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12:05:04

블라드 2세

블라드 드라쿨에서 넘어옴



루마니아어: Vlad Dracul (블라드 드라쿨)
생몰: 1395년 이전 출생~ 1447년 사망
재위: 왈라키아 공(1436년 ~ 1442년, 1443년 ~ 1447년)

1. 개요2. 생애
2.1. 즉위 이전2.2. 재위기2.3. 복위기
3. 자손

1. 개요

왈라키아 공국공작. 바사라브 가문의 드라큘레스티 혈족이다.

위대했던 미르체아 1세의 서출 아들이자, 드라큘라의 모델로 유명해진 블라드 드라큘라, 즉 '블라드 가시공'의 아버지.

오스만 투르크를 없애기로 맹세한 드래곤 기사단의 일원이자, 오스만 투르크의 도움을 통해 왈라키아 공국보이보드가 되었던,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인물.

용의 사악함에 빗대어서 악마공(惡魔公)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고 하나(실제로 현대 루마니아어에서 'Dracul'은 '악마'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설득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드 2세 자신은 딱히 '사악' 하다고 볼 수 있는 행적을 남기지 않았을 뿐더러, 드래곤 기사단에 가입하면서 지기스문트로부터 드라쿨이라는 별명을 하사받은 것인데 만약 악마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었다면, 지기스문트는 자신의 신하이자 한 기사단을 맡는 기사단장이자 공국의 군주에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의 형제들은 총 3명이 있었는데, 모두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공작에 오른 셈.

유일한 적자인 첫째형은 미카엘 1세로 공작이 된지 3년만에 오스만 제국에게 패해서 전사하고,

서출인 둘째 형 라두 2세는 큰삼촌의 아들, 단 2세와 7년간 4번에 걸쳐 공작이 되었다가 쫒겨나기를 반복하며 싸우다가 전사한다.
역시 서출인 세번째 형제는 동생인 알렉산드로 1세로 이 동생이 6년간 집권한 후에, 드디어 블라드 2세가 공작에 오르게 된다.

2. 생애

2.1. 즉위 이전

'위대한 미르체아 대공'의 서출 아들로 탄생. 아버지인 미르체아 1세오스만 제국에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피해 때문에 왈라키아 공국을 포기하고 헝가리 왕국으로 도피한 1395년, 헝가리 왕국에 볼모로 남겨지면서 당시 젊었던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28살)와 만난다. 이후로 그는 부다페스트, 뉘렘베르그등의 헝가리 왕국이나 신성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게된다.

1418년, 아버지, 미르체아 1세가 64세의 나이로 죽는다.


아버지가 죽고 2년 후, 단 2세가 반란을 일으키고 알불(Albul)과 우트메스(Utmeș)같은 많은 보야르들이 이에 가담한다. 거디다가 단 2세는 오스만 제국측의 원조를 받기로 약속까지 하게된다. 결국 미카엘 1세는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자리를 차지하려던 다니스티 일족의 단 2세와의 싸움에서 패해 죽는다.

이후로 자신의 서출 형인 라두 2세와 사촌 형제인 단 2세와의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1423년 그는 지기스문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부다페스트를 떠나 폴란드로 가려고했지만 국경을 넘기 전에 잡히고 만다.


1423년부터 1429년까지 로마 제국에 가 있었지만, 당시의 동로마 제국이 자신을 왈라키아 공으로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라 판단, 헝가리로 돌아갔다. 이 사이인 1425년, 첫째 아들이자 서출인 블라드 수도공(1425 ~ 1495)을, 1428년에 둘째 아들이자 적출인 미르체아 2세(1428 ~ 1447)를 낳는다.


1431년 지기스문트(64세)의 후원을 받으며 드래곤 기사단에 들어가게된다. 당시 드래곤 기사단에는 아라곤의 알폰소 5세, 리투아니아의 대공작, 비타우타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64세)는 블라드 2세로 하여금 왈라키아 공국을 차지하도록 돕지는 않았으며, 결국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알렉산더 1세 알데어'가 몰다비아 공국의 도움을 받아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다.(1431년)


이 해 훗날 드라큘라라고 불리게 될, 블라드 가시공(1431 ~ 1476)이 태어난다. 이 후, 블라드 2세는 당시 헝가리 왕국에 속해있던 트란실바니아로 간다.


1432년,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이 된 배다른 동생인 '알렉산더 1세(생몰년: 1397 ~ 1436, 40세, 통치기: 1431 ~ 1436, 6년간)'는 오스만 제국의 봉신이 되기위해 아드리아노플에 간다. 이 때 블라드 2세는 쫒겨났던 보야르들과 함께 왈라키아 공국에 쳐들어가려 했으나, 실패한다.

지기스문트(67세)는 1434년에야 블라드 2세로 하여금 무기를 사고 군사를 규합하도록 허락한다. 1435년, 알렉산더 1세(39세)는 병들어 회복하지 못하고, 이 때 왈라키아 공국으로 쳐들어가지만, 오스만 제국에게 도움을 받은 알렉산더 1세(39세)에게 다시 패배하고 만다.

결국 1436년 알렉산더 1세(40세)가 죽고 나서야 그는 왈라키아 공국의 공작으로 취임하게된다.

2.2. 재위기

1436년 왈라키아 공이 되었으나, 1437년 지기스문트가 70세로 사망하자, 변심하여 오스만 투르크에 신종하였다. 이후 1442년까지 7년 정도의 1차 통치 후, 네 명의 아들 중 차남 미르체아 2세에게 공작위를 물려줬으나, 그해에 후녀디 야노시(36살)의 도움을 받은 다니스티 가문의 바사라브 2세(단 2세의 첫째 아들)에 의해 왈라키아 공국을 뺐기게 된다. 이 시기인 1437년에 막내아들인 라두 3세(1437 ~ 1475)를 낳는다.

2.3. 복위기

1443년, 오스만 제국에게 훗날 블라드 가시공이 되는 셋째(13살)와 라두 3세가 되는 넷째 아들(7살)을 포로로 보내면서 도움을 받아 1년 후인 1443년에 다시 왈라키아 공이 되어 4년간의 2차 통치기를 시작한다.

이 2차 통치시기인 1444년, 추기경 체자레니는 대오스만 동맹결성을 촉구하였고 여기에 호응한 교황령, 헝가리 왕국, 폴란드, 부르고뉴, 베네치아, 제노바의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이를 헝가리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왈라키아 공국도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왈라키아 공이던 블라드 2세는 이 원정을 막으려 지도부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왈라키아로 물러났다. 이 원정에 참여한 것은 블라드의 아들이던 미르체아 2세(17살)였다.


하지만 헝가리 십자군은 안타깝게도 바르나 전투(1444)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하게 되고, 왈라키아를 거쳐 퇴각하려고 한다. 이 시점에 블라드 드라쿨과 그의 아들 미르체아는 퇴각하던 후냐디를 투옥시켰다가 풀어주는데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단지 바르나 전투에서 오스만군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고 직접 지휘를 맡았던 것이 후냐디였기 때문에 블라드 드라쿨이 후냐디의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후일 블라드 드라쿨의 아들, 블라드 가시공의 인생을 질곡으로 밀어넣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 후로 3년 후, 차남(20살)과 함께 왈라키아의 귀족 계급인 보야르들에게 암살당한다. 이때 첫째 아들인 블라드 수도공은 22살, 셋째 아들 블라드 가시공은 17살, 막내 아들 라두 3세는 10살이었다.

3. 자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