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0:40:15

쓰시마마루 -오키나와여 안녕히-

쓰시마마루에서 넘어옴
파일:쓰시마마루.jpg
1. 개요2. 등장인물3. 관련항목


対馬丸-さよなら沖縄
1982년작.

1. 개요


감독은 코바야시 오사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 있었던 쓰시마마루[1] 침몰 사고를 그린 일본 애니메이션.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사고를 소설로 쓴 오오시로 타츠히로 원작 소설을 애니화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44년 8월 21일, 민간인 1,788명을 태우고 대만으로 가던[2] 화물선 쓰시마마루 호가 미해군 잠수함 보핀이 쏜 어뢰에 맞고 침몰해 1,448명이 죽은 사고를 그렸다.

소설을 쓴 타츠히로가 살아남은 이 사고 생존자들을 직접 만났는데 그들은 미군보다 일본군을 욕하고 안타까워하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3] 생존자들은 "1년 동안 숨죽이고 살아야 했으며, 소문이라도 낼까봐 감시도 당했기에 그 1년은 옥살이였다"고 이를 갈았다. 사망자에 아이들도 많고 노약자도 많았기에 온가족을 다 잃고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은 고아원으로 보냈으며, 아이를 잃었음에도 알리지도 못하고 그저 집에서 울음을 참아야 하던 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2. 등장인물

  • 코세이 히요시(具志堅 清) - 주인공. 평범한 소년으로 전함을 동경하고 있었다. 친구와 잘 지내고 있었다가 전함을 타고 본토로 가는 인원을 모집한다는 선생님의 말에[4] 아버지와 어머니를 졸라서 친구들과 쓰시마마루에 탑승했다가 어뢰를 맞고 배가 침몰. 운이 좋게 살아남아서 구조되었으나 친구들은 대부분 죽어버리고 만다. 결국 반쯤 폐인이 되어버렸고 함구령까지 내려져서 가족들에게 아무말도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오키나와 대공습이 터져서 집이 불바다가 되어버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감싸고 즉사해 완전히 정신이 무너지고 만다. 간신히 방공호로 어머니와 함께 살아돌아와서 모두 죽어버렸다며 졀규하며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것으로 끝난다.
  • 히가 켄지(比嘉 健治) - 히요시의 친구. 아버지는 광부. 후반부에 침몰 사건에서 배에서 켄과 함께 뛰어내리지만 익사하고 만다. 홀로 살아남은 켄은 떠내려가는 켄지를 보며 절망한다.
  • 아와네 이사무(阿波根 勇) - 히요시의 또 다른 친구. 후반부에 침몰 사건에서 폭발의 충격으로 튕겨나가 배에 머리를 박아버려서 뇌진탕으로 즉사.
  • 신죠 요코(新城 陽子) - 다른 학교에 다니는 소녀. 후반부에 침몰 사건에서 아주머니의 배려로 간신히 구명정에 올라타 살아남으나 친구들도 모두 죽고 가족들은 행방불명되고 만다. 가족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말에 어차피 죽은게 뻔하다고 시니컬하게 반응하지만 발가락을 절단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에 그래도 용기를 내서 감내하겠다고 말한다.
  • 신죠 타케(新城 タケ) - 요코의 할머니. 후반부에 침몰사건에서 실종되었다. 요코는 죽었을거라고 생각해 체념한다.
  • 신죠 아키오(新城 昭男) - 요코의 오빠. 침몰사건에서 살아남았지만 실명해서 요코조차 무시하고 지나갈 정도로 무너져 버렸다.
  • 신죠 토미코(新城 富子) - 요코의 사촌. 후반부에 침몰사건에서 실종되었다.
  • 미야자토 무네노부(宮里 宗信) - 학교 교사. 사건당시 인솔역을 맡았으나[5] 배가 침몰하여 학생들 대부분이 사망해 좌절한다. 본인도 딸아이가 눈 앞에서 동사하며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을 믿으면서 아이들이 전쟁에 희생당한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계속해서 교육을 해서 더 많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중역이 되도록 만들어 나라를 바꾸겠다고 말한다.
  • 이토카즈 히로코 (糸数 弘子) - 요코의 여담임. 쓰시마마루에서는 의무실의 간호사 활동을 했다. 침몰 사건에서 살아돌아와서 요코를 끌어안으며 죽은 학생들과 요코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무네노부에게 아이들이 희생되는 교육이나 나라는 잘못되었다고 반발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을 가르칠것이라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한다.

3. 관련항목



[1] 참고로 이렇게 생겼다.[2] 참고로 본작에서는 가고시마로 나온다.[3] 화물선이기는 하지만 군사 물자와 군인들도 수송하고 있었고, 민간인이 타고 있다고 표시도 안했다. 옆에 군함들이 호위도 붙어있었다. 미군이 잘못한건 아닌 것.[4] 전황이 불리해지고,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된 1944년부터 국민학교 학생들이나 노약자, 여성을 지방으로 소개 분산시키는 계획이 발족되었다.[5] 오키나와의 열악한 환경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따라갔다가 사고에 휘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