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07:56:26

제사해 운동

저 새는 해로운 새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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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참새를 때려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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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화 창천항로 1권의 설명.

1. 개요2. 경과
2.1. 발단2.2. 전개2.3. 결말
3. 번외 문제들4. 마작 관련된 루머5. 유사 사례6. 기타7. 패러디

1. 개요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마오쩌둥이 지시한 유례 없는 규모의 대규모 해충, 해조 박멸 운동. 그리고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유례 없는 규모의 대기근

한자로는 除四害运动/除四害運動(4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이쪽이 정식 명칭이지만, 특별히 참새만을 때려잡는 걸 따로 타마작운동(打麻雀运动/打麻雀運動)이라고도 한다.

독재자의 아마추어리즘이 해당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확실한 예시. 국민들의 여론 수렴과 사회적 공론화, 격렬한 논쟁, 교차검증, 투표와 법률화를 거쳐서 정책을 집행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비해서, 1인 혹은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철저하게 상명하복으로 운영되는 독재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1]

2. 경과

2.1. 발단

모택동 주석은 1955년 농촌에 현지지도를 나갔다가, 지나가던 참새를 보고는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참새[2]는 해로운 새(害鳥)이다.
麻雀是害鸟。

그리고 며칠 후, 마오쩌둥과 14개 성의 당서기들은《전국농업발전강요(全國農業發展綱要)》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농업발전을 위한 정강을 포고하게 되는데, 전체 40개로 이루어진 전문에서 제27항이 바로 제사해(除四害), 즉 4가지 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해는 중국 인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4가지 해로운 것으로 이는 각각 모기(蚊子), 파리(苍蝇), (老鼠) 그리고 참새(麻雀)였다.
제27항: 네 가지 해로움을 없앤다. 1956년부터 각각 5년, 7년, 혹은 12년 내에 모든 지방에서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소멸시킨다.
(二十七) 除四害。从1956年开始、分别在5年、7年或者12年内、在一切可能的地方、基本上消灭老鼠、麻雀、苍蝇、蚊子。
Mao vs Wild

이 사해를 박멸하겠다는 마오의 의지는 1958년 10월에 전국적인 '제사해 운동'으로 이어졌다. 마오는 연설을 통해 중국 인민에게 해를 끼치는 사해를 박멸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마오가 참새를 박멸하자 참새의 먹이였던 해충모기 그리고 파리들이 더욱 번성해 도저히 박멸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고, 이로 인하여 오히려 식량 생산량이 더 추락해버렸다. 한국어 위키백과 관련 항목.

이런 참새 사냥을 포함한 제사해 운동은 사실 전반적인 위생 개선 운동과 같이 실시된 것이며, 의도는 좋았다. 당시 중국인들은 위생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여름만 되면 쉽게 전염병이 창궐했으며, 마오는 이를 근절하려고 한 것이다. 애초에 개발도상국치고 위생 관념이 철저한 나라는 드물기도 했고. 그리하여 각급 학교에서 위생 검사, 양치질하기 운동, 집이나 거리 청소하기 운동, 여러 방역 구제가 실시되었고, 화장실이 따로 없던 농촌 지역에서는 재래식이지만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도 저런 때가 있었으며, 쥐약을 배급해서 쥐 잡기 운동을 하기도 했고[3] 파리, 모기를 없애기 위해 DDT 등의 소독약을 뿌리는 방역 조치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저런 최소한의 위생 조치만으로도 농촌 평균 수명이 제법 올라가긴 한다.

문제는 이런 운동에 참새를 끼워넣은 것이었다. 물론 마오쩌둥은 참새가 추수기에 곡식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농민 최악의 적으로 여겨진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런 정책을 추진한 것이지만, 참새는 곡식만 훔쳐 먹고 사는 새가 아니며 추수기에는 곡식을 훔쳐 먹는 해로운 새지만 추수기가 아닌 평소에는 농작물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각종 곤충벌레들을 훨씬 더 많이 잡아먹고 사는 이로운 새라는 점이었다. 참새가 잡아먹는 해충의 양이 엄청난 걸 생각하면 초대형 오판을 저지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확실히 알아둬야 할 점은, 참새는 추수기 때 만큼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곡식을 먹어 치우는 농민 최악의 적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제사해 운동 이후에 밝혀진 참새의 이로운 측면만 강조하느라 참새의 해로운 측면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참새가 추수기에 먹어 치우는 곡식의 양은 어떤 병충해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4] 참새 떼가 한 번 덮칠 경우 절반이라도 건지면 다행이고 심한 경우에는 에 낟알이 1~2할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그야말로 농민들에게는 철천지 원수 수준으로 지금도 허수아비를 비롯해서 즐비하게 설치된 각종 새 쫓는 장치[5]들이 전부 참새 대책용이라는 점을 보면 참새가 추수기 농민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추수기가 아닌 시기에 다른 해충들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모기나 쥐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해악이 분명했다. 마오쩌둥이 참새를 파리, 모기, 쥐와 함께 4가지 해악으로 지정한 이유도 농민들과 이런 부분에서 같은 인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며 또한 참새의 먹이가 되는 모기, 파리, 를 퇴치하는 건 참새에 비해서 우선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나서 별로 진행되지 않았다. 참새 퇴치가 우선시 된 건 위생 문제보다도 농업 생산을 우선시하는 당시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 파리나 모기가 곡식을 먹지는 않고 파리가 밥은 좀 먹지만 쥐 역시 곡식을 먹기야 하지만 주로 창고에 있는 곡식을 훔쳐먹는 걸로 인식됐고, 다른 부분에서 해를 끼치는 점이 더 부각되었다. 그랬기에 당장 수확철에 곡식에 해가 가는 참새를 우선적으로 잡게 된 것이다. 즉 당원 및 관료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농업 생산량을 올리는 게 급선무이므로 당장 눈에 잘 띄는 참새를 족치는 게 가장 그럴싸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운동을 발표한 전문인 《전국 농업 발전 강요(全國農業發展綱要)》부터가 애당초 농업 관련 발표다. 그래서 아래를 보면 알겠지만 참새를 잡아 보이는 퍼포먼스는 했어도 쥐를 잡아 보이는 퍼포먼스는 벌이지도 않았다. 차라리 1960년대 대한민국의 파리-모기 및 쥐꼬리 모으는 방학 숙제가 이거보다 위생 개선에 더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저 중 가장 있어 보이고 만만한 게 참새라서 결국 참새 때려잡기 운동으로 변질된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점은, 개요 문단에도 적혀 있듯이 이러한 국가 정책이 일반 대중들의 요구와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검토에 의해서 실행된 것이 아니라, 독재자의 즉흥적인 말 몇 마디에 의해서 실행되고 철회됐다는 점에 있겠다. 제사해 운동의 상위 그룹인 대약진 운동도 마찬가지고.

2.2. 전개

하여튼 마오쩌둥의 한 마디에 힘입어 중국의 모든 인민들은 참새를 잡는 데 동원되었다. 중국사회과학원[6]에서는 참새가 농작물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고, 농촌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참새를 잡는 데 힘썼다.
인민공사의 동지들이여, 그 새를 박멸하는 것은 마오 주석과 당 중앙이 우리에게 하달하신 정치적 임무입니다. 우리 대대는 집집마다 총동원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오를 지어 모두 새총을 쥐어야 합니다. 새총을 쓸 수 없다면 을 울립시다. 징이 없다면 세숫대야라도 울립시다. 세숫대야가 없다면 모두 목청껏 함성을 질러봅시다. 모두가 이렇게 한다면 그 새가 박멸되지 않겠습니까?
뭘 하냐고요? 저 저질스러운 새 놈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새들이 땅이나 가지 위나 지붕 처마에 앉지 못하게 하여 저 양식이나 축내는 교활한 놈들을 지쳐 죽게 해야 하는 겁니다!참새를 죽입시다 참새는 나의 원수
- 당시의 중국 공산당 연설문 중
위엄 넘치게도, 사람들은 넘쳐나는 인력으로 참새가 앉아서 쉬지 못하게 해 참새가 탈진하여 떨어지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나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9051109225040004300-001.jpg

잡은 참새를 달구지에 매달고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중국 인민들. 일일전과(一日战果)란 글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 많은 참새를 단 하루 만에 잡았다. 이런 짓을 전 대륙에서 1958년 한 해 동안 계속했다.

일반적으로 참새를 잡는 방법은 이나 새총과 같은 물리적인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늘을 날도록 하여 탈진시켜 잡는 것이었다. 잠자리채, 올가미, 새총 등은 참새를 잡기엔 너무 비효율적이었고, 그렇다고 인민들에게 총을 풀었다가는 내전 우려 및 치안 불안 등의 문제가 생기는 탓에 총도 지급되지 않았다. 고로, 특정한 날을 정해 참새가 앉을 만한 곳에 사람을 풀어놓고 계속 시끄럽게 하거나 뭔가 휘둘린다 싶으면 잡았다. 참새들은 착륙을 못 하고 탈진할 때까지 날다가 추락했다. 물론 이런 방법 말고도 여러 다른 방법들이 이용되었으나, 이렇게 탈진시켜 사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3. 결말

이러한 전투(...)의 결과는 59년에 나타났다. 1958년 한 해 동안만 참새 2억 1,000만 마리학살당해 거의 멸종의 위기에 이르자, 참새가 잡아먹고 살았던 메뚜기 등 각종 해충의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중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흉년이 발생. 공식 발표 2,000만 명, 학계 추산 최소 3,000만 이상, 최대 4,500~5,000만 명의 기록적인 아사자가 발생했다. 현재 서울 인구가 천만 정도이니, 공식 발표에 따르면 베이징 시민들이 몽땅 아사한 셈.[7] 이래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감이 안 잡힌다면 60년대의 한국의 인구 수가 대략 3,000만이었다는 점을 보자. 한마디로 참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들이 개죽음을 당했다는 것. 굳이 당시 한국이 아니라 중국의 옛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면 한때 유럽을 시궁창으로 밀어넣었던 흑사병이 있으며, 과거 흑사병 때문에 죽은 중국의 인구가 대략 2,000~3,000만 정도였다.

결국 당 지도부는 소련 서기장니키타 흐루쇼프에게 빌어 연해주에서 20만 마리의 참새를 공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참모들이 마오 주석에게 이 '참새 전쟁'을 계속할지 물으니, 이 모든 사태의 장본인인 모택동 주석은 다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算了。(됐어.)

그리하여 이 무의미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었던 동물 학대 도살극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구사할 수 있는 이 단순한 두 음절이 마오 주석의 입을 통해 발표됨으로써 그렇게 종료되었다.

이후의 제사해 운동에서는 참새가 슬그머니 바퀴벌레로 바뀌었다.

3. 번외 문제들

물론 1960~61년의 대기근은 이러한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때마침 태풍과 홍수가 세트로 몰려왔으며 마오가 저지른 또 하나의 사건인 대약진 운동으로 이미 농업 생산량은 바닥을 드러나고 있었다.

참새 잡기 이외의 이 기간 중 중국 정부의 농업 관련 정책은 다음과 같다.
  • 철 생산을 위해 모든 자원을 쇠 모으기에 집중했다. 비료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모조리 제철 공장[8]에 퍼붓는가 하면, 곡식 운반용 화차까지 고철 화물용으로 넘겨서 안 그래도 모자란 수확량이 현지에서 썩어나고 말았다. 또한 고철을 모으라는 게 국가의 지시인 관계로 인민들은 농사보다는 고철 모으기에 집착했고, 성과를 내기 위해 농기구를 부숴서 고철로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그렇게 고철을 긁어모아 제련한 철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는 똥철이었다는 점이 문제. 토법고로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토법고로만큼 멀쩡한 철광석과 대량의 연료를 가축 분뇨 이하의 똥철로 바꾸는 데 적합한 방법도 없다. 가축 분뇨는 비료로 쓰지만 저기서 나오는 똥철은 탄소 함유량이 3~5%를 찍는 막장 선철로 푸석푸석하고 쉽게 깨져서 농기구나 병장기는커녕 숟가락·젓가락 만드는 데도 못 쓴다.
  • 사실 이때의 수많은 사상자를 낸 홍수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위에서 설명한 철 생산 운동을 하기 위해 토법고로라고 하는 원시적인 용광로를 이용했는데, 이 용광로에서 사용될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산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제대로 된 용광로 하나 돌릴 연료로도 토법고로는 몇 개 못 돌린다. 토법고로 자체가 소형이라 열을 쉽게 뺏기는 고로 온도 유지를 위해 막대한 양의 연료를 퍼넣어야 하는 막장 시설이기 때문. 그런데 이런 연료는 더럽게 처먹는 똥철 생산기를 동네방네 만들고 코크스가 아니라 목탄을 처넣어가며 쉬지 않고 돌렸으니 산에 나무가 남아돌 리 없다. 이러니 이전에는 별일 없었을 강수량에도 홍수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한에서 1990년대 산을 모조리 개간해서 식량난을 극복하겠다며 비슷하게 따라하다 빈번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식량난이 더욱 악화되며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었다.
  • 당시 MIT-칼텍 교수 출신의 로켓공학 기술자이자 수학자였던 첸쉐썬 박사는 단순한 수학적인 계산으로 곡식의 씨앗을 2배의 밀도로 심으면 단위 생산량이 2배로 늘어난다는 논리로 효율적(?)인 작황방법을 마오쩌둥에게 제안했으며, 이 제안은 그대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게 효율적인 방법이었다면 유구한 농업 역사 속 조상들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실 심는 밀도 자체를 늘리는 것은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밀도를 늘리는 방법에도 한계와 리스크가 명확했다. 한계 이상으로 지나치게 빽빽하게 심으면 태양광이 제대로 비치는 범위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어서 햇빛을 덜 쬐는 상태가 지속됨과 동시에 땅의 한정된 영양분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성장이 크게 저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설령 영양이 충분하더라도 공간 부족때문에 잡초 제거같은 노동이 힘들어지며, 병충해에 심각할 정도로 취약해진다. 때문에 어느정도 이득은 있긴 하지만 이득에 비해 리스크가 심각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위험한 농법이었는데, 상술한 토법고로로 인한 농기구 소멸 사태와, 제사해 운동의 후폭풍인 병충해가 가뜩이나 심각한 리스크를 지닌 농법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킴으로써 역사상 최악의 흉년이라는 막장스러운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 이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무기와 기술 원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는데, 외화가 부족한 중국은 식량으로 계속 상환했다. 이러면서 "우리는 풍년이 들었다"라며 허세를 부렸다.

게다가 외국에 상환해야 할 엄청난 양의 곡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아주 조금의 식량만 보내주거나 구제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이를 악화시켰다. 그걸 떠나서 곡물 상환을 위해 더 많은 곡물을 수탈했다. 농업 생산량이 약화된 농촌에 자연 재해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격을 입혔고, 거기에 대약진 운동이나 참새 운운하는 등의 마오쩌둥의 삽질로 확인사살을 하는 바람에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근이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1956년 정치국 결정에 따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이 된 류사오치는 기록적인 대참사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마오쩌둥과 격렬한 언쟁을 벌였고 마오의 똥을 수습하기 위해 실용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이 때문에 마오는 류사오치를 주자파, 즉 자본주의 추종자라고 미워하게 되었다. 한편 류사오치는 경제적으로는 온건책을 썼지만 정치적으로는 대약진 운동에 반발하는 인민들을 반동으로 몰아 가혹하게 탄압했는데 류사오치를 어떻게 회칠지 고민하던 마오쩌둥은 이걸 보고 옳다구나 하고 반정부 학생 세력들을 지지하면서 이들에게 정부와 당의 주자파를 숙청하라고 선동하였는데 이 학생들이 다름아닌 홍위병이 되고 류사오치 뿐만 아니라 그냥 당과 정부, 관료제를 통째로 드잡이해서 박살내게 된다. 이렇게 중국은 문화대혁명이라는 또 한차례의 광기에 휩쓸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양극단을 오가는 정책은 중국을 한국보다 20년 뒤떨어지게 했다. 그리고 이 당시 어른들이 시켜서 새총을 들고 들판을 누비며 참새 헌터 짓을 했던 아이들은 10년 후 어른들을 사냥하는 홍위병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90년대 즈음에도 여전히 중국의 참새 개체수는 충분하게 복구되지 않았다. 덕분에 중국에서는 결국 양계장에서 병아리를 풀어 해충을 잡아먹게 하는 정책까지 실시하게 된다. 병아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종종 쓰이는 일반적인 구제법이다. 다만 보통은 참새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중국만큼 많이, 자주 쓰지는 않을 뿐.

4. 마작 관련된 루머

중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참새와 마작 모두 한자로는 麻雀이라고 쓰기 때문에 마오가 말한 마작이 참새가 아니라 유희 마작을 지적한 게 아닌가 하는 개드립을 치지만, 광둥 등 소수 지역을 제외한 중국 본토에서는 보드게임인 마작을 마작이 아니라 마장(麻將, májiàng)이라고 발음하며 참새는 마췌(麻雀, máquè)로 쓰기도 하고, 설령 마작이라는 단어를 헷갈릴 수 있다고 해도 당시의 선전문 등에서 '참새는 해로운 다'라고 명시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저 둘을 혼동할 수가 없다. 물론 보드게임 마작을 마장이 아닌 마작으로 표기하는 나라/지역에서는 말장난이 가능하다.

다만 실제로 마오쩌둥이 마작에 아주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서 진짜로 중국인들이 마작을 못 하게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 천하의 마오쩌둥도 마작만큼은 없애지 못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마작 사랑은 그만큼 대단했단 얘기다. 온갖 법적 규제로 깨끗한 도시를 만들어낸 싱가포르리콴유조차 "중국인에게 마작을 포기하게 하는 것만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5. 유사 사례

중국의 예는 그 규모와 참혹성 때문에 한국의 디씨 같은 곳에서 지나치게 희화화된 면도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역사상 상당히 많이 벌어졌다. 또한 인간에 의한 동물종 멸종사태는 사실 인류사에서 굉장히 많았다. 이에 대한 사례는 멸종 문서 참조.
  • 인위적인 특정 종의 소멸이 생태계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가의 예시로 흔히 제시되는 사례가 미국의 카이바브 고원 사건이다. 문서 참조.
  • 프리드리히 대왕이 마오쩌둥과 비슷한 일을 터뜨린 적이 있는데 동기가 자기가 좋아하는 체리를 참새들이 막 먹어대서였다. 자기가 기르는 벚나무에 한정했다는 게 그나마 다행. 그리고 그 뒤에 벌레가 생겨서 나무가 병들자 자신의 잘못을 금세 뉘우치고 역으로 참새들을 보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 장제스가 중국의 지배자였던 시절에 장제스도 중국인들의 생활습관을 현대화하겠다는 이유로 신생활운동이란 것을 지시한 바가 있었는데 신생활운동 중에도 해충들을 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하지만 장제스가 때려잡으라고 명령한 생물들은 파리, 모기를 비롯한 곤충류라서, 마오의 제사해운동과는 달리 중국의 위생 증진에 도움이 되었다. 물론 신생활운동도 당시 중국의 정치적 혼란과 재정적 부족으로 한계가 분명했으며 근본적인 환경 변화가 아닌 전시행정스러운 정책들 때문에 해외에선 비판의 대상이었다. 한때는 중국판 파시즘 운동이라는 비난까지 나왔지만 지금은 재평가되는 추세.
파일:external/s13.postimg.org/DSCF0427.jpg
* 중국에서 웨딩사진 촬영을 끝내고 방생한 비둘기를 한 마오쩌둥의 후예 관광객이 손으로 가리키며 '이 비둘기는 식용이 가능하다[9]'고 외쳤더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백마리의 비둘기를 잡아갔다고. 저 새는 이로운 새다 비둘기야 먹자가 아니라 비둘기 먹자#
  •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연산군. 어느 날 연산군은 말을 타고 환궁하다가 앞의 풀숲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는 것을 보고 자신을 노리는 자객으로 의심하여 말을 급히 몰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사람에게 그 풀숲에 있던 게 무엇인지 살피게 했는데 다름아닌 황새였다. 그래서 연산군은 각 도에 명해 황새를 잡아 씨를 말리라는 전교를 내렸다. 다행히 3달뒤에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시행되지는 않았다.
전교하기를, "각 도로 하여금 황새를 잡아 올려 남은 종자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왕이 일찍이 금표(禁標) 안을 미행(微行)할 때 풀숲에 사람이 숨었다가 자신을 해칠까 늘 두려워하였는데 하루는 저녁 때 말을 몰아 환궁하다가 밭두둑에서 황새가 무엇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사람인가 의심하여 채찍을 쳐 급급히 지나와 사람을 시켜 살펴보니 바로 황새였다. 이로부터 황새를 매우 싫어하여 위와 같은 하교를 내린 것이다. - <연산군일기> 연산군 12년(1506년) 5월 23일
  • 제사해 운동과 비슷한 일로 달팽이 박멸 운동도 있다. 마오쩌둥 집권기에 중국에선 수인성 질환인 주혈흡충 감염증이 크게 유행했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 주혈흡충을 박멸하기 위해 기생충 감염의 매개체인 달팽이를 박멸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이 때문에 수많은 농민들이 동원되어서 강과 호수, 수로를 파헤치며 달팽이를 잡았다. 그리고 이 때문에 주혈흡충 감염이 더 퍼졌다(...). 주혈흡충이 감염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주혈흡충의 알이 섞인 가축이나 사람의 배설물이 강이나 호수에 흘러 들어가고 이 흡충의 알이 달팽이를 비롯한 패류에서 부화해 유충 형태로 수중에 퍼졌다가 사람의 피부에 닿으면 유충이 이를 파고 들어가서 감염되는 형태이다. 즉, 달팽이를 잡기 위해 오염된 물에 빈번하게 들어가면서 더욱 감염에 노출된 것. 주혈흡충 감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배설물이 함부로 식수원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상하수도 체제를 잘 갖추고 가축의 분뇨 처리 또한 위생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집단농장화된 중국의 농촌에선 당연히 이게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6. 기타

2013년 1월 20일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도 소개되었다. 실제 역사와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면 참새 박멸 운동이 어디까지나 참새가 쪼아먹는 곡물의 양을 아껴서 식량 생산량을 늘려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는 것 하나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곡물 절감 효과도 노리긴 했지만 상기한 대로 위생 문제도 어느 정도 고려하여(물론 완전히 착각한 것이였지만) 참새를 박멸 대상으로 잡은 것이다. 당장 참새 퇴치 운동 당시 같이 퇴치 대상으로 지정되었던 것이 곡물 생산량에 전혀 영향이 없었던 파리와 모기였다.

마오쩌둥의 갓 핑거타노스로 멸종된 동물이라고 한국에서 잘못 알려진 남중국 호랑이는 마오쩌둥이 싫어해서 보호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 인명피해 방지를 위한 사냥과 대약진운동으로 비롯된 삼림남벌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줄어든 것이다. 인명을 해치는 맹수에 대한 해수구제사업을 단순히 권력자가 싫어해서라고 해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마오쩌둥이 호랑이를 싫어했다는 주장은 그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결과적으로는 마오 탓이 맞긴 하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밟은 격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김일성은 참새 70만 마리의 턱 부분 털로 만든 이불을 덮고 잤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10] 이 이야기는 당시 김일성의 측근이자 후에 탈북한 황장엽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정한 바 있다.

미래엔 아이세움에서 출간되고 있는 브리태니커 만화 백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56권)"편 중 24페이지에 "생태계 평형의 중요성" 항목에 소개되었다.

나무위키에서는 조류와 관련된 부분이나 무언가 정말 해로운 것, 내지 무언가가 멸종할 위기에 처한 부분에서 이 드립을 치는 것이 보편화되어있다. 아래의 패러디들이 대표적.

7. 패러디

그런데 대륙에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최훈의 돌직구 33회에서 이 말이 패러디 된 적도 있다.# 사자: 이 새는 이로운 새다

마사토끼의 단편실화 마사토끼 아청법에 걸리다 1화에서도 패러디 되었다. 해로운 토끼다

SCP로도 패러디되었다.SCP-850-KO

파일:external/4.bp.blogspot.com/BVVUeKcCQAAQ9ee.jpg
트위터 비이용자들이 트페미,혼모노등 악명높은 트위터 주 이용층을 두고 "저 새(트위터)는 해로운 새다"라며 패러디하기도 한다. 트위터의 로고가 새 모양이기 때문에 트위터를 새로 패러디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차단한 것을 알고 보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다른쪽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미니어처 게임 DUST의 SSU 진영에 '마오쪄둥'이란 대공전차가 있는데… 그야말로 '저 비행기는 해로운 비행기다!'를 시전한다. 85mm 대공포 4문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적의 공중 유닛은 물론 적 지상군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저 공군은 해로운 공군이다!! 대공 전차의 위용과 전차 이름이 절묘하게 조합이 되면서 많이들 웃게 되는 부분… 누가 지었는지 네이밍 센스가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기적인 성능을 가진 새 캐릭터들이 이러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죠죠펫숍은 게임판에 나오는 족족 사기적인 성능으로 악명을 떨쳐 이 소리를 듣기도 했고, 포켓몬스터에서는 5세대에는 가속 번치코, 6세대에는 파이어로, 7세대에는 카푸꼬꼬꼭이 이 소리를 듣거나 들었다.[11] 또, 유희왕카드 중 사기적인 성능으로 금지카드가 된 야타 까마귀도 이 소리를 곧잘 듣는다.

거대토끼 미니! 귀여움이 심하시군 카카오톡 이모티콘에서 패러디되었다.

메이플 업적에 노멀 핑크빈 1,000회 처치하면 얻을 수 있는 업적이 있다.
[1] 사실 그 민주주의도 국민들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아마추어리즘에 빠지지 않는다.[2] 원문대로 가면 분명 참새인데, 국내에서는 '저 새'로 더 잘 알려졌다.[3] 사실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관심은 거의 없어졌다시피 하지만 공직 특유의 관성성으로 아직도 잡기 사업을 하고 있다. 매년 연초에 통장을 통해 쥐약을 배급하고 있다(2017년 기준).[4] 물론 병충해 각각의 경우의 이야기고, 참새가 없을 때는 그 병충해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게 커진다는 것이다.[5] 예를 들어 요란한 소리가 나는 깡통들을 줄에 매달아놓고 그걸 흔든다거나.[6] 중국 정부 직할의 싱크 탱크.[7] 학계 추산치면 충칭시 인구 전체가 전부 아사한 거고, 비공식 수치로 따지자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아사한 셈이다.[8] 공장이라기보단 각 가정에서 어설프게 만든 재래 풀무가 더 많았다.[9] 사진 속의 비둘기는 흰 비둘기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품종인 '화이트킹' 품종으로 보이며, 중국에서는 식용으로 많이 길러진다. 화이트킹은 길에 흔히 보이는 비둘기들과 같은 종이면서 보통의 비둘기보다 덩치가 상대적으로 크고 살이 금방 찌는 편이라 식용 비둘기 중에선 가장 보편적인 품종이다.[10] 80년대 정부에서 발간한 반공교육서적에 실려있을 정도로 세간에 퍼져 있었다.[11] 7세대 시점에서는 파이어로의 특성인 질풍날개가 철퇴를 맞아 해로운 새 라인에서 탈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