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9 19:08:19

오! 인천

오 인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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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3. 망한 원인4. 평가5. 기타
5.1. 긍정적 효과

1. 개요

Inchon. 1982년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반공영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영화를 찍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서 기획하여 일본 기업가 사카구치 마츠사부로를 설득하여 공동 제작으로 제작을 시작, 처음에는 1978년부터 1982년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포함해서 성경을 바탕으로 10억 달러(!)짜리[1] 초대작 종교 영화 10~15부작 연작 시리즈[2]로 시작되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이 계획은 뒤집어지고[3]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신의 계시를 받아 인천 상륙작전을 계획했다는 내용의 전쟁 영화로 변질되었다. 아마도 가장 명장면(?)은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자기들끼리 감동 때리는 장면일 것이다.

5년의 제작 기간과 제작비 4,410만 달러[4]를 들여 흥행 수익 190만 달러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얼마나 돈을 처발랐는지의 일화 중 한 개로 문선명서울시"한강 인도교 폭파 장면을 찍어야 겠으니 다리 한 개만 폭파시키자. 영화 다 찍고 나서 새로 하나 놔줄게"란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 영화의 제작을 위해 통일교 재단은 직접 영화사를 차렸고 일본 '세계일보' 발행인이 제작자로 들어앉았다. 감독 테런스 영(007 시리즈), 각본 로빈 무어(프렌치 커넥션), 음악 제리 골드스미스(혹성탈출, 빠삐용), 촬영 브루스 서티스(더티 해리)에 로런스 올리비에, 재클린 비셋, 데이비드 젠슨, 오마 샤리프, 벤 가잘라, 미후네 토시로 등의 초호화 캐스팅.

그러나 결과는 영화에 문외한인 종교 관계자가 제작자로 앉아서 끼어들며 간섭하는 이상 아무리 우수한 스태프와 출연진이 모인다고 해도 재앙밖에는 돌아올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2. 줄거리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장교의 부인 재클린 비셋은 이영후를 운전기사로 삼아 당시에는 엄청 귀한 물건인 승용차를 타고 피난을 간다. 그러다 폭격 맞아서 이영후가 전사하고 이제는 재클린 비셋이 직접 운전해서 피난을 간다. 도중 한강 철교를 건너는데 거기서 만난 웬 노인의 부탁에 의해 어린이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간다. 그리고 전쟁은 점점 악화되고 맥아더(로런스 올리비에)는 전전긍긍하다가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신은 인천을 공략하라는 해법을 제시했고 맥아더는 그러한 신의 계시에 따라 인천을 공략한다. 인천 공략에 성공하자 맥아더는 이승만과 껴안고 환호한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월튼 워커 장군이나 윌리엄 딘 장군, 손원일 제독 등 주요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딩도 알고 있는, 새벽에 윗동네가 38선을 기습 침공했다는 사실조차 뒤집고 대낮대한민국 육군의 최전방 초소에 당당하게 쳐들어와 탁자에서 소총을 장전하던 한국 육군 보병들을 쓸어버리는 전차들이 등장하는 프롤로그를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할 의욕 자체가 사라진다... 곧 이어 북한군이 남한 마을로 진입하자 인공기를 자랑스럽게 게양한 북한군 탱크는 바로 옆에 있는 멀쩡한 길을 놔두고 궤도로 민가를 밟아 뭉개며 지나가고, 한복을 입은 선량한 주민들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탱크를 향하여 돌을 던지다가 북한군의 총질에 사망한다.

3. 망한 원인

1977년 당시는 베트남 전쟁 패전 직후라 혐전 풍조가 강해 전쟁 영화의 빙하기였고[5] 설상가상으로 박동선 사건으로 시작된 이른바 '코리아게이트'로 말미암아 한미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냉각되어 있던 시기였다. 거기에다 통일교에 대한 미국 내 시각은 처음부터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맥아더 역을 맡은 73세의 로런스 올리비에는 자기는 통일교를 믿기 싫다며 뻗대는 바람에 영화 제작팀에서 올리비에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으며 이 때문에 올리비에는 영화를 매우 성의 없게 찍었다. 그나마 개런티는 많이 줘서 보이콧하진 않았다. 그리고 올리비에 본인은 이 영화를 찍기 직전 사경을 헤매는 대수술을 받았는데 이 수술 때문에 재산을 엄청나게 탕진한 상태였다. 즉, 이 영화를 찍어야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개런티가 많았어도 올리비에가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황만 아니었으면 보이콧할 수도 있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이러한 전후 상황 때문에 개런티를 받지 못할까 염려하여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자[6] 헬기로 매주 개런티가 든 돈가방을 공수해와 건네주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제작 협력을 약속한 미 국방성은 정체를 알곤 협조를 철회했고 원래 맥아더로 예정되었던 그레고리 펙은 출연 자체를 취소한다.[7] 한국 정부 또한 통일교의 영화라는 이유로 협조에 미온적이었다.

게다가 문선명이 자꾸 관여하는 바람[8]에 각본은 제작 기간 내내 수정을 거듭했으며 저주라도 받았는지 영화 촬영 내내 수많은 트러블이 이어졌다. 문선명은 가만히 냅두면 제작진이 알아서 잘 찍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콘티를 스스로 뭉개며 점점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만든 대규모 세트장이 인천 앞바다까지 올라온 태풍으로 날아가는가 하면, 미국 스태프와 한국 스태프를 연결할 통역이 부족하여 한 컷을 찍기 위해 통역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동안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갔고 영화 제작자들이 쓰는 전문 용어는 한국과 미국이 전혀 달라 감독 지시가 이곳저곳 거치는 동안 전혀 다른 말이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현장 조감독이 배를 다른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바람에 인천 상륙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찍으며 200만 달러를 썼고, 맥아더가 서울 시내에서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장면은 한 번은 엑스트라가 너무 적어서 멋지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찍고, 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된 두 번째 촬영은 첫 번째로 찍은 리무진 장면과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또 다시 찍어서 도합 세 번을 찍었다. 여기에 든 돈은 촬영당 100만 달러씩 해서 300만 달러.

결국 5년 만에 겨우 완성을 보았으나 그 내용물은 참담했다. 덧칠과 가위질로 얼룩진 각본은 물론이거니와 배우들의 연기는 들쭉날쭉했으며 나온 배우들도 나중에 실컷 비웃기까지 했다.[9] 고증도 막장인데 북한군은 일본군 비슷한 복장에 스텐 기관단총을 들고 나온다.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만큼 전쟁씬은 제법 웅장해야 함에도 뭔가 낯설 정도로 편집에서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오리지널인 140분판은 첫 공개였던 칸 영화제에서 엄청난 야유를 받으며 떡실신되었고 나중에 재편집판이 미국 한정으로 공개되었으나 상영 기간 중 극장 티켓을 추첨하여 100만 달러 상금을 주는 캠페인을 벌였음에도 영화는 대참패, 90만 달러라는 기록적 흥행 수입을 기록하며 영원한 흑역사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더니 결국 미국 배급사였던 MGM/UA는 이후 오랫동안 유명무실한 상태로 전락하다 1989년 1차 부도를 내고 2010년 11월 파산했다.[10] 거기에 1981년 7월 22일에 윤보살이 피살당하면서[11] 윤씨가 해당 영화에 투자를 했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제작사 측은 사실무근이라 주장했다.

4. 평가

메타크리틱[12]
스코어 평가없음/100
로튼 토마토
신선도 0% 관객 점수 9%
IMDb
평점 2.7/10
왓챠
사용자 평균 별점 1.5 / 5.0
네이버 영화
기자, 평론가 평점
없음/10
관람객 평점
없음/10
Oh! Shit
할리우드 진출 한국 영화 최대의 흑역사

로튼 토마토 신선도 0%[13]이자 IMDB 유저 평점 2.7점을 받은 영화.[14]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든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든 《7광구》든 이 최악의 영화 앞에서는 어설픈 풋 사과로 전락한다. 앞의 세 영화는 주로 대한민국 내에서 까일 뿐 한국 밖에서 까일 일은 적지만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 진출하여 제대로 망신살이 뻗쳤을 뿐더러, 말아먹은 스케일은 저 세 영화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보면 《오! 인천》보다 더 망한 영화는 얼마든지 더 있긴 하다. 할리우드 최악의 실수들, 흥행 대재앙 영화 30을 보면 《오! 인천》은 9위에 불과하다.[15]

골든 라즈베리 4개 부문 수상작[16]으로 2011년까지 골든 라즈베리 최다 수상작이었으나 2012년 《잭 앤 질》, 2015년 《닌자터틀》이 5개 부문 전부를 쓸어가면서 기록이 깨졌다.

5. 기타

현재는 미국의 통일교 계열 케이블 채널에서 이따금 방영해주는 것이 전부일 뿐으로 비디오건 DVD건 영상 매체로는 전혀 발매되지 않고 있다. 2012년에 드디어 영화 전체가 유튜브에 올라왔다! '1982 Inchon!'이라는 제목으로 10분짜리 영상 14개로 나뉘어 올려져있다. 미국 케이블 채널 방영분을 녹화한 것으로 보인다.[17]

할리우드에서 베트남 전쟁 관련 영화는 많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거의 나오지 않은 건 이 영화 때문이라는 괴소문이 있다. 게다가 1970년대 전까지 나름대로 왕성하게 만들어지던 한국전쟁 배경의 영화들이 이 영화를 기점으로 완전히 끊겨있어서 이런 소문을 더욱 부채질한다. 실제론 한국전쟁 자체가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 내 인지도가 군사기밀 수준으로 낮아서지만. 미국에선 비슷한 시기, 비슷한 내용과 설정을 가진 전쟁을 가지고 영화를 찍는다면 인지도가 수백수천배 높은 베트남 전쟁[18] 혹은 제2차 세계대전[19]을 채용하는 게 더 관객들의 눈길이 가게 되어있다. 물론 할리우드판 한국전쟁 영화는 한국에서도 흥미가 없으니 더더욱 만들 이유가 없다.[20]

게다가 걸작들이 즐비한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 배경의 영화들에 비해, 한국 전쟁 배경의 영화들 중에는 몇몇 작품을 빼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품은 없어 안습함을 더한다. 그나마 개중에서도 대중에 걸작으로 인정받는 영화는 존 프랭컨하이머 연출의 《맨츄리안 켄디데이트》와 1970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버트 알트만 연출의 《M.A.S.H.》가 있다. 하지만 전자는 영화가 한국전 자체를 다룬다기 보다는 정치 스릴러를 위한 소재로 사용하는 느낌이 강하고, 후자 역시 영화 속 한국인들의 복식을 베트남 식으로 가깝게 묘사하는 등, 베트남 전쟁에 대한 야유와 조롱를 위해 한국전쟁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21]

파워 블로거 페니웨이의 괴작열전에 정밀 리뷰가 올라와있는데 영화 제작 당시 여러 이야기와 줄거리 같은 이야기가 3 걸쳐 꽤 자세히 올라왔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영화 음악 거장인 제리 골드스미스가 맡은 음악은 그나마 건질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의 공식적인 비디오나 DVD 같은 건 일절 나오지 않은 거와 달리 OST는 당당하게 나온 걸 봐도 말 다했다.

한국을 무대로 해도 중국이나 베트남 배우들이 나오는 일반적인 할리우드산 한국전쟁[22] 영화화는 달리 이 영화는 한국의 중견 배우들[23]이 총출동하는 작품이다. 물론 영화가 망작 중에 망작이라서 배우들도 언급을 자제하는 편이다. 다만 상술한 보이콧 문제 때문에 현찰박치기까지 했던 영화라서인지 고질적인 문제인 출연료 늦게 지급이나 불공정 계약으로 인한 출연료 미지급이 없던 영화라서 이 영화 찍고 서울에서 집 한 채 마련한 배우들이 많았다고 한다.

故 문선명의 자서전에선 이 영화 제작을 했다는 것 밝히고 있다.

1970~1980년대 쇼 비즈니스 업계를 배경으로 한 MBC 월화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주인공의 라이벌 조명국이 운영하는 영화사가 홍콩 영화사와 투자 계약을 추진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계약의 조건 중 하나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인천 상륙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든가, 할리우드와의 합작 영화라든가, 로런스 올리비에가 출연할 예정이라든가, 테런스 영을 감독으로 섭외 중이라든가... 아무래도 《오! 인천》을 비꼬려는 패러디로 보이는데, 결국에는 계약 상대가 홍콩 영화사를 사칭한 사기꾼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투자금을 고스란히 떼이고 말았다.

2016년 개봉 예정인 리암 니슨이 맥아더 역으로 출연하는 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 소식에 이 영화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24]

파일:oh_incheon_extra.jpg
(이미지 출처: Paul Courtright 씨 페이스북)
당시 서울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하였다. 아마 돈을 뭉텅이로 쥐어주니까 출연한 모양이다.

2017년 이 영화를 뛰어넘을 만한 영화 리얼이 개봉해서 역대급 졸작들이 재평가를 받았지만, 이 영화는 재평가받지 못했다.

5.1. 긍정적 효과

문선명이 이 영화를 찍게 됨으로 인해 꼭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주연인 더글러스 맥아더역의 로런스 올리비에는 이 영화를 찍기 직전에 생명이 위독해지는 바람에 대수술을 감행했고 그로 인한 수술비용으로 재산을 탕진해서 쪽박을 찼는데 그런 로런스 올리비에의 경제적인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줬다. 재클린 비셋 역시 상당히 많은 돈을 이 영화에 출연함으로 인해서 벌었다. 게다가 이 영화에 출연한 이영후이 영화 찍고 그 돈으로 집을 샀다. 심지어는 보조출연자들에게도 아주 돈을 흥청망청 뿌려댄 덕분에 보조출연자들도 제법 큰 돈을 벌었다. 한마디로 문선명은 이 영화 촬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준 그야말로 진정한 자선사업가이자 영화계의 뉴딜 정책을 편 꼴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에서 제작자인 문선명이 주연 배우인 로런스 올리비에에게 준 개런티가 이 영화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23년 후 클레멘타인(영화)에서 제작자인 이동준이 주연인 스티븐 시걸에게 반복했다.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문선명은 워낙 돈이 썩어넘치는지라 배우 개런티 말고도 이 영화에 쓴 돈이 엄청난 거액이었지만 이동준은 단돈 50억원밖에 없어서 스티븐 시걸을 캐스팅한 것 때문에 영화의 퀄리티를 크게 줄여야만 했다.


[1] 제작비 최대의 《아바타》가 2억 달러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2] 이 기획 당시 예수의 캐스팅을 엘비스 프레슬리로 고려했었다는 얘기도 있다.[3] 예수를 맡아야 할 엘비스 프레슬리가 1977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한 게 컸다.[4] 저게 공식 제작비이고 거기에 추가로 현찰 박치기에 쓰인 돈까지 치면 당시로도 1억 달러를 썼다는 얘기가 있다. 참고로 공식 제작비는 2000년대 물가로 따지면 치자면 2억~2억 5천만 달러급이다. 제임스 캐머런의 《타이타닉》,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 전편 제작비와 맞먹는다.[5] 당시 히트한 전쟁물이 없는 것은 아니나 《머나먼 다리》, 《디어 헌터》, 《새벽의 7인》 등 거의가 반전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였다.[6] 원래 내정되었던 제임스 메이슨은 출연을 철회하였고 인도군 장교로 나올 예정이던 오마 샤리프와 데이비드 젠슨은 도중에 촬영을 보이콧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샤리프는 이집트 텔레비전에 나와서 설령 맥아더가 무슬림으로 등장한다 해도 이 따위로 만들 것이라면 출연을 똑같이 거부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쓰레기에 나왔다고 화를 냈다. 더불어 영화 제작진에게 자신이 나온 부분은 일절 공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7] 이 배우는 맥아더 전기 영화에서 레퍼런스급의 명연기를 펼친 바 있다.[8] 가장 가관은 영화 시작 제작진 자막에 자기 이름이 안 나온다고 기어코 돈을 더 들여가면서까지 특별 자문이라는 자막으로 문선명 영어 이름을 자막으로 넣은 점! 이 덕에 30만 달러가 또 들어갔다. 자막 하나로 이렇게 돈이 들어가다니 가히 돈낭비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렇다 보니 통일교를 알고 비판적으로 보던 해외 언론들은 초반 문선명 이름 자막만 보고 통일교 홍보영화라고 무진장 깠다! 뭐 그 자막을 안 봤어도 틀림없이 그 괴악한 퀄리티를 소재로 마구 깠겠지만...[9] 로런스 올리비에는 화장이 너무 진해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이 되었다. 재클린 비셋은 이 영화로 165만 달러나 벌었음에도 데이비드 레터먼 쇼에 나와 "난 이 영화를 볼 마음도 없어요. 얼마나 개판이던지 말도 못하던 걸요. 하긴 돈 때문에 나온 것 뿐이니까요"라며 실컷 비웃고 까버렸다.[10] 참고로 이 부도, 파산으로 007 시리즈는 신작 계획이 두 번이나 날아갔다. 007 영화 시리즈 팬이라면 이를 갈 만한 영화. 게다가 그 중 한 번은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이었다.[11] 해당 사건은 현재도 미제로 남아 있다.[12] 항목이 개설되지 않았다.[13] 사실 0%를 받은 영화는 많다. 로튼 토마토 지수는 혹평을 한 평론가의 비율에 따라 계산되므로 무명 영화인 경우 평작 수준이라도 0%가 뜰 수 있다. 즉, 주목을 많이 받은 영화일수록 신뢰도가 높고 반대의 경우 낮다고 볼 수 있다.[14] 3.5점을 받은 김치 전사보다도 점수가 낮다.[15] 다만 이 중 몇 편은 흥행은 망했어도 평은 좋았던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1980년에 개봉되어 영화사를 파산시키고 기네스북에도 오른 《천국의 문》. 하지만 이 영화는 '반미 빨갱이가 만든 쓰레기'라는 당시의 '평론'과는 반대로 좋은 작품성으로 당시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는 훌륭한데 미국의 아픈 곳을 건드려서 망했다'는 평까지 받는다.[16]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남우주연상, 최악의 각본상.[17] 일본에서는 이 케이블판 불법 복제 비디오가 매니아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18] 흑인 인권 운동, 반전 운동 등 사회적 영향이 커서 많이 연구되는 전쟁이다. 또 무엇보다 미국이 이길 것 같았는데 이기지 못한 전쟁이다.[19] 종전을 기준으로 하면 시기적으로도 5년 가량의 차이밖에 없으며 한국군미군의 모든 장비류와 소련제 중장비들은 2차 대전 종전 시기의 장비로부터 크게 바뀌지 않았다. 로저 코먼에게 이러한 소품과 의상들이 무상으로 지급한 뒤 한국전쟁 영화를 찍게 하면 소품이 아깝다며 2차 대전 영화로 재탕할 정도.[20] 한국전쟁은 이미 1960년대부터 한국 영화계는 물론 방송에서도 주구장창 우려먹었던 소재였기에 한국전쟁 영화에 관한한 한국산이 할리우드산보다 더 나으면 낫지 모자랄 것이 없다.[21] 물론 원작인 소설은 한국전을 다루고 있다. 게다가 1970년도면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이라 직접 비판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22] 하지만 굳이 한국전쟁 말고도 베트남 전쟁이나 2차 대전 영화에서도 동아시아 배우로 대충 땜질하는 경우도 많다. 안필립이나 안필선 형제가 중국인, 일본인, 일본군으로 2차대전 관련 영화에서부터 베트남전 영화로 자주 나온 것이나 재미교포 배우 오순택이 일본군, 베트남군으로 나온 경우. 일본계 미국 배우들도 척 노리스 영화에 베트남군으로 여럿 나온 경우처럼 많다. 참고로 《콰이강의 다리》에서 악랄한 일본 장교로 나온 일본계 배우 셋슈 하야카와는 베트남인, 한국인으로도 나온 적이 있으며 심지어는 검댕칠하고 오세아니아 섬 주민으로 연기하던 적도 있다. 뭐 안필립도 이런 원주민 배역도 맡은 적이 있긴 하지만.[23] 남궁원, 이낙훈, 이영후 등. 참고로 이낙훈은 여기서 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25] 이 영화를 보고 실망한 일본 관객들 중에 남궁원이 알고 보니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였다는 걸 알고 충격먹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24] 실제 흥행은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평가는 결코 좋지 못했으며 얼마뒤에는 정치적 범죄와 연관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 인천보다 더 저평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