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0:09

방길

방 태사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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龐吉

1. 개요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 등장하는 인물로 송 인종의 장인이며, 벼슬은 태사. 그래서 방태사로 많이 호칭된다.

2. 상세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높으신 분들의 전형이다. 포청천의 감초 귀염둥이 악당 찰방욱 에피소드에서 외아들인 방욱이 부정을 저지르다 포청천에게 작두에 목이 잘리고 대가 끊기게 된 이후로 안 그래도 전부터 별로 사이가 안 좋았던 포청천에 원한을 품고 포청천을 모함하려는 생각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방태사 최후의 날이라 불릴만한 '방비유희' 에피소드에서 자기딸이 사고로 유산을 하자 남의 자식을 자기 딸의 자식이라고 공갈치다가 결국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이 에피소드 때 종신형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뒤 마지막 에피소드인 '오서요동경' 에피소드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CTV에서 제작한 포청천에서는 해당 에피소드가 방태사의 마지막 등장 에피소드이다. 국내판에서는 순서대로 방영되지 않고 방영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몰락 이후에도 등장하기도 한다. CTV에서 제작한 포청천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휩쓸자 같은 대만 방송국인 CTV에서 칠협오의[1]를 제작했는데, 태사환궁 에피소드에서 양양왕의 역모를 알고 가담하는 척하면서 증거를 모아 황제에게 바쳐 역모가 진압되고 공을 인정받아 태사로 복직하게 된다. 방송국이 다르므로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닌가싶지만 태사환궁 시작부분이 방비유희 마지막 처벌 장면이다. CTV와 CTS가 원래 하나의 방송국에서 갈라졌기 때문에 에피소드를 공유한 것이다.[2]

그래도 마냥 사리사욕만 탐하는 무개념 간신은 아니었던 듯 하며, 찰방욱 에피소드에서 자신의 아들 방욱의 목을 자른 포증이 찰포면 에피소드에서 포증의 조카 포면이 자하거 탈취를 하라고 명을 내렸다는 누명을 써서 사형 판결을 받자 포증을 곤경에 빠트려 기쁠 줄 알았지만 막상 포면이 억울하게 참형 판결을 받고 포면의 어머니인 포증의 형수, 모친이 방부를 찾아와 자신과 딸 방비앞에서 아들의 목숨만은 살려달라며 애걸할때 방비가 모욕을 주며 포면은 죽을 것이라며 비웃고 포증의 형수, 모친이 주저앉자 딸 방비를 너무 심했다며 나무라는데 자신도 아들 방욱을 잃어서 가슴에 한이 맺혔는데 포면은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참형 판결을 받고 포면이 외동아들이라서 대가 끊긴다는 사실에 이를 불편해 하고 결국 마음을 고쳐 진범들을 꼬드겨 자백하도록 속이고 좌절하여 낙향하는 포증을 복직하게 하기도 하였으며 거란과의 트러블이 있을 때나 양양왕이 반역에 동참하도록 회유할 때[3]는 그래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양양왕의 반역 사건 때는 심지어 유력한 증거를 가져오면서 포청천의 수사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다만 이건 판관포청천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CTV에서 자체 제작한 포청천 1993이 아닌 하도인기를 끌자 CTS에서 자체제작한 칠협오의 1994의 에피소드이다. 단 인기는 내내 밀렸다.[4][5]

또한 칠협오의 1994에서 양양왕의 역모를 밝히는 에피소드에서도 진실을 규명해서 역모를 막은 공을 내세워 구원해준 포청천더러 "여전히 당신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투덜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어떤 때는 포청천이 파직당하자 "아니, 난 그냥 국법에 따라 처벌되기만을 바랬지 걔가 잘리길 바란 건 아닌데;;"라며 당황해하며, 일이 잘 풀려 복직되자 또 앞의 대사를 언급하며 츤츤거렸다(...). 이게 무려 포청천한테 죽을 뻔한 뒤에 나온 에피소드다. 실제 포청천에게 방태사가 죽을 뻔한 에피소드는 방태사가 방비가 유산하자 그 사실을 숨기고 다른 여성이 낳은 아기로 둔갑하여 인종을 기만하려고 했던 방비유희(유령혼)이며 KBS에서 방영할 때는 이묘환태자(내궁비화) 다음에 방영했다. 또한 판관포청천에서 포증이 파직된 에피소드는 이묘환태자방비유희이묘환태자에서는 방태사는 나오지 않았으며 방비유희에서 포증이 파직된 것은 방태사가 꾸민 짓이다. 방태사가 포증이 복직하자 츤츤거린 에피소드는 1993 판관 포청천이 아닌 1994 칠협오의 에피소드인 '포공투법왕'의 내용으로 법왕에 의해 조종당한 포증이 조례에 참석하여 인종에게 무례한 발언을 하여 파직당했는데 법왕 사건이 해결되고 인종이 복직시켜 준 것이다. 즉, 방태사가 포증에 의해 목이 잘릴 뻔한 에피소드는 1993 판관 포청천의 방비유희(유령혼)이며 방태사가 복직한 에피소드는 1994 칠협오의 에피소드인 태사환궁이며 방태사가 포증의 복직을 츤츤거린 에피소드는 포공투법왕으로 각 에피소드의 작품이 다르다. 문제는 같은 인물이 나오다보니 사람들도 헷가려서 틀린 정보를 남들에게 알려주기도 하는데 방태사가 포증의 복직이 잘되자 츤츤거리며 그게 자기 목이 잘릴 뻔한 에피소드 이후라고 하는 게 그런 예시.

또한 2012년 판에서는 죽은 방욱이 대신 고아를 입양해서 친손자처럼 극진히 키우는 등 의외로 다정한 면도 있다. 그런데 그 고아조차 불법으로 입양되었다며 포청천이 태클걸고 아이를 원래 부모에게 돌려주는데 그간 정을쌓은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 흘리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사실 방태사는 아이가 고아인줄 알고 합법적으로 입양한거라서 방태사가 적법하게 입양했으니 못주겠다고 하면 아이가 설사 고아가 아니라도 강제적으로 데리고 올 수 없어서 애호는 아이를 뺏어오자고 했지만 입양한 양손자를 대하는 모습을 본 포증이 방태사가 아이를 돌려줄거라고 말하는데 정말 방태사가 돌려줬다.[6] 방태사가 아이를 손자로 입양한 이유는 방태사도 자기가 아들 방욱을 잘못 가르쳐서 방욱이 포증에 의해 참수된거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집안의 명예를 망쳤다고 생각했기에 어린 아이를 입양하여 손자로 호적에 올려 제대로 가르쳐서 올바르게 성장하게 해서 방씨집안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다. 아이를 돌려준 이유도 아이가 고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아이에게 왜 말을 하지않았느냐고 물어보고 자기가 떠나면 할아버지가 슬퍼할거 같아서 차마 말못했다고 하는 아이의 말에 아이는 부모 형제가 있는데서 커야한다며 가족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고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있을때 어땠느냐고 묻자 아이가 정말 즐거웠다고 또 놀러가도 되냐고 묻고 방태사는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한다. 사건이 해결되고 다들 방태사의 저런 모습에 놀라고 포증에게 어떻게 방태사가 아이를 돌려줄지 알았느냐고 묻자 포증이 아이를 대하는 방태사의 모습에 진심이 담겨있었다고 돌려줄 것이라고 직감했다며 포증이 순수한 아이를 입양해 제대로 가르쳐서 방욱과 같은 전철을 밟지않게 하여 방씨집안을 빛내려고 하는 방태사의 생각을 포증이 알아챈 듯이 말하며 방태사도 엇나간 자식사랑 때문에 문제였지 그렇게 나쁜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알았다고 한다. 다음번 포청천이 제작되면 좀더 나아진 방태사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만 금초군이 투병생활로 연기를 그만둬서 이후 금초군 사단이 출연하는 포청천이 제작되지 않는다는게 함정. 93년판의 성우는 이종구.

방태사가 포증과 맞서고 여러 죄를 저지르면서도 송나라를 생각한다거나 황제인 인종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방태사가 송나라의 실존 인물인 반미에게서 석옥곤이 모티브를 얻어 자신이 집필한 소설 <용도공안(龍圖公案)>에 등장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반미는 태조인 조광윤과 친분이 깊었고 971년에 남한, 975년에 남당, 979년에 북한을 멸망시키며 송나라의 중원 통일을 주도하였다. 즉 송나라의 개국 공신으로 979년 말에는 요나라 군대의 침공을 대파하였고 983년에 한국공으로 봉해져 제후의 반열에 올랐으며 986년, 태종의 2차 북벌 시에는 서로군을 이끌어 연운 16주 중에서 환주, 삭주, 운주, 응주 등을 회복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하지만 동로군의 조빈이 대패하여 후퇴하던 중에 후방을 엄호하던 양업을 돕지 않아 그가 진가곡에서 전사하자 태종은 반미를 검교태보로 격하시켰다. 991년에 동평장사로 제수되었으나 몇달 뒤에 사망하였다. 사후 991년에 태조의 능에 배향되었고 정왕에 추봉되었다. 그 후손들도 대대로 송조의 벼슬을 하였다. 송사 반미 열전 국문 번역본

그런데, 반미가 청나라 말기 석옥곤의 소설 <용도공안(龍圖公案)>에서 방태사로 등장한 이래 악역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양업을 돕지 않아 그를 죽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양업이 패한 원인은 반미에게 있지 않으며, 반미가 양업을 돕지 않은 것도 양업을 돕다가 친정을 나선 태종이 위험할 가능성이 높았고, 후방에는 남당의 잔존 세력이 남아 있어 그들을 견제하여야 했기에 서로군은 복귀하여 후방을 견제한 것이었다. 양업이 전사한 이후 태종이 그를 검교태보로 격하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의 위치가 태종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지위였던 최고 사령관이기에 형식상 강등된 것이었고 991년에는 동평장사로 제수되었으며 사후에 그가 신하로서 송태조의 능에 배향되는 명예를 누리고 정왕으로 추봉되어 그와 그의 후손들이 송나라의 황족에 편입된 것은 그가 송나라의 개국 공신이기도 했지만 양업이 패배한 것은 그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가 양업을 돕지 않은 것도 개인적 원한이 있어서가 아닌 그를 구하다가 친정을 나선 태종이 위험할 수 있어 국가를 위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최고 사령관으로서 형식상 강등이 되었을 뿐 얼마 안가서 사면받고 더 높은 벼슬로 제수받았으며 죽은 뒤에는 태종의 능에 배향받고 정왕으로 추봉되어 그와 그의 후손들이 황족에 편입된 것이다.

문제는 그의 지위가 당시 전사한 양업과 얽히는 인물들 중 가장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그는 이후 송대 이후 수도 없이 많이 나온 양가장 관련 무협 소설이나 영상물에서 양업을 질투해 외면한 간신 혹은 요나라에 충성하는 첩자 등 악역으로 찍혀버려, 송나라의 개국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평이 아주 좋지 않게 되었으니 매우 억울한 일이다. 판관 포청천 드라마 제작되면서 최초 시리즈인 1974년에 의명이 포청천을 연기한 포청천에서는 얄짤없는 악역으로 나오지만 이 드라마가 역대급의 시청률로 350회가 방영될만큼 인기를 얻었는데 방태사도 포청천의 라이벌 급으로 나오면서 욕이란 욕은 다먹고 인지도가 올라 그의 모티브가 된 반미에 대한 연구와 논문 등이 쏟아지면서 그가 실제로는 양업과 원한 관계가 없으며 양업을 구하지 못한 것도 외면했다기보다 구하려 했지만 여러 여건 상 태종의 안위가 중요하여 구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 알려졌으며 그가 송나라의 개국 공신이자 요나라를 대패싴키고 연운 16주의 일부를 회복했으며 동로군의 조빈이 대패하지 않았가면 연운 16주를 더 회복했을 것이라는 발표에 진짜 악역은 조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전쟁이 끝나고 강등된 것도 형식 상의 강등이며 이후 더 높은 벼슬에 제수받고 태조의 능에 배향받고 사후 정왕에 추봉되어 그의 가문이 송나라의 황족에 편입된 것이 알려지면서 이후 제작되는 포청천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방태사가 포증과 맞서지만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서 대립하고 찰방욱 건으로 개인적인 감정이 좋지는 않지만 공과 사는 구별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포증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돕는 등 포지션의 변화가 일어났다. 전형적인 악역에서 반동 인물 정도로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포청천 2012에서는 방욱을 자신이 잘못 가르쳐서 엇나가게 하여 죽게 만들어 대를 끊기게 했다며 고아를 입양하여 잘 가르쳐서 방씨 가문을 빛내려고 한다며 방욱이 죽은 것에 대해서 포증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가정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고 입양한 고아가 실은 납치되어 고아원에 팔려왔다가 자신에게 입양된 것을 알고 입양한 손자가 실제로 조부모와 부모 형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적법한 입양임에도 바로 원래 가족에게 돌려주며 입양한 손자에게 언제라도 놀러오라며 할아버지라고 불러달라는 등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포지션이 부여되었는데 실제로 이후 포청천 드라마에서는 방태사가 포증과 협력하여 요나라 등 외세의 침공에 맞서는 역할이 부여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금초군이 이후 포청천을 제작하려고 준비하던 시기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수술을 받으며 투병 생활로 연기를 그만둔 것이 아쉬울 따름.

3. 여담

93년 판에서 방길을 연기했던 두만생은 촬영기간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빡빡한 촬영일정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에 나온 방태사를 본 어머니가 "너 같은 못된 자식을 둔 적이 없다"며 문을 안 열어 줬다는 소문이 있다. 하긴 생기기도 심술이 가득하게 생겨서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하기가 쉬운 인상이었는데, 사실 1987년에 제작된 서시란 드라마에서 간신 백비역을 맡았던 전적이 있다. 왠지...


[1] 포증에 적룡, 전조에 초은준[2] 그런 이유로 CTV 포청천에 출연한 배우들이 출연도 제법 하였다.[3] 1994 칠협오의 태사환궁 에피소드이다.[4] 그래도 같은 계열 방송사에서 방영하다 보니 큰 설정은 다소 이어받아 포청천 1993 에피소드 방비유희에서 몰락한 방태사가 칠협오의 1994에서 태사환궁 에피소드로 다시 태사로 복귀하게 된다.[5] 단 포청천 1993에서는 방태사는 서민으로 강등당한 채로 등장이 없기 때문에 황제가 그냥 사면해준 것은 아니다. 애초에 사면된건 칠협오의때고 그 마저도 양양왕의 역모를 막아 국가를 구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6] 다만 해당 고아는 고아도 아니었고 엄연히 조부모에 부모가 살아있었다.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고아라고 고아원에 팔아넘기는 일당 때문에 그렇게 된거고 해당 고아원도 정말 고아인지 알고 입양을 주선 해준거라서 처벌받지 않지만 인신매매 조직은 해당 에피소드에서 모두 잡혀 참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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