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00:58:16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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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피해자4. 논란거리 정리
4.1. 부대원들의 부대이탈 (일명 '빤스런' 사건)4.2. 권혁 해병을 돕지 않은 선임 해병들4.3. 기수열외4.4. 엉망인 실탄 관리4.5. 영내 음주4.6. 부상자 이송 문제
5. 사건 수사6. 사건 여파7. 사후처리8. 곁가지 사건들9. 관련 문서

1. 개요

2011년 7월 4일 해병대 제2사단강화도 선두소초에서 김모 상병이 동료 해병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4명의 해병대원들을 사망케한 사건이다.

참고로, 편의상 '총기난사'라는 익숙한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범인 김민찬 해병은 그냥 마구 난사를 한 게 아니라 평소 앙심을 가지고 있던 같은 생활관(B동 2생활관)의 동료 해병대원들을 노리고 그들에게 한 명 한 명씩 차례로 조준 사격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총격 사건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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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4일 해병대 제2사단 대원들이 지키고 있는 강화도의 해안 소초에서 일어났다. 이 부대 소속으로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던 상병 계급의 김민찬 해병[1](19)은 오전 11시 20~35분 경 교대 근무자들이 총기를 맡기는 틈을 타서 상황실 내 간이탄약고에서 K2 소총 1정과 실탄 75발과 공포탄 2발, 수류탄 1발이 담긴 탄통을 미리 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사건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가해자 김민찬 해병은 사건 직전인 오전 7시 30분에 창고에서 몰래 숨겨둔 소주 1병을 마셨으며[2], 오전 10시 30분에 잠이 깨서 나온 정준혁 해병(이병)과 창고에서 만나 대화하면서 "권승혁 해병(일병)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에 정준혁 해병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으나, 잠시 후 "소초원들을 다 죽이고 탈영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이들은 "지금 죽이자"면서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김민찬 해병은 상황실에서 상황병인 L 해병(상병)과 대화를 나누다 상황부사관인 H 하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상황실에 있는 총기보관함에서 병기를 탈취하고 탄약고 위에 놓여있던 탄통을 통째로 들고 나왔다고 한다.

H 하사는 고가초소 근무에 투입될 근무자에게 소총을 지급하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열었다가 교대 근무자의 소총을 반납받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그대로 열어놓은 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상황실을 비웠으며, 상황병 역시 이때 상황실을 비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민찬 해병은 정준혁 해병에게 수류탄 1발을 주고 고가초소를 폭파시키라고 지시한다. 오전 11시 40분경, 김민찬 해병은 생활관으로 가서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이승렬 해병(상병)에게 총격을 가했다.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상황부사관 모 하사는 쓰러져 있는 이승렬 해병을 발견, 11시 42분 쯤 119에 신고했다. 한편 당초 범행을 공모했던 정준혁 해병은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이 나서 고가초소 폭파를 실행하지 않고 가해자 김민찬을 피해 도망다닌다. 정준혁 해병은 이승렬 해병이 쓰러져 있음을 목격한 뒤 고가초소 근무자에게 이를 알리고 나서 계속 김민찬 해병을 피해 다녔다.

계속해서 김민찬 해병은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25)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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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6명이 잠자고 있던 제2생활관으로 들어가 좌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잠을 자던, 그가 정준혁 해병에게 직접적으로 죽이고 싶다고 말했던 권승혁 해병(20)의 가슴에 3발을 발사했으며, 그 다음으로 우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던 박치현 해병(상병, 21)에게 1발을 쏘았다[3]. 김민찬 해병은 계속해서 총을 쏘려고 다음 차례인 좌측 두 번째 침상에 누워 있던 권혁 해병(이병)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행히 권혁 해병은 먼저 김민찬 해병이 다른 해병들을 쏠 때의 총소리를 듣고 이미 깨어나 있는 상태였다. 김민찬이 자기 쪽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달려들어서 왼손으로 총부리를 잡아 아래쪽으로 꺾고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을 잡은 뒤 총을 완전히 빼앗으려고 상호간에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으나, 멜빵이 걸려 있어서 결국 총을 빼앗지는 못했다. 대신 권혁 해병은 가슴을 밀어서 김민찬 해병을 문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닫은 다음 침대를 밀어 문을 못 열게 막았다. 전입온지 겨우 보름 된 권혁 해병이 총을 빼앗으려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평소 해병 정신을 그렇게 강조하던 나머지 선임 해병들은 뒤에서 떨고만 있었으며 아무도 권혁 해병을 도와주려 나서지 않았다.

그 몸싸움 와중에 아래쪽으로 총이 발사되어 권혁 해병의 하반신에 네 발의 총알이 스쳤지만, 다행히 나 치명적인 부위를 건드리지 않아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 쪽 고환에 총상을 입었고, 뜨거운 총신을 맨손으로 움켜잡았기 때문에 에는 수포가 생기는 화상을 입었다.

권혁 해병이 가해자 김민찬 해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야 쓰러진 뒤[4], 피 흘리는 자신에게 지혈을 해달라고 주변 선임 해병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임 해병들은 지혈 방법을 모른다며 회피하기만 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옷을 찢어 스스로 지혈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권혁 해병이 총을 못 뺏는다면 그 다음으로 총알세례 받을 차례는 바로 자기 자신들일 테니까 자기들이 살기 위한 생존본능에서라도 같이 달려들어서 총 뺏는 걸 도와주는 게 당연했는데도, 방 안에 있던 선임 해병들은 겁에 질려 바짝 얼어서 꼼짝 못하고 뒷구석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게다가 권혁 해병이 이미 총부리를 잡고 밑으로 꺾어서 총구가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뺏으려고 몸싸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민찬이 전방에다가 총을 맘대로 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바로 방 안쪽에 있던 선임 해병들이 달려들어서 같이 힘을 합하면 어렵지 않게 총을 뺏고 범인을 제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상황이었다. 권혁 해병과 김민찬 해병이 둘 다 양손으로 총을 잡고 서로 안 뺏기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니까, 즉 범인인 김민찬 해병도 총을 안 뺏기려고 잡고 있는 거 외에는 손을 다른 데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사이에 다른 해병들이 옆에 다가와서 쉽게 그 총의 탄알집을 빼고 조정간 안전으로 돌려 놓기만 했어도 사실상 게임 끝이어서 그 다음은 맘 놓고 쉽게 총을 뺏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 방 안의 어떤 해병들도 전혀 도와주지 않고, 그저 방 구석에서 꼼짝도 못하는 패닉 상태에서 덜덜 떨며 눈앞의 싸움을 보고만 있었다는 건 한심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찌 보면 후술하는 빤스런보다도 이 부분이 이 사건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선임 해병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결국 권 해병은 총을 뺏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범인이 아래쪽으로 총을 발사해서 하반신에 총알을 맞고 만다.

그래서 권혁 해병의 아버지는 해병대 가족모임 카페에 올린 글에서, '권 해병이 총을 빼앗으려 몸싸움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선임 해병들 중에 한 명만 도와줬어도 총을 빼앗는데 성공했을 테니 권 해병이 총에 맞아 고환이 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런 한심한 선임들이 그동안 고참이랍시고 권 해병에게 과자를 토하도록 먹이는 등 괴롭히며 전통이니 뭐니 하고 떠들었다는 게 분통이 터진다'면서 해병대 선임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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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대 해병들 중에서 실무(자대) 배치받은 지 보름밖에 안 돼서 가장 해병대 물이 덜 든 권 해병만 유일하게 진정한 군인다웠다는 게 해병대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후 김민찬 해병은 생활관 바로 옆의 창고로 이동해서 공모자인 정준혁 해병을 만났다. 정준혁 해병이 약속과는 달리 고가초소를 폭파시키지 못한 것을 안 김민찬 해병은 동반자폭하기 위해 정준혁 해병으로부터 수류탄을 빼앗아 터트렸고, 얼굴 및 등에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정준혁 해병은 곧바로 달아났으며, 수류탄 파편에 의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김민찬 해병은 이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낮 12시 15분, 인천강화소방서 길상구급대 임동문 소방교(38) 등 6명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상자들을 이송했다.

한편 총격이 일어난 2생활관이 아닌 다른 생활관들에서 쉬고 있던 해병들은 총소리를 듣고는 놀란 나머지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와서 부대밖으로 도망을 치고 만다. 부대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속옷[5]만 입은 해병들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와 민가 쪽 등 여기 저기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이 상황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4.1. 부대원들의 부대이탈 항목에서 서술.

3. 피해자

총 4명의 해병대원들이 사망했다. 이승렬, 이승훈, 권승혁 해병 3명은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고, 박치현 해병은 현장에선 살아있었으나 강화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은 후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도중 숨졌다. 박치현 해병은 사고 하루 전이 생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미니홈페이지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또한 사망자 중 권승혁 해병은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전 멤버인 은지의 외사촌이고, 이승렬 해병은 개그맨 임혁필의 사촌동생이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 외에 권혁 해병을 포함해서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권혁 해병은 하반신에 4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고환이 하나 터져서 병원에서 이를 적출하고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한 개만 상실했기에 생식 능력 등은 지장 없다.

4. 논란거리 정리

군대 안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난 건 이번만이 아니지만 특히 이 사건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4.1. 부대원들의 부대이탈 (일명 '빤스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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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인근 민간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소리가 들리자 속옷 차림[6]의 해병대원 여러 명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와 민가 쪽으로 등 여기저기로 정신 없이 도망쳤다고 한다. 이건 분명히 탈영이고 군무이탈이라는 '중범죄'다. 군인은 위난을 피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고 이탈 명령이 있기 전에 도망을 쳐서는 안 되며, 위급 상황에서도 군무이탈은 원칙적으로는 처벌받는다.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침몰하는 함선에서 퇴함 명령이 내리기 전에 배를 벗어난 승조원들은 일단 사람 생명은 구해야 하니 똑같이 구조를 했지만 그 뒤 재판에 넘겨 처벌했다.

총소리를 듣고 놀랐을 테니 순전히 인간적인 면으로만 생각하면 도망치는 것도 이해할 만도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민간인이 아니라 군인이며, 그것도 언제든 조선인민군의 도발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전방 부대라는 점에서, 총소리 몇 방에 아무 대응도 못하고 부대를 이탈해서 인근 마을로 도망치기만 했다는 것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불안하게 만든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해병대 사건에서 부대 밖으로 도망친 해병들은 총격이 일어난 제2생활관이 아닌 다른 생활관에 있던 인원들이라서 총격의 목표 대상도 아니었을 뿐더러, 범행 현장을 보지도 못하고 그저 총소리만 듣고는 누가 쏘는 건지 무슨 상황인 건지 파악도 못한 채 무작정 무책임하게 도망간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문제인 것이다.

최전방 소초였으므로 총을 쏜 게 북한 공비였을 수도 있는 거다. 최전방 소초에서 난 총소리라서 북한군의 침투 도발이었을 수도 있는데 무작정 부대 밖으로 도망간 건 무책임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약 그 총소리가 북한 공비의 소행이었다면, 단 한 명의 북한 공비만으로도 최전방의 해병대 소초 하나가 적에게 접수됐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니 말이다.

그동안 귀신 잡는 해병대 운운하며 강인함을 과시하는 해병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부대 밖으로까지 도망친 것은 꽤 망신스러운 일인 건 분명하다. 온갖 불필요한 똥군기는 다 잡고 내무부조리만 많으면서, 정작 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 즉 비상 위급 상황에서 겁먹지 않고 용기를 내서 싸우거나 상황을 정리해서 주민을 안심시켜야 하는 사명감과 군기는 안드로메다로 갖다 버린 셈이다. 게다가 평상시에 해병대 부심에 가득차서 거만을 떨어왔던 그들의 행태와 대조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빤스런이라고 부르며 풍자하고 조롱하고 있다.

총소리가 들리자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해병대원들의 모습을 조롱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빤스런이란 신조어는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해병대 출신자들이 각종 욕 먹을 짓을 했을 때 간단한 한 마디로 놀리기에 좋아서 해병대를 깔 때마다 늘상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빤스런이란 단어가 워낙 인기를 얻으면서 갈수록 많이 쓰여서, 요즘엔 단지 해병대 뿐 아니라 누구든지 허겁지겁 도망가는 꼴을 조롱하는 상황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결국, 해병대 총격 사건 때 해병들이 망신스런 모습으로 군무이탈하여 도망간 모습을 희화화하는 표현으로 처음 만들어졌던, 도망가는 해병들을 놀리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던 '빤스런'이라는 비하어가, 이제는 해병이든 아니든간에 "어떤 상황으로부터 혼비백산하며 도망간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는 보편적인 속어가 될 정도로 유명해져버린 것이다.

즉, '빤스런'이란 신조어는, 좁은 의미에선 대한민국 해병대를 비하/조롱하는 표현으로서 과거의 '개병대'라는 오랜 비하 별명을 대체했고, 넓은 의미에선 황급히 도망간다는 일반적인 뜻이 되어서 예전의 '줄행랑'이라는 속어를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4.2. 권혁 해병을 돕지 않은 선임 해병들

제2 생활관에서 두 명을 쏜 김민찬 해병이 그 다음으로 권혁 이병의 침대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권혁 해병이 덮쳐서 총부리를 잡고 아래로 꺾은 뒤 총을 뺏으려고 몇 분간이나 사생결단의 치열한 몸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 방 안에 있던 나머지 선임 해병들은 벌벌 떨고만 있고 전혀 도와주지 않아서 권 해병은 총을 뺏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범인이 결국 총을 발사해서 고환(!) 등 하반신에 총을 맞게 된다.

만약 권 해병이 총을 못 뺏어서 김민찬 해병이 계속 총을 쏘게 된다면 그 다음으로 총알세례 받을 차례는 바로 자기 자신들일 테니까, 자기들이 살기 위한 생존본능에서라도 같이 달려들어서 총 뺏는 걸 도와주는 게 당연했는데도, 방 안에 있던 선임 해병들은 그저 겁에 질려 꼼짝 못하고 뒷구석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게다가 권 해병이 이미 총부리를 잡아 꺾어 총구를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뺏으려고 팽팽하게 몸싸움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범인 김민찬 해병이 앞쪽에다가 총을 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바로 방 뒤쪽에 있던 선임 해병들이 달려들어서 도왔으면 충분히 총을 뺏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해자 김민찬 해병과 몸싸움을 벌여서 생활관 밖으로 밀어낸 권혁 해병은 몸싸움 도중 하반신에 총상을 입어서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고, 주위에 있던 선임들에게 지혈을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선임 해병들이 지혈하는 법을 모른다고 발뺌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지혈을 해야 했다.

지혈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상처 부위에 붕대나 깨끗한 천을 대고 누르는 정도다. 군대 내에서는 목숨이 위험한 일들이 많이 생기는 데다 상시 군의관이나 의무병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최소 당장 목숨은 건지고 의료진과 접촉할 때까진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기본적인 응급처치 능력을 가르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간단한 지혈 방법조차도 몰랐다는 건 해병대는 군인으로서의 제일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시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해병대 교육훈련단 훈련 내용 중에 CPR을 포함한 응급법에 관련한 훈련이 분명히 존재한다. 자대 배치 이후의 훈련이 뒷따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구체적인 지혈 방법을 몰랐더라도 상식으로라도 지혈과 같은 응급처치는 간단히 할 수 있었다. 도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유사시 군용 허리띠나 침구류 등 지혈대 대신으로 쓰기 좋은 것은 주변에 많이 있었음에도 돕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소초원들이 고의적으로 돕지 않았거나 후임 하나 구할 용기도 없는 겁쟁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똥군기 타령하는 인간들이 대부분 이렇다.

제대로 된 지혈 교육을 못 받아서 지혈 방법을 몰랐더라도 총 맞은 후임이 코 앞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으면 당연히 달려와서 무엇이든가로 출혈 부위를 막든가, 상처 부위에서 심장과 가까운 쪽을 묶어 지혈시키는 정도의 상식적인 조치라도 하는 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당연한 행위다. 그런데도 중상을 당해 쓰러져 피 흘리고 있는 막내 신참 해병을 여러 명의 선임 해병들 중에서 단 한 명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은 해병대의 참담하고 부끄러운 한심한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해병도 도움을 주지 않고 보고만 있자, 중상을 입은 데다가 출혈로 정신을 잃어가던 권 해병이 할 수 없이 스스로 옷을 찢어 지혈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군인으로서의 기본 교육조차 안 되어 있다는 문제점 외에도 군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용기와 전우애조차도 제대로 안 갖춰져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4.3. 기수열외

자세한 내용은 기수열외 문서 참조. 그동안 군대 내의 총기사고는 대개 후임이 괴롭히던 선임을 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후임이 선임을 괴롭혀서 선임이 후임을 사살했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 성매매계: 해병대에서 군인들 자체적으로 계모임을 하여 휴가 나오는 군인에게 돈을 몰아주는 성매매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해당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수열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던 중 나오고 있는 기사들 중 하나로, 이 시례의 경우 여자친구가 있는 해병대원이 성매매계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거부하자 기수열외시켰다는 부조리가 드러난 사건이다. #
  • 기수열외 사례: 이 외의 기수열외 사례 등을 기사화하였다. 역시 사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별개의 사례들로 보인다. 기수열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던 중 나오고 있는 기사들 중 하나. #

4.4. 엉망인 실탄 관리

상식적으로 실탄 관리는 당연히 간부의 몫인데, 이 사건에서 김민찬 해병이 상근예비역에게서 탄약통 열쇠를 훔쳤다는 것. 게다가 이렇게 분대장도 아니고 상근예비역이 실탄을 관리한다는 것이 관례적이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

일반적인 부대에서는 병이 절대 총기함이나 탄약고 열쇠를 관리하지 않는다. 정상적이라면 중대장&당직사관과 당직부사관에게 모두 보고를 해야만 총기 취급이 가능해지고, 이 과정을 거쳐 총기를 취급할 경우 총기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총기운영대장에 기록도 해야 한다. 만약 목걸이 열쇠꾸러미나 열쇠함의 열쇠 하나라도 분실될 경우 당연히 중대 전체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난리가 난다.

이 정도로 엄중한 감시 속에서 보고 없이 총기함을 열려면 중대장&당직사관과 당직부사관, 여기에 행정반에 있을 상황병들까지 모두 제압하고 열던가 절단기 등을 갖고 와서 자물쇠를 부수는 수밖에 없다. 농담이 아니라 가 취침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일과 중에는 중대장 혹은 (육군의 경우)행보관이, 일과 후에는 당직사관이나 상황실 당직자가 총기함 열쇠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총기와 실탄함을 열어둔 채로 담당 부사관이 자리를, 그것도 고작 담배를 피우려고 비웠다는 것은 이들의 군기가 얼마나 빠졌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4.5. 영내 음주

원래대로라면 영내음주는 간부(보통 중대장 이상의 지휘관)의 지휘하에 특별한 날에[7] 한해 엄격히 이루어진다. 보통 병들이 영내에서 술을 구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인데, 김민찬 해병은 술에 취해 있었다. 오전 7시 30분에 창고에서 술을 마셨는데 이 술을 이틀 전 경계근무를 하던 중 몰래 빠져나가 편의점에서 구입했다. # 단순탈영을 넘어 초병의 수소이탈(군형법 28조)이다.

애초에 범죄를 마음먹고 근무지를 이탈하여 술을 사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막장스럽지만 이는 형법이론상 이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범죄전에 고의 또는 과실로 심신미약 상태를 야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는 심신미약 상태여도 형을 감하지 않는다.

이는 해병대 뿐 아니라, 육군 등 타군에서도 일부 민가 인근 소부대에선 간부의 묵인 내지는 동참 이 있거나 몰래 들여오는 형태로 암암리에 남아 있다. 특히 초소나 검문소가 마을을 지나가야 도착할 수 있는 경우는 동선에 따라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 들러 기호품 등을 사는 것을 간부가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고, 군 생활의 고단함과 비정상적인 처우로 인한 병들의 불만도 잠재울 겸 알고도 묵인해 주거나, 아예 대놓고 돈 주면서 오가는 길에 뭐 좀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지금에 비해 똥군기만 죽어라 챙기면서 FM대로 규정 지키는 경우가 드물었던 8~90년대 전역자들 중 이런 소부대에서 근무한 이들의 추억담(?) 속에 초소에서 몰래 마시던 막걸리 같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나마 단속이 심해지고 똥군기가 점점 척결되어가는 분위기에 따라 이런 모습을 지양해가기 시작했으며, 격오지 초소가 줄어들고 있는 점 등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보기 힘들어졌을 뿐이다.

물론 이런 경우가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다. 2018년 육군 제22보병사단의 최전방 초소에서 근무자들이 실탄과 수류탄을 지참한 채로 근무 중 음주 파티를 수차례 했고 거기에 더해 그 상황을 밀반입한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 적발된 적이 있다. #

4.6. 부상자 이송 문제

일부 외과 전문의들은 중상을 입고 사망한 박치현 해병이 곧바로 헬기로 이송돼 1시간 이내에 중증 외상외과 전문의에게 응급수술을 받았더라면 사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 해병은 국군수도병원 도착 후인 오후 3시 15분에 공식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국군수도병원 도착 당시 사실상 사망한 상태(D.O.A·Dead On Arrival)였다. 만일 총격 사건 직후 군이 곧바로 군 헬기를 불러 이송했더라면 1시간 이내에 수술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견해다. 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길상면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국군수도병원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90km이다. 보통 시속 200km로 나는 헬기로 이송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헬기가 김포에서 사건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1시간 이내에 이송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김포에서 온 헬기는 의료 장비가 장착되지 않아 곧바로 부르지 않았다"면서 "출혈이 심한 박 해병을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수혈받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해병이 총상을 입고 2시간 35분 동안 생명이 유지됐는데도, 중증 외상외과 전문의로부터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은 우리 군의 응급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65만명의 우리 군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상 환자가 2시간 35분 동안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1년 1월 미국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때 머리에 관통상을 입은 기퍼즈 하원의원은 단 35분만에 애리조나 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이러한 문제점은 이후 육군에서 발생한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임병장 사건) 당시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5. 사건 수사

초기에는 언론에서 총기난사 사고라고 불렀으나 수사결과 인위적인 사건임이 드러났다. 인터넷상에서 누리꾼들은 '김민찬 해병은 평소엔 군 생활을 잘 했다'는 증언[8], 전역을 9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총기를 훔칠 정도의 대담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보아 부대에 원한을 품고 계획되었던 행동이 아닐까라는 추측, 김민찬 해병이 다른 부대에서 지금 부대로 옮겨온 사람인데 문제가 있어서 온 게 아니냐는 추측들만 무성하지만, 실상은 훈련소에서 실시한 인성 검사에서 7가지나 되는 정신과적 문제가 제기되었는데도 해병대 측에서 집으로 귀가시키지 않은 점, 일일정찰 도중 해변에 죽어있는 물고기를 대검으로 난도질 하는 등 김민찬 해병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음이 부대원들의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

해병대 전역자들은 넷상에서 사건의 원인이 기수열외일 것이라는 의견을 많이 내놓았는데 이는 실제 사건수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 사건은 비슷한 양상을 보인 530GP 사건과 달리 '후임'이 '선임을 목표로' 삼지 않고 반대 양상을 보였고, 김민찬 해병은 구타, 왕따, 기수열외[9]는 없어져야 한다고 직접 진술했다. 사고조사관과 범인간 필담에서도 마찬가지 진술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고 후에 기수열외는 없었다고 김민찬 해병 스스로 번복진술했다. #

김민찬 해병의 사물함에서 3페이지 가량의 편지 형식의 메모와 유서 형식의 메모지가 발견되었는데, 자신을 비관하는 내용이었으며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
저를 바꾸려고 노력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제가 그만큼 문제아였고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진짜 제 심정을 말씀드리면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다 끝내고 싶다.

김민찬 해병은 입대 전 정신과 진료나 정신병력은 없었으나, 인성검사 테스트에서 7가지나 되는 정신과적 문제발견 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대에서는 관심사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고 한다. 증언으로 보아 범행 직전 감경을 고려해 음주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음주의 목적이 감경이아닌 맨 정신으로 범행을 저지르기 힘들어서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음주로인해 감경이 되지도 않았지만 실제로 감경이 된다고한들 사람5명을 죽인것은 매우 큰 중죄이기때문에 감경이 되던 안되던 최고형벌인 사형을 면하기는 힘들다. 또한 감경을 바라는 사람이 굳이 수류탄으로 자살시도를 하고 어차피 들킬게 뻔한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굳이 감경을위해 음주를 했다는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정말 감경을 원해서 사형을 면하고자했다면 여러명이 아닌 자신이 평소에 원한을 졌던 권해병만 죽였다면 모르겠지만 정말 감경을 원하는사람이 평소 원한도 없던 사람 여러명을 죽인다는건 아무리봐도 이치에 맞지않는다.

이승훈 하사가 기수열외와는 겉보기엔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며, 이 하사가 사살되었다는 건 김민찬 해병이 범행에 장애물이라 판단해 사살한 것으로 보며 총격 사건 자체가 기수열외로 인한 사건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증거라는 의견이 있긴 하다. # 그러나 김민찬 해병은 이승훈 하사는 사살했지만 소대장인 중위에게는 사살하기는커녕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난 뒤 수류탄으로 자해를 시도하였었다.

피해자 권승혁 해병의 유족들은 기수열외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권승혁 해병의 아버지인 권형구 씨는 이 사고의 가해자 김 해병이 자신의 아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혔으며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성희롱적 발언을 들었다고 아들에게 들었으며 거기에 권 해병은 오직 김민찬 해병 하나 때문에 군생활이 힘들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사실은 권 해병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당시 육군 하사로 군복무중이던 권 해병의 친형도 알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이 밝혀질 때까지는 더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다. 권 해병 유족들의 증언과 같은 사건들로 인해 기수열외를 당했을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김민찬 해병이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수열외가 정당화되지는 않으며, 마찬가지로 부대 내에서 아군을 향해 총격을 가한 가해자 김민찬 해병의 행동도 결코 정당화가 될수 없다는 것도 잘 기억하자.

한편,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2011년 7월 6일 새벽 1시 쯤에 같은 부대 소속인 김민찬 해병의 후임병인 정준혁 해병이 사전에 범행을 모의한 정황을 포착하면서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정준혁 해병을 체포하였다. 정준혁 해병은 구타를 없애기 위해 사고를 친 뒤 탈영하자고 뜻을 모았지만 실제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는데, 합동조사단이 허술한 무기관리를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준혁 해병의 혐의를 파악했으며 가해자인 김민찬 해병이 부대 상황실 내 탄약고에서 총과 실탄을 훔칠 때 정준혁 해병이 자신을 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김민찬 해병이 6월 4일 오전 10시에서 10시 20분 사이에 상황실 내 총기보관함에서 K2 소총을 훔치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간이탄약고에서 실탄 75발, 수류탄 1발 등을 훔쳤으며 이 과정에서 합동조사단은 정준혁 해병이 김민찬 해병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준혁 해병은 공모혐의에 대해 부인했지만 두 사람 모두 사고를 치고 탈영하는데 뜻을 모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2011년 4월 9일 부대에 배치된 정준혁 해병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부대원들이 정준혁 해병을 왕따시키면서 성경을 태우거나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비슷한 왕따 신세인 김민찬 해병과 평소 친하게 지냈으며 사건 당시에는 김민찬 해병에게 수류탄을 건네받아 근처 감시초소를 폭파시키려 했으나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포기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쉽사리 총기와 탄약이 도난당한 것은 허술한 탄약고 관리체계 때문이었다. 관리 담당인 상근예비역 김모 해병이 퇴근시 탄약고 열쇠를 상황실에 반납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근무시에 착용하는 옷에 넣어놓고 퇴근한다는 것을 안 김민찬 해병은 김모 해병이 퇴근 후 그 열쇠로 탄약고에 침입, 실탄과 총기를 꺼낸 것이다.

6. 사건 여파

이 사건으로 해병대의 총체적으로 무너진 기강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해병대에 대한 폭풍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것은 언론에 밝혀진 내용이며 앞으로 어떻게 밝혀질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해병대는 이 사건 이후 3진아웃제를 도입해 구타, 가혹행위 등을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성공 여부에 관한 논란 또한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해병대 대령의 해병대 운전병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성추행 사건들과 평상시의 제 항로로 멀쩡히 가고 있는 민항기에다가 사격을 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가 하면 해병대 소장이 상급자인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중장)을 음해했다가 구속된 하극상 사건까지 연달아 일어나서 해병대가 욕을 먹고 있던 와중에 이 사건까지 터졌다.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디씨인사이드의 해병대 갤러리에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기수놀이하던 고정닉들은 대부분 잠수타거나 같잖은 변명을 하다 다구리당해 묻혀 버린 채 유동닉들이 해병대 디스를 위해 대거 유입되어 난장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연대장 민모 대령대대장 한모 중령은 지휘책임을 물어 보직해임됐다.[10] 기사

그러나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애당초 지휘관이 부하들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하급 지휘관인 중대장에게 군법대로 가혹행위를 방지하고 적발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할 것을 주문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즉, 아무리 좋게 봐줘도 '부하들에게 신경을 안 썼다' 내지는 '부하들에게 휘둘렸다'는 이야기가 되기에 어떻게 봐도 지휘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미군의 경우에도 가혹행위를 묵인한 지휘관은 엄연히 자기 책임으로 일을 저지른 만큼 최소 보직해임, 책임소재에 따라서는 중징계 처분에 따라 강제전역도 당한다.기사

또한 국방부에서는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연루가 없다 하더라도 평소에 정모 해병에게 각종 가혹행위[11]를 자행한 선임 해병 4명에 대해서도 구속 수감 조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라는, 의지드립 발언을 하여 엄청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사실 군대라는 비현실적, 비인격적인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니 이를 논리적으로 볼 때는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문맥상 군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부적응하는 아이들이 문제라는 뉘앙스를 풍겼고, 더불어 똥군기 가해자들이 벌인 폭행, 협박 같은 범죄를 체벌이라는 합법적인 용어로 포장해준 점, 더군다나 근본적으로 이명박의 말대로 자유롭게 자란환경이 문제라면 사회환경을 북한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 밖에 안나온다는 점 등 이래저래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 할만한 발언은 아니었다. 거기다 병역면제자(이전에 군통수권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발언을 하니 대중들에게 더더욱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에 청와대는 앞뒤가 잘려 기사가 나가서 표현이 달라졌다고 해명했다. 긴말할 것 없이 그냥 기사로 확인하고 알아서 개인이 판단하길 바란다.#article|default #

심지어 해병수색대 대원조차도 해병대의 한심한 현실을 깠다. 그리고 댓글에는 여지없이 수색대라고 까는 해병대의 댓글이 달렸다. 해병수색대와 해병대는 이 사건이 아니라도 사이가 좋지 않은데다, 해병수색대도 딱히 가혹행위 수준이 낮은 데가 아니라서, 그냥 수색대 출신이 일반 해병들을 디스하고 싶었을 뿐인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육군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도 덤으로 여전히 가혹행위가 척결되지 않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 유낙준 장군은 전역한 후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남양주갑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였다. 연평도 포격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생사령관(...)을 표방했으나 이 사건의 이미지 때문에 결국 낙천되었다.

7. 사후처리

가해자인 김 해병은 김포 우리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은 뒤 국군수도병원을 거쳐 국군대전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후 바로 구속 조치되어 수사에 들어갔다. 같은 부대원들도 죄다 헌병대로 불려가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조사를 받았다.

국방부는 사망한 4명에게 1계급 진급을 추서했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였다.# 물론 비판이 나왔다. 사망자들이 김 해병을 괴롭히던 사람들이었고 총격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인데 어째서 저런 대우를 해주냐는 것. 전우에게 가혹행위를 가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주어 결국 괴롭힘을 당하던 전우가 다른 전우들에게 총을 쏠 정도로 갈구는 일이 국립묘지에 안장시켜주고 진급까지 시켜줄 정도로 훈장감인 일이라는 걸 국가가 직접 인증했다. 근데 국군은 훈장 수여를 꼭 명확한 수훈 기준에 의거하여 주기보다는, 국민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동정 여론이 있으면 쉽게 주는 편인게 현실이다.

이후 재판에 따라 김 해병에게는 사형. 정 해병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되었으며 2013년 1월 24일 대법원에 의해 판결이 확정되어 국군교도소[12]대한민국 법무부 소속 일반 교도소[13]에 수감 중이다.

이로써, 2016년 기준으로 사형이 확정된 군 사형수는 김 해병을 합쳐 총 4명(육군 3명, 해병대 1명)으로 나머지 3명은 530GP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 김동민과 1996년에 역시 총기난사로 3명의 육군 병사를 살해한 김용식, 육군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임도빈이다. 이들과 정 해병은 6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을 경우 병적에서 제적된다는 병역법 3조에 따라, 병적에서 제적되었다. 다만, 군인 신분일 때 형을 선고받았으므로 총살형을 집행해야 하기에, 집행 명령이 나올 때까지 민간인 신분이 되었음에도 법무부 교도소가 아닌 총살이 가능한 유일한 시설인 국군교도소에 수감된다.

김 해병을 문 밖으로 밀어내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은 권혁 해병은 허벅지 총상은 물론 고환 한쪽까지 적출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한데다 PTSD 증상까지 보였지만 국방부는 2011년 8월 19일 권 해병에게 국군수도병원에서 퇴원하여 부대로 복귀하라고 통보했다.[14]

그리고 해병대사령부는 한창 권혁 해병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엔 '영웅'이라면서 훈장 추천이나 포상을 해줄 것처럼 공언을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발뺌을 했다. 권혁 해병의 공과 희생에 대한 무관심을 해병대 스스로 인증한 셈이다. 예비역들조차 어이 없는 반응을 보였는데 " 장한 일을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꾀를 부리면 안되지 " 라며 조기전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권혁 해병은 새 근무지인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한 이후 한달 남짓 지난 9월 19일, PTSD 증세가 심해져 국군수도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2011년 12월 31일 의병 제대가 결정되었으며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상의 후유증과 PTSD는 낫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기사. 기사에서는 의가사 제대로 잘못 표기되어 있으나 의병제대가 맞다.

이후 2012년 2월 22일 권혁 해병은 보국훈장 광복장 수여와 함께 일병 계급으로 의병제대하였다.# 모 해병대 카페에서 기사 속 사진의 권혁 해병의 머리가 길다고 까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애시당초 김 해병이 저지른 살인 행각으로 충격을 받아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는데다 해병대사령부의 무시까지 겹쳐 심각한 고통을 받은 사람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당장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 길이를 신경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해병대사령부에서도 권 해병의 정신이 불안정적인 점과 전역 후 민간인이 된 권 해병과 가족들의 민원 세례가 쏟아지면 골치아파지는 점 등을 감안해 이발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군이나 경찰 등의 조직에서 근무하다 PTSD에 걸리게 되면, 심할 경우 그 조직의 상징물 - 군복 등 - 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발작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특히 해병대원의 상징인 이른바 상륙돌격머리를 강제하는 것으로도 권 해병이 PTSD 증세를 보일 수 있기에 이는 해병대사령부가 욕먹을 일이 아닌 현명한 조치이다.

8. 곁가지 사건들

사건 바로 하루 전날 7월 3일에 총격사건이 일어난 부대인 해병대 2사단 소속의 이병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유족들은 선임들이 옷을 벗기고 성추행과 갖가지 모욕을 줬고 나라사랑카드를 긁게 해서 먹을 것 등을 강탈했으며 군번을 도용해 전화를 거는 등의 갖가지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에서는 구타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며칠 뒤인 7월 10일에는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제1사단에서 해병대원 한 명이 또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1년은 해병대에게 지옥같은 한 해가 되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영생활 행동강령이 전면 개정되었다.

간접적으로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과도 사소한 접점이 있다. 당시 군인팀 상주 상무에는 소속 GK 4명 중 3명이 승부조작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느라 주전 GK 권순태 외에는 GK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남은 주전 GK도 출전정지상태이다... 즉, 상주상무에는 GK가 아무도 없었단 얘기. 때문에 상무 구단은 전 군을 털어서 GK 경험이 있는 사병을 몰색했고 마침 수원 2군 GK인 권기보가 당시 현역병 상병으로서 복무 중이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연맹의 유권해석까지 모두 받아내고 권기보의 차출을 준비했으나, 차출 직전 바로 이 사건이 벌어지면서 전군에 특별조치가 떨어졌고, 결국 권기보의 차출은 무산되고 말았다.

9. 관련 문서


[1] 병들을 계급명이 아닌 '000 수병(님)'이라 부르는 해군과 마찬가지로, 해병대도 해병대 병을 부를 때 계급명 대신 '000 해병(님)' 하는 식으로 부른다. 관등성명 등 계급이 앞으로 올 때만 계급과 이름을 함께 부른다.[2] 사건 이틀 전 해안초소 경계근무 중에 편의점에서 소주 2병을 구입하여 창고에 숨겨두었다고 한다.[3] 권승혁 해병은 바로 즉사했으며, 박치현 해병은 즉사는 아니고 중상을 입은 채 살아 있었으나 나중에 도착한 소방서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에 결국 사망했다.[4]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 긴박한 싸움 상황에선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분비되고 초인적인 생존 본능이 발휘되기 때문에, 통증도 그 순간엔 안 느껴지고 자기가 부상을 당했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위험한 상황이 지나가고 극도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야 통증과 출혈 등 몸 상태가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한다.[5] 정확히 말하면 속옷은 아니고 해병대 하계 체육복의 하의로 입는 짧은 트렁크식 숏팬츠, 해병대 용어로는 일명 '각개빤쓰'.[6] 증언들에서 속옷이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속옷은 아니다. 하계에 생활관 등 영내에서 평상시 쉬거나 운동할 때 입고 있는 짧은 트렁크 형태의 체육복 숏팬츠이다. 해병들은 이 빨간 숏팬츠를 '각개빤스'라고도 부른다.[7] 회식을 하는 날이나 말년들의 전역 전날밤 간부들이 그간 고생했다며 한잔 준다.[8] 휴가 중에 싸우는 학생들을 잘 타일러 경찰에게 칭찬을 듣기도 했다.[9] '구타도 없어져야 한다'라는 주장을 참고해보면 '구타가 가미된 기수열외'인 가능성이 높다.[10] 미군의 경우 이런 사고가 날 경우 사고자의 인성판단을 맨 먼저 한다. 즉, 원래부터 어떤 방법을 써서 대처를 해도 사고를 칠 게 분명할 만큼 답이 안나오는 놈인지 진짜 지휘를 잘못해서 사고가 났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 경우는 후자에 속하기 때문에 보직해임이 당연하다.[11] 정 해병의 성경책 소각하기, 정 해병이 전투복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정 해병의 바지에 살충제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 붙이기 등등.[12] 군 사형수는 구치소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형수인 김 해병은 국군교도소에 수감되었다.[13] 정 해병은 징역 1년 6월 이상을 받은 경우로 복무 부적합자로 분류되기에, 전역 처리되어 민간인 신분이 된 뒤 법무부 소속 교도소로 이감됐다.[14] 징병검사에서 고환에 손상이 있을 경우 6급 병역면제(민방위 포함 완전 면제) 판정을 받지만, 현역 복무 중 의병전역 기준에는 고환 손상에 관한 조항이 없다. 가끔 병무청 의사들이 진단서 들이미는 신검자에게 차라리 입대한 다음에 의병전역을 하는 게 쉽다고 사탕발림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병전역은 중증 장애인이나 팔다리 결손 등 누가 봐도 당장 전역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아니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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