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0:55:34

쇼 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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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hoyano.jpg
이름 Sho Timothy Yano
쇼 티모시 야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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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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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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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출생 1990년 10월 22일 ([age(1990-10-22)]세)
오리건 포틀랜드
학력 미국통신학교[1] (졸업 / 1999)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 (생물학 / B.S. / 2003)
시카고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생물학 / Ph.D. / 2009)
시카고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의학 / M.D. / 2011)
직업 의사

1. 개요2. 생애3. 의사로 사는 이유4. 여담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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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시아계 미국인이다. 그는 9세에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18세에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의사로 재직 중이다. 시카고 의대의 소아과 조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

저서로 "꿈이 있는 공부는 배신하지 않는다"가 있다.

2. 생애

1990년 10월 22일 일본인[2] 사업가 아버지 야노 가츠라와 한국인 어머니 진경혜[3]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출생. 쇼는 생후 2살에 글을 읽을 줄 알았고, 3세에 글을 썼으며, 4세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5세에 작곡을 시작했다. 그리고 표준편차 15기준 IQ 138 이상(비율지능지수 기준 145 이상)만 입학을 허가하는 영재학교인 미리암 학교(Miriam School)에 조기입학했다. 입학 당시 치른 지능검사 결과에서, 쇼 야노는 측정불가 판정(비율지능지수 기준 200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입학한 학교가 영재학교였지만 쇼는 수업을 지루해했고 더 높은 학문을 원하기 시작했다. 월반을 거듭한 그는 부모의 홈스쿨링 지도를 병행하며 8살에 SAT에서 1600점 만점에 1500점을 받고, 9살에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에 입학한다. 당시 쇼 야노는 전미 최연소 대학 입학생으로 주목을 받았다. 간단한 일례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의 나이 또래들이 학교에서 분수와 국가 수도를 배울때, 그는 의대 예과 과정을 준비하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의 건강상태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는 로욜라 대학교에서 4.00 만점에 3.99라는 학점을 받고, 숨마 쿰 라우데로 12살에 학부를 졸업하였다.

곧이어 12세 때 그는 시카고 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University of Chicago Pritzker School of Medicine)에 진학해 생물학 박사과정과 의학박사 과정을 동시에 이수하는 메디컬 사이언티스트(M.D/Ph.D)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 역사상 최연소로 생물학 박사(18세, 분자유전학과 세포학 복수전공)을 했으며 21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카고 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소아신경과 수련의 과정을 밟은 뒤 의사가 되었다.

3. 의사로 사는 이유

일본계 아버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가정이라 미국에서는 아시아계는 자식의 입신양명에 매달려 아이를 혹사시켜서 성적만 올린다는 편견에 기반한 아이를 잡아서 키웠다는 오해가 있었다. 그러나 집안에서 어머니와 사회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는 등 쇼 야노의 집안은 교육열이 있는 집안은 맞기는 했으나, 단순히 좋은 직장이나 학력을 위해 공부하는 것은 평정심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듣고 살고는 했다. 이는 자신의 성취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 중요하다는 관념에서 있던 생각이다.

그는 의학과 과학이 자신에게 맞는 옷이었기에 '사람을 돕는다'는 목표를 의사가 됨으로써 이룰 수 있겠다고 여겼다. 나치에 부역했던 의사 등 비도덕적인 의사도 얼마든지 있어서, 의사라는 직업 이름 자체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기에 의사라는 직업 자체보다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가 의사를 택한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졸업 후 시카고 대학 부속 병원의 소아과 전공의가 된다는 것이 그의 극단적인 엘리트 루트에 비해 수수한 진로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자신이 노벨상이나 연구같은 명성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연구실에 틀어박히는 것 보다 환자를 만나 직접 진단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필요하다면 질병 치료를 연구할 수도 있겠지만, 의사는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이유는 기독교비정상이다. 쇼의 말에 따르면, 의사는 개인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있어도 병자가 나오면 진단의무를 가진 공인이기도 하다. 개인으로서의 쾌락과 이익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쇼 야노 자신의 방식이란 것이다.

그는 의사를 '비정상 사회인"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일반 사회의 일원이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자로서 그 존재가 특별하며, 일반 사회인과 다르다는 것이다. 금욕이라고 하면 금욕, 바보라고 하면 바보같다고 하겠지만 쇼 야노는 남을 진찰하고 구원하는데에서 흥미를 느낀다.

쇼는 처음에는 외과를 지망하려다가, “2010년 연말에 시카고의 라라비다병원에서 일하다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의사와 간호사, 병원측이 협력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소아신경과로 정했다”며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의 경우 제 때 치료를 하지 못하면 때를 놓치게 된다. 어린이들의 병을 고치며 연구도 하며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 2024년 현재 실제로 대학 강단에 서면서 연구도 하고 아이들을 고치고 있다.

4. 여담


  • 어릴적부터 피아노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3세에 프레데리크 쇼팽을 들은 후 즉흥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쇼 야노는 5세 이래로 29개의 피아노곡을 작곡했으며 그 중 한 곡은 울고 있는 여동생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음대에 진학시키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밝혔다.
파일:sayuriyano.png

5. 같이 보기


[1] American School of Correspondence. 원격 교육 중등 학교[2] 정확하게는 오키나와 출신이다.[3] 자녀교육법에 대한 저작 활동과 강연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