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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유산 | 1994년 | |||
유적지와 남쪽의 LNG 터미널 일대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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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한국어 | Ancient City of Qalhat |
| 영어 | Ancient City of Qalhat | |
| 프랑스어 | Cité ancienne de Qalhât | |
| 국가·위치 | 오만 앗샤르키야 자눕 주 |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 등재연도 | 2018년 | |
| 등재기준 | (ii)[1], (iii)[2] | |
| 지정번호 | 1537 | |
대표 유적인 비비 마르얌 영묘
1. 개요
아랍어 قلهات영어 Qalhat
오만 동남부의 도시 유적. 수르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중세 시기 동방견문록과 정화의 대항해 모두에서 언급될 정도로 인도양 무역의 거점 도시이자 호르무즈 왕국의 제2의 수도로 번영했지만 16세기 들어 무스카트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쇠퇴했다. 다만 와디 힐름의 하구에 입지하여 농업과 어업 모두가 가능하기에 기존 유적 북쪽에 마을 정도로 유지되었고, 현재 인구는 약 1천 2백명이다.
2. 역사
대사원 터로 추정되는 중심 유적부
파일:칼하트 영묘.jpg
비록 돔은 붕괴했지만 무카르나스 (아치형 벽감)이 잘 보존된 비비[3] 마르얌 영묘의 내부[4]
청동기 시기부터 마을이 있었고, 자힐리야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오만 남부의 중요 항구였다. 중세 이슬람 제국을 거쳐 13세기 들어 칼하트는 호르무즈 왕국의 제2의 도시로 성장했고, 13세기 말엽에 마르코 폴로가 경유하며 칼라투 (Calatu)로 기록했다. 14세기에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양질의 바자르와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가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그 모스크는 비비 마르얌이 세운 것으로, 카샨의 타일로 벽을 장식했다고 덧붙였다. 비비 마르얌은 호르무즈 왕국의 수도를 이란 해안에서 호르무즈 섬으로 옮긴 미르 바하룻딘 아야즈의 왕비[* 혹은 아야즈가 사망한 후 로, 1311-12년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칼하트와 호르무즈를 모두 통치하며 무덤과 모스크 등을 건설했다. 그녀의 무덤은 칼하트에 몇 남지 않은 유적이다. 1410년 무렵 칼하트를 방문한 정화의 대항해 선단은 가라합 (加剌哈)[5]로 표기했다.
2.1. 쇠퇴
1500년 무렵 칼하트는 이미 무스카트에 밀려 오만의 주요 항구 도시 지위를 잃었다. 그러던 1507년 8월, 포르투갈의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이끄는 6척의 함대가 호르무즈 정복 및 페르시아만 무역 주도권 장악을 위해 소코트라에서 출항했다. 12일 후 포르투갈 함대가 칼하트에 나타나자 현지 총독은 과일과 인질을 제공하는 등 우호 관계를 맺었고, 뒤이은 쿠라이야트나 무스카트와 같은 학살과 약탈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1508년 봄, 호르무즈를 감시하러 4척의 함대와 북상하던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는 작년에 주었던 음식 중 상한 것이 있었다는 핑곌계로 경유했던 오만 항구들 중 유일하게 피해가 없던 칼하트를 습격했다.[6]무역 주도권 상실, 포르투갈 군의 파괴에 더해 (14세기부터 시작된) 칼하트 단층의 이동으로 인한 지진까지 겹치며 도시는 더욱 쇠퇴해 결국 버려졌다. 시가지를 두르던 성벽과 가득하던 상점 및 주택들은 바람과 파도로 사라졌고, 해안을 따라 5km에 걸쳐 펼쳐진 돌무더기만이 남았다. 대신 남쪽의 수르가 대체 항구 도시로 성장했고, 일부 어부와 농부만이 와디 북안에 계속 거주했다. 20세기 들어 발굴로 페르시아의 예술품과 중국의 도자기 등이 발견되었고, 2018년 와디 남안의 옛 도시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다만 2020년대 현재까지 관광객의 접근성은 좋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가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