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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문제점

먹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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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2장 38~40절 (개역개정)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23장 2~3절 (개역개정)

1. 개관2. 상세
2.1. 목회(강연)에서의 거짓말2.2. 교회 개척의 어려움2.3. 대형교회의 독점2.4. 조직적인 통제 불가능2.5. 자율 정화 능력의 부재2.6. 목사의 전횡과 치부(致富)2.7. 신학과 실제 예배의 차이2.8. 목사의 공급 과잉2.9. 마귀·사탄 드립
3. 해결 방안
3.1. 세금 부과
3.1.1. 다시 고개 드는 종교인 과세 유예 시도3.1.2. 김진표, 김동연 종교세 과세 조기시행 방침에 우려
3.2. 중앙집권제도3.3. 교인들의 의식 개혁
4. 관련 문서

1. 개관

한기총, 잇따른 '밥그릇 싸움'…대표회장직 논란 가중

개신교 신자들에게 개독이라는 오명이 붙은데에는 기본적으로 목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목사들이 목회를 하면서 종교의 상대성이나 상대 종교에 대한 존중,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인간적·인격적인 도리를 말하고 가르치고 대우했다면 대한민국에서 개신교개독교로 인식되었을 수 있을까.

편집적, 집착적인 전도를 하는 교인들을 말리기는커녕, "그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조장하는 곳도 있다. 심지어 "예수쟁이란 말이 나에게는 칭찬의 의미로 들린다"는 헛소리를 하는 목사도 있는 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만 끌여들여 오면 전도왕, 부장 등 감투를 씌워주고 반면, 많은 사람보다는 특정인을 사랑과 관심으로 지그시 전도하면 "전도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평가하기 일쑤인 게 목사들이다.

많은 경우 목사들이 설교 도중 혹은 전에 다른 종교에 대하여 왜곡되거나 지어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 중인 목사들은 이슬람교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설교 내용에 '이슬람에는 구원이 없으며 그 사람들은 무조건 지옥행' 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쓰는 경우도 많다. 이런 행동들에 당국 이슬람 지도자들이 항의를 한 경우도 있으나, 사과나 재발방지조치 따위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 인력과 예산이 남아돌아서 개신교 관련 인물을 체크하여 입국을 막거나 마크하는 게 아니다.

기복신앙형태로 외래종교를 개조하여 받아들이는 바람에 겉으로는 여러종교를 다 믿는데도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는 한국이 종교 면에서 특이한 나라인 것이고[1] 다른 나라들의 경우( 특히 미얀마, 태국의 경우)는 불교신자 마을과 이슬람 신자 마을이 서로 마을을 습격하여 학살하는 짓까지 버젓히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저런 동네에서 저런짓을 하고 다닌다면 양국에 있어서 하나도 도움될게 없다.

우스운 건 이래놓고 한국 목사들은 이슬람인이 한국에 오면 이슬람교를 선교한다고 날뛰는 점이다. 아랍 정보통 목사인 김동문 목사의 글을 보면 터키에서 이슬람 선교를 위하여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다 뭐다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터키는 정교분리국가이며 무슬림도 한국처럼 선교질하다간 이슬람 광신자로 정치수용소에 가둬버리는 나라다.

자세히 조사하니 드러난 사실은 터키 대사관 직원 2명이 교체된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걸 계기로 한국 개신교 선교를 더 하고 터키에 선교질하자는 교회들의 추태와 왜곡은 계속되었다고 한탄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깊게 신학을 공부하는 것을 오히려 말리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교수님&제자의 관계로 대입하여 생각해보자. 이게 말이 되는가? 그 이유는 당연히 자기들이 한 거짓말과 억지논리가 논파당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을 개신교 내부의 반지성주의라고 평할 수도 있다. 이런 반지성주의는 사이비종교 신천지가 교세를 넓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신천지의 성경 해석에 대한 강조가 교인들의 성경 공부에 대한 열망을 일정 정도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자기네 교리를 주입, 기성 교회 신도들을 빼앗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깊게 파고들어가서 목사 자신들이 교인들에게 비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벌이는 짓이라 할 수 있다. 신학적, 신앙적으로 흠 없을 종교인들이 몇이나 될 지 생각해보자. 인간인 이상 불완전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이 불완전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완하느냐가 핵심 아닌가. 천주교, 불교 등에서는 이를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토론하기를 반복한다. 이건 종교의 ABC나 다름이 없다.

땅밟기는 '목회자 모임'에서 소개된 것으로 개신교와 다른 교파, 종교의 대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타 종교의 지역에 들어가서 전도나 기도회 등을 하곤 한다. 대립하는 이유는 영적 전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이슬람 국가 등 해외 선교는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어 일반 성도들까지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의 타 종교건물들에 일반 성도들이 대항의식을 하게 함으로써, 다른 종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게 하여 내적인 분란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구상된 것이다.

2. 상세

2.1. 목회(강연)에서의 거짓말

목회는 목사가 교회 생활을 하는 거의 모든 것을 칭하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정직하지 않게 목회하는 목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들이 다 먹사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들어봤을 대형 교회의 목사들도 불륜, 횡령, 고인드립 따위의 부도덕한, 심지어 성범죄 등 범죄행위를 하는 판국이니 일부라는 말의 신빙성이 심히 의심될 수밖에 없다.

몇몇 개혁, 급진적 목사들을 빼고 나면 거의 모든 한국의 개신교성경을 권위로 삼고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린다. 개신교의 공통된 사항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4년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서 목사 코스를 밟은 사람이라면 성경의 형성과정을 배우며 십일조에 대해서도 충분히 배운다.

자유주의 혹은 소위 '진보적' 신학교에서는 성경이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고침이 있었으며 유대 신앙에 의해서 과장되었다고 배운다. 물론 보수적 신학교들에서는 아니다. 그런 목사들(진보적 신학)이 정작 설교 시간에는 성서무오설[2]을 주장한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몇몇 목사들의 경우 1:1로 면담했을 때는 "성서무오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청중들의 신앙심 고취와 교회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성서무오설만큼 권위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교인이 안 모인다. 결국 교인들 스스로가 이런 설교를 더 선호한다는 것. 덧붙이자면 문제의 원인은 교인 자체보다는 대형교회 신드롬이다. 대형교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자본주의와 결탁한 대형교회는 좋지 않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교회들은 이러한 대형교회가 되길 바란다. 실질적으로는 목사의 생계가 교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십일조 역시 매한가지이다. 종교학을 배우면서 '성직자 사례비' 와 '십일조' 에 관한 점들을 배운다. 십일조는 이미 2000년 전에 폐지되었다는 것과 이미 성경에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유대인들에게 속했던 모든 절기법과 사회법과 종교법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되었다'고 한 것 역시 배운다.[3]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 특성상 십일조 없이는 돈 벌이가 불가능하기에 배운 것과 다르게[4] "십일조야말로 복의 통로, 신자의 지표"라고 하면서 강권한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대부분의 교회 활동에서 밀려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예수교는 구약의 율법까지만 믿는 유대교가 아닌데, 어째서인지 돈 걷을 때는 유대교가 된다. 그리고 이걸 정당화하기 위해선 다시 기독교 모드로 돌아가서 가난한 과부 이야기의 후반부만 잘라내어 왜곡한다. 해당 부분 바로 직전의 내용은 이러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가르치셨다. "율법학자들을 주의하여라.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 자리의 특석을 좋아한다.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가로채고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은 더욱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2장 38~40절

가난한 신자들 중에는 주보에 게시되는 십일조 납부자 명단을 보고 쪽팔린 나머지 교회를 멀리하기도 한다. 십일조를 많이 해야만 참 신자로 대접받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 그런데 초대교회의 사도 바오로는 정작 이런 행태를 고린토1서에서 깠다. 십일조라도 안 걷으면 빈털터리가 되니까.

일단, 대부분의 교회법과 교단 내 규칙의 경우, 정확하게는 십일조를 포함한 교회 헌금의 사용처를 분명하게 목회자들의 사례비와 사빈세(지역 사회에 기부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쓸 돈), 선교비(재정 상황이 어려운 선교사-개척교회를 돕는 비용), 기타 재정(교회 시설 관리 비용,장비 관리 비용 등)으로 확실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5]

그러나 정작 현실은 사빈세 개념은 희박한 편은 맞고, 목회자들의 사례금도 교회법에 따라 제대로 나눠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대로 나눠지는게 맞다면 원래는 박봉에 시달리는 목사매월 적자의 미자립교회는 발생하지 않는 게 정답이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세속화/사유화/권력화된 한국의 개신교는 성경의 말을 돈이 되는 것, 신자를 모을 수 있는 것만 강조하여 아전인수로 해석하고, 그 외의 것은 생략하거나 왜곡하거나 안 가르치는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설교(예배)에서도 실로 수많은 문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화 돌려쓰기이다. 물론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 같은 내용을 말할 수도 있지만, 예배용 CD와 원고를 돈을 주고 사서 쓰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속칭 인스턴트 설교 및 캔 설교라 불리울 정도로 심각한 몇몇 예배 프로그램들의 경우 회원가입 시 전화통화를 통해서 무슨 교회의 어느 목사인지를 확인한 후 회원등록이 되며, 이 회원 아이디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을 쓰는 경우도 있다.

요즘 신학교에서 연설법과 화술, 강연법 등을 주로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사실 부흥회 강사 몇 번만 만나보면 일화 돌려쓰기는 정말 바로 티난다. 거기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이럴 바에야 차라리 성경 강해설교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 돌려쓰기의 결과 결국 신학대 논문 표절논란이 터져버렸다.

또한 웃기는 건 '목회자 모임'이다. 이는 목사들의 모임인데, 목사들과 그 부인들이 출석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 별별 더러운 이야기가 다 나온다. 이하는 그 일부.
  • 헌금 많이 받는 법
  • 교인 끌어들이는 법
  • 목사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위 '문제 일으킬 교인' 알아보는 법
  • 각종 사고시 대처 방법: 목사가 공금을 횡령했을 때 성도들을 달랠 멘트,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
  • 전도사 및 부흥사의 멘트 능력과 사람 끌어들이는 방법
  • 부흥사와 연기자가 짜고 치는 교회를 대상으로 한 사기에 가까운 스토리: 특정 시기에 미리 돈을 받고 온 연기자가 교회에 등록한다.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경제적 고난이 뒤따른다.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지만 병까지 들고 이때 교회 행사로 부흥회가 열려서 그는 많은 재산을 헌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나았으며 힘들었던 경제적 고통까지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에 가까운 상황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사업은 더 번창했고 그는 이제 사업적인 이유로 국외 출국하고 웃는 얼굴로 교회를 떠나는 스토리. 문제는 그에게는 경제적인 고통이 없었으며 병도 가짜로 들었다는 것. 그가 헌납한 재산은 목사의 주머니에서 나와 목사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목사와 부흥사와 연기자가 교인들을 상대로 하나의 드라마를 찍는 거다. 여기에 감동한 교인들은 "오오!" 하면서… 스토리의 바리에이션은 무궁무진하다. 예컨대 일부러 귀신들린 연기를 하면서 예배 중에 발광하고 목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하면 으악 하고 쓰러진 뒤 실려나간다 → 나중에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척을 한다. 그러면 교인들의 찬사가 따라온다.

2.2. 교회 개척의 어려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진로는 보통 3가지로 나누어진다. 기성 교회에 청빙되어 담임 목사직을 행하는 경우와 자기가 교회를 새로 세우는 개척이라는 경우. 그리고 기성 교회에 부목사로 들어가는 경우.

큰 교회의 부목사로 있는 경우도 몇 년 후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리를 옮겨야 되기 때문에, 최종 목표는 청빙 또는 개척이다. 큰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봉직하면서 맘에 맞으면 10-20년 이상 그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처럼 생각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기성 교회에서 외부의 목사를 청빙하는 경우는 역사와 규모가 대단히 오래되고 크거나, 전임 목사가 퇴임, 축출, 소천 하는 경우, 그리고 산간 오지의 시골 교회가 아닌 한 공석이 잘 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수가 너무 적다 보니 매년 쏟아져 나오는 목사들의 숫자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럼 남은 길은 개척이다. 개척을 준비하는 목사들의 꿈은 개척교회를 세워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정석과 같겠지만, 때론 벤처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 같은 불손한 사상을 가지고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개척교회 목사들은 교회를 개척할 때 순수한 의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하고 자신에게 굴러들어오는 돈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서서히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다. 즉 초심을 잃는다는 것. 이 경우에도 신학교 졸업 후 즉시 개척에 뛰어드는 경우와 월급목사로 몇 년을 지내 사재를 모아서 개척에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한편 후술하겠지만, 목회자로서의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교회를 개척해야 하냐면서 기성 교회에 월급 목사로 남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목회를 할 때 미리 자기가 개척할 것을 생각하고 주변의 관계를 잘 만들어놓고 후원자도 만들어놓으면 좋으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월급 목사로서 일하다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개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철판 깔고 전 교회 교인들을 확 빼와서 개척 교회를 만들어 내는 목사들도 있고. 물론, 교회를 개척한다면 전 교회의 교인들과 연락을 하는 것은 이런 경우가 흔치 않게 있어서 매우 욕을 먹는다.

보통 초기 자본금을 대출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서 시작하는데[6] 이는 시작부터 큰 짐이 된다. 현재 개신교인들이 감소하는 추세에 비해 교회는 난립하고 있고 목사 배출 수는 계속 늘어만 간다. 이런 상황인데 개척을 하는 것 자체가 모든 문제의 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재정을 주변의 후원금이나 대출금으로 시작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이 교회다. 서울 시내에 교회로 지도검색을 해보면 징그럽게 많이 난립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개 개척교회는 교세가 엄청 작다 못해 교인이 10명 안팎인 곳도 비일비재하다. 엄청나게 적으면 4~5명끼리도 예배를 드린다.

거기에다 대형교회의 화려한 건물과 많은 프로그램들에 밀릴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기껏 모아둔 교인들도 교인 수평이동이라는 현상에 쓸려나가 버리기 일쑤이다. 1달에 1명씩 새 교인이 들어오는데 누적 교인의 수는 10~15명을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 하며 몇 년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즉 교인이 들어오긴 하는데 쌓이질 않는 것.

이러면서 몇 년을 보낼 경우 초기 후원금은 끊어지고 대출 이자는 쌓여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결국은 근성으로 끝까지 버티는 경우와, 결국 교회를 매각하고 목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마지막으로 성장주의, 기복주의 설교로 사람들을 모으고 이 모은 교인들을 모아서 모두 대출해 교회 건물을 건축하고 올인러시하는 것도 또 하나의 선택지이다.

이에 반하여 개혁적 성향을 가진 목사들은 아예 '개척'이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소위 예배당 없는 교회라든가 하나의 예배당을 여러 교회가 돌려 쓰는 식으로 개신교 미션스쿨강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교회도 존재한다. 즉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곧 예수의 가르침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은 보통 사회적으로 직업을 따로 가지고 목사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 즉 호구지책으로 교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쪽은 직업이 따로 있는 만큼 철저히 무보수이다.

결국 일할 교회가 없어서 신학대학원 졸업 후에 무임 목사가 되어 목사를 그만두는[7] 사람도 많다. 이 경우 딱히 전공을 내세워 할 만한 일이 없다 보니 목사를 그만두고 보험설계사, 택시기사, 운송업 등을 주로 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많은 목회자들의 자조성 드립, 특히 대학 선교단체 간사들이 이런 드립을 많이 한다. 간사가 되면 테크트리가, 간사 → 목사/간사 → 종신간사/간사 → 보험/택시/치킨집 이렇게 테크트리가 나뉜다고. 어쩐지 신학과 학생이 공대복수전공 오더라

2.3. 대형교회의 독점

목사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해서 신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 대형교회가 하나 생기면 주변 중소 교회 수십 곳은 순식간에 가난해진다. 마치 대형마트가 하나 들어서면 주변 재래시장구멍가게들이 한순간에 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자들은 큰 교회로 몰리는 경향이 강하기에 이런 성향은 심해진다.

목사들의 평균적인 퀄리티가 저하된 것도 이 경향을 부추긴다. 개신교는 신자들이 교회를 고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자. 멀리서 이사 온 개신교 신자 A가 교회를 다니기는 해야겠는데, 우리 집 앞에 있는 작은 교회가 정신줄 놓은 이상한 목사가 시무하고 있거나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 먹힌 교회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아나? 그리고 그런 교회 한두 번 나갔다가 나중에 안 나가면, 동네에서 얼굴 마주칠 때 피곤해진다. 대형교회에도 문제가 많은데 왜 작은 교회의 이상한 목사를 걱정하냐고 생각이 든다면, 대기업의 비리와 부패가 언론에 더 많이 보도될 뿐이지 실제로는 중소기업이 더 썩었다고 하는 세간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교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평신도 입장에선 여러 모로 대형교회가 검증되고 안전한 선택인 것.

체계화된 유치부/초·중·고등부/청년부 예배 및 활동, 신자들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교육 및 편의 등은 덤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경우 교인 수만 따지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다. 교인 수만 80만 명. 2013년 들어 서초동에 위치한 사랑의교회라는 우리나라에서 규모면에서 최대의 교회 건물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것은 건물 자체만 봤을 때의 얘기. 대지 면적이나 본당 좌석수만 보면 연세중앙교회가 더 크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교인 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훨씬 많다.

2.4. 조직적인 통제 불가능

앞서 설명한 우리나라 개신교의 기복의식+목사제일주의과 함께 한국의 개신교의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원인이다. 즉 중앙이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각자 할거하다 보니 통제와 제재, 체계적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몰리고 헌금이 많이 걷히는 대형교회는 태생적으로 화근을 안고 있는 셈이다. 자식에게 교회 세습까지 넘어가면 그 극한에 이른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개교회주의가 보여주는 문제점 가운데 정점을 찍는 폐해이다. 교회 세습으로 난리 난 예는 수정교회, 명성교회 등이 있다.

종교적 문제와 무관한 분쟁도 자주 벌어진다. 교회나 종파 간의 주도권 다툼이나 신자의 소유권 다툼, 교회 내의 권력 다툼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 특별한 논박이나 설명도 없이 그냥 덮어놓고, 상대를 이단이라 매도하는 경우 역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이단관리 위원회에 뇌물을 먹여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가다 고발된 사례 역시 있다. 심지어는 한 교회 내의 목사들끼리도 상호비방 폭로전이나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한다.

가톨릭교황의 통제 하에 전세계의 모든 가톨릭 교회가 중앙집권을 통한 조직적인 통제가 가능하며, 정교회합성론교회(오리엔트 정교회)는 느슨한 연방제 구조지만 개신교는 구조상 중앙집권이 불가능하며, 교회마다 교리가 전부 다르고 교회마다 숭배방식,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입지 등이 전부 다르다.[8] 이렇게 중앙집권이 불가능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자칫하면 이단 종파사이비 종교가 생길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목사가 흑화되면 바로 사이비 종교 교주로 돌변할 수도 있다.

2.5. 자율 정화 능력의 부재

이미 사고를 친 목사가 아무렇지 않게 계속 목사로서 직분을 유지하고 또 다시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옆 교단에서 쫓겨난 목사에 대한 그 어떠한 검증 없이, 단지 자격만 되면 교단의 목사로 가입시켜주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2011년 8월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김 베드로 목사 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미 오래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모 교단에서 면직되었다. 정확한 사유는 불명이지만, 당시 그가 목회하던 예배당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예배당 장로의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정통'을 부르짖으면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장로교단은 굉장히 많았으며, 각 교단들은 서로를 통제할 어떠한 협의체조차 없었다.

김 베드로 목사는 단지 자격요건을 갖췄다는 이유로 그 어떠한 심사도 거치지 않고 다시 기성교단 목사로 변신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히려 방송국 측에 자신들의 교단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방송 측은 당연히 공개해버렸다. 사회자 김상중은 이렇게 난립한 교단과 그에 따른 목사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그 구조적인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물론 가톨릭에도 이렇게 걸러냈는데도 국내 외에서 사고 치는 신부들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앞서 수없이 언급된 개신교의 느슨한 통제에 비하면 교계제도를 지닌 가톨릭의 처벌은 그야말로 추상 같다. 일단 면직은 기본이요, 교회법에 명시된 '위급상황'이 아닌 한 성직자로서의 모든 신분과 권한이 반드시 박탈당한다. 처벌 또한 세속의 법정에서 받는 처벌은 물론 교회법에 명시된 처벌까지 모두 받는다. 문제를 일으킨 사제가 죄값을 치르기 전에 사목 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구원방주'처럼 교황청의 처분에도 굴하지 않는 신자들이 있긴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파문 등 강력한 행정적 제재는 물론 교회 차원에서 이들은 가톨릭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강조하며,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목 대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아 기존 조직과 확실하게 격리시킨다. 이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천주교회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들을 정교회 등 보편교회를 추구하는 다른 교회 공동체에도 통지하여 그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조치한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가톨릭의 제도들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다. 제도적 장치를 논한다면 개신교의 다양한 종파들 역시 목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을 갖춰두고 있으며, 위와 같은 이상적 서술로 개신교와 개신교 교회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청결한 것 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제도가 공담으로만 남는다면 부패를 전혀 방지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랜 세월동안 적지 않은 수의 사제들이 저지른 아동 성추행과 각종 비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대처는 이 문서가 비판해 마지않는 개신교 교단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세한 사항은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 문서 참조. 직접적인 예시로, 볼티모어와 스페인에서 터진 가톨릭 사제들의 스캔들을 보면, 사제들의 지속적인 아동 성폭행에 대해 교구, 대교구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파문은 물론이고, 사제 권한 박탈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근처 다른 교구로 재배치하는 것에 그쳤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그곳들의 사제 양성 과정은 한국보다 철저하면 철저했지, 전혀 모자라지 않다. 고생스러운 양성 과정은 절대적이고 실천적인 윤리를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패한 목사들 중 가톨릭 사제들 이상으로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친 목사들은 적지 않다.

나쁜 사제들이 일부라면 나쁜 목사들 역시 일부다. 현재 개신교 목사들만큼 그 치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가톨릭이건 불교건 이슬람이건, 부패한 성직자가 나오는 것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종교가 성직자들의 신앙심과 윤리관에만 의존하고, 그들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겨, 알아서 잘하기만을 자라는 것은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체적인 통제 수단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절대 해결될 수 없다.

2.6. 목사의 전횡과 치부(致富)

원체 개신교가 개교회주의다보니 목사가 전횡을 부리기는커녕 장로에게 휘둘리는 정반대의 문제 사례도 있지만, 목사의 문제점에서 설명할 부분은 아니니 일단 목사가 권력을 쥐고 돈을 긁어모으는 사례들을 살펴보자.

서울시 마포구 H교회에서는 H목사가 은퇴 퇴직금과 예우금으로 약 18억 원을 받았다. 문제는 이 교회의 1년 예산이 14억 원이었다는 것 1년 예산을 모조리 은퇴하는 목사에게 가져다 바친 셈. H 목사는 재임 기간 중에도 두 자녀의 미국 유학 자금을 포함한 교육비 전체를 교회 헌금에서 사용했고, 차량 유지비, 아파트 관리비, 심지어는 목사 부부의 해외여행 경비까지 교회 헌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에 노회장을 겸직하여 대외 활동비마저 따로 받았다.

게다가 월급이나 생활보장 외에도 교회연간예산의 몇 % 이상이 목사에게 유용금으로 배분하기도 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잘 자리잡고, 건물도 하나쯤 올릴 때가 될 크기가 되면, 목사가 부목사들을 전담비서로 부리면서 전용실에서 회장처럼 행동하는 걸 보게 된다. 그리고 기업식 서열 문화가 자리잡는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J교회의 J목사는 담임 목사가 직접 자금을 집행해서 자신의 월급을 월 1,700만 원(기본급), 특별 집회시에는 자기 교회에서 자기가 집회를 인도하고 1,000만 원의 강사료를 받고 설교시마다 100만 원의 설교비를 받아왔다. 활동비, 판공비, 도서비 등은 모두 제외했는데 이 정도다. 심지어 이 교회는 교회 명의로 빚이 260억에 달한다.

이런 목사들을 먹사[9]라고 칭한다. 평일에 골프장에 가면 목사들끼리 라운딩하는 것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야말로 교회는 망하더라도 목사는 돈방석에 앉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도 교회의 수익구조에 대한 투명도는 참 어려운 과제다. 괜히 2018년에 교단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목사의 개인적인 치부에 대한 방지책으로, 극단적인 개교회주의를 지양하고, 주교제까지는 아니어도 교파 내에서 어느 정도 통일된 재정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실제로 주교제를 택하고 있는 성공회나 성직자 간 위계가 확실한 구세군에서는 이런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2.7. 신학과 실제 예배의 차이

이미 예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기복주의적 신앙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들 신학에서 배운 것과 실제 교회 생활은 차이점이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는 실제적인 차이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하여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교육과 목회자 세미나에서 분명히 배척되는 기복주의적 신앙이 실제 목사들의 설교에서 항상 들어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잘 통하는 메뉴이고, 이는 교회 확장과 목회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묵인되기 때문이다.

2.8. 목사의 공급 과잉



큰 문제의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는 점은, 목사 적체 현상이다.

목사의 '수요'는 이미 예전에 가득 찼다. 그러나 장로교 교단의 계속되는 분열 및 각 교파/교단마다 많은 목사를 배출할수록 교인이 늘어나니, 서로 닥치고 신학교를 만들고 목사와 전도사를 뽑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예장합동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매년 4~500명 정도의 전도사 및 목사 안수자가 쏟아져 나온다. 통합 측인 장로회신학대학교도 비슷한 수준이고 감리회감리교신학대학교도 통상 300명 정도 된다. 정규 4년제 신학대학 중에서도 메이저급 3곳만 합쳐도 1,000명이 넘어가니 남은 정규 4년제 신학대학은 그 몇 배가 되며, 비인가 신학교 및 군소 신학교까지 생각하면 매년 수천 명 단위의 목사/전도사가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더군다나 정규 4년제 신학대학이라도 입결은 어지간한 대학교 일반학과에 비하면 턱없이 낮아서 학생들의 낮은 수학능력으로 수업에 지장이 갈 정도가 부지기수이다 보니, 질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정규 신학대학도 이모양인데, 비인가 신학교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수준. 심지어 몇몇 지방의 마이너 신학대학들은 정규 신학대학인데도 불구하고 지원자 및 충원률 저조로 교수들이 주변의 고등학교 돌아다니면서 제발 학생좀 보내달라고 구걸 수준의 영업을 뛰는 경우도 있었고, 몇몇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진학률 실적을 만들기 위해서 최하위권 학생들을 지방의 마이너 신학대학으로 밀어넣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니깐... 그리고 신대원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게 지방의 마이너 신대원들은 대학원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저조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는 가톨릭과 무척 대비되는 점이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는데, 5,000번째 한국인 사제가 서품을 받은 것은 2009년의 일이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손호빈 디오니시오 신부) 2017년 9월 기준 서품을 받은 한국인 신부의 수는 6,200명이 안된다. 그러니까, 170여년 동안 6,200여 명이다. 안 그래도 가톨릭 신학교는 그 수가 적었으나 지속되는 학령인구 감소로 신학대 입결이 낮아지고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떨어지자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10]이 2019년부터 폐지를 결정했을 정도이기도 하다.

개신교이면서 주교제를 취하고있는 성공회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서품되는 사제가 10명을 넘는 해가 거의 없다. 대한성공회는 교단 규모에 비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사회 사업을 많이 운영하고 있으며,[11] 일본성공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제를 파송해줄 것을 요청받는 상황인데도, 거의 매년 1자리 수의 사제만을 서품하고 있는 것이다.참고. 주교제 교단들이 개교회주의가 강한 교단들에 비해 사제/목사 수를 엄격히 조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형교회의 경우 목사·부목사·보조목사 할 것 없이 인원이 다 차서 더 이상 받기도 힘든 실정이다. 예를 들어 200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부산광역시개신교 교직자는 약 4천 명에 달하고 있다.

국내 개신교는 교단 각각의 세분화된 통계만을 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전체 목사의 정확한 수를 제시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적어도 10만명을 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6만개가 안되니 상당수 목사는 니트가 되는 게 현실이다. 대형 교회의 월급쟁이 (부)목사로 입에 풀칠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도권 시가지에 단독 교회 건물을 보유한 담임 목사는, 신규 목사로서는 언감생심급의 로망이 되어버렸다.

현재 국내 의사 수가 12만 가까이 되니[12], 목사와 의사의 수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목사나 의사나 사람들이 밀집된 거주지를 중심으로 개척/개업을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현재 국내 상황에서 두 직업 간의 수요는 비교가 안 된다. 의사에게 개업은 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이 중소도시만 해도 수십 명의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들이 몇 개씩 있다. 또한 의사가 하는 일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필수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공공의료나 예방사업 같은 정부의 복지 분야에도 많은 일자리가 있다.[13] 진료와 예방 분야 외에도, 교육이나 연구 분야에 다양한 길이 있다. 그에 비해 목사는 인구의 1/5 정도만이 개신교인인 상황에서, 개척이냐 부목사냐 외에 딱히 별다른 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목사의 공급이 얼마나 과잉인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1년에 의사가 약 3,000명 정도 배출되는 것에 비해, 목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배출된다는 것이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또 약간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의사는 국내의 이름 있는 대학[14]의 의대에서만 배출되는 데 비해, 목사를 양성하는 기관은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각 기관에서 시행하는 교육의 질의 편차가 너무 크다. 이는 목사 수 자체 뿐 아니라 자질에 대한 관리가 요원해지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한다. 의사는 어느 사람에게든 필요한 직업이지만 목사는 불교 신자 등 타종교 신도들에게는 필요 없는 직업이다.

실제로 몇몇 개신교 책자에서도 이걸 우려하여 몇몇 사례를 보여주는데, 어떤 서울 교회의 집사가 운영하는 공장에 그 교회 목사가 4명이나 일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는 목사는 상당히 나은 셈이다.

소규모 개척교회야 목사 하나 있으면 끝나는 판이다. 아예 부목사를 오라고 할 건덕지도 없는 판. 즉 신학교를 졸업하면 닥치고 교회 개척에 뛰어들어야 할 판이니, 교인 수평이동을 노리고 타 교회를 비방하거나 이단적 행위마저도 불사하며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실정이다. 그러니 신학교를 막 졸업하면 교회 개척보다는 큰 교회의 부목사로 들어가는 게 더 좋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큰 교회 부목사로 가기 위해서는 인맥 100%다. 애초부터 그 해당 큰 교회의 인맥이 있어야만 한다. 그 정도 큰 교회라면 그 교회의 장로 아들이 신학대학교를 다니는 경우도 많으므로 이 경우가 부목사로 가는 우선순위가 된다.

2.9. 마귀·사탄 드립

종교인이든 아니든 결국에는 모두 사람이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이런 실수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렴하고 그런 문제가 되는 행위를 고치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에 팔린 종교인(人) '먹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 향한 비판을 교묘하게 '하나님에 대한 비난'으로 포장해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먹사들은 성경의 내용을 자기 입맛대로 짜집기하거나, 뒤튼 형태의 '어긋난 근본주의, 경전주의'를 주장하곤 한다.

일례로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에서 모 목사가 '동성애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 구절은 레위기의 구절이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장 13절
그런데 동성애자라고 해서 딱히 서로 성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즉 성경무오설에 의거하면 오히려 '한자리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는 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레위기의 율법을 곧이곧대로 적용한다면, 남편을 가진 여자 교인과 간음한 일부 먹사도 위의 레위기 구절과 바로 같은 장에 있는 율법을 어긴 죄로 돌로 쳐 죽여야 한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 20장 10절
심지어 어느 먹사가 유부녀와 간통해 아이까지 출산하고 나중에 친자 소송으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신약에서의 예수간음한 여인과 예수[15]에서 비록 죄를 진 자일지라도 함부로 남을 처벌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였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지금은 구약의 시대가 아닌 예수의 희생으로써 열린 신약의 시대이며, 예수도 공생애 때 유대교 율법들(구약의 내용) 중에서도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율법들은 부정하였다. 구약에 나온 내용을 다 지키자면 구레나룻을 자르지 말아야하며, 돼지고기도, 해물도 먹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교와 다를 게 무엇인가?

따라서 구약의 율법보다도 신약에서 재해석되거나 완화된 교리를 우선적으로 따르는 것이 맞다. 단, 상기한 타락한 먹사들이나 이들의 영향을 받은 신자들은 신약이든 구약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구절만 멋대로 가져다 쓰므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먹사가 "구약의 율법은 모두 없어졌다"는 설교를 하지만,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는 마태오 복음서 5장 17절을 예로 들면서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지 않으시고 오히려 완성하러 하셨기에 구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라며 말을 뒤집으며 이중잣대를 보여 주는 식이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장 7절
이는 인간의 죄에 관해서 오직 창조주인 아버지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판단하고[16] 심판을 내릴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예수의 성전 정화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는 교회의 거대화와 부패를 가장 우려하고 혐오했던 사람이다. 교회에 ATM 기기를 두고 청년 신자들을 이용해 과잉선교를 하며 헌금을 강요하고, 엄연한 유부녀인 여자 교인이나 심지어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사사로이 교인의 재산[17]인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하는 일, 즉 '성전의 타락화' 자체가 진정한 근본주의에선 나올 수 없는 작태다. 이는 심지어 레위기와 같은 구약에서 나오는 십계명조차 어기는 행위이다.

이들의 무리한 주장에 대해 다른 이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논지를 흐린다. 문제는 정작 예수는 "비판을 하는 자는 비판을 당연히 받는다"고 언급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마태 (7:1~2)의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즉 먹사들의 되도 않는 행태와 비판은 이미 그네들이 좋아하는 성경에서, 그것도 예수 본인이 욕을 먹을 것이라고 언급한 셈이다.

즉 자신이 누군가에게 비판이나 모욕을 했으면 그에 대한 반동을 겸허히 받는 것이 성경무오론에 의거한 경전주의에서는 오히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교묘히 신성모독이니, 현대에 맞추어 재해석해야 한다느니 하며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적그리스도적 행태를 태연히 하고 있다. 성서무오설근본주의를 밀 거면 정말 제대로 밀든지 해야 하는데, 그건 싫고 지네 좋은 거만 뽑아 쓰려 하니 당연히 모순이 생긴다. 자신들이 부족해서 가진 편견을 성경에 근거해 정당성을 얻으려는 셈. 그런데 이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뜻대로 왜곡하는 거니 배교자이자 적그리스도 맞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오는 정당한 비판을 '마귀, 사탄의 시험'이라고 일축시키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사탄의 도전을 받았다고 마태오 복음의 구절 (4:1~11)을 인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말에 비판적인 사람은 다 적그리스도요 사탄이요 마귀이고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참고로 이런 마귀, 사탄드립은 돈 문제를 가지고 먹사, 개신교인과 싸울 때 제일 흔히 들을 수 있다. 특히 장례식과 유산 분배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비 개신교인과 개신교인이 형제자매일 경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들은 직위고하 불문하고 어린이가 아닌 한 거의 무조건 부조를 낸다. 그러나 오히려 먹사들은 장례식에서 기도를 한 후 돈을 받아간다. 실제 장례 집전에서 종교인이 수고비를 받는 경우는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18] 문제는 한국은 장례식에 오는 조문객이 오히려 돈을 주는 입장이기 때문에 '장례식에서 돈벌이냐?'라며 개신교를 믿지 않는 다른 가족들의 눈총을 받기 쉽다.

보통은 그냥 고인 가시는 길에 언성 높이기 싫기도 하고, 고인이 믿는 종교인의 축복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냥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고인이 생전에 가 보지도 않은 교회의 먹사들까지 와서 앉아서 다른 가족들에게는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기도 몇 분 하고 돈을 받아간다거나, 아니면 고인이 개신교 신자도 아닌데 가족 중 개신교인인 사람이 목사들을 불러와 기도를 부탁하고는 돈을 집어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선하는 자기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가족들에게 기도비를 부담시킨다. 부담을 안 시켰다면 나중에 부조금 정산할 때 확인해 봐라. 100% 장례비 명목으로 기도비가 빠져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비 개신교인 가족의 뚜껑이 열린다. 그래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면 '마귀, 사탄, 고인모독 ' 따위로 몰아붙인다.

3. 해결 방안

3.1. 세금 부과

종교인 과세는 다수의 가난한 목사들에게 타격이 없고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소수의 부자 목사에게만 큰 타격을 준다.[19] 또한 종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니 종교인 입장에선 오히려 찬성해야 한다.

목사의 횡포가 특히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금전 문제이다보니 전체적으로 보면 빈곤하기 짝이 없는 직업군임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의 행패로 인해 목사나 사제 등 종교인 전체에게 세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늘고 있다. 천주교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교단 차원에서 모든 성직자의 세금을 자진 납부해왔다. 오랜 기간 이 두 교회만이 성직자 납세를 하고 있었으나, 대한성공회가 2012년에 성직자의 자진 납세를 교단 차원에서 결의함으로서 이에 합류했다. 대부분의 가난한 목사들은 종교인 과세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소득이 면세점 이하이기 때문에 소득세 몇 만원 아까워 양심을 팔 필요도 없다.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되는 것이 가능하므로 떳떳하게 과세를 주장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는 몇 백만 원~몇 천만 원 월급 받으면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먹사들이 극구 반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종교인 과세는 잘만 하면 다수의 빈곤한 목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몇몇 국가에서는 종교세를 거두고 혹은 신자들이 헌금 대신 종교세를 내고 그 돈으로 교회를 지원해준다. 한국에서 이렇게 한다면 대형교회 목사에게는 많은 세금이 부과되고 영세한 목사에게는 지원을 늘려주는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한다. 그리고 사회 통념상 종교인을 완전한 '사업자' 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도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수도 없이 열거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 투명해지기 전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목사들이 실질적인 자영업자로서 비지니스 개념을 종교에 도입했는데도 말이다.

참고로 2013년 종교인 과세 정책은 백지화되었다. 다만 이 정책은 현실성이 없기는 했다. 이렇게 될 경우 목회자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정부인데, 당연히 정부는 목회자들이 과잉공급되는 사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사 공급을 줄이거나, 자격을 까다롭게 하는 식의 조치를 취하게 될 텐데, 이렇게 될 경우 시각에 따라서는 "정부가 종교에 관여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바티칸의 관계에서 보듯이,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2014년 다시 이 의견이 등장하게 되었고, 국회에서 종교인들과 협의 중이다.

그리고 2016년 종교인 과세에 대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예정되었다. 다만 위처럼 종교세가 아닌 개인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존 소득세법에서는 종교인의 소득을 기타소득 중 사례금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시행이 계속 유예되는 바람에 종교인마다 과세 여부 및 신고방법이 달랐다. 즉, 거의 세금을 종교인의 양심에 맡겨둔 것. 이에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근거를 마련하여 개정한 것이다. 거기에다 교회 건물, 토지는 비사업용으로 세금을 안 내도 된다. 한국의 개신교 면세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때 협력의 댓가로 개신교 등 여러 종교 교단의 세금을 빼 주었고,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중용했고 본인이 개신교 장로인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며 쭉 이어진 거리는 설이 있다.

실제로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연말정산용으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정작 교회 자신은 세금을 안 내고 있다. 이는 법리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세무 당국에서는 이 신자들의 연말정산 종교기부금 영수증으로 역추적하여 교회의 헌금 수입을 파악할 수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십일조 통장이나 건립 헌금은 종교 기부금 내역에 들어 있으나, 수시로 내는 특별 헌금, 특별 기부금은 소득공제영수증을 안 내어 주고,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돈 또한 아무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리문제를 떠나서도 문제인 것이 하나님에게 낸 헌금이 왜 사회 기부금인가?

참고로, 개신교의 경전인 신약성경[20]에는 "카이사르(로마 황제)에게 낼 것은, 카이사르에게 내고, 하느님에게 낼 것은 하느님에게 내라"고 예수가 언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제에게 낼 것이 세금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또한, 예수 본인도 물고기 입에서지갑? 동전 두 닢을 꺼내 자신과 제자들의 세금을 냈다고 기록되어[21] 있다.

3.1.1. 다시 고개 드는 종교인 과세 유예 시도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2017년 5월 28일 오후 정례브리핑을 마친 뒤 2018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 "이 분야의 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불 보듯이 각종 갈등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종교인 과세 시기를 2020년으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진 것에 대해 "그것은 김 위원장의 이야기다. 청와대와 조율을 통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종교인 과세 유예 추진 논란 참조

3.1.2. 김진표, 김동연 종교세 과세 조기시행 방침에 우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부터 종교세 과세를 조기 시행할 방침을 시사하자 우려를 표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종교인 과세 시기 논란과 관련해 독실한 개신교인인 김 위원장이 유예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김 부총리는 후보자 시절 "종교인 과세 내년 실시"를 강조한 바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었다.

김진표는 종단 내 알력다툼 원인으로 전락, 반대 세력이 탈세 제보를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진표, 김동연 종교세 과세 조기시행 방침에 우려

3.2. 중앙집권제도

현재의 개신교장로회 따로, 감리회 따로, 침례회 따로인 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각 교회마다 담임목사가 있는데 경쟁적으로 신자들을 영입하려고만 하며, 각각 독립된 개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황이 전세계의 가톨릭교회를 통제하는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는 완전히 군웅할거이다. 그런데 그게 좀 심각한 게, 목사가 아예 사이비 종교의 교주급으로 변질되고 신격화되는 경향마저 있다는 게 문제다. 개신교 교단 중에서 그나마 중앙집권적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성공회인데, 그것도 가톨릭에 비해서는 통제력이 약한 편이다. 최근 성공회는 동성결혼 인정이나 동성애자 사제 임명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개신교가톨릭과 동일하게 총 당회장을 선출해서 그 단 한 명뿐인 총 당회장에게 교황 수준의 권한을 줘서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신교를 전체 통제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톨릭의 인사구조를 그대로 본받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생기는 장점이, 바로 교회의 군웅할거화를 막을 수 있고, 모든 교회들이 중앙 총당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미자립교회에는 좀 더 많은 지원을 하게 해 주고 대형교회는 그만큼 봉사와 헌신을 할 임무가 주어지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목사들이 비즈니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목사 및 장로의 권한도 좀 줄일 수 있어서 교회 내에서의 전횡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총 당회장의 경우는 임기제로 평신도들의 투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중앙집권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것도 개혁주의나 개교회주의가 핵심 가치인 대한민국의 대다수 교단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제가 있고, 근본주의 계열 교단들은 반(反)교회일치운동 성향[22]이 강하기 때문에, 개신교 교단들이 제대로 연합하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나 크다.

교회일치운동의 찬성/반대와 같이 거창한 구호를 내세울 것도 없이, 한 교단 안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 대형교회가 스스로 피땀 흘려 일군 재산과 기득권을,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지역의 같은 교단 소속 영세 교회나 미자립교회를 위해서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것. 이런 판국에 위에서 말하는 수준의 다른 교단과의 교류는 가능할 리가 없다.

애시당초 개신교라는 개념이 하나로 뭉뚱그리기가 어렵고, 아이러니하지만 '견해가 다를 경우 새 분파를 차려 나가는 것'이 개신교의 생명력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에 중앙집권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중앙집권적 교회론 자체가 개신교 특히 개혁주의 계열[23]의 정체성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얘기.

반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 교단에서 가톨릭을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가,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교회론이 비성경적이라는 개소리주장이다. 특히 침례회 보수파라든지 회중교회 보수파가 그런 헛소리를 한다. 중앙집권적인 교회 구조가 비성경적이라는 말은 반론의 여지가 많다. 세계 개신교계에서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가진 교파는 성공회, 감리회, 구세군, 루터교회 등 적지 않다. 오히려 개교회주의를 특별히 강조하는 교파가 침례회, 장로회 정도로 더 적다고도 볼 수도 있다. 개신교가 원래부터 중앙집권적이 아닌 것 같이 보이는 것은, 한국의 개신교에서만 느껴지는 일종의 착시다. 일단 개교회주의를 강조하는 장로회와 침례회만 합해도 한국 개신교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그 나머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감리회마저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가 대중들로부터 욕을 먹는 이유가 중앙집권적인 교회 구조 때문인가? 이 문단의 제목을 다시 보자. 혹시라도 중앙집권적으로 교회 구조를 바꾸면 좀 나아질까 싶을 정도로 개교회주의가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개교회주의가 흑화한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교회 세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중앙집권적인 교회 구조이다. 교회 세습을 막지 못하면서 (또는 방치하면서) 중앙집권적인 교회 구조에 대해 비성경적이라 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자기 교파에 대한 사랑이 맹목적인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정치목사가 총당회장 자리에 군림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19세기 스코틀랜드네덜란드 칼뱅교회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한 선례가 이미 있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재림교회의 경우 중앙집권 체제로 오랜 세월 동안 문제 없이 잘 굴러가 왔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3.3. 교인들의 의식 개혁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조셉 드 메스트르 (Joseph de Maistre)
종교집단의 타락은 이 인용문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회의 미래는 성경을 아는 평신도들의 등장에 달려 있다."
에라스무스,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주는 안내서》, 1503
여태까지의 항목들을 읽으면 목사가 타락한 것이 전적으로 목사의 순수한 악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눠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은 바로 그 목사를 맹종하는 우매한 교인들이다.

사실 목사 개인의 스펙을 따져보면 딱히 횡포를 부릴 수 있을 만한 능력을 찾을 수 없다. 성공한 사업가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의사변호사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 권력이 뒤를 봐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일부 목사들이 정부와 결탁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엄연히 정부와 교회가 분리되어 있다. 문민정부 이후로 개신교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일이 있어왔으나, 어디까지나 국정 수행에 대통령 개인의 종교적 가치관이 개입할 수 있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 군사정권 때처럼 무제한적으로 자기 패거리들 챙겨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교회 운영에 대해서도 목사에게는 아무런 전문적인 능력이 없다. 목사들이 회계를 아는가? 법을 아는가? 하다못해 노가다 십장 기술이라도 있어서 공구리라도 칠 수 있는가?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교회 밖 현실 세계에서는 쓸모 있는 스펙이 거의 없어서, 신앙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서 목사 일 못하게 되면 잉여에 가까운 수준이 된다.

더군다나 개신교 목사는 천주교/정교회 사제와 같이 평신도와 확실히 구별되는 성직자의 신분도 아니다. 천주교/정교회에서는 사제 없이 미사성사가 집전되는 일이 절대 있을 수 없다.

종합해보자면, 목사라는 자리는 말 한마디에 자기 의지대로 평신도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누구보다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하며 평신도와의 소통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위치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목사들이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전부 개신교 신자들이 목사에게 대를 이어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목사를 하나님처럼 신격화, 우상화, 숭배함으로써 권력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충성이란 것도 일제 시대처럼 총칼로 강요된 충성이 아니라 교인들의 자발적인 충성이란 게 문제다. 대한민국이 개신교를 국교로 삼은 신정국가도 아니고, 특정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 상황도 아니다. 교회에 나가서 헌금 바치고 목사에게 아멘 아멘 하는 것은 순전히 교인들의 자기 판단에 의한 것이다. 목사가 자기 생각을 교인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두고 보통 세뇌라고들 비판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 업체에서 하는 세뇌와는 다르다. 외부의 강요 없이 자기가 직접 현장에 찾아가 스스로 목사의 가치관에 동화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종교가 타락했을 때는 썩어버린 종교계의 자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항상 등장하였다. 이들은 과거 종교집단의 권위를 이용한 반지성주의 조장이나, 면벌부와 성직매매로 대표되는 종교인의 타락을 '가루가 되도록' 공격하였다. 목사의 횡포와 타락을 방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목사의 잘못을 교인들이 정당하게 비판하면, 그 목사는 자신의 언행을 돌이키고 교인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교회 권력의 원천이 교인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이것은 상술한 것처럼 '실제 역사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타락한 목사들이 끊임없이 언론 지면상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교인들이 스스로 비판 의식을 제거한 채 목사를 맹종하고 하나님처럼 신격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투표했을 때 90% 이하로 찬성 나오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입각한다면 목사는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가톨릭에서 빠져나간 개신교의 핵심 모토가 분리와 개혁인데 어떻게 그리스도교 가치관에 입각하는 것이 목사에 대한 맹종, 우상화, 신격화로 이어진단 말인가. 하지만 개신교의 정체성을 떠나서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교인들이 어디까지나 '스스로 원해서' 노예가 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의식 전환에 따른 교회 개혁은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치명적인 잘못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함에도 전혀 시정되지 않는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를 나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개교회주의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주교제를 시행하는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조차도 한 성당의 사제가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때, 그 성당에 출석하던 신자가 이에 반발하여 가까운 다른 성당으로 다니고 싶어 하면, 이를 강제적으로 막지 않는다. 어차피 타락한 채로 경직된 목사는 내가 그 교회에 있든 없든 어떻게든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그 교회는 내 힘으로 어찌 해볼 도리도 없이 여기저기 서서히 곪아갈 것이다. 그런 경우 현실적으로 교인으로서 목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진심어린 충고/진언과 함께 교회를 나오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목회를 하고자 하는 목사를 찾아가자.

어차피 개신교 교리상 종말이 다가오면 극단적 세대주의의 강림 먹사와 그 추종자는 늘어나게 되어 있다. 솔직히 돈이 거저 들어오는데 안 늘어날 리가 없다. 그저 스스로 조심하여 먹사 본인이나 그의 추종자가 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4. 관련 문서


[1] 겉으로만 믿는 신이 예수인지 부처인지 그런게 다른 것이지 사실상 신이 누가 되든 상관없고 잘 먹고 잘 살고 소원 들어달라고 비는 기복신앙이다. 물론 진짜 원류들은 기독교도 이슬람도 불교도 소원 들어주는 그런거랑 하등 상관없고 신자가 직접 헌신하고 노력해야하는 종교다.[2]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는 여전히 성서무오설을 가르치며 무오설의 지지자도 적지 않다. 오해 없기 바람. 이중 성서무류설/성서불오설(중요한 부분은 문제 없다)까지는 복음주의의 정식 입장으로 인정되는데 문서의 항목 참조바람[3] 이 대목을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게 골로새서다. 특히 골로세서 2장.[4] 근데 십일조를 안 내도 되는 교회가 있지만 목사가 힘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 소교회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5] 이 구분이 실제로 성경에서 확실하게 구분되고 있다. 레위기/신명기/느헤미야/사도행전 초반부를 참고하면 쉽게 알 수 있으니 참고.[6] 교회로 쓰일 건물부터 구하는 게 먼저이기 때문.[7] 목회를 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사로서의 자격이 소멸된다.[8] 개신교의 분파 중에선 성공회가 자체 교계조직은 있으나, 다른 개신교 교파들은 개교회주의가 강하다.[9] 개신교 이미지에 먹칠하는 목사, 또는 돈이나 섹스같은 세속적인 것을 밝히는 목사.[10] 천주교 부산교구천주교 마산교구의 사제를 양성했다.[11] 대한성공회서 위탁운영 중인 사회복지시설은 150여 곳으로, 이는 국내 성공회 교회 수보다 더 많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나눔의집'이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으며, 노숙자들을 위한 푸드뱅크 사업도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몸집은 작지만 사회에서 의미있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성공회의 신앙 자세에서 비롯된다.[12] 국민 1,000명 당 2.3명이다. 보건복지부 자료 참조[13] 의사는 자신이 뜻만 있다면 5급 공무원이 되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14] 요즘은 반대로 의대가 있는 대학이 명문 대학이 되는 면도 있다.[15]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후대에 첨가된 날조성구이다. 원래 내용에는 없었던 부분이다. 1세기와 시기적으로 가까운 신약 초기사본들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사후 수백년이 흐른 이후에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16] 그리스도교 교리에서 하나님은 죄없는 지고한 존재이므로[17] 교리로 따지면 신성한 하나님의 재산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집'[18] 일례로 일본불교 스님들만 해도 장례식에서 경을 읊어주고 돈을 받아간다. 맨발의 겐에서도 주인공 나카오카 겐이 경을 읊어주고 돈을 버는 장면이 나온다.[19] 당연한 소리지만 현대에서는 많이 벌면 많이 벌어야 한다는게 원칙이다. 때문에 가난한 목사들 입장에서는 과세가 이뤄져도 설령 많이 내고 싶어도 낼 돈이 별로 없지만 부자 목사들 입장에서는 과세가 이뤄지면 낼 돈이 많아진다.[20] 구약성경개신교 교파에 따라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신약성경은 모든 기독교가 경전으로 채용한다. 개신교도 엄연히 기독교의 종파이므로 당연히 신약성경을 개신교의 경전으로 쓴다.[21] 마태오 복음서 17장 24절~27절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실족케 하지 않도록 너는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첫번째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들어서 입을 열면 한 세겔을 발견하리니 그것을 취하여 나와 너를 위해 주어라" 하시니라.[22] 가톨릭이나 정교회와 대화하는 것을 불순시한다든지...[23] 개신교이지만 보편교회를 '자처'하는 성공회는 제외. 그리고 감독이라는 제도가 있고 성공회가 전신이라 거의 비슷한 체제를 가진 감리교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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