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8:16:12

부흥회

사경회에서 넘어옴

復興會 | revival meeting

1. 개요2. 주로 하는 시기3. 한국교회 부흥회의 특성4. 부흥회에 대한 한국교회 내의 상반된 입장
4.1. 부흥회에 대한 찬성 입장4.2. 부흥회에 대한 반대 입장

1. 개요

개신교의 종교 행사 중 하나이며 사전적 의미로는 신자들의 믿음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여는 특별기도집회를 뜻한다.

흔히 사경회(査經會)와 똑같은 행사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경회는 이름 그대로를 풀면 성경(經)을 꼼곰히 공부하고 조사(査)한다는 의미로, 성경에 대해 배우기 위한 강연에 더 가깝고 뉘앙스상 신비주의적, 기복적/주술적 특징이 부흥회보다는 덜한 편이다.[1]

현대에는 각 교회에서 행하는 정기 예배와는 별도로 유명 목사나 전도사를 초청하여 특별한 형태의 종교 집회를 열어서 기존 신자들의 신앙심을 돈독하게 하고 새로운 신자들을 맞이하는 행사들을 의미하고 있다.

1907년의 드라마틱한 대부흥을 겪은 이후 이 당시 사경회의 형태가 부흥회의 형태로 정착되었다가 보면 된다. 이 당시는 부흥회라는 명칭은 없었으나 실제로 교인수의 급증(일명 원산대부흥, 평양대부흥)을 겪으면서 실제적인 부흥회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매년 부흥회를 정기적으로 하는 전통아닌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용어로는 축복성회라고도 한다.

2. 주로 하는 시기

특별히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연초[2], 사순절 기간, 가을 총동원주간(추수감사주일 부근), 교회창립일 주간에 하는 경우가 많다.

3. 한국교회 부흥회의 특성

이하의 내용은 이곳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 부흥운동 속에는 신비주의적인 면과 금욕주의적인 면이 있다. 1930년대에 일어났던 이용도목사의 신비주의는 대표적인 것이다. 근래 일어나고 있는 부흥운동에서도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 부흥운동 속에는 1907년대에 있었던 것과 같이 성경을 연구하는 사경회를 통하여 성경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부흥회 기간 중 교인들은 죄를 통회자백하고 새 삶을 살게 되는 특징이 있었던 것이다.
  • 부흥운동 속에는 신앙의 힘에 의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갖게 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고통을 당하고 실패한 자들에게 노오만 빈센트 필(N.V.Peale)의 적극적 사고 방식은 실제로 성공의 정신적인 힘이 되었다.
  • 부흥운동 속에서 고난과 가난, 고통 등의 문제를 신에게 맡겨버리고 내세에 소망을 갖게 하는 타계주의 사상과 재림사상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해방 이전의 부흥운동은 일제의 지나친 핍박으로 이 사상은 더욱 강했던 것이다.
  • 부흥운동 속에는 예언자적 비판주의 정신도 강하게 나는 일이 있다. 죄와 타협을 불허하고 불의를 버리며 신의 공의를 강조하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생활을 강조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특히 1945년 이후에 일어났던 부흥운동 속에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한 자들을 정죄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었다.
  • 부흥운동 속에는 한국 민족성 속에 잠재하고 있는 기복사상과 물질적 성공이 강조되고 있으며, 신앙적으로 이기주의적 요소가 다분히 섞여 있으며 일부 부흥사들이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이해하여 기복신앙 중심으로 성도들을 이끌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것 같다.

4. 부흥회에 대한 한국교회 내의 상반된 입장

4.1. 부흥회에 대한 찬성 입장

  • 현대교회가 특히 해방이후로 너무 세속화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불이 꺼지고 열심이 식었으니 다시 옛날의 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흥회가 필요하다.
  • 현대교회가 지나치게 지식 중심적이기 때문에 신앙 그 자체까지도 이성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열기가 식어지고 전도하는 열기가 떨어져 있으므로 부흥회를 통해 이를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는 것
  • 일부 열심있는 성도들이 오늘의 교회에서 아무런 위안과 힘과 기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단에 대한 유혹이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하여 광신파의 집단을 따라 이교도에 빠지는 성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교회는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신사참배와 박해의 와중에서 극도로 약화되어버린 한국교회를 새롭게 강화하고 성장 시키기 위한 계획으로서 부흥회를 생각하였던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견해가 이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 신앙생활이 부흥회에서 체험할 수 있는 특수한 은혜의 맛을 빼고는 의미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약화를 방지하고 개인적 신앙에서 은혜의 경험을 맛보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일반 성도들이 가지는 심리적 요소도 전인치유의 관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 하나의 관습 혹은 황홀한 신비를 동경하고 그러한 현상을 통하여 자신의 아픔을 해소하는 심리적 경향 때문에 부흥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4.2. 부흥회에 대한 반대 입장

  • 부흥회는 주로 감정의 흥분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감정의 흥분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한국 교회에 부흥운동은 그 출발과 동기 자체가 순수한 의도적인 복음전도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회불안, 위기의식과 같은 외적 충격과 현실 부정을 달래는 카타르시스적 신앙운동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므로 그 특징은 성경진리와 신학적 이론에 입각한 복음이해와 해석을 결여하고 있는 반면에 감정과 심령의 흥분이란 흔히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쉬워, 참된 기독교 신앙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가 많다. 오히려 한국의 현실에서는 한국교회가 반지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 부흥회는 의지가 박약하고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로 하여금 광신상태에 빠지게 만들어서 그 결과로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현대 한국에서 발생되고 있는 여러 가지 유사기독교 운동이나 광신집단이나 혹은 탈선적인 행동들의 근원이 죄다 부흥회에 있다.
  • 부흥회에서 엘리야가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말 등을 하며 사람들의 영웅심리를 자극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감정에 취해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소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감정에 의해 자기 입맛대로 생각해 낸 계획을 소명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청구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며, 이것은 올바른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또한 무지성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쫓아가는 신앙생활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무엇을 받을 자격이 없는 별볼일 없는 죄인임을 먼저 인지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태도이다.
  • 부흥회는 현실에 입각한 윤리적인 생활 개혁에 비교적 관심이 적고 차라리 현실 도피적인 감정유희로 사람들의 마음을 유도하는 성향이 강하다. 부흥회에서 이루어지는 도취 경험을 아편 중독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한번 중독된 자는 늘 부흥회만 전적으로 따라다니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심각한 해독을 끼치고 있다는 것.
  • 부흥회는 독단과 과장과 심리적인 강한 자극을 통하여 교인들의 마음을 점령함으로 부흥사를 영웅시 내지는 초인화 하는 경향으로 흘러 본 교회 담임목사를 하나의 무능하고 무력한 지도자로 경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교회 분열 혹은 담임목사 배척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3]
  • 처음 교회에 나온 초신자 입장에서 보면 부흥회는 광신자 집단의 집회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가뜩이나 방언이나 통성기도같은 것이 어렵고 거부감이 느껴지는 부분인데 문제는 이 두 가지는 부흥회 필수요소라는 것.
  • 역사적인 맥락에서 비판한다면 1907년 이전의 개신교는 사회, 정치적인 관심도가 매우 높은 운동이었으나 1907년의 부흥회를 기점으로 교회가 사회에 대해서 가지는 관심은 기껏해야 구제운동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부흥회의 특성상 참석 교인들이 평소 주일예배 때보다 더 뜨겁게 찬송가를 부르고 통성기도를 목놓아 외치는 성향이 강한데, 2020년 12월 서울 강서구 성석교회에서 코로나19 시국에 7주 연속으로 부흥회를 열다가 대규모 집단 감염이 발생하여 지역사회에 큰 민폐를 끼치고야 말았다.

[1] 사경회에서도 특정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반복해 읽으면 지혜든 축복이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2] 이 경우는 대개 신년축복부흥성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3] 소위 부흥사의 영력, 혹은 영빨이라는 말을 한다. 이쯤되면 그냥 무당. 한국 기독교가 롤모델로 삼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원조인 길선주가 관우 무당에서 예수 무당으로 환승(...)한 뒤 만들어진 결과물인지라, 평양대부흥을 꿈꾸는 현대의 부흥회가 무당과 흡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