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前 축구인 | ||
<colbgcolor=#f0f0f0> 이름 | 알프레드 프라이슬러 Alfred "Adi" Preißler | |
출생 | 1921년 4월 9일 | |
바이마르 공화국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스부르크 | ||
사망 | 2003년 7월 15일(향년 82세)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f0f0f0> 선수 | 뒤스부르거 SV 1900 (1939~1944) 뒤스부르거 SpV (1944~194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45~1950) SC 프로이센 뮌스터 (1950~195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52~1959) |
감독 | 함머 SpVg (1957) ASSV 레트마테 (1958) 보루시아 노인키르헨 (1960~1962) FK 피르마젠스 (1962~1965) 부퍼탈 SV (1965~1968) 로트바이스 오버하우젠 (1968~1971) 보루시아 노인키르헨 (1971~1973) 로트바이스 오버하우젠 (1974~1975) | |
국가대표 | 2경기 (독일 / 1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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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축구선수 및 축구감독.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대 최다골 기록 보유자이다.2. 선수 경력
뒤스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라이슬러는 뒤스부르크의 팀에서 활동하며 이미 1939년 18세의 나이로 독일 유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독일 국방군에 잠시 차출되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민덴으로 배치되었다. 이 때 도르트문트 출신의 아내를 만났고, 전쟁이 끝난 이 후 아내를 따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한다. 78경기 45골을 기록하며 대활약하고, 엄청난 이적료로 SC 프로이센 뮌스터로 이적한다. 1951년 독일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뮌스터가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게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한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복귀한 이후 알프레드 켈바사, 알프레드 니피클로와 "알페르드 삼총사"라고 불리는 공격진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도르트문트 통산 270경기 174골을 득점했다. 55/56시즌과 56/57시즌 독일 오버리가에서 우승했다.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막스 모를로크에 밀려 중용받지 못했다.
3. 여담
"Grau ist im Leben alle Theorie, aber entscheidend ist auf'm Platz"[1]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이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의 팬샵 외벽에 새겨져 있다.
[1] 인생의 모든 것이 회색일 지라도, 경기장에서만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