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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악산 구룡사 雉岳山 龜龍寺 | Guryongsa | |
| <nopad> | |
| <colbgcolor=#B9A26A><colcolor=#fff> 창건 | 668년 (신라 문무왕 8년) |
| 의상 대사 | |
| 국가 | |
| 주지 | 해공 |
| 유형 |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 |
| 위치 | |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500[1] | |
| 링크 | |
1. 개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치악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末寺)이다.보광루가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
668년(문무왕 8)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706년(숙종 32) 절이 중수되었다. 1966년 보광루를 해체, 복원하였다. 1968년에는 심검당과 요사를, 1971년에는 삼성각을, 1975년에는 대웅전을 보수하였다. 2004년 대웅전이 소실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에서 지정해제되었다.2.1. 전설
절을 짓기 위해 명당을 찾던 의상이 마침내 치악산에서 명당을 찾아냈지만, 그 곳은 이미 아홉 마리의 용들이 살고 있었다. 의상과 용들은 서로 도술 대결을 벌여서 이긴 쪽의 뜻을 따르자고 했다. 용들이 먼저 비바람을 모아 막대한 비를 퍼부어 치악산이 잠길 정도의 홍수를 일으켰지만, 의상은 치악산의 천지봉과 비로봉 사이에 배 한 척을 매어놓아 배 안에서 자고 있었다. 홍수가 끝나고 의상의 차례가 되자 의상은 부적 한 장을 쓰고 용들이 살던 연못에 집어넣었더니 연못이 뜨겁게 끓어올라 견디지 못한 용들이 도망치면서 의상이 이겼다고 한다. 용들이 살던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은 의상은 이름을 구룡사(九龍寺)로 지었다.세월이 흐르고 조선 시대에 들어 구룡사의 가세가 기울어지는데 다름아닌 치악산의 산나물이 공납품이었고 구룡사의 주지가 공납의 책임자가 되어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요했지만, 속세의 돈맛에 들린 탓에 내부는 몰락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승려가 사찰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이 흥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구룡사의 승려들은 거북바위를 쪼갰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줄어들고 절의 명성도 줄어들어 절을 닫을 처지가 되었다. 이 때 구룡사를 찾은 다른 승려가 절이 몰락한 이유는 거북바위의 혈맥을 끊은 것이니 거북을 되살리는 의미로 절 이름을 바꿔보라고 말해 아홉 구(九)를 거북 구(龜)로 바꿔 지금의 구룡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3. 교통
원주 버스 41의 종점이다.4. 기타
절 인근에 조선시대에 만든 황장금표가 있는데 이것은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하는 표지이다.[1] 학곡리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