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12 06:47:29

대학수학능력시험/한국사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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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교시 시험 영역 시험 시간 배점 문항 수
1 국어 08:40~10:00 (80분) 100 45
2 수학 10:30~12:10 (100분) 100 30
3 영어 13:10~14:20 (70분) 100 45
4 한국사 14:50~15:20 (30분) 50 20
(사회 / 과학 / 직업)탐구 2과목 응시자 15:30~16:00 (30분) 50 20
1~2과목 응시자 16:02~16:32 (30분) 50 20
5 제2외국어·한문 17:00~17:40 (40분) 50 30

과목한국사
교과군사회(역사)
개설시기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
분류필수과목
목표추가바람
비고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에 한국사 과목으로 통합

1. 개요2. 단원 구성
2.1. 2011~2013년2.2. 2014년~
3. 교과 내용4. 출제 경향과 특성
4.1. 등급컷의 변천(2005 수능 ~)4.2. 5차 교육과정(1994 1차 수능 ~ 1998 수능)4.3. 6차 교육과정(1999 수능 ~ 2004 수능)4.4. 개정 전 7차 교육과정(2005 수능 ~ 2013 수능)4.5. 개정 후 7차 교육과정(2014 수능 ~ 2016 수능)
4.5.1. 2014학년도(2013년)4.5.2. 2015학년도(2014년)4.5.3. 2016학년도(2015년)
4.6. 필수 한국사 영역(2017 수능 ~ )
4.6.1. 시행 전4.6.2. 시행 후
4.7. 학습법
4.7.1. 2005~20164.7.2. 2017~
4.7.2.1. 서론4.7.2.2. 실행 방법4.7.2.3. 교재 선택4.7.2.4. 특별 암기 사항
4.8. 비판4.9. 전망4.10.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들4.11. 관련 문서


새로 시행되는 2017 수능 필수 한국사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면 해당 문단으로.

1. 개요

2009년 개정된 제7차 사회과 교육과정에 의거하여 2011년 고교 신입생부터 적용되는 사회(역사과) 교과/과목 중 하나이다. 이미지 컬러는 갈색. 이 과목은 기존의 국사한국근현대사를 통폐합한 것으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수능에 도입된다. (한편 국사라는 과목명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에 따라 한국사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1] 그런데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2017학년도 수능 부터는 한국사가 필수화 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사 영역을 응시하지 않는 학생은 수능 전 과목 성적이 무효처리가 되며 성적통지표가 제공되지 않는다.

국정 교과서였던 이전의 국사와는 달리 검정 교과서로 출판되어 7종이 채택되었다. 이전의 국사와 한국근현대사의 내용을 위주로 세계사 일부를 더해 만들어졌으며, 때문에 분량이 상당하지만 많은 부분이 날아갔다. 특히 국사 과목의 내용은 중학교 내용으로 편성되어서인지 수박 겉 핥기 수준밖에 남지 않아[2] 근현대사를 중점으로 만들었음을 암시하며,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더 들어간 것도 있고 빠진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기서도 양은 준 느낌. 이 시기의 교과서 구성은 실제로 9개 단원중 7개 단원이 기존의 한국근현대사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단 2개 단원만이 이전의 국사[3]에 해당되었다. 사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학교 사회과를 사회와 역사로 분리한 뒤, 중학교2학년부터 고1까지 3년에 걸쳐 역사 전체를 배우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교육과정이 만들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교과 명칭이 한국사가 아닌 역사였다. 중2~3에서 선사시대부터 근대 초기까지 배우기 때문에, 고1에서는 근,현대의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울 순서가 된다. 그래서 교과서에 근현대사의 비중이 높은 것이고, 세계사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과만 보면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학교 역사과목과 연결해서 보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만 2011년에 새롭게 발표된 2009 개정 교육과정 각론에 의해 2014년 고1부터 적용되는[4] 새 교과서는 독자적인 단원편제와 내용구성을 가지게 되어(중학교 역사1,2에서 전 시대를 다 다룬다), 통사적으로 선사시대~현대사까지를 골고루 다루는 교과서로 바뀌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시대까지 각각의 시대사가 대단원 하나로 구성된, 6개 대단원 체제이다.[5]

2. 단원 구성

기존의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를 통합해 2011년부터 교육되는 '한국사'만을 다룬다.

2.1. 2011~2013년

  1. 우리 역사의 형성과 고대 국가
  2.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발전
  3. 조선 사회의 변화와 서구 열강의 침략적 접근
  4. 동아시아의 변화와 조선의 근대 개혁 운동
  5. 근대 국가 수립 운동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6.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
  7. 전체주의의 대두와 민족 운동의 발전
  8. 냉전 체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9.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제 정세의 변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겨우 한 단원 안에 다 배운다. 둘이 합쳐 1000년이 넘는다. 심지어 고조선-삼한-삼국-통일신라-후삼국이 한 단원이다. 삼국시대 외울게 얼마나 많은데 제대로 약을 빨았다.

흥선대원군 집권기 이전의 전근대사는 정치사만 압축하여 넣었고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는 거의 빼버리는 식으로 지나치게 압축되었고, 흥선대원군 집권기~일제강점기 부분은 지나치게 확장되는 등의 (이전 교육과정 세대나 공시생 관점에서는) 괴랄한 구성이었다. 따라서 한능검 및 공무원 시험 한국사 강사들은 이 교육과정기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교재는 예비순환용으로도 쓰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BS의 최태성이 '고급 한국사' 강의와 교재를 따로 제작한 것도 이 때문.

2.2. 2014년~

  1. 우리 민족의 형성과 고대 국가의 발전
  2. 고려 귀족 사회의 형성과 변천
  3. 조선 유교 사회의 성립과 변화
  4. 국제 질서의 변동과 근대 국가 수립 운동
  5. 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
  6.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 변화

2014년 개정 교과서부터 전근대와 근현대의 비율이 5:5이다. 대단원명에서 보다시피 그 시기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고려 귀족 사회나 조선 유교 사회, 근대기에 대한 표현을 국제 질서 변동과 근대 국가 수립 운동이라는 점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3. 교과 내용

한국사(2011) 항목 참조. 참고로 2014년에 개정된 교과서부터 9단원에서 6단원으로 축소됐다.

4. 출제 경향과 특성

4.1. 등급컷의 변천(2005 수능 ~)

2010학년도 대수능 9월 모의평가에서 1등급 예상 컷이 45까지 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은 18번으로 교과서에 딱 4줄 나와있는 불교 신앙을 맞추지 못한 수많은 학생들이 쓸려갔다. 그나마 1줄 나와있는 신앙의 성격을 안 외웠으면 못 푸는 문제(정답률 13%). 인터넷 강의에서 이름을 날리던 모 강사가 이전부터 오답으로만 나온다고 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지만 수능에서 다시 나온다고 해도 오답으로만 나올 것이라고 여전히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수능에는 나오지 않았다. 수능보다는 지엽적인 걸 물어보는 평가원 모의평가 특성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이어진 2010학년도 수능 1등급 컷은 44이다. 조선 관직 관련 문제인 6번의 경우 주석 중 1줄에서 정답이 출제되었다. 실제로 교과서 날개 주석부분(교과서 97페이지 오른쪽)에 들어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뭇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모 사이트의 통계에 따르면 반 이상이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뛰는 출제위원 위에 나는 역덕후들. 또한 18번 문제는 명종 재위기간에 일어난 일을 고르는 문제로 정답이 교과서 160페이지 맨 마지막 줄에 있었다는 것을 과연 누가 알았을지 의문이 들 정도. 그렇지만 이것마저 정답률이 높다. 역시 서울대와 역덕후가 섞이면 그 위엄은 장난이 아닌 것이다.

2011학년도 수능 등급컷은 45. 그럭저럭 평범하게 서술되어있는 곳에서 출제되었지만 정답률 20%[6]의 귀향형 문제가 출제되어 다시 한 번 국사 과목의 위엄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3학년도 대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 사상 최악의 불쇼가 펼쳐지는데... 드디어 국사 1등급 컷이 37점, 만점자가 15명이라는 희대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9번 문제는 지도를 직접 그릴 수 있는 정도까지 외우지 않으면 짤없이 틀릴 수준의, 차라리 90년대 이전의 학력고사에 더 가까운 문제였다. 10퍼센트대의 정답률을 자랑했던 16번 문제도 교과서 날개에 있는 글에서 살짝 나오는 인명까지 숙지해 두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앞서 국사 선택자들이 얼마나 국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는지 서술한 바 있기에 이런 국사 선택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이런 헬게이트를 시전할 정도로 문제를 어렵게 만들 수가 있냐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애초에 국사 선택자들은 진정한 역덕후를 제외하면 서울대학교를 지망하거나 지망했던(즉, 지망했었으나 포기해버렸는데 사탐을 바꾸기는 그래서 그냥 국사시험을 보는 이른바 '국포자')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상대로 1컷 37점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다른 과목이 이 난이도였으면 충분히 30점대 초반, 심지어는 20점대 후반까지도 만들어버렸을 정도라고 해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 국사 덕분에 2013학년도 대수능 6월 모의평가는 문과에서 언수외탐 2과목 만점자까지는 좀 있으나 언수외탐 3과목 이상 만점자가 없었다. 그야말로 헬난이도. 그 덕분에 이후 치러진 9월 모의고사에서는 1등급 48점으로 다소 평이한(혹은 쉬운) 난이도로 출제되었다.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등극하는 2017수능부터는 절대평가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즉 등급을 비율이 아니라 원점수로 끊는다. 2014년도 고1 모의고사 성적표에는 '한국사는 등급을 산출하지 않습니다'라고 써놓고 석차와 표준점수, 백분위를 제공하였으며, 한국사의 등급별 구간이 확정된 2015년 고1, 2 모의고사 성적표에는 원점수와 등급만 제공되었다. 해당 모의고사 문제도 중학교 역사 수준으로 쉬웠다는 평이 대다수. 이제 한국사란 과목은 불쇼에서 쇼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현 고1, 2들은 한국사 공부를 싫어한다... 실제로 현 98(고3)들 고2 때 국사 편차보면 개판이다. 분명 절대평가인데 1, 2, 3등급이 20%이고 4, 5, 6등급에 65%가 포진해있다.

절대평가 각 등급별 점수 커트라인은 아래와같다.
1등급컷 2등급컷 3등급컷 4등급컷 5등급컷 6등급컷 7등급컷 8등급컷 9등급컷
40 35 30 25 20 15 10 5 0

사실 문제 자체는 매우 쉽고, 전국연합학력평가의 표본집단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표본집단보다 수준이 낮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4.2. 5차 교육과정(1994 1차 수능 ~ 1998 수능)

수능이 맨 처음 시작된 선캄브리아대격인 90년대에는 많은 수험생들이 암기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받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전까지 시행되었던 학력고사에서는 연도나 인물의 이름, 저서 등을 일일이 다 외우고 다녀야 했는데 암기보다는 추론과 상황판단이 중시되었던 초기 수능에서는 지엽적인 암기 문제들이 대거 일소되었기 때문[7]. 하지만 출제경향의 변화를 이해하거나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강사와 학생들은 여전히 학력고사 시절 식의 단순 암기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밑줄 쫙, 돼지꼬리 땡땡"이라는 멘트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족집게 작품 암기를 위주로 수업을 진행해서 학력고사 시절 1타 강사였던 서한샘이 이 때까지도 언어영역으로 간판만 바꿔 달고 학생들을 모으고 다니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

4.3. 6차 교육과정(1999 수능 ~ 2004 수능)

이 때까지는 문과, 이과, 예체능 구분없이 필수과목으로서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이 치는 과목이었다. 국사 과목이 진짜로 부담스러운 과목이라는 말이 많긴 했지만 한때 문과에서는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권하는 과목이었던 적도 있었다! 또한 이과 및 예체능 계열 학생들에게도 공통사회 중 가장 친숙한 과목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차 교육과정의 수능 체제를 알아야 하는데, 당시 수능에서는 원서접수 시 인문계/자연계/예체능 중 한 계열을 선택해서 접수를 했다. 모든 과목은 계열별로 채점을 해서 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를 매겼다. 국어와 영어, 제2외국어[8]는 채점만 계열별로 할 뿐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보았고(현재와 같은 선택형이 아니었다는 것), 수학과 탐구는 문과/이과/예체능별로 각각 다른 시험지를 풀었다.

그런데 당시 탐구영역은 사과탐이 통합되어 있어서[9], 계열예 관계 없이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은 전원 필수였다. 예체능은 이 공통범위만 시험을 보고, 문과는 공통사과탐에 사탐 심화과목[10]을 1개 선택하고, 이과는 공통사과탐에 과탐 심화과목[11]을 1개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 중 공통사회는[12] 윤리, 한국사, 한국지리, 일반사회(정치, 경제, 사회문화 과목의 기본적인 개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국사 과목은 비록 분량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 내용을 초등학교때부터 계속 배워온 내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생각만큼 분량이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국사 파트에서 만점 및 최상위권 득점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공부를 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을 위주로 시험에 나왔던 데다가[13], 지금과는 달리 외우는 걸 잘 못 했더라도 주어진 자료에서 힌트를 찾아 추론만 해도 대충 찍어서 맞출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가 되었기 때문에 부담을 크게 가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 때는 공부를 포기하다시피한 문과 하위권뿐만 아니라, 사탐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힘든 이과와 예체능 학생들에게도 국사는 상당히 선호도가 높았었다. 다만 만점을 받겠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한 양의 개념정리가 필요했고, 게다가 한국지리와 연동되어[14] 지도 하나 던져주고 콕 찍어 "여기 특산물이랑 지형, 중요 역사적 사건 맞춰봐라"는 식의 퓨전 문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고통을 선사한 탓에 만점을 받기는 쉽지가 않았다.

4.4. 개정 전 7차 교육과정(2005 수능 ~ 2013 수능)

한국사(舊 국사) 선택 수험생들의 대 수난시대

말이 필요없다. 그냥 헬게이트이다. 난이도가 해가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던 시기이다.

이때까지는 과목 이름이 "국사"였다. 전국의 학생들이 공통과목에 한해서는 다같이 시험을 봐야만 했던 6차와는 달리, 7차에 들어오면서 탐구영역 제도에 많은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변경된 제도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적용되었다. 첫째, 사탐과 과탐이 분리되어 이제부터 문과는 사탐만을, 이과는 과탐만을 치게 되었다. 둘째, 더 이상 평가원 측에서 강제로 필수 지정하는 과목은 없어지고, 탐구영역 과목 선택은 오로지 학생들의 자유에 맡겨지게 되었다. 이는 곧 국사 과목에 과거로부터 존재해 왔던 수능포기자들과, 사탐에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쓸 수 없는 이과생 및 예체능계 학생들이 분포에서 증발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대가 문과입시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버렸다. 다른 대학들 중에는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는 서울대를 지망하는 상위권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평가원은 이러한 입시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채, 2005 수능 국사를 과거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이던 시절과 같이 쉬운 난이도로 내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이 때문에 국사는 1컷이 50점 만점이 되어 버리고, 2등급이 증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15]. 결국 평가원 측은 그 이후로 국사 과목의 난이도를 점점 막장 수준으로 올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세계사는 크게크게 물어보는 편이지만 국사는 이에 비해 훨씬 세밀했다. 대충 설렁설렁 공부해놨다가는 출제자가 작정하고 낸 소위 지엽적인 문제에 허를 찔리는 경우가 많았다. 짧게 말해 국영수와 동급의 분량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우선 교과서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외우고 시작해야 했는데, 교과서에 없거나 인지 못할 정도로 담겨있는 개념이 생각 외로 자주 나왔다.[16] 중요 개념을 학습한 다음 모의고사나 여러 시험을 통해 짜잘한 개념 익히기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암기량이 다른 사회탐구 과목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어이 출타, 아니 어이 소멸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국사 기피 현상이 심화되자, 매년 교과서를 개정할 때마다 조금씩 내용을 빼는 일까지 벌어졌다. 예를 들어 고려 말 최고 권력기관인 도평의사사가 교과서에서 빠졌다.

예컨대 나선정벌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없는데 중학교 교과서에는 있다. 즉 나온다. 감은사지 3층 석탑이나 안동 이천동 석불 등은 교과서에는 없지만 출제될 만한(그리고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출제된 적도 있는) 사료이니 확인해볼 것. 아니 애초에 교과서에는 각종 관직들이 하는 일이 거의 서술되어있지 않다. 예를 들어 2008학년도 수능 11번에 출제된 '고려의 법 제정 기관(각주에 정답)[17]' 은 교과서에 전혀 설명이 없다.

2010년 3학년 3월 모의고사에서는 종묘 사진이 출제되었는데... 교과서에 없는 사진 같지만 있는 사진이다. 어디 있는지 찾아보면 웃음만 나올 것이다.[18]

연계로 인해 학생들이 많이 애용(?)하는 ebs교재 중 국사 시리즈(수능특강, 파이널 모의고사 등등)에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과 자료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토록 국사 과목이 유독 괴악스러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교과서가 국정교과서로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단 한 종의 것으로만 전국 공통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과탐 과목들과는 달리 극도로 지엽적인 부분에서도 사료와 정답지/오답지가 출제되는 게 가능하다.[19] 이 당시 국사 과목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적어도 이 교과서를 각주나 심화학습 자료를 중심으로 읽어보는 게 필수였다. 심지어 2009년 즈음에는 EBSi최태성 강사가 '국사 교과서 정복하기' 식의 강의를 올려서 매 시간마다 교과서만 분석하는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국사 선택 수험생들은 특히 문화사 부분을 제일 어려워했는데, 이는 대부분 학교에서 정치사~사회사까지만 나가면 대충 1년이 끝나고 학기가 정리되기 때문에 진도를 못 나간 탓에 막상 수능 시즌이 되면 생소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간혹 문화사도 다루는 학교가 있기는 했으나 집중 이수제를 시행하는 학교의 경우, 2년 동안 배우는 분량[20]을 주당 6시간 수업으로 한 학기만에 끝내야 하므로 문화사는 선생님의 설명은 거의 없이 그냥 단순 암기 일변도로 흘러가게 되고, 이 경우 시험 한 번 치고나면 머릿속에서 리셋이 되어 버리는 안습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었다[21]. 더구나 학생들이 문화사를 어렵게 느끼게 된 이유에는 출제경향의 변화도 있었는데, 과거 5~6차 수능 및 7차 초기의 수능에서는 문화사에서 시험에 자주 나오는 유물이나 사상이 반복적으로 출제되어 딱딱 필요한 핵심만 정리하면 문제를 무난히 다 풀 수 있었다. 설령 어쩌다 지엽적인 내용이 나오더라도 추론을 이용해서 풀 수 있거나, 아니면 오답요원에 불과한 선택지일 뿐이었다. 그러나 2010 수능대비 6월 평가원부터는 문화사 내용이 대폭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가서는 그 전에는 묻지 않던 서예사, 음악사까지 출제해 수험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고, 심지어는 두 글자 차이나는 책 이름을 가지고 장난친 문제까지 등장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더럽기로 소문난 사설모의고사나 월례고사도 아닌, 무려 수능에서 나온 문제라는 것이다.[22]

기본 개념을 요약해놓은 쪽의 옆에 달린 주나 연습문제들에서도 문제가 자주 출현했다. 공부할 거 늘었다. 안 그래도 많은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유물, 사상 자체보단 유물 사진이나 관련 사료를 제시하고 당시 시대상(정치, 경제, 사회)을 묻는 유형이 유행했다. 가령 무신정권기와 상감청자의 연관이나 유명한 인물들(정약용, 퇴계 이황, 송시열 등)이 쓴 책의 문구를 하나 던져주고 알맞은 시대 상황 찾아내기 정도는 되어야 국사에서 어느 정도의 점수 확보를 보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대 통합형 문제나 평소에는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은 지엽적인 부분을 이용해 출제한 문제로도 난이도 조절에 한계를 느꼈는지, 나중에는 단순히 교과서에 나온 개념을 물어보기보다 교과서에 없는 응용 사료나 지도 등을 내서 암기해 놓은 교과서 개념을 토대로 해석과 추론, 그리고 말장난 회피까지[23] 시키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충주 항목에 수록된 국사 문제, 2009년 9월 모의고사 고려 청자 문제 보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24] 그러니까 교과서 통째로 외우시라!

다만 말장난으로 학생을 넘기려는 문제 같다면 조금 단순하게 생각해서 풀어 볼 필요가 있다.

꾸준한 학생 괴롭히기 노력 덕에 모의평가나 수능에서 정답률이 50%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문제들이 조금씩 나왔다. 게다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이 등장한 후 왠지 문제들이 검정시험형식화 되어가는 것 같다. 결국 근현대사 내용이 별도 단원에서 각 단원 내부로 스며든 교과서를 공부한 학생들이 응시한 2009년 수능부터는 그동안 출제되지 않던 한국근현대사 부분에서도 1~2문제가 출제되어 그렇지 않아도 크고 아름다운 출제분량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 부분은 그냥 따로 공부하느니 한국근현대사를 선택하여 같이 병행하는 게 훨씬 나았다. 솔직히 한국근현대사 과목을 공부했다면 난이도는 국사 치고는 쉬운 편으로 출제되었기 때문에, 국사와 한국근현대사가 연계되어 나올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근현대사 단독 내용을 별도로 공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국사만 선택하고 한국근현대사를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불이익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국사 속 근현대사 내용은 쉽게 출제하는 것이 당시 출제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는 정치사는 변별력을 맞추기 위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시대나 주제로 내는 문제 대신 정치 상황 등을 주고 그 당시 사회, 경제, 문화계의 동향을 물어보는 것 같은 단원 통합형의 문제가 서서히 늘고 있다.

평가원에서 내는 문제는 수능과 달리 1~2문제 정도 좀 지엽적으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90% 이상이지만 체감 난이도가 최상급이 되는 문제가 간간히 출제된다. 1줄이나 1단어씩 나와있는 걸 시험마다 출제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 학생들은 '이런 것까지 물어보면 다음엔 뭘 물어보려고' 라며 치를 떨지만 다음에도 당연히 출제위원께서는 뽑아내신다. 물론 이래저래 읽다보면 답을 생각보다는 쉽게 추려낼 수 있긴 하지만, 단어 하나 잡아내서 답을 찾아내는 식의 문제가 평가원과 수능에서 계속 나오는 건 확실히 다른 과목과 비교해서 비정상적인 현상이 맞다.

결국 국사 공부는 암기, 역사적 감각을 모두 요구하여 근성을 발휘해야 했다. 거기에 덧붙여 제시문 추론 능력과 센스를 바탕으로, 암기사항까지 묻는 괴악한 문제들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수많은 수험생들이 뒷골을 잡곤 했다. 오죽하면 당시 현직 교사나 학원 강사들도 정말 국사에 자신이 있거나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말기를 권했겠는가... 인터넷 강의의 유명한 모 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에 대한 애정' 이 중요했다. 특히 문화사는 뒷부분인 데다 암기가 필수적인 부분이라 요주의.

결론적으로, 어찌 보면 7차 초기의 국사는 7차 수능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수능이 처음 시행되었던 1994년부터 울궈먹을대로 울궈먹은 탓에 출제거리가 고갈되었는지라,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냥 점수만을 위한 시험으로 구성되면서 점점 이미지와 난이도가 산으로 갔기 때문이다.

4.5. 개정 후 7차 교육과정(2014 수능 ~ 2016 수능)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과목들에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져 중학교의 경우 국사 과목은 해체되고 세계사 내용들이 더해져 역사로 과목명이 바뀌었다. 중학교 때 전근대사를 배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근현대사 위주로 통합된 역사 교육을 받으며 인문계 학생일 경우 2, 3학년 때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중 1개를 선택해 배운다.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한국근현대사 과목과 통합되어 한국사로 과목명이 변경되었다. 사실 국사란 명칭 자체가 국가주의적 관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지라... 중학교 역사 과목 중 한국사 파트는 전근대의 한국사 내용을 다루는 데 비해[25][26]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은 내용의 2/3가 근현대사이며 세계사와 연관하여 다루고 전근대사부분은 대략적으로만 서술한다.

한때 국사-한국사가 필수과목에서 해제되는 것을 놓고 큰 논란이 있었으나[27] 여론에 힘입어 2012년도부터 다시 필수과목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는 교육과정 체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7차 교육과정과 7차 교육과정을 개정한 2007 개정 교육과정[28]까지는 고1까지를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기간으로 설정하고 국사를 고1때 배우도록 편제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당선 직후부터 추진된 2009 개정 교육과정[29]부터는 이 공통기간을 중3까지의 9년으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이전 국사 과목을 계승하는 한국사 역시 당연히 필수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는 고교 1~3학년의 전 기간을 수요자 중심(학생)의 선택 체제를 지향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특성상 당연한 측면이 있었다. 물론 한국사는 1년만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유일하게 고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단일 과목이다.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정 교과서 체제로 바뀌면서, 난이도는 과거에 비해서는 낮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 난이도에 비해서 1등급 컷은 상당히 높다. 이게 다 서울대 때문이다. 서울대를 지원하려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국사를 사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에 서울대를 꿈꾸는 학생들이 선택을 하다보니 역덕후들+서울대 지망생들이 모여 모여 응시자가 채워지면서 등급컷은 높아지기만 하고 만점을 받아도 다른 과목보다 표준점수가 낮아서 불이익이 생긴다. 덕분에 문과 고등학생들에게는 고위층의 사치 취급을 받으며 2학년 중반까지만 해도 선택률이 괜찮은 편이나 시간이 지나며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점수는 조금씩 오르는데 석차는 떨어지는 괴현상 때문에 선택률은 갈수록 점점 감소한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때 그나마 국사를 선택했던 사람들도 모의고사 문제 등을 풀면서(특히 악명 높은 ebs 시리즈) 기존의 학교 시험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난이도에 피를 토하며 결국 중간에 때려치게 되고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하위권 수험생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서 예비 서울대생과 삼사(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30]를 선택한 역덕후들이 모여 치열한 혈투가 전개되는데... 즉, 진짜 알짜들만 남아서 스타워즈,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펼쳐진다.

한국사를 응시하는 서울대 지망생들은 시험만 봤다 하면 엄청난 저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 무섭다. 설령 역사가 취향에 안 맞더라도 이들은 욱여넣어서라도 고득점을 받아 낸다. 한국사 좀 할 줄 안다고, 또는 다른 과목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착각생각했던 평범한 학생들은 열에 여덟은 희생당한다.

그러나 서울대를 지망하는 인문계열 학생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것이, 사회탐구 2과목 체제가 되면서 선택과목 사이의 유불리가 심해진 것이 한국사 필수지정으로 다소 완충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서울대 지망생은 한국사를 봐야 하기 때문에 특정 과목을 골라서 생기는 로또날먹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선택과목 한국사 초창기에는 수능 1등급 받으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도 70점 받기에 충분하다고들 했지만, 선택 체제가 끝날 때쯤에는 너무 심하게 충분해져서(!!!) 수능 1등급 받으면 한능검 고급 만점(!)을 바라볼 수 있다.[31]

4.5.1. 2014학년도(2013년)


2014학년도 6월 평가원 시험에는 전근대사, 근현대사 모두 평이하게 출제되었다. 2012.5.17 예비 시행 때와 동일하게 전근대 6문항, 근현대 14문항으로 30:70 비율로 출제되었으나 전근대의 경우 학생들이 어려워하던 서적사를 비롯한 전근대의 문화사가 등장하지 않은데다가(전근대의 경우 가장 낮은 정답율의 문제는 3번 문항의 임술농민봉기였다. 그마저도 정답률이 50% 중반, 틀린 학생들은 동학농민운동과 혼동했을 것이다) 근현대사의 경우 예년 수능 근현대사 기출문제 수준 이상의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1등급 컷은 42로 2013학년도 6월 국사 모의평가 1등급컷 37점에 비해 확실히 높게 잡혔다. 그런데 그건 그때가 너무 어려웠다.

2014학년도 9월 모의평가에서 예상 1등급 컷이 48로, 역시 역덕후+서울대 지망생의 파워가 여실히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였다.

본 수능 때는 6, 9월보다 더 쉬운 난이도와, 응시 집단의 특수성으로 인해 1등급 50, 2등급 47이 되어 변별을 상실했다.[32] 다만 중국 관내 독립 운동에 관한 14번 문제는 어느정도 변별을 두기 위한 문제였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가) 자료의 시기[33]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 양민들이 3점짜리 문제를 썰리면서 3등급으로 주저앉게 될 것을 염려했으나, 2등급 컷 47로 3점 하나 때문에 최저를 못 맞추는 일은 없게 되었다. 다행이야... 하지만 원점수 47점이면 백분위가 85%이다. 하지만 서울대의 경우는 얄짤없이 한국사를 반영하므로[34] 한국사 1문제를 틀린 학생은 높은 학과를 지망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요컨대, 시험은 나름대로 변별력이 있었으나, 학생들의 학습량이 그걸 초월하는 바람에 변별력을 상실해 버린 꼴.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일선 교사, 강사들이나 입시 경험이 있는 이들은, 2015/16학년도 수능을 대비하는 문과 수험생들에게는 정말 열렬한 역덕이나 서울대 지망생이 아니고서는 한국사를 내신 잘 챙기는 선으로만 공부하길 권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단 교과 분량도 많을 뿐더러, 시험이 어려워져서 성적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수험생 입장에서도 난감해지고, 시험이 쉬워지면 만점이 아니면 원하는 결실을 얻기 힘들기 때문. 본인이 한국사에 대해 관심이 많고 또 공부하고 싶다면 굳이 수능이 아니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통한 동기부여나, 다른 서적을 통해, 또는 대학 진학 이후에 배우는 것이 더 좋다.[35]

특히 2014학년도 1컷이 50이라는 점에서, 2015학년도 수능때 어떤 불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 이제 연도 외우기는 기본...

과거 사탐 선택과목 개수가 4개였던 시절에는 굳이 국사 1등급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국사 3~4등급 맞고도 서울대 가는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였다. 물론 국영수를 잘 봐야겠지만. 즉, 과거에는 서울대 갈 사람들은 어차피 다 같이 국사 선택자기 때문에 큰 불이익이 없었고, 연고대 이하는 사탐을 3과목만 반영하기 때문에 국사 빼고 다른 3과목 잘 보면 돼서 이것 때문에 피해보는 일은 드물었다. 다만 선택과목 수가 2개로 줄은 현재 상황에서는 그런 여유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과목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인증시험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을 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고(한국근현대사를 병행했다면 별도의 공부가 필요없이 3급 정도까진 무난하다. 열심히 공부했다면 2급까지도 가능하다! [36] 이렇게 미리 해 두면 나중에 공무원 시험[37]이나 학사장교 시험 등에서 출제되는 한국사 시험을 공부할 때 맨땅에 헤딩할 필요는 없게 된다.

그나마 선택자들에게 위안인 점은 그래도 역사과목이라는 특성상 한 번 제대로 공부해두면 정작 수능 당일 배신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사회 과목과는 대조적이다. 남들 30분 할때 당신은 2시간을 해야하지만 나중에 남들이 2시간 투자할때 당신은 30분 투자할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당신의 기억력에 달려 있다.

4.5.2. 2015학년도(2014년)


서울대+역덕후vs평가원

2015 수능에서는 2014 수능의 1컷 50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불쇼를 시전했다. 그 결과, 레전드 물수능으로 기록된 이번 수능에서, 서울대 변별력은 국어와 더불어 한국사에 달려있었다.
4번 문제(중세)에서 에서 후삼국의 수도인 개경(개성), 완산주(전주), 금성(경주)의 위치를 제시하고 각 지역의 역사를 묻는가 하면, 9번 문제(근대)에서는 갑신정변의 장소 이동 (우정국-경우궁-창덕궁),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 (경복궁),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 등의 장소를 숙지하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이외에도 조선혁명 간부학교와 계엄령 등 작년 수능 난이도와는 급이 다른 문제들을 투하했다. 하지만 이런 핵폭탄급 문제를 투하하고 나서도 1등급 컷은 47점 에서 형성됐다. 오오, 역덕후... 6월 평가원 규장각 문제부터 시작해서 가장 이번 수능에서 가장 정답률이 낮았던[38] 후삼국 문제까지 앞으로 2016학년도 한국사를 공부 할 학생이라면 전근대사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2017학년도 수능으로 가면 어차피 전근대:근현대는 50:50으로 복귀할 예정이긴 하다. 그 때 대비용일 수도 있고...

4.5.3. 2016학년도(2015년)


절대평가 대비용

한국사가 수능에서 필수가 되기 전 마지막 수능이었다. 이번 수능에서 작년처럼 난이도가 헬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의외로 예상보다 쉽게 나왔다. 2017 수능 대비 기출문제로 쓰라고 쉽게 냈다고 한다. 6월, 9월 모의고사에 비하면 정말 쉽긴 쉬웠다. 다만 다른 사탐을 선택한 학생의 관점으로 보면 결코 쉽지 않은 난이도이긴 하다. 어찌됐든 한국사가 서울대와 역덕후가 보는 과목이다보니, 어설픈 난이도로 낸 나머지, 1등급 컷은 50점, 만점자는 10%를 소폭 넘었다...
그나마 킬러문제로 9번이 있었기에 등급 블랭크를 막을 수 있었는데, ㄱ을 담은 내용이 일본 공관 신축이라는 핵심키워드로 한성조약임을 맞혀야 했는데, 다수가 일본 공관만 생각하고 제물포 조약으로 낚였다. 다만 이 키워드는 수특, 수완 개념에도 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변별력이 극심히 요구되는 과목인지라,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던 거 같다. 이 문제를 틀리면 2등급이었고, 3점짜리를 틀리면 3등급이 됐다. 한 문제 틀리고도 3등급이 될 수 있는 한국사의 위엄.[39] 하지만 필수 한국사는 절대평가니 이제 그럴 일은 없다.

4.6. 필수 한국사 영역(2017 수능 ~ )

국어영역, 영어영역처럼 한국사 자체가 독립된 하나의 영역이 되었다. 이 영역을 응시하지 않으면 수능 성적 전체가 무효가 되므로 반드시 응시해야 한다. 관련 기사 별칭은 필수 한국사이며 이 명칭이 대세로 굳어질 듯하다. 2018학년도 수능 부터는 접수 할 때 선택 여부란에 아예 체크가 되어져서 나온다. 즉 응시를 하기 싫어도 반드시 해야한다.

2017 수능의 근현대사 부분은 2016 수능과 범위가 같지만, 전근대사 부분은 2016 수능보다 범위가 넓다. 그러나 필요한 공부량은 문제 난이도에 따르기 때문에 범위의 넓고 좁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전근대사 10문제, 근현대사 10문제씩으로 모두 20문제가 출제되며 시험 시간은 30분이고 50점 만점이다. 4교시에 모든 수험생들이 동시에 가장 먼저 치르게 된다.

커트라인과 난이도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필수 지정 이전에는 하나 틀릴 때마다 표준점수가 깎여 나갔지만, 2017 수능부터는 해당 점수 구간의 등급이 아래와같이 정해져있다.
1등급컷 2등급컷 3등급컷 4등급컷 5등급컷 6등급컷 7등급컷 8등급컷 9등급컷
40 35 30 25 20 15 10 5 0
다만 필수가 된 이후로 문이과를 막론하고 30점(3등급) 정도 받으면 입시에서 크게 불이익이 없으며, 그 이상의 점수를 받아도 딱히 더 유리한 점이 없다. 하지만 몇몇 대학은 1등급:만점, 2등급: -n점, 3등급: -2n점 이런식으로 등급이 내려갈때마다 만점에서 일부를 감점 하는 학교도 있으니 각 대학의 입시요강을 잘 읽어보자. 그리고, 단순히 30점을 목표로 했다가 삐끗해서 30점이 안나오는 불상사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40점 정도를 목표로 공부하는게 좋다. 3점짜리 3문제 틀려도 1등급, 6문제 틀려도 최소 안전한 3등급이다.

문제도 이전과 비교해서 매우 쉽게 출제된다. 만점의 60%를 득점하는 난이도가 수능 전 영역 전 과목을 통틀어 아랍어 다음으로(...) 쉽다. 필수 이전 한국사조차도 30점이면 보통 5등급이어서 그렇게까지 받기 어렵지는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훨씬 쉬워진 필수 한국사에서 30점만 받으면 되는 것에 대해 수능 원로(?)들이 쉽다는 말로 일관하는 것이 과장이나 거짓은 아닌 셈이다.

한국사를 반드시 만점 받을 필요는 없다고 일부 단원을 공부하지 않는건 위험한 발상이다.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공부했던 내용들을 전부 맞힌다고 장담도 할 수도 없다. 또한 역사는 전체적 흐름 중요하고 단원 통합적 문제도 자주 출제되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을 토대로 전체적인 내용을 잘 이해해야만 한다.

물론 일부 지엽적인 내용을 전부 외울 필요는 없고, 앞서 말했듯이 전체적인 역사적 흐름, 역사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한다.

4.6.1. 시행 전[40]

필수 한국사를 응시할 꿈나무들이 치른 2015년 11월 고2 학력평가 한국사는 그냥 읽는 데에도 생각이 필요한 문장형 선택지로 가득 채워져서 4% 컷이 약 41점, 11% 컷이 약 37점이라는 아름다운 난이도를 자랑했다. 필수 한국사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시험의 난이도가 이러했던 이유로 16 수능 한국사를 치른 예비 재수생들은 환호하고[41] 고2들은 2016년 3월 학평이 치러질 때까지 4개월 동안 피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지내야 했다.

2016년 3월 고3 학력평가의 시행으로 필수 한국사 첫 공인 문제가 개봉되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문제들이 대폭 쉬워졌다. 그것들의 평균 난이도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중급보다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컷 약 44, 11%컷 약 39였다는 것은 아직까지 수험생들이 한국사 공부가 덜 되었다는 증거이다. 한능검 특유의 문화사 문제를 빼고 정치사끼리 비교하면, 학평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더 쉽다. 한능검 초급과 비교하면(...) 물론 학평이 확실히 더 어렵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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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학평 20번 문제

4월 학평은 생소한 지문이 상당히 늘어났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학생은 틀릴만한 문제가 늘어났다. 특히 대한공채 문제의 조지 루이드 쇼는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이렇게만 나온다면 변별력을 챙기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과생들은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당장 서점에 가서 수능특강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관건은 6월 평가원으로, EBS 연계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다.
3월 학평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승리를 거두었다.'가 답인 문제가 정답률이 56%였으며 4월 학평에서 임진왜란 문제가 또 정답률이 50%였던 것을 보면 문제가 기묘하고 복잡해서라기보다 교과서의 기본적인 내용은커녕 초등학생보다도 기초 상식이 모자란 학생이 태반이라는 결론이 난다. 사건의 세부 서술을 기억하는 학습이 필요하다.


● 원점수 30점 3등급을 결정하는 모의고사 문제들
2016년 3월 18번[2점](정답률 61%) - 맞히면 32점, 틀리면 30점
의열단(1919)
① 근우회
의열단
③ 대한 광복회
④ 한국 독립군
⑤ 13도 창의군
2016년 3월 10번[3점](정답률 62%) - 맞히면 30점, 틀리면 27점
경인선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청에 의해 부설되었다.[43]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통된 철도이다.
2016년 4월 5번[3점](정답률 51%) - 맞히면 33점, 틀리면 30점
이순신이 싸움에서 이긴...(임진왜란)
① 살수대첩, 귀주대첩
② 을사의병
③ 병자호란
④ 병자호란
⑤ 일본 도자기 문화 발달 - 임진왜란
2016년 4월 13번[2점](정답률 59%) - 맞히면 30점, 틀리면 28점
공납을 대신 납부해 주며 지나친 대가를 요구하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제도는?
① 과전법
② 균역법
③ 호포제
대동법
⑤ 진대법

한국사 과목은 2016년 올해 응시자 수가 1500% 이상 증가하는 유례 없는 격변이 일어났다. 어떤 정보든 시급하게 필요하므로, 한국사 영역에 대해 사교육계의 소문이든 직접 분석한 것이든 최소한의 공신력만 갖춘 것이라면 누구라도 부담 없이 내용을 추가 바람.

4.6.2. 시행 후

6,9월 모의고사에서는 거의 상식 수준으로 나왔으나, 본 수능에서는 약간 까다로운 문제가 출제되었다. 한국사를 한번도 보지 않고 수능장에 가는 건 조금 위험할 듯 싶다. 수능특강 한번 풀고 가자. 자세한건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견 참고. 글씨가 보기 싫다면 학습만화도 좋다. 이것만 골고루 잘 보고 기출문제만 풀어봐도 웬만하면 5등급 이상은 나온다.

2018학년도에는 사설 인강에서마저도 개념 강의 무료화를 내세웠다. 필수 한국사 영역의 문제가 워낙 쉽다보니 독학하려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생각보다 수강생이 적은 듯. 일단 개념 강의를 무료로 제공해 학생들을 모으고, 이후 문제풀이 등의 후속강의를 수강하게끔 만드려는 전략인 듯 하다.

모든 수험생이 한국사를 필수로 응시하다보니 응시 인원 자체는 늘었지만, 난이도가 쉬워 강의를 듣는 인원은 이전에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에 수능 한국사 강사들 중 성장률이 높고 응시 인원도 많은 공무원 한국사 분야로 진출하는 사람들도 많다.

4.7. 학습법

4.7.1. 2005~2016

이하 서술하는 학습법은 2005~2016학년도 수능까지 적용될 부분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현 한국사는 전근대 20%, 근현대 80% 정도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으며, 수능 때는 전근대 30%, 근현대 70%의 비율로 출제한다. 또한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는 세계사 부분도 한국사의 흐름 내에 영향을 주는 범위 내에서만 출제하며, 또한 그 난이도 또한 매우 낮은 편이다.[44]

6종 교과서 중 3종 이상의 교과서의 공통 부분만 정답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근대의 경우는 지엽적인 선지가 많이 줄었다. 다만 지엽적이지 않을 뿐이지 전근대사의 내용이 적은 건 결코 아니다. 교과서만 하더라도 내용이 적은 게 아니라 요약식일 뿐 내용이 상당히 많다. 사회문화 같은 경우 한 단원에서 배워야 하는 공부량이 한국사에선 소단원에 불과하다 싶을 정도로 양이 정말 많다. 거의 암기과목 수준으로 나열되어 있는 개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교과서만 숙지하더라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나온다는 점이 위안일 듯. 실제로 교과서의 공통분모를 묶어보면, 전근대는 어느정도 내용이 많은 조선 후기 화폐경제의 발전을 제외하면 정치사 밖에 낼 데가 없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교육과정 해설서에서 교과 단원 영역별 내용에서 요구하는 바를 보고 시험에 나올 것을 정리해보자.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 홈페이지. 교과별로 내용을 보고 싶다면, 위 링크에서 영역/교과목별을 클릭한 뒤 한국사에서 2009 개정 시기 고등학교를 보면 2016학년도까지의 한국사 관련 교육과정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근현대사인데, 이게 7차의 한국근현대사 내용에서 내용이 줄은 것도 있는데다, 난이도도 내려갔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실수가 허용될 수가 없다. 그런데 교과서로만 공부해서는 흐름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인강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이후 수능 기출 문제를 풀면서 개념을 다진다. 여기까진 거의 대부분 과목들과 테크가 같다.

수능에서 역사 과목은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가령 조일통상장정을 공부한다고 하면, 그 조약으로 인해, 또는 그 조약 전후와 비교해서 어떠한 사회 경제적 영향이 있었는지 파악해야 하며[45], 물산장려운동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면 발생 배경이 무엇이며 과정은 어떻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또 특기 사항은 무엇인지[46] 기억해야 한다. 이 중요한 점을 잊고 단순히 한 사건을 별개로 간주한다면, 수십 개를 다 외웠다고 해도 거의 대다수의 문제를 풀 수 없다. 특히 3.1 운동은 교육과정에서부터 배경, 과정, 결과와, 이에 따른 임시정부 수립을 중요시하며 이 부분을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47]

현대사 쪽으로 들어가면 몇 달 차이를 구분하는 문제는 예사로 나오며, 개항기 동학농민운동에서는 며칠 차이를 구분하는 문제조차 나온다. 이런 면에서 1894년은 그저 생지옥.[48] 사실 이를 다 외워야 할 필요는 없으며 제시문에서 다른 힌트를 찾아 묻는 바를 찾으면 된다. 또 제시되는 사료 또한 매년 새로운 것[49]을 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지문 해석력 또한 요구한다. 특히 현대사 부분은 시사에 관심이 많다면 들은 이야기가 많아 공부하는 데 매우 수월할 것이다.

기존 근현대사를 공부하듯 개항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제강점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대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나눠서 공부하여도 큰 무리는 없다. 다만 경제와 문화는 전통적으로 개항기 쪽에서 많이 출제되었으며, 가끔 일제강점기 문화가 나오고, 2014학년도 수능에서 당시 상황을 묻는 문제가 현대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현대사는 2014학년도 본 수능에서는 중상의 난이도로 나오고 최고난도 문제는 나오지 않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부분이기 때문에 현대사를 꼼꼼이 공부하는 것이 만점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다.

독립운동사 파트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대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신민회-신간회부터 시작해서, 그 절정은 무장 독립 운동사. 이름들이 비슷비슷한 무장 독립 운동 단체(ex : 대한 독립군, 대한 독립군단, 한국 독립군, 한국 광복군, / 조선 의용대, 조선 의용군/조선 혁명당, 조선 민족 혁명당.글자 한두개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단체가 된다. 이름은 같은데 시기가 다르고 전혀 관련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거기에 소속이 임정이냐 사회주의 저항군이나에 따라 또 갈리고 합병도 한다. 심지어 한국 독립당은 1919년부터 광복까지 무려 네 단체가 한국 독립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또한 지도자 이름도 당연히 같이 외워야 하는 건 치는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들과 그 활동 지역, 지도자들을 구분하는 것이 학생들을 압도한다.

2014 수능에서 이 부분을 변별을 시도한 문제로 냈는데, 위에서 서술했듯 (가) 자료에 한국독립당을 언급했지만 이게 1935년의 상황인지 1940년의 상황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그냥 썰리는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를 다른 과목처럼 평범하게 공부했던 학생들은 문제의 유일한 키워드인 '5당 통합'이란 표현을 시험지를 받은 그때서야 처음 봤다는 것이었다. 알 만큼 알고 공부할 만큼 했는데, 참고서 한 권에서 모르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데, 역대 기출문제와 EBS와 시중의 문제집들을 모두 외웠는데 시험에 모르는 내용이 나와서 틀리는 황당한 상황이 한국사에서는 연출된다.

사실 한국사는 선택자들의 수준과 선택 이유와 목표 점수부터 일단 다른 과목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과목에 대해서만은, 이것까지는 외울 필요가 없고 암기 없이 쉽게 가도 된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2015 수능 기준 다 맞은 것(표준점수 67)과 1개 틀린 것(표준점수 65)은 한국사 선택자에게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그들은 대기권을 뚫고 성간 여행을 하기 시작한 문제 난이도를 극복하고 후자가 아닌 전자의 점수를 등급컷에 상관없이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한국사는 47점 1등급을 받고도 기뻐할 수 없는 과목이다.

2015 수능 기준으로 국어 97점(1등급), 수학 96점(1등급), 영어 98점(1등급), 한국사 47점(1등급), 사회문화 50점(1등급)을 받으면 서울대식 표준점수로 524.8점이 되어, 526점이 되지 않아 서울대 어떤 학과에도 합격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사가 만점이면 526.4점이 되어 서울대 합격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사가 2등급이어도 언수외 만점이면 서울대에 갈 수 있...기는 하지만 합격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한국사 만점이라는 것이다. 한국사 만점을 받지 못하면 꼼짝없이 언수외 만점을 받아야만 하는 잔인한 입시 현실에서 암기하지 않아도 풀리게끔 문제가 출제될 거라고 대충 넘겨짚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므로 수능 한국사 공부는 어쩔 수 없이 교과서에 있는 모든 연도를 다 외우는 기행적이고 비인간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4.7.2. 2017~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중급 난이도 이하로 출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공부 방법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중급이하면 어느 정도 쉬운 수준이다.
4.7.2.1. 서론
먼저 '서울대 지정 사회탐구 영역 한국사'와 '필수 한국사 영역'의 깊이의 차이는 다음의 예와 같다.

한국독립군(1930년대)

사회탐구 영역 한국사
1925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장[50] 미쓰야와 만주 군벌 장쭤린이 체결한 미쓰야 협정 이후로, 집안현 지역을 포함한 참의부, 길림성 지역을 포함하며 지청천이 소속된 정의부, 자유시 참변을 겪었던 독립군이 주축이며 김좌진이 소속된 신민부, 이 세 단체들에 대한 3부 통합 운동이 전개되어 1929남만주국민부, 1928북만주혁신의회가 수립되었다. 혁신의회는 1930한국독립당으로 개편되고 여기 소속으로 지청천이 이끄는 한국독립군이 편성되었다. 1931만주를 침공한 일본군을 상대로 한국독립군은 1933년까지 무장독립투쟁을 하다 중국 본토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여 1932쌍성보 전투, 1933사도하자 전투, 1933동경성 전투, 1933대전자령 전투를 순서대로 치렀다.

한국사 영역
3부 통합 운동으로 만주에 국민부혁신의회가 수립되었다. 혁신의회와 한국독립당을 거쳐 1930년대에 탄생한 한국독립군은 무장독립투쟁 과정에서 중국군과 연합하여 쌍성보 전투, 사도하자 전투를 치렀다.

사회탐구 한국사는 지나친 경쟁과 응시자 실력의 상향평준화 때문에 큰 흐름을 잡으라거나 역사적 상호 관계를 파악하라는 말은 응시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특정 내용의 중요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덜 중요하다는 내용을 덜 공부했다간 꼼짝없이 31점 5등급이 나오므로 연도 하나를 더 외웠는지 덜 외웠는지로 승부가 갈리는 극단적인 별들의 전쟁에서 학술 연구에나 적합한 서술형 공부만을 해 왔던 교사들은 많은 걸 해 줄 수 없었다. 네?? 고등교사가 학술연구 백면서생이라구요? 그냥 준비부족 아닐는지..

그러나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50점 만점에 30점만 받으면 된다는 점의 영향이 큰데, 이 때문에 더 이상 졸렬하게 문제를 출제할 필요가 없어졌고 덕분에 난이도가 10년 전보다 더 쉬워졌다. 극단적인 암기 대신 흐름을 정확히 꿰는 것으로도 3등급(만점 취급)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학습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연도와 단어보다 문장의 전체적인 뜻을 기억하는 것으로 옮겨졌다. 사회탐구 한국사에 2등급 컷이라도 48점 이하로 낮추려고 대표적으로 나오던, 근대의 어떤 문서의 일부를 던져 주고 그 글의 정체를 파악하라는 문제[51]는 더더욱 나오기 어렵다.

따라서 학교 수업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억지로 암기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풀리므로, 어떤 설명이든 일단 많이 들어 두는 것이 도움이 되고 성적으로 금방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과목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사회탐구 한국사 시절에 별들의 전쟁에서 전사하지 않기 위해 이용했던 방법들은 지금 시점에서 굳이 필요없거나 과한 방법이 되었다. 다만 동아시아사 학생 한정으로는 지엽적인 한국사 공부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한국사가 낮아지는 대신 동아시아사가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4.7.2.2. 실행 방법
조선을 8등분해서 공부하던 이전까지는 감히 실행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일부 지엽적인 내용을 공부하지 않는게 유용해졌다.[52] 50점 만점에 30점만 획득하면 문제가 없는건 아니나[53], 복잡하고 시험에 잘 안 나오는 탑 이름, 그림 이름 부분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어느 시대에 나온건지 모르면 안 된다! 지눌이나 신채호 얼굴 정도는 기억해놓도록 하자.

예를 들어 조일수호조규, 조일수호조규부록 같은 19세기 조약 이름 12개(!)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과거 별들의 전쟁 한국사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했던 공부이므로 필수 한국사에서는 강화도조약, 병자조규, 수호조규, 조규부록, 무역규칙, 조규속약, 1차통상장정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조약이라 생각하고 공부해도 된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조선 태종: 6조 직계제, 호패법, 계미자' 그리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활동: 연통제, 교통국, 독립신문, 구미위원부' 같은 세부 항목들을 잘 기억하면 어려움이 없다.

역사 공부의 영원한 화제인 '연도 암기'에 대해서도 필수 한국사에서는 해결책이 쉽다. 구체적인 네 자리 숫자를 일부러 외울 필요는 없다. 전근대사의 경우 근초고왕 4C, 장수왕 5C와 같이 100년 단위로 큼직하게 나누면 되며, 근현대사의 경우 갑신정변 1880년대, 갑오개혁 1890년대, 신민회 1900년대 같은 식으로 10년 단위로 기억하면 충분하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학습 조언에 종합적인 한국사 학습 방식이 잘 정리되어 있다.
4.7.2.3. 교재 선택
2017 수능 기준 연계교재는 EBS 수능특강 한 권이다. 수능 수준보다 어렵게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많으므로 잘 안 풀린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

올 한 해 동안 실시되는 학력평가, 모의평가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다른 어떤 참고서도 수능 유형과 난이도를 이 문제들보다 잘 보여 주지 못한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3월, 4월 학평 문제를 수시로 참고하도록 하자.
4.7.2.4. 특별 암기 사항
2017 수능에 출제될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참고서가 부실해서 제대로 정리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내용들을 골라 특별히 공간을 만들어서 전체적인 흐름과 구조를 조망할 수 있도록 시험 범위 내의 사건들을 한 개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록함으로써, 해당 내용에 한해서 나무위키가 현존 최고의 수능 요약집이 되도록 한다. 오오 나무위키 오오
두 번의 학평에서 아래의 굵은 글씨에서만 4문제나 출제되었을 만큼, 그 사건들은 치트키나 다름없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통일 정책
● 3월, 4월 출제: 사건의 순서를 묻는 문제, 특정 업적을 이룬 대통령의 또 다른 업적을 고르는 문제가 나왔다.
이승만: 애치슨 선언(1950. 1. 12.) - 6.25 전쟁 발발(1950. 6. 25.) - 반공 포로 석방(1953. 6. 18.) - 한국군사정전협정(1953. 7. 27.)
장면: 학생 주도의 통일운동(1960~1961)
박정희: 남북적십자회담(1971) - 7.4 남북공동성명(1972. 7. 4.) - 남북조절위원회(1972~1973)
전두환: 이산가족 최초 상봉, 예술공연단 방문(1985)
노태우: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 -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 -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1991) - 남북기본합의서(1991. 12. 13.) - 한반도비핵화선언(1991)
김영삼: 김일성 사망, 남북정상회담 불발(1994) - 북한 경수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지원(1995)
김대중: 정주영의 소떼 방북(1998) - 금강산 관광 최초 시작(해로)(1998) - 남북정상회담(2000) - 6.15 남북공동선언(2000. 6. 15.) - 경의선 복구 시작(2000)
노무현: 경의선 연결 완료(2003) - 개성공단 착공(2003) - 금강산 관광 시작(육로)(2003) -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 10.) - 10.4 남북공동선언(2007. 10. 4.)
이명박: 김정일 사망(2011)

민주화 운동과 현대사
● 3월, 4월 출제: 자료가 무슨 혁명인지 직접 물었다. 시민들이 시위에서 무엇을 요구했는지 물었다.
이승만: 반민법 제정(1948. 9.) - 농지 개혁법 제정(1949. 6.) - 제헌 국회 임기 만료(1950. 5.) - 발췌 개헌(1952. 7.) - 사사오입 개헌(1954. 11.) - 3.15 부정 선거(1960. 3. 15.) - 김주열 피살(1960. 3. 15.) - 4.19 혁명(1960. 4.)
박정희: 5.16 군사정변(1961. 5. 16.) - 국가재건최고회의(1961. 5.) - 김종필 오히라 비밀 회담(1962) - 한일협정 조인(1965. 6.) - 브라운 각서 체결(1966) - 3선 개헌(1969) - 유신 헌법 발표(1972. 10.) - YH 무역 신민당사 농성 사건(1979. 8.) - 10.26 사건(1979. 10. 26.)
최규하: 서울의 봄(1979. 10. 26.~1980. 5. 17.)
전두환: 12.12 군사반란(1979. 12. 12.) -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1980. 5. 17.) -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 5. 18.)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1980. 5. 31.) - 삼청교육대 설치(1980. 8.) - 4.13 호헌 조치(1987. 4. 13.) - 박종철 고문치사(1987. 1.) - 6월 항쟁(1987. 6.) - 6.29 대통령 직선제 선언(1987. 6. 29.)
노태우: 9차 개헌에 따른 최초의 직선제 5년 단임 대통령(1988) - 서울올림픽 개최(1988. 9.) - 3당 합당(1990)
김영삼: 금융실명제(1993. 8.) -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1995)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1995. 8.) - 국민학교 명칭을 초등학교로 변경(1996)
김대중: 선거를 통한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1998)
노무현:
이명박: 선거를 통한 2번째 평화적 정권 교체(2008)

4.8. 비판

기존의 역사 교육 과정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 이에 대한 수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대한제국의 개혁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많이 느껴지며, 간도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이전보다 주장이 약해졌다.[54] 세계사 내용을 늘려 삽입한 것 또한 이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외에 크게 개화기 - 일제강점기 - 8.15 광복 이후의 3개 분할로 이루어졌던 이전의 근현대사 교육 과정과 달리 단원이 더 잘게 분할되었다.

또한 한국사의 필수 과목화(실질적인 재지정)에 대한 의견도 곳곳에서 나왔으며, 2011년 4월 22일 필수 과목화되었다. 이는 2009년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55]을 초1부터 중3까지의 9년으로 1년을 축소하고 선택중심교육과정을 고1부터 고3까지의 3개년으로 1년 연장시켜서 그리 된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전근대사가 기존 국정 교과서에 비해 대폭 축소되고 근현대사 위주로 교과서가 개편되었다. 말만 한국사 교과서이고 실상은 전근대사를 서문으로 하는 근현대사 교과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선사 시대부터 후삼국 시대까지의 고대사를 약 30페이지로 압축해 놓았다.[56]

전체적인 비율은 전근대사 3 : 근현대사 7 정도다. 전세계적으로 근현대사 교육은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전반적인 통사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근현대사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유형과 통사를 학습한 후 별도의 근현대사 과목을 고등학교 과정에서 개설하여 집중적으로 다루는 유형, 아니면 그냥 근현대사까지 통사에 넣어 학습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한국사 교육은 6차 교육과정 때까지 세번째 유형이었다가 7차에서 두 번째 방식을 적용하여 통사를 분야사 중심으로 재편한 상태에서 한국근현대사라는 과목을 새로 개설했고, 7차 개정 적용 후 한국사 교과 설치에 따라 전자로 변화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비율이 너무 기형적으로 구성된 것.

그리고 2014년부터 전근대사와 근현대사의 비율을 50:50으로 조정한 고1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간행한다고 한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비로소 이 교과서가 수능에 반영될 것이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을 사람이 뭐 하러 고려와 조선의 조세 제도 같은 내용까지 세세히 외우고 있어야 하느냐는 식의 비판이 있다. 이런 측에서는 실질적으로 역사 교육의 핵심은 과거의 일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고, 근대 이전의 역사는 굵직굵직한 줄기만 알면 충분하며 역사 교육의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 강조해야 할 부분은 근현대사라고 주장한다. 흔히 말하는 '역사의식'같은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예를 드는 사건들은 죄다 근현대사의 내용이지 고대나 중세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명칭을 국사에서 한국사로 고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국사는 자국민이 배워야 하는 역사라는 의미라면 한국사는 세계에 있는 수많은 역사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의미가 축소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된 지금 이제는 우리나라 역사는 꼭 배워야 하는 자국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수많은 역사 중 선택해서 배울 수 있는 한국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론도 물론 있다. 국사를 한국사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역사를 배운다는 느낌이 퇴색되진 않는다.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생각해보라. 우리나라가 한국이 아니면 뭐냐? 조선?? 오히려 그런식으로 국사라는 개념을 한국사로만 한정하는 게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옆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일본사라는 과목으로 자국의 역사를 배운다.

다만 위의 근현대사 확대 이야기는 조선과 일제강점기 얘기고, 광복 이후는 남북관계와 민주화운동 관련해서 한 문제 빼고는 사실상 나오지 않는 수준이다. 박정희의 산업정책이 지역감정을 어떻게 유발했는지 등 정작 한국인의 삶과 관련 있는 얘기는 시험에 거의 안 나오고 학교에서도 거의 안 가르친다. 생활과 윤리 과목의 성소수자 인권 문제처럼 막상 출제하기에 정치,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인 것도 감안해 주어야겠지만, 충분히 무난하게 낼 수 있는 부분들도 분량이 너무 적다.

4.9. 전망

그러나 학생들의 수험부담이 지금의 국수영+탐구2과목 체제에서도 적지 않은 편인데 국수영에 맞먹는 분량의 영역을 하나 더 만들어버리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대한민국 고3 교실에선 수능 대비 위주로 교육이 이뤄지는데 수능만 바라보고 교육하는 것이 과연 역사의식 함양이란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논쟁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한국사 교육 방법은 물론 대한민국의 교육 구조 전체를 갈아엎어야 제대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그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현실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능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들과 교육계 일선 교사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감정에만 근거한 여론몰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입시와 상관 없는 사람들 대다수는 국민감정에 의해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수능을 치러야하는 자녀를 둔 부모나 학생은 걱정이 많다. 한때 20만 명의 학생들이 선택하던 근현대사 과목이 폐지되어 울상을 짓던 학원 강사, 교사들은 대체로 신난 분위기다.[57] 실제 부담을 지는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 안 된 정책 결정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일 듯하다. 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평가원 발표로는 절대평가제로 쉽게 출제할 것이라고 한다. 최태성 강사는 한국사능력시험 중급 이하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절대평가제를 도입할 것이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부담은 확 줄어든 셈이다. 또한 이러한 부담감소로 인한 수업의 부담 역시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어서 수업 분위기도 기존보다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현재 서울대를 기준으로 정시 입시 점수 환산시 3등급 이내만 들면 0점으로 쳐주기 때문에 만점이나 1등급에 집착하지 않아도 3등급 이내만 받으면 충분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소수의 대학에서는 최저를 맞추기 위한 과목으로 한국사를 인정해 준다. 서강대학교 최저기준이 바뀌어서 이전에 제2외국어를 사탐과목으로 교체하던 것처럼, 한국사 역시 사탐과목 한 과목으로 교체할 수 있다.

한국사를 쉽게 낸다는 평가원의 발표에 따라 한국사 교재나 강사가 핵심적인 내용만 언급하고 자세하게 가르치는 곳은 거의 없어졌다. 따라서 개념을 자세하고 깊게 묻는 문제가 출제된다면 오답률이 매우 높아질 수 있다.[58] 그리고 평가원이 뒤통수를 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서 막상 수능에서 어렵게 나온다면 절대평가 이기 따문에 1~3등급 비율이 급감하고 최저를 못맞추거나 가산점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일어나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어도 정말 할말이 없을것이다. 수험생 입장은 전혀 듣지 않고 시행한 정책이며 평가원 에서 쉽게 낸다고 공인한것은 물론, 변별력을 갖춰야 하는 영역은 더더욱 아니니 반드시 쉽게 내지 않으면 안 된다.

4.10. 유명한 인터넷 강의 강사들

자세한 설명은 각 링크 참고 바람.

4.11.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일본은 자국사를 국사가 아닌 일본사A, 일본사B라는 과목으로 배우며 선택과목이다.(필수과목은 세계사A/B)[2] 200쪽 후반 수준의 분량이 100쪽 초반 수준으로 축소.[3] 정확히는 조선중기 정도까지.[4]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는 분들은 교육과정문서를 참조하기 바람.[5] I=고대(후삼국시대 이전), II=중세(고려), III=근세(조선), IV=근대1(개항기), V=근대2(일제강점기), VI=현대(대한민국)[6] 5지선다의 출제형식을 감안할 때 맞춘 학생들도 찍어서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이다.[7] 다만 이는 수능이 맨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출제진 측에서 IQ테스트나 적성검사 형식의 시험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능의 성격이 바뀌어, 적성검사와 학력시험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으므로 추론과 암기를 둘다 상당한 수준으로 요구하는 과목이 되었다.[8]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제2외국어를 반영하는 이과는 거의 없으므로, 이과생들은 보통 시험을 치지 않는다![9] 이름도 수리·탐구영역(Ⅱ)(99~01)/사회탐구·과학탐구영역(02~04)이었다.[10] 세계지리, 세계사, 정치, 경제, 사회문화[11] 물리II, 화학II, 생물II, 지구과학II[12] 참고로 공통과학의 내용은 개정 전 7차의 물화생지I과 거의 똑같다.[13] 한국사 응시인원이 대부분 상위권인 현재와는 달리, 전술한 바와 같이 전국 학생들이 누구나 시험을 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단순히 수로만 따지면 중하위권이 더 많으니까 등급컷이 적절히 조정되므로 지금처럼 문제를 굳이 변태스럽게 꼬아서 출제할 필요가 없었다![14] 당시에는 공통사회 및 공통과학 간 과목 연계 문제가 자주 출제되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사과탐이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15] 이는 6차 수능에서 전국 학생들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던 윤리와 한국지리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16] 예를 들어, 당시 국정 교과서의 고려 사회사 파트에는 반 줄짜리 분량으로 뇌물을 먹은 관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는 서술이 나왔는데, 2011 수능에서는 이를 이용해 제시된 사료의 맨 마지막 줄에 '귀향형에 처한다'라는 말을 통해 고려 시대임을 유추하도록 시키는 문제가 나왔다! (...)[17] 식목도감. 이전 교과서에는 법 제정 기구라는 설명이 있었으나 현행 교과서에는 '도병마사와 함께 재신과 추밀의 합의 기구' 라는 점 정도만 서술되어 있다.[18] 문화 단원의 표지, 연표랑 같이 들어있는 부록에 나온다.[19] 평가원의 방침상, 검정 교과서를 채택하는 과목의 경우 현행 검정 교과서들 중 2/3 이상에 나오는 내용만을 출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시의 국사는 단일 교과서였기 때문에 정말 별의별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시험 문제가 다 나왔다. 예를 들어 심화학습 읽기자료에 짤막하게 몇 단어로 나온 내용이 시험에 나온다든가, 대단원 소개에 나오는 종묘 사진이 시험에 나온다든가(...). 이는 전병헌 의원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보통 수능 사탐에서 지엽적인 암기사항은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강사들이 많은데, 국사만큼은 유독 이 지엽적인 것들을 챙겨야 했다.[20] 교과서 처음부터 끝까지다.[21]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범위가 약 200페이지씩이다(...)[22] 2011 수능 국사에서 나온, 자격루가 만들어진 시대 배경을 제시하고, 이 시기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른 것을 고르는 문제를 뜻한다. 당시 선택지에서는 훈민정음운해가 편찬되었다는 말이 나왔는데, 사실 이 책은 조선 후기 국학의 발달 과정에서 나온 책이다. 문화사를 빠삭하게 정리하지 않은 학생들은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문제였다.[23] 이런 유형은 주로 개정 전 7차의 법과사회에서 주로 써먹는 테크닉이었다.[24] 상감청자와 관련한 제시문을 준 뒤 ㄱ,ㄴ,ㄷ,ㄹ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선택지 중에는 '이것은 소(所)에서 제작되었다'라는 식의 선택지가 있었고 이것은 맞는 선지로 분류되었다. 교과서에서는 직접적으로 청자가 소에서 생산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소에서 벼루, 자기 등을 만들었다는 서술이 교과서에 있어서 이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주어진 자료에 결부시켜 추론하라는 것이 평가원의 의도였다.[25] 이전에는 중학교 국사에서 통시적 흐름을 정치사 위주로 배우고 고등학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나눠 더 자세히 배우는 방식이었다.[26] 그렇다고 중학교가 근현대사를 안 배운다고 하면 오산이다. "전근대사를 배운다는 거지 전근대사만 배운다거나 근현대사를 안 배운다는 말은 아니다.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중학교 역사를 애기하면 과목이 역사(상),역사(하)인데 역사(상)에서는 당연히 전근대사만 배우고 역사(하)에서는 전근대사 진짜 아주 약간과 근현대사를 공부한다. 2009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사1과 역사2로 바뀌는데 역사(상)이 역사1으로 역사(하)가 역사2로 바뀐 형태이다. 기존 역사(하)에 남아있던 약간의 전근대사 부분까지 역사1으로 가버려 역사2가 완전한 근현대사 교과서로 바뀌었다는 걸 제외하면 크게 변화된 건 없다.[27] 언제부터인가 기사를 열람할 수 없게 되었다.[28] 2007년 발표된 4차 부분 개정 교육과정.[29] 2009년 12월 총론 및 일부 교과의 각론이 발표되고 이어서 2011년 8월에 나머지 교과의 각론이 발표된 5차 및 6차 개정 고시된 것.[30] 이전의 삼사(三史)는 '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였다.[31] 서울대에 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량 자체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한국지리, 사회문화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사실 그것보다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난이도가 대폭 하락한 탓이 더 크다. 초창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는 우리나라의 철도가 협궤인지 광궤인지 표준궤인지 알아야 하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더 이상 그런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32] 만점자 비율이 응시자의 8.94%이고 만점자 표점이 64점이다.[33] 민족혁명당 결성 직후로서 1935년에 해당한다. 얼핏 잘못 해석하면 1940년 한국독립당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자료였다.[34] 연고대등 다른 학교는 제2외국어를 사탐 과목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대는 그런 거 없다. 안습.[35] 본인이 역덕후라고 해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서울대를 갈 것이 아니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조합으로 수능과목을 선택하는걸 추천한다. 한국사는 동아시아사나 세계사 이 두 과목중 한 과목과도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못 발휘하지만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는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다.[36] 문제가 쉽게 나왔던 고대적에는 고교 과정의 국사+한국근현대사만 공부하고도 1급을 받는 용자들이 나오기까지 했다![37] 학생 때는 국영수가 중요하다면 공무원 시험은 국영사가 중요하다. 국사 잘해두면 결코 손해보지 않는다![38] 34%[39] 만점자 비율이 무려 10.47%이고 2등급컷은 48, 3등급컷은 46이었다(...)게다가 표준점수 등급컷으로는 각각 63/62/61로 표점 1점당 등급 하나씩 떨어졌다. 무슨 짓거리야![40] 한국사 필수 지정의 파급력이 대단히 크고 그에 대한 정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2017 수능 시행 전에 한국사 영역을 예상하고 분석한 내용을 독립된 문단으로 만들어 제공한다.[41] 사실 이들도 이 문제를 쉽게 느끼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수준이 수준인지라 풀고 나서 다들 만점이 나왔다. 해당 시험 만점은 전국 고2 한국사 상위 0.2%에 해당한다.[42] 응시 대상을 비교해 봐도 당연하다. 한능검 초급은 시험실에 모인 응시자들이 예외 없이 모두 초등학생들이다.[43] 1876년에 개통된 상하이선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건 동아시아사에만 나오는 내용이다.[44] 6월에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사를, 본 수능 때는 한국사에 영향을 준 동북아 국가나 서구 열강들 사이의 조약과 이에 관련된 한국사의 사건을 묻는 문항을 출제했다.[45] 특히 이 조약은 조일수호조규와 비교되어 3점 짜리 문제 단골이다.[46]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았다.[47] 즉 3.1 운동은 수능에서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48]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남쪽은 동학농민운동, 중앙에서는 갑오개혁, 북쪽에는 청일전쟁이라는 세 사건이 나란히 전개되고 있었으니 당연한 노릇. 동학농민운동 1차 고부봉기(1.11)+2차 백산봉기(3)+청군 진입+일본군 진입+일본군 경복궁 점거(6.21)+갑오개혁(6.25)+청일전쟁 발발(7.25)+3차 봉기... 이 때 조선 조정의 요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를 임기응변에 관한 인성면접으로 기습적으로 물어보는 데 적격이다.[49] 특히 현대사가 그렇다. 자료가 무궁무진하게 많기 때문[50] 경무부의 업무 범위를 물어봤었다. 서울대 지정 체제가 계속되었으면 조선총독부 경무부, 내무부, 농상공부 등을 하나하나 배웠어야 할지도 모른다.[51] 사료의 내용들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문서 이름을 문체만 보고 알아내도록(...) 출제하면 난이도를 조절하기 쉽다. 예를 들어 청에 대한 조공 허례를 폐지한다청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를 구별해야 했기 때문에, '조공 허례를 폐지한다'를 계속 말하면서 외우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었다.[52] 당장 사화부터 지엽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나마 지엽적으로 묻는건 식민사관과 그에 반박하는 사론들.[53] 다만 2등급부터 감점하는 학교도 있으니 주의.[54]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말을 확연히 안 한다는 것. 우리 땅은 아니고 우리 민족이 조금 살긴 했었는데 일본이 간도협약 맺어서 완전히 골로 가버렸어라는 식. 사실 일본이고 뭐고 간도에 대해선 대한민국은 주장할 건덕지 자체가 없다. 간도회복 항목 참고.[55]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과 선택중심교육과정이라는 개념은 1997년 발표된 제7차 교육과정부터 나온 것으로 2007년 개정 교육과정까지는 초1~고1 10년을 국공기, 고2~고3의 2개년을 선택중심교육과정 기간으로 설정 하고 있었다.[56] 사실 고대사보다는 당장에 현대 정치에 관련있는 근현대사 비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것이나, 그 비율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난다. 게다가 고대사의 기록은 굉장히 적은데다가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고려시대에 집필된 삼국사기인 것을 고려한다면...[57] 그러나, 문제 수준이 몹시 낮다는 것이 뽀록나자 한국사 인강을 그만 듣는다던가, 애초부터 '4등급 이상만 받으면 되는데 뭔 공부를 해? 라면서 수특 한국사조차 사지 않았던 사람들도 꽤 많았다. 내신 수업은 약간이나마 좀 듣는 듯. 참고로 한국사는 수능에서만 독립이지, 내신에선 여전히 사탐으로 취급되어 서울대나 교대, 단국대 등 특수한 경우를 빼면 이과생은 한국사 내신을 챙길 필요가 없다. 문과생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17 입시에서 한국사가 사탐 아닌 줄 알고 던졌다가 한국사 때문에 수시 다 떨어지고 강제 재수하게 된 사람도 있다.[58] 아무리 쉬워졌다 한들 8.15광복부터 제헌국회 까지의 흐름이나 일제강점기 하 독립투쟁사를 꼬으면 끝도 없다. 현대사 파트에서도 6.3 항쟁이랑 6월 민주 항쟁을 보기로 내면 헷갈리듯이. 실제로 18수능 16번 문제에서 많은 수험생들이 신간회와 신민회를 헷갈려 오답률이 상당히 높았다. 신민회는 1907년 안창호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실력양성운동과 국외 독립기지 건설 등을 하다가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고, 신간회는 1927년 정우회 선언으로 조직되었고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자치론자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그리고 사회주의자 간의 대립으로 1931년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