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3 19:12:54

마틴 스콜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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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 장편 연출 작품
,(다큐멘터리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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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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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투리아스 공상 예술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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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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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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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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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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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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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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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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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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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닐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앤절라 랜즈베리 }}}}}}
21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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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셰어, 필립 글래스, 리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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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이름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분야영화
입성날짜2003년 2월 28일
위치6845 Hollywood Blvd.}}}}}}
Martin Scorsese
마틴 스콜세지
파일:마틴 스콜세지.jpg
이름Martin Scorsese
마틴 스코세이지
본명Martin Charles Scorsese
마틴 찰스 스코세이지
국적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png[1]
출생1942년 11월 17일 ([age(1942-11-17)]세)
뉴욕 주 퀸스
모교뉴욕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1960-1964)
뉴욕대학교 티쉬 예술대학 영화학과 (석사) (1964-1966)
신장163cm
직업감독, 프로듀서, 배우
종교가톨릭
활동1960년 – 현재
배우자러레인 마리 브레넌,(결혼:1965 – 이혼:1971),
줄리아 캐머런,(결혼:1976 – 이혼:1977),
이사벨라 로셀리니,(결혼:1979 – 이혼:1982),
바버라 더피나,(결혼:1985 – 이혼:1991),
헬렌 모리스,(결혼:1999 – ),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1. 개요
1.1. Scorsese의 발음
2. 생애3. 필모그래피
3.1. 장편 서사 영화3.2. 다큐멘터리3.3. 텔레비전 작품
4.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의 특징5. 논란
5.1. 마블 영화에 대한 비판과 영화계 논쟁 촉발
6. 기타7. 외부 링크

1. 개요

Martin Scorsese is one of the great filmmakers of all time, so when he asks you to be in a movie, you don't ask questions, you just do it.

마틴 스코세이지는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다. 만약 그가 당신에게 영화에 출연해달라 부탁하면, 따져 묻지말고 당장 출연하라.
― 롭 라이너[2]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냐 하면,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그 말은... 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우리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입니다.)
봉준호,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 소감[3]

미국영화 감독.

현시대 활동중인 감독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의 역사 전체에서 최고의 영화감독을 뽑을 때 항상 거론되는, 대표적인 거장이자 위대한 감독.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도 꿋꿋이 개인적인 비전과 개성이 담긴 작품 세계를 펼쳐보이는 작가주의적 성향의 감독이다. 동료들이 부르는 마틴의 애칭은 '마티'. 빠른 말투에서 나오는 진한 뉴욕 억양이 인상적이다[4]. 또한 미국 영화에서 할리우드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계열인 '뉴욕파'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1.1. Scorsese의 발음


인터뷰에서 발음을 물어보자 직접 읽어주는 모습.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Scorsese를 어떻게 읽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감독 본인에 따르면 스코세시 (/skɔːrˈsɛsi/). 본인의 발음으로 명백히 세시라 들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어식으로 표기하면 '스코르세제''지만 이 사람은 이민자이니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Scorsese도 한 번 바꾼 것이다. 뉴욕 주 엘리스 섬에서 이민자 명단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 마틴 스콜세지의 조부인 프란체스코 피에토의 성씨는 Scozzese라고 적혀있다. 발음은 스코체제. Scozzese는 이탈리아어로 '스코틀랜드의'란 뜻이다. 성씨로 보건데 스코틀랜드에서 이탈리아로 조상이 이주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볼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계 이탈리아계 미국인?

2005년 제62차 외래어 심의위원회에서는 마틴 스코세이지를 표준표기로 정했다. 현재 통용되며 항목명이기도 한 '마틴 스콜세지'는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외래어 표기에서 /r/를 받침ㄹ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맞지 않는 표기다. 허나 상술했듯 본인이 세시라고 읽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영되지 않은 건 아쉽다.

씨네21은 스코시즈라고 부른다.

2. 생애

마틴 스콜세지는 이탈리아계 부부의 두 아들 중 둘째로,[5] 1942년 11월 17일에 뉴욕 퀸즈의 코로나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6]. 뉴욕 시 로어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리틀 이탈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그곳에는 마피아를 포함한 범죄자들이 거주했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따랐다고 한다[7]. 그와 많은 작업을 함께한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8]

어린 시절부터 영화광이었으며 11살 때부터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A1GXFcjC3lL.jpg
상단의 스토리보드는 스콜세지가 그린 『영원한 도시』(The Eternal City)라는 제목의 고대 로마 대서사극으로, 검투사 결투가 등장한다. 어린아이가 만든 느낌이 팍 나지만, 연출/카메라 각도/톤 등 어린아이가 만들었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비범하다. 웅장한 오프닝과 프로덕션 로고/컴퍼니들을 보여주고, 앙상블 스테이징부터 배역들의 배치 배경을 활용한 인물들의 구조 등 천재성이 돋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70mm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기 이름에서 딴 MARSCO 프로덕션이 귀엽다 잘 보면 캐스팅이 어마어마하다. 리처드 버튼, 알렉 기네스, 잭 호킨스, 로버트 테일러, 진 시먼스, 잭 팰런스, 존 캐러딘, 앤서니 퀸..

파일:external/flavorwire.files.wordpress.com/story2.jpg
상단의 그림은 스콜세지가 그린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스토리보드다. 영화 『레이징 불』과 마찬가지로 그가 직접 모든 장면을 스토리보드로 그렸다.

스콜세지는 영화평론가 리처드 시켈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호텔방에 처박혀 스토리보드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9]

3. 필모그래피

3.1. 장편 서사 영화

연도 제목 역할 비고
1967 누가 내 문을 두드리나 연출, 각본 장편 데뷔작
1969 홀림, 벽의 구멍 각본
1972 공황 시대 연출
1973 비열한 거리 연출, 제작, 각본
1974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연출
1976 택시 드라이버 연출
1977 뉴욕 뉴욕 연출
1980 성난 황소 연출
1982 코미디의 왕 연출
1985 특근 연출
1986 칼라 오브 머니 연출
1988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연출
1990 좋은 친구들 연출, 제작, 각본
1991 케이프 피어 연출
1993 순수의 시대 연출, 각본
1995 카지노 연출, 각본
1997 쿤둔 연출
1999 비상 근무 연출
2002 갱스 오브 뉴욕 연출
2004 에비에이터 연출
2006 디파티드 연출
2010 셔터 아일랜드 연출, 제작
2011 휴고 연출, 제작
2013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연출, 제작
2016 사일런스 연출, 제작, 각본
2019 아이리시맨 연출, 제작
TBA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연출

3.2. 다큐멘터리

연도 제목 역할 비고
1966 뉴욕 시... 녹는점 연출, 각본
1974 이탈리아계 미국인 연출
1978 라스트 왈츠 연출
1978 미국 소년: 스티븐 프린스의 개요 연출
1995 마틴 스코세시와의 미국 영화를 통한 개인 여행 연출, 제작, 각본
1999 내 이탈리아로의 항해 연출, 각본
2001 이웃 연출
2003 집에 가는 느낌 연출
2004 바다의 여인: 자유의 여신상 연출, 제작
2005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연출, 제작
2008 샤인 어 라이트 연출
2010 엘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연출, 제작, 각본
2010 대중 연설 연출, 제작
2011 조지 해리슨: 물질 세계에서의 삶 연출, 제작
2014 50년 인수 연출, 제작
2019 롤링 썬더 공연: 밥 딜런 연출

3.3. 텔레비전 작품

연도 제목 역할 비고
2010-14 보드워크 엠파이어 연출, 책임 제작 에피소드 "보드워크 엠파이어"

4.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의 특징

나는 영화의 관점이 명확하고 개인적일수록 그 영화의 예술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I tend to feel that the more singular the vision and the more personal the film, the more it can claim to be art.”) -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영화감독 21인의 비밀 수업', p. 75
  • 페르소나
    유명한 페르소나로는 로버트 드 니로, 2000년대부터는 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스콜세지의 첫 번째 페르소나는 스콜세지의 학교 선배 하비 카이텔[10]이다. 스콜세지가 말 그대로 메가폰을 처음 잡아본 풋내기였을 때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장편영화에 출연하던 하비 카이텔[11][12]은 스콜세지와 여러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으며, 혹자는 드니로보다 카이텔을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로 더 높게 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이텔은 스콜세지 본인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 놓은 페르소나근데 카이텔은 『택시 드라이버』에서 미성년자 여자아이를 매춘부로 쓰는 포주 역을 맡았는데이며, 드니로는 스콜세지가 구상하는 캐릭터를 현실로 구현하는 페르소나로 해석한다. 항상 남자 배우들과 작업을 하기 때문에 성적 지향에 관한 농담을 듣고는 하지만 이성애자이다. 결혼도 5번이나 했다(...)
  • 주제
    갱스터 느와르 영화계의 대부이지만 그의 영화들 대다수는 단순히 갱스터와 범죄를 소재로 한 오락영화라기보다는 미국 사회와 갱스터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 작가주의적 영화에 가깝다.
    그의 초기작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란 점인데,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다 찌질한 소시민이며, 사실상 미국 사회에 잘 동화된 듯하면서 겉도는 캐릭터이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각은 뚜렷하게 있다. 그들은 본인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 때문에 끊임없는 내면의 갈등에 시달리며, 이 갈등이 스콜세지의 초기작의 테마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계 못지않게 미국 백인 사회에서 소외받았던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갱스 오브 뉴욕이 바로 그 일환으로 탄생한 영화.
    미국의 근현대사에 관심도 굉장히 큰 편이다. 그 외에도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및 미국이 감추려고 노력하는 흑역사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다. 본인도 학교에서 안 다루는 미국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 종교관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작을 보면 그의 종교관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스콜세지는 문화로서의 종교에 상당히 얽매여 산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가톨릭 냉담자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이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I'm a lapsed Catholic. But I am Roman Catholic, there's no way out of it.)"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3]
  • 선곡
    쿠엔틴 타란티노 못지않게 선곡 감각이 탁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애초에 타란티노 영화의 선곡 스타일 자체를 정립한 것이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음악 스타일이다). 롤링 스톤즈Gimme Shelter를 좋아하는지 카지노좋은 친구들, 디파티드에 세 번이나 등장시키기도 했다.[14] 이외에도 비틀즈[15], 크림1960년대 뮤지션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다만 비열한 거리 찍을 때 미국의 유명 걸그룹 로네츠의 Be My Baby를 무단으로 써서 매우매우 빅엿을 먹었다. 작곡가인 필 스펙터[16]한테 사과하고, 여러 영화 음악도 맡기고, 그에게 상당한 수익도 떼주는 등 필요 이상의 대가를 치렀다.
  • 연출 기법 및 기타 특징
    연출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 주인공들의 나레이션이 상당량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아닌 여러 시대를 동시에 아우르는 줄거리를 쓰는 경우도 많다. 또한 러닝타임 역시 짧게는 2시간 내외, 길게는 3시간 가까이 갈 정도로 다양하며, 보통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통한 이동씬도 자주 나온다. 좋은 친구들에서는 처음으로 스테디캠을 동원해 인상적인 롱테이크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일시적으로 정지화면을 보여주는 프리즈 프레임 기법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또한 작가주의적인 성향의 감독이지만 1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자본을 투자한 대작들도 자주 연출하였으며, 그 정점은 아이리시맨. 영화의 예산도 약 1억 5900만 달러로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파치노, 하비 카이텔 등 거물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것은 물론 배우들의 젊은시절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CG도 상당히 많이 들였고, 러닝타임 역시 무려 209분이나 된다. 다만 스콜세지가 연출한 1억 달러 이상 대작들 역시 대부분의 그의 영화들처럼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편은 아니라서 흥행은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17] 그래서 아이리시맨은 투자를 받는데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18]

이러한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후대에 나온 느와르 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 영화 중에서 스콜세지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는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19], 더 킹[20] 등이 있다.

5. 논란

5.1. 마블 영화에 대한 비판과 영화계 논쟁 촉발

현지시각으로 2019년 10월 3일, 자신의 프로덕션 사단이 참여한 DC 코믹스의 <조커>의 월드와이드 개봉시기와 맞물려 BAFTA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마블 영화에 대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감성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영화(cinema)가 아니라 테마파크이다."라고 평했다.#번역 이 발언은 스콜세지를 지지하는 관객들과 MCU를 지지하는 관객들의 수준을 넘어 친 마블계의 인물들과 친 스콜세지계의 영화업계 종사자들까지 논쟁에 참여하여 그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MCU의 영화적 작품성과 영화 시장에 끼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에 대한 논쟁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아래는 진행 순서에 따른 내용이다.

해당 발언 직후 제임스 건조스 웨던, 시무 리우가 트위터로 실망섞인 감정을 밝혔으며 새뮤얼 L. 잭슨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마틴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번역라며 취향을 존중하라는 반박을 했다. 또한 많은 MCU 우호 관객들이 스콜세지에게 비판을 가했다.[21][22] 물론 마틴의 발언에 지지하는 관객들도 동의한다는 의견을 표명하며 맞섰으며, 소수 시네필들을 중심으로 마틴의 어휘 선택에 주목하여 "마틴은 MCU가 단지 그가 생각하는 영화(cinema)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은 별개의 테마파크 같은 것이라고 한 것이지 영화(film)에 포함시키지 않은 건 아닌데 너무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는것 아니냐."는 의아해하는 반응도 세계 각지의 영화 커뮤니티에서 조금씩 나오기도 하였다. 한편 마틴의 해당 발언이 있은 5일 뒤, MCU 흥행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아이언맨 시리즈의 주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다른 MCU 배우들에 비하면 비교적 늦게 평소 돌직구로 유명한 하워드 스턴쇼에 참여해서 이에 관한 발언을 하였다.[23] 하워드의 집요한 질문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약간 진저리치면서"마틴 스코세지씨가 MCU의 성공을 질투했다고요? 아니요. 그분은 마틴 스코세지입니다. 저의 아버지의 영화를 복원해주기도 하셨죠. 정말로 그분이 MCU에 대해 화가나셨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그분의 의견에 감사드립니다."[24]#번역라며 여타 MCU 배우들의 비난조와는 반대의 의견을 개진하는 한편, 동시에 아이언맨은 분명 시네마이고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뭐든지 나아지기 위해서는 여러 의견이 필요하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외에 여태까지 구세대 감독들이 MCU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은 많지만 대부분은 크게 화제가 되진 않았으나, 이번에는 특히 원로중의 원로였던 스콜세지의 발언 때문에 다른 감독들이 MCU에 내렸던 평가가 재발굴 되기도 하였다.

해당 발언이 있는 후 마틴은 일주일 뒤 <아이리시맨>으로 참가한 런던 BFI에서 같은 주제에 대해 발언을 하였다.#번역 BFI에서는 지난주의 큰 논란으로 인한것인지 좀더 자세한 부연을 곁들였다. 마틴은 "영화(cinema)가 나서서 네러티브 영화(narrative films)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영화관은 놀이공원이 됐다. 그래 훌륭하고 좋다. 그런데 다른 모든 영화(films)들에도 그런 놀이공원 같은 게 침투하면 안 된다."라며 미국 영화 시장의 일원화에 대한 위험을 지적하는 한편 "그런데 나는 이제 그 작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보니,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존경하게 됐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는 거다."고 첫인상과는 달리 자신은 MCU 제작진들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단지 자신의 기호와 예술적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임을 밝혔다. 이어서 그는 "그런 게(MCU) 영화(cinema)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종류의 관객들을 만들어냈다."며 MCU를 시네마로 평가하는 친 MCU 관객들에게 경보를 알리며 끝맺었다. 마틴은 한국어로는 세 단어가 전부 똑같이 '영화'로 옮겨지는 Film, Cinema, Movie를 엄격히 구분하는 감독에 속하는데, 이러한 엄격한 구분이 오늘날 셋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 대다수의 일반 청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25]

그러나 중립적 자세를 취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조차도 "나의 영화(film)는 시네마(cinema)가 맞다"고 말한 것처럼 여전히 MCU 팬들 사이에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위와 같은 마틴의 해명에도 MCU 지지자들에겐 여김없이 강도 높은 비난을 받은 것이다. MCU 팬덤 외의 관객들의 의견과 비교해보면, 찬성파는 MCU의 상업영화로서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단지 영화(film)의 형식만 따른 팝콘무비의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이라며 지지하고 있고, 반대측인 친 MCU 파는 MCU 역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영화로서 충분히 시네마(cinema)의 경지에 속하는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이며, 마틴이 자신이 지닌 권위와 위치에 맞지 않는 경솔한 발언을 했다는 의견이다. 더군다나 스콜세지의 발언이 나왔던 시점에선 한창 MCU 팬덤과 디즈니 측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2019년도 아카데미 어워즈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복수의 부문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및 수상받게 하기 위한 이른바 오스카 캠페인을 벌이던 시기이기에 더욱 더 논란이 되었다.[26] MCU 팬덤 입장에서는 같은 히어로 무비의 파이를 두고 싸우는 적대진영 DC 코믹스 측에 호의를 표하는 거장 감독이 평소에 해도 용납하지 못할 수위의 발언을, 하필이면 《조커》 개봉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한 것이 무척 큰 사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스콜세지의 발언이 다소 과격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개인적 취향으로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 라는 발언까진 뭐라 할 수 없으나 이어진 '그런 영화들을 시네마로 받아들이는 관객에 대한 경종', '마블 영화들에게 내러티브 영화들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 라는 발언은 MCU 영화들이 엄밀하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시네마의 수준에 이르는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 MCU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너무 무례했다는 다소 주제 외적인 의견이다. '시네마라는 기준을 몇몇 감독이 정할 수 있느냐, 개개인의 감상에 대한 침해가 아닌가' 라는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반대로 최근 불거진 MCU의 오스카 캠페인 등에 대한 연장선으로 'MCU 영화들이 과도하게 예술의 영역에 침범했다' 라고 스콜세지에 동조하는 의견 역시 존재하며, 이 서로 다른 의견들이 뒤섞여 여러 커뮤니티에서 격한 반응이 일어났다. 한편 그 마틴 스콜세지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까지 과격한 발언을 할수밖에 없게 된 이유를 초우량기업 마블과 디즈니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세대 미국 영화 시장의 부정적 변화에 주목하여 분석한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오늘날 전세계 영화업계에서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MCU의 팬덤과 반세기 이상 동안 미국 영화계의 역사를 손수 써내려간 마틴 스콜세지의 지지파들이 존재하는 이상 이번 논란은 쉽사리 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후 스콜세지는 지금의 극장은 테마파크 영화(theme park)와 코믹북 영화들(comic book films)을 주로 지원해주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나쁠거 없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이런영화가 시네마라는 개념을 믿게되선 안되며 노아 바움백 (Noah Baumbach)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등 감독들을 언급하며 이런 감독들의 서사적인 시네마 영화를 극장이 지원해주길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과거 2011년에도 블록버스터들이 진지한 영화 관람과 진지한 영화에 대한 숙고를 앗아가고 있다 우리는 테마 파크 영화(film)에 맞서 대응해야 한다. 그 영화들은 잘 만들어졌고, 몇몇은 상당히 즐길 만하지만 말이다 라는발언을 한 적이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마블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깨달음, 지식, 영감등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것이 시네마이기 때문에 맞다고 동조했다. 더불어 스코세지는 친절한 사람이라 마블영화를 경멸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다고 한다라고 했다.# 다만 이 발언은 옹호측에서도 발언의 수위가 지나치다는 말이 나오는 편이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스콜세지의 발언을 비판하였다. #

번역) 마틴 스콜세지: 왜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닌가 #

이 발언 때문에 아이리시맨의 오스카 캠페인이 안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 사실 아카데미 회원들 중에서도 MCU 관계자들이 좀 있는 편이다. 그 전부터 앤서니 마키, 폴 러드 등의 배우들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되었고, 최근 몇년까지만 해도 MCU 대표 배우인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프랫이 아카데미 신입회원들로 뽑혔으며,# 해당 발언이 나온 2019년에는 톰 홀랜드, 레티티아 라이트, 윈스턴 듀크[27], 스털링 K. 브라운[28]가 신입회원으로 위촉되었다. 배우 외에도 다른 기술 부문에도 MCU 영화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들이 꽤 있는 편. 이들이 감독의 발언 때문에 개인적인 원한으로 영화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MCU 관계자들은 투표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래 전부터 순수하게 영화 자체의 작품성뿐 아니라 선거운동처럼 로비, 캠페인, 화제성, 제작진과의 친분 등 외적인 요소가 상당히 작용해왔고, 이런 지적은 굳이 MCU 제작진뿐 아니라 다른 회원들에게도 적용되온 비판이다.

이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오우삼#, 심지어 롤랜드 에머리히#에 이르기까지 '마블은 시네마가 아니다' 라는 논란이 계속되자 이 논쟁 자체가 지긋지긋하다는 여론도 보이는 추세이다. 사실 스콜세지의 발언에 내재된 '대기업의 획일화된 상품식 영화 제작'의 비판에는 마블이 시네마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점 자체를 지적한다면 독점되는 상품의 예술성 문제는 부가적이며, 굳이 시네마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작품의 획일성, 감독의 자유 제약, 상영관 및 투자의 편향성 면에서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비판이 가능하다. 하지만 스콜세지와 뒤이은 거장들, 기타 감독들의 연이어 '마블의 시네마 부정'이 이어지자 언론과 대중은 개개인마다 해석의 여지조차 다르게 여겨지는'시네마'에만 관심을 돌리지 문제의 본질인 디즈니의 제작 체계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로 이 논란으로 디즈니의 제작 방식이 변화하리라는 관측은 회의적인 것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현재 벌어지는 논란은 철저히 주관적 감상에 의거한 MCU 제작진 및 팬덤과 타 감독들 및 MCU 비판 측의 싸움이며, 따라서 생산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진흙탕 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이 비관적 시선의 골자이다. 실제로 스콜세지의 첫 발언 이후의 다른 감독들의 발언은 거의 시네마의 유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윌렘 데포는 스코세지의 말에 동의하나 대형 프렌차이즈 영화가 없어도 극장은 정체될 수 있으며, 조셉 캠벨의 신화를 코믹북 영화에 투영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했다. 코믹북 영화를 찍은 경험은 새로웠고 즐거웠다고 회고한다.#

토드 필립스는 많은 영화들을 딱 한 가지로 분류해서 일반화했다는 점을 문제삼았고 멀티플렉스 영화가 독점해서 다른 영화들의 상영관이 별로 없다는 것은 문제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종류의 영화들을 만들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관객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마블 발언에 대해서 이해한다고 말했다.#

가디언과의 2019년 12월 20일 자 인터뷰에서는 “아이리시맨이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으며, 프랑스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나 NFT에서만 자기 영화를 볼 수도 있겠다”, “레이디 버드나 The Souvenir같은 상업적이지는 않지만 진실된 영화들을 많은 관객들이 찾고 있다”, “상업적인 영화라고해서 예술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며, 사랑은 비를 타고 같은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예술 형식을 보호 할 수 있는가” 라고 말했다. #

6. 기타

  • 천식 때문에 평생 약을 달고 살았으며, 운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말을 속사포처럼 빨리 말하는 습관도 천식에 기인한다.
  • 연기에도 관심이 있는지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택시 드라이버에서는 아내불륜을 의심하는 남성으로 나와 뉴욕 악센트로 장광설을 보이기도 한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퀴즈 쇼에서도 단역으로 나와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 자신의 부모를 카메오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어머니 캐서린 스콜세지(1912-1997)는 스콜세지의 단편영화 '너 아니라고, 머레이(It's Not Just You, Murray!)!'로 데뷔했고 주로 이탈리아계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아들의 작품에 다수 출연했는데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와 비열한 거리, 코미디의 왕[31], 좋은 친구들, 대부 3편이건 코폴라 감독인데..., 케이프 피어, 순수의 시대, 카지노 등에 출연했다. 요리책을 내기도 했다.
  • 아버지 찰스 스콜세지(1913-1993)는 아내보다 늦게 1980년에 레이징 불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사실 1974년에 아내랑 마틴 스콜세지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탈리안아메리칸(Italianamerican[32])에 인터뷰이로 나오긴 했으나 배우로 나온 건 아니니까. 그 후 코미디의 왕, 좋은 친구들, 케이프 피어, 순수의 시대에 출연했다. 두 번째 아내인 작가 줄리아 캐머런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도미니카 캐머런스콜세지(Domenica Cameron-Scorsese, 1976-)는 순수의 시대에 출연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영화배우로 일하고 있다. 주연보다는 조연이나 단역을 맡지만. 제작과 각본 등 계속 영화계에서 일한다고. 채플린에게 영감을 받았나 보다 다섯 번째 아내 헬렌 모리스(Helen Morris) 사이에서 낳은 딸 프란체스카(Francesca Scorsese, 1999-)는 디파티드에비에이터, 휴고 등에 출연했다.[33]
  • 새 작품인 사일런스를 촬영하는 도중 세트장이 무너져 인부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스콜세지 감독 본인은 중상을 입은 2명이 회복될 때까지 촬영을 재개하지 않기로 했다고.관련 기사
  • 상술했지만 엄청난 영화 덕후로, 1990년 필름 파운데이션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영화 복원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7년부터는 세계 영화 복원에도 관심을 기울기 시작해 현지 영상자료원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정도. 한국에서는 하녀(1960) 복원 지원으로 유명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복원도 이 사람이 하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경우도 이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이 해냈다.
  • 박찬욱, 이창동, 장선우,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감독을 소개한적 있었다.#
  •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생각보다 더 큰 혁명과도 같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간섭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후원을 받는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큰 호감을 표했다.# 그는 "스타 파워에 힘 입어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으나 이제 그것도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내가 30년 젊었다면 난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거다. 헐리우드에서 아무도 우리에게 돈을 대주려 하지 않았다. 그 때 넷플릭스가 와서 우리를 지원해주겠다고 했다."면서 완전한 창조적 자유와 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추가적인 6달 간의 사후 제작 기간을 제공했다고 한다.#
  • 영화에 여성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은 어리석은 질문이라 했다. "그건(여성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은) 정확한 논점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수많은 세월 동안 받아온 질문이다. 스토리에서 여성 캐릭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거밖에 안 된다. 스토리에서 여성 주연이 필요하면 안 될 게 뭐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 스코세지가 교수시절 카우보이 코스프레를 하고 존웨인을 보자고 하니까 학생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장난감총을 겨누며 안보면 점수을 안준다고 했었다 한다.#
  •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오스카 경쟁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뽑았고 유일하게 극찬했다.[34] # 이후에도 봉준호 감독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이후 봉준호 감독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소감에서 이날 아이리시맨으로 똑같이 감독상 후보로 관객석에 앉아있던 그의 앞에서, 자신이 영화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언제나 가슴에 새겼던 말이 바로 마틴 스코세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며[35] 스코세지에 대한 헌사를 이 대목만큼은 통역없이 봉 감독이 직접 보냈고, 봉 감독과 통역을 맡은 최성재(영어 이름 "샤론 최") 씨의 전달 연출이 매우 극적이라 관객석에 있던 모든 관계자들이 마틴 스코세지에 대한 경의를 담은 기립박수를 1분여 가까이 올렸다. 이후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이번에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바다 건너 온 후배들의 존경을 현장에서 받으며 거장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36]. 그날의 기립박수 장면. 이후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 스코세지의 막내딸 프란체스카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빠가 오스카상을 받는 것보다 기립박수를 받는 것이 더 좋았다"고 밝혔다. 프란체스카는 이날 시상식의 기립박수 장면에서 아버지인 스코세지 감독 옆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기도 했다.#
  • 스코세지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발언의 전문#

7. 외부 링크



[1] 2018년 취득, 이탈리아는 자신의 조상이 이탈리아 출신이면 신원확인 등의 절차를 걸쳐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2] 출처[3] 스콜세지가 정확히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 언론과의 미국 현지 회견에서 저 내용은 '데이비드 톰슨이 쓴 책에서 본인이 밑줄을 친 문구'라고 부연하였다. 이 책은 한국에서 『비열한 거리 ― 마틴 스콜세지: 영화로서의 삶』로 번역된 데이비드 톰슨과 이언 크리스티의 저서 "Scorsese on Scorsese"를 말하는데, 서문에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있다: "존 카사베테스의 예가 그(스코세이지)에게 보여주었다시피 영화는 개인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자원을 사용할수록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관된 작가성에 대한 집착이 있을 때 영화 작가에게 있어 어떤 제스처와 대사 한 줄도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참된 것이 될 수 있다." 참고 기사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 정확한 인용은 아니기는 하나, 스콜세지의 영화 철학을 잘 해석한 표현으로 헌사에 쓰기에는 무리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4] 떼껄룩의 현실판인 "Fuhgeddaboutit"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건 "관둬", 혹은 "집어쳐"란 의미의 "Forget about it"의 뉴욕식 표현인데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본토 억양이 영어에도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5] 장남은 프랭크 스콜세지(Frank Scorsese).[6] 교포들도 살고있는 플러싱에서 10분정도 서쪽에 위치한 동네이다. 현재는 히스패닉계들의 주거지역과 상권을 이루고 있다.[7] 이탈리아계 이민자들, 특히 시칠리계가 다수 건너왔었다.[8] 스콜세지는 드 니로가 16살 때 어울렸던 패거리가 두려워 그를 잘 마주치지 못했으나, 또래 중에 가장 상냥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드 니로를 군계일학으로 여겼다고 했다. 1972년에 스콜세지는 영화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의 소개로 드니로를 다시 만났는데, 드 니로가 스콜세지에게 당신을 알고 있으며, 예전에 누구와 어울려 다녔는지도 안다고 말해 스콜세지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9] 또한 스토리보드를 그리기 위해 1950년대부터 줄곧 애용한 연필의 모델명은 'Eberhard Faber Ebony 6325, Jet Black, Extra Smooth'이며, 음영 표현력이 매우 좋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모델의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베이 사이트에서 200달러가량 지불해 마지막 박스를 구입했다고 한다. 파라다이스 컬러 연필(Paradies color lead pencils) 역시 사용했다고 했다.[10] 두 사람 영화 인생 스토리가 살짝 한국의 대학 선후배 영화인 하정우-윤종빈과 비슷하다. 물론 윤종빈 영화에서 하정우가 항상 비중이 비슷한 형태의 투톱 주인공을 맡는 것과 달리, 그는 로버트 드니로를 중용하면서 카이텔은 갈수록 그의 영화에서 두세 번째 비중의 주인공으로 밀리긴 했다.[11] 그의 장편 데뷔작이자 뉴욕 영화학교 졸업작품인 <누가 나의 문을 두드리는가>의 주인공이 바로 하비 카이텔이다.(여긴 드니로가 안 나온다.) 평소 학교에서 카이텔의 연기를 스콜세지가 보면서 좋아했었고 해서 주연을 부탁했다고 한다. 윤종빈 하정우랑 비슷하긴 하네[12] 유명한 영화 비열한 거리도 크레딧은 로버트 드 니로가 1주인공인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출연 비중은 제2주인공 정도로 나오는 하비 카이텔이 더 크다. 영화 시작 오프닝 자체가 카이텔 혼자 독백하며 나오는 장면이었으니..[13]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꿈이 신부였다고 한다. 사일런스 시사회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서 가족들과 몹시 감격해 하기도 했고 "내 인생은 영화와 종교, 이 2가지 말고는 없다." 고 까지 말하기도 했으니, 평소에도 꽤 종교적인 부분에 대한 것들을 고민하며 사는 듯. 그의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의 하비 케이틀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조폭이라는 정체성과 충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 2가지를 다 가지고 살면서 그 사이에서 계속 고뇌한다. 그러나 막나가는 친구 드니로 때문에 무의미한 고민이 되어 버린다[14] 그런데 정작 스콜시지가 감독한 롤링스톤즈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Shine A Light'에는 Gimmie Shelter가 나오지 않는다.[15] 다만 비틀즈 곡의 저작권 소유자였던 마이클 잭슨이 비틀즈 원곡이 영화에 쓰이는 걸 오랫동안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세이지 영화에서도 비틀즈 곡보다는 비틀즈 해체 후 멤버들의 솔로 시절 곡들이 주로 등장한다.[16] 이 양반도 전설적인 작곡가 겸 프로듀서다. 그런데 지금은 2급 살인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17] 예외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경우엔 1억 달러 예산으호 3억 9천만 달러 이상 벌어들이며 성공하였다.[18] 결국 넷플릭스만이 대규모 투자금에 대한 의사를 적극 표현하였고, 영화관 상영을 미국 전역의 대규모로 하지 못하는 형태인 컴퓨터, 스마트폰 시청 중심의 넷플릭스 영화로 제작되었다. 스콜세지 본인은 개인시청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인 '끊어보기'를 우려하였고, 화장실 갔다오는 것 이외에는 최대한 영화를 끊지 않고 한번에 보기를 관객들에게 추천하였다.[19]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인 주인공이 화려한 삶을 살다가 배신을 당하고, 주인공 역시 검찰과 손을 잡아 자신의 친구였던 범죄자를 넘겨버린다는 스토리가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도 윤종빈 감독은 좋은 친구들을 100번 이상 봤다고 하였다.#[20] 등장인물의 과거회상을 나레이션으로 전달하며 사회의 어두운면을 보여주는 스토리 전개. 특히 검찰청의 부패한 모습을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영상미로 표현하는 점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을 받았다.[21] 스콜세지를 시류에 뒤쳐지는 노인으로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구세대 거장 감독들 중 가장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극장가에 3D 영사기의 도입과 디지털 포멧의 전환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손수 추진한 영화기술계의 혁신적인 리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쿠엔틴 타란티노 등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4050대 감독들 중 꽤나 많은 인사들이 클래식한 필름 제작에 대해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생각하면 급진적이라고까지 할수있는 진보적 인물이다.[22] 스콜세지는 영화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창작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캠페인에 힘쏟기도 했는데, 이런 캠페인과 신기술에 대한 그의 애호가 접목되어 진행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상술된 WCF를 설립한 뒤 진행한 <하녀> 등 수많은 고전작들의 디지털 복원이다. 또한 영화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혁명과도 같다며 애찬하여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제작한 영화를 영화제에 초청조차하지 않던 구세대 업계인들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시대의 흐름이 뒤쳐지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선도하는 인사층에 속한다.[23] 제임스 건, 조스 웨던, 새뮤얼 잭슨 등은 모두 하루 혹은 이틀내에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24] 마틴은 로버트 다우니 1세가 1975년도에 제작한 고전 영화 <순간에서 순간으로>를 디지털로 복원하였으며 이외에도 자신의 영화재단에서 그의 작품인 <바보 73[37]>, <벗겨진 팔꿈치>, <더이상 변명할순 없어>의 공개상영회를 갖기도 했다. 로버트 다우니의 작품들이 퍽 마음에 들었던듯. 사실 다우니 시니어는 스콜세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196-70년대 뉴욕 영화계에서 중요한 감독으로 손 꼽힌다. 푸트니 스왑은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등재 영화로 선정되었을 정도다.[25] 영어권에서도 시네필이 아닌 이상에야 일반 영화 관객들은 film, cinema, movie의 구분의 필요성을 못느끼거나 혹은 애초부터 동일시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다. 사실 영화계에서조차 기준도 깔끔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영화관 상영만을 최대목적으로 정해놓고 그걸 위해 화면 가로세로비율 같은 모든 걸 고민하며 만드느냐, 아니면 영화관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들을 더 중시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만드느냐 등에 따라 정체성을 어느정도 구별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쉽지 않고, 이러한 경향은 비영어권에 속한다면 더더욱 커져 셋의 구분을 어려워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절대적이다. 대표적으로, 당장 스콜세지의 첫 발언 당시 cinema 표현에 주목한 관객이 극히 드물었던 한자 문화권에 속해있는 한국이 그러하다.[26] 다만 로버트 다우트 주니어는 상술한 링크인 하워드 쇼에서도 밝힌 것처럼 자신을 남우주연상 부문에 이름을 올릴 것을 요구하는 MCU 팬덤에게 "그만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물론 남우주연상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은 여전히 캠페인이 진행되는 중이다.[27] 음바쿠 역할 배우.[28] 은조부 역할 배우.[29] 디파티드는 작품상도 수상하였지만 작품상은 영화 제작자에게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에 프로듀서로 참여하지 않은 스콜세지는 감독상만 수상하였다. 작품상 수상자는 제작자인 그레이엄 킹.[30] 시상 및 수상 영상. "저희가 받아봐서 아는데 감독상수상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죠~" "네 무척이나 기쁜 일이에요~""이봐들 나는 받은적 없다고" 보면 알겠지만 아주 대놓고 "우린 스콜세지한테 상주러 나왔어요" 하는 모양새다.[31] 주인공 로버트 드 니로의 엄마 역할인데, 같은 집에 사는 역할임에도 기묘하게 목소리만 나온다. 로버트 드 니로가 퇴근 후 집에서 혼자 코미디 연습을 하고 있으면 방 밖에서 너는 맨날 시끄럽게 뭐하냐고 까고 결국 드니로와 말다툼하다가 끝나는 식의 장면이 몇번 나온다.[32] 오타가 아니라 원제가 붙어 있다.[33] 참고로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그의 세 번째 아내다.[34] 봉준호 감독과는 옥자 뉴욕 시사회에서 처음 만나 티타임을 가졌고, DGA에서는 같이 대담까지 나눴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35] 이 표현은 1994년 발간한 『마틴 스콜세지 : 영화로서의 삶-비열한 거리』라는 스콜세지의 자서전에 나온 대목이라고 한다.[36]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후배 연기자, 감독들이 시상식에서 선배 영화인들에 대한 헌사를 하는 것은 흔한 장면이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공감하는 내용의 헌사는 많지 않다. 게다가 이게 같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같은 문화권의 인물이 아닌 해외, 그것도 아시아처럼 전혀 다른 문화권의 영화인이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면서 감독일을 한다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다. 특히 아카데미상 역사에서 처음으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의 3대 부문을 수상한 비영어권 영화의 감독이 헐리우드 거장에게 공개적으로 경의를 표한 것은 헐리우드측에 나름의 체면을 세워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