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19:05:32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

파일:나무위키프로젝트.png
이 문서는 나무위키 항공사고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문서입니다.
해당 프로젝트 문서를 방문하여 도움이 필요한 문서에 기여하여 주세요!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external/cdn-www.airliners.net/2536717.jpg
Boeing 777-2H6/ER, 등록번호 9M-MRD,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사고 당일인 2014년 7월 17일에 이륙하는 모습을 촬영. 이 사진이 찍힌지 몇 시간 뒤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2014년 7월 17일
유형 민항기 격추
발생 위치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주 흐라보베
탑승인원 승객: 283명
승무원: 15명
사망인원 승객·승무원 전원 사망
기종 Boeing 777-2H6/ER
항공사 말레이시아 항공
기체 등록번호 9M-MRD
출발지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도착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1. 개요2. 사고 과정3. 탑승자 국적 및 인원현황4. 수습5. 조사 과정6. 조사 결과
6.1. 추락 원인6.2. 비행 경로6.3. 기타 조사
7. 격추 이후8. 각국의 반응9. 여담10. 관련 항목

1. 개요

파일:attachment/2014071900246_1_99_20140719030114.jpg

파일:개만도못한반군놈들1.jpg
파일:개만도못한반군놈들2.jpg
파일:개만도못한반군놈들3.jpg
파일:개만도못한반군놈들4.jpg
격추된 민간인 항공기 잔해에서 아주 당당하게 인증샷을 찍고 있는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친러시아 반군 전쟁범죄자들.

2014년 7월 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이륙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1]이 동부 우크라이나 320㎢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친러시아) 반군의 Buk(부크) 지대공 계열 9M38 미사일로 발사된 9N314M에 격추당한 사건이다.

2. 사고 과정

네덜란드 현지 시간으로 2014년 7월 17일 12시 13분, 말레이시아 항공 17편은 예정보다 13분 늦게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게이트를 떠나 31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비행 경로는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통과해 카스피해를 거친 뒤 계속해서 말레이시아를 향해 비행할 예정이었다. 비행 계획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고, 항공기는 곧 우크라이나 상공에 들어섰다. 현지 시각 15시 53분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레이더 관제 섹터에 진입하였고, 관제소와 통신을 해 이상 없음을 확인하였다.

현지 시각 16시, MH17편은 드니프로 관제소에게 전방에 적란운이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항로를 왼쪽으로 변경시켜 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며, 동시에 FL330에서 순항 중이던 고도를 FL340으로 상승할지 물었다. 드니프로 관제소에서는 항로 변경을 허가했으나 고도는 FL330을 유지하라고 지시하였다. MH17편은 곧바로 항로를 왼편으로 틀었으며, 5분 뒤 원 항로에서 좌측으로 비껴난 채 평행하게 비행하기 시작하는 것이 드니프로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16시 15분 MH17편은 다시 원 항로로 복귀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틀었다.

현지시각 16시 19분 56초, 17편은 관제소가 보낸 다음 웨이포인트로의 항로 변경 허가를 수신했음을 알렸다. 16시 20분 00초, 우크라이나 동부 스니즈녜 근처에서 발사된 부크 지대공 계열 9M38 미사일이 MH17 조종석 좌상부에서 폭발했다. 그 시간 관제소는 웨이포인트 다음 항로에 대해 허가를 발신했지만, MH17편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뒤로도 17편은 그 어떠한 교신 시도에도 응답하지 않았고, 17편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관제소와 말레이시아항공 17편에서 25km뒤를 따라가고있던 싱가포르항공 351편도 애타게 말레이시아항공 17편을 호출하고 TCAS를 이용해 항공기를 찾으려 했으나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했다.[2] 잠시 뒤 인근 주민들은 하늘에서 항공기 잔해와 탑승객의 시신들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항공기는 우크라이나 동부 흐라보베 인근에 추락하였다.

이 사고로 승무원 15명과 승객 283명을 합쳐 298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3. 탑승자 국적 및 인원현황

해당 항공편은 KLM코드셰어한 항공편이어서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말레이시아 항공에서 공식적으로 공개한 탑승자 현황은 다음과 같다.#
  • 총 298명

4. 수습

비행기가 추락한 위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 인근으로, 당시 정부군과 도네츠크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교전 중인 지역이었다. 당시 추락 지점은 반군의 통제하에 있었으며, 제대로 된 현장 보존이 이뤄지지 않았다. 반군과 주민들이 추락기의 유류품을 막 주워가는 등의 상황까지 벌어졌을 정도. 네덜란드와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조사단이 도착했지만 반군의 방해로 현장에 즉시 접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즉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구성된 3자 회담이 진행되었으며, 반군 역시 이틀 만에 조사단의 안전을 보장하였다. 20일부터 시신 수습이 시작됐고, 23일에는 반군이 시신과 블랙박스네덜란드말레이시아 조사단에 인계하였다.#

23일에는 희생자 시신 40구가 1차로 네덜란드도착했고, 24일엔 희생자들의 시신 74구가 2차로 우크라이나에서 네덜란드로 이송됐다. 그러나 8월 6일 교전 격화로 인해 시신 수습은 중단되었고, 이는 10월이 돼서야 비로소 재개될 수 있었다. 11월17일까지 시신들은 9구를 제외하고 모두 수습했으며, 12월 5일까지는 미수습 시신이 6구로 줄어들었다. 15년 4월엔 2구를 제외한 모든 시신이 확인되었다.

5. 조사 과정

사고 당일 우크라이나 항공 사고 조사국(NBAAI)에서는 즉시 사고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으며, 큰 피해를 본 네덜란드와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도 즉시 조사단을 파견했다. 7월 23일엔 네덜란드가 이끌고 우크라이나,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미국, 영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국제 조사단이 결성되었으며, 즉시 추락 지점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비행 경로 및 기타 부분에 대한 조사 역시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제 조사단이 출범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현장은 지뢰가 매설되고 화포가 배치되는 위험 지역으로 돌아왔으며, 2주일이 지나서는 조사단이 더 이상 추락 현장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어 잔해 조사는 물론 시신 수습조차 중단한 채로 떠나야 했다. 잔해 수거 작업은 11월 16일이 돼서야 다시 가능해졌고, 1주일 간의 작업 끝에 남겨진 잔해를 회수하였다. 회수된 잔해는 네덜란드에 위치한 조사단에게 보내졌다. 관련 기사 그 뒤로도 2015년 봄 2차례의 수거 작업을 추가로 진행하였다.

수습된 잔해는 네덜란드의 길제-리옌 공군기지로 보내져 계속 조사되었다. 각각의 모든 잔해는 분류되어 기록되고 사진이 촬영되었다. 격납고 안에 보관된 잔해들은 하나하나 조사되었고, 조사가 끝난 잔해는 3차원으로 재현된 항공기 모형에 덧붙여져 추락 당시 모습을 재현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3달 동안의 작업 끝에 조사단은 칵핏과 비즈니스 좌석 일부를 포함한 전방 부분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파일:external/i2.cdn.turner.com/151014122421-mh17-reconstruction-exlarge-169.jpg
잔해 조사 외에도 시신과 유류품에 대한 조사 역시 진행되었으며, 비행 경로에 대한 조사를 위해 인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레이더 기록 및 당시 항공규정 등을 수집해 조사하였다.

6. 조사 결과

2014년 9월 9일 네덜란드 안전위원회의 예비 보고서가 공개되었고, 2015년 10월 13일에는 최종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아래 내용 대부분은 이 최종 보고서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국제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리포트 요약영상

6.1. 추락 원인

MH17편은 러시아제 대공 무기 Buk에 의해 격추 되었다. 현지시각 16시 20분 03초 9M38 미사일에 탑재된 9N314M 탄두가 폭발하면서 다량의 파편이 콕핏(조종실) 부근을 덮쳤다. 이로 인해 콕핏에 있던 3명의 승무원(조종사)은 파편을 뒤집어써 즉시 사망하였고, 파편으로 인한 구조 손상으로 항공기의 전방부가 떨어져 분해되었다. 공중 분해된 항공기의 잔해는 약 50km2의 면적에 걸쳐 추락했다.

탄두가 폭발한 위치는 조종석의 전방 좌측 위 부근이었으며, 이는 파편으로 인한 손상 패턴을 통해 뒷받침되었다. 잔해를 통해 재현한 항공기는 대부분의 손상이 분명하게 전방 좌측 상단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바로 옆의 조종석 우측에는 전혀 손상이 없었다. 또한 조종석 내부 녹음기에 기록된 폭음의 밀리초 단위 시간차를 이용한 폭발 위치 추적 역시 같은 결과를 보였다. 잔해는 하나같이 외부에서 온 충격파로 인해 안쪽으로 찌그러진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내부 폭발 가능성은 부정되었다.

외부 폭발의 원인이 Buk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기장의 시신에서 나왔다. 시신에서 발견된 파편의 형태는 9N314M 탄두에 사용되는 특징적인 나비와 다이아몬드 형태의 파편과 일치했고, 재질 역시 동일하였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2D5F1E6400000578-3271971-The_BUK_missile_exploded_to_the_left_of_the_cockpit_causing_it_t-a-16_1444816899269.jpg
파일:external/ichef-1.bbci.co.uk/_86102301_dsb2.jpg

조사단은 9M38 미사일 및 9N314M 탄두의 제원을 이용해 파편을 시뮬레이션했으며, 실제 잔해에서 관찰되는 파편 분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미사일의 진행 방향 및 위치를 추정해낼 수 있었다. 미사일은 약 1시 방향에서 10도의 상승각을 가지고 날아왔으며, 콕핏 좌상단에서 근접센서가 작동해 탄두가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이 자료를 이용해 미사일의 발사 지점을 추정하였다.

파일:external/big.assets.huffingtonpost.com/mh17.gif
파일:external/ichef.bbci.co.uk/_86096842_mh17_missile_launch_locations_624.jpg
발사 추정 지점. 빗금친 부분이 네덜란드 국립 항공우주 연구소 추정, 넓직한 주황색이 러시아 추정, 갈색이 우크라이나 법과학 전문 연구소 추정 지점, 작은 주황 점이 러시아의 미사일 제조사 알마즈-안테이 추정.

최종 보고서에는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사단이 추정한 발사 지점은 당시 반군측이 장악 중이던 지역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국제조사단이 비록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러시아에 피격 책임을 물은 셈이라고 해석된다. #

6.2. 비행 경로

당시 MH17편이 비행한 항로는 교전 지역 상공이었기 때문에, 관제당국에서 해당 영공을 폐쇄하여야 했는지 또는 항공사에서 해당 영공을 우회하여야 했는지에 대한 조사 역시 이뤄졌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는 군용 헬기와 항공기에 대한 공격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특히 사고 3일 전에는 6300m 상공을 비행하던 우크라이나군의 An-26 수송기가 격추되고, 하루 전에는 6250m 상공을 비행하던 Su-25 공격기가 격추되기도 하였다. 이들 전투기가 격추된 고도는 기존에 반군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맨패즈로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해당 지역에서 중거리 지대공 혹은 공대공 미사일이 배치되어 있음을 인지하였다. 그러나 이는 해당 영공에 대한 민항기 비행 제한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교전이 심화되면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각국은 교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우크라이나의 군용 항공기가 격추될 때마다 각국은 상황을 예의주시했지만, 그 누구도 교전 상황이 민간 항공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 반군이 정부군에게서 노획한 방공 무기 혹은 러시아에서 제공한 방공 무기가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 자들은 많았지만, 그 중 아무도 민간 항공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지정학적, 군사적인 관점에서 각국의 외교관들은 수없이 많은 논의를 했지만, 그 중 아무도 민간 항공 기구도 논의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관련자는 "해당 지역에 민항기들이 날아다닌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6월 6일 우크라이나 당국은 동부 우크라이나 영공을 통과하는 민항기에 26000ft의 고도 제한을 설정하였다. 이는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작전하는 군용기들이 안전할 것으로 판단되는 고도에서 작전하도록 하기 위해 민항기가 통과하는 고도를 그보다도 높인 것이었다. 이어 7월 14일에는 고도 제한을 32000ft로 올렸으며, 이는 군용기의 작전 고도와 민항기의 비행 고도 사이에 충분한 완충 지대를 설정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공을 폐쇄하지는 않았고, 사고 당일에만 160대의 항공기가 해당 영공을 통과하였다. MH17편이 격추되던 바로 그 순간에도 다른 수대의 민항기들이 해당 영공을 비행 중이었으며 이는 캥거루 루트와 관련이 있다.#

이는 곧 항공사들 역시 해당 영공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항공을 포함해 여러 항공사들은 물론이고, 그 어떤 나라에서도 소속 항공사에게 법적으로 항로를 제한하거나 경고를 표명하지 않았다. 비록 대한항공[4], 아시아나항공, 콴타스, 영국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싱가포르항공[5] 등 몇몇 메이저 항공사들은 이전부터 피격이나 유사 테러의 위험을 우려하여 우크라이나 상공을 지나는 것을 자제하고 다른 나라로 우회하도록 루트를 조정하는 상황이었지만,# KLM 네덜란드 항공, 루프트한자, 타이항공과 같은 메이저 항공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격추 직전까지 해당 영공을 통과하는 경로를 계속 사용하였으며 실제로 해당 공역을 비행한 항공기 수는 교전 상황이 악화되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화가 없었다.

희생자가 나온 홍콩 국적기인 캐세이퍼시픽항공은 본사의 유럽노선이 유로마이단 이후 우크라이나크림 반도, 아조프 해를 경유하지 않고 중국을 종단한 후 내몽골만주 상공을 거쳐 러시아 영공 깊숙이 우회하고 다닌다고 밝혔으며 싱가포르항공도 동일하다. 두 항공사는 당연히 체첸다게스탄이 가까운 캅카스도 경유하지 않으며 시리아이라크를 지나가야 하는 중동 경유도 안 한다. 싱가포르 - 이스탄불싱가포르항공이란아제르바이잔을 거쳐 터키 영공으로 들어가며 예전에 지나갔던 이라크 모술 상공은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특히 민항기 격추를 2번이나 경험해 본 대한항공의 경우 과거 냉전 시대부터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소련으로부터 자국의 여객기가 미사일 피격을 당하고도 그나마 조종사의 기지로 기적적으로 비상 착륙하거나, 탑승객 전원이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던 어처구니없는 사례들을 뼈저리게 겪어본 입장이기 때문에 항로 선정과 관련하여 국적 항공사들의 처신도 자연스레 안전 위주로 신중하게 나갔다. 대한항공은 유럽으로 갈 때 우크라이나 북쪽으로 돌아서, 아시아나항공우크라이나 남쪽으로 돌아서 가기 때문에 만에 하나 있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고 한다.

결국 이 격추사건은 분쟁지대가 절대 고고도의 민항기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반군이 보유할 수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대부분의 무기체계들은 기껏해야 맨패즈나 단거리 SAM이었지 반군이 고고도의 민항기를 위협할 수 있는 Buk를 보유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민항기의 트랜스폰더 등의 식별장치 의무화에도 불구하고 반군 역시 민항기의 통과 가능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무차별적인 격추를 하려다 이 사단이 벌어졌기 때문이다(!)[6] 결국 군사적인 실수에 의한 항공 사고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민항기들이 분쟁지대를 피해 다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

다만 이러한 지적들은 시스템의 결함을 드러내 차후 유사한 사고를 피하기 위한 교훈으로서 받아들이기 위함이지 항공사나 우크라이나에 사건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격추 자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격추시킨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1983년 9월 1일에 발생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문에 1984년 개정된 시카고 협약에 의해 민간 항공기에 대한 격추는 영공 침범이나 항로를 이탈했다고 하더라도 금지하기 때문이다.

6.3. 기타 조사

2014년 7월 18일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은 격추 당시 반군의 통화를 도청했다고 주장하며 녹음 자료를 공개하였다. 해당 녹취록에서는 반군으로 추정되는 자가 비행기가 격추되었으며 민간 여객기로 보인다고 보고하는 내용과, 반군 사령관으로 추정되는 자가 러시아 정보장교로 추정되는 자에게 항공기를 격추했다고 보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반군과 러시아에서는 도청 자료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신문기사 동영상

7월 21일, 러시아 국방부는 MH17편이 우크라이나의 Su-25 전투기가 발사한 공대공 미사일 또는 해당 지역 근처에 배치되어 있던 우크라이나 소속 Buk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격추 당시 레이더에 포착된 인근 항공기 자료 및 해당 지역 근처에 배치되어 있던 우크라이나 소속 Buk 지대공 포대를 찍은 위성 사진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공개한 레이더 자료는 국제조사단이 수집해 공개한 레이더 자료와 상충되어 부정되었으며, 민간 저널리즘 웹사이트 Bellingcat는 러시아가 공개한 위성 사진과 동일 시각에 동일 위치를 촬영한 위성 사진을 구입하여 분석한 결과 러시아에서 공개한 사진은 격추 당시 사진이 아닌 수달 전에 촬영한 사진임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7월 22일 미국 정보당국은 일부 자료를 공개하며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이 발사한 Buk 미사일에 의해 MH17편이 격추되었다고 주장했다. 해당 자료는 격추 당시 MH17편의 항로와 Buk 미사일의 발사 지점 및 궤적, 추락 지점 등이 표시되어 있었으며, 그 외에 국경 근방에서 러시아군이 반군을 무장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성 사진 역시 공개되었다.#

2015년 6월 러시아의 방위산업체이자 Buk 지대공 미사일을 개발, 생산한 알마즈-안테이 사에서는 MH17편이 Buk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었으며, 발사 위치를 추정한 결과 우크라이나군의 통제 하에 있던 자로셴스코예 인근에서 발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안전위원회에서는 알마즈-안테이에서 계산한 탄두의 기폭 지점은 동체 잔해에 남은 파편 흔적을 잘 설명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 기폭 지점을 바탕으로 한 발사 위치 추정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기각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최종 보고서의 부록에 수록되었다.

7. 격추 이후

2014년 7월 22일 네덜란드 검찰은 이번 격추 사건을 전쟁범죄로 보고 수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

이후 암스테르담 - 쿠알라룸푸르 노선을 운항하는 말레이시아 항공의 항공편은 MH19로 변경됐다.(KLM코드셰어는 KL 4123) 고로 17번은 영구 결번됐다. 결국 19편도 단항되었다. (KLM은 쿠알라룸푸르행에 보잉 777-300ER을 투입한다.)

2015년 7월 말레이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국제재판소를 열어 격추 사건에 혐의가 있는 자들을 기소하길 요청했으나,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여 묵살되었다.기사

2015년 10월 13일 국제조사단의 최종 보고서 발표에 발맞춰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러시아 측에 말레이 항공 여객기 피격 사건의 책임자를 규명하기 위한 범죄 수사에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물론, 러시아는 이 최종 보고서에 반발하여 재조사를 요구했다. 링크 1 링크2

BBC 음모론 소개

말레이기 친러 반군이 격추 안했다고 주장하였는데, 다음 날, 네덜란드 경찰이 친러 반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되었다고 조사 결과 발표하였다. # 그리고 러시아가 예상대로 반발하였다. #

2017년 12월 8일에 등장한 주장에 따르면, 합동조사팀이 2016년 9월에 MH 17편 격추에 관여된 "델핀" 과 "오리온" 이라는 코드명의 인물들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 관련 정보의 제보를 요청했는데, 확인 결과 "델핀" 의 정체가 바로 러시아군 현역 상장 니콜라이 페도로비치 드가체프 였음이 증명되었다. 참고로 당시 드가체프는 러시아 국경 인근 도시인 크라스노돈에서 루간스크 반군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고, 크라스노돈은 MH17편을 격추한 부크 미사일이 우크라이나로 처음 반입된 곳이다. # 이게 사실이라면 사건의 진상이 (고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친러 반군의 소행이라는 방향으로 무게가 더 실리게 되는 셈. ...인 줄 알았으나.

국제조사팀은 사고의 여객기를 격추한 BUK는 6월 23~25일 쿠르스크의 주둔지에서 이동한 러시아군 제53방공미사일여단 소속 차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 2#)

2018년 5월 25일에 EU와 NATO는 중간발표결과, 러시아에 격추사건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러시아측은 반발했다.# 그리고 러시아 국방부는 2014년에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MH17 여객기를 타격한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부대가 보유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2019년 6월 19일에 국제조사팀은 사건에 연루된 4명의 용의자를 발표하고 국제수배자명단에 올리자 러시아측은 반발했다.# 이 와중에 말레이시아 수상 마라티르 무함마드가 국제조사팀의 조사발표에 불만족스러움을 호소했다.(영어) 7월 17일.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건 책임자 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2019년 9월에 유력 용의자였던 블라디미르 츠마흐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반군을 위해 싸운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예심에 출두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갑자기 풀려났다.# 이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포로문제로 추측되고 있다.

8. 각국의 반응

  • 말레이시아
    자체적인 재해 구조와 의료팀을 현장에 급파하였으며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에게 철저하고 독자적인 조사를 보장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책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피격 사건의 영향으로 말레이시아에서는 반러 감정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친러에 가깝다 보니 국민들의 반응이 곤혹스러운 듯했으나 2019년 들어 국제조사단의 발표에 의문을 표하는 등 러시아를 어느 정도 옹호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미국
    사고 초기부터 익명의 관계자 발언 등으로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의 소행에 무게를 두었으며 # 오바마 대통령이 반군지역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공식발언했다. 또한 이러한 사태를 벌인 세력과 그를 지원하는 세력을 강하게 비난하였다. 안 그래도 크림과 동부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러시아에 외교적 공세를 가하던 미국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테러 제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 네덜란드
    이번 희생자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역사상 최악의 항공재난이라고 큰 충격을 받았다. #[7] 그 뒤로도 사고 조사 등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오스트레일리아
    27명이 사망한 오스트레일리아도 '형언하기 어려운 범죄'라며 충격을 보이고 있다. 7월 19일에는 애벗 총리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각각 말레이시아 수상과 유가족들에게 이번 비극에 대한 조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땅에서 벌어진 일이니 우크라이나의 책임"이라면서 우크라이나가 쓸데없이 평화를 깬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
  •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는 러시아와 반군의 책임이라며 적대국을 비난하는 동시에 러시아가 이번에 일어난 사태의 책임을 자국에게 떠넘기며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주장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반군 측을 겨냥해 "이번 여객기 피격 사건은 사고나 재앙이 아니라 테러행위"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 자세한 내용은 추가 바람.

9. 여담

말레이시아에서 환승하여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승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희생자들이 많았다. 이 중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리는 제20회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멜버른으로 향하는 승객들이 있었으며,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국제 에이즈 소사어티도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희생자에 대해 조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콘퍼런스는 취소되지 않고 계획대로 열릴 예정이다.#

격추된 비행기에 에이즈 연구 과학자 6명[8]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UN산하 UNAIDS에서 발표한 2030년이면 에이즈 통제 가능이라는 희망적 관측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그중에는 국제 에이즈 학회의 전(前)회장이자 암스테르담 대학 의대의 세계보건팀장으로서, 에이즈 관련 논문을 350여 편을 작성한 저명한 연구원이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윱 랑어(Joep Lange)도 있었다.#

의학자는 아니지만, 해당 컨퍼런스에 참석할 예정으로 같은 비행기에 탑승하였던 영국 출신의 세계보건기구의 홍보책임자(media officer)[9]인 글렌 토머스(Glenn Thomas)도 사망하였다.#

지난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사고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불운을 비껴간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이 오스트레일리아[10] 부부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으며, 원래 사고기인 말레이시아 항공 17편에 탑승하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시차적응이 걱정되었던 부부는 계획을 바꿔 하루 일찍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왔다. 계획을 바꿔 탑승했던 그 비행기는 남은 좌석이 있는지 불명확한 상태여서, 문자 그대로 비행기 이륙 몇 분 전까지 탑승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만약 그때 좌석이 나지 않았다면...#

반대로 오버부킹 때문에 MH17편을 못 타고 뒷 비행기였던 KLM 항공 809편을 탄 영국인 부부와 아기도 있었다. 정상적으로 말레이시아 항공에서 탑승권을 결제했음에도 오버부킹 때문에 탑승하지 못하고 KLM의 여객기를 탔는데, 오히려 오버부킹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고. 부부는 “사망한 탑승자 298명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사고로 아들 부부를 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노부부는, 이번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으로 넉 달 만에 의붓 손녀 부부를 또 잃는 비극을 겪어 말레이시아 항공과 원치 않은 악연을 이어가야 했다.[11] #

말레이시아 총리의 의붓할머니도 탑승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인 희생자들 가운데에는 전지훈련을 떠난 축구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프리시즌 경기를 관람하러 뉴질랜드로 향하던 뉴캐슬의 팬 2명이 포함되어 있다. 60대의 존 앨더 씨는 1973년부터 가족의 사망으로 관전하지 못한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직관한 열혈 팬이었다고 하며, 20대의 리엄 스위니 씨는 어웨이 경기에 나서는 팬들의 버스를 자원해서 운전하곤 했던 충성스러운 서포터로서, 축구팬들의 깊은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뉴캐슬 지역지 기사 뉴캐슬 구단의 애도 성명

한 탑승객이 3월에 일어난 말레이시아 여객기 실종사건 때문인지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자신의 SNS에 비행기 사진과 함께 "Mocht hij verdwijnen, zo ziet hij d'r uit.(만약 내가 사라지면 그 비행기는 이렇게 생겼어.)"이라고 농담으로 글을 남겼다. 결국 그 비행기는 약 7시간 후에 격추되었고, 누리꾼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위해 그의 글을 공유하고 있다.#

항공기를 운항했던 네덜란드 국적의 파일럿은 동성커플로 배우자를 말레이시아에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양육할 네덜란드 아이를 입양해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파일럿과 아이는 사망했다.

10. 관련 항목



[1] 기종은 Boeing 777-200ER. KLM 코드셰어 편명은 KL4103.[2] 다르게 말하자면 미사일을 발사한쪽이 작정하고 항공기를 더 격추하려고 했으면 싱가포르항공쪽도 똑같이 대참사가 발생했을것이다.[3] 말레이시아/오스트레일리아 이중국적 1명 포함[4] 대한항공은 과거 1983년 007편 격추사건1978년 902편 격추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세가 심상치 않자 일찌감치 우크라이나를 피해 다녔다.[5] 하지만 싱가포르항공은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뒤에서 불과 25km 떨어진 지점을 날아가고 있었고 말레이시아 항공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애타게 탐색을 시도했다.[6] 실제로 미국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에 공습을 하기 위해 해당 공역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세르비아는 이에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격추하려는 명령으로 대응했다. 반군들도 자신들이 공군이 없으니 비슷한 결정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7] 엄밀히 말하자면 네덜란드가 관련된 최악의 참사는 KLM이 연관된 테네리페 참사다.[8] 당초 100~108여 명으로 발표되었으나, 학회에서 개별국가에 전부 접촉하여 취합한 결과 6 +a 명으로 정정되었다.[9] 일부 언론사에서는 대변인으로 해석하나, 남성 대변인은 spokesman으로 표기한다.[10] 애들레이드 거주자라고 한다[11] 참고로 한 재미교포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후,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여동생을 잃으며 대한항공과 원치 않는 인연을 이어가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