question)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사회학자인 루이스 모레노 페르난데스(Luis Moreno Fernández)가 1986년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 설문을 처음 시도했기 때문에 모레노 설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8] 인구 42,579명에 면적 747,161km².[9]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의 경우 캐나다 독립 초기 본래 캐나다령이었던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주와 달리 캐나다와 분리되어 있던 영국의 해외 식민지였다가 1949년에 가서야 캐나다 연방에 가입하는 등 현재 캐나다 영토가 된 시기가 70년도 채 되지 않는다.[10] 시몬 볼리바르 실권 후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로 분열.[11]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로 분열되어 해체.[12] 볼리비아페루가 1836년부터 통합 연방 국가를 구성하려 했으나 주변국인 아르헨티나칠레의 견제와 방해, 볼리비아와의 통합에 반대하던 페루내 보수주의 세력들의 반발과 저항을 받아 1839년에 해체되었다.[13] 농구의 발상지로는 캔자스 대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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