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20:24:30

김선우(야구선수)


파일:Semi_protect2.png   가입 후 15일이 지나야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파일:MBC.png야구 중계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2px; margin-bottom:0px"
진행자 김나진 한명재 정병문 정용검 김수환
파일:MBC.png 파일:mbcsports2019-2.png 파일:mbcsports2019-2.png 파일:mbcsports2019-2.png 파일:mbcsports2019-2.png
해설자 허구연 박재홍 정민철 양준혁 김선우 이상훈 심재학
파일:MBC.png
파일:Logo_MBCSportsPlus_2019.png
파일:mbcsports2019-2.png 파일:MBC.png
파일:Logo_MBCSportsPlus_2019.png
파일:mbcsports2019-2.png 파일:MBC.png
파일:Logo_MBCSportsPlus_2019.png
파일:mbcsports2019-2.png 파일:mbcsports2019-2.png
}}}}}} ||
파일:external/file.mk.co.kr/2012122701001165800057292.jpg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파일:external/www.donga.com/0318_sunny.jpg 파일:external/ksilbo.co.kr/hhhghgh.jpg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파일:external/mlb.mlb.com/MV97GVCJ.jpg
김병현과 같이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시절.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164248_700.jpg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external/dimg.donga.com/61821520.4.jpg
LG 트윈스 시절.
이름 김선우(金善宇)
생년월일 1977년 9월 4일 ([age(1977-09-04)]세)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서울 내발산초 - 신월중 - 휘문고 - 고려대(중퇴)[1]
가족 이종사촌 2PM 준호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고졸우선지명 (OB)
199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BOS)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 (2001~2002)
몬트리올 엑스포스-워싱턴 내셔널스 (2002~2005)
콜로라도 로키스 (2005~2006)
신시내티 레즈 (2006)
두산 베어스 (2008~2013)
LG 트윈스 (2014)
해설위원 MBC 스포츠+ 해설위원 (2015~)
등장곡 두산 시절
Kelly Clarkson - 《Long Shot》
Papa Roach - 《Last Resort》
Globus - 《Europa》 [2]
LG 이적 후
David Guetta - Titanium (feat. Sia)
종교 개신교
1994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 MVP
김수관
(경북고등학교)
김선우
(휘문고등학교)
김병현
(광주제일고등학교)
2011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선우(두산 베어스) 박석민(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등번호 32번
양의지(2006~2007) 김선우(2008~2013) 김재환(2014~ )
LG 트윈스 등번호 32번
최동수(2012~2013) 김선우(2014) 김재성(2015)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메이저리그 시절2.3. 두산 베어스 시절
2.3.1. 2010 시즌2.3.2. 2011 시즌2.3.3. 2012 시즌2.3.4. 2013 시즌
2.4. LG 트윈스 시절
3. 해설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소속의 투수. 現 MBC SPORTS+ 해설위원.

두산 시절에는 투수조 조장을 맡아 왔으며, 주전 라인업 중 나이 30대 이상 선수가 거의 없는(특히 투수) 두산 베어스의 구심점 역할 또한 수행했다.고려대학교 시절 별명이 칠봉이였다 카더라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휘문고 시절에는 혼자서 청룡기 우승(1994년)[3]을 이끌 만큼 능력있는 초고교급 에이스였다. 청룡기 대회에서 7경기를 완봉승을 거두어 칠봉이라고 불리었다. 이 해 세계 청소년대회에서 2학년으로는 유일하게 발탁되어 우승 멤버가 되었다.

1996년 신인 지명 때 OB 베어스가 고졸우선지명을 했지만, 휘문고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원하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로 진학하였다. 사실 LG 트윈스에서 먼저 김선우의 아버지와 접촉한 뒤 계약금을 제시하였고 당시 LG의 광팬이였던 김선우 역시 LG에 바로 입단하길 희망했지만, 아들이 대학을 나오기를 희망했던 아버지의 강경한 반대로 무산되었다.(당시 3억 5천을 받은 박명환이 동기였단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박명환보단 더 많은 계약금을 제시받았을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엘선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4] 그리고 개막전에서 김선우는 두사엘보를 시전하며 엔젤선우로...

고려대학교 1학년 때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조금 부진했다. 허나 199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1선발로 맹활약하였다. 여담으로 이 때 투수진이 후덜덜한데 1선발 김선우, 2선발 서재응, 3선발 김병현, 원 포인트 릴리프 좌완 투수 최희섭(...)이쯤되면 후덜덜한게 아닌 깡패수준

2.2. 메이저리그 시절

계약금 130만 달러에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다. 이 때만 해도 김선우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상당한 기대를 품었던 국제 유망주 시장의 최대어였다. 130만 달러를 받고 입단한 것부터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당시 1라운드 초중반급의 사이닝 보너스이며, 2010년대에도 어지간한 드래프티가 아니면 이 정도 금액은 받기 어렵다.

싱글A부터 차근차근히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간 김선우는 2002년 데드라인 때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이적한다. 소위 클리프 플로이드 트레이드.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플로이드를 받아 오고 레드삭스가 내준 선수는 김선우와 송승준으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사기꾼 빌리 빈 단장이 이 딜에 끼어들어서 케빈 유킬리스를 데려오려던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참조.

하지만 당시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감독인 프랭크 로빈슨과의 불화로 출장 기회를 전혀 잡지 못하여 김선우는 메이저리그에서 자리잡지 못했다. 이후 엑스포스가 워싱턴 D.C.로 연고지를 이전한 워싱턴 내셔널스, 콜로라도 로키스, 신시내티 레즈 등의 팀을 전전하다가, 2008년에 대한민국 무대로 온다.

참고로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에 따른 복귀가 아니다. 1999년 이전에 미국으로 나간 선수들은 기존 지명권이 유효했기 때문에, 김선우는 고졸우선 지명권을 통해 별도의 절차 없이 두산 베어스에 입단할 수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은 동갑내기 투수 서재응도 같은 경우다.

여담으로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는 그 악명높은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을 올린 기록이 있다. 완봉이라는 기록 자체도 대단하지만, 쿠어스 필드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다 못해 부정구장(...) 소리를 듣는 투수들의 무덤이며 여기서 완봉투를 보여 주면 용자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이 기록은 쿠어스 필드 역대 완봉 기록 중 노모 히데오의 노히트에 이은 최소 피안타 2위다. 이렇게 용자 대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쿠어스 필드는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해서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웬만한 볼은 톡 쳐도 쭉쭉 날아가기 때문이다. 김선우가 완봉을 작성한 비결은 웬만한 타구도 쭉쭉 날아가는 산동네에서 살아남는데 필수인 그라운드볼 유도에 좋은 강력한 투심 패스트볼. 컨트롤이 무척 불안정해서 안 긁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일단 긁히는 날에는 이거 하나로 게임을 책임졌다.

또한 쿠어스 필드 완봉승 외에도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마지막 홈경기 승리 선발 투수 및 최후의 홈경기 선발 투수, 칼 립켄 주니어의 커리어 마지막 삼진을 잡아낸 등의 레어한 기록도 있다. 2006년 WBC에서 손민한A로드 삼구삼진과 함께 은퇴 후에도 계속 회자되는 기록. 몬트리올에 프로야구단이 새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완전히 잊혀질 일은 없을 듯 메이저리그 열리고 싶으면 거기는 야구장 새로 지어야 해요

2.3. 두산 베어스 시절

당시 에이스 역할을 해줄 한국인 선발 투수를 찾던 두산 베어스메이저리그에서의 경험과 아직 젊은 나이(당시 서른 둘), 그리고 좋은 구위를 지닌 김선우를 고졸우선지명권으로 입단시켰다. 하지만 에이스로 생각했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에이스는커녕 쩌리짓만 해 대며 2008년 6승 7패 평균자책 4.25라는 애매한 성적을 기록, 봉중근에 이어 김미미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래도 후반기, 포스트시즌에서의 대활약으로 기대치가 올라갔지만...

이듬해는 11승 10패를 올리며 팀에서 유일한 선발 10승 투수라는 명함을 걸긴 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으로 평균자책점 5.11에 Whip도 소폭 상승, 본인의 성적만으로 놓고 본다면 예전보다 더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덕분에 그나마 선발진이 처참한 두산에서 가장 잘 던진 선발이니 에이스 라는 팬과 이따위 성적으로 무슨 에이스냐 돈 토해내라 라는 팬들이 첨예하게 대립을 일으키고 있다. 그 와중에 2010 시즌 연봉이 인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야구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당장 이재우가 연봉이 깎인 판인데 어째서?

참고로 2008년 6월 삼성에게 두 번의 패션쇼를 선보이게 하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3.1. 2010 시즌

140km/h 중후반대를 기록하는 무브먼트가 동반된 직구는 김선우의 상징이었다. 그 직구의 위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김선우의 직구 승부는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였는지도. 하지만 2010년 김선우의 투구 패턴은 기존 김선우가 대한민국 무대에서 보여줬던 패턴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가는 직구의 위력은 여전하다. 그런데 여기에 본격적으로 종변화구가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직구-슬라이더(본인은 커터라고 말한다.)라는 단순한 조합에 스플리터와 커브가 본격적으로 섞이기 시작한 것인데, 높은 직구처럼 들어가다가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의 위력은 명불허전. 아니 왜 이런 공을 여태 던지지 않았는지. 이에 대해선 메이저리그에서는 변화구를 던졌을 때 스트라이크라 생각했는데 볼로 판정되는 일이 많아 잘 구사를 안한 게 국내복귀 이후에도 습관으로 남았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4월 29일 2010년 두산 선발사에 남을 류현진과의 투수전은 그가 두산의 에이스로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7이닝 1실점(무자책) 9탈삼진, 총 117개의 투구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며 7이닝을 소화, 8이닝 2실점을 기록한 류현진을 누르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두산이 들였던 돈에 걸맞는 피칭을 드디어 하기 시작한 것일까?

2010년 7월에 들어간 현재까지도, 얼마 전 등판에서 혼자서 7이닝을 우걱우걱 퍼먹으며, 절친인 기아의 서재응과의 마운드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물론 마지막에 타자들이 날려준 감이 있지만, 그래도 7이닝 무실점. 최근 이닝이터로써 장기간 먹어줘서 달감독의 효자가 되었다.(...) 반면 KBO의 12초 룰의 첫 희생자가 되어 KBO 게시판에 심판을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기도.

사실 올해 김선우가 가장 달라진 이유는 마인드라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야"라는 마음으로 싸웠는데, 올해는 그냥 두산의 선배 투수로서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보겠다 한다. 그리고 진짜 그러고 있다... 아니, 그 수준이 아니고, 현재 두산 투수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수준. 작년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면서도, 작년만큼 직구빠가 아닌 완급조절과 다양한 구질로 상대 타자들을 잡고 있다.

특히 유격수 손시헌과는 아주 짝짝궁이 잘 맞아서, 2010년에만 2루 견제사를 몇 번 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다. 김선우는 팀 내에서도 가장 수비를 잘하는 투수로 평가받고 있는데다 수비진과의 호흡도 잘 맞는다. 후에 김선우를 주장으로 뽑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모두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는 듯 이제 양의지만 수비를 하면 된다! 정말 지금 보면, 돈이 아깝지 않다. 올해 초에만 해도, 넥센 마켓에서이현승을 영입하면서사면서 "김선우를 주자"라고 했던 팬들은, 2010 시즌 김선우의 첫 등판을 보고 "선우형 미안해요 ㅠㅠ"등의 글을 쏟아냈다. 그 때 김선우 줬다면 2011 두산은 꼴찌, 그리고 2014 시즌 현재 둘 다 없다.

2010년 8월 24일 국내 복귀 후 첫 완투를 기록했다. 그런데 남은 기록은 5이닝 2실점(...) 24일 경기가 강우 콜드로 인해 2:2 상황에서 무승부 처리되었기 때문에 나온 기록이다. 최근에는 체력 문제를 보이는 모습도 보인다.

결국 2010 시즌을 28경기 출장 154⅔이닝 13승 6패 평균자책점 4.02, 128삼진(6위), 그리고 K/9(9이닝당 평균삼진개수) 5위, BB/9(9이닝당 평균 볼넷개수) 6위 등을 랭크하며 안타깝게도 본인이 바라던 3점대의 평균자책점에는 실패했으나, 안정된 제구력과 강력한 속구로 거의 모든 기록에서 상위를 랭크하며, 켈빈 히메네스와 함께 강력한 원투펀치를 이루었고, 팀의 KBO 포스트시즌 진출의 공신이 되었다.

참고로 평균자책 순위를 살펴보면 규정이닝 채운 투수 9위, 규정이닝 채운 우완투수중 5위(1위 카도쿠라 켄, 2위 켈빈 히메네스, 3위 서재응, 4위 라이언 사도스키), 규정이닝 채운 우완 한국국적선수중 2위(1위 서재응)

김선우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2이닝 11피안타 2볼넷 2사구(死球) 8탈삼진 4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2.25, 1승을 기록했고, 팀은 2패 후 3연승을 거둬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김선우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⅓이닝 8피안타 2볼넷 2사구(死球) 2탈삼진 6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27.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김선우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4경기 13⅓이닝 19피안타 4볼넷 4사구(死球) 8탈삼진 10실점 7자책점 평균자책점 4.73, 1승을 기록했다.

2.3.2. 2011 시즌

파일:11선우.jpg

김선우의 커리어 하이

2011년 시범경기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줬으나, 시즌이 시작하면서 QS도 자주 기록하면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2011년 5월 8일 롯데전에서 투구수 94개로 한국무대 첫 완봉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5월 18일까지 22이닝 연속 무실점을 하였으며 진행중이었는데... 5월 19일 5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27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6회 손시헌의 에러와 한상훈의 적시타로 이 기록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나마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이었으니 이날 자책점은 0점이고 기록은 30이닝 연속 무자책으로 내용이 바뀌게 되었다.

8월 18일 이후에는 김선우만 나왔다 하면 타선이 폭발하거나 상대 타선이 지리멸렬하면서 두산이 승리를 챙기고 있다.

8월 2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10승째를 따내 팀 내에서는 드물게 3년 연속 10승 달성을 이루게 되었다. 팀 내에서는 10승 투수가 현재로선 김선우가 유일하다. 이게 다 윤석환 투코 때문이다.

2011년 8월 23일8월 28일에는 승리 투수가 되었으나, 그 사이에는 전부 팀이 패배했다. 다행히도 30일 경기는 이겼고, 그 이후 팀은 9월 중순까지 상승세였다.

9월 23일 한화전에서 승리하면서 올 시즌 7번째로 전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의 히어로는 누가 뭐래도 최고의 몸개그를 보여준 상대팀 대주자였고, 그 덕분에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마운드에 있던 마무리 투수 페르난도 니에베와 함께 좀처럼 보기 힘든 너무나도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자세한 것은 김준호 항목 참조.

그리고 자신의 시즌 마지막 등판일인 10월 3일 LG 트윈스 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 시즌 16승을 챙기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

이름값에 비해 조금씩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이전과 달리, 김선우는 이번 시즌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두산의 토종 에이스로 당당히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팀이 총체적 난국으로 무너지며 두산 입단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를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안습.

2.3.3. 2012 시즌

18.69 5선발 쩌리 투수본격 김크라이 강림 이 18.69라는 평균자책점의 임팩트 때문에 김선우의 별명은 1869가 되었다.

408 대첩의 선발로 나와 묘하기 짝이 없는 바람과 기세를 탄 넥센 타선에 말려 4⅓이닝 96투구수 11피안타 2사사구 1탈삼진 9실점 9자책점[5]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팀은 대첩다운 명경기 끝에 넥센 불펜의 방화로 팀이 11:13으로 이겨서 패전을 모면했다.

그러나 4월 14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6이닝 91투구수 5피안타 1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 그런데 7회를 어찌어찌 막아낸 이혜천이 8회 시작하자마자 2안타를 맞고, 뒤에 올라온 노경은마저 불을 지르면서 승리가 증발했다. 팀은 스코어 3:3 무승부를 기록.

4월 20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3:1로 이기던 6회말 무사 1, 2루에서 마운드에 내려왔다. 그런데 다음 투수인 고창성이 김선우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여 3:3 동점이 되어 승리가 날아갔다. 덧붙여서 고창성 이날 승계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6회말에 3실점 3자책점을 넥센에 헌납하는 바람에 팀이 패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본인도 1점 분식을 당하긴 했지만 김선우 바로 뒤에서 불을 거하게 질러버린 여파가 장난이 아니어서 두산 패배의 원흉으로 찍혔다.
김선우는 이날 5이닝 98투구수 6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했다.

4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4:6으로 이기던 7회초 무사 1, 3루에서 마운드에 내려왔다. 그런데 다음 투수 이혜천이 등판하여 이용규에게 볼넷을 허용함과 동시에 포일이 나와서 3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왔고, 이용규만 상대하고 내려간 이혜천의 다음 투수인 노경은안치홍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고, 안치홍만 상대하고 내려간 노경은의 다음 투수인 정대현이 김원섭에게 희생플라이를 허용하여 스코어가 6:6이 되는 바람에 승리가 또 날아갔다. 게다가 이 날은 수비도 정말 안 도와줬다. 범인은 고영민
김선우는 이날 6이닝 112투구수 7피안타 2사사구 4탈삼진 6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다.

결국 4월까지 1패를 모면한 것도 있었지만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두산의 다른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는 벌써 3승째였다. 김선우 본인이 다소 부진한 감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불펜이 안 도와줘서야….

하지만 5월, 6월이 되도 구위도 제구도 살아나지 않으면서 투수왕국두산의 선발진 중 가장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16일 현재 니퍼트는 7승, 이용찬은 6승, 김승회와 노경은이 선발진을 잘 메꿔주고 있지만 김선우는 방어율 6.67 11경기 2승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있다. 오죽하면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김선우는 투수로도 안친다, 김선우가 누군가요 신인 투순가요 하고 있다(...)[6][7]
여러모로 2011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현실.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구위를 살리기 위해 팔 각도를 내렸는데, 제구가 안되면서 직구고 변화구고간에 가운데로 몰리며 초반에 집중 안타를 맞으며, 특히 1회에 출루 허용률과 피홈런이 급증하며 홍성흔에게 쓰리런, 김태완따위에게 만루홈런을 내주며 불안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유지하였다. 시즌 시작 전 몸이 이렇게 완벽한 적이 없었다며 설레발을 떨다가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투구 밸런스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 사이에 팀의 토종 에이스 자리는 완봉승 2번 등 임팩트를 보여준 노경은에게 넘어갔다.

어쨌든 그 와중에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등판, 후반기에는 조금이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였지만 승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결국 6승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월 12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이닝 74투구수 6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였고 팀이 스코어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기 때문에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네 번째 투수 니퍼트가 8회말에 네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장작을 쌓고 홍상삼이 완벽하게 분식회계를 시전하며 블론세이브를 저질러 스코어 3:3이 되는 바람에 승리가 날아가 버렸다.

결국 이날 팀은 연장 10회까지 가는 경기 끝에 포수 양의지의 끝내기 송구 실책으로 스코어 3:4로 어이없게 패하였고 1승 3패로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따라서 10월 12일의 경기가 김선우의 2012년 포스트시즌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3.4. 2013 시즌

4월 출발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도 2점대 후반을 마크하며 두산 베어스의 준수한 선발 투수로 계속 가나 했지만, 5월이 되자 선발진 붕괴의 한 축을 맡으며 9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부상과 함께 덕아웃 통역사로 자리매김

LG 트윈스와의 6월 5일 경기에서 박용택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뒤 시즌 세번째로 2군으로 내려갔다. 이전까지의 2군행은 선발 로테이션과 컨디션 조절용의 짧은 2군행이었지만, 6월의 1군 말소는 2달가량 이어졌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8월 1일 경기에 복귀하여 승리를 챙겼지만, 2주 뒤 20일간의 1군 말소를 겪었다.

1군 17경기 60⅓이닝 5승 6패 평균자책점 5.52에 피안타율 .328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며 2013년을 마감했다.

포스트시즌에서 특이한 역할을 받았다. 병살 유도용 릴리프. 투 포인트 릴리프라고 해야 하나? 더블 릴리프?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에 등판하여 ⅔이닝 1볼넷 1탈삼진 무실점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⅔이닝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3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1로 앞선 13회말에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2이닝 1피안타 2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김선우의 2013년 포스트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 중 6경기 등판, 3⅓이닝 3피안타 4볼넷 2탈삼진 무실점 1블론세이브.

시즌 종료 후 두산 베어스의 프런트가 김선우에게 선수 은퇴 및 코치 연수를 제안하였으나, 본인이 이를 거절했다. 결국 상호 합의 하에 두산 베어스를 떠나게 되었다.#

2.4. LG 트윈스 시절

이후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에서 그를 눈여겨보았지만 김선우는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연봉 1억 5,000만 원을 제시한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 아이들의 교육 문제와, 지방 팀으로 갈 경우 이사 등 자주 옮겨다녀야 할 것을 걱정한 모양이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컨디션이 상당히 좋았고, 시범경기에서는 1승 방어율 3.60을 기록했다. MBC SPORTS+가 진행한 스프링캠프 인터뷰에서 소속구단을 옮기게 된 심정과 각오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두산 시절을 지난 안 좋은 기억들이라고 언급한 걸로 보아 전 소속 구단인 두산에 그닥 좋은 감정인 건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두산 시절 잦은 부침에 따른 마음 고생과 결별 때의 껄끄러움 때문인 듯. 그리고 이 무슨 곡절인지 3월 29일 개막전 선발로 확정되고 친정 팀 두산 베어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3월 2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2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7번타자 양의지에게 홈런[8]을 허용했고, 팀이 3:1로 앞선 3회말 2사 3루에서 3번타자 김현수를 고의사구성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거른 뒤 다음 타자 호르헤 칸투에게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역전 쓰리런 홈런을 맞았다. 김선우는 팀이 스코어 3:4로 지던 4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 류택현으로 교체되었고, 류택현이 실점없이 이닝을 끝내면서 김선우의 실점은 늘지 않았다. 김선우는 이날 3⅓이닝 72투구수 4피안타 2피홈런 3사사구 1탈삼진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4:5로 지면서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개막전 바로 다음날인 3월 30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어 2군으로 내려갔고, 4월 11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됨과 동시에 당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1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2번째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1⅓이닝 47투구수 6피안타 2사사구 7실점 7자책점으로 여지없이 털렸고, 팀이 이날 411 대첩 끝에 스코어 12:11로 져서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에 따라 두산이 내친 것이 재평가를 받았다. 결국 21.21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13일자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9월 14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1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12로 크게 앞선 9회초에 윤지웅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3번째 경기를 치렀다. 5달만에 등판. 김선우는 이날 3타자를 상대하여 13투구수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10월 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1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11로 앞선 9회초에 이동현에 이어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5번째 경기를 치렀다. 김선우는 이날 6타자를 상대하여 1이닝 20투구수 3피안타 무사사구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고 스코어 5:11로 경기를 끝냈다.

10월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1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5:2로 크게 앞선 9회말에 유원상에 이어 6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즌 6번째 경기를 치렀다. 김선우는 이날 10투구수 1탈삼진으로 9회말을 삼자범퇴로 막고 경기를 끝냈다. 팀은 3경기 연속 역전승&5연승을 거뒀다.

1군 6경기에 등판하여 1패 평균자책점 14.04를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했다.[9]

3. 해설자 경력

은퇴 후 2015년부터 MBC SPORTS+에서 메이저리그 해설을 맡게 되었다 .

2015년부터 2017년까지 KBO리그도 더불어서 했지만 그래도 MLB 1세대인만큼 MLB쪽으로 사실상 편하기 때문에 MLB단독 해설로 결정되었다.#기사글 공중파 중계에서는 류현진 등판 경기 때 정민철과 번갈아 나온다. 또 허구연과 함께 2018년 아시안 게임 MBC 야구 해설을 맡았다.

MLB 팬들에게 상당히 호평받는 해설. 어버버(...)수준인 최희섭해설과는 달리 딕션이 듣기 불편하지 않으며, 특히 투수의 심리, 수싸움을 시청자들에게 풀어주는 능력은 도가 텄다는 평가.

2017년에는 마이애미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현장 중계 해설을 맡았으며, 2018년에는 월드시리즈 3~5차전을 정용검 캐스터와 함께 다저스타디움에서 현장 중계를 맡는다.[10] 그리고 첫 월드시리즈 현장 중계였던 3차전 부터 역대 최장시간, 최장이닝의 월드시리즈 경기(7시간 20분, 18이닝) 중계를 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tailing%2520fastball.gif
테일링 패스트볼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25EC%258D%25A8%25EB%258B%2588_%25EB%25B3%2580%25ED%2599%2594%25EA%25B5%25AC.gif
변화구

우완 쓰리쿼터[11] 파워 피쳐로서, 공격적인 피칭을 선보인다. 그런데 2013 시즌에 오면서 팔 각도가 서서히 낮아지더니 거의 사이드암이 던지는 수준으로 팔이 많이 내려왔다.

메이저 리그 시절에는 포심이 최대 97마일(156km), 투심이 최대 95마일(153km)이 나오는 파워피쳐였다. 2011년 기준 35살(만 34세)이 됨에도 불구하고[12] 최고 150km, 평균 140대 중후반을 마크하는 무브먼트가 동반된 파워풀한 직구와, 워낙 무브먼트가 뛰어나 테일링 패스트볼 내지 뱀직구라 불리우는 우타자의 몸쪽으로 빠르게 휘어들어가는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선발 투수다. 단 이 환상의 테일링으로 제구가 안될때가 많다.[13] 다만 11시즌 들어서 속구의 구속이나 구위가 많이 줄었다. 10시즌만 해도 150km에 육박하는 속구를 많이 보여 줬지만 아무래도 나이 탓인지 본인도 언론 인터뷰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교파에 가깝게 변했다고 얘기했다.

그 외에도 각이 크면서 낙차도 큰 슬라이더, 최고 145km에 달하는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스플리터, 커브 등 다양한 구질을 지녔다. 원래는 직구,투심,슬라이더 그리고 가끔 체인지업의 단순한 조합이였으나, 국내 복귀 후 커브, 스플리터 등을 익혔다.

파워 피쳐 치고는 좋은 제구력 또한 보유하고 있으나 워낙 본인의 직구에 자신감이 강하여, 2011시즌 전까지는 직구와 정면승부만을 고집하는 습성 때문에 탈탈 털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2011시즌, 그런 단순한 패턴을 탈피하면서, 다양한 구질, 제구력, 직구 구위 등이 시너지 효과로 작용하여 나이 35세에 16승이라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5. 기타

  • 200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뛰었을 때, 올림픽 스타디움의 마지막 엑스포스 승리 투수가 김선우다. 2004년 9월 24일, 필리스 전에서 8.2이닝까지 던져서 완봉을 눈에 앞두고 있다가 2루타를 맞고 실점한 후 교체되어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 날 이후 5연패 후, 엑스포스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인 9월 29일에 선발 투수로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2이닝 5실점으로 마지막 패전 투수까지 되었다.
  • 아주 가정적인 남자다. 2011 시즌에서 승을 거둔 날의 대부분은 공교롭게도 친척이나 가족 생일이나 기념일이라고 한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특별한 날에 꼭 승리한다고 한다. 실제로 두산 베어스 블로그에 남긴 글등을 보면 가정적인 남자라는게 느껴진다. 인터뷰에서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은퇴 발표를 한 다음날에 한 일이 아들 학교 바래다 주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다. 두산을 떠날 때 지방 팀들의 오퍼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LG로 간 이유도 미국 생활 당시 가족과 떨어져 있던 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무조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팀으로 갔다고 밝혔다.
  • 대야베에 인증까지 했다.[14] 그런데 닉네임이 성훈이 정훈이 사랑해. 역시 가정적인 남자다.(...)인증샷 어떤 선수하곤 대조되는 부분(...) 그런데 대야베에 또 '누군가 내가[15] 말했다'라고 시작되는 글을 올려서 돡갤러들에게 '차라리 김선우 글보다 고전시가가 해석하기 쉽겠다'라고 비아냥을 들은 적도 있다. 이래서 국어가 중요합니다
  • 다른 별명으론 파워식사,직구앓이가 있다.
  • 가정적인 면모와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유명한 다혈질이다. 두산 시절에는 김동주와 더불어 벤치 클리어링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이 바로 김선우다. 본인 스스로도 젊었을 때 주먹은 자신있다고 했을 정도다. 다만, 2010년 두산과 넥센의 벤클 때 이숭용에게 맥을 못 추기도 했다.
  • 아들인 김정훈 군이 아빠! 어디가? 친구특집에 출연할 뻔 했다. 송종국의 딸인 송지아의 남자친구라 한다. 연애적인 그런 남자친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성별만 다른 이성친구라고 한다.
파일:attachment/jiajunghun1234.png
다만 이후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지아는 진짜 좋아하는 듯 보인다. 짝사랑? 소꿉친구? 지못미..
  • 2013 시즌 후 김선우의 거취가 불분명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저 둘이 떨어지게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였으나, 두산팬 입장에서는 아쉽겠지만 지아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김선우가 같은 서울 팀인 LG 트윈스로 이적함으로서 둘이 떨어질 일은 없게 되었다.(...)[16]

사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징병왕이 되었다 카더라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1 보스턴 레드삭스 20 0 2 0 0 5.83 54 25 27 41.1
2002 15 2 0 0 0 7.45 34 8 18 29.0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2 몬트리올 엑스포스 4 1 0 0 0 0.89 18 8 11 20.1
2003 4 0 1 0 0 8.36 24 12 5 14.0
2004 43 4 6 0 0 4.58 145 68 87 135.2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5 워싱턴 내셔널스 12 1 2 0 0 6.14 41 10 17 29.1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5 콜로라도 로키스 12 5 1 0 0 4.22 56 14 38 53.1
2006 6 0 0 0 0 19.29 17 9 4 7.0
연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2006 신시내티 레즈 2 0 1 0 0 5.40 7 0 4 6.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두산 베어스 21 101⅔ 6 7 0 0 4.25 126 24 46
2009 29 148 11 10 0 0 5.11 176 54 89
2010 28 154⅔
(8위)
13
(7위)
6 0 0 4.02
(9위)
163 58 128
(6위)
2011 28 175⅔
(4위)
16
(2위)
7 1 0 3.13
(3위)
188 41 89
2012 28 163⅓
(8위)
6 9 0 0 4.52 182 49 63
2013 17 60⅓ 5 6 0 0 5.52 77 25 2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14 LG 트윈스 6 8⅓ 0 1 0 0 14.04 14 5 3
MLB 통산(6시즌) 118 337 13 13 0 5 5.31 396 174 211
KBO 통산(7시즌) 157 812 57 46 1 0 4.37 926 256 438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8년 0완투 0완봉
2009년 0완투 0완봉
2010년 1완투
(6위)
0완봉
2011년 2완투
(4위)
1완봉
(3위)
2012년 1완투 0완봉
통산 4완투 1완봉


[1] 경영학과 (1996학번) 중퇴[2] 팀 내에서 유일하게 테마송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홀수 이닝에는 전자, 짝수 이닝에는 후자,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틀어주는 것 같다. 가만 후자 같은 경우는 가사가 시궁창인 노래 중 하나인데? 전자도 가사가 시궁창인 것은 마찬가지 Long Shot은 마운드로 올라왔을 때 틀어준다.[3] 휘문고의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다.[4] 심지어 은퇴할 떄도 "어려서부터 뛰고 싶었던 LG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어서 기쁘다"라는 말을 남겨서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쥐선우라고 미친 듯이 까였으며 반대로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찬양받았다.(.)[5] 이 경기 직후 평균자책점이 18.69가 되었다. 9/(13/3)*9 = 18.6923...[6] 여담으로 김선우를 앞장서서 까는 모 갤러는 개구리 옷을 입고 잠실야구장에 갔다가 TV카메라에 잡히자, XTM 임용수 캐스터에게 '김선우의 열렬한 팬'이라는 말굴욕을 들었다.[7] 2012년 6월 9일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성장호르몬 부족증세에 걸린 15세 몽골 소년이 김선우의 투구를 보며 탄식하는 장면이 나왔는데(XTM에서 중계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 한 달 후 이 장면이 발굴되자 돡갤러들은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빼앗는다"라며 탄식하고 있다. 발굴된 장면 어린이날에도 LG한테 지더니 그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희망을 빼앗는 두산야구[8] 2014년 프로야구 1호 홈런이다.[9]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KBO로 복귀한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에는 이상훈이 가장 먼저 은퇴했고 이후 조진호, 박찬호 순.[10] 당초 차명석 해설위원이 갈 예정이었으나 차명석 해설위원이 LG 트윈스 단장으로 영전하는 바람에 성사가 된 것이다.[11] 오버핸드 스로에서 팔의 각도가 조금 내려간 형태. 특별한 일 없으면 둘을 합쳐 오버핸드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12] 파워피쳐는 대개 30세가 넘으면 나이로 인해 구속, 구위가 감소되며 하락세를 걷는 일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경우는 송회장님.(원래 좌완 파이어볼러였으나 구속, 구위등의 감소로 피네스 피쳐(속구와 구위보단 제구력을 주무기로 삼는 투수)로 변신,성공하였다.) 그런 면에서 김선우, 임창용은 그냥 괴물인거지...[13] 메이저리그에서 결국 실패한 이유도 이 문제. 투심이 긁히는 날은 쿠어스필드 완봉도 할 정도의 무적이지만, 안 긁히는 날은 힘있는 메이저리그 타자들한테 그냥 배팅볼...[14] 두산 베어스 대표 팬카페 중 하나로 대한민국 야구대표 베어스의 준말.[15] 정확한 맞춤법은 '내게'다.[16] 물론 자녀교육 문제도 있고 해서, 김선우가 KIA한화 같은 지방팀으로 이적한다 해도 가족들은 서울에 머물 가능성도 크다. 얼마 안 가 김선우가 은퇴해서 좀 더 가족과 지낼 시간이 늘어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