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7 11:42:22

이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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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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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호준 · 70 이동욱 [[감독#s-1.1|
]] · 71 이대환 · 72 전준호 · 73 송재익 · 74 한규식 · 75 진종길
· 76 지연규 · 77 용덕한 · 81 손민한 · 82 한문연 · 87 김민호 · 88 채종범 · 89 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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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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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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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8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0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
2006년 KBO 리그 도루왕
2008년 KBO 리그 득점왕
2007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2007년, 2008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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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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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임재철
(2012)
이종욱[1]
(2012)
홍성흔
(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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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
손시헌
손시헌
박석민
2019~2019.05.03 2019.05.04~
나성범 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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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9번
문정환(2002) 이종욱(2003) 유한준(2004~2007)
두산 베어스 등번호 39번
홍마태(2004~2005) 이종욱(2006~2013) 장민석(2014)
NC 다이노스 등번호 39번
찰리 쉬렉(2013) 이종욱(2014~2018) 오영수(2019~)
NC 다이노스 등번호 93번
이재용(2017~2018) 이종욱(2019~)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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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o.93
이종욱(李鍾旭 / Lee Jong-Wook)
생년월일 1980년 6월 18일 ([age(1980-06-18)]세)
신체 176cm, 78kg
출신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학력 서울면목초 - 홍은중 - 선린인터넷고[2] - 영남대[3]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9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16번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2003~2005)
두산 베어스 (2006~2013)
NC 다이노스 (2014~2018)
지도자 NC 다이노스 2군 작전·주루코치 (2019)
NC 다이노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20~)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2005)
에이전트 브리온컴퍼니
등장음악 Flo Rida - In The Ayer[4]
Let It Go(겨울왕국)[5]
응원가 두산 시절 : 트랜스픽션 - Radio[6]
NC 이적 후 : Simple Plan - Jet Lag[7]
Georges Bizet -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8][9][10][11]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5.1. 손시헌과의 관계
6. 역대 성적

1. 개요

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외야수이자 現 NC 다이노스의 코치.

명실상부한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최고 중견수 중 한 명이었다. 국가대표 리드오프로서도 이름을 떨쳤던 선수이며 2007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397표 중 350표를 얻으며 골든글러브 역대 최고 득표자로 남아있다. 2014년 NC로 이적했고 2018년 시즌이 끝나고 NC에서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청소년대표로 발탁되었을 정도로 이름을 날린 유망주였다.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종욱/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2018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바로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2019년 코치로서 맡는 첫 보직은 2군 작전/주루코치.

2019년 5월 11일 창원 NC 파크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 은퇴식을 준비할 예정이었지만 이종욱 본인이 자신을 위한 행사보다는 퓨처스 작전/주루코치로서 선수 코칭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혀왔다고 한다.

2019년 8월 27일 기존 1루 주루 코치였던 전준호 코치가 부친상을 당하면서 이종욱이 4일 동안 1군에서 1루 주루 코치를 본다.

19년에 은퇴식은 이뤄지지 않았고, 같이 두산에서 NC로 온 손시헌과 같이 은퇴식을 할것으로 보인다.

4. 플레이 스타일

김경문 감독 시절 육상부로 불리던 두산 베어스 발야구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 센스를 자랑한다. 홈에서 아웃된 것이 프로 입단 후 몇번 없을 정도로[12] 타구와 상대 수비를 읽고 호시탐탐 '한 베이스 더'를 노린다.

2010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이 탁월한 주루센스로 6회 때 유격수 희생 플라이라는 진기록을 세운다.#기사#영상거기다가 김상수의 정줄놓는 수비도 한몫 그런데 사실 이종욱은 2007년 한국시리즈때도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2루수 희생 플라이를 만든적이 있다. 참고로 당시 SK 2루수는 정경배.

타격에서는 아주 빠른 스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투수의 습관이나 승부 패턴을 읽는 눈이 뛰어나 상황에 맞는 타격을 했다. 2006년 이후 기습번트 시도는 확연히 줄었으나 그후로 적극적으로 타구를 외야로 보내는 스윙을 하면서 타격능력은 더 좋아졌다. 해설자에게 욕(?)을 먹기도 했는데, 1번 타자가 테이블 세터로서 공을 길게 보고 뒷 타자들이 노려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하는데 너무 잘 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 부상으로 무너졌던 2009, 2012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3할을 기록했으며 포스트시즌에서는 기습적으로 3번 타자로 나와 활약하기도 했다[13]. 장타툴을 보면 이용규같은 순 똑딱이들과 비교할 때 이쪽은 최소한의 갭파워 정도는 갖춘 편으로 정규시즌보다는 포스트시즌에서 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큰 경기에 강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선수로, 두산 시절에는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는 시리즈 MVP급으로 날아다니다가, 위로 올라가서 SK만 만나면 버로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팀 프랜차이즈로 떠오른 김쿠바의 이미지에 가려서 보기보다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 이것도 그나마 전성기 이야기고 NC 이적 이후에는 포스트시즌만 가면 삽질만 적립한다. NC가 매년 포스트시즌에서 물먹는 요인 중 하나.[14] 국가대표에도 꾸준히 차출되었는데 2008년 올림픽에서는 전 경기를 1번으로 출장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찍었으나 2번 타순에서 4할대 타율로 날아다니던 이용규의 맹활약에 묻혔고, 2회 WBC까지 주전 1번으로 뛰다가 2010년 아시안게임 하위 라운드에서 삽질한 후로는 그를 국제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빠른 발과 훌륭한 타구판단능력, 좋은 글러브질을 겸비하여 최고 레벨의 중견수 수비를 선보였다. 전성기에는 현역 최고의 외야수비수로도 곧잘 뽑혔을 정도. 특히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를 워닝 트랙까지 따라가 잡아내는 모습은 명불허전. 어깨도 준수한 편이지만[15] 두산 시절 외야 동료 임재철, 민병헌이 워낙 송구능력이 좋았던지라 다소 묻힌 감이 있다. 허나 NC 이적 후 최근 들어서는 노쇠화의 여파인지 너무나도 약한 송구를 보여주고 있다. 심정수가 진짜 저런 발언을 한건지 궁금할 정도로...

2009년 4월 11일 역대 14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선수이다. 2루타, 사구, 안타(단타), 2점홈런 기록 후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치면서 극적으로 성공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 빠른 발, 파인플레이 이후의 기합과 삼진이나 땅볼 이후에도 기죽지 않는 이종욱의 성격은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결정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타격에서 김경문 감독이 추구하는 바를 김현수, 김동주, 최준석이 보여주었다면 수비와 주루에서는 이종욱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 FA 때 두산팬들이 (같이 풀린) 손시헌, 최준석은 몰라도 제발 이종욱만은 잡아달라고 했던건 팀의 상징격인 선수였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 김경문 감독이 있는 NC로 떠나면서 이래저래 두산팬들 입장에서는 느끼는 감정이 복잡한 선수가 되어버렸다. 허슬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던 김경문과 이종욱이 떠나고 나서야 두산이 우승을 해버렸다 특히 DC쪽 팬덤은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로, 손시헌과 쌍으로 통수메이트라 불리며 그가 뭔가 삽질을 할 때마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는 정말 하나가 되어 비웃는다(...).

이 후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긴 김경문 감독은 2012년 전력보강선수 지명 때 이종욱과 똑같은 스타일의 외야수로 눈여겨 보았던 김종호를 삼성에서 지명하였다. 그만큼 이종욱의 플레이가 참고된 것이었다. 그리고 김종호는 2013년 도루왕을 차지한다.

NC 이적 후에는 노쇠화인지 위에 언급한 장점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3할 30도루가 보장되는 리드오프 겸 S급 수비력의 센터라인 외야수로써 50억이라는 거액을 들여 영입했으나 20도루를 한 시즌도 없고, 3할은 입단 3년차가 돼서야 딱 한 번 기록하는 데 그쳤다. 정작 영입 당시 덤 취급받던 손시헌이 훨씬 팀 기여도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미친듯이 활약해도 팬들은 가끔 찾아오는 아름다운 며칠로 취급하며, 실제로도 늘 그래왔다. 2016 시즌엔 3할을 치는 등 반등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미 나이가 많았고, 2017년에도 3할을 쳤지만 리빌딩 기조로 인해 줄어든 기회로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하며 안타수도 100개를 넘지 못했다. 2017 시즌 이후 얻은 두 번째 FA에서도 1년 5억의 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단 43경기만 뛰고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FA 기간 내내 돈값에 맞는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는 NC 팬들의 평을 받았다. 즉, 구매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클래식 스탯만 놓고 보면 나름 제 몫을 했기에 정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격은 분명한 오답이다. 당시까지 이어졌던 FA 인플리에이션을 감안해도 30대의 전성기 끝물 외야수에게 50억은 너무나도 비쌌으므로.....

5. 여담

  • 대표적인 별명이 태국 영화 '옹박'에서 유래된 종박.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이 꼭 태국사람 같다며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밖에도 뽕따이, 불법 체류자, 태국용병 등의 별명도 있었다. 그래서 인천 아시안게임 때 네티즌들이 농담으로 태국 국대팀에 이종욱을 주고 시작해야 된다고 이야기 하기도. 최훈의 야구 카툰에서도 이종욱은 무에타이 선수 복장을 하고 나온다.
  • 그래서 봉숭아 학당에서 옹박 역, 사마귀 유치원에서 쌍칼 역을 맡은 코미디언 조지훈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심지어 1990년대 부산지역 삐삐 광고에 나온 코미디언 홍기훈의 젊었을 때#와도 닮았다. 본인은 한때 이 별명이 토니 자의 근육질 몸매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오해했으나, 사실은 그런 거 아니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얼굴이 닮았기 때문에 그런 거다. 결국 사실을 알고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 나중에는 예소애비라는 별명으로도 자주 불렸다. 딸인 예소가 "아빠 안타 쳤어 못 쳤어?"하고 물어본다고 했다. 그 때문에 팬들은 이종욱이 활약하면 "예소야 너희 아빠 안타 쳤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 모교에 야구부 코치를 하고있는 동기와 통화를 하다가 야구장비가 많이 부족하단 말을 듣고 3000만원어치의 야구배트와 글러브를 기증했다.
  • 위키백과의 이종욱 문서는 양준혁에 이어 야구 선수로는 두 번째로 알찬 글로 선정되었다. 이후 양준혁 문서가 선정 취소되며 한국 야구선수 중에선 유일한 알찬 글이다.
  • NC 팬덤에서는 확실히 돈값은 못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평가는 좋다. 손시헌과 함께 신생팀 NC의 센터라인 수비를 확실히 안정시켰고, 타격 기록은 나쁠지라도 팀의 주장과 고참으로서 단기간에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 두 번째 FA에서도 팬들이 다 잔류를 원했을 정도다.[16]

  •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4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2007년, 2008년, 2013년, 2016년). 두산 시절인 2007~2008년에는 플레이오프에서는 2년 연속 MVP를 받았지만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침묵하면서 물을 먹었으며, 2013년에는 삼성한테 3승 1패로 앞서며 1승만 더하면 개인 첫 우승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지만 팀이 거짓말같이 3연패를 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그때 덕아웃에서 망연자실하는 모습이 중계에 잡혔다). NC 이적 이후에는 2016년 친정팀 두산과 맞불었지만 무기력하게 0승 4패로 스윕패, 또 준우승으로 끝났다. 결국 이종욱은 현역 선수 시절 동안 우승반지를 하나도 끼지 못했다.[17] 그래도 올림픽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있어서 우승 경력이 아예 없지는 않다.

5.1. 손시헌과의 관계

고교시절부터 프로까지 오랜 세월 함께한 둘은 소울메이트,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리며 야구계 절친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손시헌과 이종욱은 선린인고 동기동창으로 두산 베어스에서 육성선수 신화를 함께 썼고, 2013년 시즌 종료 뒤 함께 FA 자격을 얻어 NC 다이노스에 둥지를 틀었다.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지만 방출당한 이종욱을 위해 손시헌이 두산 베어스 입단 테스트를 주선한 적도 있으며 두산 시절에는 이른바 "화수분 야구"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적 후에는 젊은 팀 NC 다이노스에서 각각 외야와 내야의 사령탑으로서 두산 특유의 끈끈한 야구를 전수하기도 했다.[18]

손시헌은 이종욱을 친구이기 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야수였고, 최고의 1번 타자라고 늘 얘기하고 다닌다. 이종욱이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2019 시즌에는 코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손시헌 "친구 이종욱이 그립네요"

2006년 말 상무 입대 전, 손시헌은 구단과 연봉협상을 하면서 자신의 연봉 인상분을 이종욱에게 주라는 제의를 하기도 했는데[19], 상무 제대 후 이종욱과 자신의 연봉이 같아진 것을 안 손시헌은 “입대 전에 한 말은 없었던 걸로 해달라”고 해 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서로 의견이 안 맞거나 할 때는 원수처럼 싸우기도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다투고 나면 좋은 방향과 답이 나왔다고.#

둘의 관계는 이종욱이 손시헌에게 쓴 편지 한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겨울편지] 이종욱이 손시헌에게
TO 시헌에게
상무에서 휴가 나온 널 어제 만났는데 다시 편지라니 조금은 우습다.
그래도 너에게 말로 하지 못했던 얘길 할까 해서 펜을 들었다.
돌이켜보니 선린상고에서 우리가 만난 건 행운이자 운명인 것 같다. 고교 3년 동안 둘도 없는 단짝인 널 만나 재미있게 야구했다. 우린 이후 참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됐지. 정말 묘한 인연의 끈이 있는 것 같아.
네가 대학 진학에 실패해 방황하다 힘들게 동의대에 들어가 다시 야구를 하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데. 그러나 졸업 후 불러주는 팀이 없어 넌 두산에 테스트를 받아 연습생으로 들어갔지.
결국 그게 나의 운명까지 바꿔놓았잖아. 난 대학 졸업 후 현대에 입단했고 곧바로 상무에 입대했는데 제대하자마자 방출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지. 이런 나에게 네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잖아. 두산에서 실력으로 자리잡은 네가 날 구단에 추천해준 것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다. 테스트를 받고 구단의 결정을 기다리는 3일 동안 정말 가슴이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결국 하늘은 우리의 인연을 저버리지 않았어. 그렇게 다시 만나 두산에서 함께 치고 달리며 웃고 울었던 2006년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 두산에서 짧은 1년간의 생활을 함께하고 네가 군에 가는 바람에 얼마나 허전한지 모른다.
시헌아 다른 것 없다. 빨리 좀 제대해라. 어서 같이 야구하자. 남들은 눈만 감으면 제대하는 것 같은데 넌 한참 된 것 같은데 왜 아직 상병이냐.
제대하면 우리가 꼭 함께해볼 일이 있잖아. 선린상고 때나 두산에서 해보지 못한 우승의 한을 꼭 같이 푸는 것 말이야. 올해 내 생애 첫 우승의 기회를 잡았는데 너무 아쉽게 놓쳤어. 그땐 참 억울하기도 했는데 하늘이 너와 함께 한을 풀라고 미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두산 우승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 상무에서 몸관리 잘하고 절대 다치면 안 된다. 알았지? 나도 신혼여행 다녀온 후 며칠 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의욕이 앞서서 다리에 알이 배겼지만 이번 겨울에도 열심히 훈련해 내년에도 쉴새없이 달리는 내 모습 보여줄게. 항상 건강하고 각자 위치에서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자.
FROM 종욱
둘의 우정은 이종욱이 출연한 배지현의 쓰리번트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이종욱이 경기 중 부상을 입어 기도가 막힐 뻔 한 순간 손시헌이 재빠른 응급처치로 목숨을 구해줬다고. "다치는 걸 보고 달려갔는데, (이종욱이) 의식이 없어 놀랐다"며, "목에서 피가 나더라. 응급 처지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의식중에 피가 흐르는 곳을 막았는데 나중에는 피가 입으로 올라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손시헌이 지압을 하자 입으로 피가 역류했고, 막혀있던 기도가 뚫려 이종욱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시헌은 "이종욱이 병원으로 실려 갔고, 너무 걱정이 돼 경기를 빨리 끝내야 겠다는 마음에 내가 결승타를 쳤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2:00 부터 해당 부분이 나온다.

둘은 자녀들의 이름도 돌림자를 쓰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출근도 같이 하고, 한 차를 타고 출근한 적도 있다. 비시즌에 동반 가족여행도 함께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선수 생활 은퇴를 한 2019 시즌에는 구단에서 계획한 은퇴식을 거절했지만, 손시헌이 2019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자 2020 시즌 중에 동반 은퇴식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6. 역대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3현대 유니콘스 1군 기록 없음
2004
2005
연도 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 2루타3루타홈런타점 득점도루4사구 출루율장타율
2006두산 베어스 120 388 .284 110 14 6
(2위)
1 32 76
(3위)
51
(1위)
47 .360 .358
2007 123 465 .316 147
(3위)
20 12
(1위)
1 46 84
(2위)
47
(2위)
52 .382 .417
2008 122 458 .301 138
(5위)
14 5
(3위)
0 28 98
(1위)
47
(2위)
56 .376 .354
2009 82 312 .276 86 11 4 1 28 48 37
(4위)
28 .334 .346
2010 114 413 .312 129 16 2 5 45 66 30 49 .383 .397
2011 121 436 .303 132 11 5
(3위)
5 44 64 20 54 .377 .385
2012 121 437 .240 105 17 1 0 39 57 21 46 .309 .284
2013 110 401 .307 123 23 6 6 52 77 30
(4위)
41 .369 .4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4 NC 다이노스 124 438 .288 126 28 4 6 78 73 15 43 .342 .411
2015 125 440 .268 118 25 2 5 52 63 17 57 .350 .368
2016 134 453 .305 138 24 4 5 57 73 15 55 .376 .408
2017 107 318 .308 98 15 0 5 34 52 9 33 .371 .403
2018 43 122 .230 28 7 0 1 8 12 1 4 .252 .311
KBO 통산
(13시즌)
1446 5081 .291 1478 225 51 41 543 843 340 565 .356 .379


[1] 2012년 6월 임재철의 장기간 부상 공백으로 인한 주장 교체[2] 99년 졸업.[3] 체육학과.(1999학번)[4] 두산 베어스 시절부터 사용되었다.[5] 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하여 2014년 4월 6일 넥센전부터 사용하다가 6월 응원단 복귀와 함께 원래 등장음악으로 돌아갔다.[6] 피파 온라인 2의 브금이라 카더라가사는 날려라 이종욱~ 이종욱~ 이종욱~ 날려버려~ 두산의 이종욱이다! 날려라 이종욱~ 이종욱~ 이종욱~ 날려버려~ 두산 이종욱![7] 워~어~어어~어~ NC 이종욱~ 치고 달려~ 워~어어어~어어어~ 이종욱~ 치고 달려~ 워~어어어~어어어~ 안타! 안타 이종욱! 안타! 안타 이종욱! 안타! 안타 이종욱~ 워~ NC의 이종욱![8] NC 이종욱 안타날려라 오 이종욱 오 이종욱 다이노스 워워~ 안타날려라 승리를 위하여~ (X2)[9] 주장이 박석민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에 가사가 바뀌었다. NC의 캡틴→NC 이종욱, 다이노스 캡틴→다이노스 워워~.[10] 이 인간이 기존 응원가에 있었던 '캡틴' 대신 '워어' 같은 추임새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에 그치면서 그나마 나았던 응원가를 다 망쳐놓았다.[11] 인터넷에 NC 이종욱이 아닌 NC의 종욱이라고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마산야구장에 NC 이종욱이라고 적혀져있다[12] 그 중 한 번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잠실 야구장에서 가진 쿠바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이었으며, 다른 두 번은 태그업 오심에 의한 억울한 아웃이었다. 물론 수비수들의 정확한 수비에 의한 아웃도 있고, 이종욱의 다소 무리한 플레이가 원인이 된 적도 한차례 있다.[13] 사실 이는 김현수의 4번 전환 시도와 연계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4번 김현수는 김경문 시대 이래 2014 시즌까지 꾸준히 실패만 했지만...[14] NC 이적 이후 포스트시즌 성적은 2014년 10타수 무안타, 2015년 18타수 3안타, 2016년 26타수 6안타, 2017년 10타수 1안타로 굉장히 부진하다.[15] 마른 몸매라서 어깨가 약해보이지만 현대에서 같이 뛰었던 심정수가 자신보다 더 어깨가 좋은 사람을 처음 본다고 할정도로 강하다.[16] 무엇보다 김성욱이 2017년에 망한 게 컸다.[17] 현대 시절인 2003년에 소속팀이 우승은 했지만 이종욱은 당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없었다.[18] FA 때는 반대로 이종욱이 손시헌을 설득해 같이 NC로 이적하게 되었다.[19] 당시 손시헌의 연봉은 1억3천만원, 이종욱의 연봉은 2천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