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9:25:30

이븐 와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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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저술 활동3. 사회 활동4. 여담5.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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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븐 와라크는 쿠란 비판가이자 이슬람 사회의 세속화를 위한 단체 운영에 매진하는 반 이슬람 운동가이다. 본명을 숨긴 채 활동하고 있으며 이븐 와라크는 필명이다. 개신교 선교사 계열[1]이 아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해 논리적인 비판을 신빙성 있게 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즉 무신론자이므로 따로 선교 자금이나 기부금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프로파간다에 따라 글을 곡해하는 정도가 덜한 편이다.

1947년 영국령 인도 제국구자라트 주의 무슬림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19세에 가족들을 따라 스코틀랜드로 이민하였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이슬람에서 무신론으로 전향한 상태이다.

2. 저술 활동

비교적 최근에는 버나드 루이스가 "급진적 이슬람을 물리칠 유일한 해결책은 중동에 자유를 가져다주는 것이며,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파괴할 것' "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 파이프가 지적했듯, "서구에서 태어나 자유를 누리며 자라온 무슬림 중에서도 이슬람주의자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한 예시로 런던의 7월 7일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네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여기에 속한다. 자유는 이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슬람 테러리즘 속 이슬람》(2017)

이븐 와라크라는 필명은 서기 9세기의 무슬림 냉담자 아부 이사 알 왈라끄[2]에서 빌려왔다. 이븐 와라크(이븐 왈라끄 ابن وراق)는 아랍어로 "필경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주로 현대 고고학적 연구 성과 및 고대 문헌학 등을 바탕으로 꾸란의 무오설을 비판하고 있다.[3] 일단 오늘날 일반인들의 생각과 다르게 중세 시대에도 꾸란의 무오성에 대한 비판은 비주류이긴 했으나 분명히 존재해왔다. 기독교계에서 현대가 되면서 성서무오설이 점점 힘을 잃어온 것과 다르게 이슬람권에서는 꾸란 무오설이 시대가 지나면서 강해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4] 차이가 있다면 중세의 꾸란 비판자들이 꾸란의 문학성을 이슬람의 본격적인 계시 이전 아랍 비무슬림 시인들과의 시와 비교하며 비평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븐 와라크는 근대 무신론자들이 성경을 비판 분석하던 스타일대로 쿠란 내용 자체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첫 번째 저서 《Why I Am Not a Muslim》(1995)[5]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서구 세계의 이슬람 연구에 바탕을 둔 근거로 이슬람을 비판했다.”는 한계를 지적하는 비평이 따랐다. 기독교계 내부에서 성서 무오설을 직접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게 해당 도서 내용은 아직 이슬람권 내부에 자체적인 비판 분석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6] 다만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신이 이슬람 관련하여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며 해당 도서를 극찬했다.

첫 번째 저서가 무신론자 입장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시도된 이슬람 교리 비판 분석 서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면. 두 번째 저서 《The Origins of the Koran: Classic Essays on Islam's Holy Book》(1998)는 평가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참고 자료 인용이 적절하지 못했으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고 독자 연구가 많다는 지적이 따랐다. 무신론자가 객관적으로 이슬람을 비판하기 위해서 썼다는 책이었지만 책 내용 출처 상당부분을 19세기 기독교 선교사의 이슬람 교리 비판 서적들에서 인용했기 때문에, 이 책이 과연 Why I Am Not a Muslim을 쓴 작가의 책이 맞냐는 혹평을 받았다.
이후의 저작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Muhammad》 역시 이븐 와라크가 아랍어 전문가가 아닌 상태에서[7] 꾸란의 문장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분석하여 비판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따랐다.

21세기부터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저격하는 책들을 몇 권 출간하였다. [8]

3. 사회 활동

1998년부로 이슬람 사회 세속화 진흥 협회(The Institute for the Secularisation of Islamic Society ; 공교롭게도 이니셜이 그 ISIS와 똑같다...)를 창단하였으며 이슬람권 국가에 세속주의와 민주주의 밎 인권 개념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설립하였다. 해당 단체는 기독교 선교단체를 비롯한 특정 종교단체들의 지원을 거부하며 세속법과 표현의 자유 등을 이슬람권 사회에 더 빠른 속도로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븐 와라크는 현재 전문적인 교수 혹은 사회활동가가 아니다. 에든버러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런던에서 교사로 활동하다가 부인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여 인도 식당과 여행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 창립자 이븐 와라크가 아직 영세 자영업자이며, 이슬람권의 무신론 공포증이 개인의 힘으로 어찌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관계로 해당 단체는 아직 특별한 실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문체가 상당히 신랄한 편이다. 보통 이런 문체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비판 하나만큼은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잘 하고 평소 언행에도 소신이 있는 편이지만, 사람들을 잘 규합해서 무언가를 추진하는 일에는 잘 안 맞는 편이다.[9]

4. 여담

악마의 시를 쓴 살만 루시디와 다르게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인데, 살만 루시디의 경우 인상이 상당히 얄팍하고 더러운 편이라서 혐이슬람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프로파간다 용으로 이용하거나 욕하기 딱 알맞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살만 루시디의 경우 사생활이 상당히 문란했던 데다[10] 트로피 와이프까지 두는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배신자 아이콘"으로 사용하기에 이상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살만 루시디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척 하던 혐이슬람 운동가들도 살만 루시디의 화끈한 사생활을 두고 '저 인간은 이슬람 율법대로 부인을 네 명까지만 두었는데 호메이니가 왜 싫어했을까?'라면서 킥킥거렸을 정도였다.

이븐 와라크 같은 경우 외모도 평범하고 사생활 관련하여 특별한 뉴스 거리가 없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배신자 아이콘"으로 써먹기에 무리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반이슬람 단체 중 기독교 근본주의 선교 단체나 인종차별주의 단체들은 이븐 와라크를 잘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5. 주요 저서

  • 《Why I Am Not a Muslim》(1995)
  • 《The Origins of the Koran: Classic Essays on Islam's Holy Book》(1998)
  •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Muhammad》(2000)
  • 《이슬람 테러리즘 속 이슬람(The Islam in Islamic Terrorism: The Importance of Beliefs, Ideas, and Ideology)》(2017)

[1] 상당수 선교사들의 경우 이슬람 교리 자체에 대한 분석보다는 "어떻게 프로파간다를 세워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을까"를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이 때문에 전문 이슬람 학자인 무슬림보다는 훨씬 이해도가 약한 편이다. 이들이 무슬림 신학자들과 공개 토론을 하면 오히려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사들에게 손쉬운 먹이감이 되어 이슬람 근본주의의 인기를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으로 반이슬람 선교사들 중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저격해서 유명해진 이슬람 선교사로는 아흐마드 디다트, 자키르 나익이 있다.[2] 박해를 피해서 무슬림으로 위장했던 마니교도로 추정된다.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판, 의심하는 글을 남긴 것 외에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걸로 해석 가능한 어록도 남아있다. 다만 중세 이슬람권의 마니교도 학자들의 경우 대부분 마니교 신학 관련한 글이나 의견이 전부 실전되고, 이슬람 관련 비판 의견만 남아 전해졌다는 점에서 해당 인물이 무신론자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문제가 되는 그의 어록 “자신의 종복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워놓고 이를 뻔히 알면서도 종복들을 (지옥으로) 처벌하다니 바보이다.”라는 말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는 이슬람 신학을 마니교 신학 입장에서 공격하는 견해에 가깝다.[3] 다만 이븐 와라크는 교수가 아니고 전문적인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논문을 직접 인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편이다. 아마도 그의 학술연구 능력은 석사급 연구원과 동급이라고 추정할 뿐이다.[4] 반면 하디스 해석의 경우 어떤 하디스가 진짜이고 어떤 하디스가 가짜인지 관련해서는 적어도 순니파 내에서만큼은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 옛날부터 가능했고, 지금도 물론 가능하다.[5] 버트런드 러셀의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의 제목을 오마주했다.[6] 그러나 여기에서 꾸란과 성경의 차이를 간과하면 안 되는데, 꾸란은 성경보다 나중에 나온 책이고 분량도 더 적다. 따라서 성경에 비해서 오늘날 일반 상식과 대치되는 부분이 적다. 이를테면 성경에서는 곤충의 다리가 네 개고 천지가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나오지만 꾸란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또한 꾸란에는 꾸란이 무오의 책이라고 책 내에 명시가 되어 있어서, 해석에 차이에 대한 비판은 있을지언정 꾸란 자체에 대한 평가는 결국 근본주의자나 진보주의자나 비슷할 수 밖에 없다. 꾸란의 특정 구절을 무시하고 안 지키는 것은(술, 히잡 관련) 개인의 자유로 관용될 지는 몰라도 꾸란의 무오성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교파의 차이를 막론하고 이단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7] 대학교 재학 시절 아랍어를 부전공으로 공부하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교사가 직업이던 이븐 와라크가 서구권의 아랍어 교수들과 아랍어 관련한 세세한 지식과 내공으로 싸우기는 힘든 것도 있었다. 유럽권에서 중동아시아 관련으로 전공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랫동안 매우 힘들게 공부하면서 학석박사학위는 기본이고 포닥과 현장실무까지 완료한 극소수의 1급 인력인지라...[8] 기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학 전공자로 자신의 전공 이외의 분야를 다룬데다가 내공에 비해 지나치게 유명해진 나머지 지리학, 언어학,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을 전공한 학자들로부터 맹렬하게 비판을 받는 상황이긴 하다.[9] 흥미롭게도 미셸 우엘베크와 형편이 비슷하다.[10] 결혼 모두 네 번 했는데 배우자 네 명 모두 무슬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