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16:53:03

이마누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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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의 철학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ant_foto.jpg
이름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출생 1724년 4월 22일
/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사망 1804년 2월 12일 (향년 79세)
/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국적 프로이센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Flag_of_Prussia_%281892-1918%29.svg.png
분야 철학
학력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미상~1740 / 졸업)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1740~1746 / 학사)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 (미상 / 석사)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1755 / 철학박사)
경력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교수 / 철학)
활동 순수이성비판 저술
실천이성비판 저술
판단력비판 저술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Immanuel_Kant_signature.svg.png
1. 개요2. 사상
2.1. 인식론2.2. 윤리학2.3. 미학
3. 업적4. 영향5. 어록6. 이모저모7. 저서
7.1. 한국어 번역 논쟁

1. 개요

이성이 무엇인지 보이려고 자연은 칸트를 낳았다.
F. Kaulbach
이마누엘 칸트는 프로이센 왕국기에 활동한 독일철학자이다. 서양 근대 철학사에서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지는 합리주의존 로크로부터 이어지는 경험주의를 종합하였으며,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양 철학의 전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대표작인 순수이성비판은 그 명칭만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때문에 사망한 지 200년이 흐른 지금도 근대 철학의 중심인물로 평가받는다.[1] 물론 칸트의 영향력은 근대 철학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대 철학에서도 칸트의 영향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칸트 윤리학은 현대 윤리학의 중요한 한 축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플라톤주의자"만큼이나 현대 철학자들이 여전히 자주 쓰는 수식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칸트주의자"다.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현대 철학자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인식론과 윤리학을 위시해 다양한 분야에서 칸트가 최초로 제시한 여러 통찰을 토대 삼아 더욱 발전하게 하려는 철학자가 현대에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2. 사상

칸트의 사상 체계는 흔히 크게 삼분된다:
  • 인식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윤리학: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종교철학: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 중 첫째 질문인 제1 비판은 『순수 이성 비판』, 둘째 및 셋째 질문은 제2 비판인 『실천 이성 비판』에서 다루어진다.[2] 괄호 내의 저서는 대표 저서일 뿐이며 제1 비판은 『형이상학 서설』, 제2 비판은 『윤리형이상학 정초』, 『윤리형이상학』,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같은 저서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세 질문을 알게 된다면, 최종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다고 하였지만 명확히 이 물음에 답하는 하나의 저서라고 불리는 책은 출간하지 않았다.

2.1. 인식론

순수 이성 비판 항목 참조.

2.2. 윤리학

칸트의 윤리학은 '경험 독립적 지식'에 대한 다른 방향의 추구이다. 경험독립적이라는 말은 '경향성'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무작위하게 선택할 수 있음'이라는 개념이지만, 칸트 및 철학에서 사용되는 '자유'란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됨'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A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외부적인 강요 내지는 경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사유로부터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철학자들은 '자율로서의 자유'라고 집약시켜 표현한다. 그러므로 뒤에서 설명하고 있는 '가언 명령'은 칸트에게 있어 자유로운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요인으로부터 발생한 경향성에 이끌려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경험과 멀리멀리 떨어져서, 즉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칸트에게 윤리학에서 철학적 지식의 대상이 되는 근본적인 영역은 의지, 그중에서도 선의지가 된다. 그런데 이 선의지는 "A를 위해서는 B를 하라"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가언명령), 그러한 조건 없이 '~를 해라!(혹은 하지 말라)'고만 명령한다. 이를테면 직관적으로 볼 때에, 동일하게 사람을 살리는 행위라 하더라도 '네 평판을 위해서 사람을 살리라'는 명령에 따르는 행위는 윤리적이지 않은데 선의지에서 기인하는 명령, 즉 '사람을 살리라'는 명령에 따르는 행위는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언명령은 '~을 위한 판단'이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무조건적인 명령, 칸트식으로 말하면 정언명령은 칸트에 의하면 크게 1) 보편화 가능성, 2) 인격을 수단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할 것, 3) 목적 왕국의 입법자가 어떻게 할지를 고려하여 행위할 것이라는 세 방식으로 설명된다. (이 세 가지 설명이 왜 결론적으로 같은 하나의 정언명령을 지시하는지는 수많은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 정언명령은 그 대상이 자신/타인인지, 혹은 그 행위가 고정적(완전한)인지 아닌지의(불완전한) 기준으로 나뉘어서 총 네 가지로 구분되는 명령을 우리에게 준다고 칸트는 정리한다. 이로부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무(자살 금지),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의무(거짓말, 거짓약속 금지), 자신에 대한 불완전한 의무(능력 개발), 타인에 대한 불완전한 의무(선행)가 따라나온다는 것이다.[3]

이러한 칸트의 윤리관은 양립가능론에 의해서 지지된다. 이것을 지지하는 칸트의 직관은 마음의 불투명성, 즉 우리는 어떤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으로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서, 행위자의 행위는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인과의 법칙 하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인 응보의 법칙 하에서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약물로 살리는 행위는 한편으로는 혈관에 약물이 흐르는 일련의 과정이나 내가 그동안 받아온 교육, 경향성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나의 선한 의지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때는 동일한 하나의 행위를 설명하는 드다른 두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하며, 결정론은 물리적인 인과법칙에, 인간의 책임은 도덕적인 응보 법칙에 의해서 확보되므로 우리는 어떤 행위자의 행위를 그가 그동안 겪었던 어떤 과거의 사실들로부터 독립된 채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칸트의 윤리학이 어떻게 다시금 경험 내로 탐구 영역을 제안하면서 흄과 같이 경향성에 의지하지 않고서 사람의 도덕적 책임을 설명하는지를 볼 수 있다.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 정초'에서 이와 같이 행위의 선악을 가를 기준을 논한 다음(총 3장으로 이루어진 그 책에서 위의 두 문단은 각각 2장과 3장의 논의의 요약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목적 혹은 동기의 선과 악을 가를 기준을 제시한다 친구들과의 서신에서의 언급을 통해서는 원래 쓸 계획이 없었던 이 책에서 칸트는 우리에게 허용된 유일한 목적, 다른 말로 '보편화 가능성'기준을 통과하는 목적이 오직 윤리와 행복이 결합된 상태, 곧 '최고선'이라고 논한다. 이는 곧 전통적인 윤리학의 최종 목적인 행복 개념을 자신의 방식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반적인 논의는 행복은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이름만으로는 개개인에게 아무런 행위 이유를 주지 못하고, 반드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대상과 연관이 되어야만 하는데, 이 구체적인 대상들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같다면 순전히 우연일 것이기 때문에) 행복은 보편타당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행복 중에서 유일하게 보편적인 대상을 가지는 행복이 있다는 것(도덕 법칙을 행하고 느끼는 흡족함. 도덕 법칙은 보편적이니까.)을 논한 다음 그리고 이와 같은 윤리와 행복이 결합된 형태인 최고선에 대한 추구만이 인간에게 있어 유일하게 정당한 보편화 가능한 목적이며, 이를 잘 추구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영원한 개선 여지를 남기는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최고선의 실현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을 보장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진다.'[4]

칸트의 종교관, 특히 신에 대한 논의는 위에서 다룬 인과적, 혹은 현실적 판단과 응보적 판단 간의 상이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루어진다. 여기서 다루는 주된 물음은 '위에서 살펴본 상이한 두 판단(물리적 인과, 도덕적 응보)이 겹치지 않는 현실에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이다. 이를테면 머리가 끝내주게 좋은 어떤 악당이 지금껏 능수능란하게 어떤 처벌도 받지 않도록 자신의 죄를 잘 피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해 보자. 우리는 한편으로 그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가 죽을때까지 응당 받아야 할 처벌을 피해나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도덕적 응보에 대한 판단을 포기해야 하는가? 칸트는 이때 그가 처벌받아야만 한다는 믿음을 유지하라고 주문한다. 결코 현실에서 물리적 인과에 따른 판단과 도덕적 응보에 따른 판단이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마치 일치할 것처럼, 혹은 일치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곧 유일하게 허용된 보편타당한 목적인 최고선이 지시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처럼 최고선에서부터 따라오는 신에 대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나, 이 신앙은 오직 윤리의 명령에 대한 신앙이므로, 적절한 신앙은 윤리성에서부터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칸트에게서 신에 대한 신앙은 윤리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현실에서 가져야 할 태도, 즉 윤리와 응보가 현실에서 결코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의미한다.

다만 실제 칸트의 종교철학을 서술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에서는 이러한 논변이 직접 제시되지 않는다. 위 논의는 실천이성비판의 최후미 및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서문에 살짝 언급만 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본인 스스로는 이 책을 상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서론에서 밝힌 바 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상식적인 한계 안에서만 논의를 하려고 노력한 게 아닌가 싶다. 여튼 이전에 제시한 높은 도덕적 기준 (앞의 논의에 따르면, 누구든지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도덕과 상관없는 행복을 추구하면 나쁜 사람이다!)에 따른 논의가 아니라, 다른 기준에서부터 인간이 모두가 악함을 먼저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미개한 상태에서건, 문명화된 상태에서건, 국제 관계에서건 악행을 만연하게 저지르는 존재이며, 그리고 심리적으로 볼 때에 자기 자신을 선을 추구한다고 기만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즉, 악한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자기 정당화를 일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으로 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게는 보편 도덕을 인지할 능력이 반드시 있고, 악은 반드시 구체적인 대상, 곧 우연적 대상을 가지는 각자의 행복 추구에서 오기 때문에, 악의 기원은(성벽) 우연적인 반면 선의 기원은(소질) 필연적이며, 악이 자라나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선한 소질을 꽃피울 수 있다고 논한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악한 성질들을 갖지 않고 선한 소질이 만개하는 행위자를 이상으로 삼아서,'[5]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도덕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신의 지배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논의가 뒤따른다. 따라서 칸트의 종교철학의 논의는 일부는 그의 윤리학과, 또 일부는 인류가 도덕적 사회로 영원히 전진해나가야 한다는 그의 역사관과 맞물린다.

그리고 칸트의 최후의 윤리적 저작인 윤리형이상학에서 그는 '경험 독립적 윤리학'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개되어야 할지를 탐구한다. 이 책의 주제는 고도로 추상적이어서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지는 윤리학의 주장들이 보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탐구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에서 칸트는 추상적인 원칙인 네 가지 윤리적 정언 명령들을 법적 의무의 근거(타인에 대한 완전한 의무), 혹은 도덕적 의무의 근거로(나머지 세 의무) 분류하고 일상적 혹은 특정한 맥락에서 이러한 명령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규칙이나(법 이론) 행위로(덕 이론) 이어져야 할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사례들이 탐구의 대상이 되기에 비록 그 사례들에 대한 판단 중 일부는 현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전혀 칸트답지 않은 면도 있다.(이를테면, 자연의 경향성에 거스르는 행위인 자위를 하지 말라든가 손님의 수는 4명 이상 12명 이하가 좋다든가...)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들 역시 추상적이고 경험으로부터 멀어진 자신의 윤리학의 대원칙이 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가장 옳은 행위를 이끌어내도록 기능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도 고려하면 아마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는지.

2.3. 미학

판단력비판 참조.

3. 업적

특정한 철학자에게 준 구체적인 영향을 넘어서, 칸트는 근대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철학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틀 구조를 바꾸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었다. 이러한 전환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

경험론[6]합리론[7]이 치고박고 싸우던 18세기 유럽철학계를 평정한 거인. 실제로 칸트 이전 세대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구분이 없었다. 같은 경험주의론자인 여러 영국 철학자조차 자신들이 같은 학파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플라톤 학파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라고 지칭하였다.

이러한 학파의 구분은 칸트 이후, 정확히 말해서는 칸트에 대한 연구가 극에 달하던 18세기 후반 19세기초에 와서야 정립되었다. 바꿔 말하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 하나로 17-18세기 존재하던 모든 영국, 대륙철학자들을 단 2개의 학파로 양립시키고 그들이 대립하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이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낸 대단한 인물. 근대철학은 칸트 전과 후로 나뉜다는 얘기나 칸트를 모든 강들이 흘러 들었다가 다시 갈라져 나가는 호수로 비유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의미의 윤리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도 칸트에서부터 시작됐다. 인간이 지켜야할 의무론적 윤리란 무엇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체계적인 인식론과 실천 이성 구분을 통해 그 구조를 펼쳐보였다. 칸트가 인식론뿐만 아니라 근대 윤리학의 시작을 알렸다고 봐도 될 듯. 게다가 판단력 비판을 통해 인간의 미학 인식까지 구분과 과정을 설명 시도했다. 칸트가 인류 지식 세계에 공헌한 바는 이렇듯 어마어마하다.

칸트가 나타나고 나서야 비로소 철학이 하나의 학(學)으로 완성되었다는 설도 있다. 칸트 이전까지 철학은 다분히 주관적이면서 고답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칸트가 인식론과 윤리론, 미학론을 펴면서 철학이 객관적인 학문으로 완성되었다고. 칸트 이전에는 그냥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렇다" 식의 철학이 죽 이어져 내려오다가, 걍 썰만 늘어 놓다가 칸트가 방대한 논리와 자료로 치밀한 철학 세계를 완성하면서 이후 형이상학 발전과 완성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 물론 칸트 이전의 철학을 연구하다 보면 큰일날 소리긴 하지만. 저명한 철학자 R.샤하트는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을 불완전하게 이해해도 근대 철학 이해에 큰 지장은 없지만, 칸트를 불완전하게 이해하면 근대 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라고 말했을 정도.

그 스스로 "데이비드 흄의 책을 읽고 미망에서 깨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8] 자칫 어렵게 들리는 이 말은 그냥 흄과 칸트 모두 오직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철학의 탐구 범위를 좁히자는 데에 동의한다는 말이고, 이 점에서 그는 경험론자와 닮았다. 그래서 칸트의 이 고백은 "경험적인 것, 혹은 수학적인 것이 아닌 모든 책은 불태워 버리라"는 흄의 말과 상통한다. (기존의 형이상학이 완전히 쓸모없다는 데에서 칸트는 흄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래서 현대 영미형이상학에서 흄은 형이상학에 대한 회의주의자로 자주 다루어지지만 칸트는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와 같은 경험적인 범위 내로 철학의 탐구 범위를 좁히면서도 흄의 탐구 방식을 반드시 따라가지는 않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칸트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아니라 바로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할 원칙이 무엇일지를 탐구했다. 흄의 경험론은 모든 경험이 공유하는 어떤 일반적인 성질, 이를테면 어떤 대상이든지 그것에 대한 나의 관념(idea)은 나의 인상(impression)에서 기인한다는 것에 주목하는 반면, 칸트는 모든 경험이 가져야만 할 어떤 형식에 주목한다. 이처럼 그는 경험론적인 틀 내에서 합리론적인 정신을 가지고 세계를 탐구하였다고 볼 수 있기에 굳이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경험론과 합리론자의 종합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흄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칸트의 대응에 동의했을지는 알 길이 없다. 칸트는 흄을 알았지만 흄은 칸트를 몰랐는데 흄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1776년으로 『순수이성비판』이 출판되려면 5년이 더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4. 영향

독일의 칸트 연구자인 회페는 『이마누엘 칸트』에서 칸트의 영향을 다음 네 가지로 나누었다.
  1. 독일 관념론: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프리드리히 셸링,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로 대표된다. 피히테는 칸트의 철학을 칭송하며, 자신의 철학을 칸트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를 더욱 보완시키는 철학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말년의 칸트 본인은 이에 대하여 자신의 철학은 그 자체로 완성된 체계라고 반박하였다. 이후 셸링과 횔덜린(휘페리온을 쓴 그 시인 맞는다)이 칸트의 '주관적' 관념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소 낭만주의적인 관념론을 전개하였고, 이후 셸링과 횔덜린의 친구였던 헤겔이 이들을 다시 비판하며 이른바 '객관적' 관념론을 주장하게 된다.
  2. 신칸트주의: 1870년부터 1920년까지 약 반 세기 동안 유럽의 강단철학을 지배한 사조이다. 에른스트 카시러, 헤르만 코헨, 하인리히 리케르트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주목해 과학주의적 철학을 전개하였다.
  3. 현상학과 실존주의: 후설, 셸러, 야스퍼스, 하이데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칸트가 주장한 '초월성(transzendetal)' 개념을 요리조리 재해석해서 자신들 고유의 사상에 도입하는 방식으로 칸트를 계승하였다.
  4. 20세기 중반 이후: 영미권에서는 스트로슨, 셀라스 등의 분석철학 계열과 또 다시 이들을 비판한 로티가 칸트를 계승하거나 비판한 학자들이다. 또한 롤스와 같은 영미권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들은 칸트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또한 롤스와 함께 칸트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가장 저명한 철학자로 뽑힌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계몽주의의 정점인 칸트에 우호적일 리가 없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같은 텍스트에서 이질성, 다원성 등의 키워드를 뽑아내기도 했다. 가령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칸트 미학의 숭고를 자신의 이질성의 철학을 옹호하는 데 활용한다.

한국에서는 '독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철학과 = 칸트학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시절 철학과 교수들은 20%의 고대 그리스 철학과 50%의 칸트철학, 30%의 기타를 공부했고 학생들은 99%의 맑스주의[9]와 1%의 기타를 공부했다는 농담도 있다. 영미철학, 프랑스철학의 균형잡기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 이후에도 한국 철학계에서 가장 깊게 연구되는 인물은 여전히 칸트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보통 철학과 학생들이 넘어야하는 가장 큰 벽으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칸트.

대학뿐만아니라 중고교 교육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현행 윤리와사상 교과서에서도 칸트는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아무래도 고교 과정에서는 의무론적 윤리와 목적론적 윤리를 대립항으로 간주하여 교육 및 학습하고 있는데, 칸트는 전자의 대표 주자를 넘어서 거의 유일한 주자로 여겨질 정도이다.[10] 2007 개정 교육과정 이후에는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서 칸트 윤리학의 현대적 재해석 및 보완까지 교과서에 공식으로 다루고 있다. 로스라는 20세기 윤리학자가 내세운 조건부적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칸트 윤리의 절대주의적 도덕 원리를 다소 유연한 형태로 변형한 것이다. 물론 그 심오한 깊이를 모두 담을 수 없는 실제 수능 기출 문제에서 도덕적 딜레마가 나올 때(예를 들면 가족 1명과 다수의 모르는 사람 중 누굴 구해야하는지) 결과 등에 상관하지 말고 도덕적 명령에 따르셈ㅇㅇ 이러는 선택지밖에 안 나온다. 다만 이러한 태도가 자신의 대원칙이 어떻게 구체적인 맥락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했던 칸트의 입장을 얼마나 대변하는지는 미지수.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등장하신다. 환경윤리에서 독특한 인간중심주의의 대표자로 나오고, 평화와 윤리에서는 국제연합에 기초한 영원한 평화 구상이 나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응보주의 형벌론에 기초한 사형제 찬성론까지 다뤄진다. 결국 윤리와사상이든 생활과 윤리든 윤리 계열 교과를 수능에서 택하는 사람들한테 칸트는 넘어야 할 산 중 하나인 셈.

현대 철학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서도 칸트는 곧잘 나온다. 비록 형이상학에서는 흄이 주로 다루어지지만 실천철학에서 그의 입장은 계속되는 떡밥이다. 당장 큼직한 주제만 들어 보더라도 결과주의 vs 비결과주의, 양립불가능론 vs 양립가능론, 공리주의 vs 자유주의, 경향성 vs 실천적 추론과정(혹은 이성)과 같은 모든 주제에서 우측의 입장들은 칸트의 영향을 받은 입장들이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데, 칸트가 『영원한 평화』라는 말년 저작에서 제시한 '세계 시민'이라는 정치적, 윤리적 주제의 선구자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가 발달하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한 나라의 윤리적 문제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시민이라는 주제가 생겨났는데, 이게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자기 나라의 문제도 다 해결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 이미 윤리적인 문제를 한 나라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이랑 전혀 상관없는 위안부 문제를 미국 의회에서 다루는 데 왜 그리 큰 관심을 가지는지 생각해 보자.

결국 이러한 윤리적 목소리가 독재국가들이 맨날 하는 말처럼 내정간섭이 아니라 정당한 윤리적 비판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현대 윤리학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칸트는 인터넷은커녕 유선전신이 갓 발명되던 시기인 18세기에 이런 문제를 주목하고 현대적인 세계 시민의 개념을 처음으로 꺼낸다.[11] 그러면서 칸트는 '이성의 공적 사용'을 주장하면서 세계 시민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결국 현대에 세계 시민이라는 주제를 윤리학적으로 다룰 때 첫머리에 나오는 것이 칸트가 되었다.

또한 막스 베버의 사회학, 장 피아제의 심리학,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사회, 행동 및 신체 과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칸트의 수학 및 인공적 사전 지식에 대한 연구는 또한 이론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지적 발달에 일찌감치 영향을 준 것으로 인용되었다. 칸트적 패러다임 전환의 철저함 때문에 그의 영향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저작을 언급하거나 자신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상가들에게까지 미치게 됐다.

5. 어록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12][13]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14]
모든 것은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경험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15]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법칙)이다.[16]
Zwei Dinge erfüllen das Gemüt mit immer neuer und zunehmender Bewunderung und Ehrfurcht, je öfter und anhaltender sich das Nachdenken damit beschäftigt: 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6. 이모저모

  • 고등 과정 생활과 윤리윤리와 사상을 배운 학생에게는 애증의 철학자이다. 이론 윤리, 낙태 찬반, 자살, 안락사, 생명 과학, 성, 환경 윤리, 법적 정의, 예술과 윤리, 전쟁과 평화, 해외 원조에서 등장한다. 즉 생윤의 세부 파트의 과반수에 출현... 그 덕분에 입시생들에게 생윤 공무원, 생윤 철밥통(...) 등으로 불린다. 칸트가 선정된 문제는 오답률도 높은 편. 더불어 교육과정에서는 앞뒤를 대단히 간소화하고 정언명령만 가져와서 이상하게 꼰대 같은 이미지까지 생겼다.
  • 가터벨트의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여성 속옷과 깐깐해 보이는 이 학자분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항목 참고. 당시 스타킹이나 가터벨트 같은 것은 남성용이었다. 당시 여자들은 치마가 길어 다릴 드러낼 일도 없었으니.
  • 평생 자기가 태어난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칼리닌그라드)를 떠나지 않았다. 반경 3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키가 작고(155cm 가량) 등이 굽어 꼽추처럼 보였다.[17] 용모는 추했지만 가 보지도 않았던 다리의 어느 부분에 나사가 몇 개 박혀 있는지를 맞힐 정도로 박식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매일 3시 30분이 되면 산책해서 사람들이 그런 칸트를 보면서 시계를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딱 두 번, 산책을 빼먹은 적이 있다. 한 번은 루소가 저술한 책 《에밀》을 읽다가,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을 보도한 신문을 읽다가.
  • 칸트는 마구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애초부터 귀족 출신이나 엘리트 출신은 아니라는 뜻. 칸트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서 아버지를 잃었다. 칸트는 경건주의에 충실했던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 신학다운 환경이 칸트의 철학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주었으라. 어렸을 때 부모를 잃어서 먹고 살려고 가정교사로서 일하면서 따로 논문을 틈틈이 발표하고 시간강사 자격으로 강단에도 섰다.
  • 엄청나게 박학다식했다. 칸트는 실제로 지식에 관계된 호기심이 왕성해서 온갖 다양한 분야에 관심하고 공부했다. 실제로 시간강사 시절에도 철학뿐만 아니라 별별 학문을 다 가르쳤다. 천문학, 물리학, 역사,수학, 화학, 지리,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강의했다. 화학 물질들로 불꽃을 만드는 기술도 가르쳤다. 재치 있게 잘 말하고 쏙쏙 귀에 들어오게 잘 요약해서 칸트의 강의실에는 수강생들로 늘 꽉 차 있었다.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 학생들이 칸트의 강의를 들으러 온 적도 있었다.
  •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지만 다년간에 걸친 학문 활동의 결과 대학에서 수많은 과목을 맡아서 학생들에게 가르쳤으며 마음먹고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어디 가 보지도 못한 지역이나 본 적도 없는 동식물들을 주제로 얘기하는데도 학문상으로 하자가 없고 너무도 흥미로운 나머지 학생들은 눈과 귀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강좌 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강좌는 세계지리.[19]
  • 루소의 저서를 접하기 이전까진 철저한 엘리트주의를 자처했다. 칸트는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고는 번개를 맞은듯 깨달았다면서 "나는 천성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지식만이 인류의 영광을 이룬다고 믿어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대중을 경멸했다. 루소를 읽고는 이런 맹목스러운 편견이 사라졌다. 나는 인간성을 존경하는 심정으로 도덕에 기초한 평등주의자가 됐다."라고 했다. 허나 당시의 시대상엔 급진성을 띠었던 그 사상으로 평생 루소가 박해받았던 사실로 미뤄 보건대, 이후에도 엘리트주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려웠으리라.
  • 《순수이성비판》은 세계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이지만, 막상 처음 출판되었을 때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워낙 책이 장황하고 어려웠기에 제대로 이해했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이에 관한 일화로 칸트가 이번에 내가 발표한 책을 봤느냐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자 친구가 손가락이 모자라다는 식으로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말하자면 "친구야, 나는 네 책을 읽으려고 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야. 네 책을 읽어 나아가면서 이해가 안 될 때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꼽고 있거든." 과 같은 식으로 편지가 돌아왔다고 한다.
  • 《순수이성비판》은 칸트가 시간을 근 10년 투자해 완성한 책이였다. 그래서 칸트의 지인이 칸트에게 "칸트 씨. 아무래도 책 판매량이 별로인 거 보니 이번 책은 망한 듯합니다." 라고 하소연하자 칸트 본인은 당당하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이 책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과연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순수이성비판》은 철학사의 중요한 저서로 조금씩 떠올랐고 칸트가 늙그막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 책으로 말미암아 칸트의 성명이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 이 사람이 어느 정도로 깐깐한지 알 수 있는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칸트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체구가 왜소하고 용모가 추했기에 나이를 많이 먹을 때까지 혼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칸트에게 어떤 여인이 청혼한다. 칸트는 그 여인에게 '생각을 좀 해 볼 테니 기다려 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관련된 책을 모두 읽은 후 혼인해야 할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모두 썼다. 결국 혼인해야 할 이유가 4개 더 많아서 혼인을 승낙하려고 했는데 이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뒤였다. 물론 그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혼인하고 아이도 낳은 상태였다.
    …깐깐함이 인간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이러니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
  •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생각보다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밥을 혼자 먹는 건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며 사람들과 식사하기를 즐겨해서 매일 겨자소스를 만들었는데 자기는 절대로 그 소스를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20] 또한 술을 너무 마시는 사람이나 술을 아예 안 먹는 사람 둘 다 경멸했다고 한다. 칸트는 도이칠란트 사람이었지만 맥주를 싫어하고 와인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칸트에게 식사를 초대받은 사람 한 명이 선물로 맥주를 꺼냈는데 칸트가 식탁에 놓인 맥주를 보자 정중하게 맥주를 마실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 니체는 이 사람을 저질이라고 말했다. 뭐 이해 안 되는 건 아닌 게 저 깐깐한 성격 주제에 자기 욕망을 억누르거나 하지 않아서 70대였던 칸트의 소원이 "저 아랫마을 우물가 처녀 엉덩이를 보는 거."라고 농담이라지만 거리낌 없이 말하는 양반이었으니…. 알고 보면, 니체는 칸트의 사상과 정 반대에 위치한 철학자였다. 이성과 실증주의의 비대화를 까면서 선악의 존재 개념을 거부했던 니체였으니 칸트의 정언명령이나 인식론이 무척 쓸데없는 소리로 들렸을 수밖에 없었다. 니체는 "서툴고 고루한 소인배이자 소도시 취향을 지닌, 그러면서 의무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프로이센의 관리"라고 칸트를 폄하했다.(니체 전집 참조) [21]
  • 이렇듯 통념들(사실과 다른 것도 꽤 있다)과는 달리 중년의 칸트는 여러 사람과 매우 쉽게 잘 사귀었다. 학문 활동은 생활의 절반만을 차지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 활동으로 채워졌다(오트프리트 회페, 이마누엘 칸트). 또 다른 전기에서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실제로 당시 칸트 선생은 여성 사이에서 세상에서 여러 사람과 가장 쉽게 잘 사귀는 사람으로 통하였으며, ...모든 사교 모임에 참석하였다." (뵈티거, I 133)
  •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9살 때 백작 발트시타인의 주선으로 본대학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과학 과목들을 청강할 때 칸트로 대표되는 계몽주의를 접했다. 그래서 그런지 칸트 철학에 심취해 "하늘엔 빛나는 별. 가슴엔 실천이성"이라는 칸트의 명언을 어디엔가 써 놓았다.
  •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죽었는데 장례식날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시 전체가 휴무에 들어가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으며 수천 명이 운구 행렬의 뒤를 따르고 시내의 모든 교회가 같은 시간에 조종을 울리는 등 위대한 철학자의 사망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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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의 무덤

    칸트는 자신이 평생을 보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묘지에 묻혔는데 칸트의 묘비명엔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실린 유명한 문구가 적혀 있다.

    '내 마음을 늘 새롭고 더 일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속에 있는 도덕률(법칙)이다.'
  • 근대 철학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커서 세계 이곳저곳에 칸트 학회(Kant Society)가 있다. 국내에도 한국 칸트 학회가 있으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여 세미나를 진행하고 학회지를 발행한다.
  • 교육학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칸트를 떼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데, 세계 최초로 교육학에 대한 주제로 대학강좌를 개설한 주인공이기 때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1776년 겨울학기에 총 4번에 걸쳐서 개설했다.

7. 저서

현재 칸트의 저서를 번역한 칸트전집은 두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아카넷에서 나오고 있는 백종현 서울대교수의 역본이며, 다른 전집은 한길사에서 출판중인, 한국칸트학회 본이다. 참고로 백종현 또한 일단 칸트 학회의 회원이기는 하나, 후술할 번역논쟁에 의하여 백종현 및 서울대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칸트학회' 연구자들은 백종현의 번역어 표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체적인 칸트 번역전집을 출간하기로 한 것이다. 칸트학회 판본의 경우 단일 학자의 번역이 아닌, 다수의 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한 역본이며, 칸트의 저서가 방대하여 그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연구가 갈리는 이유 때문에, 해당 저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한 한국 학자 위주로 번역되었다.

왼쪽 제목은 백종현이 선택한 역제이며, 오른쪽의 경우 한길사 판 칸트학회본의 제목이다. 또한 굵게 표시된 글씨체는 국내 번역이 있는 판본이다. 기본적으로는 칸트 전집을 표방하고 있는 백종현판과 칸트학회판을 기본으로 하되, 그 외의 번역이 존재하는 경우 별도로 명시한다.

백종현의 아카넷 판본과 한길사 칸트전집 본 모두 완간되지 않았다. 단, 칸트학회의 경우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칸트전집 소개 페이지에서 책의 역제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홈페이지에 안내된 대로 출판될 것으로 보인다.또한 칸트학회의 경우 한 권에 칸트의 여러 저서를 묶어서 출판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 칸트학회가 임의로 묶은 것이 아니라, 칸트 후대의 '베를린 학술원판' 칸트 묶음집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 『형이상학 서설』 /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önnen, 1783): 『순수이성비판』의 방대함을 덜기 위해 칸트 자신이 좀 더 짧고 쉽게 쓴 이론 철학 교본. 독일어 원제가 문장형 제목 수준으로 매우 긴데, 이 독일어 원제의 가장 첫 단어만을 따서 프롤레고메나라고 부르기도 하며, 실제로 책세상판 염승준 역본은 『프롤레고메나』라는 이름으로 출간이 되었다.
  • 『윤리형이상학 정초』/『도덕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24] 1785): 주제 면에서는 『실천이성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서술이 평범한 인간 인식과 대중적 윤리 지혜로부터 분석적으로 진전해가고 있어 일반 독자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리고 출간 순서에서도 『도덕형이상학 정초』가 실천이성비판보다 먼저기 때문에, 이 저서를 실천이성비판의 서론으로 여기기도 한다. 한길사 칸트학회 역본의 경우, 도덕형이상학 정초와 실천이성비판을 한 저서에 통합하여 출간한다. 그 외에 책세상에서출판한 이원봉 번역판이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라는 이름으로 2002년에 초판, 2019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으며, 2018년 보정판이 출간된 박영사판『실천이성비판』의 부록에 '도덕철학서론' 이라는 이름의 번역도 있다.
  •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7[1781]): 백종현 판본이 출간되었으며, 칸트학회본은 현재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 외에 70년대에 출간된 최재희 역본의 2003년판은 아직 소수의 재고가 있으며, 91년도에 출간된 전원배 번역이 존재하나 절판되었다. 그 외에는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된 정명오 번역본이 존재한다.
  •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백종현판과 칸트학회본이 모두 존재하며, 그 외에는 70년대에 번역된 박영사판 이석윤 번역의 2018년 보정판이 출간되어 재고가 비교적 충분하며, 2007년 경에 동서문화사판 정명오 번역이 순수이성비판과 한 책으로 묶어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25]
  •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26]: 백종현 번역이 존재하며, 70년대에 이석윤이 번역한 것을 2017년에 박영사에서 재출간한 '보정판'이 있다. 책세상 출판사에서 김상현이 1부만 번역한 것이 존재한다.
  •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 종교는 인간의 "모든 의무들을 신의 계명들로 인식함"에 그 참뜻이 있고, 진정한 성스러움은 인간이 선한 원리에 따라 '윤리적 공동체' 내지 '덕의 나라'를 지상에서 이룩하는 데 있음을 역설하는 저서. 백종현 및 김덕영은 진, 선, 미에 이어 성을 다룬 제4비판서라고 칭하기도 했다.
  • 『영원한 평화』 /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하나의 철학적 기획』(영구평화론; Zum ewigen Frieden, 1795): 칸트는 인권이란 "인간들 사이에만 있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이자 "신이 지상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신성한 것"이라고 보았다. 신성성은 "우리가 인간들을 결코 한낱 수단으로 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런 인권보장이 법치국가에서만, 나아가 국제적으로는 '보편적 국가 연합'을 이룸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 책. 이후 국제정치학의 이상주의(후에는 자유주의)적 '세계정부' 구상이나, "민주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도일의 민주평화론의 기초가 되었다. 신기동전기 건담 W에 등장하는 완전평화주의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백종현 판본을 제외하면 서광사의 이환구 번역의 『영구 평화론:하나의 철학적 기획』, 범우사판 박환덕 번역의 『영구 평화론』번역이 있다.
  • 『윤리형이상학』 / 『도덕형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 1부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와 2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윤리형이상학이란 ‘자유의 형이상학’으로서 자유의 법칙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말한다. 1부는 법철학(정치철학)을 다루며, 2부는 『실천이성비판』에 뒤이어 도덕철학을 다룬다. 법은 외면적인 자유의 법칙을, 도덕은 내면적인 자유의 법칙을 그 내용으로 갖기에, 양자는 하나로 묶이면서도 서로 구별된다. 참고로 이충진 역(2013, 이학사) 『법이론』이 이 책의 1부에 해당한다. 이충진은 칸트학회판 『도덕형이상학』번역에도 참여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단독 번역이 아니라 1부는 이충진, 2부는 김수배가 참여한 공동 번역이다.
  •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1798): 미셸 푸코가 박사학위 부논문으로 이 문헌을 불역하고, 긴 서설을 붙였다. 이 서설은 국내에도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2012, 김광철 역, 문학과지성사)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출판되었으며, 2013년에 번역된 울산대학교 출판부판 이남원 번역이 있었으나 절판되었고, 2018년에 백종현의 번역이 출시되었다.
  • 『교육학』 /『교육학 강의』(Über Pädagogik, 1803[유고. 링크 편집]): 말 그대로 교육학에 대한 강의이다. 조관성 역(2007, 철학과현실사)이 국내 최초 번역이며, 2018년에 백종현 역본이 출간되었다.
  • 『자연신학과 도덕의 원칙의 판명성』(Untersuchung über die Deutlichkeit der Grundsätze der natürlichen Theologie und der Moral. 1764)
  • 『학부들의 논쟁』(Der Streit der Fakultäten, 1798): 이 작품은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과 함께 칸트의 생전에 그 스스로 출간한 마지막 저술이다. 본래 이 작품은 칸트가 순수한 종교론과 경험적 계시 종교론의 충돌로서의 철학부와 신학부와의 논쟁만을 기획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의 서두에는, [종교]를 검열했던 당시 황제가 죽었으니 이제 그의 신민인 한 해당 내용을 출판하지 않겠다는 맘에 안드는 맹세는 깨도 되는거 아니냐는 내용이 있다(...) 추가로 ‘영혼의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부학적-심리학적 분과인 의학부와 심리학적-형이상학적 분과인 철학부 사이의 논쟁, 순수한 법론과 경험적 정치의 충돌에 대한 철학부와 법학부의 논쟁으로까지 확대 구성하게 된 것이다. 오진석 역(2012, 도서출판b)이 있다.
  •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Beobachtungen über das Gefühl des Schönen und Erhabenen, 1764): 『판단력 비판』이 쓰여지기 26년 전에 나온, 칸트 미학의 초기저술. 이재준 역(2005, 책세상)이 있다.
  •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1770): 칸트의 교수취임 논문으로, 칸트가 '비판기'로 넘어가는 중간과정에 있는 책이라고 한다. 최소인 역(2007, 이제이북스)이 있다.
  •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 19세기 독일어권 과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책이다. 외르스테드가 강한 영향을 받았고, 쿠르트 괴델 역시도 비엔나 서클에서 이 책을 공부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마이클 프리드만Michael Friedman(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의 영역본이 있다. 마이클 프리드만(2012, 박우석, 이정민 역, 서광사)의 『이성의 역학』에 관련된 내용이 약간 소개되어 있기도 하며, 한국판은 한길사 칸트전집에서 최초로 위의 '프롤레고메나' 번역과 묶어서, 한길사 칸트전집 5권으로 출간되었다.
  • 「속설에 대하여」("그것은 이론적으로는 올바르지만, 실천적으로는 쓸모없다"는 속설에 대하여; Ü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ür die Praxis, 1793): 오진석 역(2011, 도서출판b)이 있다.
  • 『칸트의 역사철학』: 이한구 역본(2009, 서광사)의 제목이다. 이 역본은 역사철학에 대한 7개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이 중 위의 5개 논문은 학술원판 전집 8권에 실려있고, 학부들의 논쟁 2부는 7권, 낙관주의에 관한 시론은 2권에 실려있다.
    -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1784): 미셸 푸코가 말년에 쓴 「계몽이란 무엇인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터넷에서 정지인·강유원 역(2006)을 찾을 수 있고, 별도로 영어 중역인 정성훈 역도 있다.
    -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1784)
    - 「헤르더의 인류 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Rezensionen von J. G. Herders Ideen zur Philosophieder Geschichte der Menschheit, 1785)
    - 「추측해본 인류 역사의 기원」(Mutmaß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 1786)
    - 「만물의 종말」(Das Ende aller Dinge, 1794)
    - 「다시 제기된 문제: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는가?」 (위의 『학부들의 논쟁』 2부)
    - 「낙관주의에 관한 시론」(Versuch einiger Betrachtungen über den Optimismus, 1759)

7.1. 한국어 번역 논쟁

칸트 철학서의 한국어 번역에 관한 논란은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떡밥으로는 다음과 같은 개념어들을 들 수 있다:
  • a priori: "a priori한 판단(Urteile)", "a priori한 인식(Erkenntnisse)"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경험 이전 또는 그 참이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a priori)"이라는 의미. 즉 경험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판단, 인식 등을 뜻하며, 칸트에 따르면 이는 오직 순수 지성(Verstand) 혹은 이성(Vernunft)에서 유래한 것이다 (IV 266). 수학이 대표적으로 a priori한 학제다.
  • transzendental: 칸트 철학의 핵심적인 떡밥이며, 칸트가 스스로의 철학을 "transzendental 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유. transzendent와는 명시적으로 구분된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칸트가 다음과 같이 비교적 명료한 정의를 제시한 바 있다.
[내 정의에 따르면] 용어 transzendental은 [...] 모든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에 앞서되 (a priori) 오직 경험적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규정된 것일 뿐이다. 이들 개념이 경험을 넘어설 경우, 그런 쓰임은 transzendent한 것이라고 불리며, 이는 내재적(immanenten)인 것, 즉 경험으로 제한된 쓰임과 구분된다.
『형이상학 서설』, IV 373, 저자 주 (역자 강조)

이처럼 위 개념들은 칸트 자신이 비교적 그 의미를 명료하게 제시한 것이며, 칸트 학계에서도 그 의미에 대한 이해 자체는 그리 이견이 없다. 다만 한국의 칸트 철학사 연구자들 간에는 이들 개념어를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할 것이냐에 관한 첨예한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표현들에 대한 번역은 세 가지 정도의 판본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a priori transzendental transzendent
최재희 역 선천 선험 초험
백종현 역 선험 초월 초험
칸트학회 역 아프리오리 선험 초험

이러한 번역어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칸트의 의미 구분과 한국어 표현의 가짓수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칸트는 세 가지 다른 표현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위에 설명했듯이, 일단 칸트는 transzendental / transzendent라는 독일어 형태상 비슷해 보이는 용어를, transzendental은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틀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기술 용어로 사용하는 한편, transzendent는 초월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구분한다. 여기에 더하여 또 이 둘과는 다시 구분되는, 칸트의 시대에는 경험 독립적으로 그 참이 보증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a priori라는 라틴어 용어 역시 다른 의미를 가지고 곳곳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칸트가 의미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표현은 세 가지가 된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위의 세 표현들을 번역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선험/선천/초험/초월인데, 앞의 두 단어와 뒤의 두 단어가 형태상 유사하므로, 의미가 완전히 다른 세 표현을 위해서 우리가 딱 잘라서 쓸 수 있는 표현이 두 개인 상황이 된다. 따라서 의미상 필요한 표현은 세 가지이나 형태상 가능한 차이가 두 개가 되며, 이에 역자가 transzendental / transzendent 간의 차이에 주목하여 둘을 다른 형태를 가진 한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할 때와 a priori와 transzendental 간의 차이에 방점을 두어 번역하고자 할 때에 차이가 생이에 된다. 이렇게 볼 때 백종현의 번역은 a priori와 나머지 용어 간의 차이를 강조하여 번역한 것으로, 최재희 역은 transzendental과 transzendent 간의 차이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잇으며, 칸트학회의 경우는 a priori를 아예 원문 그대로 '아프리오리'로 표현함으로서, 한국어에는 사용하지 않는 음차 표현을 동원하여 고육지책으로나마 세 의미를 전부 나누어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각기 다른 번역 전통이 섞이는데, 일반적으로 'a priori'라는 용어는 칸트 이전의 근대철학에서는(데카트르/라이프니츠/흄 등) '선험'이라는 한국어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7] 반면 후설 하이데거 등의 독일 후기 철학에서는 transzendental을 선험 혹은 그 유사어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즉 위에 나온 의미상의 논쟁을 제외하더라도 한국어 선험이라는 표현을 어디에 줄지에 대해서도 한국에 있는 학회들 간의 번역 전통이 이미 다르다는 것(...) 게다가 칸트는 근대의 완성자이자 독일 철학, 특히 독일어로 이루어지는 철학 전통의 (라이프니츠는 불어와 라틴어로 글을 썻으므로)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각자는 각자에게 편한 용어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다만 현재 가장 최근에 출간되엇고 거의 모든 책이 번역되어 있는 판본은 백종현 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강한 상태이다.

각 번역의 단점을 보자면, 백종현 역을 따를 경우, 초월적인 것이 우리의 안에 있는 인식의 틀을 연구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다소 기이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선험'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후기 독일철학에서 사용되는 번역어와 일관적이지 못하게 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최재희 역과 칸트학회 역은 '선험'의 사용에 있어 근대철학자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번역어와 어긋난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최재희 역은 '선천'이라는 표현을 a priori에 대응하였는데, 이는 원어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번역으로 여겨질 수 있다. 칸트학회의 역은 a priori를 음차로 아프리오리라고 남겨 두는 길을 선택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아프리오리한 종합 판단'이라는 한국어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기이한 조어를 받아들여야 하게 된다.[28] (해당 표현은 다른 판본에서는 음차가 드러나지 않는, '선험적 종합 판단'(백종현), 혹은 '선천적 종합 판단'(최재희)로 번역된다.) 또한 최재희 역에는 또 다른 큰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도서관에 있는 판본의 단어들이 (제목부터!)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재희 역본이 출간된 박영사판은 2017년도에는 <<판단력비판>>을, 2018년도에는 <<실천이성비판>>의 보정판을 출간하였는데, 이 '보정판'들은 국한문혼용을 한글 전용으로 변경하였다는 크나큰 변경점이 있지만, 문체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는 않았다. 요새의 젊은 인문학도가 이 책을 읽으면 현대 한국어 글쓰기 어법에 없다시피한, '강조 목적으로 글자 위에 방점 찍기' 등의 생소한 표기에 맞닥뜨리게 된다.[29]

백종현 역과 칸트학회 역의 장점을 보자면, 일단 백종현 역은 대부분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세세한 단어에 있어서까지 일관적인 단어를 선택하여 동일한 문체로 번역하였다는 점이 확실한 장점이다. 이를테면 'Hang'이라는 마이너한 단어는 윤리 형이상학 정초에 단 한번 등장하는 반면 후기 저서인 칸트의 인간학이나 종교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백종현 역에서는 해당 단어는 일관적으로 '성벽'으로 번역되었다.[30] 역자가 다른 영어판 칸트 전집에서도 자주 쓰이지 않는 단어에서는 번역이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히 큰 장점이다. 또한 칸트의 더러운(...)문체가 상당히 일관적으로 번역되어, 하나의 번역본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다른 저서 또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더러운 문체를 일관적으로 살렸다는 점은 그 책이 사실 한국어 문장이라기 보다는 독일어 원문 문장에 가깝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칸트학회의 번역은 칸트의 더러운 원문을 보다 읽기 쉽게 윤문을 많이 가하였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이렇게 볼 때, 백종현 역과 칸트학회 역은 각자가 가지는 개성이 확실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단어 선택에 있어서도 동일한 정신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종현 역은 독일어를 같이 펴놓고 읽기에 좋으며, 이는 역자가 곳곳에서 밝히고 있는 자신의 번역의 의의이다. 반면 칸트학회의 번역은 근대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이 보다 일반적으로 읽기에는 보다 나은 번역이다. 이제 다시 번역 논쟁으로 돌아가서, a priori / transzendental / transzendent 의 형태를 보면, 의미가 아니라 독일어 단어의 형태에 집중해서 볼 경우, transzendental / transzendent를 유사한 한국어 단어로 번역하고 a priori를 다른 단어들과 구분되는 표현을 적용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31] 이 경우 독자는 transzendental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반면 칸트 철학의 핵심 용어인 transzendental의 고유한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면, 해당 용어를 형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transzendent 와 구분하는 부분을 강조해서 번역어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독일어 형태를 보다 잘 반영하여 (형태상으로) 원어에 가깝게 만든 번역은 백종현 번역으로, 그리고 transzendental의 차이를 강조한, 읽기에 보다 편하고 오해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번역이 칸트학회 번역이 된다는 것은 번역에 대한 각각의 정신이 나름의 일관되게 작용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위키러들은 해당 논쟁에 있어서 아래의[32] 논쟁을 참조하되 어떤 번역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배경 지식과 필요에 따라서 자신에게 맞는 번역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 외의 점을 부연설명 식으로 나열하자면, 백종현 칸트 번역서의 경우 일반적인 책 구조인 '짧은 서문->본문' 이 아니라, 그 책에 대한 '해제'라는 명목으로 본문에 대한 해설, 책의 역사, 관련 논저 등을 매우 길게 나열한다. 가령 백종현 역 <<순수이성비판>>의 경우, 이 '해제'를 한 130 페이지 이상 넘겨야 겨우 본문으로 넘어간다. 학술서 번역의 경우 번역자가 해설을 다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백종현의 경우 그게 과잉친절로 여겨져 칸트를 교양으로 보거나 전문연구자들에게 불필요한 부분이 과다 삽입되어[33]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있다. 차라리 해제를 책의 맨 뒤로 옮기거나, 해제를 뺀 '컴팩트한' 버전을 따로 출간하는 것이 좋을것이다.

한길사 칸트전집의 경우 단순히 '백종현 번역에 불만을 가져 대항 번역'을 출간하는 것을 넘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비판기 이전 저작의 번역도 천명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가령 한길사 칸트전집 2권(비판기 이전 저작 2)의 경우, 이 저술들은 칸트의 모국어인 '독일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저술된 것을 번역한 것이며, 이는 김상봉의 한겨레 투고문에 따르면 영역본과 일역본에 이은 세계 3번째로 나온 번역이다.

특히 2018년에 한국 칸트학회에서 칸트 전집 출판을 선언한 이후로 한겨레신문에서 이해 당사자들 간의 지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참고로 한겨레신문에 칼럼기고의 형식으로 먼저 선빵을 친 것은 백종현이다. 또한 기사 내용에 따르면 백종현의 번역에 대한 입장은 학회에서 전혀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문전박대 당한 것으로 보이므로, 신문 기고 이전부터 다양한 물밑 암투(...)가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Immanuel Kant (1724–1804) is the central figure in modern philosophy."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 Immanuel Kant 항목. 용어 "modern"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이 문장에서 쓰인 'modern'은 특정 시기를 지칭하며, 보통 '근대'로 번역된다. 바로 뒷 문장은 'He synthesized early modern rationalism and empiricism'이라 서술하고 있는 걸로 보아, 여기서 'modern'은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의 시기를 지칭한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 즉 '오늘날' 혹은 '동시대'를 주로 'contemporary'라는 용어로 쓴다. (modern이라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서, 지금을 가르켜 '현대'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근대로 번역되어 역사상 특정 시기 - 16세기부터 좁게 잡아서는 18세기 말, 넓게 잡아서는 20세기 초 - 를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분야(철학, 건축, 문학) 에 따라서, 이 용어의 의미는 달라진다.)[2] 제3 비판인 『판단력 비판』은 이 세 질문의 도식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 칸트 연구의 권위자 중 하나인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백종현은 제3 비판에 적당한 질문은 아마도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일 것으로 보지만, 칸트 본인은 이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3] 이러한 의무들이 깨어져야만 할 듯한 상황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에 대한 칸트의 입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갈리곤 한다. 하나의 해석은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은 그르다'(그것이 요청되는 순간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고 칸트를 해석하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의 해석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속이게 되더라도 말 자체로 거짓말하지는 않아야만 한다' 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독립운동가를 숨겨주는데 순사가 자신에게 그의 행방을 물을 때, 전자의 입장을 취하면 독립운동가를 숨겨주지 않는다는 적절한 대답은 그 상황에 의해서 요청될지라도 잘못된 행위를 함축한다는 결론이 따라나온다. 후자의 입장은 '어제 제 집 앞을 지나서 남쪽으로 가고 잇었어요'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칸트를 해석하게 된다.(샌델이 이러한 방식으로 칸트를 해석했다.) 어느 입장이 보다 적절한지는 각자의 판단에.[4] 그래서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악하다(...) 그는 최고선을 진짜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니까(......)[5] 이 부분을 담은 논고가 검열에 걸려서 칸트는 당시 왕에게 다시는 이 책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싹싹 빌어야 했다. 참고로 이 논고에서 이상적 행위자, 곧 예수와 같은 존재는 결코 인간과 다른 신적인 존재여서는 올바른 이상일 될 수 없으며, 오로지 각 개인들이 다다를 수 있는 인간적 도덕적 이상(악한 성벽을 억제하고 선한 소질에만 따르는 사람)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논했다. 또 이 책에서는 교회는 반드시 보편교회여야 한다고도(...) 어느 쪽이든 당시 프로이센을 지배하던 개신교가 보기에는...[6] 인간의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무언가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인식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영국에서 주창된 설.[7]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본유관념(本有觀念)은 신에게 선물받은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경험 없이도 인간은 사색을 통해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 수학 공식 같은 거라든지. 주창자로 데카르트가 대표적.[8] 여기서 칸트가 읽은 흄의 책은 『인간오성론』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은 흄의 첫 번째 저서이자 대표작인 『인성론』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문체도 좀 더 다듬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흄은 『인간오성론』에서는 나오지 않는 "인격동일성"에 관한 문제를 『인성론』에서만 논의했다. 만약 칸트가 『인성론』을 읽었다면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칸트는 흄의 인격동일성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후대 연구자들은 칸트가 『인성론』은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9] 알다시피, 당시는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이던 시기였다.[10] 오죽 자주 나오면 대충 서양사상가 같고 모르겠으면 칸트로 찍고 푸는 것이 윤리와 사상선택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수법이다(...).[11] 그 전에도 이와 유사한 단어는 있었지만 지금의 세계 시민과는 다른 개념이었다.[12] 칸트어로 쓰인 대표적 문장이다. 거칠게 의미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무언가 나에게 나타나는 것 없이는 우리는 어떤 사물도 지각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러나 우리 자신이 가지는 어떤 형식도 없다면 여전히 그 사물은 지각될 수 없을 것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13] 이후 학자들도 칸트와 비슷한 형식의 말을 했다.(A 없는 B는 공허하며, B 없는 A는 맹목적이다 형식의 말) 아인슈타인은 1941년에 출판된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에서 "신앙 없는 과학은 공허하며,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1986년 『위험사회 – 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사회적 합리성이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 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라는 말을 했다.# 다만 양자가 비슷한 모양이라고 내용이 함축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매우 곤란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대해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내지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따위의 주장으로 응수하면 심히 곤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14] 영어로 옮기면,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15] 경험의 한계 내에서 탐구하되, 경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그 형식이 철학적 탐구의 적법한 대상이다.[16] 별이 빛나는 하늘은 물리적 인과법칙, 내 속의 도덕법칙은 도덕적 응보에 따르는 법칙, 이 둘이 같이 있음은 양립가능론을 의미한다.[17] 학교대사전에서는 심지어 얼굴도 골룸처럼 생겼다고 깠다.[18] 한때 내기당구로 생활비를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19] 칸트가 태어났고 평생 그곳에서 생활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였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소련의 영토가 되면서 지명이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고 교명도 '칼리닌그라드 대학'으로 변경되었다. 그랬다가 2005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참석한 행사에서 교명이 '칸트 대학'으로 다시 바뀌었다.[20] 그 외에도 집사가 10년간 자신이 정한 옷만 입다가 하루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자 너무 충격받아서 실신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21] 그런 니체조차도 칸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지만.[22] 본 항목 내에서 위에 있는 부분을 다시 보자. 칸트는 과학에도 정통했고 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한 사람이었으니 칸트가 과학 이론을 한두 개 정도는 발표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근데 부업으로 한 것치고는 너무나도 거대한 업적을 세웠다[23] 개신교 신학자이자, 새교회라는 개신교 교파의 창시자로 유명한 사람 맞다.[24] Sitte(Sitten은 Sitte의 속격)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1:1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 '윤리'로도 번역 가능하고 '도덕'으로도 번역 가능하다. 다만, 이 책의 논제는 '도덕'보다는 '윤리' 쪽이라고 할 수 있다.[25] 웃긴 점은 동서문화사판에서 이 판본을 절판시킨 뒤, 순수이성비판 번역만 따로 나중에 출간했다는 것이다.[26] 참고로 판단력 비판 서문은 1790년에 나온 제1판의 서문과 1799년에 나온 제2판의 서문이 다른데, 제2판 서문은 칸트가 출판사로부터 서문이 너무 길다는 항의를 받아 제1판의 서문을 삭제하고 새로 쓴 것이다. 다만 삭제된 제1판 서문에는 3대 비판서에 대한 칸트 본인의 개괄적인 설명이 들어 있어 칸트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로서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국내에 나온 판단력 비판 번역본들에는 모두 이 제1판 서문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27] '선천'이라는 표현은 때로는 생득적을 뜻하고 또 때로는 경험 독립적임을 뜻할 수도 있는 a priori의 원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전자만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에 이제 근대철학 일반적에서는 번역어로 사용하지 않는다.[28] 아래의 기사를 잘 뜯어보면, 이는 칸트학회 내에서 해당 번역여에 합의를 보지 못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29] 그리고 이 번역자들이 21세기적 문체로 재번역하지 않은 것을 탓할 수도 없는데, 박영사판 <<판단력비판>>의 번역자 이석윤 교수는 2018년에 사망하였고, 최재희 교수도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그들의 번역을 더 이상 수정할 수도 없다.[30] 칸트학회 번역본 역시 대부분의 단어를 통일하여 번역하고 있으나, 해당 단어는 칸트학회 번역어 사전에서 제외되었으며, 아직 해당 단어가 들어가는 저서들이 번역되지 않아 어떻게 번역될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31] transzendental의 의미를 비슷한 형태인 transzendent(초월)과 유사한 것으로, 그러니까 뭔가 초능력 비슷한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 이 번역의 대표적 단점인데, 이러한 오해는 칸트 생전부터 원어민인 독일인에게도 종종 있었다. 오죽 오해가 많았으면 순수이성비판을 쓴 다음에 쓴 형이상학 서설에서 그렇게 읽지좀 말라고 친절하게 (위에 나타나는) 해설을 써줬겠는가.[32] 감정 싸움이 상당히 개입된...[33] 단순 교양으로 볼 사람이면 당연하지만, 전문 연구자의 경우에는 칸트 저술과 연관된 역사와 연구 사항을 직접 국내외의 여러 논문을 읽어가면서 확인하므로, 백종현의 해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