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3 22:25:02

김현정(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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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Together Forever 18 앨범자켓
이름 김현정(金炫廷)
출생 1976년 4월 4일 ([age(1976-04-04)]세), 서울특별시
가족 1남 2녀 중 둘째
신체 173.5cm, AB형
학력 명지전문대학 유아교육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본관 경주 김씨
데뷔 1997년 1집 앨범 'Legend'
소속 HIM 엔터테인먼트
종교 개신교[1]
링크 공식 홈페이지,공식 유튜브 채널,인스타그램,트위터

1. 소개2. 가창력3. 키4. 이력
4.1. 1997~2003년: 데뷔와 최전성기4.2. 2004~2010년: 모험과 홀로서기4.3. 2011년~: 활동 영역을 넓히다
5. 가수로서 역경과 슬럼프6. 비하인드 스토리7. 팬클럽8. 디스코그라피9. 방송10. 수상 경력11. 공중파 1위 기록12. 광고모델13. 기타

1. 소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는 K-POP의 디바로
폭발적인 고음으로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는 여성 솔로 가수이다.

김현정에게 9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곡 <그녀와의 이별>이 있다면 200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곡 <멍>이 있다. 더불어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솔로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판매량과 음악프로 1위를 달성했다. 가수영역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활약도 많았다. ~그 당시 인기예능인 출발 드림팀하고 동거동락 등~

지금까지 8장의 정규 앨범과 7장의 비정규 앨범을 발표하면서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영화와 드라마 OST에도 꽤 여러번 참여했고 다른 가수들 노래에 피처링 참여도 많이 했다. 2005년에는 한국 여가수 최초로 미국 시애틀에서 단독콘서트를 한적이 있다. 히트곡 부자 [2] 9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꼽히지만 정작 90년대에 활동기간은 2년 남짓이며, 2000년대의 활동기간이 훨씬 길다. 데뷔 연차가 너무 오래된 가수로 인식되어 가요톱텐에 출연 했을법 하지만 가요톱텐에는 단 한번도 출연한적이 없으며 뮤직뱅크 세대인 가수다.

여자 냉동인간[3] 김현정이 방송에 자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와 전성기때 너무 많은 스케줄로 인해 매일같이 스타그래프트 벤에 몸을 실었고, 그러다 차가 전복되는 수준의 교통사고를 여러번 겪게 되어 트라우마가 남았다고 한다.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일도 잦았다고~ 현재는 각종 행사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행사섭외 하루8개 [4] 다돌려놔 외치는 순간 남녀노소, 연령불문 모두가 하나되어 돌리는 진풍경을 보게 됨

강원도 행사 멍 라이브 (2019년)

김현정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롱다리미녀가수의 수식어는 활동 당시 핑클S.E.S. 처럼 <요정> 같은 단어를 쓰고 싶어해 <롱다리 가수>에서 <롱다리미녀가수>로 직접 변경했다고 한다.

2. 가창력

청량감 넘치는 보컬이 특징인 여가수


1집 타이틀 곡 <그녀와의 이별> 라이브


2집 타이틀곡 <되돌아온 이별> 라이브

1999년 방송에서 부른 2집의 타이틀곡 <되돌아온 이별>. 댄스곡이라 우습게 볼 수 있지만 절대 만만한 곡이 아니다. 특히 후렴구 부분은 엄청난 고음을 요구하고 있다.

댄스 가수의 이미지가 크지만 가창력은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는다. 다만 진성 의존도가 높은 창법이다 보니 컨디션에 좌우되기도 하는 편이라 평가가 많이 엇갈린다. 하지만 나름 격한 안무를 댄서들과 함께 추면서도 그 빡센 노래들을 라이브 무대로 거의 하는 편인 걸 감안하면...

김현정의 곡은 어지간히 노래 잘 부른다 하는 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편이다.[5] 사실 도전 1000곡 같은 데서 가끔 걸리면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도 안무 없이 노래만 불러도 쩔쩔맨다. 이따금 이런저런 이유로 김현정의 노래를 하는 타 가수들의 경우에도 음계와 성량 모두를 김현정만큼 잡아 주는 경우가 드물다. 노래 이외에도 판소리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웬만한 명창 수준'... 이라고 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판소리 좀 배운 경험이 있다고 개인기로 써먹는 다른 가수들에 비하면 실력이 출중하다.



판소리에서는 진성 고음 발성을 벨팅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김현정의 발성도 이에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물론 판소리에서도 맑은 헤드보이스 사용을 잘한다. 가성에 가깝다. 김현정은 판소리를 흥보가로 유명한 서명희 명창으로부터 배웠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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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거의 174cm에 달해 여자 치고는 상당히 크다.[6][7]

특히 각선미로 유명했는데 순수 다리 길이만 97~98cm이고 # 골반까지 포함하면 112~113cm에 달한다. #역시 가요계에서 꽤나 키 큰 롱다리 여자 가수.

2017년 4월 18일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 박나래가 쟀는데 114cm가 나왔다.

김현정 이후 롱다리로 유명했던 그룹 'LPG' 출신 한영은 이미 가수를 그만둔 지 오래됐고 다리 길이 측정이라는 게 언플이나 측정 방법이 따라 왔다갔다 하는 부분이다 보니 둘의 다리 길이는 우위를 판가름하기 힘들다. 이후에 이상은-김현정-한영의 뒤를 잇는 장신 여가수의 계보를 잇는 가수가 달샤벳에서 나왔다. 무려 175cm. 현재 가요계에서 김현정의 뒤를 잇는 롱다리 여가수로는 소원, 김도연, 뉴썬 등이 있다. 다만 김현정의 경우 무릎 위, 즉 허벅지 부분이 긴 타입이라 비행기 좌석 등에 앉으면 불편하다고.

4. 이력

4.1. 1997~2003년: 데뷔와 최전성기

고등학교 시절 헤비메탈 밴드를 한 경력이 있다. ~밴드 이름은 <파이>~

1995년 기획사가 주최한 오디션에 합격하여 앨범 준비를 시작했고 1996년 12월경부터 기획사측에서 제작한 홍보용 LP판이 돌기 시작했다. 이후 1997년 2월, 1집 <Legend>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그녀와의 이별>로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당시에는 히트를 못 했다... 기보다는 망했다. 97년 5월 17일 MBC 음방에 나갔는데 긴장 탓인지 노래도 불안했고 스타일링도 매우 나이들어 보였다. 이후 1년 6개월동안 보컬 강사와 코러스로 생활을 이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8]

하지만 나이트클럽과 길보드, 즉 불법 복제 테이프 가판대 등을 통해 천천히 입소문을 타더니 반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결국 앨범 발매 1년 뒤인 1998년 5월 무렵에 앨범 자켓을 재촬영해서 재발매[9]를 했으며 접었던 방송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 결과 그 망했다는 그녀와의 이별 초판 발행본 음반은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손에 꼽는 레어템이 되어 버렸고 그 음반은 부르는 게 값이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2000년 중후반까지도 공식 데뷔시기는 1998년, 앨범 자켓은 재판 기준으로 소개되었다.


1집 타이틀곡 <그녀와의 이별>

당시 얼마나 인기가 높았냐 하면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그녀와의 이별이 국민 선호음악 1위도 기록했으며, 가수 선호도에서 2위를 기록했다. 1998년 1집을 재발매, 6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로 이 해 여성 솔로 가수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10] 더불어 1998년 KBS 뮤직뱅크에서 1위한 여자솔로가수는 김현정뿐이다. 연말결산에선 <그녀와의 이별>이 PC통신 집계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녀와의 이별> 활동 당시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서 컨디션 난조로 인한 립싱크 무대를 제외하고 모두 라이브 무대로 꾸몄다. 이 당시만에도 음향시절이 매우 안좋았고 인이어 조차도 없던 시절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댄스가수가 안무를 소화하면서 라이브를 한다는 자체가 매우 놀라운 일이였다.

당시 김현정의 인기요인으로는 모든 장르를 능통하게 소화해내는 가창력과 모델같은 큰 키도 있었지만 특히 웃을 때 보이는 덧니가 매우 매력적이였다. ~2집 이 후 덧니를 교정했다~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 인기는 어느정도 였을까

1998년부터 발표하는 곡마다 1위를 달성했고 당시 그녀는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였던 시절에 H.O.T.의 라이벌인 젝스키스를 뮤직뱅크에서 전화 투표로 이겼을 정도로 인기가 무서웠다. 1999년에는 정오의 희망곡 DJ로도 활약, 인기를 증명이나 하는 듯 청취율 1위까지 찍었다. 그냥 1위도 아니고 무려 강석, 김혜영싱글벙글쇼를 누르고 1위를 찍은 것이다.[11]

이처럼 1996년 별들의 전쟁 이후 혜성처럼 등장한 김현정의 당시 별명은 "가요계의 신데렐라"였다.

<그녀와의 이별> 히트 이후 발표하는 노래와 안무가 줄줄이 히트를 치면서 김현정은 19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댄스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여자 솔로 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과 가장 많은 1위곡을 배출했고 그녀의 이름 앞엔 항상 롱다리 미녀 가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에 걸맞게 방송 CF와 의류 모델 등으로도 꾸준히 활약했고 샤넬 패션쇼 메인 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다.


1집 후속곡 <혼자한 사랑>

<그녀와의 이별> 이후에는 <혼자한 사랑>으로 또 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혼자한 사랑>의 인기도 <그녀와의 이별> 못지 않았다. 예술성은 되려 혼자한 사랑이 위였다. <그녀와의 이별>에선 '덩치섹시춤', <혼자한 사랑>에서 귀여운 '펭귄 춤'이 히트를 기록 했는데, <혼자한 사랑> 첫 무대를 가진 KBS 뮤직뱅크에서 곧 바로 1위에 올라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지금까지도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두 노래는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서 모두 중국어로 번안되어 다시 불려지기도 했다.


2집 타이틀곡 <되돌아온 이별>

1999년 2집도 역시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그녀와의 이별>을 쓴 최규성이 준 <되돌아온 이별>, 당시 히트메이커였던 주영훈이 쓴 <실루엣>, 윤일상 작품인 <자유선언> 등 세 곡의 싱글로 활동했는데 이 세 곡 다 히트에 성공했다. 타이틀곡 <되돌아온 이별>의 원래 제목은 <니가 만든 비극>이였지만 음반 발매 며칠 전 급하게 제목이 수정됐다. 김현정은 <되돌아온 이별>에서 긴 생머리를 선보였는데, 당시 연예인으론 처음으로 붙임머리를 했다고 설명했다. ~되돌아온 이별 뮤직비디오 끝부분에 영안실 장면이 나오는데 기운이 매우 차갑고 무서웠다고~ 김현정 노래 중에서도 제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데, 이 노래를 안무하면서 라이브를 했다는 자체가 매우 경이롭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소화하기 위해서 컴백 직전까지 엄청난 연습을 했다고 한다~

2집 활동 중 이슈가 있었는데 바로 98년 6월 데뷔 1년만에 1집과 2집 누적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한 것이다. 당시 여자솔로가수가 5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두번 연속으로 넘기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원한 가창력과 강렬한 사운드로 소위 '김현정 스타일' 을 만들어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큰 인기를 유지했다. 2집 활동 중 시트콤을 통해 연기도 도전했다.

2집 후속곡 실루엣 (1999년)
2집 후속곡 자유선언 (1999년)

그 때, 나온 시트콤이 SBS 청춘시트콤 '행진'이었는데 거기서 굉장히 멋지게 나왔다. 하지만 개편되면서 같이 출연했던 성동일 송혜교 등과 같이 대거 하차했다. 참고로 이 시트콤이 판유걸리즈시절에 등장한 작품이다.[12] 더불어 이때 댄스가수로는 최초로 북한 금강산 공연에 초청되어 공연을 한적이 있다. MBC 라디오 공개방송 [13] 또한 여자솔로가수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된 바 있다.[14]

지상파3사 음악프로그램 2집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타고 가던 벤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해 모든 스케줄이 취소되었으며, 당시 보기 드물게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큰 사고였다. 5~6분 가량의 공연과 인터뷰까지 진행하려던 MBC 음악캠프 스케줄이 취소되자 해당 방송은 급하게 김현정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MBC 음악캠프 인터뷰 모습 (1999년)

전치4주의 부상을 당하고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낯으로 병문안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당시 김현정의 하루 스케줄이 가장 많은 날은 20개가 넘었고, 가장 적은 날이 10개였던걸로 알려졌다. 그만큼 방송 촬영뿐 아니라 각종 인터뷰와 잡지, 화보 촬영, 공연 스케줄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2011년 인터뷰에서 자신은 전성기 시절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 안에서 먹고 자는게 일상이였고 사람들의 환호성 때문에 무대에만 오르면 신이나서 노래했다고 한다

김현정은 그해 연말 지상파 가요 시상식에서 본상을 석권했지만 <서울가요대상>에서만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시 기획사였던 <레볼루션 넘버나인> 측에서 수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음해인 2000년에도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수상하지 못했으며 김현정뿐만 아니라 다른 인기가수들도 수상하지 못해 정확한 수상기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다.

또한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선 당시 김현정의 인기를 고려해서 "음악 프로듀서들이 뽑은 인기가수상"을 신설해 "대상"격인 "최고 인기가요상" 발표 직전에 시상하여 의미가 큰 상이다라고 칭했지만 정작 "본상" 수상자에선 제외시켜 반발여론이 존재했다. 또한 상을 수상한 김현정은 다른 방송사 스케줄로 인해 수상소감도 말하지 못했고 노래도 2분남짓 부르고 급하게 퇴장했다.


3집 타이틀 곡 <멍>

2000년 9개월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3집 <멍>으로 또 한번 인기 정점을 찍었는데, 당시 '다 돌려놔' 라는 후렴구 가사와 율동은 유행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김현정하면 다돌려놔를 외치게 된다~ 타이틀 곡인 '멍'은 공중파 음악 방송 3사에서 컴백 첫주와 굿바이 무대를 제외하고 거의 올 라이브를 했다. 또한 예능프로에서 많은 패러디를 낳았는데, 김현정은 정작 "다돌려놔"라는 말이 히트할줄 전혀 몰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특이하게 정규앨범 타이틀곡인데 뮤직비디오가 없다. 활동 시작과 동시에 뮤직비디오를 찍으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고 한다. ~1집과 3집은 녹음 중 정전이 되는 대박 징조가 있었고 2집은 마스터링한 CD가 타들어가는 대박 징조가 있었다고 방송에서 언급함 ~


3집 후속곡 <너 정말>

<멍>에 이은 후속곡 <너 정말>에서는 짧은 핫팬츠에 복고풍의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큰 이슈를 모았다. 특히 복고풍 선글라스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핫한 아이템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난다긴다하는 연예인들은 다 착용~ 핫팬츠로 화제를 모았지만 방송사 복장규제로 인해 긴바지로 대체하여 활동했다. 타이틀곡 <멍>과 후속곡 <너 정말>까지 가요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데뷔 후 처음으로 선보인 발라드곡 <거짓말처럼>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거짓말처럼> 뮤직비디오 안에 팬들 모습을 담아 편집하여 만든게 매우 인상적이다.

그녀는 3장의 정규 앨범이 연속으로 대박을 기록하면서 여자솔로가수 중 톱가수임을 확실히 증명했다. 특히 <멍>은 젊은 세대 뿐만 아니라 40~50대의 장년층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후배가수들이 경연노래로 재해석하여 다시 부른 경우가 많다. 멍을 다시 부른 후배가수로는 케이윌, 홍진영, 장윤정, 에이핑크의 정은지, 에일리 가 있다.

3집 멍 1위 당시 객석 반응 (2000년)
3집 후속곡 거짓말처럼 (2000년)

더불어 3집 활동 당시 바람에 휘날리는 얇은 실크 소재의 원피스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활동했는데, 군부대 위문공연에서 굉장한 인기였다고 한다. 특히 미군부대에서 흑형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15] 흑형들이 좋아한 한국 여가수

그리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 시기에 엄정화와 은근히 라이벌 기믹이 존재했다. 데뷔는 엄정화가 1992년으로 김현정보다 5년 가량 빨랐지만 1997년, 3집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서야 인기가수로 발돋움했고[16] 90년대 말엽에 전성기를 구가했다는 점에서 김현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실제로 90년대 말 삼사의 가요대상에서는 H.O.Tvs젝스키스, S.E.S vs 핑클처럼 김현정과 엄정화의 라이벌 매치업이 여러번 성사된 적이 있다.[17] 토토가에서는 소찬휘와 라이벌 기믹이라는 게 함정 뭔가 이상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어차피 엄정화도 나왔잖아?

2001년에는 대만, 홍콩에 진출하여 <거짓말처럼>을 중국어로 부른 <FOREVER>가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당시 성룡과 같은 기획사에 있었다. 김현정의 활동 예명은 'Amy Kim'이며, 김현정을 위해 20억원대에 롤스로이스 차량을 지원해줬다. 또한 일본의 여가수 하마사키 아유미에 이어 아시아권 가수로는 두번째로 아시아판 타임지를 장식했다. [18] 대만의 권위있는 영화제인 금종장 시상식에도 한국 연예인 대표로 참석하여 노래를 불렀다. ~홍콩과 대만 등에서 각각 30만장에 가까운 음반판고를 기록~



또한 일밤의 코너인 게릴라 콘서트에도 도전했는데 역대 도전 지역 중 제일 최악의 지역으로 뽑힌 울릉도가 선택되었다. ~당시 PD의 말로는 김현정 정도의 가수라면 울릉도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고~ 울릉도 인구 9천명 중 2천 관객을 목표로 잡았는데, 2106명의 관객을 동원해 울릉도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 후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음반에 정경화의 노래인 <나에게로의 초대>를 리메이크해 불렀는데, 당시 인기 음악사이트였던 <오투뮤직> 주간차트 1위에 오르고 음료광고에도 배경음악으로 삽입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4집앨범에도 수록되었다 <나에게로의 초대>는 김현정이 가수 데뷔전 오디션에서 불렀다고 알려졌으며, 지금까지도 각종 행사에서 <나에게로의 초대>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4집 타이틀곡 <떠난 너>

2001년 7월 발매된 정규앨범 4집 <떠난 너>는 그동안의 유로댄스 스타일을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기존 록 댄스곡에서 오리엔탈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전보다 부드러운 미디엄 템포 곡이었다. <떠난 너>는 임세현 작곡가가 만든 노래인데, 허준, 대장금 등의 사극 음악을 만든 사람이다. 김현정이 집 앞까지 가서 곡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떠난 너> 전주 부분에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속삭임이 화제가 되었는데 백마스킹으로 뒤집어보면 'mp3 다운로드 받지 말고 CD를 사서 들어달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 이 내용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현정 (Kim Hyun Jung) - 떠난 너 백워드매스킹 (2001년)

당시 MP3 파일이 활성화 되던 시점이기도 했고, 2000년에 발매한 김현정의 3집은 길거리에 파는 불법복제음반만 전국적으로 30만장이 판매되어 1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보도된 바 있다. 당시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너무 낮은 수준이였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던 MP3파일은 더욱 문제가 되었다. 더불어 <떠난 너>는 당시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던 벅스뮤직에서 일간차트, 주간차트 모두 1위를 섭렵했다. 김현정에게 돌아가는건 1원도 없음 2001년 9월 15일 MBC 음악캠프에서 1위를 차지했다.[19] 이 노래는 약 5년 후 김현정이 SBS X맨에 출연하여 비화를 밝혔는데,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작정하고 만든 곡이였다고 한다. <떠난 너>의 작사를 김현정이 했다. ~남자친구가 자신이랑 결혼하면 가수 관둘 수 있냐고 물어봐서 은퇴까지 고려했었다고 밝혔다~ [20]

4집은 원래 록댄스곡인 <놔>로 컴백하려 했지만 기존 컴백 예정 시기보다 약 2달가량 뒤로 미루고 전혀 다른 음악스타일인 <떠난 너>로 컴백했다. 당시 소속사인 "레볼루션 넘버나인"과 계약종료를 앞두고 발매된 음반인 만큼 김현정이 원하는 음악을 미뤄주기로 한 것이다. 결국 <놔>는 후속곡이 되었고, 선배 가수 김조한이 만든 <shining star>까지 총 3곡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 앨범을 통해 인기가 이전만 못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녀의 무기였던 가창력과 라이브 무대가 이러한 평을 잠재웠다. 연말에 서울가요대상에서 국내외 활발한 가수활동을 통해 가요발전에 기여 한것을 높이 사 '공로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당시 MBC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지 못한 가수는 수상하지 못했던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 4년연속 상을 수상했다. ~당시 4년 연속 MBC 10대가수가요제를 수상한 여자솔로가수는 김현정이 유일하다. 또한 연말 시상식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컨셉들을 선보였는데, 특히 온 몸에 검은 페인팅하고 공연을 펼쳐 팬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4집 활동 마무리 후 소속사 이적이 있었다. 당시 이적한 회사에 대해 팬들의 불만이 많았는데, 같은 소속사의 연예인이었던 장나라에게만 매니지먼트가 집중되어 있었던 모양새였고 이로 인해 김현정의 발라드 앨범이 취소되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데뷔한 신인 가수 혜령에 대해서도 지원이 없었음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새로운 기획사에서 준비한 5집 <단칼>은 2002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발매되었다. 음반을 발매 하자마자 당시 '한터정보시스템' 주간음반판매량 2위를 기록하였고 모든 방송에서 화려한 컴백무대를 가졌다. ~이 때 이전과 달리 살이 오른 상태로 컴백하여 논란 아닌 논란이 있었지만 인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칼>을 통해 당시 여자 댄스 가수 중 보기 드물게 정규 음반 5장에서 모두 1위하는 기록을 세웠다.


5집 타이틀곡 <단칼>

<단칼>의 원래 제목은 <작살>이였지만 김현정이 너무 제목이 세다고 생각해 직접 <단칼>로 순화했다고 한다. 이쯤 대중들 사이에서 많이 나온 말이 코요태와 음악색깔이 비슷해졌다라는 거다. 그녀의 댄스곡하면 록사운드가 가미된 파워넘치는 댄스곡이었지만 5집부터는 유로풍의 댄스곡만 가득했다. 후속곡 선정과 방송활동 부진에 대해 새로운 기획사에 대해서 당시 팬들의 반발이 컸고 하드록 풍의 곡인 <순종>을 후속곡으로 밀었을 때 기획사에서는 <현장>이라는 곡을 후속곡으로 삼았고 허리 부상으로 인해 그나마도 활동을 얼마 안 했다. 이 후 발매 예정이였던 발라드 음반은 출시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 ~기획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취소됐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이해 KBS 가요대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5년 연속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6집 타이틀곡 <끝이라면>

2003년 여름에 발매된 6집 <끝이라면>은 발표하자마자 당시 유일한 지상파 순위 프로그램이였던 MBC 음악캠프에서 초고속 순위상승으로 기록하면서 5위 권에 들었고 주간 방송횟수에서 2동안 1위를 하는 등 선전하였다. 하지만 기획사와의 갈등으로 음반 발매 2달 반만에 음반 활동이 조용히 마무리되었으며, 발라드 후속곡인 '그 놈의 결혼식'으로 짤막하게 활동했다. 그리고 이 때 케이블까지 이례없는 올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는데, MTV 라이브와우 라는 음악프로그램 녹화 당시 AR이 나오자 김현정이 MR로 틀어 달라며, 녹화를 중단했던 일화가 있다. 또한 뮤직뱅크 컴백무대에서 폭죽이 터졌는데, 이게 바지에 붙어서 엉덩이에 불이났었다고 기사화된 적이 있으며, 끝이라면 작사가가 M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사실 당시 매너지가 작사를 했다고 한다. 6집이 조용하게 마무리 된 후 연말 시상식 출연도 모두 거부했고 약 1년간 방송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4.2. 2004~2010년: 모험과 홀로서기

정규앨범 6집까지 대박과 중박을 기록하며, 여자솔로가수 중에서 세 손가락안에 꼽을 정도로 오랜 인기몰이에 성공한 김현정은 2004년 1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된다. 1인기획사의 시초라고 볼수있다. 2004년 9월 발매된 7집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생머리와 고음을 버리고 소울과 R&B 음악에 시도했다. 김현정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히트 댄스곡은 이젠 '추억 속의 댄스' 일 뿐이에요. 지금 트렌드와는 맞지 않은 부분이죠' 라면서 '이 음반은 이제 다른 발전의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라고 밝혔다.[21]


7집 타이틀곡 <B형남자>

창법도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창법에서 나름대로 그루브를 살린 창법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지만 타이틀곡 <B형 남자>에서 B형 남자 자체를 띄우는 데만 성공했고 정작 순위제를 유일하게 실시한 음악캠프에서는 20~30위 권에 턱걸이하면서 노래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그녀가 발표한 <B형 남자>는 9시 뉴스데스크에 집중 보도가 되는가 하면, MBC 라디오 주간 방송횟수 1위, SBS 라디오 주간 방송횟수 1위를 차지하는 등 어느 정도의 관심과 이슈를 일으키는데 한 몫했다. [22] 타이틀곡의 경우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렸던 곡이었으며 오히려 <태양에너지>, <Like a virgin>, <Don't you follow me> 등등 앨범 수록곡으로 타이틀을 하는 게 어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7집 후속곡 <태양 에너지>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 후속곡은 <태양 에너지>를 선택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지만 타이틀곡에 비해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 항상 고음의 노래만 부르던 그녀가 가스펠풍의 노래를 불러서 김현정 노래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태양 에너지> 노래는 김현정 본인이 직접 작사한게 포인트이며, 뮤직비디오를 모두 한컷 한컷 사진으로 찍은 후 이를 연결시켜 완성도면에서 컬리티가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7집은 너무 갑작스런 변신은 독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성적이었지만, 그녀 기존과는 반대되는 스타일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앨범이었기에 나름대로 의미 깊은 앨범이다. 단지 자연스럽게 변화해나갔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음반은 충분히 명반으로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R&B 스타일을 한국으로 살짝 어레인지하며 접목시킨 곡이 많다.

7집의 실패로 인해 김현정은 다시금 유로댄스에 안주하게 되며, 이는 김현정의 음악을 음악계의 트렌드로부터 떨어뜨려놓았다.


댄스 리메이크 <Funky Town>

2005년에는 컴필레이션 <Fun Town 20>을 발매. 과거의 70~80년대 히트곡을 리메이크한다는 콘셉트로 Earth Wind&Fire, 계은숙, 김현철, 김건모, 휘트니 휴스턴, 외국곡 번안곡 등 상당히 넓은 범위를 자랑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타이틀 곡을 세 곡을 밀었는데 <립싱크(Lipps Inc.)>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디스코풍의 곡 <Funky Town>과 다시금 유로댄스로 돌아간 <아파요>, <번뇌>로 활동했으며 7집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데 성공했다.


댄스 리메이크 <아파요>

뮤직비디오로 <Funky Town>을 선보이고 방송에서 <아파요>, <번뇌>를 매쉬업해서 선보였으나, <아파요>의 반응이 너무 좋아 예정에 없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여 <아파요>로만 활동을 했다. 이 앨범에 전체 프로듀싱을 코요태의 히트곡을 만들어 낸 이용민이 맡았는데, 김현정 팬들 사이에선 5집부터 이어진 코요태풍의 댄스음악으로 인해 <그녀와의 이별>, <되돌아온 이별>, <멍> 등의 록댄스곡을 만든 최규성 작곡가를 재영입해야 한다는 소리가 거세졌었다. 한편 김현정은 이 앨범을 통해 시애틀 단독 콘서트를 한적이 있으며, 가수데뷔 후 처음으로 섹시컨셉으로 활동을 했다. ~의상이 전부 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2006년에는 원래 정규앨범을 발표하려 했지만 건강악화가 심해져 바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정규앨범 대신 댄스곡들만 넣은 <Dance With Hyun Jung>을 발표했다. # 타이틀곡 <굳세어라 현정아>는 원래 <믿고 속고 아프고>라는 제목이였지만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한 김현정을 응원하기 위해 팬들이 <굳세어라 현정아>라고 플랜카드를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여기에 감동을 받아 노래 제목을 변경했다고 한다.


7.5집 <굳세어라 현정아>

당시 KBS 뮤직뱅크 에서는 이례적으로 방송출연을 하지 못하는 김현정의 <굳세어라 현정아>의 뮤직비디오를 엔딩으로 편성하여 방송을 내보냈다. 파급력이 엄청났던 H.O.T. 혹은 서태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였는데, 여가수 중에선 음악프로그램에 뮤직비디오가 엔딩으로 방송된건 최초였다. 당시 김현정의 가수로서 입지를 증명해준 순간이랄까이 앨범은 발표된지 3개월 후에야 비로소 활동을 시작했는데,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 빅마마의 <체념>을 부른적이 있다. 김현정이 자신의 발라드곡이 아닌 타 가수의 발라드곡을 가창한건 2000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후 무려 6년만이였다. 링거를 맞고 열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찬을 받아 각종 포털사이트에 도배가 되었다. 이 날 앨범 타이틀곡 <굳세어라 현정아>와 히트곡인 <멍>도 같이 불렀지만 오로지 <체념>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체념 반응에 힘입어 러브레터에 재출연을 했는데 자신의 타이틀곡 영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2007년 청바지 사업을 통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해 대박을 터뜨렸지만 가수로서 힘든시기를 맞이해야 했다. 이 시기에 성대결절을 한차례 겪었는데 의사가 가수 생활이 어려울거라고 수술을 권했지만 수술을 거부했다. 이 후 판소리를 통하여 발성에 무리가 가지 않는 창법을 연마하게 되었다.


8집 <살짝 쿵>

2008년 새로운 음악 스타일의 8집을 발매했는데, <In and Out>이라는 콘셉트로 발라드와 모던 록을 시도했다. 기존 댄스음악이 아닌 록 스타일의 타이틀곡 <살짝 쿵>과 록발라드인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를 선보였다. 이때 김현정은 이전에 비해 더 날씬해지고 더 어려진 모습으로 나와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예능프로와 음악프로에 많이 출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팬들의 의견을 수렴해 과거 <그녀와의 이별>, <되돌아온 이별>, <멍> 등의 김현정표 댄스곡을 만들어 낸 최규성 작곡가와 함께 작업을 했지만 이전과 같은 김현정표 댄스곡이 아닌 전혀 다른 결과물의 노래가 나와 실망감을 주었다.


성대결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김현정이란 가수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2009년에는 SBS 골드미스가 간다의 삽입곡 <골드미스가간다송>을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고 스타화보도 찍었다. 백상예술대상에 시상자로 참석도 하였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방송활동 보다는 주로 공연 위주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4.3. 2011년~: 활동 영역을 넓히다



디지털 싱글 <1분 1초>

2011년에는 3년만에 신곡인 <1분 1초>를 발표했다. 각종 음악 방송 순위와 음원 순위가 10위 권을 기록했으며, 오래된 데뷔년차에 비해 선전한 성적이었다. 다만 음악성은 2000년대 초반의 나이트 댄스에 안주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가온차트에선 디지털차트 2011년 11주차 18위, 다운로드차트 2011년 11주차 14위가 최고 순위이다. 이 시기에는 뮤지컬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뮤지컬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뮤지컬명은 <드림헤어>이다.

2012년에는 본격적으로 연기자로 변신했다. 대왕의 꿈에서 길달의 호위무사인 묘랑의 배역을 받아 비록 조연이지만 열연했는데 포스가 엄청났다. 본인 스스로도 매우 험상궂게 보인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이후 후배가수 노블레스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초고음의 노래를 소화했다. 이후 청춘나이트 전국 투어 콘서트에 참여해 공연을 펼쳤다.

나이 40을 앞두고 2014년 11월에는 무한도전 특별기획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등장해 제2의 전성기라 할 만큼 녹슬지 않은 가창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최근의 방송 트렌드에 쉽게 따라가지 못하며 여자 냉동인간 컨셉을 얻기도 하는 등 의도치 않게 예능감도 보여줬다. 필름 끊기기 전에 빨리 해야지[23] 본 무대에서 명불허전 가창력을 보이자 어린 팬이 김현정을 몰라보고 립싱크 잘 한다고 말하다가 올드 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다고 한다.


미니앨범 <Attention>

이후 2015년 2월 23일에 싱글 곡을 발표했으며, 6월엔 데뷔 18주년 기념음반과 tvN 아침 드라마 울지 않는 새OST를 발표했다. 김현정은 데뷔 이후 최초로 자신의 자작곡 Attention(너만 있으면 돼)을 18주년 기념음반에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김현정의 자작곡은 과거 2집과 3집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활동은 한 적이 없다.

2016년에는 국내외 공연활동을 펼쳤는데 8월에는 필리핀에서 열린 "코리안 레전드 콘서트",10월에는 잠실 학생 체육관에서 열린 "오카패밀리콘서트"에도 출연하여 공연을 펼쳤다. 또한 복면가왕사랑은 관람차를 타고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1라운드에서 위 아래 위위 아래 바이킹과 같이 마야의 '나를 외치다'를 불렀으며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와 겨룰 때 부른 곡은 진주의 '난 괜찮아'였다. 최근에 담석 수술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이후 복면가왕 46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나왔을 때 동명이인이자 스페이스 에이 출신인 주전자부인 펄펄 끓었네가 본인의 노래인 '멍'을 2라운드에서 부르는 묘한 광경을 봤다.[24] 2017년 김순옥 작가의 SBS 주말 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 OST에 참여했으며,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 OST에도 참여했다.

2018년에는 MBN에서 방영한 비행소녀에 출연하여 일상을 공개했는데, 달라진 모습 때문에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침에 얼굴이 부은 상태에 완전 쌩얼상태로 촬영이 시작됐다고 언급했다. 또한 데뷔후 계속 53kg대를 유지해오다가 빈혈과 영양실조 등이 겹쳐 건강악화로 인해 장기간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었다고 말하며, 건강회복을 위해 보약류를 섭취하여 현재 살이 급격하게 오른 상태라고 말했다. 이후 KBS 뮤직뱅크 20주년 특집방송에 마마무솔라와 함께 "그녀와의 이별" 듀엣 무대를 가졌는데, 전성기때의 기량과 큰 차이없는 라이브 실력과 날씬한 몸매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심지어 이 날 방송은 오전 9시에 사전녹화한걸로 가수들이 노래하는데 쥐약이라고 말하는 시간대였다. 지금까지도 많은 행사와 축제에서 볼 수 있는데, 전성기때와 변함없는 몸매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불후의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전설로 출연했는데, 박봄이 그녀와의 이별을, 에이비식스 멍, 정유지가 혼자한 사랑을 불렀는데, 김현정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장면까지 나왔다. 우승은 정유지가 했는데, 김현정의 메가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그녀와의 이별', '멍'이 아닌 무려 1집 후속곡 '혼자한 사랑'으로 우승했다. ~김현정 자체도 방송에서 히트곡 메들리라 하면 항상 그녀와의 이별과 멍만 불러서 이 두곡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사실이다. 다른 히트곡을 부르는걸 기피하는 경향도 있어보인다.~

그녀와의 이별 라이브 (2019년)
되돌아온 이별 라이브 (2019년)

5. 가수로서 역경과 슬럼프

가수 활동이 매우 순탄했던 김현정에게도 어려운 시기들이 존재했다. 2006년 식도염에 간기능 장애, 위궤양 그리고 2007년 성대결절까지 겪으면서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한다. 2008년 인터뷰에서 그녀는 불면증이 생기니 체력이 떨어졌고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48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어떤 때는 3일간 한숨도 못 잤어요. 라고 밝혔으며, 쉽게 살이 찌는 체질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팬들이 김현정에게 원하는 세가지 중 첫번째가 다이어트였고 살이 조금만 쪄도 방송 화면에 덩치 있게 나와 더욱 혹독하게 체중 감량을 해야만 했다. [25] 4년만에 새앨범을 발매했던 2015년 인터뷰 에서는 잊혔다는 생각에 은퇴까지 고려했었다고 밝혔다.[26]
"사실 가수를 그만두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앨범이 생각보다 잘 안됐다거나 오래 갈 줄 알았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가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됐고 그런 것들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가수 활동이라는 게 나만 잘한다고,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사실 팬들이 날 외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팬들이 날 잊은 게 아닐까, 가요계에서 잊혀진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때 더이상 가수를 하지 말아야하나, 가수로서 살아가기 힘드니 진로를 바꿔야하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마음 속으로는 난 가수 아니면 할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최근 가수 활동뿐 아니라 연기, 뮤지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수이지만 다양한 것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참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이라고 말했다.

2015년 MBC 사람이 좋다에선 과거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으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27]

6. 비하인드 스토리

김현정은 2014년 TVN 택시에 출연하여 전성기 시절 재벌가 회장이 내가 방송에 나온 모습을 보고 소속사로 되게 많은 금액을 주면서 골프 한 번 치자고 요구 한적 있다고 발언했다. ~당시 김현정의 소속사 사장은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면서 거부했다고~ 이후로는 매니저에게 재벌 자제한테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28] 김현정은 가수외에도 만화 스토리작가로도 활동했는데, 만화가 박무직과 함께 T.R.Y라는 만화책을 발간했다. 가수를 꿈꾸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인데, ~대기실에서 싸우는 장면도 담겨져 있어 김현정 본인 일화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김현정은 2002년 모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버릇없는 후배와 다툰 얘기를 한적이 있다. 김현정이 먼저 공손하게 처음보는 후배에게 인사를 했지만 후배가 반말로 인사한 사건이다. ~당시 이 방송후 김현정에게 그 후배가 누구냐고 묻는 문자메세지가 엄청 많이 도착했다고~

7. 팬클럽

  • 김현정은 데뷔하자마자 PC통신에 팬클럽이 형성되었고 1999년 1월 제1기 <I.M.P> (lt's my pleasure의 약자) 라는 공식 팬클럽 명칭을 걸고 여성솔로가수로는 최초로 팬클럽 창단식을 가졌다. 이날 사회는 개그맨 서경석이 맡았다.
  • 당시 여성솔로가수로는 보기드물게 전국적으로 팬클럽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각 지방마다 팬클럽 임원들이 존재했다.
  • 매해 생일파티와 데뷔기념일 파티를 개최하였고 2000년 6월에는 제 2기 팬클럽 창단식이 열렸고 이날 사회는 개그맨 윤정수가 맡았으며, 2002년 11월 새로운 팬클럽 명칭인 <LONG> 제 3기 창단식을 끝으로 공식 팬클럽을 모집하지 않고 있다.
  • 참고로 3기 창단식에는 개그맨 하하가 사회를 맡았다. 김현정의 공식 팬클럽 풍선색은 빨강색으로 <김현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8. 디스코그라피

발매일 제목 분류 활동곡 음반 판매량
1997.02.13 Legend 정규1집 그녀와의 이별 -
1998.06.03 Shocking 정규1집 그녀와의 이별, 혼자한 사랑 552,639장 출처
1999.02.22 A Seagull Of Dream 정규2집 되돌아온 이별, 실루엣, 자유선언 570,000장 출처
2000.05.21 The Third Eye 정규3집 멍, 너 정말, 거짓말처럼 45만장(추정치)
2000.11.21 Best of Best 1020 mix 베스트 히트곡 리믹스 70,000장
2001.07.25 Wild Beauty 정규4집 떠난 너, 놔, Shining Star 240,000장 출처
2001.08.27 Amy Kim Forever 해외 Forever 300,000장
2002.08.01 Diet 정규5집 단칼 180,000장
2003.07.11 Hit For Six 정규6집 끝이라면 53,426장
2004.09.23 I Love Soul 정규7집 B형 남자, 태양 에너지 17,477장
2005.06.23 Fun Town20 리메이크 Funky Town, 아파요 38,671장
2006.05.17 Dance With Hyun Jung 7.5집 굳세어라 현정아, 더잘해봐 11,232장
2008.06.12 In N Out 정규8집 살짝쿵,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7,000장
2009.04.02 골드미스가 간다 싱글 골드미스가 간다 송 -
2011.02.25 One minute One Second 싱글 1분 1초 -
2015.02.23 빈말 싱글 빈말 -
2015.05.14 작살 싱글 작살 -
2015.06.26 Together Forever 18 미니 Attention(너만 있으면 돼) -
  • OST
    • 영화 용가리 삽입곡 '폭군을사랑한여자' (1999)
    • MBC 수목드라마 네자매 이야기 삽입곡 '인연' (2001)
    • 영화 프로젝트X 삽입곡 '서로다른길' (2003)
    • MBC 정전50주년 특집극 신견우와직녀 삽입곡 '첫날' (2003)
    • 'SBS' 수목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 삽입곡 '그녀' (2004)
    • 골드미스가 간다 삽입곡 '골드미스가간다송' (2009)
    • 창작뮤지컬 드림헤어 OST (2013)
    • TVN '울지 않은 새' 삽입곡 '울지 않아' (2015)
    • SBS '언니는 살아있다' 삽입곡 '운명이 날 속여서' (2017)
    • TVN '막돼먹은 영애씨 16' 삽입곡 'star' (2017)
  • 참여
    • 이글파이브 1집 '우리들의 천국' (1998)
    • 리메이크 OP.1 '나에게로의 초대' (2001)
    • Happy Christmas Last Christmas 'Feliznavida' (2001)
    • 장나라와 친구들 'AND' (2003)
    • 아름다운 날들 '찬바람이 불면' (2004)
    • 소울스타 '바보' (2005)
    • 스터츠 'Rain Bow' (2008)
    • 신건 Love & Hate Pt.2 '사랑에 지치다 (2008)
    • 노블레스 'Liar' (2012)

9. 방송

방송 연도 방송사 프로그램명 분류 비중 비고
1998년 MBC 남자셋 여자셋 시트콤 단역 특별 출연
1999년 MBC 스타다큐 다큐 주인공 제91회 주인공
1999년 SBS 행진 시트콤 주연 대학생 역할로 출연
1999년 HBS 김국진의 골프클리닉 스포츠 진행자 김현정의 초보탈출이란 코너 진행
1999년 MBC FM 정오의 희망곡 김현정 입니다[29] 라디오 진행자 청취율 1위, 라디오부문 우수상 수상
2000년 KBS2 일요일은 즐거워 출발! 드림팀 예능 멤버 제1대 여자드림팀 멤버
2000년 KBS 빅쇼 2000 예능 출연자
2000년 MBC 뉴 논스톱 시트콤 단역 특별 출연
2001년 MBC 목표달성 토요일 동거동락 예능 멤버 제2기 멤버
2001년 KBS2 일요일은 즐거워 출발! 드림팀 예능 멤버 제2대 여자드림팀 멤버
2001년 KBS FM 집중탐구 대륙의 유행가요 라디오 진행자 특집 프로그램
2001년 MBC 일밤 사랑의 게릴라 콘서트 예능 주인공 울릉도편
2001년 MBC 빅스타 스페셜 예능 출연자
2005년 MBC 일밤 행복한 점심 주먹밥 콘서트 예능 주인공
2005년 MBC 프란체스카 시트콤 단역 특별 출연
2008년 OCN 과거를 묻지 마세요 영화 단역 특별 출연
2008년 KBS2 해피선데이 불후의 명곡 예능 주인공 제 45대 선생님
2008년 SBS 애자 언니 민자 드라마 단역 특별 출연
2008년 MBC드라마넷 슈퍼스타 공작소 예능 멤버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
2011년 MBC에브리원 러브 추격자 예능 주인공
2011년 MBC에브리원 아이러브펫 스타 펫시터 예능 주인공 곰 키우기
2012년 KBS1 대왕의 꿈 드라마 조연 묘랑역으로 출연
2013년 MBC퀸 토크콘서트퀸 예능 주인공
2016년 SBS 영주 드라마 단역 가수역으로 출연
2016년 채널A 개밥주는남자 예능 주인공 스페셜 게스트
2018년 MBN 비행소녀 예능 멤버 비혼주의 멤버로 출연

10. 수상 경력

  • 1998년 제13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본상
  • 1998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 1998년 MBC 가요제전 30대 미만이 뽑은 인기 가수상
  • 1998년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 1998년 제9회 서울가요대상 신인 가수상
  • 1998년 KMTV 가요대전 최우수 신인 가수상
  • 1998년 KMTV 가요대전 인기 가수상
  • 1998년 PD 연합회 올해의 베스트 가수 부문
  • 1998년 PD 연합회 올해의 베스트 가요 부문
  • 1999년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디스크 본상
  • 1999년 KBS 가요대상 청소년부문 올해의 가수상
  • 199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음악 프로듀서들이 뽑은 올해의 가수상
  • 1999년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 1999년 KMTV 가요대전 가수 대상
  • 1999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녀청소년가요부문
  • 2000년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디스크 본상
  • 2000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DJ부문 여자 우수상
  • 2000년 KBS 가요대상 10대 가수상
  • 200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대 미만이 뽑은 10대 가수상
  • 2000년 SBS 가요대전 10대 가수상
  • 2000년 KMTV 가요대전 여자 본상
  • 2000년 i-tv 한국 최고 인기 연예대상 10대 가수상
  • 2000년 N-TV 10대 가수상
  • 2000년 연예정보신문 10대 가수상
  • 2000년 미스코리아 녹원회 최고의 여가수
  • 2001년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신세대 가요 가수상
  • 2001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1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대이상이 뽑은 10대 가수상
  • 2001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1년 서울가요대상 최연소 공로상
  • 2001년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여자솔로부문 최우수 뮤직 비디오상
  • 2001년 KMTV 가요대전 본상
  • 2001년 i-tv 한국 최고 인기 연예대상 청소년부문 인기 가수상
  • 2001년 제35회 가수의 날 최고의 가수상
  • 2002년 KBS 가요대상 본상
  • 2002년 SBS 가요대전 본상
  • 2005년 제11회 중국유행가요연두시상식 외국인부문 최우수댄스상
  • 2005년 홍콩음악채널 [V] 한국 대표 아티스트 선정
  • 2005년 우먼즈 넘버 원 한국 대표 여가수 선정
  • 2006년 네티즌 연예대상 9월 MVP 여자가수상 부문
  • 2013년 MBC QueeN 퀸즈어워드 신인배우 부문
  • 2018년 제2회 KY스타어워즈 노래방애창곡 부문

11. 공중파 1위 기록



그녀는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여자솔로가수 중에 제일 많은 1위를 기록했다. 놀라운 건, 동시대 최고의 가수들과의 경합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매우 많았다는 점이며 그 많은 1위를 달성하면서 단 한번도 빈집털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그녀가 1위를 하면서 이긴 가수들이다.(위의 동영상 기준)
  • 젝스키스: '그녀와의 이별'로 '로드 파이터'를 이겼다.
  • 핑클: '그녀와의 이별'로 '내 남자친구에게'를 이겼다.
  • NRG
  • 엄정화 '혼자한 사랑'으로 '포이즌'을 이겼다.
  • 박지윤
  • 김민종 '되돌아온 이별'로 '비원'을 이겼다.
  • 지누션
  • 컨츄리꼬꼬: '멍'으로 '오!가니'를 이겼다.
  • J: '멍'으로 '어제처럼'을 이겼다.
  • 신화 '멍'으로 'Only One'을 이겼다.
  • 이정현 '멍'으로 '너'를 이겼다.
  • 백지영 '멍'으로 'sad salsa'를 이겼다.
  • 홍경민: '너 정말'로 '흔들린 우정'을 이겼다.
  • '단칼'로 '안녕이란 말대신'을 이겼다.

12. 광고모델

  • 1998년 ~ 1999년 의류 브랜드 니켄니쯔 지면모델
  • 1999년 유니참 쏘피 CF 모델
  • 1999년 ~ 2000년 비바칼라 웰라 CF 모델 이후 브랜드파워 1위 기록 [30]
  • 2000년 초고속 인터넷 신비로 샤크 CF 모델
  • 2001년 코니카 필름 CF 모델
  • 2001년 의류 브랜드 티피코시 지면모델 전년도 대비 매출상승 기록[31]
  • 2005년 바이더웨이 <김현정 새싹 샌드위치> 출시
  • 2007년 에이미러브스진 청바지[32] 런칭 홈쇼핑 40분만에 매진기록[33]

13. 기타

  • 가수 이외에도 청바지 전문업체인 에이미 러브스 진 애견전문업체라는 기업을 운영했었다.
  • 큰 체격, 강인한 인상, 용맹한 성격 등과는 대조되게 체력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전성기 시절에도 스케줄이 잇따라 겹치게되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고 너무 많은 스케줄로 인해 교통사고가 잦았다. 강원래가 교통사고를 당하던 그 날도 교통사고로 입원하기도 했다. 빈혈과 영양실조에도 걸려 고생했다.
  • 1남 2녀 중 차녀인데, 김현정의 남동생은 키가 193cm에 달한다고 한다.[34]
  • 평소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자주 했으며 그 인연인지 <T.R.Y>라는 순정만화의 스토리를 쓴 적도 있다. 그림작가는 박무직.
  • 바이크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 반영하듯 김현정이 처음으로 연기를 했던 청춘시트콤 <행진>에서는 시가 1,300만원짜리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니는 장면도 찍었다. 그 이후에도 가끔 연기를 할 때는 거의 항상 바이크를 달고 등장했다. 6집 <끝이라면> 뮤직비디오에도 바이크를 타는 장면이 들어갔고, 여자연예인으로는 최초로 오토바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 워낙에 바이크 덕후인지라 태어나서 딱 한 번 기행을 저질렀다. 김현정은 전술한 바와 같이 위로는 언니,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는데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자기 언니가 돼지 저금통에 모아둔 돈을 돼지 저금통째 훔쳐서 그걸로 오토바이를 사다가 타고 다녔다고... 이 일화는 가족오락관에서 김현정 본인이 언급했다.
  • 외모와는 달리 달려라 하니에 등장하는 고은애[35]의 성대모사를 기절할 정도로 잘해서 팬들을 충공깽으로 빠뜨린 적이 있다.
  • 하지만 고은애 성대모사가 아니라 평소에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목소리가 상당히 매혹적이다. 이 덕분에 정오의 희망곡은 김현정이 담당하던 1999년부터 2001년까지가 최고의 리즈시절이 되었다.
1999년도 당시 촬영한 김현정의 Viva Color 염색약 CF. 김현정의 평소 말할 때의 목소리를 알 수 있다.
  • 참고로 그녀의 히트곡 가사를 자세히 보면 남자의 잘못된 행동을 조롱한다거나 남자가 바람 피우는 것에 대해 여자가 비난조로 남자의 행동을 비판하는 게 많다. 유일하게 혼자한 사랑만 예외다.
  • 김창렬임창정이 김현정을 차지하려고 둘이 현피까지 떴는데, # 정작 둘 다 각자 다른 사람들과 결혼했다. 근데 임창정이혼했다가 더 어린 여성과 재혼했다. 김현정과 임창정은 서로 임스타, 김스타라고 부를 만큼 매우 절친한 사이라고
  • 김현정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무지막지한 곡들뿐이라 도전 1000곡에서는 아예 끝판왕으로 군림했었고 이런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노래들을 불러 왔던 김현정인지라 복면가왕이나 히든싱어 등에서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2016년 11월 19일 복면가왕에는 실제로 출연했다.
  •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2008년과 2016년에 시구자로 나선 바 있다.[36] 더불어 과거 98한국시리즈에서 애국가를 제창했고 1999년에도 시구를 한바 있다.
  • 스페이스 에이의 보컬 이름도 김현정이다. 게다가 동갑내기(정확히는 빠른 1977년생)인 데다가 가창력이 좋다는 게 공통점이며 2집 이후 연예계를 떠나 지금은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 중이다. 단, 이쪽은 예명이다. 참고로 우주소녀 멤버인 설아는 본명 뿐만 아니라 한자까지도 동일하다.[스포일러]
  • 방송에서 PANTERA의 Cowboys from hell을 커버한 적이 있다.


(34초 부터 1분 1초까지)


[1] MBN 비행소녀 27화에서 과식한 후 회개기도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2] 김현정,한국 여가수 최초 시애틀 단독 공연 - 쿠키뉴스, 2005년 11월 7일[3] god박준형무한도전에 나와서 냉동연예인 컨셉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김현정 역시 무한도전에 출연해 90년대에서 멈춘 듯한 언행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12월 20일, 무한도전에서 그녀의 후계자가 나타났다.[4] 섹션 김현정 토토가 이후 하루 8건 행사 섭외 - 더팩트, 2015년 2월 22일[5] 이는 김현정의 창법이 진성을 활용하는데 기인한다. 흔히 말하는 굵고 높은 음역대는 주로 남성들이 구사하는 음역대인데, 김현정은 이를 본인의 가창력으로 구현했기 때문.[6] 2013년 기준 한국의 20대 여성 평균 신장이 161cm다. 평균적인 여성 신장보다 10cm 이상 큰 키라는 얘기. 이 정도면 남자 평균 신장과 거의 같은 수치이다. 심지어 2013년 기준으로 30대다. 지금 기준으로도 큰데, 데뷔 당시에는 어마무시한 수준. 참고로 이정도면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연습생 중 최장신인 김도연과 같은 신장이다.[7] 핑클옥주현도 키가 173cm이다.[8] '올드스쿨' 김현정 "97년 데뷔 후 방황..코러스·강사생활로 버텨" - 부산일보, 2017년 5월 9일.[9] 이 때 김현정은 뽀글이머리를 긴 생머리로 바꾸고 창법도 있는대로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좀더 부드럽게 바꾸고 화장도 아줌마 화장이 아닌 세련되게 바꿔서 김현정의 원래 미모를 드러나도록 고쳤다. 복장 역시 아무렇게나 입다시피한 초판과는 달리 세미정장으로 바꿨다.[10] 참고로 남성 솔로 1위는 김종환. 남성 솔로 1위임과 동시에 그 해에 연간 음반판매량 1위이기도 했어서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강력한 대상후보였던 H.O.T.를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11] 둘 다 똑같이 12시부터 14시까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므로 둘 중 하나만 청취할 수 있다는 점.[12] 김현정이 등장해서 깨알같은 재미를 준 장면 중 하나가 송은이가 김현정의 군기를 잡으려고 할 때마다 한 말이 "쬐끄만 게(...) 까불고 있어" 였다. 이게 코미디가 된 이유는 김현정은 꽤 장신이지만 송은이는 단신이었기 때문. 김현정은 173이고 송은이는 151이니 둘의 키 차이는 무려 22cm다.[13] 사랑의 유람선’공연 -정상급가수 대거 출동 - 문화일보, 1999년 3월 23일[14] 여가수도 음반 한장 뜨면 수억원 거뜬 - 동아일보, 1999년 9월 29일[15] 동영상대로 설명하자면 엄정화, 박지윤, 이정현, 핑클, S.E.S, 김현정 등이 모두 가도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서는 그냥 박수만 치고 끝났는데 유독 김현정이 나올때만 고함을 지르면서 "이야~ 쟤 누구냐? 존나 쩔어!" 라며 열광했다. 여타의 가수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박력을 김현정을 갖고 있었고 김현정만 압도적인 장신인 게 원인이였다고 한다.[16] 대표곡 지누션 <말해줘> 피처링, <초대>, <POISON>, <몰라> 등이 가요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17] 그래서 골수팬 중에는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김현정의 라이벌 매치로 소찬휘보다 엄정화를 우선적으로 섭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평도 있다.[18] 한국대중문화 아시아 시장 공략 안팎 - 한국경제, 2001년 5월 4일[19] 다만, 이 때는 9.11 테러 사건으로 인해 결방되면서 실제 상을 받는 장면은 없었다.[20] 김현정 "연인 때문에 은퇴 생각한 적 있다" - TV리포트, 2006년 11월 27일[21] 김현정 7집 앨범엔 김현정이 없다 - 해럴드경제, 2004년 10월 7일.[22] "바람둥이 B형 남자" 스크린 유혹 - 노컷뉴스, 2004년 11월 14일[23] 김현정의 주 활동 시기는 99년~2000년대 종반이었으므로, 시대를 고려할 때 필름 발언은 준비된 대본 내지는 예능용 멘트일 가능성이 높다.[24] 다만 이 사람은 예명을 사용한다.[25] 가수 10년 차 고비 혹독히 앓고 돌아온 김현정의 변신 - 레이디경향, 2008년 7월 1일.[26] 김현정 "잊혀졌다는 생각에 은퇴 고민도 해봤지만 - 뉴스엔, 2015년 7월 8일.[27] 김현정, 90년대 최고 ‘여가수’ 시절 너무 ‘그리워’… ‘다 돌려놔’ - 톱스타뉴스, 2015년 1월 22일.[28] 택시 김현정 과거 전성기 시절, 기업 회장이 거액의 돈 주며 - 뉴스웨이, 2014년 11월 26일.[29] 토토가의 여파로 여기저기서 방송활동을 할 당시 써니의FM데이트에 출연했을때 당시 김현정이 진행한 마지막 정오의 희망곡 방송분을 들려주기도 했다, 김현정 본인은 약 15년만에 본인 라디오를 듣다보니 기억을 더듬어가며 들어야했다.[30] 웰라 비바칼라 브랜드 파워 1위 - 장업신문, 2001년 4월 5일[31] 티피코시 중소도시 점당 월 6천만원 - 패션비즈, 2001년 12월 6일[32] 장수돌침대처럼 자기가 차린 회사의 광고모델을 했다.[33] 가수 김현정 청바지 사업 대박 홈쇼핑 첫 방송 40분만에 매진 - 한국경제, 2007년 9월 21일[34] 참고로 가수 태우 김태우가 193cm이다.[35] 홍두깨의 아내로 엄청 뚱뚱하고 못 생겼다. 전담 성우는 지금은 활동을 중단한 김성희.[36] 그리고 그 두 경기 모두 두산이 승리했다. 승리요정?[스포일러] 또한 이 두 사람 모두 복면가왕에 한 적이 있으며 모두 같은 성적에다가 가왕이 바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참고로 스페이스 A 보컬은 그녀가 판정단으로 나왔을 때 히트곡인 '멍'을 2라운드에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