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1 23:28:09

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

중저항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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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 서울교통공사 위탁
간선 : 여객운송약관에 준하여 운영되는 차량이며, 간선형에 준하는 사양으로 간선형으로도 분류
임대 : 한국철도공사가 소유한 차량이지만, 주식회사SR에 임대되어 운행중인 차량
담당 : 주식회사SR가 소유한 차량이지만, 검수 및 정비를 한국철도공사가 담당하는 차량
예정 : 도입 예정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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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코레일_1000호대중저항.png
경부선 신길역에 정차하는 1000호대 중저항 전동차의 모습.
현재 이 차량과 더불어 모든 중저항 전동차들은 정기 운용에서 이탈하였다. 1x73 편성의 1673, 1773호 객차만이 신저항 1x79편성에 편입되어 다시 운행중.

1. 제원2. 개요3. 특징
3.1. 차량번호
4. 제작 시기별 분류
4.1. 초저항 (1974 ~ 1986)
4.1.1. 1차분(1974년)4.1.2. 2차분(1976~1979년)4.1.3. 3차분(1980~1981년)4.1.4. 4차분(1984~1986년)
4.2. 중저항 (1986 ~ 1992)
4.2.1. 5차분(1986~1989년)4.2.2. 6차분(1991~1992년)
4.3. 신저항 (1994 ~ 1997)
4.3.1. 7차분(1994~1995년)4.3.2. 8차분(1996~1997년)
4.4. 개조저항 (1999, 2002)4.5. 개조 이력
4.5.1. 한국철도공사 신 CI 변경4.5.2. 내장재 불연재화 개조4.5.3. 외부 행선기 LED 개조
5. 관련 문서

1. 제원

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
<1974년형 제원>
전장19.50m
전폭3.18m
전고3.80m
초저항 / 중저항, 신조저항 차중 Tc33.30 / 34.80t
M42.10 / 43.20t
M'46.10 / 47.60t
T33.00 / 33.00t
재질마일드 스틸 용접 구조 연강판[1]
대차코일스프링 탑재 스윙볼스터 방식 대차
출력 전동기120Kw
편성2,880Kw
열차형식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구동방식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운행 노선수도권 전철 1호선 용산-동인천 급행/용산-동인천 특급[2]
급전방식직류 1,500V / 교류 25,000V 60Hz 겸용[3]
운행 최고 속도110km/h
기동 가속도2.5km/h/s[4]
감속도 상용3.0km/h/s
비상4.0km/h/s
신호방식ATS
제작회사 국내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정공
해외니혼차량, 도큐차량, 킨키차량
도입연도1974년~1997년[5]
제어방식직병렬조합 및 약계자 저항제어
동력장치직류직권전동기
제동방식발전제동 병용 SELD 전자직통제동
편성량 수 / 편성 구성량 수86개 편성 (793량) 12개 편성 (120량) / 1개 편성 당 10량
편성번호체계 1x74~1x81,1x83~1x86, 1x73[6]
전동차 비6:4, 8:2 (동력차:무동력차 비)

2. 개요

수도권 전철 1호선에서 운행했던 저항제어 전동차.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된 대형 전동차라는 나름대로 뜻깊은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조성변경이 가장 잦았던 전동차 이기도 하다.[7]

중정비는 오랜 세월동안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용산기지창 또는 용산기지)에서 받았으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로 용산기지가 철거 및 기능 이전되면서 중정비 업무가 시흥차량사업소로 이관되어 시흥차량사업소에서 중정비를 맡고 있다.

2017년 현재 내구연한 만료 등으로 중저항까지는 모두 폐차, 운행중지 되고 신조저항 12개 편성만 잔존, 운행하고 있다. 운행 중인 12개 편성 모두 구로차량사업소 소속이다.[8]

3. 특징

수도권 전철 초기 개통에 맞추어 당시 일본의 통근, 근교형 전동차의 사양을 적당히 섞어서 한국 사정에 맞게 부분 변형해 투입되었다.[9] 초기 도입 차량인 1x01~1x14편성은 당시 증기 기관차, 객차, 화차도 겨우 만들던 국내에서는 제작조차 불가능해 철도 차량 중에서도 동차 제작 기술과 노하우가 풍부한 일본 현지 여러 업체에서 직수입하는 방식으로 도입했으나, 1976년 이후 도입 차량인 1x15편성부터는 전장품을 제외한 부분적으로 국산 제작이 이루어졌고, 차후 1980년대 말 부터는 차량의 제작은 물론 80% 이상의 전장품도 국내에서 자체 제작하여 조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1x74편성부터는 100% 국산화를 이루었다.

101계를 필두로 도입된 전형적인 일본식 통근형 전동차의 4도어 형식 8개 출입문과 3-7-7-7-3 형태의 좌석배치, 슬라이딩 방식의 미닫이 객실 간 출입문이 적용되어 있고, 강철 재질 차체와 직병렬조합 약계자 저항제어, SELD 제동 또한 전형적인 일본국철 차량의 영향을 받아 설계되어 있으나 고속주행에 조금 더 적합한 설계가 이루어져 있다. [10]

한 때 경부선 천안까지 운행할 정도로 1호선에서 안가는 곳이 없었던 저항제어 전동차였지만 차량 노후화로 2015년부터 모든 차량을 경인선 용산 ~ 동인천 급행/특급 전용 으로 운행하고 있다. 단, 서울교통공사 저항차가 경부선 등 장거리 완행을 운행하고 있다.

코레일 3000호대 전동차와 같이 통로문 개조가 되어있지 않다.

콤프레셔의 소음이 상당히 컸었다. 그러다 90년대 후반에 저소음 콤프레셔로 전부 교체했었다.

3.1. 차량번호

코레일의 다른 전동차가 6자리 번호로 개번되는 와중에도 꿋꿋이 4자리 번호를 고수하는 중이다.[11] 거기다가 일부 편성은 후술하듯이 편성 번호[12]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초기 차량들이 내구연한 만료로 인해 폐차되면서 내구연한이 만료되지 않은 부수차들이 남아돌게 되자 남은 차량들을 모아 편성을 재조성할 때 편성 번호 기준이 아닌, "잔여 내구연한"을 기준으로 편성하였기 때문이다.[13]

일반적인 편성 배치는 다음과 같다.
10xx Tc(무동력 제어객차)
12xx M(주저항기, 축전지, 공기압축기 등)
13xx M'(팬터그래프, 주변압기, 주정류기, 주저항기, SIV 등)
18xx T(무동력객차)
14xx M(주저항기, 축전지, 공기압축기 등)
15xx M'(팬터그래프, 주변압기, 주정류기, 주저항기, SIV 등)
19xx T(무동력객차)
16xx M(주저항기, 축전지, 공기압축기 등)
17xx M'(팬터그래프, 주변압기, 주정류기, 주저항기, SIV 등)
11xx Tc(무동력 제어객차)

그러나 위에도 서술했듯이 차량번호를 개정하지 않은 채로 조성만 바꾼 덕에 완벽히 배치가 된 편성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14] 나머지 절반 정도의 차량은 다음과 같은 조성을 보인다.

코레일 저항차[15] 중 유일하게 8M2T 조성인 1x60, 1x61편성 중 160편성의 중간차 중 1265, 1365호는 출입문 유리창이 정사각형이다. 그에 반해 나머지의 출입문 유리창은 전부 직사각형이다. 중간차가 무려 내 개의 다른 편성 중에서 2량씩 차출되어 증결된 특이한 케이스의 편성이다. 아래는 1x60편성의 조성이다. 위에도 서술했듯이 T차는 Tc차를 빼고는 없다.
Tc 1060
M' 1265
M 1365
M' 1262
M 1362
M' 1259
M 1359
M' 1263
M 1363
Tc 1160
  • 증결로 타 편성의 무동력차가 섞인 경우 : 1083-1283-1383-1852-1483-1583-1952-1683-1783-1183
  • 증결로 타 편성의 동력차가 섞인 경우 : 1066-1264-1364-1849-1464-1564-1949-1266-1366-1166

4. 제작 시기별 분류

4.1. 초저항 (1974 ~ 1986)

파일:external/farm8.staticflickr.com/9030346109_a41a8f0c9e_b.jpg
1980년 7월 24일 구로역에 정차한 초저항. 왼쪽은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 소속 차량으로 1001호다. 현재 신정차량기지에 전량 보존되어 있으며, 우측의 1033호[16]는 현재 폐차되었다.

파일:external/farm4.staticflickr.com/9057731299_fc49e5440c_b.jpg
초저항 내부. 천장에 선풍기가 달려 있다. 현재 선풍기를 달고 현역으로 운행하는 열차는 CDC가 전 열차에서 유일하다.[17]

출처

파일:초저항101_우유도색.png
터널 CI 시절 철도청 도색을 한 초저항.[18] 한국철도 CI로 도색되어 운행하던 말년에는 용산역 ~ 주안역 간 급행열차[19]로 운행했다.

파일:attachment/seoul-2001-1.jpg
1995년경 새로이 도색을 한 초저항.[20] (2001년 금정역 촬영)
끝이 어디야???

초저항 구동음과 육성안내방송(1984년 6월)[21]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인 종로선(현 서울 지하철 1호선,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지하구간)과 직통하는 경인선, 경부선, 경원선을 운행하기 위해 대한민국 철도청에서 도입한 전동차이다. 서울지하철공사에서 도입한 같은 전동차와 함께 국내 최초의 통근형 전동차, 국내 최초로 생산한 전동차 등등 오만가지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전동차이다. 한국 도시철도 역사의 산실.

당시 국내에선 전동차 자체를 만들 능력이 없었고, 기차증기 기관차와 객차, 화차를 겨우 만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본을 통해서 수입하였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은 편성을 도입하게 될 경우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 여러 번에 걸쳐 도입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차량 제조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당시, 일본에서 6량 21개 편성[22]을 수입했으며, 이렇게 수입을 해 온 전동차를 수리, 분해, 결합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1976년 대우중공업에서 대한민국 제조 1호기 1x15편성 전동차[23]를 제작할 수 있었고[24], 이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다양한 열차들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25] 이후 계속 증비되어 1979년까지 총 6량*42개 편성 252량이 도입되었다.

시운전은 1974년 4월 9일 오전 10시에 중앙선 청량리역 ~ 양평역 구간에서 이루어졌다(당시 기사 1, 당시 기사2). 1973년 6월 20일에 산업선 전철 구간이 첫 개통되었는데(청량리 ~ 제천 간 개통), 그 구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6량 1편성으로 운행되었다가, 1981년 8량을 거쳐 1986년 최종적으로 10량 편성까지 증결되었다. (흔히 국철이라 불리는) 용산 ~ 성북 구간을 운행하기 위해 4량 1편성 열차도 있었다.

한동안 국내에서 운용되는 유일한 중문열차였다.[26] 원래 서울 지하철의 계획은 여러 편성의 전동차를 병결하여 운행하려고 했다. 이는 러시아워 시간대에는 전동차 2~5편성 정도를 붙여 많은 승객을 나르고, 평시에는 6량 한 편성으로만 운행해서 배차 운영을 유연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하철이라는 물건이 너무 신기하였고, 지하철의 장점이 너무 부각되면서 예상했던 것에 비해 상당량의 승객이 넘칠 정도로 늘어나면서[27] 사실상 흑역사 중 하나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원래 자주 열어 줄 계획이 있던 문이었던지라, 나중에 밀폐가 잘 안 되어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문제점이 있었다.

냉/난방 시설은 상당히 떨어진 편이었다. 1986년 최종 도입분 까지 에어컨 없이 모두 선풍기였고, 이는 당시의 극심한 혼잡률[28]과 함께 여름철 지하철 통근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신문에 심심하면 냉방화 요구가 기사나 독자기고란에 올라올 정도였다. 결국 1987년부터 차내 냉방장치를 에어컨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진행되어 대부분의 열차들이 에어컨으로 개조되었다. 개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개조 차량은 냉방성능이 매우 열악했으며, 일부 차량에서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냉각수가 열차 내부에 떨어지는 등의 문제도 발생하였다. 게다가 저항제어 특성상 가감속시 엄청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하 구간의 찜통 더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대우산 VVVF차량이 도입되던 1998년 하반기부터 퇴역이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후반에 편성단위로 최종적으로 도입된 차량들과 Tc차량은 1998년 12월 21일부터 2004년 6월 24일[29]까지 모두 퇴역하였다.

코레일은 국산화에 성공한 전동차 2량(1115호, 1315호)과 일본제 최초도입분 1량(1001호)을 철도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와는 달리 여기에 보존된 차량의 보관 및 관리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초창기 도색을 유지하던 1001호는 얼마나 관리를 안했는지 내부 누수와 곰팡이로 개방을 중단하고, 이미 철도청 구 도색과 역삼각 로고가 도색된 1115, 1315호에는 KORAIL 같은 당시 도색에 어울리는 글자체도 아닌 완전한 코레일 로고에 비슷한 색을 대강 도색시켜 놓았다.[30][31]


파일:attachment/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DSC02565-2.jpg
노량진역에서의 1x55편성의 마지막 초저항 객차.

코레일 1호선 열차에 드문드문 짬뽕편성으로 들어가 있었다.[32] 원래 6량 1편성으로 도입되었다가 1980년대 초반에 8량, 이후 10량 순으로 길이가 길어졌기 때문에, 초저항/중저항용 차량이라도 10량으로 증결될 때 도입된 차량은 아직 내구연한이 좀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시점[33]에서 초저항 객차가 편입된 차량은 1x42~1x52, 1x55 편성이었으며[34][35] 물론 남은 차량은 모두 불연재 개조가 되어있다. 그러나 2014년을 기준으로 1x55편성에만 초기저항 짬뽕편성이 남아있게 되었다. 이마저도 1x55편성이 2014년 8월 31일을 끝으로 운행 종료를 하면서 코레일에서 초저항 차량은 사실상 완전히 퇴역하게 되었다.[36]

일본 철도 동호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열차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도쿄 지하철 5000계나 도큐 8500계와 매우 흡사한 식빵형 전두부를 지녔으며[37] 그 외에도 일본 국철 101계, 103계, 301계 등과도 비슷한 상자형 전두부 모양과 내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초기분의 경우는 태생이 일본이기도 하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국내에 도입된 철도차량 최초로 불연성 내장재를 적용한 차량이며, 벽과 천장 한정으로 불연재인 멜라민 수지 코팅 알루미늄판이 적용되었다. 다만 바닥재와 좌석은 가연성 재질을 사용했으며, 이후에 등장한 중저항과 신저항은 벽과 천장까지 가연성 FRP 재질로 적용했으며,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에 불연성 재질로 교체하게 되었다.

도입부터 퇴역까지 구로차량사업소 소속이었다.

4.1.1. 1차분(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첫 개통을 대비하여, 일본에서 6량 21개 편성[38]을 직수입하였다.

니혼샤료(일본차량)에서 39량(1001~1701, 1002~1702, 1003~1703, 1004~1704, 1005, 1205, 1305, 1029, 1129, 1030, 1130호)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39량(1105, 1405~1705, 1006~1706, 1007~1707, 1008~1708, 1009~1509, 1031, 1131, 1032, 1132, 1033호)
도큐 차량 제작소에서 24량(1112, 1412~1712, 1013~1713, 1014~1714, 1134, 1035, 1135호)
긴키 차량 제작소에서 24량(1109, 1609, 1709, 1010~1710, 1011~1711, 1012, 1212, 1312, 1133, 1034호)으로
총 126량이 도입되었다.

1차분 차량의 특징은 출입문 안쪽에 연두색으로 페인트칠이 칠해져 있는 것인데, 이후의 코레일 전동차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었다.
1x01~1x14편성은 1998년~1999년에 전 량 폐차 후 신형차랑 3차분으로 대체되었으며 1x29~1x35편성은 2005년~2006년에 신형차량 7차분으로 대체되었고, 유일하게 1001호가 의왕 철도박물관에 보존되어있다.

4.1.2. 2차분(1976~1979년)

1976년 대우중공업에서 일본 측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조립에 성공하여, 현재 기준 1X15편성[39]을 시작으로 1979년까지 6량 21개 편성[40][41]이 추가 도입되어, 1979년 시점에서 초저항 차량은 총 6량 42개편성이 재적되었다. 1x15~1x28편성은 2001년~2004년에 전 량 폐차 후 신형차량 4, 5차분으로 대체되었으며 1x36~1x40편성은 2005년~2006년에 신형차량 7차분으로 대체되었고, 1x41편성은 대체분이 없고, 최초의 국내조립 전동차인 1115, 1315호가 의왕 철도박물관에 보존되어있다. 대다수는 대전정비창/수색에서 고철분해 되었다.

4.1.3. 3차분(1980~1981년)

1980년~1981년 국철 구간(특히 경인선)의 이용객 폭증으로 당시 거의 대부분의 편성이 8량화 됨에 따라, 현대정공, 대우중공업을 통해 동력부수차 68량[42]이 도입되었으며, 이 부수차들이 조성된 1974년산 초기형 1x29~1x35, 1977년~1978년산 중, 후기형 1x36~1x40편성이 2005년~2006년에 전 량 폐차 후 신형차량 7차분으로 대체되었다.

이 당시 현재 기준 1x01~39편성이 8량화 되었고, 1x40편성은 4량화 되었으며[43], 남는 TC 4량(당시 차호 1121,1123,1124,1126)은 1986년까지 구로차량사업소에서 장기간 휴차 되었다.

4.1.4. 4차분(1984~1986년)

8량 편성으로도 한계에 봉착하자, 전국 지하철 최초로 10량화가 되면서 도입된 무동력차(T)들이다. 1984년 7월~8월에 대우중공업에서 30량이 반입[44], 1984년 12월에 현대정공에서 2량 반입[45], 1985년 6월, 12월(1x17~30편성은 6월, 1x31~1x35편성은 12월)에 현대정공에서 38량이 반입[46]되었으며, 1986년 1월, 9월(1x02, 1x40~41편성은 1월, 1x36~38편성은 9월)에 대우중공업에서 동력차 7량[47]과 T차 6량[48]이 반입되어, 초기저항 형식의 차량은 반입이 종료되었다. 이 시점에서 초기저항차량은 10량 38개 편성(1x01~38), 8량 2개 편성(1x39~40), 4량 1편성(1x41[49])이 재적되었다.

2000년대 중반 대부분의 저항차량들에 혼재되어있던 차량들이며, 대다수의 차량이 2005년~2006년에 운행을 중지하고 2010년까지 병점차량사업소에 장기간 유치되어 있다가 폐차/매각되었다. 단, 일부 차량[50]은 2009년 내구연한 연장심사를 통과하고 2014년까지 운행하였다.[51]

4.2. 중저항 (1986 ~ 1992)

파일:attachment/1000(BEFORE).jpg
구도색 시절이며, 옆에 정차한 열차는 수인선 협궤열차이다.
파일:external/www.2427junction.com/1i07koreaseoul.jpg
1994년 이후부터 2006년경까지의 도색.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으로 인한 수요 증가와 경원선 창동 ~ 의정부, 의정부북부 간 복선전철화, 안산선 금정 ~ 안산 구간 개통[52], 영등포 ~ 구로 3복선화, 배차간격 단축 등에 대비하여 제조 투입된 편성이다.

초저항에서 배운 열차 제작 기술을 토대로 현대정공과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에서 생산한 열차이다. 외형적 변화로는 여러 대의 열차를 병렬로 연결시켜 운행하려던 계획이 취소된 탓에 전두부의 중문이 없어진 게 가장 눈에 띈다. 이에 따라 운전대도 한쪽에 치우쳐져 있던 것에서 가운데로 왔다.

초저항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디자인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어쩐일인지는 센다이시 지하철 난보쿠선에서 운행하는 열차와 전면 모양이 비슷하고, 저항기도 수입산이었고, 출입문도 일본 국철 103계의 그것과 비슷한 등[53] 여전히 일본 전동차의 요소가 남아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달라졌는데, 전체적으로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부산교통공사 1000호대 전동차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다만 내장재의 색깔은 여전히 초저항처럼 연두색 계열 색상이었다.[54] 그 외에도 선풍기에 냉방을 의존한 탓에 여름만 되면 찜통더위를 체험할 수 있었던 초저항과는 달리 에어컨이 장착되어 생산되었으며, 고장/운행 기록 장치가 장착되고, 보조전원장치를 전동 발전기(MG)에서 정지형 인버터(SIV)로 변경되었다.(이후 초저항에 대해서도 전부 개조 실시.) 그 외에도 차창이 2단 개폐창에서 반개폐창으로 바뀌었다는 소소한 변경점도 있다.

당초에는 10량 1편성으로 투입되었으나 안산선/용산 ~ 성북 계통에 투입하기 위해 6량 1편성, 4량 1편성으로도 투입되었다. 물론 퇴역 직전에는 모두 10량 1편성으로 운행되었고, 이 때 증결된 차량들 중에서는 초저항 부수차가 매우 많으나 신조된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증결을 위한 부수차들은 VVVF 인버터 제어 차량이 주로 도입되던 1996년 ~ 1997년에 생산된다. 신저항이랑 제원이 같은 부수차로 만들어졌으며, 이 때 1x50~1x53, 1x57~1x63편성이 증차되었으나, 1998년 말에 초저항을 폐차시키면서 이뤄진 재배치로 차번이 꼬여버렸으며, 이 차들은 비슷한 연식의 신저항과 묶여 운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차번이 꼬여서인지 스무 개 가까이 되는 중저항 전기 편성 중에 10량 전체가 직사각창 출입문 중저항 객차인 편성은 1x43~1x49편성 뿐이었으며, 이들 마저도 말년에는 T차를 초저항 객차로 끼우고 다녔었다.

2번에 걸쳐 도입이 되었는데, 전기형 편성인 1x42~1x63편성은 1986년~1991년까지 도입되었으며 후기형 편성인 1x64~1x73편성은 1991년~1992년까지 도입되었다. 전기형 편성은 출입문 유리창이 세로로 긴 직사각형이고 후기형 편성은 정사각형이었다.

1990년대 초반 도입 당시에는 전량 구로기지 소속이었으나, 1996년경 구로기지의 포화를 이유로 성북분소가 개업하면서 1x49~53, 1x67~73편성이 성북분소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2004년 이문차량사업소 개업과 동시에 149~53은 편입된 신저항 차량의 내장재 교체 등, 원활한 차량운용을 위해 다시 구로기지 소속으로 변경되었고, 1x67~73편성은 이문기지 소속으로 변경되어 한동안 운행했으나 노후화를 이유로 1000호대 차량 전량이 경인급행 전용으로 운용방식이 잠정 결정되면서, 2014년경 전량 구로기지 소속으로 변경되었고 퇴역 시까지 유지되었다.

31183~31189편성이 도입되던 2012년 여름부터 1x42편성을 시작으로 2015~2017년을 걸쳐 차례로 폐차 후 교체가 진행되었고 2012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모두 퇴역하였다. 1987년산 전기형 1x47편성과 1992년산 후기형 1x72편성이 4량으로 재편되어 향후 보존될 예정이다.

중저항은 2017년에 모두 영업운전에서 철수, 퇴역하였으나 그래도 1x73편성은 상태가 좋은지 4량 편성으로 간혹 경인선에서 비정기 임시열차로 운행 중이다. 2019년 3월 현재 1673, 1773호가 신저항 1x79 편성편입되어 운행중이다.

또한 중저항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하여 레일플래닛 스토어에서 케이스와 종이모형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중저항 차량중에 2004년 내장재 개조 차량은 1x62편성, 1x64편성 두개뿐이다.

전국 광역/도시철도 차량 중 유일하게 도색이 두 번 바뀐 열차이기도 하다.

4.2.1. 5차분(1986~1989년)

경원선 성북-의정부 연장 개통 및 안산선 개통에 따라 1x42~58편성이 반입되었다.

1987년 1월에 1x42~45편성이 10량 조성으로 반입되었으며[55], 1987년 11월~1988년 1월에 1x45~48편성이 10량 조성으로 반입되었으며[56], 1988년 9월에 1x49편성이 10량 조성으로 반입되었으며, 1988년 안산선 개통을 대비하여 1988년 9월~1989년 9월에 1x49~53편성이 6량 조성으로 반입되었다. 여담이지만 1x49~53편성의 경우, 반입 당시에는 2000호대로 반입되었다.[57]

이후 1989년, 기존 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의 차호구성을 대대적으로 개편(현재 기준대로)하면서 기존의 8량, 4량으로 다니던 초기저항[58]을 10량으로 증결하기 위한 부수객차가 추가로 도입되었고[59], 차호 개편 이후 안산선 시격단축을 위해 1989년 9월~1990년 1월에 1x54~58편성이 추가로 도입되었다.(1x54~56편성은 6량, 1x57~58편성은 4량)

이리하여 1990년 시점에서, 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는 10량 49개 편성(1x01~1x49), 6량 7개 편성(1x50~56), 4량 2개 편성(1x57~58)이 재적하게 되었다.

5차분인 중기저항 전기차량의 경우, 출입문 유리창이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도입이 되었으나, 이후 2007~8년에 과반수 이상의 차량[60]이 출입문 노후화를 이유로 초기저항차량과 같은 정사각형 유리창의 출입문[61]으로 교체되었다. 단, 1x47~49편성의 경우, 311000호대 전동차와 같은 신형 출입문으로 교체되었다.

2006년, 기존 초기저항차량 부수차[62]들의 대거 폐차로 인해 조성을 맞출 수 없게 되어 1053,1153,1057,1157 4량이 조기 휴차되었고[63], 나머지 차량은 2005~8년 내장재교체 및 외부도장 변경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LED 개조를 1번 받았다는것이다.[64]

1x58편성은 2010년 구로기지 내 추돌사고로 10량이 모조리 조기폐차 되었다.

2012년에 1x43~49편성이 신형차량 9차분으로 대체되었으며 동일년도에 휴차된 1x50~1x51편성이 2014년경 경춘선(360000호대) 이적분으로 대체되었고, 2013년에 1x54~56편성이 신형차량 10차분으로 대체되고 1x42, 52, 53, 57, 58편성은 대차분이 없이 폐차/휴차 처리되었다.

1x47편성이 4량으로 재편되어 구로차량사업소에 보존되어 있다.

31140, 31141편성에 중저항 부수차가 2량씩 조성되어 있었으나 노후화로 인하여 31140은 2017년 후반기에 31102의 부수차, 31141은 2018년 초반기에 각각 34104의 부수차로 교체되었다. 마지막까지 운행하던 31139편성의 부수차 1량 역시 노후화로 인하여 2018년 후반기에 34102의 부수차로 교체되었다.

4.2.2. 6차분(1991~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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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운행을 중단한 1x67 편성.
파일:IMG_0636.jpg
구둔역에 전시중인 1x65편성의 1065, 1165호 선두차

1991년 영등포 ~ 구로 3복선화에 따른 시격단축, 기존 국철 용산-성북간 비둘기호 대체를 위해 1x59~73편성이 반입되었다.
1991년 6~7월, 1x59~63편성이 4량 조성으로 반입되었으며, 기존의 1x57~58편성과 함께 용산-성북간 운행에 투입되었다.

1991년 11월 ~ 1992년 3월까지 1x64~73편성이 반입되었으며, 1x64~66편성은 안산선 운행을 위해 6량 조성으로, 1x67~73편성은 기존 1호선 본선구간 운행을 위해 10량 조성으로 반입되었다.

특이사항으로는 1x64편성부터는 출입문 유리창이 초기저항과 똑같이 다시 정사각형 모양으로 회귀하였다.

1992년 당시 코레일 1000호대 전동차는 10량 56개 편성(1x01~49, 67~73), 6량 10개 편성(1x50~56, 64~66), 4량 7개 편성(1x57~63)이 재적되었다.

2006년, 기존 초기저항차량 부수차[65]들의 대거 폐차로 인해 조성을 맞출 수 없게 되어 1063, 1163, 1065, 1165 2량이 조기 휴차되었고[66], 나머지 차량은 2004년~2006년[67] 내장재교체 및 2006년~2008년 외부도장 변경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은 LED 개조를 2번 받았다는것이다.[68]

2016년 이후부터 한 대씩 운행을 중단하고 1x60, 1x66~73편성이 신형차량 11차분으로 대체되었으며(1x59, 61~65편성은 대차분이 따로 없다.) 2017년 3월 30일, 1992년에 도입된 마지막 중저항인 1x73편성을 마지막으로 모두 영업운전에서 철수, 퇴역하였다. 단, 2016년에 1x62편성과 중간차를 맞바꾼 상태로 운행하다가 구로기지에서 휴차된 1x74편성의 부수차, 1x64편성의 부수차는 1996년 도입된 신저항 차량이기 때문에 폐차 대상이 아니다.

폐차된 1x71편성 중 M카와 Tc카 각 1량씩은 경북전문대학교에서 트레일러로 운반해갔고, 도색을 바꾸고 개조가 이뤄져, 철도전기기관사과 실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7년 4월. 시흥차량사업소에 유치되어 있던 1x73편성은 내구연한 연장과 더불어 4량으로 재편성되어 기관차에 끌려 제천역으로 내려간 후 곧 제천역에서 영주역까지 자력으로 회송을 하고 이후 영동선에서 시운전을 하는 장면까지 포착이 되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지면서 많은 철도동호인들이 지방 로컬선용으로 시운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많은 추측을 불러 일으켰으나 머지않아 시흥기지로 복귀했다.

그리고 2017년 6월 25일, 1x72편성이 구로에서 제천조차장으로 회송되었다. 문제는 100분씩이나 지연되어 원덕역에서 기다리던 철도 동호인이 청량리로 갔을 정도. 이 차량은 현재도 제천조차장 유치선 구석에 RDC와 같이 묶여있었으나 2019년 제천 철도테마파크 계획이 무산된 관계로 2019년 4월에 고철로 매각될 예정이다. 다만 4월에 보존차량 선별로 인해 회송이 지연되면서 어느정도 보존될 거란 희망은 있었으나 해당 계획마저 스크랩됐는지 곧 매각 처리될 예정이다.
현재 폐차 매각된 중저항 일부 편성 및 2호선 구형 전동차들을 시흥시 논곡동 323일대 약 7천500㎡ 규모의 개발제한구역에서 어느 폐기물업체가 불법으로 해체하고 있었으나, 뉴스 보도 이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이전한 곳의 정확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으니 추가바람.관련 기사

1x73편성은 시운전 이후 시흥기지에서 입환용으로 쓰이다 간간이 경인선에서 비정기 임시열차로 운행되고 있다. 2018년 10월 14일11월 11일에 '경인선 철길따라' 행사에 따라 임시적으로 경인선 부천 - 인천 구간을 운행한 것이 그 예.

2019년 3월 말 1x73 편성에 편입돼있던 1673, 1773호가 1x79 편성으로 편성편입되었다. 반대로 1679, 1779호는 1x73 편성으로 옮겼는데, 객차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4.3. 신저항 (1994 ~ 1997)

파일:external/www.2427junction.com/61a-1gw14.jpg
구도색.[69]

파일:코레일_1000호대신저항.png 신도색[70]

1994년과 1996년 2차례에 걸쳐 도입되었으며 1차분은 대우중공업(모델번호:DEC-13), 2차분은 현대정공에서 제작하였다.

외형은 당시 막 도입되던 3VF 전동차였던 코레일 341000호대 전동차, 코레일 351000호대 전동차 초기형의 외형을 기반으로 하였다.

4호선과 분당선에 당시 신형 VVVF 전동차가 투입되는 중이었는데 메인 노선인 1호선에는 또 저항제어 차량을 뽑은 이유는 VVVF-GTO의 경우 소자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 등의 사례처럼 어느정도 만들 기술은 있었으나 역시 구동계통은 전량 수입해야 했으며 그 당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재 상황이 그렇듯 IGBT로 넘어갈 분위기였기에 신규노선을 제외하고는 굳이 어중간한 VVVF-GTO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코레일 341000호대 전동차가 도입 초기 선바위역 ~ 남태령역 사이 절연구간 등에서 잔고장이 잦았던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96~1997년에 코레일 311000호대 전동차가 도입되어, 1호선에서도 VVVF 전동차가 운행하게 된다.

1x74부터 1x81까지, 1x83부터 1x86까지의 편성이 이에 해당된다. 1996, 1997년 전 차량 10량화에 맞춰서 도입된 일부 중저항 부수차, 동력차도 여기에 포함[71]된다.

도색은 처음부터 철도청 시절의 역삼각CI 도색인 초록-노랑색의 도색을 적용한 채로 출고되었다.[72] 중저항 전기 때는 직사각형이었던 출입문 창문이 중저항 후기, 신저항 부터는 조그마한 정사각형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경인선 혹은 경원선에서 넘쳐나는 인원을 견디다 못해 창문이 깨져서 중저항 후기형, 신조저항, 납작이코레일 2030호대 전동차가 정사각형 창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장재도 시트 부분을 제외하면 코레일 2030호대 전동차 초기형과 거의 같은 것으로 바뀌었지만 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초저항처럼 평천장에 선풍기가 달려있는 특이한 구성이었는데[73], 이후에 불연재로 교체되면서 선풍기 역시 라인데리어로 교체되어 사라지게 되었다.[74]

주 제어장치인 저항기가 국산제품으로 대체되었다는 것, 1993년에 도입된 2030호대 전동차의 외형을 그대로 가져온 점 외에는 중저항과 큰 차이가 없다.

애당초에 저소음 콤프레셔를 적용했다.

경적음이 동요 자전거로 나온다. 톤음은 먼저 도입했던 코레일 341000호대 전동차와 동일하다.

2005~2007년에 재도색을 마쳤지만 내장재와 LED 행선판 개조는 2004년에 이미 이뤄졌다. 중저항 객차 증차분도 2004년에 개조되었다. 본디 LED 행선판의 글씨체는 VVVF 차량과 똑같은 헤드라인체 계열이었으나, 2010년부터 차내 전광판이 설치 될 무렵에 폰트가 바뀌었다.

신저항과 같이 도입된 차량도 조기 폐차 차량이 있는데, 2015년 4월 8일 퇴역된 1x61 편성에 배속된 1460, 1560, 1461, 1561, 1459, 1559호이다. 한동안 구로기지에 유치되어 있다가 언제부터인가 폐차, 매각되었다. 2016년에는 중저항 1x62편성에 있는 중간차 8량을 1x74편성의 중간차 8량과 맞바꾸었다.

도입 당시에는 전량 구로기지 소속이었으나, 1996년경 성북분소가 개업하면서 1x74, 75편성이 성북분소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2004년 이문차량사업소가 개업하면서 1x74편성은 이문기지로 소속변경, 1x75는 구로기지로 소속으로 재 변경되었고, 한동안 유지되다가 2013년경 1x75~77편성이 이문기지로 소속이 잠시 바뀌었다. 1년 후인 2014년 하반기에 이문소속이던 1x74~77편성이 다시 구로기지로 소속이 최종 변경되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차량 노후화가 심해져서인지 2017년부터 슬슬 차량고장이 잦아지면서 구로역에서 기교체를 실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2017년 하반기 이후로는 더 심해져 차체 도색이 많이 갈라져 녹슨 철 부분이 보이고, 때때로 측면에서 도장이 벗겨져 구도색의 흔적이 보인다. 특히 1x80편성대 차량들의 도색이 심각하다. 같은 마일드 스틸 차체에 연식도 더 오래된 서울교통공사 소속 1호선 개조저항 차량, 2호선 초퍼차량들과 많이 비교되는 건 물론이고 비슷한 시기에 도입 전동과 비교하면 더더욱 관리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75]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신형 전동차로 교체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1호선 개조저항 차량이 유일하게 저항제어 전동열차로 남게 된다. 1x74편성은 최초의 신저항 전동차로 퇴역후 보존 될 예정이다.
  • 신저항 조성 현황
    • 1x74편성: 1074-1462-1562-1861-1463-1563-1961-1661-1761-1174
    • 1x75편성: 1075-1275-1375-1875-1475-1575-1975-1675-1775-1175
    • 1x76편성: 1076-1276-1376-1876-1476-1576-1976-1676-1776-1176
    • 1x77편성: 1077-1277-1377-1877-1477-1577-1977-1677-1777-1177
    • 1x78편성: 1078-1278-1378-1878-1478-1578-1978-1678-1778-1178
    • 1x79편성: 1079-1279-1379-1879-1479-1579-1979-1673-1773-1179[76]
    • 1x80편성: 1080-1280-1380-1880-1480-1580-1980-1680-1780-1180
    • 1x81편성: 1081-1281-1381-1850-1481-1581-1950-1681-1781-1181
    • 1x83편성: 1083-1483-1583-1852-1683-1783-1952-1283-1383-1183
    • 1x84편성: 1084-1284-1384-1853-1484-1584-1953-1684-1784-1184
    • 1x85편성: 1085-1652-1752-1859-1653-1753-1959-1457-1557-1185
    • 1x86편성: 1086-1458-1558-1860-1659-1759-1960-1660-1760-1186

4.3.1. 7차분(1994~1995년)

1994~95년에 대우중공업에서 10량 6개 편성(1x74~79)(모델번호:DEC-13)과 동력차 6량(1459, 1559, 1460, 1560, 1461, 1561)이 도입되었다.

당시 내부가 시트색과 바닥재질을 제외하면, 앞서 도입된 4호선/분당선 VVVF 전동차의 재질 및 구성과 거의 흡사했다.

4.3.2. 8차분(1996~1997년)

1996~97년에 현대정공에서 1x80~81, 1x83~86편성이 도입되었다.

1996~1997년, 1호선 차량의 순수 증차분은 VVVF로 결정되었고(현 311000호대), 이 차량들은 대다수 기존 6량, 4량 저항제어 차량들의 증결분이다.

기존의 6량이었던 1x50~53, 1x59~61(94년 7차분 도입으로 인해 증차) 편성이 10량화 되었고[77], 4량이었던 1x57[78], 58[79], 62[80], 63[81]편성의 6량화가 되었으며, 덧붙여 1x80~81, 83~86편성이 도입되었다.

1x81, 83~86편성의 경우 6량이 도입되어(1x85, 1x86편성만 차량번호가 제각각이었다.), 2004년까지 1x81, 83~86편성은 부수객차를 초저항 객차를 끼우고 운행했었다.[82] 2004년 로윈에서 시행한 내장재교체사업으로 인해 이후엔 동시기 도입되었던 중저항 증결분과 함께 조성되었다. 1x80은 현대산 신저항중에 유일하게 초저항 객차를 끼운적이 없다.

2차분 차량의 특징으로는, 쉽게 때가 타는 까칠까칠한 벽면 재질에서 기존의 매끄러운 FRP 재질로 바뀌는 등 개량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벽면의 재질이라던가, 1차분의 바닥색이 녹색이고 2차분의 바닥색이 회색으로 서로 특징이 달랐지만, 2004년 내장재 개조 사업 이후 색깔 및 내장재가 모두 같아졌다. 참조

4.4. 개조저항 (1999, 200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RAIL_EMU1000_Last2nd%281x82%29_OC.jpg

초저항, 중저항의 일부 T차(무동력 객차)를 Tc차(선두차)로 개조한 열차들을 이른다. 1x82, 1x88~1x94편성이 이에 해당된다. 다만 이 편성번호는 TC차 기준이며, 그 외 중간차들의 편성번호는 섞여있다. 위 편성번호를 따르는 열차는 Tc차 2개뿐만이라고 봐도 무방[83]. 이 중 1082호, 1182호, 1087호는 중저항 T차[84]를 1999년 초저항 대 폐차 시에 Tc차로 개조한 편성이며 나머지는 2002년 초저항 대 폐차 시에 내구연한이 남은 초저항 T차[85]를 Tc차로 개조한 것이다.

개조 시의 Tc차 모양은 당시 철도청이 한창 제작하고 있었던 코레일 311000호대 전동차 1세대(납작이)의 그것을 그대로 따왔고, 운전대 설치 이외의 큰 개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자의 시트만 311000호대 1, 2세대 초기의 시트 천으로 바꿔준 것이 내부개조의 전부였다.

1x82, 1087은 중저항 개조분이고, 1x88~1x94편성은 초저항 개조분이어서 창틀의 형태가 다르다.

모든 개조저항의 M차(동력차)가 1980년~1981년에 생산된 초저항 M차들이다. 이들의 내구연한 25년이 도래한 2005년~2006년, 이 M차들이 폐차되자 Tc차만 남아돌게 되어 운행이 중지되고 병점차량사업소에 장기간 유치되었다. 심지어 도색 개조, 행선안내기의 LED화, 내장재 개조조차 시행되지 않았다.[86] 2006년 시점에서 아직 내구연한이 5년 남짓 남은 탓에 휴차 처리된 채 병점차량사업소에서 유치되어 있다가, 2010년 말 대량 폐차와 매각이 이루어졌다. 이 중 1091호는 불정역 열차펜션으로 개조되었다. 관련 기사

잘 보면 1087호가 있음에도 1x87편성이 비어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087호가 제작되었지만 이것과 쌍을 이룰 1187호가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87호는 2001년경 잠시 1086호[87] 와 짝을 맞춰 운행하고 그 이후로는 계속 휴차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본선에서 영업운전을 뛰는 사진조차 거의 없다시피 하다.

4.5. 개조 이력

4.5.1. 한국철도공사 신 CI 변경

도입 당시 파란색+하얀색 조합으로 도입된 초저항 차량과 중저항 차량은 1994년부터 역삼각 CI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2005년부터는 역삼각 CI로 도입된 신저항과 역삼각 CI로 재도색 되었던 중저항 차량에 한해 신 CI로 도장 변경을 했다. 중저항 1x42~1x52, 1x54~1x56, 1x58~62, 1x64, 1x66~1x73, 신저항 1x74~1x81, 1x83~86이 신 CI로 변경되었다. 2007~08년에 마무리.

4.5.2. 내장재 불연재화 개조

2004년 후반에 311000호대(구 5000호대) 1세대의 내장재 개조가 끝나고 2004년 후반부터 불연재 대응이 되어 있지 않은 중저항 1x42~1x73편성과 신저항 1x74~1x81, 1x83~1x86 차량에 대해 불연재 개조를 시행하여 2006년에 완료되었다. 다만 1x53, 57, 63, 65, 개조저항 차량은 2006년에 조기 휴차되어 내장재 개조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신저항은 로윈, 중저항은 SLS 중공업, 그리고 1x62, 1x64 한정으로 로윈에서 진행하였다.

4.5.3. 외부 행선기 LED 개조

2004년 후반부터 내장재 불연재화 개조와 함께 외부 행선안내기가 기존의 회전 스크린식(흔히 말하는 롤지)인 중저항 1x42~1x73편성과 신저항 1x74~1x81, 1x83~1x86편성에 대하여 외부 행선안내기를 LED로 변경하는 개조를 실시하였다. 신저항은 2004년 후반에 진행하여 2004년 말에 완료되었고 중저항은 2004년 후반에 1x62, 1x64[88]를 시작으로 2006년에 완료되었다. 다만 내장재 개조 대상에서 제외된 1x53, 57, 63, 65, 개조저항은 LED로 개조되지 않았다.

5. 관련 문서


[1] 거의 차체가 강철 또는 연철로 용접된 통짜 구조로 생각하면 된다. 이 때문에 차체는 퇴역 후 고철매각 때 대형 금속 처리장이나 대형 폐차장, 대형 제철소 등에서 전장품 회로 다음으로 가장 노리는 품목이라 한다. 하지만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하여 전두부를 금형으로 제작해야 되는데, 초저항 전두부를 금형으로 제작하여 매우 비싼 제조비용과 녹이 잘 쓰는 강철 재질이라 도입 전부터 제작업체에서도 미리 차체 전체를 철도청 초창기 도색을 한 뒤에 납품해야 했었다. 그리고 조금만 도료가 벗겨져도 지금 급행으로 운행하는 일부 편성들처럼 오래 굴리려면 그 부분을 도료로 메꿔야 한다는 단점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저렴한 제조비용 및 녹이 잘 쓸지 않아서 차체 전체를 도색하지 않아도 되는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재질에 밀려서 요즘에는 거의 생산하지 않는다.[2] 2014년 말 ~ 2015년 초쯤부터 노후화로 서울메트로 지하 직류구간에서 고장날 확률이 높아 고장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용산 ~ 동인천 급행구간만 운행한다. 또한 2018년 7월 2일부터 특급도 뛰는게 확인됐다.[3] 지하 직류 구간을 들어가지 않는 관계로 사실상 교류전기만 쓴다고 봐야 한다.[4] 같은 노선에서 굴리는 3VF차옆집이 같은 노선에서 굴리는 3VF차와 동시에 출발했을 때 가속력이 후달리는 걸 확실히 볼 수 있다. 예외적으로 가속이 빠른 편성이 있었는데 후술.[5] 무려 103계보다도 더 오랫동안 생산되었다. 1997년에는 이미 IGBT 가 돌아다니고 있을 때이다!! 다만 103계의 초도생산은 1964년으로써, 이 열차보다 10년 정도 구형이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나름 비슷하지만, 어쨌거나 같은 저항제어라도 이쪽이 신형. 또한 103계의 단종시기는 1980년대로써, 생산 기간은 거의 비슷하다. 10년 더 늦게 나와서 10년 더 늦게 단종된 셈. 또한 1990년대 후반에 IGBT가 널리 상용화된 건 당시 일본의 기술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며, 일단 쵸퍼제어나 저항제어 차량이 국산화된 기술로 당시 잘 굴러는 가는 상황에서 한국으로썬 IMF까지 겹친 상황에서 굳이 무리하게 비싼 돈을 주고 국산화율 0% IGBT 차량을 라이선스 생산하거나 직수입할 이유는 없었다. VVF-GTO의 경우는 소자를 제외하고는 5호선 전동차 등의 사례처럼 어느정도 만들 기술은 있었으나 역시 구동계통은 전량 수입해야 했으며 그 당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재 상황이 그렇듯 IGBT로 넘어갈 분위기였기에 신규노선을 제외하고는 굳이 어중간한 VVVF-GTO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IMF사태로 인해 일단 당장 싸게 만들자&가용가능한 외화가 없어서 수입의 곤란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6] 4량 편성으로 조성되어 구로기지 내 휴차 중[7] 도시철도 차량들은 어지간해서는 도입 부터 폐차시 까지 고정 편성으로 운행한다는것을 생각하면 이정도로 조성 변경이 잦았던 전동차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이다.[8] 전 차량 동인천급행 노선에서만 운행한다.[9] 전체적으로 103계 전동차와 301계를 베이스로 하였다.[10] 의외로 그 당시 차들 중에서는 고스펙이다. 당시 일본국철의 통근, 근교형 전동차의 최고속도는 100km/h였다. 사철 차들도 대부분이 최고속도가 100-110km/h정도였다.[11] 서울교통공사의 위탁 관리를 받는 코레일 3000호대 전동차는 제외.[12] 차량 번호의 맨 뒤 2자리.[13] 1호선은 1974년 첫 개통 시 6량으로 운행하다가 8량에서 현재의 10량에 이른 것이기 때문에 편성 번호가 같아도 제조시기가 다른 신조차량이 있고, 제조 시기가 같아도 중정비를 받으며 내구연한을 연장한 차량도 있다.[14] 이 때문에 차호만으로는 몇 호차인지 알기가 힘들다. 31xynn호대 차량은 y+1이 자신이 탄 칸 번호이다.[15] 2005년까지 운행했던 2호선 순환선용 저항차도 8M2T였다. 대한민국 유일은 아니었던 셈. 다만 이쪽은 운전실 객차가 동력차였다.[16] 1033 -> 1111. 1x11편성. 링크[17] 그렇다고 CDC에 선풍기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선풍기는 보조냉방 이며 에어컨도 당연히 있다.[18] 1997년 9월말에 최종적으로 남아있던 1x27편성이 재도색 된 것을 끝으로 파란색 초저항은 더 이상 현역에서 볼 수 없게 됐다.[19] 당시에는 급행이 아니라 직통이라고 쓰였다. 2003년에 급행열차로 용어변경.[20] 당시 모든 철도청의 차량이 이런 모양의 도색으로 재도색 되었다. 무궁화호는 주황색으로, 새마을호와 통일호, 수도권 전철은 청록색으로 재도색 되었다.[21] 한 일본인이 한국 방문 당시 직접 녹음한 것이다. 당시 새마을호 등도 녹음했으나 안타깝게도 녹음본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22] 1989년 차적 정리로 1x01~14, 1x29~35로 변경[23] 현재 철도박물관에 있는 그 차량이다. 도입 당시에는 1043-1044 편성이었다.[24] 다만 제어장치 등 주요 부품들은 이후로도 계속 수입되었다.[25] 훗날 현대정공이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조선공사)의 철도차량 제조사업부를 인수합병하고 현대로템으로 분리되면서 축척된 노하우로 모든 철도차량을 제작하고 있다.[26] 현재 초저항 Tc차 전량과 초저항 객차 대다수가 폐차되었고, 대신 서울교통공사 3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 신분당선 D000호대 전동차, 대구도시철도공사 3000호대 전동차인천교통공사 2000호대 전동차가 비상탈출용으로 중문을 채택했다. 또한 3, 4호선에서 운행하던 영국식 쵸퍼차량도 중문을 탑재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메트로 2000호대 쵸퍼제어 전동차서울메트로 3000호대 쵸퍼제어 전동차로 운행하며, 4호선에서 운행하던 영국식 쵸퍼전동차는 2, 3호선으로 이적하였다.[27] 지하철 개통 후 1980년대 말까지 서울의 지하철은 러시아워(복잡한 시간대) 기준 250%~300%의 혼잡률을 매우 흔하게 기록하던 때이다. 참고로 현재 서울지하철에서 가장 혼잡한 2호선 사당~방배 구간의 러시아워 때의 혼잡률이 224%이니 250%~300%면 엄청난 수치임을 짐작할 수 있다.[28] 대략 300%였다.[29] 1974년 도입분 부터 1979년 도입분[30]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일부 의 내부 훼손[89]이지만 일본의 철도박물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철도 관련 박물관이 동태보존은 무리더라도 적어도 정태보존중인 열차의 내부는 개방한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예산과 시간 부족이거나 아니면 그냥 운영하기 귀찮음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31] 사실 초저항이 보관된 것은 1호선이 남겨온 자취를 기록하기 위함이다.[32] 창문이 낙창식, 즉 위아래로 큼직하게 열리는 창문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반면 요즘 전동차들은 반개폐식, 즉 위가 조금 열린다거나 아예 동글이 마냥 통짜 유리이다.[33] 2009년까지는 정비관계로 인해 1000호대 차량의 조성이 자주 바뀌었다. 2010년 이후로는 고정편성[34] 1x47편성은 4량이었고 무려 초저항 동력객차도 2량 포함되어 있었다.[35] 1x42~1x43 편성은 개조저항을 만든답시고 부수차를 2대씩이나 뜯어가면서 초저항 부수차를 끼워서 굴려야했다. 다른 편성들도 상황은 비슷해서, 기존 부수차들을 신저항으로 넘기고 초저항 부수차들을 끼워서 굴렸다.[36] 옆집개조차량부수객차로 계속 초저항이 존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37] 특히 5000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80% 비슷하다.[38] 1989년 차적정리 후 1x01~14, 29~35[39] 반입당시 1043-1044[40] 1989년 차적정리 후 1x15~28, 36~41[41] 1x27, 1x28 편성이 끝까지 경인선 급행에서 최후의 초기 저항차로서 현역으로 다녔던 건 유명하다.[42] 1989년 차적정리 후 1x29~40편성의 부수차[43] 당시 용산 ~ 성북 간 운행[44] 1x01~15편성의 무동력차[45] 1x16편성의 무동력차[46] 1x17~35편성의 무동력차[47] 1202호, 1x40~41편성의 부수차[48] 1x36~38편성의 무동력차[49] 당시 용산 ~ 성북(경원선 경유)간을 운행하다가 1988년 안산선으로 운행 변경[50] 2006년에 내장재개조가 이루어진 차량[51] 1x55편성에 편입된 1836,1936호[52] 안산선은 1988년부터 경부선과 직결운행을 했지만, 1994년에 과천선이 생겨나자 서울 지하철 4호선, 과천선과 직결운행을 하게 된다. 경부선과 직통 운행하던 계통(노량진 ~ 안산)은 점차 감회하다가 2003년 병점 연장과 동시에 폐지되었다.[53] 특히 간사이 지방에서 운행하던 103계 열차의 측면을 보면 마치 초저항차에 중저항 출입문 붙인 느낌이 난다.[54] 물론 불연재 개조를 거치며 바뀐다.[55] 1987년 반입 당시에는 지금과 차호구성이 달랐다. 기존 초저항과 동일한 차호구성으로써, 현재의 중저항 1042-1142편성은 반입당시 1127-1129의 차호로 반입되었다.[56] 1x45편성 같은경우 3량만 1987년 1월에 반입되었기 때문에 이렇다.[57] 현재 기준 1x49편성은 반입당시 2001-2301-2601-2303-2603-2003의 조성이었다. 1989년 차적정리 후 1049-1249-1349-1649-1749-1149[58] 현재기준 1x39~41[59] 중저항 편성 내에 초저항 부수차가 끼여있는것이 제일 유명하지만, 반대로 초저항 편성 내에 중저항 객차가 들어있는 케이스이다. 총 6량의 T차와 4량의 동력객차가 도입 되었는데, 이 중 1량의 T차는 현재까지도 VVVF 차량의 부수차로 운행 중이며, 나머지 1량의 T차와 동력객차는 중저항 편성에 편입되어 운행되다가 폐차되었다.[60] 1x45,1x50~58[61] 초기저항차량 출입문을 바탕으로 만든 신형출입문이다.[62] 1980~81년산 동력차[63] 내장재 교체사업에서도 제외됨[64] 2011년에 코레일에서 1991년 이후 제작차량에 또한번 LED 개조를 했기 때문에 1986~1989년 제작차량은 개조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연한 빨간색 바탕에 굴림체로 되어있는 행선지를 사용한것이다.[65] 1980~81년산 동력차[66] 내장재 교체사업에서도 제외됨. 한 가지 사실은 저 차들도 자석도색을 입혔다는 것이다. 이후 이문기지에서 교육용 차량으로 한동안 쓰였으나, 시간이 지나고서 그 마저도 없어졌다. 언젠가부터 해당 차량은 중앙선구둔역에 보존중이다.[67] 2004년은 1x62, 64 한정[68] 2011년에 코레일에서 1991년 이후 제작차량에 또한번 LED 개조를 했기 때문에 이들의 경우 빨간 바탕에 고딕체로 되어있는 행선지를 사용한것이다. 신저항도 마찬가지다.[69] 좌측이 신조저항이고, 우측이 납작이라 불리는 311000호대 전동차이다. 우측 납작이와는 미묘하게 다르게 생겼다. 상부를 보면 구분을 할 수 있는데, 상부 구분이 어렵다면 옆면으로도 구분이 가능하다. 신도색의 경우에는 코레일 로고의 위치로도 구별이 가능하다.[70] 자세히 보면 운전석이 초저항 처럼 좌측에 배치되었다.[71] 용산 ~ 성북 경원선 운행차량이 1997년을 기점으로 10량 운행으로 바뀌면서 편성이 꼬였다.[72] 역삼각CI가 나온 때가 1994년이다.[73] 그렇다고 에어컨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에어컨도 물론 있었다. 천장에 길다란 몰딩같은 부분이 바로 에어컨이다. 선풍기는 보조냉방일 뿐 이였다. 만약 정말로 선풍기만 있었다면 민원감이다.[74] 그런데, 1987년부터 초저항에 에어컨을 장착했고, 1993년부터 도입된 안산ᆞ과천ᆞ분당선 차량에도 에어컨을 달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이해할 수 없는 철도청의 행보였다.[75] 사실 이는 근본적으로 차체 재질문제 때문인데, 신저항은 부식에 다소 취약한 강철 차체인 반면, VVVF 차량은 차체가 부식에 강한 스테인리스 소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76] 1X73 편성의 1673, 1773호가 편입되었다. #[77] 현재는 1x74, 81, 83~86편성의 부수객차로 사용중.[78] 현재는 1x85편성의 부수객차로 사용중[79] 현재는 1x86편성의 부수객차로 사용중[80] 현재는 1x74편성의 부수객차로 사용중[81] 현재는 1x74편성의 부수객차로 사용중[82] 1x81, 83~84는 4,7호칸에, 85~86은 TC 제외한 모든 객차에 끼웠다.[83] 다만 1x82를 받은 차가 TC말고도 2량이 더 있다. 1x64편성에 있는 1482, 1582가 그 증거.(사실 1x85편성의 부수칸으로 도입되었다.)[84] 1x42~1x43 편성에서 차출[85] 1x29~1x35편성에서 차출했다.[86] 2003년부터 실시된 코레일의 내장재 불연재화 개조에서는 폐차기한이 5년 남은 편성은 포함되지 않았다.[87] 사실 원래 1086호가 속해 있는 1x86편성은 신저항이다... 1x86편성은 아직 운행 중.[88] 다시 한번 말하지만 1x62랑 64는 로윈 개조라서 2004년 후반에 개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