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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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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忠淸道 | Chungcheong-do
파일:충청도 지도.png
[1]
위치 한반도 남부 / 대한민국 중서부
면적 16,641.54㎢
인구 5,537,592명(2019년 9월 주민등록인구)
광역지자체장 허태정(대전광역시, 더불어민주당)
이춘희(세종특별자치시, 더불어민주당)
양승조(충청남도, 더불어민주당)
이시종(충청북도, 더불어민주당)
인구밀도 332.67명/㎢
행정구역 파일:대전광역시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대전광역시
파일:세종특별자치시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세종특별자치시
파일:충청북도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충청북도
파일:충청남도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충청남도
최대도시 파일:대전광역시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대전광역시
별칭 호서

1. 개요2. 인구3. 명칭4. 분류5. 특징6. 택리지에서7. 정치8. 역사9. 둘러보기


1. 개요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북도, 충청남도의 4개 광역자치단체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 면적은 16,641.54km² 이다.

2. 인구


''' {{{#000000 광역자치단체 인구현황
대전광역시 1,479,641명
세종특별자치시 333,757명
충남 2,124,855명
충북 1,599,339명


충청지방 인구 추이
1925년 2,129,514명
1966년 4,451,762명
1970년 4,259,308명
1975년 4,468,371명
1980년 4,378,043명
1985년 4,390,163 명
1990년 4,451,614명
1992년 4,409,209명
1995년 4,556,788명
2000년 4,804,723명
2005년 4,906,087명
2010년 5,128,706명
2015년 5,391,260명
2019년 8월 5,537,592명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영충호시대 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말인즉 본래 영호남, 영호남 했지만 이제 충청도 인구가 호남을 넘었으니 영충호시대라는 것. (참고로 호남의 인구는 2019년 5월 주민등록인구 기준 515만 8,592명.) 영남을 TK[2], PK[3]로 나눠서본다면 경인 PK 충청 호남 TK 강원 제주 순 이다.

''' {{{#000000 주요도시 인구순위
대전광역시 1,479,641명
청주시 839,428명
천안시 651,090명
세종특별자치시 333,757명
아산시 313,960명
충주시 210,504명

3. 명칭

도명은 충주시청주시에서 따왔다. 참고로 두 고을은 현재 모두 충청북도 관할. 그래서 충청남도가 이름을 바꾸고자 한다면 공주시홍성군에서 한 자씩 따서 공홍도라는 이름을 구상해 볼수도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그러했던 사례도 있다. 반대인 홍공도는 없다 역사 표 참조.

과거부터 호서(湖西)라고 불렀고, 경기도(수도권(대한민국))와 합쳐서 기호지방(畿湖)이라고도 불렀다. 호(湖)는 충북 제천시의림지, 전북 김제시벽골제, 호강(湖江)이라고 불리던 금강이란 설이 있다. 호(湖)가 벽골제 또는 금강이라면 그 북쪽에 있는 충청도 지역이 왜 호북이 아니라 호서가 되었는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방위 인식에서 서쪽이 북쪽과, 동쪽이 남쪽과 혼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4]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는 말로[5], 호서대학교 정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다.

4. 분류

충청도는 지리적으로는 경상도, 전라도와 함께 남부지방에 속해있지만('삼남지방'이 바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가리킨다), 언어문화적으로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와 함께 중부권에 속해있다. 현재 수부도시인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 충청남도, 충청북도와 별개의 광역자치단체이긴 하지만 관습적 의미의 충청도로서는 포함된다.

5. 특징

충남/충북은 다른 도들(경상도, 전라도 등)과 다르게 충청남도/충청북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다. 아무리 봐도 동서로 나눠놓은 것이지 남북으로 나눠놓은 게 아닌 것. 굳이 따지자면 충북 북단인 단양 - 제천 - 충주충남 북단인 서산 - 당진 - 아산 - 천안보다는 북쪽에 위치한다. 실제로 현재 충청 남·북도의 경계는 조선시대 충청 우·좌도의 경계와 거의 일치한다.[6]

옛부터 평야가 넓고 강이 흐른 덕에 토지가 비옥해서 부자가 많았다. 광천에서는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고, 강경읍(現 논산시)의 번영은 유명했다.

전국에서 양반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구한말의 자료에 따르자면 양반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충청도 출신이었단다. 특히 충남은 더더욱 그러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아도 양반의 수가 가장 많았다. 원래 충청도는 다른 삼남 지역보다 인구가 적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많았다면 인구비율을 고려한 양반 비율은 굉장히 높아진다. 무려 10가구 중 1가구(10.3%)가 양반이었다.[7] 여기에서 유래된 지역 별명이 충청도 양반.

수도권과 인접한 위치 덕분에, 수도권 규제와 지방지원정책으로 인해 수도권 기업들의 이전이 활발하다. 특히 충남 천안, 아산이 그렇다.

평택시연산군 때 최초로 경기도에 편입되었으며, 원래는 충청우도(충청남도) 관할이었다. 효종김육이 충청도에도 대동법이 적용된 것을 감사하며 세운 비석이 평택에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천안, 아산과 같은 충남 북부지역은 독자적인 도시권을 형성하며 충남의 수부도시였던 대전보다 교류가 서울 쪽으로 압도적으로 많다.[8]

6. 택리지에서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지리서 택리지에서는 이 지역의 인심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기술했다.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 따른다.(專趨勢利) 이 지방에 근거를 두고 중앙관계에 다시 진출하려는 대망(大望)을 항상 품고 살아온 사대부들은 그것이 좌절되면 그 대신 재력을 얻는 방향을 택한다. 그래서 험담가들이 호서인을 음흉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칭찬하거나 원만한 기록은 잊혀지고 자극적인 기록이 부각되는 것으로, 애초에 택리지에는 경상도평안도 빼고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인심을 기술하지 않았다.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며,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고, 함경도는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사납고 모질며, 강원도는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직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데에 쉽게 움직이며, 경기도는 재물이 보잘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재만 좇는다"고 했다.[9]

7. 정치

인천·경기과 같이 대선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많이 했으며, 특히 정치나 선거 등과 관련해 충청도를 언급할 때 '수도권-호남-영남을 잇는 가운데'란 뜻으로 '중원(中原)'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중원은 충주시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10] 정당과 관련된 부분은 충청권 보수정당 문서 참고.

영남 vs 호남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지역감정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가장 자유롭다고 여겨진다. 정치적으로나, 향토문화적으로나 두 지역에 비해 지역색이 옅고, 이로 인해 지역주의, 몰표로 욕먹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3당 합당, 자민련·자유선진당 흡수 등으로 인해, 이 사건 전까지는 보수세가 살짝 우세한 중도지역이었다. 예를 들어,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약 56% 정도의 압도적인 표를 선사하였고, 박근혜 정부 심판 성향을 띠던 20대 총선에도 충청권의 민심은 근소한 우위로 새누리당을 택한 바 있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충청권 보수정당이 있었던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충청권 보수정당 계열의 성향은 충청남도에서 지배적이었고 충청북도는 지역색이 상당히 옅은 편이다.[11] 충북 청주권, 충남 북부권, 대전광역시, 세종시에 수도권 인구가 유입 되면서 보수세가 약화된 편이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 문서 참고, 혹은 각 문서의 시·군의 문서를 찾아보길 바람.

8. 역사

고대에는 백제 역사의 주 무대였다. 특히 장수왕의 남진으로 한강 유역을 잃은 뒤에는 충남 지역이 백제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충북 지역은 신라와 백제의 각축장이었다. 통일신라 때는 지금의 충남 지역은 대부분 지역이 웅주, 충북 지역은 대체로 한주상주의 일부였다. 중요한 도시인 5소경 중 중원경(충주)과 서원경(청주) 2개가 있었다. 후삼국시대에는 고려와 후백제가 힘싸움을 벌이는 각축장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와 강원도 일부까지 합쳐서 '양광도'(楊廣道)[12]라 불렸으며, 고려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지속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겪는 과정에서 양광도 북부 일대를 경기도에게 내주고 그 대신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지역을 이관받는 식으로 고려 중기와 관할 구역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고[13], 태종대 들어 충청도로 명칭을 바꾼다. 조선왕조 내내 수시로 도의 이름이 바뀌었다. 기사. 가장 유명한 건은 명종문정왕후를 비방하는 양재역 벽서사건(을사사화의 후속 건)으로,[14] 이 때 충주는 현으로 강등되어 유신현이라 불리고 충청도는 잠시 홍주(현재의 홍성군)의 이름을 따서 18년간 "청홍도"가 되었다.

이 외에도 잦은 강등과 복권이 있어서 공주와 홍주까지 더해서 충공도충격과 공포[15], 청공도(1년, 공청도는 3회 28년), 공충도(4회 27년), 충홍도(3회, 5년 이하), 홍충도(1회, 1년), 공홍도(3회 30년)... 4주의 6가지 조합이 다 나왔으며, 선후까지 합하면 안 나온 조합은 12개 조합 중 청충도, 홍공도 뿐이다. 대략 조선 역사에서 110년간은 충청도가 충청도가 아니었던 셈이며, 명종(청홍도), 광해군(공홍도), 인조(공청도), 순조(공충도, 공청도) 대에는 충청도를 쓰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다. 또 충청도가 온전히 그 이름을 보전했던 대는 인종, 선조(!), 경종, 헌종 정도다. 충청도가 유독 반역(가끔 강상이나 음풍)의 고장(...)이었다는 이야기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조정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의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충청도내의 주요 도시였던 충주, 청주, 공주, 홍주가 전주나 경주, 평양과 같이 그 도시를 빼면 말이 안 될 정도로 도내에서 인구적/문화적 중심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네 도시 모두 6만 정도(영조 시기)의 거의 비슷한 인구를 유지하여 도내에 마땅한 중심 역할을 한 도시가 없는 것도 도 이름이 마구 바뀐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평안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선조 21년(1588년) 평양에서 발생한 존속 살해사건으로 평양의 강등과 평안도 개칭이 논의된 적이 있었는데 평안도는 충청도와 달리 평양을 대체할만한 중심지가 없어서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

파란만장했던 도 명칭의 변천사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키백과 참고
연도 명칭 사유 충청도 명칭회복 비고
1505 (연산군 11)충공도(忠公道)①김처선의 출신지라는 이유로 1506 중종반정
1540 (중종 35)청공도(淸公道)충주가 예성으로 강등 1541
1550 (명종 5)청홍도(淸洪道)충주의 역모 1567? 선조 즉위
1612 (광해군 4)충홍도(忠洪道)①청주의 역모 - 1613 공홍도
1613 (광해군 5)공홍도(公洪道)①충주 유인발의 난 1623? 인조반정
1628 (인조 6)공청도(公淸道)①괴산,충주의 역모 - 1646 홍청도
1646 (인조 24)홍청도(洪淸道)공주의 역모 1653 충원현을 충주로 회복함으로
1658 (효종 9)충홍도(忠洪道)②청주가 서원현으로 강등 - 1661 충공도
1661 (현종 2)충공도(忠公道)②홍주의 역모 1662
1680 (숙종 6)공청도(公淸道)② ? - 1681 공홍도
1681 (숙종 7)공홍도(公洪道)②청주의 간음사건 - 1689 충홍도
1689 (숙종 15)충홍도(忠洪道)③ ? 같은해 8월
1735 (영조 11)공홍도(公洪道)③청주,충주 반역 1747
1777 (정조 1)공충도(公忠道)① ? - 1778 홍충도
1778 (정조 2)홍충도(洪忠道) ? 1779
1804 (순조 4)공충도(公忠道)② ? 1813
1817 (순조 17) 1월공청도(公淸道)③ ? 1826
1817년 10월공충도(公忠道)③ ? 1834
1862 (철종 13)공충도(公忠道)④ ?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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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이 표시되어있지 않다.[2] 대구,경북[3] 부산,경남[4] 그렇기에 압록강 남쪽 6개 주는 '강남6주'가 아닌 '강동6주'라 불렸다.[5] 요새는 그냥 충청도라고 하거나 중부지방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6] 조선시대의 좌ㆍ우도 개념은 북쪽을 위쪽으로 하여 그려지는 지도상에서 보았을 때가 아니라, 임금이 계신 서울(한성부)에서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이 때문에 서울 이남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동쪽이 좌도가 되고 서쪽이 우도가 된다.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는 반대가 되는 것. 대신 서울 이북인 황해도, 평안도는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 마찬가지로 동쪽이 우도, 서쪽이 좌도가 된다. 참고로 함경도는 현재와 같이 좌우가 아닌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7] 2위는 충북으로 전체 가구 중에서 4.5%, 3위는 경북으로 3.8%, 4위는 서울로 2.2%의 비중을 차지하였다.[8] 2017년 기준 전국 고속/시외버스 승하차량 1위가 천안 - 서울 경부 노선이며, 수도권 전철 1호선 또한 천안을 거쳐 아산 신창면까지 운행한다.[9] 택리지의 이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호남 항목에도 인용되었다.[10] 주로 어르신들이 충주 고구려비를 중원 고구려비로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도농통합 이전 옛 중원군 땅에 발견되었기 때문.[11]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북도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거의 대부분 전국적으로도 당선되었을 정도이다. 아마 충북이 특히 타 지역과 접하는 곳이 많은 영향도 있을 듯하다.[12] 양주광주에서 따온 것[13] 현재의 논산시와 서천군, 보령시의 남동단부 지역이 원래는 전라도 관할이었고 (금산군는 1963년에 충청남도로 편입되었으니 제외) 영동군과 옥천군은 고려시대 당시에는 경상도 관할이었다.[14] 물론 조작 사건이라는 견해가 많다.[15] 나름대로 충격과 공포라고 할 만 하다. 한번은 연산군김처선을 죽일 때 나왔고(중종반정으로 1년), 또 한번은 효종 말, 현종 초에 청주와 홍주가 3년 간격으로 차례로 역모를 일으켜서 나왔으니까. 물론 2번 밖에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