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7:44:14

손침

손자통에서 넘어옴
의 군권 1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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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의 승상(丞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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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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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綝
손침
작위 영녕후(永寧侯)
최종직위 승상(丞相) 겸 형주목(荊州牧)
성씨 (孫) / 고(故)
(綝)
자통(子通)
출생 231년
양주(揚州)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사망 258년 12월 8일 (향년 27세)
승상 재임기간 258년 10월 21일 ~ 258년 12월 8일
{{{#!folding 가족관계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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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부 효의왕 손종(孝懿王 孫鍾)
종증조부 시조 무열황제 손견(始祖 武烈皇帝 孫堅)
재종조부 태조 대황제 손권(太祖 大皇帝 孫權)
재종조부 장사환왕 손책(長沙桓王 孫策)
재종숙 폐제 손량(廢帝 孫亮)
재종숙 경황제 손휴(景皇帝 孫休)
증조부 손정(孫靜)
조부 손고(孫暠)
아버지 손작(孫綽)[1]
작은아버지 손공(孫恭)
종형 손준(孫峻)
형제 손거(孫據), 손은(孫恩), 손간(孫幹), 손개(孫闓) }}}}}}
1. 개요2. 생애
2.1. 집권2.2. 최후
3. 평가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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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황족으로 는 자통(子通)이다.

손견의 아우인 손정의 증손자며 손준의 사촌 동생으로 손은의 형이다. 할아버지는 손호, 아버지는 손작이다.[2]

2. 생애

2.1. 집권

후사가 없던 손준의 사촌동생으로 뒤를 이어 정권을 장악했다.

처음에는 편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손준이 죽자 그에게 뒷일을 부탁받아 시중, 무위장군이 되어 중앙과 지방의 모든 군사를 총괄했다. 손준을 대신해 조정의 정사를 주관했는데 여거는 이를 듣고 분하고 두려워하여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했으며 등윤과 함께 손침을 폐출하려 했다. 손침은 손준의 북정군을 되돌려 여거를 공격해 자살하게 했으며 등윤과 여거의 삼족을 멸했다.

그 후, 대장군에 임명되고 가절을 받았으며 영녕후에 봉해졌는데 손침은 자신의 존귀함에 의지하여 매우 오만했으며 항상 무례하게 행동했다. 손준의 당제이자 제갈각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한 손려는 손침 집권 후 대우가 얕아지자 장군 왕돈과 함께 손침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의 진동대장군 제갈탄사마소 정권에 대항하여 거병하고 오나라에 투항을 청하자 손침은 문흠, 당자, 전단, 전역, 주이 등에게 병사 3만 명을 주어 구원하게 했으나, 이들이 오히려 참패하여 손침은 큰 원망을 샀다.

손침은 황제 손량이 정무를 본 이래로 많은 힐문을 받게 되어 두려워했다. 당시 손량은 큰누나 손노반, 장인 전상과 그의 아들 전기, 장군 유승과 함께 손침을 죽일 모의를 세웠는데 전상은 손침의 사촌 누나였던 자신의 부인에게 이 음모를 알렸다. 전상의 부인은 손침에게 알렸고 손침은 결국 손량을 폐출하고 반대하는 신하는 죽이고 일족은 유배보냈으며 손권의 여섯째 아들 낭야왕 손휴(孫休)를 황제로 세웠다.

득의양양해진 손침은 오자서의 사당을 불태우고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참수했다. 손침의 네 아우가 모두 후작에 임명되었고 모두 근위군을 관장하여 손침 집안의 권력은 천자를 기울게 할 지경이었다.

2.2. 최후

손침은 손휴를 허수아비로 여긴 듯 하지만, 손휴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손침의 권력이 대단했으나 손휴는 어떻게든 권위를 되찾고자 했다. 손침과 손휴가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니 손침은 무창으로 나가기를 원했다. 손휴는 이를 허락하였으나, 장군 위막이 손침이 밖에 있으면 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으며 무위사 시삭은 손침에게 모반의 징조가 있다고 했다.

마침내 영안 원년(258년) 12월 8일, 건업에서 연회가 있었는데 손휴는 여기서 정봉, 장포 등과 함께 손침을 치기로 한다. 그런데 이날 태풍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모래가 날리자 손침은 왠지 불안하여 병을 핑계삼아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휴가 사자 10여 명을 보내자 황제의 명령이라 할 수 없이 나섰다.

심복들도 뭔가 불안하니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손침은 사양할 수가 없다면서 미리 군대를 정비하고 관소에 불을 질러 신호하라고 일러놓았다. 손침이 궁궐에 온지 얼마 안되어 관소에 불이 나자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손휴는 밖에 군사들이 많은데 왜 나서냐고 말렸다. 그리고 손침이 기어이 나서려고 하자 정봉과 장포는 곁에 있는 자에게 눈짓하여 손침을 사로잡게 했다. 이에 손침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이 때 손휴와 손침의 대화가 압권이다.
손침: "원컨대 저를 교주로 유배보내 주십시오."
손휴: "경은 어찌하여 등윤과 여거를 유배보내지 않았는가?"
손침: "그럼 원컨대 저를 관가의 노비로 만들어 주십시오."
손휴: "경은 어찌하여 등윤과 여거를 관가의 노비로 만들지 않았는가?"

손휴는 손침의 목을 베고 그의 삼족을 멸했으며 손준의 무덤을 파헤쳐 인수를 빼앗아 관을 부쉈다가 다시 묻었다.[3] 이는 손노육 등을 죽인 죗값으로 그 외에 손준과 손침에게 죽은 제갈각, 등윤, 여거 등은 모두 사면되어 이장되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 손준과 손침이 같은 황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황실 족보에서 삭제해 그들에게 손씨 성을 없애 (故)를 붙여 고준(故峻), 고침(故綝)이라 불렀다.

3. 평가

峻、綝兇豎盈溢,固無足論者。
손준과 손침은 흉악한 행실이 가득하여, 본래부터 논할 가치도 없는 이들이다.
진수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오서 제갈등이손복양전〉 끝에 손준과 손침에 대해 흉악한 행실이 가득해 본래부터 논할 가치도 없는 자라고 깠다.[4] 아예 고침(故綝)이라고 해서 손씨 가문 족보에서 빼버린 수준인데 손준도 집권후에 평판이 좋진 않았으나[5] 손침은 아예 멀쩡한 황제까지 폐위시켜 버렸다. 손휴가 괜히 손침을 거꾸러 뜨린 후 역률에 준하는 죄로 죽여버렸겠는가?

어찌나 수치스러웠는지 손준, 손침 일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손휴 입장에선 황실의 수치라며 이들의 이름을 묻어버렸다. 특히 손침은 합법적으로 황위를 계승한 황제를 폐위했고, 자기가 옹립한 새 황제를 상대로도 역모를 꾸민 역신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니 '아무리 남들 다 한 정적제거라도 손침이 합당한 이유로 진행했나?' 한다면 의문이 들수 밖에 없다. 제갈각이 섭정하던 시절 동흥제 전투로 한창 나라의 권위가 잡히던 시절을 제외하면, 이들 형제의 시대를 거처, 손휴, 손호 시대까지 손오의 중앙 정치가 혼란한 상황이었는데 당연히 이들은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이 형제들의 열전을 왜 '제갈등이손복양전'으로 넣고 그들이 제거한 제갈각이나 손휴 시절의 난신 복양흥과 같이 넣었는지 생각해보자, 제갈각도 합비 신성에서 20만 꼴아박기 전에는 제정신이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손침이 제갈등이손복양전에 나온 인물들 가운데 가장 정치적 정당성이 떨어지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해당 열전에서 다루는 손침 외 인물들. 그러니까 제갈각, 등윤, 손준, 복양흥은 엄연히 선대 황제로부터 정식으로 보정의 권한을 받은 신하들이다. 반면 손침의 경우 보정대신이긴 하나 일개 신하인 손준으로부터, 그것도 갑작스러운 중병에 걸려 오늘내일 하는 사람이 죽기전에 표를 올려서 보정으로 삼으라고 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정직에 오른 인물이다. 애초에 미치지 않고서야 보정을 세습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손준 정권 당시에는 군말없이 손준에게 협력했던 이들이 이렇게 정치적 정당성이 불분명한 손침에게 칼을 겨눈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당한 선제 손권의 보정대신인 등윤여거부터가 그랬고, 편장군에 제수된 것 외엔 이전에 뭘 한게없는 손침과 달리 제갈각을 제거하는 등 손준의 권력획득에 공헌한 손려가 그랬으며, 심지어 황제 손량이나, 손씨 황실과 외척 전씨 일가의 징검다리인 손노반도 그러했다. 결국 손준 집권 당시에는 조용했던 손량이 굳이 손노육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 죽은 손준과 누나 손노반을 공격하는 척하며 실은 손침을 공격했다거나[6], 매일같이 손침을 힐난하면서 그의 권력을 꺾으려 했다거나, 기어이는 손침을 주살하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연유로 볼 수 있다. 즉 손오 정권의 권신들 가운데 제일 역적에 가깝고 정치적 정당성이 없는 인물이 누군가하면 바로 손침인 것이다.

이러다보니 손침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무리수를 들 수 밖에 없었고 손휴를 옹립하고 나서도 스스로 손휴 곁을 떠나 무창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주지육림이라도 만들어보고 싶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이미 국정을 농단한 쿠데타 세력인데도 멍청하게 본인 스스로 황제의 곁을 떠났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손침과 손휴가 서로를 두려워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애초에 손침의 집권 정당성이 떨어지니 손침 입장에선 일단 신변의 안전 문제가 가장 와 닿는 화두였던 듯 싶다. 사실 손휴는 자신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내세운 얼굴마담 정도였는데 실권을 장악한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바지사장 손휴가 무서워 곁을 떠난 걸 보면 손침이 얼마나 명분적으로 불안정한 처지에서 실각을 두려워 했는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천성이 겁이 많고 정치적 지능도 많이 떨어지는 인물로도 손침을 볼 수 있는 대목인데, 아무리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이 떨어진다기로서니 자신의 권력이 황제를 겁박하는 데서 나온다는 단순한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막장이긴 하지만 손준이 일신의 무용과 일정 수준의 지능, 최소한의 정치 센스는 갖춰 적어도 생전엔 자신이 거머진 권력을 어찌어지 유지했다는 점[7]을 보자면 손침은 더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집권했을 때 만 25세, 죽었을 때 만 28세[8]로, 단명이 많던 오나라에도 꽤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권력을 휘둘렀다. 손책처럼 건국단계도 아닌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시점에서 이런 인간이 날뛴 것은 오나라 정치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4. 미디어 믹스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Sun_Chen_(1MROTK).webp 파일:external/kongming.net/010-Sun-Lin.jpg
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533.jpg
삼국지 12, 13, 14

능력치는 백하팔인 수준까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매우 낮은 능력치를 가지고 나온다. 다른 건 다 백하팔인 수준으로 바닥인데 지력만은 그래도 60대를 찍는 정도. 사촌 형 손준과 마찬가지로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9/무력 40/지력 59/정치력 8로 처참하지만 투함 하나는 해전에 유용하다. 그 이외의 병법으로는 모략계 병법인 혼란, 책략계 병법인 매도를 가지고 있다. 의리가 0이라서 다른 손씨보다 아군으로 만들기 쉽기도 하다. 문제는 야망도 15라서 배신이고 독립이고 뭐든지 무시무시할 만큼 잘 한다는 거...9에서 딱 4명(손침, 공손연, 동탁, 원술)뿐인 독보적인 수치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5/무력 40/지력 65/정치력 8/매력 6으로 총합이 144밖에 안 된다. 특기가 4개로 상업, 혼란, 위압, 간첩인데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느낌이다. 특히 정치력이 8밖에 안 돼서 상업 특기가 의미가 없다.

삼국지 11에서도 능력치가 안 좋다. 가장 높은 지력이 65에 능력치 합이 141. 손준은 그래도 가장 높은 무력이 70이라도 되는 반면 손침은 그야말로 답이 없고 처형당할 때의 대사도 답이 없다.
기, 기다려, 부탁이다! 이제 두번 다시는 저항하지 않겠다. 기, 기다려........으악!

삼국지 12에 나온 그의 일러스트는 매우 간사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손을 턱에 올리고 있다. 손준과 더불어 일러스트에서도 대우가 좋지 않은 편. 근데 전법이 쓸만한 전공성강화다. 지력도 65이라서 약간이나마 쓸 만하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8/무력 55/지력 65/정치력 17. 특기는 수영 4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수영으로 전법은 창병수비진이다. 사촌 형 손준과 마찬가지로 관리 음성으로 들리는데 거슬린다면 PK를 할 때 난폭 음성으로 변경해주자.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28, 무력 46, 지력 65, 정치 17, 매력 6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0, 무력이 9 하락했다. 개성은 징세, 공명, 악명, 탐욕, 주의는 아도, 정책은 지세연구 Lv 2, 진형은 봉시, 전법은 도발, 구축,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등윤, 손일, 여거, 왕돈, 주거가 있으며 PK에서는 난폭 개성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혐오무장에 주거가 있는 것은 상당히 고증오류인데 정사에서 손침은 주거의 인척이라 혐오관계를 잘못 설정했다. 차라리 손노반, 전단, 전역 형제가 대신 들어갔다먼 고증이 적절할 것이다.

4.2. 삼국전투기

사촌형인 손준이 폭주형제 렛츠&고의 세이바 레츠로 나와서 동생인 세이바 고로 나왔다. 덤으로 손준과 손침이 세이바 형제로 패러디된 건 폭주를 했기 때문으로 즉 막 나갔기 때문이다. 전투외편 5-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고, 소개컷에는 최고위에 오를 건덕지라도 있던 손준과 달리 정말 아무것도 없이 사촌형빨로 오나라의 최고위에 올랐다고 서술되어 있다.

합비신성 전투 막바지에 처음 등장. 제갈각을 주살하고 정권을 잡은 손준이 간만에 폭주 한 번 해 볼까 묻자 "그래야 내 형이지!"라고 답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본격적인 등장은 전투외편 5편부터로 손준 사후 그의 뒤를 이었다고 묘사되었다. 여거 등이 손침을 꺼려 등윤을 승상으로 추천하려 하자 손침이 선수를 쳐 등윤에게 대사마 자리를 주고 무창으로 날려버리려 했다고 언급되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여거가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손려로 하여금 막게 하고 당자와 문흠을 뒤따라 보낸 뒤 등윤에게는 화융과 정안을 보냈다. 여거군이 최강이라는 건 손침도 알고 있었기에 손침은 등윤 등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고 상표하고 정봉을 부를 것을 손량에게 요청했으며, 이후 포위당한 여거가 자결하고 등윤도 토벌에 성공하면서 결과적으로 손침의 승리로 일이 종결됐다고 묘사되었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제갈탄이 난을 일으키고 구원을 요청하자 손준은 관구검 때 단독으로 움직이다 재미를 못 봤지만 자신은 제갈탄과 손을 잡아 작은 투자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라며 이를 반겼다. 그리하여 문흠, 당자 등을 수춘에 파견시키고, 반란 토벌을 위해 무창에 보냈던 주이의 3만 병력을 안풍으로 올리며 수춘을 포위하던 왕기와 진건을 역으로 몰아세우게 했다. 그러나 주이가 패전하여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손침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질 수도 있는 거라며 주이에게 다시 5만 병력과 정봉까지 붙여줘 다시 한 번 싸워보게 했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주이는 또 졌고, 이번 전투를 계기로 입지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던 손침 입장에서도 환장할 노릇이었기에 추가병력을 다시 보내 지원을 하려 했지만 자신감이 꺾인 상태였던 주이가 명령을 거부하자 손침은 주이가 자신을 능멸하려는 것이라 생각하여 주이를 회견장에 불러서 죽여버렸다.

전투외편 6편에서는 수춘에서의 패배와 주이를 죽인 것 때문에 손량에게 문책을 받고 자기 아지트에 짱박혔다고 묘사됐다. 제갈각이 비슷한 상황에서 적반하장격으로 전횡을 부리다 훅 간 것을 알기에 일단 굽히고 들어갔다고 묘사되었다. 이후 손량이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정보를 사촌누나였던 전상의 아내에게서 전해듣고 분노해 선수를 쳐 전상을 억류하고 유승을 제거한 뒤 궁을 포위해 손량의 계획을 좌초시키고 손량까지 그대로 폐출시켰다.

손량을 폐출시킨 이후 차라리 자기가 제위에 오를까 잠시 고민했지만 우사의 반대로 그냥 당초 계획대로 손휴를 제위에 올렸다. 전임 황제를 날려버린 이후로 그의 자신감이 극에 달해 누가 자신의 위에 있는 꼴을 보지 못하여 절을 불태우고 승려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손침은 충신 코스프레도 할 겸 황제에게 술과 고기를 보내는데, 손휴가 이를 사양하고 돌려보내자 분노해 장포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역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손휴는 손침의 비위를 맞춰 주려고 계속 노력했지만, 손침은 손가 중에 저렇게 빌빌거리는 인간을 본 적이 없었기에 역으로 위화감을 느끼며 손휴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이 때문에 손침은 그냥 무창으로 튀어버릴 생각을 했고, 그리하여 손휴에게 무창 방어 강화를 구실로 자신이 거기 주둔하겠다고 한 뒤 정예군사 1만과 동쪽 무기고의 병기를 전부 가져가게 해 줄 것, 무창 도착 시 자신이 형주의 군무를 전부 관장하게 할 것 등을 요구했다. 손휴는 손침의 부탁을 전부 들어주고 자신도 부탁이 있다고 말한 뒤 손침을 신년회에 초대했다.

손준이 제갈각을 연회자리에서 죽인 게 불과 5년 전. 당연히 뭔가 있을 거라는 것을 눈치챈 손침은 연회에 불참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부탁인데다가 자기가 해 달라는 걸 황제가 다 들어준 뒤였기에 뺄 방법이 없었다. 손침은 병을 핑계로 빠지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황제에게서 10여차례나 참석 재촉이 날아오니 결국 손침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손침은 그래도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고자 휘하 병사에게 자신이 입궐하면 승상부에 불을 지르라고 명했다. 승상부에 화재가 났다는 것을 구실로 연회에서 빠질 계획을 짠 것. 실제로 손침의 수하가 제 때 승상부에 불을 질렀지만 손휴가 끌어들인 정봉에 가로막혀 연회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손침은 어떻게든 목숨만은 건지고자 오지라도 좋으니 유배를 보내 달라 노예로 써먹어 달라 애원했지만 손휴에게서는 그럼 왜 등윤과 여거에게는 그리 하지 않았냐는 대답만이 돌아왔고, 결국 손휴에 의해 목이 날아가고 성까지 고씨로 갈렸다.

같은 시기에 종친으로서 권력을 잡아 꼭두각시 황제를 농락한 조상과 동일한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사실 둘의 행적을 비교하면 조상에게 실례다. 조상은 적어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마음대로 황제를 쫓아내지도 않았다.[9]

손휴가 손침을 주살한 후 역사대로 손준과 손침을 고씨로 개명시키지만 그냥 고씨라고만 나와 단순히 원래 있던 고(高)씨로 개명시킨건지, 아니면 원래대로 고()씨로 개명시킨건지 이 만화만 봐서는 알 수 없다.

[1] 안민도위(安民都尉)직을 역임하였다.[2] 손준의 아버지는 손공이다.[3]삼국지연의》에서는 부관참시를 해서 목을 베었다.[4] '제갈등이손복양전'은 위서의 '왕관구제갈등종전'과 촉서의 '유팽요이류위양전'처럼 뒤끝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을 한데 묶은 열전들이다.[5] 손준도 사후 손침에게 권력을 물려주지 않고 적당히 손량에게 돌려줬으면 역적 취급 당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법도 있었을 것이다.[6] 이 사건은 손량이 누나 손노반의 악행을 들췄다고도 볼 수 있지만 실은 손노반의 말을 듣고 그냥 그녀를 용서하면서 손침을 공격하는 용도로 이 사건을 사용한 점이나, 나중에 손노반과 함께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꾸민걸로 봐선 애초에 손량의 타겟은 손노반이 아니라 손침 쪽임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죽은 주씨 일가가 손준, 손침 일가와 인척관계였기 때문이다.[7] 손침과 더불어 같은 열전에 실려 비판받는 손침의 사촌형 손준만해도 사서에 "어려서부터 궁마에 뛰어났고 예리하고 용감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애초에 손준은 능력이 있었기에 손권이 마음에 들어했었고, 또 제갈각이 멀쩡할 때는 손권에게 추천하였고 나중에 그 제갈각이 막나가버렸을 때는 본인이 직접 칼을 뽑아들고 숙청한 것을 보면 판단력과 결단력이 나쁜 건 아니었다. 거기다 제갈각을 죽일 때 그를 호위하던 측근 장약에게 칼을 맞았음에도 손수 참살한 걸 보면 나름대로 개인의 무력까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손화나 기타 인물들에 대한 숙청으로 악평을 받기는 하지만 손침에 비하면 크게 나라를 말아먹은 인물은 아니었던 점도 크다.[8] 죽은 날이 양력으로 259년 1월 18일이다.[9] 비교적 악행이 덜한 것도 있었지만 조상이 몰락했을 당시 가문의 제사를 빌미로 죽이면 안 된다고 만류하던 대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