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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소설/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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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재 자체의 약점
2.1. 게임 문화의 변화와 알맞지 않은 상황2.2. 현실성의 부족
3. 작가들의 문제
3.1. 소설이자 온라인 게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3.2. 공정성에 대한 인식 미비3.3. 전개상 안전장치가 부족한 게임전개3.4. 기타
4. 설정의 미흡함
4.1. 게임 개발·운영의 이해부족4.2. 게임 시스템의 구성4.3. 기술발전에 맞지 않는 모습
5. 흔한 클리셰
5.1. 게임 관련 클리셰5.2. 등장인물 클리셰
6. 양판소와의 비교7. 비판과 실제 게임소설 연재와의 차이
7.1. 기술 형평성에의 지적7.2. 게임 시스템, 게임 기획에 대해7.3. 주인공 편향적인 소설?

1. 개요

게임 소설 전반을 일컫는 겜판소라는 단어는 양판소와 같은 비판, 비난, 힐난의 어조로 쓰이기도 한다. 이때의 양판소는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명확한 비판적 대상을 가지고 있는 반면, 겜판소는 게임 판타지 소설이라는 분야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이는 단순화의 오류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게임소설 전반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인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서에서는 게임 소설의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 이유, 즉 게임 소설의 대부분이 양판소화된 이유에 대해 서술한다.

2. 소재 자체의 약점

첫째로, 겜판소는 게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게임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갖는 인식, 문화, 환경들이 문학적, 장르적으로 작품 수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 이 점이 게임소설의 장점이 되기도 하며, 약점이 되기도 한다.
  • 게임이 갖는 필연적인 가벼움
    스토리의 중심은 현실이 아닌 게임이므로, 진지함과 무게감이 굉장히 떨어진다. 특히, 죽음이라는 소재가 가벼워지며, 이는 경우에 따라 독자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1] 따라서 위기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게임 소설들은 분위기를 잘 조절함으로써 죽음을 절대적인 위기가 아닌 가벼운 난관으로 승화시키거나, 혹은 강한 패널티[2], 실제의 죽음과도 연결짓곤 한다.[3] 하지만 패널티의 경우는 죽음에 비하면 여전히 가볍고, 현실의 사망과 연결되는 것은 애초에 이런 죽음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필력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리는 점이 심하다. 소드 아트 온라인이 비판받는 것도 게임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죽어버린 아인크라드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를 악역 하나를 미화하기 위해 갈수록 가볍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 사실 이는 죽음을 가볍게 다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인물 자체가 가볍게 만들어지고 소모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에 가깝다. 게임은 유저가 직접 조작하지만 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유저가 사는 세계와는 별개의 세상이고[4], 유저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면서도 자신과는 별개의 대상이라 인식하고 있다. 유저(나)가 주인공의 모습으로 작품 속 세상에 직접 개입하면서도 정체성 자체는 타인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소설에서의 유저는 주인공 그 자체이며, 독자(나)는 한발짝 떨어져서 유저가 하는 행동을 지켜볼 뿐이다. 굳이 게임에 비유하자면 게임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를 시청하는 모습에 가깝다[5]. 이처럼 게임 소설은 나 -> 소설 -> 소설 속 게임 세상이라는 두 개의 허구적 필터를 거친다. 나 -> 게임이라는 하나의 필터만 거치는 게임보다 태생적으로 한층 더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게임소설에서의 죽음은 독자가 직접 개입할 수 없지만 게임에서의 죽음은 유저가 직접 실행하는 것이다. 기본 전제부터 몰입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임 소설의 주인공이 죽는 것과 자신이 열심히 하던 게임 주인공이 죽는 것, 똑같이 부활할 수 있어도 당연히 후자가 더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가들이 단순히 게임 속 NPC를 다루듯이 캐릭터를 소모해버리기 때문에 캐릭터의 죽음이 게임에서의 그것보다도 독자에게 와닿지 않게 되는 것이다.
    • 같은 맥락에서 이는 단순히 NPC를 마구 죽인다거나 죽는 횟수가 많다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 지탄을 받아야 할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도 명작으로 손꼽히는 것들이 나오는 것은 작중에서의 죽음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숭고한 죽음이든 비참한 죽음이든 통쾌한 죽음이든 그것이 관객이나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겜판소에서의 죽음은 여간해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쉽지 않고, 따라서 결국 겜판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단점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게임 방송을 보면서도 스트리머의 실수에 폭소하거나, 죽음의 위기에 긴장감을 가지거나, 슈퍼플레이에 경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단점을 많은 작가들이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죽음의 가벼움이 단점이 되는 것은 어차피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게임 속 죽음에 어떻게든 의미부여를 하려 애쓰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고, 이게 심해지면 게임에서 죽었다고, 아이템 하나 뺏겼다고 피의 복수를 선언하며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주인공이 정말로 게임 폐인이나 중2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죽음의 가벼움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오히려 단점만을 부각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도 주인공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한 판에도 몇 번이나 죽어나가서 오히려 일반적인 겜판소 이상으로 죽음의 의미가 가벼운 AOS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룬 몇몇 겜판소들은 굳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서도 주인공의 컨트롤과 심리 묘사 등을 통해 흥미로운 게임 속 세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죽음의 경중은 부차적인 문제에 가깝고 결국 진짜 문제는 게임 속 세상과 인물에 독자를 얼마나 몰입시킬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 게임에 대한 인식
    '게임 = 소모적인 유희'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최근 인식이 개선되고 있지만 가시적인 수준이 아니며, 프로게이머와 같은 전문직조차도 그만한 전문성을 대우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에게도 마찬가지의 인식이며, 이러한 인식에서 태어나는 게임소설도 소모적인 유희 이상의 스토리, 의미를 담지 못한다.
    • 같은 맥락으로, 주인공이 아무리 강해져도 린저씨 혹은 폐인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겜판소가 장르소설의 트렌드를 흡수하면서 회귀 요소를 넣는 경우도 많아졌는데, 이 경우 기껏 과거로 돌아와놓고서는 게임이나 하냐는 반응이 돌아오기 쉽다. 프로게이머처럼 게임으로 인해 명예와 긍지를 얻었던 인물이라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이 심리 묘사를 개판으로 하기 때문에 독자들 입장에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 다크 게이머와 같은 게임 아이템 판매업자들이 늘 불법으로 묘사되는 것은 현실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또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게임소설의 재미가 반감한다. 게임이라는 동질감이 몰입도를 형성하는 측면이 적지가 않으므로 발생하는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다.
    • 등장인물들의 말투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기 쉬워진다. 진짜 게이머들끼리 보이스챗으로 떠드는 것 같은 말투라면 너무 경박하고 가벼워 보이고, 그렇다고 해서 중후하고 무거운 말투로 대화한다면 컨셉에 미친 것처럼 보여서 위화감을 줄 것이다.
  • 뚜렷한 목적의 부재
    한국 온라인 게임의 제한적인 자유도는 역설적으로 게임소설의 자유도를 제한한다. 대다수의 게임소설은 모티브가 되는 온라인게임이 있다. 그 중 주류를 이루는 한국 온라인 게임들은 자유도가 떨어지며, 이에 따라 해낼 수 있는 것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 예를 들면 게임 내 지존길드가 된다, 고렙이 된다, 현거래로 돈을 왕창 번다 등등이 겜판소의 목적이 되기 쉬운 것이다. 게임소설들은 모티브에서 목적을 복제하곤 하며, 이는 다른 양판소의 목적과 비교해도 무게감이 떨어지고 완결이 흐지부지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 주 고객층의 대리만족
    한국 게임소설이 흥한 이유는 주 고객층, 즉 현실의 게임에서 주어지는 보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유저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 위함이 크다. 아니, 작가들의 집필 동기부터가 '이런 게임 있으면 죽여줄텐데'하고 망상하고 설정놀음 하다가 소설화까지 가는(...) 불순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 따라서 스토리는 주인공 편향으로 불공평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위에서 적혀있듯 게임은 밸런스나 오류수정이 이루어지는 등 공정해야 하며, 따라서 괴리가 생긴다. 이는 굉장히 불편한 구조를 낳는다.
  • NPC에 대한 시선
    게임 소설은, 특히 MMORPG 소재의 경우 인간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NPC 역할을 하는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NPC가 현실의 인간과 동일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작가가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어느 쪽으로 집필 방향을 잡더라도 논란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완전히 동일한 존엄성을 지녔다고 대답할 경우, 이성적으로는 많은 독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이를테면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NPC를 희생시켜야 할 상황인데, 주인공이 NPC도 생명이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대답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과연 독자들이 보편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까? 소드 아트 온라인이 마주한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태도는 많은 독자들의 반감을 얻게 된다.

    반대로, NPC는 코드 쪼가리라고 대답할 경우도, 독자들이 감정적으로 엄청난 거부감을 지니게 된다. 아무리 게임 속 코드 쪼가리에 불과할지라도, 주인공이 아무런 이유없이 NPC를 구타한다던지 하면 당연히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줄 수 있다. 이는 가상인물인 소설 속 캐릭터들에 대해서 현실의 독자들이 애착을 지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타협점으로 NPC를 '완전한 인간'과 '코드 쪼가리'의 중간에 위치한 무언가로 취급하는 방법이 있다. 그 애매한 위치로 작중에서도 논란이 생긴다고 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작가가 진지한 철학적 고찰을 하지 않는다면 영 엉성한 설정이 되기가 쉽다.
    • 굳이 온라인 게임이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 정도의 인공지능 기술을 가지고 온라인 게임을 만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손해만 볼 확률이 높은게, 다른 사람이 간섭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즐길 수 있는 싱글 플레이어 게임이 더 인기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몰론 단순한 성취감을 목적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게임도 나올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2.1. 게임 문화의 변화와 알맞지 않은 상황

겜판소는 게임문화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0년대에 이르러서는 게임소설이 현세대의 게임문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 과정중에서 겜판소의 장점을 흡수한 대체장르들이 나타나며, 빠르게 현세대의 게임문화를 따라가지 못한 겜판소의 위축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게임문화에 발맞추지 못했을까? 이는 기존의 겜판소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주로 삼는데서 벌어진다. 기존 세대의 게임문화는 게임을 즐기는것에서 만족하거나,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형식이었다. 이러한 의식에서 출발하는 겜판소는 보다 게임을 잘하고, 즐기는 것이 주된 목적인게 대다수였고 이러한 목적위에 겜판소가 쌓여가며 관련된 스토리, 클리셰가 형성. 이를 통한 장르적인 형식화마저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현세대에 이르러 게이머들은 게임을 1차원적으로 즐기지 않고,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매체와 방법으로 즐기게 되었다. 특히 게임을 하는 방법보다 보기만 하며 즐기는 방법이 더욱 인기를 끌기도 하였고, 게임을 이용해 방송을 하며 즐거움과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도 대두되기 시작했다. 내가 게임을 잘하지 않아도 프로게이머들의 프로리그가 과거보다 세계적으로 활성화되었기에 이를 보며 만족할수 있었고, 또한 플랫폼이 다변화되고 게임과 접촉할 수 있는 관련 매체가 늘어나며 기존에 조명받지 않던 장르의 게임이 갑자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자신이 해본 게임에서만 습득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게임 정보와 지식을 보다 쉽고 간편하게 습득할수 있기도 하였다.

이처럼 현세대는 게임안에서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다양한 관련매체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방향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지만, 기존 겜판소의 클리셰와 내역은 즐기는 것을 골자로 삼는데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알맹이조차 랭킹 1위가 된다, 서버의 패권을 잡는다 같은 똑같은 구세대의 레퍼토리만 반복하게 되었다. 레이드물 같은 경우 어떻게든 참신한 스토리를 뽑아내기 위해 레이드 영상을 촬영해 인터넷 방송을 한다거나 몬스터로 먹방을 찍는다거나 같이 현실의 변화에 발맞춘 변화를 추구하거나 몇년 지나지 않고서도 다양한 파생 장르가 형성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형식화된 규모가 꽤 컸기 때문에 자신들의 장점을 가지고도 제대로 발맞추질 못한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장르소설의 유행 변화가 계속되자 결국 현재의 독자들에게 겜판소는 어색하고, 고리타분하게 읽혀지기 시작했다.[6] 이러한 상황에서 단점을 보완하는 신생장르와 겜판소 시스템의 퓨전이 발생하자 결국 본래의 겜판소는 소외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2. 현실성의 부족

현재 한국을 휩쓰는 영화는 마블을 위시한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이다. 이와 같은 사례를 찾아보려면 일전의 반지의 제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과거에는 판타지였으나 현재에는 히어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의 문화 소비가 공상과 판타지를 현실의 대체제로 소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문화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르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소설은 과거 이고깽, 차원이동물, 판타지와 같은 이세계적인 환상에서 나아가, 현재의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물, 회귀물갑질기업물, 갑-을, 사이다 클리셰 같은 판타지를 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설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리만족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설이 공상과 판타지적인 환상을 충족하는 것에서 나아가,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짚고 이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즉 현실성이 보다 강화되었고, 독자들은 현실의 이미지, 욕구가 강하게 반영된 소설을 읽고 싶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대변하는 모습중 하나는 이세계물의 변화이다. 이방인으로서 이세계에 추락해 이세계의 문화와 기술을 활용하며 성장하고 즐기는[7] 모습을 보이던 이고깽과 달리, 현재의 이세계물은 현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이를 활용하며 발전하며, 한편으론 현실적인 딜레마와 고뇌를 느끼는 클리셰 다룬다는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장르소설은 현실성이 강화되었으나,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겜판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게임문화의 반영에 발맞추지 못한것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길드패권전쟁, 게임을 통한 강력한 권력의 습득은 00년대 즈음엔 그래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로 읽혀지는 것이다. 한편 계속 제기되어오던 겜판소 특유의 진지하지 못함, 결국 게임이라는 한계도 제대로 극복되지 못하는 가운데. 윗 문단과 마찬가지로 레이드물과 같은 보다 현실성이 강화된 신생장르들이 겜판소의 장점을 흡수해감에 따라 겜판소의 위축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3. 작가들의 문제

겜판소는 게임이자 소설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장르소설판의 독자층을 확대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게임을 그려내는 소설'을 읽고자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작가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즉 게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소설이면서도 게임이어야 하는 소설이라는 정체성을 요구한다. 이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게이머로서의 독자를 포섭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작가들에겐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논의의 미비는 필연적으로 겜판소의 많은 비판점을 낳고, 나아가 장르적인 정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말그대로 게임같지도 않은 소설이 수없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레이드물, 성좌물, 게임빙의물들이 기존의 단점을 대체할 안전장치를 찾고, 고유의 세계관과 특징을 크게 해치지 않으며 점점 발전해나간것에 비하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3.1. 소설이자 온라인 게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

게임소설은 전혀다른 두 장르가 결합된것이다. 때문에 게임이자 소설이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즉 '소설로서의 정체성'과 '온라인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이 공존하게되며, 막연히 한분류의 작법으로 대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는 게임소설의 정체성을 만든다. 게임을 읽는듯한 소설이라는 특징은 현실세계의 문화, 독자와 긴밀히 소통한다는 장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문제도 만들어낸다. 소설이냐, 게임이냐는 것이다. 즉 있을법한 온라인 게임'이면서 동시에 '소설'이어야 하기 때문에, "소설로서는 말이 되지만 게임이기때문에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생기기도 하며, "게임으로선 말이 되지만 소설로서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둘중 많이 발생하는건 단언코 전자이다. 겜판소를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설가이지, 게임 기획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같지 않은 소설이 되는것인데, 이는 설정충돌과 공정성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온라인 게임을 표방하지만 특정 소수에게만 유리한 구조이며, 초반부에 나왔던 최고의 스킬은 가면갈수록 쓰레기 스킬이 되어간다. 스탯은 기준없이 마음대로 부풀려진다. 때문에 독자들은 읽으면서 "말도안되는 게임"이라는 느낌을 받고 몰입감이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는 아래의 반론처럼 게임이기전에 "소설"이라는 말로 모두 무마하기엔 어려운 측면이다. 애초부터 게임소설은 작가들이 게임을 소설의 영역으로 끌고온 결과물이고, 그렇게 얻어낸 '게임이자 소설'이란 특징으로 성공을 했으면 이에 책임을 지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소설로서의 정체성에만 주목한 결과, 겜판소라는 장르는 현재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로 해체되었고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는 분화와 발전이 아닌, 말그대로 장르적인 종결에 가까운 모습일 뿐이고, 문제를 되짚어가면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에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작가들의 문제가 나타난다.

3.2. 공정성에 대한 인식 미비

먼저 겜판소는 절대로 쉽게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의 핵심은 공정성이고, 소설의 핵심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려면 특별한 계기와 보상을 쥐어줘야 하지만, 온라인 게임의 공정성은 그러한 보상을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작가는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개념을 동시에 다뤄야 하므로, 어떻게 해야 이 게임을 소설로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끝없이 궁리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물론, 실제로 공정할 필요는 없다. 어찌되었든 게임소설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되고, 때문에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8]. 그렇지 않으면 온라인 게임을 배경으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함을 대부분의 작가는 "특별한 히든클래스, 숨겨진 퀘스트, 버그, 치트"로 손쉽게 무너트리곤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한 고난도의 퀘스트는 사실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고, 주인공에게는 늘 편하고 지혜로운 샛길이 존재한다. 이처럼 몇 작가들은 이야기는 잘 짜낼지언정 소설의 기본적인 틀을 박살내게 된다. 게임으로서 전혀 공정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노력할때, 주인공은 환경너머에 존재하는 해법을 가져오곤 한다. 이러한 경쟁은 공정해보이지 않고, 따라서 온라인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
이처럼 공정해보이지 않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놓고, 독자들에게 게임 세상을 즐기라고 요구한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몰입감이 수직으로 하락하는 것이다. 게임소설의 기본은 독자들의 게임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그러나 소설속의 게임 세상은 자신이 알던 온라인 게임과는 한참 동떨어진 세상이니까.

이러한 문제는 나아가 겜판소가 각 장르에 찢겨지는 결과를 낳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 게임보다 소설에 치우친, 게임 세상 자체보다는 주인공의 활약에 더 집중하는 소설을 낳다보니 나아가 ' 굳이 겜판소일 필요는 없다'라는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게임 시스템 속에서 주인공이 불공정하게 날뛰는 소설을 원한다면 게임빙의물이나 레이드물같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납득하기 쉬운 대체재가 있다[9]. 때문에 겜판소의 몰락이 가속화되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3.3. 전개상 안전장치가 부족한 게임전개

독자들은 겜판소를 읽으며 자연히 자신이 한 적 있는 온라인 게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 게임과 겜판소 사이의 모순점을 쉽게 눈치채게 되는데 이 과정속에서 몰입감이 떨어진다.(그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모순점이 위에서 언급된 '공정성'이다.)

따라서 작가는 전개상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모순점이 없도록 미리 설정을 잘 짜두거나, 독자들이 눈치챌 수 없게 잘 가공하거나, 발견하더라도 납득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도록 충분히 재미있게, 혹은 이야기의 핍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정적인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러한 안전장치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 대표적인것이 위에서도 언급된 주인공에게 치우친 보상이다. 주인공이 퀘스트를 해결했는데 보상의 수치가 올라간다. 아이템을 얻었는데 더 효율이 좋아졌다. 수련끝에 스탯이 갑자기 뻥튀기가 된다. 이러한 설정들은 사실 장르적으론 흔한 설정이지만, 겜판소에선 더욱 큰 반감을 일으킨다. 단순한 먼치킨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능력이 서로 다른 현실과는 전혀 다른 온라인 게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속에선 모두가 같은 룰과 시스템, 비슷한 출발선에서 경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사이에서 주인공만이 더욱 좋은 보상을 얻고, 좋은 출발선을 가진다는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와 같은 문제를, 많은 장르들은 납득가능한 장르적인 안전장치를 걸어둠으로써 해결한다.
  • 먼저 현실성을 기반으로하는 판타지, 무협의 주인공들이 능력 이상의 성취를 이루는 경우. 작가들은 천재가 노력했거나, 혹은 각고의 노력을 실제로 거쳤기에 성취한것 이상의 보상을 얻었다는 설정을 깔아둔다. 특별한 운명을 가진 주인공, 혹은 선천적인 재능, 피나는 노력, 숨어있는 고수의 클리셰는 판타지, 무협에서 실제로 가능한 일이므로 핍진성을 얻고 허용받으며, 세계관을 크게 흔들지 않고 오히려 이야기 전개의 발판이 된다.
  • 게임시스템을 사용하는 경우는? 레이드물, 성좌물과 같은 소설들은 다소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거나 주인공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져도 '신적 존재가 개입했다'라거나 혹은 회귀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고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아이템의 숨겨진 능력이 해금되었다는 안전장치를 걸어 이를 해결한다.

그렇다면 겜판소의 히든클래스, 버그, 치트는? 같은상황임에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온라인 게임은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상에서 유저들은 같은 출발선, 같은 룰, 모두가 선택가능한 선택지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게 된다. 만일 주인공이 성공조건을 조금 오버시켜서 조금 더 보상을 얻는다던지, 혹은 직업특성으로 일정퍼센티지의 보상을 받는다면 크게 상관은 없을것이다. 룰 상으로 존재하고, 다른 유저들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든클래스 스킬'로, '치트, 버그'로, 주인공 혼자 모든 퀘스트마다 수배로 보상과 경험치를 벌어들이고 불합리한 편애를 받는 순간 독자들은 '망겜'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밖에 없게 되고 몰입이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 앞의 여타 안전장치들과 달리, 핍진성이 떨어질뿐더러 세계관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즉 작가들이 고안해내고 유행하였던 설정, 전개상 안전장치들은 여전히 문제점이 많은편이고, 이를 조심히 다뤄야 했지만 많은 겜판소 작가들은 이를 깊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당장 주인공이 버그로 고생하면 독자들은 행복해하지만, 동시에 게임은 천천히 망겜이 되어가고, 독자들이 몰입할 이유가 없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3.4. 기타


겜판소에 난무하는 버그성 치트 아이템이나 스킬의 남발은 독자의 이입에 심각한 방해가 된다. 이미 현실에 진명황의 집행검이라는 아무나 얻기 힘든 사기 아이템이 있었지만 누구도 이를 겜판소 주인공의 치트 아이템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냥터 통제나 버그성 치트나 부정한 방법이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사냥터 통제는 유저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을 하면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그나 치트는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10] 온라인 게임 세계관을 제시해 놓고서는 작가가 편의주의적으로 이를 깨부쉈기 때문이다[11]. 거대 길드가 몇 년에 걸쳐 고생스럽게 만들어 낸 유일무이한 최강의 무기를 주인공이 스틸한 것과, 최강의 무기를 주인공이 아무런 시스템적 제지 없이 버그로 얻어낸 것, 독자들은 둘 중 어느 쪽을 더 '온라인 게임스럽다'고 여길까?

겜판소의 장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 뿐이라면 그건 작가의 능력 밖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상당수의 겜판소 작가들은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은 채 아무런 고민 없이 버그와 치트로 게임과 소설의 틈을 억지로 메우려 한다. 버그와 치트가 소설적 장치로 제대로 기능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일회성 설정으로 써먹고는 금방 잊어버린다. 아예 온라인 게임을 초월한 전혀 새로운 모습의 게임을 소설 속에서 창조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가 그렇게 창조했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니까. 하지만 온라인 게임 그 자체를 소설 속에 넣어놓고서는 앞뒤가 안 맞는 부분에 창작물이니까 괜찮다는 방패를 붙여놓는 것은 너무나 치졸한 짓이다. 재밌는 소설을 쓰기 위해 겜판소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설을 쉽게 쓰기 위해 겜판소를 선택한 작가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4. 설정의 미흡함

달빛조각사』는 『신마법의대륙 패왕의진군』에서 설정을 따왔다. 이처럼 게임소설은 모티브가 되는 게임이 있다. 이 점이 역설적으로, 게임 세계관 설정을 미흡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모티브가 있다면 다른 판타지 장르와 달리 작가가 직접 해봤기 때문에 다루기도 쉽고 부담없이 쓰기엔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는 라이트 유저지 헤비 유저가 아니다. 헤비 유저들은 이런 소설 쓸 시간에 템 파밍 한번을 더 한다. 결국 작가는 모티브가 되는 게임을 깊이 알지는 못한 상태에서 세계관을 짜게 된다. 물론 작가가 노력해서 그 깊이를 메꾸면 되지만 그런 작가가 많지 않다는게 문제다.

따라서 원본 게임이 있는 덕에 기본 설정은 쉽게 짜지만, 동시에 원본 게임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에 세세한 설정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독자들도 직접 원본/비슷한 게임을 즐긴 경우가 많아 중세 판타지, 무협소설에 비해 오류를 지적받기도 쉽다. 그나마 작가가 원한다면 피드백이 쉽다는 장점은 있다.

작가는 개발자도 아니며 기획자도 아니고 프로그래머도 아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게임기획, 개발 과정,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별한 경우[12]를 제외하면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였을 뿐이며, 따라서 대다수의 게임소설 세계관은 본인이 해본 게임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여기에서의 게임경험은 플레이라 할수 있으며, 게임개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게임소설계에는 겉은 게임. 속은 판타지인 소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게임의 탈을 썼지만, 그 실체는 게임과는 상관없는 판타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작가가 게임 시스템, 운영, 기획 등의 일반유저가 알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 턱없이 낮은 이해도를 보이기에, 게임소설의 배경이 되는 게임의 설정이 굉장히 미흡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 소설은 결국 소설이다. 소설 작법에도 나와있듯이, 설정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현실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다루는 소설에서 이러한 설정의 미흡함은 곧 소설 내용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대다수의 게임소설은 레벨, 스킬, 아이템, 직업 등과 같은 게임 시스템, 밸런스를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 밸런싱의 붕괴는 곧 설정충돌로 직행하게 된다.[13]

그러나 이런 설정충돌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소설의 주된 흥미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주는 동질감, 유사한 경험에서 나타나게 된다. 헌데 이러한 오류가 쌓이고 쌓이면 게임소설은 게임으로서의 속성을 잃어가기 때문에 독자는 잘 읽던 이야기가 삼천포로 가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렇게 게임소설을 읽던 이유 상당수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다. 이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시스템에 대한 설정, 묘사가 사라지고 사실상 판타지화 되어간다던지, 아예 퓨전판타지로 변해버리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난다.

물론 작가는 게임 관련 전문가가 아니다. 작가의 본분은 스토리텔링에 있다. 흥미본위로 돌아가는 게임소설계는 그러한 설정을 짤 시간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설정에 힘을 빼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모를까 이는 변명이 되기 어렵다. 그러한 비전문의 분야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것 또한 작가의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관련서적을 읽고 주변의 게임의 시스템을 연구해본다면 지금과 같은 오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톨킨이나 여타 유수의 판타지 작가들은 판타지 세계에서 살다 와서 작품을 현실감있게 썼고, 미생의 작가는 직장인이어서 직장인들에게 공감받는 만화를 그렸던가.

좋든 싫든 환경이 따르지 않든, 대다수의 게임소설은 준비를 태만하게 하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우며, 그리고 그러한 비판을 받는 항목은 주로 다음과 같다.

4.1. 게임 개발·운영의 이해부족

좋은 설정을 만드는 것은 오류가 없으면서 밸런스가 맞는 게임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작가는 게임 기획자가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밸런싱 부분에 비전문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세계관과 크게 연관없는 스토리만을 써내려간다면 밸런스는 상관이 없겠지만, 게임 시스템, 이른바 랭커라던지, 스킬, 화폐구조와 길드 시스템 등을 서술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러한 밸런싱, 오류수정을 겸하게 될 수밖에 없다. 스킬 하나 수정으로 밸런스가 개판난 사례는 현실의 게임에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게임소설에서 작가의 역량은 더더욱 시험을 받는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소모적인 유희나 카타르시스, 기본 스토리까지도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밸런싱을 다루기 어려워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게임 밸런싱이 붕괴하고 장르 자체가 모호해지는 막장 전개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에 대안으로 순수 게임 소설이 아닌 퓨전판타지와의 융합을 꾀한 작품들이 잠깐 뜨기도 하였다. 정상적인 게임이 아니니 시스템도 비정상인 것이라는 것.

소설에 나타나는 게임은 대부분 '이게 게임인가?' 싶을 정도로 막장인 운영상태를 보이곤 한다. 이는 위의 밸런싱 문제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게임기획자도 아니며, 운영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미흡한 지식을 인지하지 못하고 판타지마냥 써댈 경우, 막장운영 수준의 게임을 만들기 쉬워진다. 이러한 미흡함에서 나타나는 막장운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히든피스의 남발
    주인공이 지존이 되게 만들어주는 레어스킬, 레어 아이템, 레어 클래스 등 밸런스에 영향을 끼치며 수량이 한정된 것들을 말한다. 당연하지만 정상적인 게임이라면 이런건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고해도 기간 한정이 필수이다. 지나친 현질, 노가다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레어스킬과 템만 해도 문제가 되는데, 그런걸 넘어 어떤 노력을 해도 한정된 소수만 얻을 수 있는 스킬과 템이라니. 거기다가 습득 방법도 공개가 안된 히든스킬? 유저들이 용납할 리가 없다. 이게 유저들에게 밝혀지는 순간 그 게임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꼴이 날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히든피스라면 많이 있다.[14] 하지만 현실의 히든피스들은 말 그대로 숨겨진 조각일 뿐, 기본적으로 밸런스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모든 유저가 노력과 운에 따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소설에서는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주인공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히든피스를 남발한다.
  • 버그에러의 혼재
    주인공은 항상 버그, 에러를 통하여 높은 확률로 히든피스와 조우한다. 이는 개연성은 커녕 게임이라는 동질감마저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운영자가 의도하지 않은 버그[15]로 히든피스를 조우했다? 그걸로 독보적인 이득을 얻었다? 최소 몇 주 정지, 정도에 따라서 영정감이다. 게다가 그래픽이 깨진다던지, 진행이 꼬인다던지, 게임이 튕긴다던지 하는 진짜 버그스러운 버그가 나타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

    무협의 기연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건 현실의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게임 판타지 소설이다. 플레이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게 하는 게임이 밸런싱이 잘 잡히고 인기 있는 게임이다. 이런 기회를 돈으로 뒤집어버리는 운영이 현실에서 많은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데, 버그로 어떤 유저가 공짜로 많은 이득을 얻었다? 당장 이 문서를 읽고 있는 위키러 중에서 납득할 사람이 있을까?
  • 게임메이커의 괴상한 역할
    왠지 주인공과 친구먹고 이것저것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주인공에게 약점을 잡혀 협박당하고 등쳐먹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현실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심각한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에서 금지되는 행동이다.[16] 혹은 반대로 주인공이 다른 유저들보다 지나치게 강해지는걸 감지하고 게임의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주인공의 스킬을 강제로 다운패치를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인공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가 생긴 건 『울티마 온라인』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초기 한국에서 서비스되던 『울티마 온라인』의 경우 자원봉사자와 GM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이 때문에 GM이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17] 그리고 GM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이런 묘사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GM이 실제로 뭘 하는 직종인지 아는 유저는 드물다. 일반적인 GM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며, 게임 운영을 위해 열심히 구르는 존재다. GM은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권한은 없다. 물론 책임을 져야 하는 팀장급은 정규직이니 제외. 뿐만 아니라 GM은 게임을 운영하는 'GAME MASTER'지 개발자나 기술자가 아니다. 물론 이건 현재의 게임 얘기고 미래의 게임에서는 GM이 다 해먹는다는 설정을 짜두면 또 모른다.

    물론 막장 GM의 사례가 실제로 없는 건 아닌데, 『리니지』 초창기에 특정 유저나 혈을 밀어주던 GM이라던지,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GM들이 대표적이다. 현재도 운영이 막장화된 온라인 게임에서는 막장 GM이 버젓이 활동한다.

4.2. 게임 시스템의 구성

게임의 시스템 구성 또한 위와 같은 맥락으로 문제가 되곤 한다.
  • 의미없는 스탯
    스탯은 게임소설의 대표적인 코드이자 카타르시스이다. 스탯이 있기에 게임소설의 아이덴티티가 살아나며, 또한 스텟을 올려 강한 적을 제압하는 모습은 확실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스탯의 존재는 굉장히 중요하다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스텟의 공식과 설정을 잘 잡는 것은 게임소설의 설정계획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하지만 대다수의 작가는 스탯의 공식이나 체계를 잡아두지 않는다. 복잡하기 때문이다.[18] 그 덕에 아이템이나 직업, 케릭터가 얼마 나오지 않는 초반부라면 "힘을 찍었더니 공격력이 5 상승했다!" 정도로 어물쩡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충분히 스탯이 쌓이고 거기에 변동을 줄 수 있는 스킬, 아이템 같은 요소들이 넘쳐나는 후반부에 들어서면 스탯은 별 의미가 없는 숫자 과시가 되어버린다. 작가가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설정을 제대로 짜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 스탯이 어느 정도의 효율을 내는지, 이것이 오버밸런스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되어버린 탓이다.
    • 물론 스탯을 완벽하게 짜놓을 필요는 없다. 그게 작가 개인이 가능하다면 게임사가 밸런스로 골머리 아플 일이 줄어들 것이다. 다만 게임소설에서는 중간에 설정을 바꿔도 상관없는 방법이 존재하는데, 바로 밸런스 패치다.[19] 그러나 이런 패치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게임소설이 지천에 널려 있고, 패치는 남발하면 독자의 흥미를 잃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처음부터 설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소리가 나오게 된다.
  • 낮은 위험 높은 보상
    보통 게이머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낮은 위험엔 낮은 보상이, 높은 위험엔 높은 보상이 주어진다. 이 두 가지를 선택해 나가는 것이 게임의 골자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주인공에게는 언제나 낮은 위험에 높은 보상만이, 그리고 적들에게는 높은 위험에 낮은 보상만이 나타난다. 경쟁자와의 퀘스트에서 주인공은 현명한 선택으로 위기를 간편히 극복하거나 기연에 의해 쉽게 압도하는 데 반해, 경쟁자들은 늘 재수가 없거나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허무맹랑하게 죽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주인공 보정이라는 게 있고 실제로 어려운 코스를 간단히 극복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권선징악의 쾌감도 줄 것이며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도 주어진다. 하지만 수천만의 인원이 플레이하는 게임이 이런 식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 그 게임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소수만을 위한 게임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이탈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런 식의 진행은 독자의 몰입감을 떨어트리는 요소가 된다.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험이 위험같지가 않아지기 때문. 이는 나중에야 정신차리고 주인공에게 난관을 줘도 몰입이 어렵게 한다. 케릭터에 대한 작가의 과도한 애착과도 관련이 있다.
  • 과도한 사망 패널티
    사망 시의 페널티는 소설마다 크게 다르다. 게임소설에서는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혹은 다크 게이머 주인공의 위기감을 북돋기 위해서 캐릭터 사망 시 하루 혹은 주 단위의 계정 블록을 당하거나, 아예 캐릭터가 삭제되는 경우도 있다.[20] 그러나 현실감이 느껴지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무리가 있다.
    • 일반적인 온라인게임 서버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죽는 유저수는 결코 적지가 않다. 일반 온라인게임도 이러한데, 한 나라의 인구 이상을 다룬다는 대부분의 게임소설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얘기다. 한 달도 아닌 한두 주만 지나도 최소 수천 명의 유저가 강제적으로 서버를 이탈하게 된다. 여기에 시간 가속까지 더해지면 죽었을 때의 패널티는 더욱 심각해지는 셈이다. 한 번 죽으면 게임 내 시간으로 2~3일을 날려 버리는데, 학교도 2~3일을 빠지면 진도를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길드전을 한다면, 아예 길드 건물 몇 채 없애는 것도 순식간이다.
    • 따라서 길드 전쟁 한번 터지면 서버가 유령서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겜판소에서 이러한 문제가 표출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주인공이 쟁을 뛰며 스킬 하나에 수백 명씩을 때려잡아도 게임은 서버의 인구유지에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이쯤 되면 업체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 이런 아름다운 페널티로 인한 유저들의 이탈과 반발, 그리고 인구부족으로 인한 이런 저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보통 겜판소에서 게임접속기기의 값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거나 계정비를 내는 것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21] 사냥하다 스킬 삑살 한번 나서 캐삭이나 반 년 블록을 먹기라도 하면 유저는 회사의 서비스에 큰 감격을 금치 못한 나머지 게임을 접음으로써 보답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PC방 점주들이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기 전에 주주들이 기획자를 갈굴 것이며 사실 이건 법적인 문제도 있다. 고객한테 돈만 받고 서비스를 거부한 것과 같아서 사기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 무의미해지는 레벨
    엄청난 수의 'Level up!!!'은 굉장한 쾌감을 준다. 그 덕에 대부분의 게임소설은 꼭 한 번씩 괴물같은 레벨업을 보여주곤 한다.[22] 하지만 이런 레벨은 초중반에서나 의미가 있지, 가면 갈수록 내다버리는 것이 되어진다. 예를 들어 고레벨의 상대를 적절한 컨트롤과 전략으로 뭉개버리는 주인공은 흔한 모습이다. 컨트롤로 성기사 잡아봄 그리고 "레벨은 내가 높은데!"라며 죽는 상대는 거의 필수요소급이다. 이와 같이 레벨은 다른 상대와 주인공의 객관적인 수치 비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주인공이 조금 강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소로만 써 먹기 시작한다.
    • 레벨의 무의미함은 작가의 준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레벨에 따라 스텟이 오르는 정도라던지, 레벨마다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의 구조를 제한하는 것 또한 중요한데, 작가 자신이 흥미 본위로 진행하다보니 나중에 레벨이 높을 때나 나와야 될 것을 초중반에 다 드러내버리기 때문이다.[23] 그러다 보니 게임 밸런스도 빠르게 무너져버리고, 레벨에 따라 내세울 만한 게임적 요소들도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에 결국 레벨은 갖다버리고 컨트롤 싸움이라던지, 혹은 퓨전판타지화를 선택하게 되어버린다.
  • 초중반에 집약된 흥미로운 요소들
    보통 게임의 흥미구조는 후크-흥미반복-최대절정과 하강의 구조를 지닌다. 후크는(hook)는 게임을 시작하는 게이머의 흥미를 강렬하게 끌어올리는 기능을 한다. 그 이후로는 주기적으로 흥미의 하강과 증가를 반복하여 게이머의 흥미를 자극하며, 이러한 반복은 점점 높아져가다 마침내 절정에서 최고의 흥미를 찍고 완전히 하강하게 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후크다. 후크는 강렬하게 흥미롭지만, 후반부의 흥미반복과 최대절정보다 높아서는 안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재밌고 흥미로운데 나중에 나올 것들보다 쌔선 안된다는 것이다. 한편 후크 뒤에 이어지는 반복도 바로 후크보다 재밌기 보다는, 한두 차례 정도는 후크에 못 미치게 재밌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후크의 반복이 되며, 뒤에 준비할 흥미곡선에 무리를 주기 때문.
    •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지적받는 게임소설들이 다루는 게임은, 예의 이 후크를 지나치게, 강렬하게 설정하기 일수이다. 또한 후크 이후 정상적인 흥미구조가 아닌 이 후크를 반복해버려서 흥미곡선을 낭비하곤 한다.
    • 예를 들면 초중반부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스토리, 신대륙의 개척이라던지 놀라운 종족의 비밀, 직업의 개방 등등 다양한 소재가 나오지만, 중후반부에 들어서선 지루한 길드전과 패권전쟁, 지존등극에만 스토리가 집중되는 게임소설들이 그 예이다. 아껴두거나 완급을 조절하는데 쓸 흥미소재들을 초중반에 빽빽히, 자극적으로 집약시키다보니, 후반부의 소재가 고갈되어버리거나, 혹은 단맛에 익숙해져서 더이상 단맛을 느끼기 어렵게 된 것처럼 무리를 줘버린 것이다.
    • 이러한 것은 실제 게임들의 종착점이 저래서인 문제도 있다. 한편 게이머인 작가가 게임의 흥미구조를 제대로 회상하지 못한 점도 크다. 게임을 하고나면 늘 재밌는 기억만 나곤 하는데, 실제로는 초반부의 후크 이후로는 계속해서 적당한 흥미를 반복했을 뿐이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제대로 된 절정을 경험한 것이기 때문. 하지만 이러한 흥미로운 추억에 의지하여 게임소설의 게임을 서술하게 되면, 초중반에 흥미가 집중되었을 뿐 후반부로 들어서선 전혀 재밌지가 않은 게임이 완성 될 것이며, 이런 게임을 서술하기 때문에 소설 또한 재미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24]
    • 한편 이러한 흥미곡선의 조절실패는, 인터넷 연재의 단점도 작용한다. 인터넷 연재는 글을 이어서 읽는다기보단, 단편을 집합하여 읽는 형태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흥미곡선이 꾸준하게 이어지기 어렵고, 따라서 작가는 이를 대체하기 위해 각 편의 흥미도를 극도로 높히게 된다. 이는 인터넷 연재시에는 무리가 없을지 몰라도, 후에 다시 읽거나 출판할 경우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4.3. 기술발전에 맞지 않는 모습

등장하는 가상현실의 수준은 오버 테크놀로지 수준으로 엄청나지만, 게임 시스템은 구시대적인 MMORPG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본적인 게임의 시스템이 고무줄처럼 쓰여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 게임 시스템 외에도 게임 내의 NPC는 사람과 같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인공지능이 실제 생활에선 전혀 쓰이지 않고 게임에만 쓰인다.
  • 가상현실을 구현할 정도로 기술 수준은 높지만 인터페이스는 손으로 클릭하거나 또는 음성으로 말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장 이후에는 그 영향인지 인스턴스 던전 등의 시스템이 등장하는 겜판소가 늘고 있지만, 히든 피스 같은 요소들 때문에 밸런스는 파탄 상태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하는 온라인 게임은 거의 세계 최고의 쉐어를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로 수수께끼지만 보통은 리얼함 덕분에라고 설명된다. 해당 세계의 유일한 가상현실게임이라는 식으로. 독과점의 폐해.
  • 반론에서 예시로 든 헐크는 감마선에만 쬐여서 변하게 된 원작과는 달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슈퍼솔저 혈청 복제품과 감마선의 복합적 요인에 의해 변하게 된 것으로 변경되었다. 이처럼 마블 히어로도 시대 상황에 맞게 설정이 유연하게 변경되곤 한다. 하지만 겜판소는 시대 상황과 독자들의 인식 변화를 반영하여 더욱 그럴듯한, 있을 법한 세계를 만들어낼 생각은 않고 초창기의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에만 급급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감마선을 쬔다고 해서 인간이 헐크가 되진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허구적 상상력을 위해 현실성을 희생시키는 것은 창작자라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허구성을 방패막이 삼아 설정붕괴를 자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예컨대 마블 코믹스의 세계에서는 감마선을 쬐면 괴물이 될 수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면, 독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헐크는 감마선을 쬐고 괴물이 됐는데 어보미네이션이 감마선을 쬐고도 괴물이 되지 않았다면 문제였겠지만, 어보미네이션도 괴물이 되었으니 설정상 문제는 없다. 문제는 겜판소에서 보여주는 설정상의 기술 격차는 마치 브루스 배너는 감마선을 쬐고서 헐크가 됐는데 어보미네이션은 감마선을 쬐고서도 괴물이 되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는 거다. 이는 절대로 허구적 상상력을 방패로 삼을 수 없다. 작품의 완성도는 설정이 허무맹랑하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설정의 앞뒤가 맞지 않을 때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5. 흔한 클리셰

대다수의 요소는 초기에는 신선하였으나, 이후 남발하면서 흔한 클리셰로 정착하기도 하였다. 이의 남용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 상황.

5.1. 게임 관련 클리셰

  • 현거래
    모든 겜판소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 현실과 게임세계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다. 현거래가 존재함으로써 주인공은 게임만 하는 '막장 폐인'에서 게임도 하고 돈도 엄청나게 버는 '개념인'으로 바뀌게 된다. 게임상에서 돈만 많이 벌면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최상위권 게이머는 게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되는 구도는 거의 필수급. 하지만 현거래 역시 이중잣대가 존재한다. 주인공이 하는 현거래는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상대방이 하면 더러운 현질이 된다. 더불어 반동인물이 아무리 현질을 해도 주워다 쓴 주인공에게 발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이템을 내다 팔기만 하고, 결코 사진 않는다.[25]
  • 다크 게이머
    작품 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작업장. 그러나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대리만족을 위해서 주인공이 겜판소에서 높은 확률로 가지는 직업이기도 하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바닥에서만 통용되고 있는 단어다. 주 수입원은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현거래로 팔아서 먹고 사는 직업으로, 현금과 게임머니의 비율은 대체 왜 소설 속에 실물 경제가 있는지 의아해질 수준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이치를 알아보지 않고 쓰는 관계로 대개 게임머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오르기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화폐를 찍어내는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게임상의 화폐가치는 게임사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26] 때문에 게임회사에서는 간간히 도박성 짙은 아이템을 추가해서 그렇게 풀린 화폐를 회수하려고 하거나, 『EVE Online』처럼 엄청난 양의 재화 소모가 아예 일상화된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러한 돈의 가치는 금전에 쪼들리는 주인공이 게임을 해야하는 당위성을 부여해 준다. 대리만족의 시작이자 끝인 겜판소의 전개 상 현실적인 노가다를 통한 작업장 방식보다는 PK나 레이드를 통한 득템으로 일확천금을 얻게 된다.[27] 대부분의 겜판소에서 후반부쯤 가면 주인공은 게임머니만으로 재벌이 된다. 1권에 찢어지게 가난해서 할 수 없이 게임을 시작한 주인공이라도, 전혀 환금을 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 속에 재투자한다.
  • 길드
    크게 나쁜 길드, 좋은 길드 두 가지로 나뉜다. 나쁜 길드는 위의 여러 가지 악행을 일삼는 집단이다. 주로 악역으로 설정되어 신나게 얻어맞는 역할을 담당하며, 원래는 게임 내에서 어느정도 위치를 가진 집단이었으나, 주인공 하나 때문에 얄짤없이 멸망한다. 반면 주인공이 들어간 좋은 길드는 무적의 정예부대로 성장한다.
  • 가상현실
    대부분의 겜판소는 체감형 리얼 가상현실을 표방하고 있다. 주인공이 처음 게임에 접속하고 "우와 이거 정말 리얼하잖아!"라고 하는 장면은 클리셰 중에서도 극강의 클리셰.
  • 피드백
    넷카마 짓을 막기 위해 현실의 외모를 그대로 스캔하거나 해서 투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28] 가상현실이니까 현실이 그대로 피드백되는 쪽이 오히려 짜증날 것 같지만, 아무래도 현실에서 안여돼의 외모를 한 인간이 가상세계에서 간지남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쪽의 작가들도 참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주인공은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어야 하므로 현실의 외모도 괜찮다. 피드백의 정도가 극심한 경우, 심지어 고통 등의 감각도 거의 그대로 피드백 된다. 트라우마나 쇼크사 우려 때문에 법률적 규제가 있을 것이 당연한데도 회사 측은 당당하게 피드백 기능을 제공한다.

    왠지 갇혀서 못 나오거나 거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 막장게임이 꽤 있다. 바다에 빠져 질식사 했더니 실제로 질식사를 한다던가. 이러한 과다 싱크로율에 대한 설명으로 상당수 작품들의 경우는 반전을 이용하는데, 바로 그 게임이 사실은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29] 그 게임회사 사장은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최소 무기징역이다. 미국같이 누적 형량제를 적용하는 국가라면 억년 단위의 형량도 가능하다.

5.2. 등장인물 클리셰

  • 고아
    주인공이 밥 먹고 자는 시간도 줄여서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다. 또한 돈 없는 주인공이 미성년이면서 큰 돈을 벌 수 있는게 게임뿐이라는 선택지도 된다. 다만 게임비에 대한 걱정을 없애기 위해 이벤트 당첨이나 부모님의 유산, 현거래부터 마루타, 납치 같은 무리수 설정까지 등장했다. 특히 납치, 감금은 현실에 대한 걱정없이 오직 주구장창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에서 2013~14년 언저리부터 각광받는 트렌드. 여러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편하다.
  • 무술도장
    어느 순간부터 겜판소의 필수가 된 것이 '현실에서의 수련 = 가상게임에서의 능력 향상'이다. 그래서 겜판소 세계관의 인물들은 현실의 체력단련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 체력단련을 하는 기묘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 [30] 보통 관장의 딸내미라는 식으로 겸사겸사 히로인 한 명 주워 먹는다. 유사 바리에이션으로 헬스장 등이 있다. 이 경우에도 히로인을 주워 먹는 점은 변함이 없다.
  • 여전히 현대와 다름없는 사회
    가상현실이 보편화되어있을 정도로 발전된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제외한 주인공의 생활은 현재와 다름이 없고, '게임용'을 제외하면 과학적 진보도 없다.[31] 이건 순전히 작가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은 작가의 현실인식 부족으로 현실보다 더욱 막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과학자가 다 게임 계열로 갈아탄 건지 후반부에는 이상한 과학자만 많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대다수의 겜판소의 경우 주인공이 하는 게임이 전 세계 온라인 게임 마켓 점유율의 9할 이상을 차지하며, 조금 설정을 짠 경우 주인공이 하는 '장르'가 쉐어의 9할, 조금 더 설정을 짤 경우 다른 장르의 가상현실 게임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상현실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것은 PARC도 IBM도, 마이크로소프트 레드먼드도 아닌 게임 회사. 애초에 가상현실을 구축하려 연구하다가는 그 게임회사는 100% 망한다. 마치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보드게임 회사가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 기술을 다른 분야에 응용하지 않는다.


    게임플레이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리기 위해 보통 뇌파를 제어해서 체감 시간을 늘리는 기술이 적용되는데, 놀랍게도 이것을 업무/학습에 응용하거나 기타 작업시간을 단축하는 데 응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고작해야 『신마대전』 정도일까.[32]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영화 『게이머』 등 가상현실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응용하려는 시도가 가뭄에 콩 나듯이 보이기도 하나 대부분은 그런 거 없다. 현실과 동일한 느낌으로 리얼한 피드백이 되질 않아 실용성이 없어서 활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는 작품도 있으나, 장비 조작법이나 다양한 상황을 훈련받을 수 있다는 점부터가 큰 메리트라는 점[33]을 생각하면 그다지 납득이 되는 부분은 아니다.

6. 양판소와의 비교

본 내용을 잘 읽은 위키러라면 상술한 모든 내용이 양판소에 대한 비판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본 내용을 압축하면 빈약한 설정, 개연성 붕괴, 클리셰 남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양판소의 문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겜판소와 판타지 소설의 공통점이라면 왠지 쓰기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없이 대충 설정 만들어내서 게임이니까, 판타지니까 대충 진행시키는게 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다는 것. 그러나 보기와는 다르게 좋은 게임설정, 판타지설정을 짜는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즉 능력없는 작가들이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피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 개연성, 클리셰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개나 소나 겜판소, 판타지소설을 쓸 수 있으니 그만큼 망작 비율이 많을 수밖에.

7. 비판과 실제 게임소설 연재와의 차이

비판을 비판한다
이 문서는 대부분 형평성에 맞지 않는 설정을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적은 여러 소설의 스토리, 설정 붕괴와 부실을 지적하기 때문에 얼핏 타당하게 들리고 이를 지킨다면 괜찮은 게임소설을 쓸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이 항목은 독자 입장에서의 비판이 다수 섞여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작가의 입장에 서서 이 비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겜판소라는 장르 자체를 쓸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독자-작가간의 온도차 문제는 게임소설이 '게임'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혼동되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7.1. 기술 형평성에의 지적

이 항목엔 기술 형평성을 지적하는 서술이 많다. 놀라운 기술이 게임에만 쓰이고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겜판소라는 장르 자체는 놀라운 기술을 토대로 미래에도 실현되기 어려운 게임을 즐긴다는 설정을 깔고 가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기술 형평성의 오류는 자연스럽게 타협이 된 상태로 읽게 되므로 노골적이지 않은 이상 괴리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또한 작품에서 현실과 가상현실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룰 게 아니면 기술 발전이 사회에 미치는 보편적인 영향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인간과 다름없는 고성능 인공지능 로직을 탑재한 NPC가 게임에서만 쓰인다 한들 작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고 독자들이 반발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게 문제가 되었다면 원자력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헐크가 유행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7.2. 게임 시스템, 게임 기획에 대해

특히 위 항목에서는 게임 기획, 시스템과 연관하여 게임소설 설정 준비의 미흡함을 다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가장 중요한 점은 게임소설이란 '게임'을 기획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집필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 기획은 참고가 될순있어도 소설 집필과정에서 철저하게 본받아야할 항목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게임 기획과 소설은 골격부터가 다르다. 소설은 단방향적이지만, 게임 기획은 상호작용적인 성격을 전제하고 만들어내는 전혀 다른 분야이다.[34] 예를 들어 게임 스탯공식을 계산한다고 가정하자. 실제 게임 기획에서는 표준정규분포 모델 등 통계학, 경제학 모델을 동원해서 스탯 공식을 계산한다. 게임 월드가 너무 빨리 만렙 유저로 포화되는 것을 막고 아이템 가격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인데 소설에서 이런 걸 계산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소설에서는 작가가 묘사하고자 하는 장면만 묘사되고 묘사된 장면만이 소설의 전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설 전개상 주인공이 이 장면에서 10레벨을 올려야만 한다면 스탯 공식은 집어치우고 당장 10레벨을 올려줘야 하는 것이다.

이는 스탯 외의 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게임소설에 쓰일 게임 시스템을 짤때엔 이야기 장치로서의 역할에 비중을 더 두고 생각해야 할 일이며, 게임 기획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참고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게임시스템에도, 현실성에도 그리 엄격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면 텔레파시수준의 통신이 가능한 가상현실 기계가 있는데도 굳이 가상키보드가 나온다거나 알림창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오롯이 게임 기획이고 시스템적인 요소로 작가가 설정한 것이다. 만약 주제와 이야기만 확실하다면, 전뇌공간에 천지인 자판이 나와도 독자는 조금의 괴리감조차 느끼지 못할것이다. 애초에 하드 SF가 아닌이상에야, 스토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게임 시스템 고증과 현실성은 작가의 마음대로 설정할 부분이다.

또한 실제 게임 기획에서는 확률과 통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은 스토리의 필연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확률통계를 먼저 계산하는것은 옳지 않다. 예를들어, 강화 성공 확률이 0.01퍼센트라도, 스토리상으로 그 강화를 성공하는 것만이 이후 진행에 아주 중요하고 확실하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면, 그 강화는 성공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0.1%가 성공할때까지 돈과 시간을 미친듯이 쏟아붓는게 스토리상으로 중요하고 재미가 있다면, 그래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게임소설/비판에서처럼 게임론에 신경쓰면서 스토리를 진행하는게 아니라, 게임 이전의 소설으로서의 기능에 집중하여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이 전개를 남발하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문제가 있다.

7.3. 주인공 편향적인 소설?

주인공 편향적인 스토리는 소설인 이상 어쩔 수 없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이고 두번째가 사건, 마지막이 배경이다. 배경인 게임이 인물을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갈아엎어버려야 할 정도로 인물과 주인공은 중요하다. [35]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보면,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공정성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이야기이다. 예를들면 현실에선 프로게이머가 아닌 이상 PvP의 승률은 50% 언저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겜판소에서 주인공이 한번 이기고 한번 지고를 반복한다면? 독자에게는 답답하고 진전이 없는 주인공으로 읽혀지기 쉽다. '플롯 반복'으로 인한 스토리 기대에의 하락이란 측면에서의 지적이 우선이 되고 중점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 공정성을 먼저 언급하는것은 소설으로선 괴상한 일인것이다.

또한 버그에러로 인해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템을 얻는 전개가 비판받는 이유는 대개 그 전개가 주인공을 아무런 댓가 없이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지, 그 자체가 문제인것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쉬운데, 손쉽고 약한 튜토리얼 몬스터를 잡는 퀘스트를 수행하던 주인공이 버그나 우연으로 인해 방어력이 마이너스인 갑옷을 착용하게 되어 튜토리얼 존에서 남들은 하지 않은 개고생을 한다던지등의 시련으로 몰아넣기 위한 버그는 독자들이 상당히 환영하는 전개이다.


[1] 양판소조차도 사망에는 얄짤이 없으며, 부활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대가가 크다고 나오는 편이다. 따라서 캐릭터를 어느 정도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지만, 겜판소는 그런 게 전혀 없는 상태다.[2] 캐릭터 삭제, 레벨 다운[3] 다만 실제의 죽음과 연결시키는 경우 등장인물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가 메인이 되고 게임은 그냥 세부적인 설정으로 변해서 게임 판타지보단 생존물의 느낌이 강해지기 때문에 좀 애매하다.[4] 직접 조작할 수 없는 시네마틱과 강제 이벤트의 비중이 큰 콜 오브 듀티 시리즈 같은 경우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게임보다 영화에 더 가깝다고 평하기도 한다[5] 그리고 인터넷 방송/한계 항목에서 말하듯이, '내가 즐기기 위한 게임'과 '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게임'은 다르다. 많은 겜판소 작가들이 착각하는 점이기도 하다.[6] 과거와 다른 MMORPG의 인식을 보는것도 중요하다. 겜판소의 주류는 MMORPG인데, 과거 MMORPG는 다수가 즐기는 주류게임이었으나 현재에는 과도한 현질과 폐쇄성으로 인해 린저씨와 같은 유저들이 주로 하거나, 그만큼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만 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MMORPG를 다룬 겜판소가 마찬가지의 인식과 평가를 피하긴 어렵다는 것.[7] 주로 하렘으로[8] 달빛조각사의 이현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달빛조각사가 사기다 아니다로 갑론을박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밸런스가 맞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정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주인공이 이기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론상 최강이지만 컨트롤이 어려워서 사장된 직업인데 주인공이 신컨이라거나, 적이 결정적인 순간 뻘궁을 날렸다거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지휘크리가 떴다거나. 어찌됐든 독자가 그 순간을 시스템에 기반했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납득할 수만 있다면 된다. 이걸 버그와 밸붕 치트로 대충 때우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9] 겜판소가 쇠퇴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공정하면 자극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공정하지 않으면 온라인 게임의 존재의의를 상실하게 되는데, 이 미묘한 밸런스를 잡을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었다.[10] 사냥터 통제는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짐승들이 자신의 사냥터에 다른 경쟁자가 오면 쫒아내는 것을 생각해보자.) 버그나 치트는 그렇지 않다.[11]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어난 장르가 게임빙의물이다. 혼자 즐기는 싱글플레이 게임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에 주인공을 굴리든 최강으로 만들든 버그가 난무하든 독자는 납득할 수 있다.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주인공만을 위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싱글플레이 게임은 같기 때문이다.[12] 작가의 전직이 개발자였거나 프로그래머 였던 경우[13] 스텟 수식의 오류, 떡밥회수 실패, 스킬과 아이템 밸런스 붕괴 등등.[14] 이스터에그로 존재하는 특수한 아이템이나 칭호, 또는 한정 이벤트로 얻은 아이템 등이 이런 경우.[15] 버그는 말 그대로 개발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생긴 현상을 말한다는 것을 명심하자.[16] 한 가지 예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불타는 성전 확장팩이 출시되기 전에 날아다니는 탈 것을 보여줬던 GM이 있었는데, 곧 짤려버렸다.[17].hack』 시리즈에서는 GM이 개발에 대한 권한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18] 대체로 아는 게임에서 복사하고, 조금 변용을 가하는 정도다.[19] 다만 대부분의 게임소설 내 게임은 어떤 천재에 의해 이미 완성되어있다. 즉 밸런스 패치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20] 하루 사망 패널티는 『달빛조각사』가 대표적이다.[21] 심지어 접속기는 해당 게임만 접속가능한 전용 콘솔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22] 레벨업 이후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와, 강력한 몬스터를 압도적으로 잡는 모습은 굉장하기까지 한 클리셰.[23] 예를 들면 유니크아이템이라던지, 고레벨 퀘스트 등[24] 물론 이런 완급조절을 거부하고 각 권의 흥미도를 자극적으로 요구하는 출판사의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긴 하다.[25] 극단적으로 『레이센(소설)』의 경우 현거래로 창업자본금을 모으는 것이 바로 게임을 하는 목적. 다만 레이센의 경우는 작업장 스토리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해당 클리셰를 많이 벗어난 편이다.[26] 《달빛조각사》의 경우 이 사실을 언급하며, 유저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화폐 가치 하락이 덜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또한 골드의 환율을 비롯해 서버에서 현금이 얼마나 돌아다니는지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으며, 주인공의 수입은 아이템 판매에서 방송국 중계로 전환함으로써 현금과 골드를 분리했다. 나름의 해결책을 보여준 셈이다.[27] 노가다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희화화되거나 몇 줄로 생략하고 끝난다.[28] 물론 계정 방식으로 운영돼서 주인공이 넷카마짓 하는 소설도 있다.[29]하룬』이나 박건이 쓰는 대부분의 작품을 보면 사실 그 게임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수단이라거나,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의 기술을 배우기 위한 거대한 학습의 장이었다는 식.[30] 물론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잘 싸우겠다고 현실에서 무술 배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평범하게 같은 유파들끼리 예의 차리고 시합장에 올라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온갖 병기에 괴수, 괴물, 그리고 마법 같은 초현실적인 공격수단까지 나오는 게 게임이다. 그런 싸움에서 고작 몇 개월, 몇 년 배운 걸 응용해서 대처할 수 있을 정도면, 그 무술에 더 진지하게 도전해볼 경우에는 그 쪽 업계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수준의 재능이란 것이다.[31] 심하면 현실 내용이 아예 안 나온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예 빼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32] 인터넷이 개발되기도 전에 나온 세계 최초의 사이버펑크 소설인 『스노우 크래쉬』에서 이미 가상현실의 시간 연장을 이용한 가상 기업체제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33] 스틸비스트 같은 소프트웨어가 도대체 왜 팔리겠는가.[34] 전문 용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35] 예를들면 대규모 업데이트가 일어났거나 주인공이 돈을 좀 벌어서 VR기기를 더 고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는 설정등으로 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