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1:28:40

서건창/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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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LG 트윈스 1기
3.1. 2008 시즌3.2. 2009 시즌
4. 넥센-키움 히어로즈 시절5. LG 트윈스 2기6. KIA 타이거즈7. 국가대표 경력8. 연도별 성적

1. 개요

KIA 타이거즈 소속 내야수 서건창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external/50a531568a232cebf93c2d42d6614e01fe64b89216b092859813d80832263b30.jpg
파일:9puL9pb.jpg

광주일고 시절에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유격수였으나 어깨 부상 이후로는 2루수로 전향한다. 고교 시절의 평가는 공, 수, 주를 두루 갖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 2학년이던 2006년에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1학년 때부터 테이블세터를 맡았고 3학년 때는 주로 3번 타순에 출장했다. 광주일고 1학년이던 2005년에 팀이 우승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2번 타순에 출장하며 당시 1학년 타자 중에는 유일하게 두각을 드러냈다.[1] 상기 사진의 주무대인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와의 대혈전 끝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2]

괜찮은 평가를 받던 선수라서 한 때 연고팀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감으로도 꼽혔고,[3][4] 지명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2008년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된다. 야구선수 치곤 작은 176cm의 키와 어깨 부상 경력 때문으로 추정.

3. LG 트윈스 1기

3.1. 2008 시즌

파일:external/www.hani.co.kr/lg.jpg
1군 등록 당시 인터뷰 LG 1군 경기 당시 촬영된 모습.

대학교 진학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LG 트윈스신고선수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5] 때문에 애초부터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고려대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양승호 감독이 스카우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홀어머니 혼자 또 4년을 벌게 할 수 없다고 프로로 바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발목을 잡았던 어깨 부상 때문에 이렇다 할 활약없이 2008년에 단 1경기에[6][7] 나왔다.

3.2. 2009 시즌

1군 출전 없이 부상으로 방출당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결국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접는가 싶었다.

4. 넥센-키움 히어로즈 시절

파일:서건창준PO동점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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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LG 트윈스 2기

파일:LG서건창ㅇㅅㅇ.jpg

시즌 중반 올림픽 브레이크 기간인 7월 27일 LG 트윈스정찬헌과의 1대1 트레이드가 확정되었다.# 서건창은 시즌 전에 연봉을 자진 삭감하며 키움을 떠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내보였고 제이크 브리검, 안우진, 한현희가 한꺼번에 이탈해 선발투수가 반드시 필요했던 키움은 어차피 몇달 뒤에 놓치느니 지금 보내는 길을 택했다. 한참 전부터 2루수 포지션 보강으로 시끄러웠던 LG는 이번 시즌 우승을 위해 FA를 앞둔 서건창을 과감히 영입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트레이드.

그렇게 2009년 이후 12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방출당했던 12년 전과 반대로 LG에서 필요하다며 모셔온, 그야말로 금의환향을 하게 되었는데 과연 LG의 선택이 옳았을지 주목된다.

또한 이번에 트레이드 상대가 된 정찬헌은 과거 서건창이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한 2008년 당시, LG에 서건창을 강력 추천해 신고선수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었던 절친 사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
먼저 많이 놀라셨을텐데 팬분들께 마지막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10년 넘게 제가 히어로즈라는 팀에 있으면서 제가 잘할 때나,못할 때나,기쁠 때나,슬플 때나 함께 호흡하고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고,사랑해 주셨던 그런 마음들을 어딜 가서 나 잊지 않고 마음 한편에 담아두겠습니다. 어딜 가서 잊지 않고 마음 한편에 담아두겠습니다. 야구선수의 본분을 잊지 않고,야구를 열심히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팀에 가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고 팬분들이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건창 -
키움 히어로즈 공식 유튜브

2021년 KBO 리그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으면서 바닥을 치던 키움 팬층이 동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한국 야구팬들은 필요하다면 프랜차이즈고 MVP출신이고 재깍재깍 팔아버리는 MLB식 운영에 거부감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팬들이 페이롤이나 구단의 재정상황에는 관심이 별로 없기도 하고, 소위 '성골'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집착도 MLB보다 큰 편이라 팬들의 성향에 따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크다.

그래도 사실 서건창이 프랜차이즈만 아니었다면 트레이드 자체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락세가 완연하고, 잔여 서비스타임이 적으며, 팀내 고연봉자고, 포지션 활용도도 애매한 데다, 팀을 떠나겠다는 의지까지 보인 선수를 그대로 끌고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

여담이지만 트레이드 직후 에이전트발 기사로 추정되는 언플용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보낸 키움 측도, 받아들인 LG측도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상징성은 다르지만 역시 똑같은 팀 프랜차이즈였던 정찬헌은 담담히 새 팀에 도움이 되겠다는 인터뷰를 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 연봉을 깎아가며 팀을 여차하면 나가겠다는 행보와 대치되는 언플, 반대로 새로운 팀에서 자꾸 전 팀을 그리워하는 듯한 언행은 양측 팬덤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할 일인것이 당연하다.

5.1.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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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커리어의 하락세의 시작. 트레이드 이전부터 조짐이 보였으며 트레이드 이후 평균 하락이 완연해졌다.

5.2.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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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부진했던 2021년을 능가하는 시즌. 통산 타율 3할도 이 해 무너졌다.

5.3.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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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능가하는 개인 최악의 커리어로우 시즌. 2루수 경쟁에서 김민성신민재에게 완전히 밀려났다. 연봉을 무려 2억 원이나 받으면서도 지명타자로 나와 2할밖에 못 치며 비호감만 잔뜩 적립해 LG팬들에게 조롱거리를 넘어 아예 팀 선수로 취급도 못 받는 비참한 신세가 된 시즌이었다.[8] 시즌 후 2차 드래프트에서도 아무 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결국 방출되었다.

6. KIA 타이거즈

2024년 1월 15일에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와 연봉 보장액 5천만원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나왔다.링크[9] KIA 관계자는 경험이 풍부한 서건창 선수가 팀 내 젊고 유망한 내야수들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번 영입을 결정했다고 영입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서 김선빈[10] 선수와 함께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며, 고향팀에서 부활해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게다가 KIA엔 서건창의 키움 시절 코치였던 심재학 단장과 조재영 주루코치가 있고, 동료였던 손승락도 퓨처스 감독으로 있고 고종욱, 주효상도 있기 때문에 팀 적응에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에는 친정팀인 키움 히어로즈에서 먼저 서건창에게 접근했으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나 활용 계획 등을 언급하진 않았기 때문에[11][12] 서건창 본인도 입단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워서 고민하던 중에 KIA에서 손을 뻗었다고 한다. #

일단 KIA 팬들의 반응은 썩 나쁘진 않은데 김선빈과의 재계약을 성공해서 주전 역할이 아닌 김선빈 백업 역할 정도만 맡을 것임이 분명한 상황인 데다[13] 연봉도 5천만원으로 나름 저렴하고 거기다 광주 출신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6.1. 2024 시즌

파일:KIA 타이거즈 서건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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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국가대표 경력

7.1. 2017 WBC

파일:서건창WBC.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rowcolor=#fff> 출전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볼넷 상세
3 14 4 1 0 0 3 1 0.286 0.333 0.357 0.690 1 2 1 -
이스라엘전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네덜란드전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대만전 9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6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8.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서건창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08 LG 1 1 0 0 0 0 0 0 0 0 1 .000 .000 .000 .000 - 0.01
2009 1군 기록 없음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2 넥센-키움 127 501 115 21 10
(1위)
1 70 40 39
(2위)
45 43 .266 .342 .367 .709 102.9 3.51
2013 86 372 84 13 2 0 53 18 26 33 29 .266 .352 .320 .671 85.5 1.72
2014 128
(1위)
616
(1위)
201
(1위)
41
(1위)
17
(1위)
7 135
(1위)
67 48
(3위)
59 47 .370
(1위)
.438
(4위)
.547 .985 150.9 7.63
(2위)
2015 85 368 93 24 4 3 52 37 9 42 24 .298 .381 .429 .810 105.8 1.51
2016 140 646 182
(5위)
30 7
(4위)
7 111
(5위)
63 26 69 58 .325 .406 .441 .847 116.6 4.46
2017 139 615 179
(3위)
28 3 6 87 76 15 67 68 .332 .403 .429 .832 118.3 4.20
2018 37 160 48 12 0 0 28 15 2 12 19 .340 .399 .426 .824 112.0 0.66
2019 113 486 128 23 3 2 67 41 17 49 50 .300 .373 .383 .755 112.9 2.36
2020 135 595 134 28 5 5 79 52 24 91
(1위)
58 .277 .390 .386 .776 112.0 2.23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21 키움/LG 144[14]
(1위)
600 130 24 2 6 78 52 12 69 77 .254 .350 .344 .694 94.8 2.83
2022 LG 77 247 49 10 1 2 39 18 8 20 44 .224 .299 .306 .605 73.4 0.28
2023 44 126 22 5 2 0 14 12 3 10 14 .200 .260 .282 .542 45.7 -0.46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24 KIA
<rowcolor=#373A3C> KBO 통산
(13시즌)
1256 5333 1365 259 56 39 813 491 229 566 533 .297 .378 .403 .781 110.8 30.85


[1] 참고로 광주일고가 2005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할 당시 3학년 멤버로는 강정호(우수투수상 및 최다타점상), 나승현(MVP), 김성현(최다안타상 및 최다득점상), 2학년 멤버로는 김남석, 김강(수훈상 및 타격상)이 있다. 강정호와 서건창 이 둘은 넥센에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다시 만났으며, 2012시즌 나란히 골든 글러브를 받고 2014시즌 신기록을 쏟아내며 리그를 평정했다.[2] 정찬헌, 서건창, 허경민, 장민제, 윤여운, 이형종, 안치홍, 유민상, 박건우, 안성무 등 훗날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던 결승전 경기다.[3] 당시 KIA는 2008년 1차 지명으로 군산상고 전우엽을 지명했다.[4] 그런데 추후에 서건창은KIA 타이거즈에 입단한다.[5]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을 다니며 야구 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서건창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6] 7월 23일 잠실 히어로즈전에 대타로 나와 송신영에게 삼구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4년 후 서건창이 넥센으로 입단하고 송신영이 NC에서 트레이드되어 친정으로 복귀하면서 둘은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7] 하지만 서건창의 이 역사적인 LG 1군경기는 자료영상이 없다. 이 경기 중계권을 가진 MBC ESPN이 원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던 이승엽의 경기를 중계하려다가 이승엽이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자 급하게 설기현의 풀럼 방한 친선경기를 편성해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날 경기 중계가 안된 것으로 양팀 팬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정말 기적적으로 저 1군 경기 촬영된 모습이 발굴된 건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깝다.[8] 어느 정도 였냐면 서건창이 선발로 출전하는 것도 아니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는 사실만으로도 LG 팬들이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제외되자 후반기 부진으로 인해 같이 제외된 박명근, 이지강과는 달리 아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환호하는 상황까지 펼쳐졌다.[9] 옵션으로 7천만원이 있어 총액은 1억 2천만원이다.[10] 서건창과 동갑으로, 2명 다 KIA 내야진의 최고참 선수들이다.[11] 게다가 키움은 시즌 종료 후 진행됐던 2차 드래프트에서 서건창과 같은 2루수가 주 포지션인 최주환을 영입했기 때문에 서건창 영입이 우선 순위에서 멀어진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12] 다만 키움 구단에서는 서건창이 답을 주었을 경우 이용규임창민 수준의 조건을 준비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기사[13] 당장 KIA 단장인 심재학도 대놓고 경기 후반에 쓸 백업 용도로 영입했다고 강조를 했다. 사실 KIA의 백업 2루수 문제가 심각하기도 한 것이 김선빈이 부상으로 빠지면 그 자리에 김규성이나 최정용이 들어가는데 둘 다 김선빈에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 그래도 서건창은 이름값에선 저 둘엔 앞선다.[14] 144경기를 나갔지만 전 경기 출장은 아닌 특이한 기록을 세웠는데, 트레이드 당시 키움이 LG보다 많은 경기를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문에 트레이드 당시 '이론상 국내 최초 145경기 출장도 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그건 실패. 참고로 서울 SK 나이츠 감독 전희철은 선수 시절 팀 경기수가 54게임인데 트레이드 과정에서 SK가 경기수가 적어 KBL 최초로 개인 선수 55경기를 뛴 사례가 있었고 결국 KBL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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