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04 09:49:07

자유당(동음이의어)

1. 개요2. 분류
2.1.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자유당2.2. 일본의 옛 정당2.3. 그리스의 옛 정당2.4. 오스트리아의 정당2.5. 네덜란드의 정당2.6. 온두라스의 정당2.7. 콜롬비아의 정당2.8. 파라과이의 정당2.9. 필리핀의 정당

1. 개요

'자유당'이란 이름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당명 중 하나이다. 영어로는 보통 Liberal를 주로 사용하나, Freedom이라 표기하는 정당도 일부 있다. 자유주의 성향을 띄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1공화국 자유당의 영향으로 기피되는 당명이 되었다.

자유란 단어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인지 전세계의 많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들이 자유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 자유당이나 후술된 정당들처럼 꽤 진보적인 성향의 정당도 있는 반면, 호주의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Liberal Party of Australia)처럼 보수적인 성향의 정당도 있고, 심지어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자유당처럼 극우 포퓰리즘으로 분류되는 자유당도 존재한다.[1]

영어권에서 자유지상당자유지상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으로서 자유주의 정당과는 다른 종류의 정당으로 취급한다. 자유지상주의 정당들은 자유지상당 문서 참고.

2. 분류

2.1.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자유당


그 외에도 한국보수정당자유한국당을 줄여서 혹은 이승만의 자유당이 생각난다며 비꼬는 의미나, 한국이라는 자국명을 저런 당에 붙여부르기 싫다는 이유로 종종 자유당이라 일컫는 사람들도 있으나 공식 약칭은 한국당이다.

2.2. 일본의 옛 정당

2.3. 그리스의 옛 정당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 존속한 그리스의 정당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파 ~ 중도 정당이었으며 일부 급진적인 계파는 사민주의 성향을 띄기도 했다. 1910년에 자유당 당수로서 총리에 취임한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1차 대전 참전을 놓고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와 대립하다가 1916년에 연합국의 지원을 받아 국왕을 축출하고 참전하여 그리스가 승전국이 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는 왕당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와서, 191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그리스는 자유당과 왕당파의 대립으로 혼란이 지속되었고, 결국 1936년에 집권한 요안니스 메탁사스 총리가 모든 정당을 강제 해산시키면서 해산되었다. 이후 추축국그리스 침공으로 인해 그리스 왕실이 이집트카이로망명 정부를 세우자, 구 자유당 세력은 외세에 맞서기 위해 왕당파와 협력했고, 자유당 출신인 요르요스 파판드레우는 망명 정부의 총리로 활약했다.

2.4. 오스트리아의 정당

파일:Oesterreichisches Parlament Logo.png
오스트리아 의회의 원내 구성
여당국민당
22석 / 71석
녹색
4석 / 26석
야당사회민주당
20석 / 40석
자유당
14석 / 30석
NEOS
0석 / 15석
왼쪽이 연방의회(상원), 오른쪽이 국민의회(하원)이다.


파일:FPÖ_Logo.png
Freiheitliche Partei Österreichs(독일어) / Freedom Party of Austria(영어)

범게르만주의를 내걸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우파~극우 포퓰리즘 정당이며 네오 나치로 보기도 한다.[3] 전신은 독립당이며 자유당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한것은 1956년부터이다.

자유당의 전신인 독립연합(VdU)은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인과 옛 나치 인사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정당이었고, 1955년 자유당이라는 군소 정당과 합당하면서 현재의 오스트리아 자유당이 되었다. 이 당의 첫 지도자였던 안톤 라이트할러는 나치 장관이자 친위대 장교 출신이었고 2번째 지도자인 프리드리히 페터 역시 성향은 온건한 편이었지만 SS장교 출신이었다. 이렇게 초창기부터 나치당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으며, 이후 자기혁신을 통해 오스트리아 국민당에서 탈당한 당원들을 받아들여 자유주의적 노선을 취하기도 했다. 덕택에 1970~80년대까지는 중도 좌파 성향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하고 1983년부터 86년까진 장관을 배출(!)시키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때까지는 극우정당이라기보다는 국민자유주의 정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외르크 하이더가 당수로 오르면서부터 당 성향이 다시 극우화되기 시작한다. 우선 그는 사회민주당과 선거연합을 끝내고 히틀러 찬양 등의 극우 행보를 일삼았다.[4] 덕택에 당선된 케른텐 주지사 직에서 짤리기도 했다. 그래도 수십년 좌우대연정에 대한 피로감과 나치 출신임이 들켜버린(...) 전직 유엔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에 대한 싸늘한 국제사회의 반응에 대한 억하심정이 겹치며 차근차근 지지층을 늘려먹었고, 결국 1999년 총선에서 국민당/사민당 대연정이 파토난 틈을 타 집권에 성공한 국민당과 협상 끝에 연정을 구성하여 다시 내각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집권 기간 동안 수많은 구설수로 연정내에서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며, 결국 2002년 총선에선 대참패하고 만다.[5] 이후 오스트리아 국민당이 사회민주당과 다시 연립정권을 구성하며 정권도 내주지만, 유럽발 극우 열풍 속에 2008년 총선에서 다시 부활의 끈을 잡았고, 급기야 2017년에는 국민당과 연립정권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세우면서 1기 집권 때와 마찬가지로(...) 불협화음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지지율도 크게 떨어진 상태가 되었다. 2019년에 연립정권의 부총리였던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이 드러나면서 모든 자유당 출신 장관이 사임하여 연정에서 이탈했다.

2019년 총선에서 국민당으로 몰리면서 결국 의석수가 떨어졌다.

2.5. 네덜란드의 정당

파일:340px-Coat_of_arms_of_the_Tweede_Kamer.svg.png
네덜란드 하원의 원내 구성
De Tweede Kamer der Staten-Generaal
(괄호 안은 네덜란드 하원 의석 수)
집권당 자유민주국민당
(VVD, 33석)
기독교민주당 아펠
(CDA, 19석)
민주 66
(D66, 19석)
기독교연합당
(CU, 5석)
야당 자유당
(PVV, 20석)
녹색좌파당
(GroenLinks, 14석)
사회당
(SP, 14석)
노동당
(PvdA, 9석)
동물당
(PvdD, 5석)
50 플러스
(50+, 4석)
개혁당
(SGP, 3석)
덴크
(DENK, 3석)
민주포럼
(FvD, 2석)


파일:PVV-logo.svg.png
Partij voor de Vrijheid(네덜란드어) / Party for Freedom(영어)

우익~극우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 언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약칭은 PVV. 다만 내셔널리즘+사회보수주의 성향을 띄는 다른 국가의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과 달리 이들은 극단적 내셔널리즘+자유주의 성향을 띤다. 실제로 이들의 사회관은 이민, 이슬람, 유럽연합 등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문제들을 제외하면 오히려 기독교민주주의 성향의 중도우파 정당들보다 거이 중도좌파로 보일 정도로 훨씬 리버럴/진보적인 축에 속한다. 극우와 리버럴이 합쳐진 독특한 정당인 셈이다(...).

상징은 갈매기이며 EU탈퇴, 반이슬람, 반세계화를 내세운다. 당 대표는 인도네시아혼혈헤이르트 빌더르스(Geert Wilders).[6] 2017년 네덜란드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제1당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유럽의 극우 열풍을 제어하려는 네덜란드 국민들의 민심이 작동했는지 선거를 얼마 안 남기고 집권당인 자유민주당(VVD)에게 지지율이 역전되었고, 2017년 3월 15일 네덜란드 총선 결과 결국 당초 기대엔 못미치는 20석 확보에 그치며 19석을 확보한 3위 정당들과 근소한 차이로 2당이 되었다.

참고로 이 당은 굉장히 특이한 정당인게 당원이 오로지 1명 뿐이다. 즉 PVV 소속 의원들은 빌더르스에게 충성하는 이들 중에서 용병같이 고용된 형태에 가깝다. 당 조직도 딱히 존재하지 않으며,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빌더르스 본인의 사당이다.[7]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참패했다.

이 와중에 무함마드 풍자 콘테스트를 다시 열기로 했다.#

2.6. 온두라스의 정당

19세기 중반부터 군부독재 시기를 제외하면 온두라스의 양대정당이었고, 전통적으로 온두라스에서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정당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때 진보인사들과 중도보수인사들이 한솥밥을 먹는 상황이었는데, 2009년 마누엘 셀리아가 축출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대체를 하지 못하며 2009년 대선에서 정권을 국민당에게 빼았겼고, 마누엘 셀리아 대통령이 따로 자유재건당이라는 정당을 차리면서 제3정당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기본 조직표 자체는 남아있지만 기존 지지자들이 자유재건당으로 대부분 빠져나간지라 선거에서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

2.7. 콜롬비아의 정당

19세기부터 2002년 이전까지 콜롬비아 보수당과 양대정당을 이룩했으며, 현재도 콜롬비아 하원 원내 제1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세 자체는 아주 크지는 않다. 주요 당원으로는 호르헤 가이사가 있다. 콜롬비아 보수당과의 갈등이 위낙 심각해서 파나마 지역을 미국에게 내주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고, 콜롬비아 내전이 수십년간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정도다. 노선 자체는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정도인데 콜롬비아 내에서는 중도 성향 정도로 분류된다. 사실 진짜배기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대안민주당이라고 해서 따로 있다. 다만 사민주의 정당들은 지방선거를 제외한 총선에서는 그리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지지층도 어느정도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총선에서 사민주의 정당 지지층들의 표를 상당히 많이 받고 있기는 하다.

2.8. 파라과이의 정당

정식명칭은 정통급진자유당(Partido Liberal Radical Auténtico).

정치노선은 중도 내지 중도좌파를 지향하고 있다. 콜롬비아, 온두라스, 우루과이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파라과이 양대정당을 이룩하고 있고, 1904년부터 1946년까지 장기집권을 이룩해냈지만 이후로는 군부독재정권한테 밀려나갔고 1989년 파라과이의 민주화가 이루워졌기는 했지만 이후로도 콜로라도당이 일당독주체제를 유지하면서 집권을 못하고 있는 만년야당 신세였다.[8] 그러다가 페르난도 루고와 연합하여 2008년에 집권 성공하며 여당이 되는듯 했지만, 중도파 vs 진보파로 성향이 은근히 달랐기 때문에 충돌이 잦았다. 급기야 2012년에 토지개혁과 관련한 유혈충돌을 이유로 내세워 콜로라도당과 함께 루고 탄핵에 동참하면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루고가 탄핵되면서 대통령직을 배출하기는 했지만 이미 지지층이 분리된 상황이라 2013년 대선에서 콜로라도당에게 허무하게 정권을 내주었다. 이후 루고와 연대를 복원하는 노력(?)도 하고, 2017년 개헌을 저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어차피 루고측 지지층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 2018년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는 실패했다.

2.9. 필리핀의 정당

필리핀의 사회자유주의 중도정당이다. 1949년에 창당되었으며 집권 초기부터 필리핀 국민당과 함께 양대정당이었으며 1949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야당이었다가 1961년 대선에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이 승리하면서 다시금 집권당이 되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도 처음에는 자유당 소속의 정치인이었을 정도. 그러나 1965년 대선 경선에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과의 경선에서 마르코스가 패배하자 탈당하고 국민당에 입당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으며, 자유당은 그대로 야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인기를 누리면서 자유당은 그저그런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마르코스가 독재자가 되면서 자유당도 탄압의 대상에 몰렸다. 자유당이 과거 자기가 소속되어있던 정당이었던것도 있었기 때문에 해산당하지는 않았지만 1986년 대선에서 코라손 아키노가 당선되고 피플파워 혁명을 통해 대통령 그러나 코라손 아키노가 제 역량을 다하지 못하자 연립여당도 찢어졌고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하며 야당으로 전락했다. 이후로 지속적으로 야당신세가 되었다가 2004년 대선에서 밀어주었지만 역시 찬밥신세가 되었는데 2010년 대선에서 베니그노 아키노 3세가 당선되며 여당이 되었다. 사회정책에 대한 평가가 좋은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제는 잘한다는 평덕택에 2016년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이 유력해보였는데 여당계 후보가 여러명 출마하면서, 표분산이 이루워지는 바람에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았고 그 이후로는 큰 힘을 쓰지못하는 말 그대로 야당으로 전락해버렸다.


[1] 이 탓에 2019년 캐나다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했다는 기사가 나자 몇몇 대안 우파 성향의 포털 사이트에서 쥐스탱 트뤼도가 실각한 줄 알고 환호하는 글이 베댓에 가기도 했었다.[2] 위의 민주당과는 다른 당이다.[3]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했고, 실제 오스트리아에도 오스트리아 나치당이라는 나치즘 정당이 있었다.[4] 그럼에도 카다피사담 후세인 같은 무슬림 독재자들과 우정을 돈독히 하는 행보도 같이 보였다.나치도 이슬람과 사이가 좋기는 했다[5] 이후 외르크 하이더는 당내 내분 과정에서 일부 계파와 함께 탈당해 오스트리아 미래당을 창당하지만, 2008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히틀러랑 조우할 기세[6] 한때 자유민주당 소속이었으나 2004년 터키의 EU 가입 지지에 반발하여 탈퇴했고 2년 뒤 자유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계 이주민(Indo)들은 상대적으로 동화가 많이 된 편이라 극우 꼴통들 사이에서 대접이 낫다.[7] '태풍의 눈' PVV의 당원은 빌더르스 1인뿐[8] 다만 총선에서 타 야당과 연합해서 여러번 정국을 주도한 적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