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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생애 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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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린 시절3. 언더그라운드 시절4. 닥터 드레와의 만남5. 암흑기6. 복귀와 제2의 전성기7. Revival & Kamikaze8. 2020년대

1. 개요

미국 래퍼들의 인생사가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에미넴은 특히나 어려서부터 부정적으로 매우 다이나믹한 인생을 살아왔다.[1] 많은 사람들한테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이른바 아이들 교육에 안좋은 노래를 만든다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그의 인생사만 봐도 사실상 쌍욕이 나오는 노래를 혼자서라도 안만든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

소위 말하는 화이트 트래쉬 계층의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린 싱글맘[2] 밑에서 자라 디트로이트에서도 슬럼가에 살았고[3], 그 가정도 아버지 없는 한부모가정인데 그 어머니도 마약 중독자였고 거기에다 백인이었다.[4] 그야말로 시궁창같은 환경의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흑인들 사이에서 랩 배틀을 하며 살아남고, 실력을 갈고 닦아 활동하다 여기까지 온 것.

2.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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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의 아기 시절 사진[5]
어머니 데비 넬슨[6](1955~2024)과 그녀가 살던 동네[7]의 밴드에서 활동하던 멤버 아버지 마셜 브루스 매더스 2세(주니어)(1951~2019)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에미넴은 이후로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자기가 병원에서 다른 아기들과 바꿔치기 당한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했고, 에미넴의 공연장에 아버지가 찾아왔고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에미넴이 만나기를 거부하였다. 거부한 이유는 에미넴이 생후 6개월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것. 에미넴의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유아 시절의 에미넴이 아버지를 그리워 하며 아버지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허나 아버지는 자신은 가족을 버린 적이 없다며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다는 말은 부인이자 에미넴의 모친인 데비 넬슨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재혼을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게 전해서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는데, 편지 내용은 본인은 에미넴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고 원래 에미넴이 태어났을 때 병원 측에서 아버지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들어가지 못했고 그 뒤에도 아버지는 일이 바빠 자주 찾아보지 못했는데, 데비가 이를 갖고 이간질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히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부인인 데비가 에미넴을 데리고 말도 없이 사라졌고 자신은 가족을 한참 찾아 헤매다 결국 포기하고 결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고 하였다. 이때까지의 데비 넬슨의 막장 행각을 보면 마셜 매더스 주니어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으나, 2020년 발매한 앨범 Music To Be Murdered By의 수록곡 "Leaving Heaven"에서 자기는 아버지의 죽음에 아무 느낌도 없다며 계속 디스하는 것을 보아 에미넴에겐 그 주장이 아무 의미 없었던 듯하다.[8]

5살때 디트로이트로 이사하게 된 그는 줄곧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리던 어머니 데비 넬슨에게 학대를 당했다.[9]

잦은 이사로 인한 전학과 왜소한 체구, 멍때리며 언제나 랩의 가사를 중얼거리는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학교에서도 왕따와 폭행을 당했다.[10] 대표적으로 1981년 10월 15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학교 일진 D'Angelo Bailey[11]의 폭행으로 9일 간 코마 상태에 빠졌던 일.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를 피해 친척들과 자주 붙어 지내던 에미넴은 힙합 매니아였던 그의 외삼촌, 로니 넬슨[12][13]을 유일한 친구삼아 지내게 되었다. 이후 MMLP2의 "Legacy" 에서도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꾼 기질이 있어서 맨 처음엔 만화가[14] 꿈꿨지만 11살 쯤 됐을 무렵, 외삼촌 로니가 아이스 T의 음반을 선물해 주었고,[15] 같은 백인 힙합 그룹이었던 비스티 보이즈의 음반 등을 듣게 되면서 백인도 랩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16] 로니 삼촌의 비트박스에 맞춰 어설프게 랩을 해 테잎에 녹음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랩에 몰두하기 시작해, 13살 무렵에는 자신의 이름인 마셜 매더스의 약자에서 에미넴[17][18]을 예명으로 짓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점심시간에 랩 배틀을 벌이고 자신의 힙합 그룹을 결성하기도 하며 음악에 몰두하다 학교를 결석한 적도 있었다. 마침내 17세[19], 고등학교 때 학교를 자퇴하고 본격적인 래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20]

3. 언더그라운드 시절

하지만 그 때 이미 힙합을 때려치운 삼촌 로니는 에미넴이 래퍼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얘기했을 때 '허망한 꿈일 뿐이니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89년부터 같은 백인 래퍼인 카오스 키드와 만나 New Jacks라는 그룹을 결성 후 Bassmint Productions로 그룹 명을 바꾸고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흑인들 앞에서 공연하면서 Nigga라는 낱말을 썼다가[21] 야유만 잔뜩 들었다, 에미넴에겐 나름대로 흑역사. 아무래도 정말 초기에 했던 녹음들이다 보니 가사나 스킬 등이 조잡하다.[22] 지금의 에미넴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때는 테이프를 아끼기 위해 한 큐에 녹음을 끝내는 연습 등을 많이 했다고 한다.[23] Bassmint Productions는 이후 그룹 이름을 Soul Intent로 바꾸고 나서 계속 활동하다가 1995년에 해체된다.

당시에는 백인이 힙합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질적이고 거부감이 들었기에 언더에서의 에미넴의 삶은 비난과 야유의 반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클럽을 찾기 위해 디트로이트의 클럽을 찾아다녔다. 실제로 그가 랩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만 해도 욕설과 '내려가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덩치 큰 흑인에게 오렌지를 맞았을 정도다.

그러던 중 로니는 연애 문제로 1992년에 차 안에서 권총 자살해 버린다.[24] 삼촌의 자살에 대한 충격으로 에미넴은 음악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딸 헤일리가 태어나 아버지가 된 이후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다.

후에 삼촌 로니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왼팔에 문신을 새겼다.[사진] 버섯은 마약 버섯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현재 에미넴은 마약은 물론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는다. 본인이 설립한 레이블 Shady Records사 직원들과 가수들에게 또한 술, 담배, 마약은 하지 말라고 권하며 리아나에게도 하지 말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Soul Intent에서 총 3장의 EP를 냈지만 뜨지 못하고 1995년에 해체하게 된다.

항상 야유와 욕을 얻어먹어 주눅이 들고 때려치고 싶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프루프가 계속 랩을 할 자리를 알아봐주고, 신청해주고, 잘 곳 없는 에미넴을 집에서 재워주기도 하는 등 도움을 주었기에[26] 랩 배틀에 계속 나가게 된 에미넴은 결국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을 랩으로 사로잡게 되었고[27][28] 자신감을 얻어 점차 가사 쓰는 법, 비트 만드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클럽 생활을 하면서 실력을 쌓은 그는 1996년 첫번째 앨범 Infinite를 발매한다. 이 당시에도 이미 라임은 수준급이었다. Infinite, It's OK, Tonite 등에서 괜찮은 랩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플로우에 유니크한 특성이 없었던 데다가, 목소리가 하이톤이다 보니 '너무 어리게 들린다' 등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가사도 무명 래퍼로서 생계를 꾸려가려는 몸부림 등이 중심이 되어 많이 얌전하다.[29] 이때는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때 에미넴의 래핑 스타일을 들어보면 동부 래퍼 AZ, 나스와 비슷하게 들린다.[30] 결국 앨범은 '동부 래퍼들의 스타일을 교묘히 베낀 삼류' 등의 혹평을 들으며, 디트로이트에서 약 1000장의 판매고를 올린 게 전부를 끝으로 거의 묻히다시피하고 말았다.

1000장이 팔리고 나서 에미넴은 인생에 뭔가가 일어날 거란 기대를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묻혀서 실망을 했다고. 에미넴이 어렵게 살던 시기였기 때문에 딸 헤일리의 분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던 중 라디오에서 이 앨범이 쓰레기같다는 악평을 듣고 상심했던 적이 있다. 이에 에미넴은 문신을 새겼는데 'Slit me, 나를 베어라'라는 뜻이다.

4. 닥터 드레와의 만남

그는 개성을 갖추고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 슬림 셰이디라는 또 다른 자아를 고안해 《Slim Shady EP》를 만든다. 전작 Infinite와는 완전히 다른 컨셉으로, 약물 사용, 성적 행동, 정신적 불안정 및 폭력에 대해 언급하며 빈곤 및 부부 및 가족 문제 등 심각한 주제를 담은 앨범이다. 첫 번째 트랙인 Intro에서 이 전설적인 캐릭터 '슬림 셰이디'가 처음 등장하는데, 과거에 죽였다고 생각했던 슬림 셰이디가 에미넴에게 다시 돌아와 그를 집어 삼키는 컨셉이다.

이러한 EP 발매와 랩 배틀 활동 등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꽤 알려지고, The Source 잡지에 Unsigned Hype(알려지지 않은 유망한 래퍼)로 선정되는 등 조금씩 인정받기도 했다. 지금도 별 다를 건 없지만, 당시 백인이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놀라운 수준. 버스타 라임즈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하길, Slim Shady EP를 듣고 열광해서 머리를 너무 많이 흔들다가 버스 유리창을 못보고 박아 깨뜨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지도도 결국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인지도일뿐 생계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알바를 하던 레스토랑에서 해고되고 돈이 없어 집에서도 쫓겨나는 등 말 그대로 밑바닥 생활을 하다 1997년 LA의 지역방송이 주최한 랩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31] LA로 갔고, 2위[32]를 차지한다. 그 현장에는 인터스코프 레코드 인턴이었던 딘 가이스링어(Dean Geistlinger)가 있었는데, 그가 에미넴의 랩을 듣고 테이프를 달라고 요청했다.[33]
마이크 타이슨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는 에미넴
이렇게 에미넴의 Slim Shady EP CD가 인터스코프로 전달되고, 이후 1998년 3월 즈음 닥터 드레[34]가 테이프를 듣게 되었는데, 테이프가 그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 닥터 드레가 말하길, 당시 인터스코프의 아티스트 계약은 약 3개월 정도 기간을 두고 결정하는 편이었지만, 에미넴을 놓치기 싫어 바로 계약했다고 한다. 닥터 드레는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When jimmy played this; I just said, 'Find him. Now.\'
지미가 앨범을 틀었을 때, 나는 말했어, '걔 찾아와. 당장.'
닥터 드레
닥터 드레는 그동안 데모 테이프나 CD를 듣고 마음에 드는 인재를 찾은 케이스가 스눕독을 제외하곤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런 닥터 드레가 에미넴의 Slim Shady EP를 듣고 당장 계약을 원했던 것이다. 주변 동료들은 에미넴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하며 정신 나간 짓이라고 욕을 했다. 하지만 드레는 에미넴의 능력을 믿고 계약을 밀어붙였다. 드레가 반 농담으로 그때를 회상하며 "주변에 인종차별자가 이렇게 많은줄 몰랐다."라고 했을 정도.[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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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010년 2020년
1998년 계약 초반부터 드레가 살 빼고 몸 만들라고 했다고 한다. 에미넴은 닥터 드레와의 첫 만남 때 자원구호 단체에서 나눠주는 노랑색 후드 점프수트를 입고 나타났다. 나중에 드레가 말하길 바나나 같았다고 한다.[36]

에미넴은 애프터매스와 계약을 맺고 1999년 자신의 두 번째 솔로 음반이자 메이저 데뷔 음반인 The Slim Shady LP를 닥터 드레의 프로듀싱 하에 녹음한다. 그리고 해당 앨범은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에미넴은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되어 대중음악계 정상 중 하나로 올라선다.

이러한 임팩트를 이어가 2000년, 자신의 본명에서 따온 The Marshall Mathers LP를 발매한다. 이전 앨범이 날카롭고 재치있는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좀 더 진지하게 인간 마샬 매더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11번 트랙 'Marshall Mathers'를 작업하면서 이 앨범의 이름도 정했다고 한다. 이 음반은 발매 첫 주에 176만장이 팔렸고, 기존에 가장 빠르게 팔린 힙합 음반 기록을 갖고 있던 스눕 독의 《Doggystyle》과 가장 빠르게 팔린 솔로 음반 기록을 갖고 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Baby One More Time》을 모두 제치고 미국 음반 역사를 새로 썼다. 본인도 말했듯이, 이 앨범은 말그대로 밑바닥 인생에서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된 에미넴이 그동안의 고충, 주변인들의 시선, 평론가들을 포함해 시비 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세지, 그리고 직설적인 여러 디스전 등이 담겨있다. 이미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변하지 않은 날 것의 기조를 보여주고, 더 직설적이기도 하며, 진지한 면모를 가감없이 담아내기도 하는 등 에미넴의 정수가 담겨있다.

이러한 대성공 이후, 에미넴은 무명 시절 D12 멤버들끼리 했던 약속[37]을 지키기 위해 2001년에 D12와 함께 《Devil's Night》을 발매하며 빌보드 200 1위 자리에 올려놓는다. 클래식한 힙합 곡들이 많은 좋은 앨범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에미넴은 여기서 더 박차를 가해 The Eminem LP라는 앨범을 준비 중이었는데, 앞선 D12 앨범 스케줄로 인해 연기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2년, 트루먼 쇼에서 이름을 따와 The Eminem Show를 발매한다. 힙합 문화에서 에미넴의 명성과 그에 따른 선망, 그리고 예상치 못한 엄청난 성공과 그로 인해 삶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그의 생각 등을 바탕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2002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며, 발매 첫 주 판매량은 132만장.[38] 2003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올랐다.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은 앨범이기도 하다. 총 판매량은 2700만 장을 달성하며 21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 2위에 위치해 있다.[39] 또 대부분의 곡에 프로듀싱으로 참여하기도 해 프로듀서로서의 영향력도 발휘한 앨범이다.

이후 자신의 언더그라운드 시절을 모티브로 한 영화 8 마일이 개봉하고, 사운드트랙인 Lose Yourself가 힙합 역사상 최초로 12주간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하고, 그래미 수상은 물론 힙합 최초의 오스카상까지 수상했다.

이러한 에미넴의 최전성기[40]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최고의 명반들이 4년동안 3개나 발매되고 전 세계에 엄청난 임팩트를 주고 이끈 힙합 역사상 최고의 시기 중 하나로 꼽힌다. 에미넴은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어셔 등과 더불어 Y2K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며[41], 이 시기 이후로 에미넴은 힙합씬 스타를 넘어서 대중음악계 거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5. 암흑기

이러한 2000년대 초반 에미넴의 엄청난 성공 가도로 인해, 그에 대한 기대감은 미친듯이 높아져 있었다.

2004년 8월에 D12로 돌아가 D12 World라는 앨범을 발매해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다. 특히 My Band라는 재미있는 곡이 인기를 끌었다.

이후 자신의 네 번째 정규 음반인 《Encore》를 발매하는데, 약물 중독[42]으로 인해 달라진 톤[43], 부정확한 발음, "Big Weenie" 처럼 박자를 아예 무시하는 트랙, "Puke"나 "My 1st Single" 등 더러운 사운드가 들어간 트랙들로 인하여 좋지 않은 평을 받았다.[44] 이 앨범도 The Eminem Show처럼 유출 사고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수록곡을 교체하고 배치 순서도 수정하는 등 변경점이 있었다. 에미넴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고가 아니었다면 Encore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위에 서술했던 약물 의존 문제가 점점 심해져 더이상은 안 되겠다고 판단한 에미넴은 2005년 8월에는 진행 중이던 투어까지 취소하고 수면 약물 중독 치료를 위해 재활원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재활을 마치고 나온 이후에도 그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수면 문제가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려대로 나중에 결국 재발하게 되었다.

2005년 12월, 컴필레이션 앨범인 Curtain Call: The Hits를 발매하는데, "난 지금 내 삶의 정점에 있고, 내가 앞으로 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게 바로 이 음반이 "커튼 콜 (Curtain Call)"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며,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 "라고 말했다. 그에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2006년, 설상가상으로 그의 형제와도 같았던[45] 프루프가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에미넴은 인생을 거의 반 포기한 듯이 살았다고 한다. 울면서 침대에 누워 당연히 재활 치료가 제대로 진행될리 없었고, 약물 섭취는 더욱 늘어났다.

이 시기에 에미넴은 King Mathers라는 이름의 은퇴 앨범을 계획하고, 다량의 곡들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46]

그러다 2007년 12월에 메타돈 과다 복용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다. 의사에 따르면 모든 장기들이 기능을 멈춰가고 있었고, 2시간만 늦었어도 사망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적인 일 이후에도 약물을 단숨에 끊는건 쉽지 않았고, 계속 복용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프루프, 그리고 딸 헤일리를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이후 약물을 끊기 위해 교회에도 나가보고, 재활 상담사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요청하여 달리기 위주의 운동을 하면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나단 로스의 토크쇼에서 말하길, 중독을 다른 중독으로 대체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달렸을 때는 총 27km를 달렸다고 한다. 또한, 어렸을 때 좋아했던 여러 코믹북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엘튼 존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2001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같이 무대를 했던 둘은 친구 사이라고 하는데, 엘튼 존이 일주일마다 에미넴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해가며 재활을 도왔다고 한다.[47] 또한 에미넴은 2008년 4월 20일부터 술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을 마시면 자신이 다시 약물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48]

6. 복귀와 제2의 전성기

통칭 에미넴 2기로 불리는 시절. 전성기 시절의 실력과 대중성을 다시 찾아낸 시기이기도 하다. 2009년 싸이퍼2011년 싸이퍼에서 독기를 품고 돌아온 에미넴의 미친 래핑을 볼 수 있다. 재활 치료 이후 King Mathers는 폐기했고, 몸과 정신을 깨끗하게 비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예전만큼 잘 해낼 수 있을지 몇년 동안 의심을 품었으나,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느낀 이후에 대량의 곡을 미친듯이 만들기 시작했다.

2008년 9월, 자신의 채널 'Shade 45'에 출연해 새 앨범을 작업 중이라고 알렸다.

2009년 5월, 다섯 번째 정규 음반 《Relapse》를 발매한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힙합계에서 그의 존재감을 다시 확립했으나, 평가도 많이 엇갈렸다. 앨범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컨셉도 거부감이 들만 했지만, 몇몇 트랙에서의 과하게 튀고 코믹한 톤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다. 2018년 Sway와의 카미카제 인터뷰에서 말하길 그때의 액센트를 돌이켜봤을 때 자신이 봐도 너무 심했고, 흑역사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49] 물론 모든 트랙이 그런 것은 아니며 그간 겪은 힘든 시기를 잘 담아낸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도 여럿 있고, 앨범의 전체적인 유기성과 컨셉이 뛰어나 현재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회복 이후에 곡을 많이 만들었을 때 무려 앨범 3장 분량의 곡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Relapse 2까지 발매할 계획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2009년 12월, 리패키지인 Relapse: Refill을 발매한다. 독특하고 좋은 곡들이 많고, 특히 King Mathers 시기에 썼던 Careful What You Wish For는 굉장히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리패키지 앨범을 가장 저평가된 앨범으로 뽑는 팬들도 많다. 그리고, 드레이크, 릴 웨인, 칸예 웨스트[50]와 작업한 Forever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데, 다듬어진 톤과 매우 타이트한 라임, 플로우로 다른 세명의 래퍼들 사이에서 자신이 5년 만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최정상에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런 자신감이 가사에도 잘 드러나있다.[51] 그리고 이 앨범을 Relaspe 2의 중간다리로 생각하고, 이 앨범을 들으며 기다려달라는 말도 했다.

2010년 4월 14일, 에미넴은 Relapse 2는 없을 거라는 트윗을 올린다. 재활 치료 후 여러 프로듀서들과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니 방향성이 달라지게 되었고, 아예 다른 이름을 붙이는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2010년 6월, 《Recovery》를 발매한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성찰적이고 감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52], 재활 치료 후 긍정적인 변화, 감정적 추진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찰진 플로우로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Cold Wind Blows, 매우 타이트한 플로우로 떡칠된 No Love 등부터 프루프에게 보내는 You’re Never Over,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Talkin’ 2 Myself & Going Through Changes 등 좋은 곡이 많다. 첫 주 동안 74만 장이 판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했고,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이 앨범은 2010년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2011년 6월, 로이스 다 5'9"Bad Meets Evil을 재결성해 《Hell: The Sequel》을 발매하고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로 데뷔했다. 로이스와의 뛰어난 케미스트리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5월 24일, 내년에 발매할 새 앨범을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2013년 11월 5일, 《The Marshall Mathers LP2》를 발매한다. 첫 주에 79만 장 이상이 팔리며 빌보드 200에서 1위로 데뷔했다. 9번 트랙 Rap God에서 무려 6분 동안 라임과 펀치라인 떡칠, 리스펙과 디스, 계속해서 바뀌는 플로우, 속사포 파트 등을 꽉 채워담아 랩의 정점이 어떤 건지 전세계에 각인시켰고[53] Stan의 후속작인 Bad Guy, 락 사운드와 결합된 Berzerk & Survival, 켄드릭 라마와 함께한 코믹한 Love Game 등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곡이 많다.

2015년 4월 옐라울프의 앨범에 수록된 Best Friend라는 곡에 참여한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곡으로, 빠른 속도로 감정을 쏟아내는 랩을 했다. 프루프에게 보내는 메세지도 담겨있어 감동적이다.

직후 테크나인의 Speedom에 피쳐링으로 참여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정하고 속사포 랩을 컨셉으로 한 곡인데, 에미넴의 파트는 Rap God을 가볍게 뛰어넘는 듯한 속도감을 선사한다. 정신나간 텅 트위스팅과 꽉 채워진 라임으로 귀가 즐거운 랩을 해냈다.

7. Revival & Kamikaze

MMLP2 발매 이후 SHADYXV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냈고, 다시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2017년 12월 15일, 《Revival》을 발매하는데, 최악의 앨범이라는 혹평을 받게 된다. 노래 스타일, 랩 스타일, 정치적 가사, 너무 많은 유명 팝가수 피쳐링 등 혹평이 많았다. 평소 그의 앨범이 평론가 평가는 갈리지만 리스너 평가는 좋았던 반면, 이번엔 양쪽 모두 혹평이었기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더 최악인 것은,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다른 래퍼들까지 이 앨범을 계속해서 까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앨범은 Encore를 넘어 커리어 최악의 앨범으로 꼽히는데, 끔찍한 비트 초이스나 허접한 믹싱 상태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랩이 이상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트랙에서 에미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뚝뚝 끊기는 플로우 & 케이던스로 많은 리스너들을 당황하게 했다. 에미넴은 앨범마다 스타일을 조금씩 바꿔왔고, 직전 앨범이었던 MMLP2도 예전의 물 흐르듯이 쏟아내는 플로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필요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변화를 줬다가 돌아왔다가 자유자재로 랩을 하는 경지에 있었다. 그런데 Revival에서는 그런게 거의 없어서 랩에 흥미를 잃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에미넴이 당시를 회상하길, 닥터 드레와 함께 Revival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는데, 드레가 직접 "이건 좋지 않다"고 말하며 뭔가 해야 한다고 말했고, 본인도 똑같은 생각이라며 뭔가 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Revival 발매 한 달 뒤인 2018년 1월 8일, Chloraseptic (Remix)를 발표하며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다.
"Revival's wack, I don't like the 'Zombie' track
And when he's talkin' that garbage psychotic crap
Where's your content at? What's with all the conscious rap?
P!nk, Beyoncé this and Kehlani that"
I just add it to the fuel in my rocket pack
'Til I'm ready to respond, then I'ma launch it at 'em
Idiotic from the fuckin' embryonic sac to the body bag,
I'll be back and when I am, I'll be at your fuckin' throat like—
Like Chloraseptic

"Revival 존나 구려, 좀비 노래[54]도 싫어,
그리고 쓰레기 정신병자같은 말을 하는 것도 싫어
원래 네가 하던 건 어디 갔어? 이 정치적인 곡들은 도대체 뭐야?
P!nk, 비욘세, Kehlani 좀 봐"
방금 로켓에 연료를 넣었어
내가 응답할 준비가 되면, 그들에게 발사할 거야
태아였을 때부터 괴짜였고, 무덤에 들어가서도 똑같을 거야
난 다시 돌아올 거고, 그땐 네 숨통을 노릴 거야
Chloraseptic[55]처럼
Chloraseptic (Remix) 中
Revival에 대한 무자비한 혹평으로 분노한 에미넴은 오랜만에 전성기 때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랩을 보여주며 새 앨범을 예고했다. 유튜브 리액션들을 찾아보면 생생한 당시 반응들을 알 수 있는데, 이 곡에 대한 평가는 "이게 우리가 원하던 랩이다" "Revival에선 왜 이렇게 하지 않은 거냐"(...) 등이 있었다. 어쨌든 에미넴이 다시 제대로 된 랩을 보여주는 것에 좋아하는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2018년 5월, 로이스의 Caterpillar라는 곡에 피쳐링으로 참여해 또 공격적인 벌스를 쏟아냈는데, Chloraseptic (Remix)보다 더 정돈된 톤과 플로우가 인상적이었다.

2018년 8월, 《Kamikaze》를 예고 없이 깜짝 발매했는데,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트랙이 직설적인 디스로 가득하며, 공격적이고 타이트한 랩이 주를 이룬다. Revival때와 같은 사람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1번 트랙 The Ringer부터 전성기 못지 않은 리듬감과 끊임없는 플로우 스위칭으로 훅 하나 없이 5분 38초 동안 랩 쇼를 보여준다. 중반부에 있는 미친 텅 트위스팅은 덤. Greatest, Lucky You, Not Alike, Fall 등도 살벌한 랩이 계속된다.[56] 그리고 영화 베놈의 OST인 'Venom'이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다.[57] 디스를 위해 급하게 만든 앨범이니만큼 음악적으로 평가가 썩 좋지는 않으나, 좋은 곡이 많이 수록되어있고, 랩 감각에 불을 붙여 다시 정점의 폼을 되찾은 점, 이로 인해 Revival로 돌아선 팬들을 잡은 점 등으로 의미가 큰 앨범이다.

2018년 9월, 머신 건 켈리에 대한 디스곡 Killshot을 깜짝 공개한다. 이 곡은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와 어떠한 동영상 삽입도 없이 오디오만 있음에도 유튜브 업로드 24시간 만에 3,81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2024년 6월 기준 무려 4억 8천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배틀 래퍼로서 살아남았던 에미넴답게 살벌한 뒷조사(?)와 여러 사건사고 레퍼런스, 계속해서 바뀌는 플로우, 마지막에는 퍼프 대디의 투팍 청부살해 의혹까지 언급하며 맛있는 디스곡을 만들어냈다. 사실 머신 건 켈리는 어그로를 끌어 인기를 얻기 위해 수년 전부터 계속해서 에미넴과 그의 딸을 건드려왔고, 이에 에미넴도 Kamikaze의 수록곡인 Not Alike에서 이름을 언급하며 욕을 퍼부었다. 언급돼서 신난 머신 건 켈리는 Rap Devil이라는 디스곡까지 발표해 노를 젓는데, 참다 못한 에미넴이 이에 답한 것이다.

2019년 5월, 자신의 팬인 LogicHomicide에 피쳐링으로 참여해 엄청난 랩 스킬을 보여주었다.

Revival부터 Kamikaze 시기에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에미넴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 시기였다. 그리고, 크게 보면 데뷔 초 전성기 → 약물 중독 시기 → 복귀 후 → Revival까지 목소리 톤과 스타일이 바뀐 것에 이어 한번 더 변화를 겪었고, 이번엔 꽤 큰 변화였다.

8. 2020년대

2020년 1월, 이번에도 사전 예고 없이 《Music To Be Murdered By[58]를 기습 발매해 빌보드 200 차트 1위로 데뷔했다. 7번 트랙 Godzilla가 매우 타이트한 라임 배치와 많은 펀치라인, 통통 튀는 플로우 스위칭, 마지막 속사포 파트, 그리고 주스 월드의 기가 막힌 훅까지 더해져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59] 이뿐만 아니라 개선된 프로듀싱, 현대적인 비트 초이스 등 발전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 앨범이었고, 그 어느때보다 많이 들어가있는 펀치라인들이 돋보인다.

Revival → Kamikaze가 스타일 변화가 컸다면, 이번에는 목소리 톤에서 변화가 컸는데, 목을 덜 긁고 샤우팅을 덜 하는 느낌이며 특유의 비음이 잘 들리게 되었다. 또한 차분하게 뱉는 벌스가 꽤 많아져서 처음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물론 라임 스킴과 플로우 변화는 타이트해서 듣는 재미는 여전하다.

2월에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깜짝 등장해 Lose Yourself 무대를 했다. 나중에 말하길 이때 너무 긴장됐다고 한다. 또 마이크팩이 바지에서 떨어져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2020년 7월, Kid Cudi와 함께 콜라보한 The Adventures Of Moon Man & Slim Shady라는 곡을 발매했다. 최근 들어 자주 사용하는 차분한 톤과 차분한 플로우를 또다시 선보였는데, 예전의 강렬한 랩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리스너들 사이에서 반응이 매우 좋았다. 실제로 레딧 코멘트들을 보면 새로운 에미넴의 스타일에 호평을 보내는 댓글이 매우 많았다.[60]

이후 9월에 Big Sean의 Friday Night Cypher에 피쳐링으로 참여해 비슷한 톤의 벌스를 선보였는데, 좀 더 타이트한 랩으로 레딧 코멘트가 호평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2020년 12월, 《Music To Be Murdered By - Side B》라는 이름의 디럭스 에디션을 발매했다. 무려 16개의 트랙이 있으며, 더욱 개선된 프로듀싱을 바탕으로 아주 좋은 퀄리티의 구성을 보여주었다.[61] 펀치라인으로 도배되어있는 Alfred's Theme이나 플로우 스위칭과 펀치라인, 후반부의 정신나간 라임 배치 등이 인상적인 Book of Rhymes,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Killer, 차분한 톤으로 작정하고 라임 & 펀치라인을 도배한 Gnat 등 좋은 곡이 많다. Relapse 팬들을 위한 Discombobulated라는 트랙도 있다.

Revival-MTBMB를 발매한 시기인 3기의 에미넴은 가사상 순수 힙합의 정신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러한 정서에 따른 앨범을 발매하였다. 원숙기에 발매된 앨범들이니만큼 사회 비판의 비중 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Music To Be Murdered By - Side B 발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미넴은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해당 기간동안 오스카 공연, 슈퍼볼 공연 등 굵직한 공연은 자주 뛰었으나 공식적인 작업 소식이 없어 이제 50대에 접어든 에미넴이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62] 하지만 에미넴은 가사 안에서 은퇴 없이 오래오래 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수 차례 보여줬기 때문에 앨범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2021년, GRIP의 Walkthrough!에 피쳐링으로 참여해 또 미친 래핑을 보여줬다.

2022년 2월, 닥터 드레와 함께 Gospel이라는 곡을 발매했다. 최근의 피쳐링 벌스들과 비슷하게 차분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더 유려한 플로우를 선보였다.

2024년 3월 19일, Jimmy Kimmel Live! 에피소드 중 닥터 드레가 "올해 에미넴이 새 앨범을 발매할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2024년 4월 26일, 이번엔 에미넴이 직접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라는 앨범 제목까지 공개하며 2024년 여름에 발표될 것이라고 알렸다. 세 번째 공백기를 가지고 발매된 앨범이니만큼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루이스 레스토의 인터뷰에 따르면 에미넴이 3년 동안 앨범을 작업했다고 한다.[63]Music To Be Murdered By - Side B 발매 거의 직후부터 작업을 시작한 셈이다.

2024년 5월 31일, 선공개 싱글 Houdini를 공개했다. 노래 스타일과 뮤직 비디오 내용 등에서 알 수 있듯 2002년에 발매했던 Without Me를 오마주한 곡이다. 특유의 거침없는 저격성 가사들과 펀치라인으로 재미있는 곡을 만들었고, 전 세계 여러 차트에서 1~2위를 휩쓸며 자신이 건재함을 재확인했다. 또한, 지난 공백기에도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7천만 명대를 유지했었는데, 이 노래를 내고나서 8500만 명을 돌파하며 전 세계 5위를 차지하는 등 엄청난 롱런을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었다.

2024년 6월 7일, 디트로이트 공연 출연진 중 하나로 무대에 섰다. 신곡 Houdini부터 Sing for the Moment, Welcome 2 Detroit, Not Afraid 등 여러 명곡을 라이브로 소화했다.

2024년 7월 12일,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를 발매했다. 젊은 시절 목소리와 현재 목소리를 적절히 스위칭[64]하기도 하는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고, 앨범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등 유기성이 두드러진다. 논란될만한 가사들이 매우 많아서 평론가 평가는 여느 때보다 안 좋지만 팬들에게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지난 두개의 앨범에 이어 이번에도 엄청난 랩을 선보이며 폼이 여전하다는 걸 입증했다. 특히 고전 셰이디 스타일로 때려박는 1번 트랙 Renaissance부터, 모던 에미넴 스타일의 여유로운 플로우를 보여주는 Habits[65], 유려하게 양쪽 스타일을 오가는 Evil 등 모든 팬들을 만족시키는 앨범이다.

2024년 8월 30일, 자신의 우상 LL Cool J와의 첫 콜라보인 'Murdergram Deux'를 발매했다.


[1] 어렸을 때 매우 가난했던 집안형편, 가정불화, 학대 및 비행경험, 학교에서의 따돌림 및 폭행, 불안정했던 마음상태 등[2] 에미넴의 어머니는 1955년, 아버지는 1951년생이다. 각각 17세, 21세에 에미넴을 본 셈이다.[3]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대도시에 속하긴 하지만 점차 몰락테크를 밟게 된 도시이다. 에미넴이 스타가 된 후 모라토리엄 등 본격적인 몰락을 보여줬고.. 그리고 러스트 벨트 지역 중에서 최악인 지역이다.[4] 백인 저소득층은 사회적 혜택에서도 후순위로 몰리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소득 통계자료를 보면 저소득층 백인 밑에 흑인들이 자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5] 왼쪽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6] 에미넴을 출산했을 당시 만 17세였다.[7] 미시간디트로이트 시의 슬럼가. 다만 태어난 건 미주리 주의 세인트 조지프에서 태어났다. 자란 곳이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의 부촌과 빈촌을 가르는, "8 Mile"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미시간 주 고속도로는 그의 음악에서 자주 언급된다.[8] 에미넴 입장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 자기가 유년시절 겪었던 일이 아버지가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Headlight에서는 아버지의 주장에 대해서 자신은 선인장 밑이라도 찾아다녔을 것이라고 했었다.[9] 이 영향으로 이후에 "My Name Is", "Kill You", "Without Me", "Cleanin' Out My Closet" 등의 곡에서 어머니를 디스하고 욕을 하는 가사를 쓰게 된다. "Without Me"의 "Fuck you, Debbie!" (엿이나 먹어! 데비!)가 대표적이다.[10] 이는 The Slim Shady LP에 수록된 Brain Damage란 곡에서 잘 묘사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귀에서 뇌수가 흘러나왔다"라는 내용을 제외한 전부가 사실이라고 한다. 가사 참고.[11] 후에 Brain Damage의 가사를 문제 삼아 고소했다가 패소했다.[12] 나이가 고작 2개월 차이난다.[13] 1983년 찍은 사진. 왼쪽이 에미넴이고 오른쪽이 로니이다.[14] 실제로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다. 스파이더맨, 퍼니셔 등의 캐릭터의 팬이라고 말했고, 퍼니셔 드라마가 종영되자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더욱이 퍼니셔 만화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자신의 컴필레이션 음반 Eminem Presents: The Re-Up의 표지를 직접 그리기도 하였다.[15] 훗날 에미넴은 아이스 T의 영화에 T와 같이 출연하게 된다.[16] 처음에는 비스트 보이즈의 노래만 듣고 흑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우연히 백인인 걸 알게 된 후에 '백인이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17] Marshall Mathers의 약자인 M&M을 1995년까지 랩네임으로 사용했다가 이후 '에미넴'으로 바꿨다.[18] 참고로 그의 또 다른 자아인 '슬림 셰이디'는 에미넴이 화장실에서 있다가 떠오른 이름이다.[19] 정확히는 18살. 왜냐하면 17살 때 2번의 결석으로 유급결정이 났기 때문. 이 결정은 에미넴이 학교를 그만두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20] 미국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거의 집 한 채만큼의 재산 차이가 난다는 걸 알 수 있다. 괜히 디트로이트 등 자퇴율이 높은 학교의 학생들에게 돈까지 줘가면서 졸업률을 높이려 하는 게 아니다. 출처: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21] Nigga는 흑인들 사이에선 짜식, 새끼, 친구 등으로 쓰이고, 그들끼리 "니가 니가" 거릴 수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흑인이 아닌 다른 인종이 썼다간 욕을 흠씬 얻어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비가 붙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재미있게도, 이후에는 에미넴과 함께 랩을 해서 깊은 친분이 생긴 D12나 흑인 래퍼들은 백인인 에미넴을 친근하게 nigga라고 부르게 되었다.[22]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종차별적으로 느껴질 만한 가사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N-word는 물론이고, '흑인 여자애들은 백인 남친 돈이나 뜯어먹는 X들'이란 가사가 들어있는 곡도 있다. 이후 키드록은 에미넴이 유명해졌을 때 당시 곡들을 듣고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대중에게 큰 의미 없이 장난삼아 쓴 가사일 뿐이라고 변호하기도 했지만, 에미넴 본인은 Encore에 수록된 Yellow Brick Road라는 곡을 통해 '내가 뭘 모르고 인종 하나를 일반화시켰다'고 사과했다. 학창 시절에 흑인 여자친구와 사귀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그 남자와 만난다며 에미넴을 퇴짜놓아서 빡쳐서 쓴 가사라고 한다. '내가 인종 차별을 한 건 잘못이지만 그 전 여자친구가 썅X이라는 건 변함없다'고 한다.[23] 노래나 랩을 한큐에 쉬는 부분 없이 녹음해내는건 상당히 어렵다. 특히나 실력이 여물지 않았던 초기 시절에 억지로라도 자금 사정 때문에 그렇게 하려고 연습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을 요했을 것이다. 특히나 더블링의 경우 절대 혼자 한큐에 넣을 수 없다. 덕분인지 라이브 실력도 상당히 뛰어난 편.[24] 로니는 에미넴이랑 고작 2개월 나이 차이기 때문에 사망 당시 19-20세로 요절한 것이다.[사진] 파일:external/thisisshady.altervista.org/p020_0_00_03.jpg[26] 당시에 아주 귀했던 나이키 신발을 사주기도 했다고 한다.[27] 조나단 로스 인터뷰에서 말하길, 야유를 환호로 바꾸는 데 딱히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물론 농담조로 말하긴 했다.[28] 프루프가 말하길 에미넴은 고등학교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백인이 랩을 한다며 조롱과 무시를 받다가 몇 마디 뱉으니 다들 놀랐다고.[29] 이 때 에미넴은 지역 라디오 방송에 자기 노래가 실리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라디오로 듣기 좋게끔 일부러 잔잔하고 얌전하게 녹음했다고 한다. 그리고 앨범 전체에서 fuck이라는 단어가 단 7번만 나온다.[30] 이 얘기는 후에 "Guts Over Fear"라는 곡에서 에미넴이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31] LA로 가기 바로 전날 밤에 잠을 잘 곳이 없어 쫓겨났던 집 뒤쪽 창문으로 몰래 들어가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32] 상대편의 부정행위에 의해 우승은 아쉽게 놓쳤다. 에미넴이 랩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뒤로 들어가버렸다고 한다.[33] 에미넴은 상대편의 부정행위로 단단히 열이 오른 상태라 쌩 모르는 사람이 테이프를 달라는 부탁에 테이프를 넘겨주지 말까 잠깐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옛다 가져'라는 심정으로 넘겨주었고 그걸 닥터 드레가 듣게 된 것이다.[34] 이 당시의 닥터 드레는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데스 로 레코드를 떠나 자기만의 레이블인 '애프터매스'를 설립하고 컴필레이션 앨범 1개와 나스, AZ 등이 모인 힙합 슈퍼그룹 '더 펌'의 정규 앨범 단 1개만 발매한 상태였다.[35] 사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에미넴이 힙합에서 최정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이라는 이유로 일부 흑인래퍼들에게 그저 게스트(Guest) 취급을 받는 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훨씬 더 심했다는 것이다. 백인이 랩을 한다고 하면 비웃음거리만 되는 시대였다. 실력만 보고 평가한 닥터 드레가 정말 대단한 것.[36] 이 사건(LA 랩 올림픽)은 에미넴의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되었고, 이는 B.o.B의 "Airplane Pt. 2"의 에미넴 피쳐링 부분에서 잘 나온다. 그리고 "I Need A Doctor"에서 드레가 이 상황을 회상하는 랩을 썼다. 모두가 웃었지만 드레는 멋지다고 말했다고 한다.[37] 멤버 중 누구라도 나중에 성공하게 된다면, 나머지 멤버들을 홍보해주기로 약속했었다.[38] 발매 직전 앨범이 통째로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나 판매량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스트리밍도 뭣도 없었던 시대였기에 이러한 전체 유출은 엄청난 타격이었고, 앨범을 구매할 이유가 없어지기에 에미넴은 매우 화가 났었다고 한다. 유출 이후 그 에미넴이 가사집과 추가 DVD 구성을 하고 홍보하는 등 노력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39] 1위는 아델21.[40] 1999년~2002년. 사람에 따라 길게는 2003년까지를 최전성기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41] 빌보드는 2000년대 아이콘으로 에미넴을 선정했다.[42] 8 마일을 촬영하는 동안 스케줄 스트레스와 수면장애로 인해 바이코딘, 발륨, 앰비언, 메타돈을 과도하게 섭취하게 되었고, 이게 중독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당시 수면 시간은 장소를 이동할 때 차 안에서 잠깐 자는 게 전부였고, 이런 스케줄이 계속 이어져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43] 물론 이때의 톤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44] 하지만 딸에게 쓴 "Mockingbird"라는 진지하고 감동적인 곡은 좋은 평을 얻었고 2020년대까지도 인기있는 곡이 되었다.[45] 프루프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같이 함께했던 동료이자, 랩을 할 무대를 계속해서 알아봐주고, 잘 곳이 없을 때 집을 내어주기도 하는 등 에미넴에겐 말 그대로 친형제 그 이상의 존재였다.[46] 인터넷을 뒤져보면 꽤 많은 유출본을 들어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기에 그리 좋은 곡은 많이 없다.[47] 에미넴과 엘튼 존은 지금까지도 자주 연락하는 친한 사이라고 한다.[48] Dr. West라는 스킷 트랙에서 나온다.[49] 하지만 2020년 Discombobulated라는 곡에서 Relapse 팬들을 위해 비슷하게 랩을 하기도 했다.[50] 당시 뜨고 있거나, 이미 전성기였던 호화로운 라인업이다.[51] 여담으로, 릴 웨인과 칸예는 에미넴의 벌스를 듣고서 자신의 벌스를 다시 썼다고 한다.[52] Talkin' 2 Myself에서 잘 드러나있다. 정말 솔직한 마음 속 이야기를 하면서 팬들에게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내용이다. Not Afraid에서도 드러나는데 Relapse는 아쉬운 앨범이라는 걸 인정함과 동시에 팬들에게 그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물러서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 지금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다는 걸 알리는 내용이다.[53] Brainless와 Baby, Groundhog Day 등에서도 신들린 랩을 보여준다.[54] Revival의 17번 트랙 In Your Head[55] 미국의 목감기[56] 다만 Nice Guy와 Good Guy는 이 앨범에 왜 들어가있는지 의문인 자투리 트랙 취급이다.[57] Venom의 뮤직비디오는 10번 트랙 Fall 뮤직비디오 이후 장면부터 시작한다.[58] 이 앨범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동명 음반의 이름과 자켓 커버를 오마주한 앨범으로, 샘플링을 재치있게 많이 사용했다.[59] 사전에 아무런 홍보가 없었던 탓인지 1위는 하지 못했다.[60] 원래 레딧의 힙합 서브레딧들을 살펴보면 젊은 세대가 많기 때문에 최신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에미넴에 대해 혹평이 많은 편이다.[61] 본편도 좋은 평가를 받지만, 평균적으로 사이드B가 조금 더 평가가 좋은 편이다.[62] 하지만 너무 성급한 판단인데 왜냐하면 JAY-Z를 보면 알 수 있는데 2018년 EVERYTHING IS LOVE 이후로 앨범을 낸 적이 없다. 이후 Jay-Z는 은퇴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6년이 넘도록 소식조차 없는 것을 보면 이런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걸 알 수 있다.[63] 물론 Akon 등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에미넴은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가며 작업을 하는 편이고, 특별한 작업이 아닌 이상 밤늦게 까지 또는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3년 내내 매달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오래 준비한 것은 맞다.[64] Renaissance의 초반부처럼 예전 벌스를 재사용한 부분이 조금 있고, 나머지는 지금 목소리로 녹음한 걸 후처리로 변조한 것으로 보인다. 집중해서 들으면 카랑카랑함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예외로 Brand New Dance는 2004년경에 녹음한 곡이다.[65] 선공개 두곡을 제외하고 스트리밍 수가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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