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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요2. 고대: 중국의 발생
2.1. 중국의 선사시대2.2. 선진(先秦) 시대
2.2.1. 하(夏)나라 실재설2.2.2. 상(商)나라(은나라)2.2.3. 주(周)나라
2.2.3.1. 서주(西周) 시대2.2.3.2. 동주(東周) 시대
2.2.3.2.1. 춘추시대(春秋時代)2.2.3.2.2. 전국시대(戰國時代)
2.3. 진 · 한(秦 · 漢) 시대
2.3.1. 통일 진나라2.3.2. 초한쟁패 시대2.3.3. 통일 한나라
3. 후한 멸망 이후
3.1.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3.2. 수 · 당(隋 · 唐) 시대3.3.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3.4. 송 · 원(宋 · 元) 시대
4. 근세
4.1. 명 · 청(明 · 淸) 시대
5. 근현대6. 중국 역대 국가7. 중국의 역대 군주8. 중국의 역사 인물
8.1. ㄱ8.2. ㄴ8.3. ㄷ8.4. ㄹ8.5. ㅁ8.6. ㅂ8.7. ㅅ8.8. ㅇ8.9. ㅈ8.10. ㅊ8.11. ㅋ8.12. ㅌ8.13. ㅍ8.14. ㅎ
9. 중국사 대표적 사건
9.1. 근대 이전9.2. 근대 이후
10. 전쟁사11. 참고문헌

1. 개요


중국 대륙에 존재한 역사적인 시대와 국가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이다.

2. 고대: 중국의 발생

2.1. 중국의 선사시대

삼황오제[2]로 대표되는 신화적인 시대로 여겨진다.

2.2. 선진(先秦) 시대[3]

2.2.1. 하(夏)나라 실재설

하나라는 문헌상 기원전 21세기부터 기원전 17세기까지 존재했다고 하는 국가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 국가로 언급된다. 국성은 사(姒). 상서 및 사기에서는 그의 사후 하나라의 왕위가 우의 아들에게 세습되면서 왕위 세습이 제도화되었다고 하는데, 죽서기년에서는 본디 백익에게 선양할 생각이었으나, 우의 아들이 백익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 세습이 고착되었다고 하는 이설도 전한다.

마지막 왕인 걸왕은나라주왕과 더불어 하걸은주라고 불리며 고대의 2대 폭군으로 손꼽힌다. 그는 매희(말희)라는 미녀에게 현혹되어 나라를 망치고 은나라 시조 성탕에 의해 멸망했다고 한다.

자세한 왕계가 전해지고 선진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언급이 되는 왕조라 실존했을 가능성은 뚜렷하기는해도, 적어도 현재까지는 고고학적으로 분명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아직 역사상 실재했던 국가로 확증되진 않았다. 상나라만 해도 그 실체가 드러나기 이전에는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등에게 전설상의 왕조로 취급받았으니까…하나라의 후보지로 뽑히는 곳이 뤄다먀오(洛達廟) 등의 지역이지만, 문자 자료가 없어 실증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고고학계를 지원해 약 1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된 얼리터우(이리두) 유적을 공인하는 한편, 하나라의 정확한 연표까지 작성하는 등 상당한 성의를 보이고 있다. 헌데 이 얼리터우 유적은 주로 하남성을 중심으로 발굴되었는데 정작 임금이 하나라의 도읍으로 삼았던 곳은 《제왕세기》 등에 따르면 산시성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

이렇게 진행됐던 중국의 역사 공정을 하상주단대공정이라 한다. 물론 여러 문헌에서 언급된 나라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실재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그 유물들이 과연 하나라 대 유물인가에 대해선 중국 고고학계를 제외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상나라(은나라)나 주나라보다 더 작은 성읍국가(또는 도시국가)로 보거나, 상나라 이전의 문화나 문명을 중심으로 살았던 국가일 가능성이 높고, 연도도 역사에서 언급했던 연도보다 조금 더 짧은 등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주장과 달리 국제 고고학계에서 하나라의 존재는 아직 인정받지 못한다. 단순히 '아직' 증거가 부족해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결론에 끼워맞추기 위해서 연구 방식을 왜곡했다는 강한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를 건국한 우는 삼황오제의 손자라는 설도 있다.

2.2.2. 상(商)나라(은나라)

파일:은허-.png

상나라은허(殷墟)를 주요 도시로 건국되어, 약 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 무렵까지 존재했던 국가이다. 주로 은(殷)이라고도 많이 불리지만, 적어도 상나라 사람들 자신들은 스스로를 은나라 사람이라고 부른 경우는 없다. 은이라는 통칭은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고대여서 당시 국가의 실질적인 인구는 수도에 몰려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상과 은 두 가지 표현이 혼용되었고, 상나라 이후 시대부터 유명 학자나 정치인들이 상나라 시대 이야기를 할 때 '과거 은 시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과거 은의 누구는 이런 말을 했었다.'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바람에 중국 역사 기록에 상나라라는 표현보다 은이라는 표현이 훨씬 심하게 난무하면서 오해가 퍼진 것이다.[5]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상인'이라는 말이 '상나라 사람'에서 나온 말이므로 상나라라는 표현이 그렇게 안 쓰였던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고도로 발달한 청동기 기술을 가졌으며, 기원전 12세기 무정(武丁)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주변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키며 영향력을 키웠으나, 지나친 인신공양으로 인한 반발과 동방정책 등으로 인해, 기회를 엿본 주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만다.

한때는 거의 전설상의 왕조로 여겨질 정도로 실체가 의문시되었으나, 갑골문의 발굴과 해석이 활발해지고, 은허 유적 등이 발견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존체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다. 문헌과 유물로 확인할 수 있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왕조 국가.

상나라에서는 대규모의 인신공양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갑골문과 발굴된 해골 등으로 인해 확인된 사실로, 이 시대는 아즈텍 문명에 버금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인신공양이 벌어졌다. 순장 제도 등의 모습은 상나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기는 하나, 규모 면에서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

2.2.3. 주(周)나라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 무렵에서 기원전 256년까지 존재한 나라로,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시대에 집단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주문왕의 시기에 국(國)으로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주무왕목야대전(牧野大戰)에서 상나라를 패퇴시키고 당시 중국의 패권을 차지했다. 이후 영토를 쪼개서 공신 및 친족에게 나눠주고, 제후로서 독립적으로 통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봉건제도가 시행된다. 기원전 771년 호경(鎬京)에서 낙읍(洛邑)으로 수도를 옮기는 시점에 따라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뉘어진다.
2.2.3.1. 서주(西周) 시대
기원전 11세기 무렵 주나라의 건국 무렵부터, 기원전 771년까지 주나라의 수도가 서안에 있었을 당시를 부르는 명칭. 과거의 일개 성읍 국가에 머무르는 신정 일치 체제를 넘어, 타 지역과 타국에 대해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치하는 보다 더 규모가 큰 진정한 국가로 나아가는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나라 성왕과 강왕의 치세는 성강지치(成康之治)로 일컫어지며 중국 역사의 태평성대로 유명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당대 주나라 정도의 행정력으로 넒은 중국 영토를 통치하는 것은 무리고, 봉건제도를 이용한 방식으로 여러 제후들이 지역을 다스렸고, 개척 작업을 벌였다. 또한 당대 주나라는 남진정책을 벌였다는 시각이 많은데, 주소왕(周召王)의 경우 한수(漢水)를 건너다 익사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단순한 익사가 아니라 남쪽 지방 개척에 나서다 사망했다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6]

이 시기에 주나라는 제후들에 대한 영향력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기원전 771년 견융(犬戎)이 수도 호경을 초토화 시킨 이후로,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게 되면서 서주시대는 막을 내린다.
2.2.3.2. 동주(東周) 시대
이 시기 위대한 생각의 폭발이 일어나는데, 바로 제자백가다.

동주 시대는 주나라가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일반적으로는 전국시대가 완전히 종결되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가리킨다.[7]

이 시기는 제후들에 대한 주나라의 영향력이 완전히 박살난 시기로 말할 수 있으며, 주나라의 무너진 권위와 제후들의 독립과 팽창, 일개 제후국에서 전국시대 후반부에 이르면 거대한 규모의 왕조 국가로 발전해나가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중원 지역 정도에 머물던 '중국'의 개념은, 이제 오월(吳越)과 연(燕)나라와 제(齊)나라까지 포함하는 범위로 한층 발전되게 된다.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뉜다.
2.2.3.2.1. 춘추시대(春秋時代)
동주시대 중, 주나라가 수도를 낙읍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경부터, 제후국이던 진(晉)이 3개의 유력한 가문에 의해 삼분(한, 위, 조)되는 '전국시대'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시점을 가리키는 말. 명칭은 공자(孔子)가 저술한 《춘추》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대를 기점으로 주나라에 대한 제후들의 이탈이 본격화되었다. 정장공(鄭莊公)은 주환왕의 연합군을 격파해 주나라의 위세를 깔아뭉갰고, 초나라는 칭왕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나라의 위신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러한 풍토 속에 여러 제후들은 우후죽순으로 세력을 키웠다.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 춘추오패.

그러나 아직은 국가체제의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후국의 기풍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전쟁의 양상은 대규모화 하지 않았고 국가간의 싸움도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일단 타국을 멸망시키고 통치를 하려해도 통치 역량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이 시기에는 그 이전까지 오랑캐 그 자체나 다름없이 취급받던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과 같은 나라들이 역사의 향방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중국의 범위는 한층 확장되었다. 게다가 외부 이민족으로 분류되는 현재 베트남 태국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등과도 역사적 인접을 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 일본, 몽골과는 이전부터 교류해왔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국가는 압도적인 힘으로 북진하는 초나라(楚)와, 중원의 맹주로서 이를 저지하는 진(晉).
2.2.3.2.2. 전국시대(戰國時代)
동주시대 중, 춘추시대의 후반부부터 기원전 221년 진나라의 통일 이전까지를 일컫는 시기. 시대 구분법에 대해 약간의 이설이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진(晉)나라가 3명의 가신들에 의해 한나라(韓), 위나라(魏), 조나라(趙) 3국으로 구분되었을 때로 보는 견해다. 그 명칭은 유향(劉向)의 저서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하였다.

이 시대는 춘추시대를 거쳐 중앙 집권화를 확립하게 된 거대국가들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소국들을 모조리 병합하고, 더욱 거대화되어 엄청난 규모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춘추시대만 해도 수천, 그 시대를 뒤흔드는 가장 거대한 전투들도 수만 단위에서 벌어졌다면, 이 시대는 그야말로 국가의 역량들이 포텐을 터뜨리며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역량을 쥐어짜면서 수만, 수십만 대군의 전투가 밥먹듯이 펼쳐지게 된다.

당연히 엄청난 대혼란과 지옥도가 펼쳐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대혼란기를 거치면서 유교, 법가, 도가, 묵가 등 온갖 사상이 우후죽순으로 등장, 발전했으며 전쟁 기술 역시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하였다.

이 시대의 양상을 살펴보자면 열국 중 압도적인 진(秦)나라와, 이에 맞서는 연(燕), 조(趙), 제(齊), 위(魏), 한(韓), 초(楚)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2.3. 진 · 한(秦 · 漢) 시대

전국칠웅 중 하나이자 최강국이었던 진나라가 기원전 221년 전 중국을 역사상 최초로 통합한 후, 진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이 벌어지고, 이후 통일 한나라가 출현하고 난 뒤, 왕망이 잠시 신나라(新)를 건국하였다가 후한이 성립하고 최종적으로 멸망했을 시기를 가리킨다. 기원전 221년부터 서기 220년까지의 기간.

진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시켰고, 온갖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단위조차 다르던 모습들을 통합시켰다. 비록 진나라 자체는 곧 멸망하고 말았지만, 진나라가 뿌려놓은 '통일 중국'의 씨앗은 곧 한나라가 탄생하게 되면서 이어지고, 400년에 이르는 전한/후한의 통치 시기를 거쳐 개별적인 요소였던 중국은 이제 드디어 단일된 문화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때문에 진나라와 한나라를 합쳐 '진한시대'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8]

2.3.1. 통일 진나라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기원전 206년 멸망할 당시까지를 일컫는 시기. 기본적으로는 전국칠웅 중 하나였던 진나라가 이어진 형태지만, 이 시대부터 중국은 온갖 다른 언어와 제도를 하나로 만들었고, 서로 이질적인 문화권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단일 문화권으로 분명하게 나아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과거의 진나라와 통일 진나라를 구별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진나라'를 아예 기원전 221년부터 시작한 왕조처럼 기술하는 경우도 있다.[9]

법가(法家)의 학문을 받아들이고 원교근공의 외교정책을 받아들여 열국을 분열시킨 진나라는 백기, 왕전, 몽염 등의 장수를 앞세워 전쟁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기원전 230년에는 먼저 한(韓)나라를 멸망시켰고, 불과 10년밖에 안 되는 사이에 조(趙) ·연(燕) ·초(楚) ·위(魏) ·제(齊)의 순으로 6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의 통일을 이루어낸 진시황황제로 즉위하며 통일의 시대를 열었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여 전국을 36개 군으로 하고 각종 통제정치를 단행, 획일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이른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제가 완성된 것이다.

시황제는 다시 몽염을 파견하여 북쪽의 흉노를 쫓아내어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남쪽은 임효조타를 보내 광둥성(廣東省) ·광시성(廣西省)에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하였다. 진나라의 위명은 해외에까지 뻗쳐, 중국의 다른 이름을 지나(支那) 혹은 진단(震旦) 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진(秦)이라는 음이 와전한 것이다.

그러나 시황제의 대외전쟁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되는 것이어서 만년에는 민심이 동요하자 극단적인 탄압정책이 시작되었다. 진시황제가 사망한 후에는 그러한 불만이 폭발하였고, 진나라는 급속도로 붕괴했다.

2.3.2. 초한쟁패 시대

2.3.3. 통일 한나라

중국에서 초한대전(楚漢大戰)이 마무리된 기원전 3세기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에 들어서기 전 후한이 멸망한 3세기 전반까지 존재했던 왕조. 진(秦)의 뒤를 이어 통일된 중국의 기반을 자리잡게 한 왕조다.

초대인 고조 유방(劉邦)이 진승·오광의 난으로 시작된 진(秦)나라 말기에 패왕(楚覇王) 항우와의 결전 중인 기원전 206년 한중(漢中) 땅에서 건국했다. 한(漢)이란 국명은 바로 이 한중에서 유래한 것. 이후 서기 263년 위나라의 등애, 종회가 촉한을 침공해서 회제 유선이 항복할 때까지 약 470년간 지속되었다.

통일 국가로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통치 기간을 지닌 왕조이다. 중간에 왕망이 건국한 이라는 듣보잡 왕조가 잠깐 들어섰다가 망하고 유씨가 중흥한 현한(중한)의 계통이 광무제에게 갈리면서, 그때를 경계로 전한(서한)후한(동한)[10]으로 나뉜다.

400년이라는 긴 통치 기간을 지닌 왕조로서 중국 문화 전반의 기틀을 이룩한 왕조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토착 민족한족(漢族)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의 전통적 글자를 한자(漢字)라고 부른다. 한자가 진나라 시대의 동글동글한 전서(篆書)의 형태를 벗어나 예서(隸書)로 변해 지금의 형태를 정립한 것이 한나라 시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문화권의 핵심인 인의(仁義)를 바탕에 둔 통치 이념인 유교와 그 시행 법령인 율령이 정비된 시점이 바로 한나라 시대이며 다른 제자백가 사상들도 유교와 상호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여 오늘날 동양철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 밖에도 한나라의 대표 상품으로 채륜이 발명하였다고 하여 채후지(蔡侯紙)로도 불리는 종이를 들 수 있겠다.

양한(兩漢)의 경제는 장안낙양을 중심으로 한 관중과 중원 지역이 가장 발달했고 그 다음이 파촉, 회북 - 회남, 한수 유역과 장강 하류 이남의 단양, 오, 회의 순이다. 양한 시기에는 토지 겸병과 더불어 소농민의 노비, 유민으로의 전락이 큰 사회 문제였다.

전한과 후한은 수도의 위치 때문에 장안(長安)에 도읍했던 서한(西漢)과 낙양(洛陽)에 도읍했던 동한(東漢)이라고도 한다. 이는 오대 십국 때 유지원이 세운 한나라를 후한(後漢)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후한 멸망 이후 한나라 유씨 황족으로서 황제에 즉위 한 소열제 유비가 파촉 지방과 한중에서 세운 촉한이 있다. 보통 삼국지(蜀)이라고 불리는 이 나라는 이게 본래의 국명이 아니며,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찬탈 왕조 위와 맞선다는 뜻으로 엄연히 한(漢)을 국명으로 지었다. 후세에 이를 혼합하여 촉 지방의 한나라라고 해서 촉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촉한의 정통성을 인정할 경우 마지막 한나라란 뜻에서 계한(季漢)이라 부른다.

3. 후한 멸망 이후

3.1.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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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일한 한(漢) 왕조익주 지방으로 밀려나 촉한이 되고, 수(隋)가 중국을 재통일하기까지 근 370여년 동안 분열과 전란이 이어진 시대.

3.2. 수 · 당(隋 · 唐) 시대

  • 수나라(隋)(581년~619년)
    후한 말기의 황건적의 난 이후로 삼국시대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등을 거치며 끝없는 혼란의 연속이었던 중국 대륙을 평정하여 중원을 재통일한 국가이다. 수 문제 시기 율령의 핵심인 3성 6부제, 과거제의 원형이 만들어졌고, 이후 수문제와 수양제가 굴착한 대운하는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중국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수 중심의 천하관 확립을 위해 고구려에 원정을 보냈으나, 을지문덕을 비롯한 고구려군의 맹렬한 저항에 의해 전쟁은 패배로 돌아갔고, 결국 국가 재정의 파탄과 농민반란으로 멸망한다.
  • 당나라(唐)(618~907년)
    수나라에 이은 중국의 통일 왕조로 618년에 수의 당국공이자 관롱집단 출신인 이연이 건국해 907년 애종후량주전충에게 멸망하기까지 289년간 20대의 황제가 다스렸던 국가였다. 전통 중국 문물을 발전시킨 왕조이자 동시에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하였고 이민족의 문화에 대한 인정과 자치를 인정하는 등 다민족적인 국제적인 요소가 가장 짙었던 왕조로 평가받는다. 한국사에서는 백제의 맹공과 고구려의 협공으로 인해 위기에 빠졌던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3.3.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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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가 멸망한 10세기 초엽부터 왕조가 개창된 10세기 중엽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이어진 혼란기.

3.4. 송 · 원(宋 · 元) 시대

3.4.1. 중원

3.4.2. 정복왕조

4. 근세

4.1. 명 · 청(明 · 淸) 시대

5. 근현대


※ 본 문단은 줄글로 일목요연히 정리한 단일 문서를 만들기 위해 작성한 주춧돌에 불과하며, 많은 사용자들의 추가 및 수정을 요합니다. 중화민국/역사 문서, 중국 공산당 문서의 역사 항목, 그리고 중국의 근현대 역사 사건 문서(개별 사건 문서가 리스팅만 되어있음)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신해혁명과 함께 중원을 오랫동안 통치해왔던 청나라는 무너져 청나라 소조정으로 쪼그라들었고, 중화민국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원을 통치해왔던 청나라 정부가 무너지자 각 지방에는 늘 그렇듯 군벌이 난립하게 되었고, 위안스카이는 황제를 자칭하기까지 하면서 의회를 폐지하고, 이에 위안스카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대대적으로 반발하여 결국 목적을 달성하였으나 호법전쟁이라는 내전까지 터지는 등 그야말로 대륙은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한편 서구 열강은 제1차 세계 대전에 돌입하였고, 일본은 러일전쟁의 결과물로 러시아의 조차지 뤼순 항과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장악하여 조금씩 만주를 넘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터진 공산주의 혁명의 물결 역시 중국 대륙에도 스며들어, 1920년에 사회주의자동맹을 시작으로 중국 공산당의 토대가 마련된다.

호법전쟁이 실패하고 천중밍과의 합작도 결렬되자 국민정부는 중국 공산당과 1차 국공합작을 단행하고 북벌을 개시, 최종적으로 베이징까지 밀어붙이고 일본이 진행하고 있던 만몽분리정책을 결정적으로 가라앉혀 떨어져나가는 것만큼은 막게 된다.

하지만 중화민국 내정이 이런다고 진정되나. 이미 베이징을 비롯해 각지가 자신들이 정부다, 군벌이다 뭐다 하며 조각조각 갈라진 지 오래였고,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국공합작을 결렬하고 차츰 세력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으며, 일본은 만몽분리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었으며 부정부패까지. 중화민국 국민정부 입장에서 내우외환이라 할 수 있었다.

국부 쑨원도 이미 사망했고, 장제스는 무력으로 이들을 하나하나 제압하기 시작한다. 군벌을 박살내는 동시에 군 규모를 줄이려 했던 반장전쟁과, 공산당을 절멸하기 위한 초공작전. 반장전쟁은 1차적인 목표인 통일까지는 이뤄냈으나, 최종 목표인 군벌 섬멸에는 실패했으며, 초공작전 역시 5차 전투 당시 공산당의 전략적 실책과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의 지원 끝에 장시성에서 밀어내는데 성공했으나, 주요 지도부가 도망쳐 옌안에 자리잡는 것을 끝내 허용하는 바람에 최종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대륙이 혼란스러운 시기, 일본은 계속 만주를 침탈해왔고 끝내 괴뢰국 만주국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으니 바로 중일전쟁이었다.

중일전쟁 끝에 중화민국이 승리했으나, 중화민국 역시도 이로 인해 국력을 상당히 소진하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중일전쟁을 틈타 북부 지역에 해방구를 만들어갔고, 중화민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국공내전까지 벌이나, 국공내전의 결과가 어떤지는 국부천대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성립되었다!"고 천안문 광장에서 외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중국이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마오쩌둥이 집권하는 동안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터뜨리면서 내부적으로 크게 추락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은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개혁개방에 나서, 경제를 재건하여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여, 그나마 중화민국보다는 괜찮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평을 받는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력은 분명 무시 못할 경제력임을 이 글을 읽는 위키러들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일당 '독재정권'은 결국 '독재정권'이었던가. 인민군이 인민을 전차로 밀어버리면서 중국 대륙에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붕괴되었고, 설상가상으로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집회 자체가 실질적으로 선제적으로 제압되고 있으며, 그나마 온건하단 평을 들었던 지도자들이 퇴임하고 시진핑 시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적으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또한 인민지원군, 티베트 침공, 중인전쟁, 중월전쟁, 중소분쟁 등등 주변국과 분쟁을 일으키고 분쟁에 참전하는 등등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을 사용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지금도 주저하지 않는 중국의 행태는 미국 중심의 포위망에 하나 둘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적어도 고려하게 하는 등등의 행동을 부추김으로써 외교적으로도 점차 고립되기 시작했다.

이렇듯 지금까지 벌인 행태로 내우외환을 자초한 중국은, 그리고 그걸 심화시키는 시진핑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주목된다.

6. 중국 역대 국가

중국 역대 국가명 참조

7. 중국의 역대 군주

8. 중국의 역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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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국사 대표적 사건

9.1. 근대 이전

9.2. 근대 이후

10. 전쟁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전투 목록/중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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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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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역대 국가별 수도
  • 중국전사(中国全史) 100권 - 중국의 역사를 하은주 시대부터 민국시대까지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사상 등 중국사의 여러 면모를 파트로 나누어 맡아 정리, 개괄하여 저술한 책이다. 중국사를 살펴보는데 유용하므로 중국어에 능통하다면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 2020년대에는 기계 번역의 성능도 많이 좋아졌으므로 이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1] 대륙통치기 중화민국이 빠져있다.[2] 여담으로 삼황오제는 훗날 진시황이 '황제'라는 칭호로 따왔다.[3] 진시황이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하기 이전의 시대.[4] 두 지역이 서로 붙어있긴 하고 산시성에서도 얼리터우 유적이 발견되기는 했다. 수도가 바뀌었다는 기록도 있다.[5] 한국을 적용시켜 보자면 미래에 후손들이 한국을 가리키면서 '서울 시대'라고 부르는 격이라 할 수 있다.[6] 이런 시각은 비단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당장 춘추시대만 해도, 관중이 초나라 대부 굴완(屈完)에게 이 일을 따져물은 적이 있다. 당대에도 벌써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것.[7] 주나라 자체는 기원전 256년에 멸망했다.[8] 이후에 어느 나라도 한나라 400년 이상가기는 커녕, 희한하게도 300년도 못 넘기고 망했다. 굳이 따지면 송나라가 도중에 나라가 한 번 망하긴 했어도 북송 남송 합치면 300년 가긴 했다.[9] 두산백과, 한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10] 오늘날 대한민국일본에서는 전한과 후한이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중화권에서는 서한과 동한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이유는 당연히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은 서쪽, 후한의 수도였던 낙양은 동쪽에 있기 때문. 사실 후한(後漢)이라는 표현은 오대십국시대에 존재한 국가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해서 혼란의 여지가 있다.[11] 실존 여부가 논쟁이 되고 있다.[12] 한을 계승하는 의미로 정식 국명 자체는 '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