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0 23:51:45

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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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FC
Manchester City F.C.
정식 명칭 Manchester City Football Club
별칭 시티즌 (The Citizens)[1]
블루스 (Blues)[2]
블루문 (Blue Moon)
샤크팀 (Shark Team)[3]
창단 1880년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1887년 (아드윅 AFC)
1894년 4월 16일 (맨체스터 시티 FC)[4]
소속 리그 프리미어 리그 (The Premier League)
연고지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Manchester)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Etihad Stadium)
(55,097명 수용 가능)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맨체스터 더비
소유주 시티 풋볼 그룹 (City Football Group)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Sheikh Mansour bin Zayed Al Nahyan)
회장 칼둔 알 무바라크 (Khaldoon Al Mubarak)
사장 페란 소리아노 (Ferran Soriano)[5]
단장 치키 베히리스타인 (Txiki Begiristain)
감독 펩 과르디올라 (Josep Guardiola)
주장 뱅상 콩파니 (Vincent Kompany)
부주장 다비드 실바 (David Silva)[6]
영구결번 23[7]
공식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파일:ManCity.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구글 플러스 아이콘.png 파일:유튜브 아이콘.png
공식 웹 사이트 및 팬 카페 파일:ManCity.png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png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png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5회)
1936-37, 1967-68, 2011-12, 2013-14, 2017-18
EFL 챔피언십 (2부)
(7회, 최다)
[8]
1898-99, 1902-03, 1909-10, 1927-28, 1946-47, 1965-66, 2001-02
FA컵
(5회)
1903-04, 1933-34, 1955-56, 1968-69, 2010-11
EFL컵
(6회)
1969-70, 1975-76, 2013-14, 2015-16, 2017-18, 2018-19
FA 커뮤니티 실드
(5회)
1937, 1968, 1972, 2012, 2018
UEFA 컵 위너스컵
(1회)
1969-70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리야드 마레즈 (Riyad Mahrez)
(2018년, From 레스터 시티 FC, 60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숀 라이트필립스 (Shaun Wright-Phillips)
(2005년, To 첼시 FC, 2730만 £)[9]
최다 출장 앨런 오크스 (Alan Oakes) - 680경기 (1959~1976)
최다 득점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 204골 (2011~ )
EPL 득점왕
(4회)
프랭크 로버츠 (1924-25)
프란시스 리 (1971-72)
카를로스 테베스 (2010-11)
세르히오 아구에로 (2014-15)

2018-19 시즌 유니폼 킷
파일:맨시티 2018-19 홈.jpg 파일:맨시티 2018-19 어웨이.jpg 파일:29edf62c7b9e.jpg 파일:6d7bcbcd0c21.jpg
HOME AWAY THIRD GK
메인 스폰서 소매 스폰서 유니폼 메이커
파일:attachment/2048px-Etihad_Airways_logo.svg.png 파일:Nexen-Tire_Logo-ManCity.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Logo_NIKE.svg.png

1. 개요2. 엠블럼
2.1. 독수리2.2. 새 엠블럼 (2016~ )
3. 역사
3.1. 창단과 짧은 리즈시절 전까지3.2. 영광의 시대와 침체기3.3.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3.4. 만수르의 구단 인수3.5. 현재
4. 역대 감독5. 시즌별 일람6. 스쿼드
6.1. 임대중인 선수6.2. 주요 선수
7. 역대 스폰서
7.1. 메인 스폰서7.2. 유니폼 메이커
8. 현재 스폰서
8.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8.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
9. 이야깃거리
9.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9.2. 한국과의 관계9.3. 기타
10. 둘러보기

1. 개요

맨체스터 시티의 응원가 블루 문 by 비디 아이[10]



연고지는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트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시이며, 홈 경기장은 에티하드 스타디움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 / 2003년 ~ 현재)이다.

맨체스터의 이름을 가진 축구 팀은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안에 무수히 있지만 개중 그레이터맨체스터 주의 중심도시인 맨체스터 시를 연고로 하는 유일한 1부 리그 팀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트래포드(Trafford)가 연고지이고 볼턴 원더러스 FC, 위건 애슬레틱 FC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의 볼턴위건에 속해있다. 자세한 사항은 맨체스터 항목 참조.

1880년 세인트 마크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하여 1887년 아드윅 AFC로 바꿨다가 1894년에 맨체스터 시티로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구단주는 아랍 에미리트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다. 법적으로는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ADUG)이 시티 풋볼 그룹의 대주주가 되고 시티 풋볼 그룹과 그 회장인 칼둔 알 무바라크가 그를 대신하여 구단을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만수르가 투자청을 세운 이유는 맨시티를 인수하기 위해서이고 그 예하의 시티 풋볼 그룹은 맨시티 인수 이후 전 세계의 다른 구단들(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 등)과 함께 지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경영 구조일 뿐이므로 최종 결재권자는 여전히 만수르이다.

2. 엠블럼

파일:external/content.mcfc.co.uk/LogoNew.jpg
맨체스터 시티 FC의 엠블럼 변천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at_of_arms_of_Manchester_City_Council.png
맨체스터 시의회의 문장
방패를 포함해서 역대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또는 몇 군데에서만) 들어가는 상징들은 모두 본래 맨체스터 시의 상징들에서 따온 것이다. 각각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방패는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발생 계기가 고대 로마 시절 요새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도시가 지형적으로 방어 능력이 뛰어났던 것을 의미한다.

방패 안에서 윗부분에 있는 것은 (船)로 맨체스터가 교역도시임을 상징하며 배 아래에 물결치는 것은 맨체스터에 있는 운하를 의미한다.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물 위에 떠다니는 배를 찾을 수 있다.

그 아래의 세 개의 직선은 맨체스터의 세 개의 을 뜻하는 것으로 각각 어웰 (Irwell), 어크 (Irk), 메들록 (Medlock) 강이라고 한다.

그리고 장미는 맨체스터가 지금은 분리되어있지만 본래 랭커셔 주의 일부였기 때문에 랭커셔 주와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인 장미가 들어간 것이다.

2.1. 독수리

1997 City unveil a new club badge. This new design features the Latin motto “Superbia in proelio” meaning ‘Pride in battle’.
1997년 시티가 새로운 클럽 뱃지를 발표한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전장에서의 자긍심' (Pride in battle)이라는 뜻의 라틴어 모토 “Superbia in proelio”가 특징이다.
- 공식 웹 사이트의 클럽 히스토리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쓰인 엠블럼이다.

중앙의 독수리는 검독수리 (Golden Eagle)이며 아래에 적혀있는 문구는 Pride in Battle (전장에서의 자긍심)을 뜻하는 라틴어 표어인 Superbia in proelio이다. 엠블럼에는 필기체로 적혀있기 때문에 o가 a와 헷갈려 proelio, proelia, praelio, praelia 등(...) 논쟁이 있었지만 분명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proelio가 맞다.

독수리 위에 있는 세 개의 별은 세리에 A유벤투스인테르처럼 리그 우승 횟수 같은 걸 상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식이다.

사실 이 엠블럼의 문양은 화려해보이지만 이것이 만들어진 역사는 참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엠블럼이 만들어진 해가 1997년인데 맨시티는 해당시즌인 1997-98 시즌 챔피언십 18위를 차지하며, 팀 역사상 최초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기 때문이다. 강등당하기 바로 직전인 당시 1997-98 시즌엔 2부 리그 14위를 차지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팀 성적이 떨어지는 와중에, 구단은 뜬금없이 100년간 쓰던 역사적인 엠블럼을 버리고, 단순히 멋있어 보인다고 아무 의미없는 별 세개와 독수리로 엠블럼을 교체했다. 당시 팬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주변 여론은 이 사실을 비꼬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만수르 부임부터 엠블럼에 대한 얘기가 오가다가 교체 20년 뒤인 2016년에 전통의 엠블럼으로 회귀하게 된다.

2.2. 새 엠블럼 (2016~ )

파일:external/4.bp.blogspot.com/Man-City-New-Crest%2B%25281%2529.jpg
새 엠블럼 발표
2015-16 시즌, 예전 엠블럼으로 회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다가 영국 특허청의 유출로 인해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현지 팬들과 30일 동안 엠블럼의 교체 여부와 엠블럼의 문양에 대해 협의했는데 이전의 독수리 엠블럼을 유지하자고 하는 입장은 1/3 (34%) 밖에 되지 않았으며 엠블럼을 교체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차기 엠블럼에 들어갈, 맨시티와 맨체스터를 대표할 수 있는 색상과 상징물들을 투표했는데 색상은 하늘색 (94%) 과 흰색 (68%) 이 채택되었고, 상징물은 이전의 엠블럼에도 있었던 맨체스터의 배 (85%), 세 개의 강 (67%), 그리고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붉은 장미 (60%) 가 채택되어 새 엠블럼에 조합되었다.

그 외 기타 팬들의 피드백과 기존 엠블럼 등을 포함하여 새 엠블럼을 만들었는데, 팀 이름의 배치를 위아래로 각각 Manchester, City로 나눈 것은 독수리 엠블럼에 있던 이니셜 (M.C.F.C)보다 더욱 맨시티를 대표하는 이름을 넣기 위해, 창단연도인 1894를 넣은 것[11][12]은 맨시티의 긴 역사와 불변성을 강조하기 위해, 방패를 넣되 그 모양이 예전과는 다르게 바깥 원을 넘도록 만든 것은 방패 안의 문양을 돋보이게 하며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3. 역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ManchesterCityFC_League_Performance.svg.png
맨체스터 시티 FC의 역대 순위 변화 출처

3.1. 창단과 짧은 리즈시절 전까지

1880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고튼 서부에 위치한 세인트 마크스 교회 (St. Mark's Church)의 교인들이 다분히 인도적인 목적으로 훗날 맨체스터 시티로 알려질 축구 클럽을 창단했다. 당시 많은 실업자와 범죄자들이 맨체스터 동부, 특히 고튼에 만연해있었는데 현지인들을 위한 새로운 활동을 도입함으로써 이것을 개선하고 사회적 병폐를 줄이라는 아서 코넬 (Arthur Connell) 목사의 독려에 따라 교회 관리인인 윌리엄 비스토우 (William Beastow)와 토마스 굿비히어 (Thomas Goodbehere), 그리고 아서 코넬 목사의 딸인 안나 코넬 (Anna Connell)이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 (St. Mark's West Gorton) 라는 교회 축구 팀을 창단한 것이다. 특히 안나 코넬은 19세기에 창단된 프로 축구 팀 가운데, 창단 멤버 중에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게다가 안나 코넬이 창단에 큰 기여를 했는데 원래는 크리켓이나 럭비팀을 만들려고 했는데 당시 지방 음주 노숙자라든지 여러 사회문제가 된 알콜중독자를 위한 스포츠로 두 종목은 맞지 않는다며[13] 축구팀을 만들자고 건의한 게 그녀였다고 한다.(2016년 9월호 베스트 일레븐 지 출처)

1884년,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의 또 다른 축구 클럽인 고튼 애슬레틱과 합병되지만 불과 한 시즌 뒤에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 AFC로, 고튼 애슬레틱은 웨스트 고튼 애슬레틱으로 분리되었다. 1887년에 연고지를 맨체스터 시 동부에 위치한 아드윅이란 동네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바꾸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기게 된다. 1889년에는 하이드 로드 근처의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23명의 광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고, 아드윅 AFC와 뉴턴 히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예전 이름)가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1892년 잉글랜드 축구 2부리그가 설립되었고 아드윅 AFC가 창립 멤버로 참가, 1894년에는 팀 이름을 맨체스터 시티 FC로 바꾸기도 하였으나 그 시절 리그는 매우 열악했고 지방의 중소 구단으로 자금 문제로 2부 리그로 내려갔다가 1898-99시즌에서야 드디어 1부 리그로 올라왔으나 다시 2시즌도 안 가 강등당했다. 그러다가 1시즌 만에 승격과 같이 다음 해인 1903-04시즌 볼턴 원더러스를 꺾고 FA컵 우승과 같이 리그 2위(우승은 더 웬즈데이가 2연속 우승)의 성적을 거두며 이름을 알리는가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강등과 승격을 거치며 중소 구단으로서 지내야 했다.(그 와중에 1923년 홈구장 하이드 로드가 불에 타버려서 메인 로드로 경기장을 옮기기도했다.)

1925-26시즌에는 감독 없이 FA컵 우승을 하기도 하고, 맨유 원정에서 6대1로 이기기도 했지만 강등당한다(...). 1928년에는 최고의 서포터즈를 가진 클럽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1934년 FA컵 우승, 라이벌인 맨유가 첫 리그 우승(1907-08시즌)을 거둔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인 1936-37시즌에서야 맨시티도 첫 리그 우승의 감격을 누린다. 하지만 37-38시즌, 리그 42경기에서 80골이나 넣는 공격력을 보유하고도 77실점이나 허용하는(...)수비진 탓에 강등당했다. 결국 맨시티는 지금까지 다음 시즌에 강등된 유일한 디펜딩 챔피언이자 실점보다 높은 득점(+3)을 기록하고도 강등된 유일한 팀으로 남는다.

승격과 강등을 거치면서 1955년에 FA컵 결승전에서 뉴캐슬에게 패해 우승컵을 내주지만, 1년 후 다시 결승에 진출해 우승한다. 1958년 뮌헨 참사에서 맨시티의 골키퍼였으며 기자로 활동하였던 프랭크 스위프트[14]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3.2. 영광의 시대와 침체기

1965년, 조 머서가 감독으로, '빅 말(Big Mal)'이라는 닉네임을 막 달았던 말콤 앨리슨이 코치로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했다.

머서와 앨리슨의 부임 이후 맨시티는 큰 변혁을 맞았다. 조 머서 감독의 지휘 아래 말콤 앨리슨은 활력 넘치는 공격진을 만들었다. 간단하지 않은 전술,투지 넘치고 정교한 축구를 3년 연속 이어갔고 2부리그로 강등된 신세에서 다시 승격, 1967-68시즌 팀의 2번째이자 31년만의 리그 우승, 1968-69시즌 FA컵 우승, 그리고 1969-70시즌, 풋볼 리그 컵 우승과 함께 지금까지 맨시티의 유일한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인 UEFA 컵 위너스 컵까지, 이 모든 것은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1972년 구단 앰블럼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짧은 영광도 잠시, 1971년 피터 스웨일스 회장 취임 후 조 머서가 맨시티를 떠났고, 1973년 맨시티 성공의 주역이었던 앨리슨이 조 머서와의 불화로 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팀을 떠났다. 이후 1975-76시즌 풋볼 리그 컵우승을 하지만, 1981년 FA컵 준우승 이후로 다시 맨시티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한다. 그 뒤로 거둔 우승은 고작해야 2부 리그 우승뿐이었다. 또다시 강등과 승격을 되풀이하던 하위 팀으로서 오랜 세월을 지내야 했다.

3.3. 프리미어 리그 이후, 탁신의 인수

1992-93시즌부터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새롭게 개편하면서 맨유가 프리미어 리그 최다 우승을 거두며 세계적인 강호이자 인기팀이 될 때, 맨시티는 1995-96시즌 챔피언십 리그(2부), 더 나아가 1997-98시즌 리그 1, 즉 3부리그까지 강등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리그 강호는 아니지만, 이것은 역대 유럽 클럽 국제 대회 우승팀 역사상 처음(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으로 3부 리그 강등기록[15]이란 불명예였다. 그나마 1시즌만인 1998-99시즌 도중에 조 로일 감독이 취임하여 1999년에 다시 2부리그로 승격했고[16] 1999-2000시즌에 2부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여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으나, 한 시즌만에 강등되었다.

그러나 2001-02시즌에 새로 부임한 케빈 키건의 지휘 하에 곧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와서 승격 첫 시즌인 2002-03시즌을 9위로 마감하여 나름 선전했고, 2003년에는 영광과 오욕의 메인 로드를 떠나 새 구장인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둥지를 틀었다.

구장 이전 이후의 리그 성적은 연이어 16위, 15위, 14위로(단, 2004-05시즌에서는 8위를 했음.) 하위 팀으로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는 신세인 팀이었다. 2006-07시즌에는 리그 컵에서 3부 리그 팀 체스터필드에게 털리고, 리그 내내 홈에서 10골만을 넣고, 리그 후반기 1월 이후엔 홈에서 단 한 골도 못 넣는 미친 대활약을 벌이면서 강등을 겨우 모면하고, 이 때 감독 스튜어트 피어스는 맨시티의 흑역사가 되어 쫓겨난다.[17] 컬트적인 인기를 좀 얻긴 했지만...

그러다가 2007년 쿠데타로 태국에서 쫓겨난 전 타이 총리 탁신 친나왓이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구단을 매입한다. 사실 맨시티 서포터들이나 영국 반응은 무덤덤했다. 탁신은 이전에 리버풀 FC를 사려다가 실패했었고 이 와중에 자신이 리버풀 팬이란 언론 홍보를 하는 바람에 맨시티 팬들에게 '리버풀에서 거절하자 꿩 대신 닭이라고 맨시티를 샀다'며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래도 돈 좀 들여서 과거 잉글랜드 국대를 지휘한 바 있는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과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할 만한 몇몇 선수들을 영입했다.[18] 2007-08시즌 맨시티는 초반 프리미어리그 3연승을 거두며 선두에 오르기도 했고, 맨유에 홈어웨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19] 좋은 성적을 내며 리그 2/3 정도 치른 시점까지 챔피언스리그를 사정권에 두었다.첼시 원정 0:6 패배라는 옥의 티도 있었지만 리차드 던마이카 리차즈의 센터백 라인은 맨시티의 호성적에 큰 뒷받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적생인 엘라누와 마틴 페트로프도 적응기 없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풍 팀들이 겪듯이 맨유 원정 승리 후 리그 12경기에서 3승2무7패에 그치며 리그 9위(영국 언론 포포투에서는 중위권 성적인 9위도 잘한 것이라고 평을 내렸다.)로 리그를 마쳤다. 9위로 리그를 마쳤지만 그 해 페어 플레이 팀으로 선정되며 1차 예선부터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는 진출권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탁신 구단주는 하위 팀을 중위권 성적을 거두고 25년만에 UEFA 컵에 진출시킨 감독을 경질하고[20][21],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겠다고 떠들면서 정작 팀의 주전 수비수 리처드 던의 주급을 올려주지 못해 잃을 뻔하던 일[22] 등 한심하고 답이 없는 운용을 거듭하다가 태국에 있던 그의 자금이 법으로 막혀버리자 구단을 냅다 알 파힘을 통해 만수르에게 팔아 버렸다.[23]

이 당시의 맨체스터 시티에 대해 한국에서는 쑨지하이가 활약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순지하이는 팀이 2부 소속이었던 2001-0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 이적했고, 다음 시즌 팀이 1부로 승격한 뒤 탁신이 구단주로 취임했던 2007-08 시즌 이전까지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탁신이 구단주가 된 이후 선수 보강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잃어 결국 200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악동 중 한 명인 조이 바튼이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 한국 언론에서 종종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마르크 비비앙 푀의 소속팀으로 알려져 있었다.

3.4. 만수르의 구단 인수

술레이만 알 파힘을 내세워 맨시티를 인수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은 여태까지 축구계에 뛰어든 인물 중에 가장 많은 재산을 소유한 인물이다. 구단의 워낙 자금력이 막강하다 보니 맨체스터 시티의 클럽 하우스를 호날두, 메시, 카카, 제라드, 드록바 등등 이름만 들으면 알 거 같은 유명선수로 채우겠다는 장밋빛 미래상을 제시했으며,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당시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었던 마크 휴즈는 "겨울 이적 시장에서 제라드를 사 오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적인 건축가 라파엘 비놀리를 앞세워서 구장을 증축하고 있는데 단순히 구장을 증축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맨체스터시의 동부지역에서 종합 레저 스포츠 센터, 5성급 호텔, 최첨단 훈련시설, 식당가와 바까지 만들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단지를 조성하는 야심 찬 사업이다. 여기에 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추가로 박물관과 미술관 건설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만수르가 구단주가 된 뒤 2007년만 해도 포브스 지 축구단 유형자산 평가 선정에서 50위에도 못들어가던 맨시티는 2014년에는 7위로 선정됐는데 이는 맨유와 아스날-첼시 다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높으며 리버풀을 제쳤다.

자세한 사항은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항목 참조.

3.5. 현재

만수르의 인수 이후 맨시티의 역사는 개별 문서를 참조 바람.

4.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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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맨체스터 시티 FC|{{{#00285E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1대~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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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 2009년
-1 {{{#00285E 1대}}}
홉킨슨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 {{{#00285E 2대}}}
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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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대}}}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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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4대}}}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 {{{#00285E 5대}}}
퍼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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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6대}}}
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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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7대}}}
오메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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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8대}}}
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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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9대}}}
뉴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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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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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0대}}}
맹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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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1대}}}
애시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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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2대}}}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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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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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4대}}}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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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5대}}}
코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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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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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6대}}}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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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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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8대}}}
포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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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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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19대}}}
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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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20대}}}
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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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21대}}}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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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 {{{#00285E 22대}}}
손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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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2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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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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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 {{{#00285E 25대}}}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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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26대}}}
벤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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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27대}}}
맥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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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28대}}}
프리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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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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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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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0대}}}
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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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1대}}}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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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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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2대}}}
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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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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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하트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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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4대}}}
코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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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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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5대}}}
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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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6대}}}
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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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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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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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39대}}}
에릭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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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285E 40대}}}
휴즈
파일:웨일스 국기.p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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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맨체스터 시티 FC|{{{#00285E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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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현재
-1 {{{#00285E 41대}}}
만치니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 {{{#00285E 대행}}}
키드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 {{{#00285E 42대}}}
펠레그리니
파일:칠레 국기.png
-1 {{{#00285E 43대}}}
과르디올라
파일:스페인 국기.png
-1 {{{#00285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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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즌별 일람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현재 시즌에 대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FC/2018-19 시즌 문서를, 현재 시즌(리그)에 대한 내용은 맨체스터 시티 FC/2018-19 시즌/리그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시즌 PL FA EFL CS UCL UEL USC FCC 감독
2002-03 시즌 9위
(승격)
64강 32강 - - - - - 케빈 키건
2003-04 시즌 16위
( 7)
16강 16강 - - 48강[24] - - 케빈 키건
2004-05 시즌 8위
( 8)
64강 32강 - - - - - 케빈 키건

스튜어트 피어스
2005-06 시즌 15위
( 7)
8강 48강 - - - - - 스튜어트 피어스
2006-07 시즌 14위
( 1)
8강 48강 - - - - - 스튜어트 피어스
2007-08 시즌 9위
( 5)
32강 8강 - - - - - 스벤예란 에릭손
2008-09 시즌 10위
( 1)
64강 32강 - - 8강[25] - - 마크 휴즈
2009-10 시즌 5위
( 5)
16강 4강 - - - - - 마크 휴즈

로베르토 만치니
2010-11 시즌 3위
( 2)
우승
(5회)
32강 - - 16강 - - 로베르토 만치니
2011-12 시즌 1위
( 2)
(3회)
64강 4강 준우승 32강 16강[26] - - 로베르토 만치니
2012-13 시즌 2위
( 1)
준우승 32강 우승
(4회)
32강 - - - 로베르토 만치니
2013-14 시즌 1위
( 1)
(4회)
8강 우승
(3회)
- 16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4-15 시즌 2위
( 1)
32강 16강 준우승 16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5-16 시즌 4위
( 2)
16강 우승
(4회)
- 4강 - - - 마누엘 페예그리니
2016-17 시즌
(리그)
3위
( 1)
4강 16강 - 16강 - - - 펩 과르디올라
2017-18 시즌
(리그)
1위
( 2)
(5회)
16강
우승
(5회)
- 8강 - - - 펩 과르디올라
2018-19 시즌
(리그)
- - 우승
(6회)
우승
(5회)
8강 - - - 펩 과르디올라

6. 스쿼드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 margin-top:-6px; margin-bottom:-16px"
맨체스터 시티 FC 2018-19 시즌 스쿼드[주의]
번호 국적 포지션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나이) 신체 조건 계약시작 계약만료 비고
1 파일:칠레 국기.png GK 클라우디오 브라보 Claudio Bravo 1983년 4월 13일 ([age(1983-04-13)]) 184 / 80 2016 2020
2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DF 카일 워커 Kyle Walker 1990년 5월 28일 ([age(1990-05-28)]) 183 / 70 2017 2022
3 파일:브라질 국기.png DF 다닐루 루이스 Danilo Luiz 1991년 7월 15일 ([age(1991-07-15)]) 184 / 78 2017 2022
4 파일:벨기에 국기.png DF 뱅상 콩파니 Vincent Kompany 1986년 4월 10일 ([age(1986-04-10)]) 190 / 85 2008 2019 주장
5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DF 존 스톤스 John Stones 1994년 5월 28일 ([age(1994-05-28)]) 188 / 70 2016 2022
7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MF 라힘 스털링 Raheem Sterling 1994년 12월 8일 ([age(1994-12-08)]) 170 / 69 2015 2023
8 파일:독일 국기.png MF 일카이 귄도안 Ilkay Gündoğan 1990년 10월 24일 ([age(1990-10-24)]) 180 / 80 2016 2020
10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FW 세르히오 아궤로 Sergio
'Kun' Agüero
1988년 6월 2일 ([age(1988-06-02)]) 173 / 70 2011 2021 4주장
14 파일:프랑스 국기.png DF 에이므리크 라포르트 Aymeric Laporte 1994년 5월 27일 ([age(1994-05-27)]) 191 / 85 2018 2023
15 파일:프랑스 국기.png DF 엘리아킴 망갈라 Eliaquim Mangala 1991년 2월 13일 ([age(1991-02-13)]) 188 / 84 2014 2019
17 파일:벨기에 국기.png MF 케빈 더브라위너 Kevin De Bruyne 1991년 6월 28일 ([age(1991-06-28)]) 181 / 68 2015 2023 5주장
18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DF 페이비언 델프 Fabian Delph 1989년 11월 21일 ([age(1989-11-21)]) 174 / 60 2015 2020
19 파일:독일 국기.png MF 리로이 자네 Leroy Sané 1996년 1월 11일 ([age(1996-01-11)]) 183 / 75 2016 2021
20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MF 베르나르두 실바 Bernardo Silva 1994년 8월 10일 ([age(1994-08-10)]) 173 / 64 2017 2022
21 파일:스페인 국기.png MF 다비드 실바 David Silva 1986년 1월 8일 ([age(1986-01-08)]) 173 / 67 2010 2020 부주장
22 파일:프랑스 국기.png DF 뱅자맹 망디 Benjamin Mendy 1994년 7월 17일 ([age(1994-07-17)]) 185 / 85 2017 2023
25 파일:브라질 국기.png MF 페르난지뉴 루이스 Fernandinho Luiz 1985년 5월 4일 ([age(1985-05-04)]) 179 / 67 2013 2020 3주장
26 파일:알제리 국기.png MF 리야드 마레즈 Riyad Mahrez 1991년 2월 21일 ([age(1991-02-21)]) 179 / 67 2018 2023
30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DF 니콜라스 오타멘디 Nicolás Otamendi 1988년 2월 12일 ([age(1988-02-12)]) 183 / 81 2015 2022
31 파일:브라질 국기.png GK 에데르송 모라에스 Ederson Moraes 1993년 8월 17일 ([age(1993-08-17)]) 188 / 86 2017 2025
33 파일:브라질 국기.png FW 가브리에우 제주스 Gabriel Jesus 1997년 4월 3일 ([age(1997-04-03)]) 175 / 73 2017 2023
34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DF 필립 산들러르 Philippe Sandler 1997년 2월 10일 ([age(1997-02-10)]) 188 / 82 2018 2022
35 파일:우크라이나 국기.png MF 올렉산드르 진첸코 Oleksandr
Zinchenko
1996년 12월 15일 ([age(1996-12-15)]) 175 / 64 2016 2020
47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MF 필 포든 Phil Foden 2000년 5월 28일 ([age(2000-05-28)]) 171 / 59 2017 2024
49 파일:코소보 국기.png GK 아로 무리치 Aro Murić 1998년 11월 7일 ([age(1998-11-07)]) 199 / 81 2017 2021
-- 파일:콜롬비아 국기.png FW 마를로스 모레노 Marlos Moreno 1996년 10월 20일 ([age(1996-10-20)]) 173 / ?? 2016 2021
구단 정보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 감독: 펩 과르디올라 /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출처: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19년 2월 7일

}}}}}} ||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1. 임대중인 선수

(문서가 개설된 선수만 표기)

6.2. 주요 선수

파일:CityDressingRoomofDreams.jpg
2018년에 구단에서 제작한 레전드 드레싱룸 그림.
좌측부터 케빈 더 브라위너, 스테프 하우튼[27], 숀 라이트필립스, 세르히오 아구에로, 우베 뢰슬러, 야야 투레, 리차드 던, 게오르기 킨클라제, 숀 고터,
파블로 사발레타, 다비드 실바, 뱅상 콤파니, 마이크 서머비, 에릭 브룩, 콜린 벨, 프랜시스 리, 빌리 메레디스, 폴 디코프, 말콤 앨리슨, 토니 북,
펩 과르디올라, 앨런 오크스, 로베르토 만치니, 닐 영, 조 머서, 마이크 도일, 조 하트, 프랭크 스위프트, 베르트 트라우트만, 조 코리건, 마이카 리차즈
※ 현재 맨시티 소속 선수는 이름 옆에 ● 표기

7. 역대 스폰서

7.1. 메인 스폰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Saab_wordmark_blue.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Philips_logo.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Brother_logo.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Eidos_logo.svg.png
사브
(1982~1984)
필립스
(1984~1987)
브라더 공업
(1987~1999)
에이도스 인터렉티브
(1999~2002)
파일:Thomas_Cook.png 파일:attachment/2048px-Etihad_Airways_logo.svg.png
FIRST ADVICE
(2002~2004)
토마스 쿡 그룹
(2004~2009)
에티하드 항공
(2009~ )[30]

7.2. 유니폼 메이커

파일:external/logok.org/Umbro-logo-and-wordmark.png 파일:external/logok.org/Kappa-logo-wordmark.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Le_coq_sportif_2010_Logo.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Reebok_delta_logo.svg.png
엄브로
(1974~1997)
카파
(1997~1999)
르꼬끄 스포르티브
(1999~2003)
리복
(2003~2006)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Le_coq_sportif_2010_Logo.svg.png 파일:external/logok.org/Umbro-logo-and-wordmark.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Logo_NIKE.svg.png 파일:PUMA_logo_1979.jpg
르꼬끄 스포르티브
(2006~2009)
엄브로
(2009~2013)
나이키
(2013~2019)
푸마
(2019~ )

8. 현재 스폰서

8.1. 글로벌 파트너 (Global Partners)

파일:external/www.mancity.com/Etihad.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NIKE.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Etisalat.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TCA.jpg
에티하드 항공 나이키 에티살랏 아부다비 관광문화청
파일:external/www.mancity.com/aabar.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Nissan.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SAP.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Nexen.jpg
아바르 닛산 SAP 넥센타이어
파일:external/www.mancity.com/Hays.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Wix.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Betsafe.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QNET.jpg
Hays Wix Betsafe QNET
파일:external/www.mancity.com/New%20EA%20Sports%20Logo.jpg 파일:wega.jpg 파일:DSQUARED2.png
EA SPORTS Wega DSQARED2
(주)신창중공업: 프리미어리그 2017년 11월 6일 아스날전에서 경기 직전 국민의례 행사 중 한 관객이 '신창중공업'이라는 한글이 적힌 점퍼를 입은 장면이 목격되었다. 이게 어찌나 화제가 되었는지 SNS에서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대유행했고, 신창중공업 홈페이지에 방문객들이 몰려서 접속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결국 신창중공업 측에서 '홈페이지가 마비가 될 정도로 관심을 가져 줘서 감사를 드린다'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회사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관객은 신창중공업 측과 협력하는 영국 기업의 직원이며 2년 전 회사를 방문했을 때 점퍼를 선물한 것이라고.

8.2. 지역 파트너 (Regional Partners)

파일:external/www.mancity.com/Citi.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LG.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Vitality.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Wolfblass.jpg
씨티은행 LG전자 Vitality Wolf Blass
파일:external/www.mancity.com/Heineken.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PZ%20Cussons.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Whalley.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PAK.jpg
하이네켄 PZ Cussons Whaley PAK Lightning
파일:external/www.mancity.com/Healthpoint.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Soccerworld.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Jiwasraya.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Astra.jpg
Healthpoint Soccerworld Jiwasraya Astra Otoparts
파일:external/www.mancity.com/Tecate.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Digicel.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DJI.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MTN%20Cameroon.jpg
Tecate Digicel DJI 홀딩스 MTN 카메룬
파일:external/www.mancity.com/SHB.jpg 파일:external/www.mancity.com/FGB.jpg 파일:AvaTrade_MCFC_Joint_Logo.jpg 파일:Barclays-Logo.jpg
SHB Bank First Gulf Bank AvaTrade Barclays

9. 이야깃거리

9.1. 만수르가 맨시티를 택한 이유

사실 만수르는 왜 굳이 맨시티를 구매했는가라는 의문은 맨시티가 만수르에게 인수되면서 돈방석에 앉지 못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에버튼 FC 등의 팀의 팬들, 그리고 맨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 제기된 의문이다. 겉으로 보면 사실 당시의 맨시티나 선덜랜드나 풀럼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고, 특히 대부분의 팬들이 빅클럽의 팬이고 중위권 이하의 팀과 리그에 관해선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 때문. 만수르가 맨시티를 구원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두터운 팬층 - 맨시티는 성적에 비해서도 팬이 특히 많은 편인 팀이었다. 3부리그에서도 평균 관중이 3만 명에 육박했다는 건 맨시티 팬들이 구호로도 쓸 만큼 자랑스러워 하는 사실이고, 탁신 인수 전에도 맨시티 홈구장의 평균 관중은 사실 우승 이후의 평균 관중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조건은 사실 기본조건으로 몇 년 전 만수르가 아스널 FC를 사려다 실패한 이후로 만수르와 칼둔은 빅클럽보다는 잠재력을 지닌 팬층이 두터운 클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기정사실 수준의 설이 있다. 당시와 현재 거론되던 클럽인 뉴캐슬, 에버턴, 토트넘 등(이 셋이 가장 가까웠던 팀이다)이 모두 만족하는 조건이다. 아스톤 빌라 FC도 팬층이 두터운 편이나 당시 이미 러너에게 인수된 이후였다.
  • 맨체스터의 규모, 발전 가능성 - 맨체스터는 잉글랜드 제2/3의 도시/광역권으로 버밍엄과 경쟁하는 관계이고 기반시설 또한 좋다. 또한, 경기장 근처에 개발할 만한 땅이 많은 조건이었고 맨체스터 동북쪽에 개발로 자본이 들어온다는 말 역시 많았다. 뉴캐슬과 비교하면 확실한 강점이고, 쇠퇴한 지 오래된 도시인 리버풀에 연고지를 둔 에버튼에 비해서도 강점으로 작용하며, 토트넘은 런던팀이지만 주변 환경이 좋단 평가는 못 받고, 또한 런던에 팀이 많기에...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존재 - 전 세계에 팬이 있고 최근 20년간 잉글랜드 내 최강팀으로 군림하던 맨유의 존재는 방해거리가 아니라 강점으로 작용한다. 라이벌리를 이용한 기삿거리나 관심거리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고, 맨유는 적이 많은 팀이기도 하므로 맨시티의 지지층을 더 불러모을 수 있는 조건도 된다. 실제로 맨체스터라는 도시 이름이 맨유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맨유의 성적이 떨어지자 맨시티로 갈아타겠다는 철새라이트팬들의 존재가 많은 것을 보면, 라이벌리로서 맨유의 가치는 맨시티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에버튼과 토트넘의 라이벌인 리버풀과 아스날은 부정하기 힘든 명문 클럽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축구단 맨유보단 브랜드 가치에서 밀린다. 뉴캐슬의 라이벌은... 선덜랜드이다.[32]
  • 하늘색의 사용 - 하늘색을 주색으로 사용하는 팀은 드물며,[33] 이는 쉽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작용한다. 에버튼의 파란색은 첼시 FC가, 토트넘의 흰색은 레알 마드리드 C.F.가, 뉴캐슬의 바코드흰색/검은색은 유벤투스 FC가 이미 국제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뒤였다.
  • 팀명 '시티' - 당시에도 맨시티는 전 세계에서 이름에 시티가 붙은 축구팀 중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높은 팀[34]이었으며 당시든 지금이든 영국 내에서 관련된 내용에서 시티라 부르면 맨시티를 맨 처음 연상하게 된다. 이 시티라는 이름은 역시 브랜드를 만들기 쉬운 조건이었고, 이 조건상의 유리함은 이후 맨시티가 해외로 확장할 때 뉴욕 시티 FC, 멜버른 시티 FC의 사례에서 드러나게 된다.
  • 전 소유자 - 전 소유자 탁신 친나왓은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 돈에 쫄려 빨리 팀을 팔아치워야 할 상황이었고, 이는 맨시티 매각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에버튼과 뉴캐슬의 소유자인 켄라이트와 애슐리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며, 둘 다 만수르에게 값을 너무 높이 불렀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가격이 하락했다해도 탁신은 맨시티를 팔면서 2배가 넘는 이득을 보았지만...

상술된 이유로 인해 만수르는 다른 팀이 아닌 맨시티를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9.2. 한국과의 관계

  • 이후 14-15, 15-16, 16-17시즌에도 선수 3명씩 나와서 꾸준히 한국어로 새해인사를 하고 있다. 심지어 16-17시즌인 2016년 11월 13일에는 수능 응원 영상(!)까지 업로드 되었다. 출연자는 니콜라스 오타멘디알레시 가르시아. 17-18시즌에는 르로이 사네, 가브리엘 제수스가 출연하여 한국 수험생 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수능 응원인데 하필 제수스가 나온건 함정
  • 많은 팬들이 위의 2016년 7월의 한국 방문을 구단 창단이래 최초의 방한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일부 언론보도에서도 첫 방한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1976년 6월에 방한하여 동대문운동장, 구덕운동장,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세 경기를 치르고 간 역사가 있기 때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1진 화랑과 두 경기, 2진 충무와 한 경기를 가졌고 2승 1패의 성적을 거두고 돌아갔다. 동대문에서 열린 충무와의 경기는 행정절차상 문제로 급하게 치러지다 보니 홍보가 미진해서 불과 4천여명의 관중들만이 입장했고, 경기를 관전한 주한 영국대사가 관중이 너무 적다며 디스하기도 했다.
  • 2017년 추석에는 맨체스터 시티 한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관한 퀴즈 이벤트를 열었다. 당첨 상품은 퀴즈별로 각각 17/18시즌 홈, 어웨이, 써드 유니폼.
  • 2017년 9월 15일 리버풀전, 맨체스터 시티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의 팬들을 위해 서울의 MUV홀에서 '서울: Our Kind of City' 이벤트를 열었다. 진행은 드러가쒀요! 쎄르히오 아구에로오!!! 로 유명한 김동완 해설위원이 맡았으며, 500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형 스크린으로 리버풀전을 관람하였다. 이날 시티는 5:0으로 리버풀을 격파하면서 각종 이벤트와 더불어 한국의 시티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 2019년 4월 맨시티가 다시 서울을 찾는다...

9.3. 기타

  • 만수르에게 인수되기 이전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에 의해 많이 안 알려져 있었지만, 영국 현지에서는 예전부터 팬층이 두터운 팀이다. 특히 1934년 스토크 시티 FC와의 FA컵 경기에서의 관중 수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홈 관중 수 최고 기록인 84,569명이었으며 3부 리그로 떨어졌을 때조차 리그 평균 관중 수가 8,000여명일 때 약 30,000명 정도 기록한 것은 맨시티 팬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이다.
  • 오아시스의 맨시티 사랑은 축구계에서도 유명한 편. 노엘 갤러거는 만수르 인수 이전에는 언젠가 벌어둔 돈으로 자신이 구단주가 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현재는 구단 사장이랑 같이 밥 먹는 사이(...)이다. 보컬이자 프런트맨인 그의 동생 리암 갤러거는 아예 라이브를 할 때 맨체스터 시티 티셔츠를 입고 한다. 참고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기로 알려진 노엘은 방한했을때 인터뷰에서 에릭 남에게 라이벌구단인 맨유에서 뛰었던 박지성에 대한 질문을 들었었는데, 인터뷰에서 박지성의 사진이 등장하자 "저런 사람 모른다"라고 대답. 에릭 남이 웃으며 "정말 모르냐"라고 되풀이해서 물었지만, 갤러거는 "몰라 몰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냈다.
  • 팀에 이상할 정도로 대머리 선수가 많다. 탈모에 걸린 레전드가 많은 라이벌 팀과 달리 이쪽은 아예 빡빡이가 팀 컬러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빡빡이가 많은 편. 오죽하면 머리를 밀어버린 선수를 근본컷이라고 추켜세울 정도로 빡빡이가 많은데, 감독으로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이후에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특히 17-18시즌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닌 다비드 실바가 머리를 밀어버린 이후에는 펩이 빡빡이를 강요한게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을 정도. 모근을 버리는 자 중용받을 것이다 큰 관계는 없겠지만, 실제로 맨시티의 장발 선수는 정말 드물다. 금발 선수도 마찬가지. [37]

10. 둘러보기

시티 풋볼 그룹
파일:ManCity.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New_York_City_FC.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Melbourne_City_FC.svg.png
맨체스터 시티 뉴욕 시티 멜버른 시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Yokohama_F_Marinos.svg.png 파일:Club Atlético Torque Logo.jpg 파일:Girona_FC_Badge.png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클럽 아틀레티코 토르케 지로나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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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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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팀 국가 첫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파일:Fiorentina.png ACF 피오렌티나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61년
1회
2 파일:Atletico.png 클루브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파일:스페인 국기.png 1962년
1회
3 파일:Tottenham.png 토트넘 핫스퍼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63년
1회
4 파일:SportingCP.png 스포르팅 CP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1964년
1회
5 파일:WestHam.png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65년
1회
6 파일:Dortmund.png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파일:독일 국기.png 1966년
1회
7 파일:Bayern.png FC 바이에른 뮌헨 파일:독일 국기.png 1967년
1회
8 파일:Milan.png AC 밀란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68년 ★★
2회
9 파일:SlovanBratislava.png ŠK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파일:슬로바키아 국기.png 1969년
1회
10 파일:ManCity.png 맨체스터 시티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70년
1회
11 파일:Chelsea.png 첼시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71년 ★★
2회
12 파일:Rangers.png 레인저스 FC 파일:스코틀랜드 국기.png 1972년
1회
13 파일:Magdeburg.png 1. FC 마그데부르크 파일:독일 국기.png 1974년
1회
14 파일:DynamoKyiv.png FC 디나모 키예프 파일:우크라이나 국기.png 1975년 ★★
2회
15 파일:Anderlecht.png RSC 안데를레흐트 파일:벨기에 국기.png 1976년 ★★
2회
16 파일:HamburgerSV.png 함부르크 SV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77년
1회
17 파일:Barcelona.png FC 바르셀로나 파일:스페인 국기.png 1979년 ★★★★
4회
18 파일:Valencia.png 발렌시아 CF 파일:스페인 국기.png 1980년
1회
19 파일:DinamoTbilisi.png FC 디나모 트빌리시 파일:조지아 국기.png 1981년
1회
2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62px-Aberdeen_F.C._logo_2005.svg.png 애버딘 FC 파일:스코틀랜드 국기.png 1983년
1회
21 파일:Juventus.png 유벤투스 FC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84년
1회
22 파일:Everton.png 에버튼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85년
1회
23 파일:Ajax.png AFC 아약스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987년
1회
24 파일:KVMechelen.png KV 메헬렌 파일:벨기에 국기.png 1988년
1회
25 파일:Sampdoria.png UC 삼프도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0년
1회
26 파일:ManUtd.pn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91년
1회
27 파일:W.Bremen.png SV 베르더 브레멘 파일:독일 국기.png 1992년
1회
28 파일:Parma.png 파르마 칼초 1913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3년
1회
29 파일:Arsenal.png 아스날 FC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994년
1회
30 파일:Zaragoza.png 레알 사라고사 파일:스페인 국기.png 1995년
1회
31 파일:PSG.png 파리 생제르맹 FC 파일:프랑스 국기.png 1996년
1회
32 파일:SSLazio.png SS 라치오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1999년
1회
}}}}}}}}} ||



[1] 맨시티에 멤버쉽 가입을 한 전 세계의 공식적인 팬들을 일컬을 때는 시티(City)라는 브랜드를 살리고 싶어서인지 일반적으로 쓰는 스펠링인 Citizen이 아니라 독특하게 Cityzen이라고 쓴다. 다만 이건 구단에서 팬들에 대해 쓰는 브랜드 이름이다. 구단에서 그런 브랜드를 쓴다고 갑자기 쓰던 별칭의 철자가 바뀌는 게 아니다.[2] 현지 팬덤이 맨시티를 별칭으로 부를 때는 보통 시티즌스 같은 별칭들을 쓰지 않으며, 단순히 블루스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한번 시티팬이면 죽을 때까지 시티팬(One a Blue always a Blue), RIP Blue, Come on you Blues 이런 식으로 쓴다. 다만 첼시 FC와 같이 언급할 때는 시티를 스카이 블루스 혹은 단순히 시티라고 부르며 구별한다.[3] 소속 선수인 벤자민 멘디가 팀이 17/18 시즌 전반기에 무패를 기록하며 극강일 때 유행시킨 별명으로 팬들은 물론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쓰게 되었고 관련 상품까지 내놓을 정도로 어느덧 자리잡은 별칭[4] 2016년 새로운 엠블럼에는 창단년도를 1894년으로 인정했다.[5] 2008년까지 FC 바르셀로나의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었던 산드로 로셀과 그 측근들이 벌인 라포르타 퇴임 운동 중 해임당했다.[6] 3주장은 페르난지뉴, 4주장은 세르히오 아궤로, 5주장은 케빈 더브라위너[7] 2003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도중 엄청난 더위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 카메룬의 미드필더 마르크 비비앙 푀의 등 번호 23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당시 푀는 올랭피크 리옹 소속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임대되어 있었지만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8] 잉글랜드 2부 리그 공동 최다 우승이다(...) 이 팀이 만수르의 인수 전까지 험난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팀은 레스터 시티 FC로 여기도 2부 리그 우승을 7번 기록했다.[9] 14년째 깨지지 않는 기록. 2위는 2015년 알바로 네그레도(발렌시아), 2017년 켈레치 이헤아나초(레스터시티)의 2500만 £ 이다.[10] 2분35초경부터 이어지는 노래는 'The Beat Goes On'이라는 비디 아이의 1집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의 수록곡이다.[11] 정확히는 아드윅 AFC가 현재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꾼 연도이다.[12] 한국에서는 연도를 저렇게 두 자씩 끊어놓은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본래 연도를 읽을 때부터 두 자씩 끊어서 읽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13] 아닌게 아니라 이전에 있던 다른 교회 스포츠팀에서 크리켓에서 하라는 크리켓 배트로 상대방을 두들겨패고 패싸움이 벌어지거나 럭비도 공은 내팽개치고 사람을 들이박아 싸우기 일쑤였다고...[14] 맨시티 역대 키퍼 중 베르트 트라우트만 다음 두 번째로 뛰어났다고 꼽히는 레전드 키퍼이다.[15] 2004-05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을 가진 노팅엄 포레스트가 리그 1로 강등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16]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3부리그 3위로 승격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맨시티는 6위였던 위건 애슬레틱을 제압하고 결승에서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제압한 질링엄 FC와 상대해야 했다. 당시 질링엄 감독은 토니 퓰리스. 맨시티는 질링엄을 상대로 후반 36분과 후반 41분에 실점하며 승격은 물건너가는 듯 했는데, 추가시간에만 2골을 득점하며 승부를 극적으로 연장으로 끌고갔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2부리그 승격에 성공했다.[17] 참고로 이 당시 피어스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소속팀에 집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셌다. 물론 맨시티에서 경질된 이후에도 청소년 대표팀 자리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간 키워온 선수들을 이끌고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섰지만 8강에서 한국에게 져 탈락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18] 엘라누와 마틴 페트로프가 대표적이다. 그 외의 영입으로는 롤란도 비앙키, 발레리 보지노프, 베드란 콜루카, 지오반니, 겔손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가리도가 있다.[19] 2008년 2월 10일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뮌헨 참사 50주년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있었는데 맨시티가 맨유를 2:1로 꺾으며 맨유팬들을 더더욱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20] 이 때 맨시티 팬들은 에릭손을 지킨다며 Save Our Sven, 줄여서 SOS 캠페인을 벌이지만 실패한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맨시티는 리그 최종전에서 사실상 태업성 플레이를 하며 리그 최종전 미들즈브러 FC에게 8-1로 패하기도 한다.[21] 에릭손 감독의 후임으로 마크 휴즈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었다. 맨유 레전드가 맨시티의 감독이 되어 논란이 있었다.[22] 정작 그 당시 던의 폼은 완전 최악이었고 주장 안 시켜준다고 징징대고 있었다. 결국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다.[23] 탁신은 덕분에 2배 이상 이득을 보았다. 그리고, 탁신의 후광을 입고 맨시티에 입단했던 태국 선수 3명은 2008년 10월에 전원 방출되었다.[24] 이 당시에는 UEFA 유로파리그가 아니라 UEFA컵 시절이어서 조별예선의 개념이 없었다.[25] 전 시즌이었던 2007~08 시즌에 '유럽 최고의 페어플레이 팀'으로 선정되어 출전했다.[26]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3위 팀 중 상위권을 차지함에 따라 16강부터 참가하게 됨.[27] 여자축구 선수.[28]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겠지만, 라이트 필립스는 1999년 맨시티에서 프로 데뷔해 2005년까지 153경기 26골을 기록했고,그가 첼시 FC로 이적하면서 남긴 31.5m 유로는 11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고있는 맨시티의 판매 클럽 레코드이다.또한 2008년에 맨시티로 돌아와 2011년까지 뛰면서 64경기 9골을 기록했다. 합계 9년동안 219경기 35골과 그가 떠나면서 팀에게 남겨준 31.5m 유로의 이적료를 생각해 볼 때 팀의 레전드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29] 너무나도 당연히 팀 레전드로 꼽혀도 문제 없었으나, 15-16시즌 중후반부터 보여주는 야야의 행보때문에 적잖은 팬들이 등을 돌려버렸다. 그래도 16-17시즌 중반들어 개과천선한 모습을 어느정도 보여주면서 지지도도 회복했다. 그러나 17-18시즌 종료 후 펩을 자신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자라고 몰아가 팀 분위기도 망치는 소리를 한 덕분에 다시 팬들은 등을 돌려버렸다.[30] 유니폼의 스폰서와는 별개로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명명권 계약은 2011년에 체결되었다.[31] 결국 토트넘은 확장 이전하긴 한다[32]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선더랜드도 1부리그에서 뛴 역사가 깊고 우승기록도 상당하며, 팬층도 두꺼워 홈구장이 5만석에 육박하는 인기클럽으로 관점에 따라 잉글랜드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기도 하는 가장 큰 클럽 중 하나이다. 2부리그 시절, 선덜랜드 팬인 서형욱이 2000년 초에 직접 2부리그 경기를 보러 갈때도, 2부리그로 강등당하던 시절에도 선덜랜드 서포터들은 2~3만명 수준 관중을 유지할 정도로 팬층이 두텁다. 다만 선덜랜드는 '잉글랜드에서 유명한 클럽들 중 하나'일 뿐이고 맨유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을 다섯개만 꼽아보라고 하면 무조건 포함되는, 그야말로 넘사벽의 인지도를 가진 게 안습일 뿐[33] 기껏해야 세리에ASS 라치오, SSC 나폴리 정도뿐이며, SSC 나폴리가 마라도나의 힘 덕에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세계적으로 하늘색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었다.[34] 또한 이름에 시티가 들어가는 팀으로서 그나마 가장 역대성적이 좋은 팀이다. 버밍엄 시티, 스토크 시티, 헐 시티 같은 다른 팀들은 죄다 하위리그 팀이거나 늘 강등권에 시달리고 있으며, 역대 우승 성적을 봐도 맨시티보다 떨어진다. 맨시티는 유로파 리그 전신인 위너스컵을 우승한 전적이 있으며, 시티라는 단어가 들어간 팀으로서 유일무이한 유러피언 클럽 대회 우승팀이다. 지금은 2부리그 팀인 버밍엄 시티가 1960~61시즌 인터시티 페어스컵(유로파 리그 전신) 준우승(우승은 AS 로마)을 한 게 있긴 하다. 이게 이름에 시티가 들어간 팀으로선 유이하게 맨시티랑 같이 유러피언 클럽 대회 결승 진출 기록. 더불어 리그에서도 맨시티가 그동안 시티라는 이름을 가진 유일한 리그 우승팀이었다가 2015-16시즌에 레스터 시티가 우승하면서 이 기록은 깨졌다.[35] 반대로 버나드 섬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다. 참고로, 오아시스의 1~2기 멤버였던 폴 본헤드 아서스도 맨유 팬. 그 덕분에 95년 당시 맨체스터 시티와 싸우는 다른 팀의 경기에서 갤러거 형제가 맨시티를 응원하고 있을 때 본헤드 혼자만 다른 팀을 응원했는데 맨시티가 우승을 거두자 갤러거 형제에게 물폭탄을 맞으며 놀림당하는 모습이 슈퍼소닉 다큐를 통해 얼핏 나왔다.[36] 유니폼 색깔도 맨시티를 상징하는 하늘색인 경우가 많다.[37] 타팀에선 그렇게 많이 보이는 스포츠 헤어컷이지만, 시티에선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그나마 최근 장발 스타일로 시티에서 뛴 선수라면 데미첼리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발로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