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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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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2.1.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강조하는 세대2.2. 기성세대2.3. 투기 신봉2.4. 파도처럼 다가오는 은퇴
3.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4. 일본의 단카이 세대5. 중국의 베이비붐 세대

1. 개요

전후세대 / / Post-War Generation, Baby Boo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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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를 일컫는 말.

한국에서의 베이비붐 세대란 주로 1955년생에서 1974년생까지를 일컫는데 1차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년~1974년생) 로 나뉜다.

참고로 X세대를 정의하면 서태지가 데뷔하던 1992년 당시 10대였던 1974년생~1983년생 또는 1993년 당시 10대였던 1975년생~1984년생까지를 가리킨다.

서태지가 데뷔하던 1992년 당시 주로 20대였던 1964년생~1973년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1차 베이비 붐 세대(1955년생~1963년생) 바로 다음 세대이면서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또래이며 2차 베이비붐세대인(1964년~1974년생) 자기들이 X세대라고 하는데, 10대 시절 서태지를 우상으로 생각한 쪽은 당시 서태지가 10대들의 우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논리적으로 부족하다고 본다.

70~74년생들이 86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자기들은 60년대생이 아니니까 X세대라고 주장하지만 386이라는 용어는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운동권을 의미하는 정치적인 용어로 당시 대학 진학률이 30%도 안 되고 그 중 운동권에 가담했던 사람은 10%도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60년대생 중 386은 1%밖에 안 되며 이마저도 정치적인 용어일 뿐 정식 용어가 아니다.

전후 세대는 '베이비 붐'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 부머'라고도 부른다. 베이비 붐이란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뜻하는 용어다. 어느 나라든 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1]

서구 베이비부머들의 자녀 세대는 X세대부터 시작하지만 인구의 에코 현상은 1977년생~1996년까지 나타났다. 이들을 에코 부머라고 하는데 밀레니얼 세대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큰 구분 없이 쓰이고 있다.

전쟁 이후 인구가 대폭 증가하는 현상은 꽤 보편적이었다. 애당초 날이 깜깜해지고 딱히 할 것도 없는 남자와 여자가 좁은 방에서 할 게 뭐가 있었겠는가. 전근대처럼 자녀계획 따위도 없었다.

2.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우리나라 베이비붐은 1955~1974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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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도 헷갈리는 베이비 붐 세대 기준…생물학에 사회ㆍ역사 혼합 때문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1, 2차 합해서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출생아 수가 한 해 90만명이 넘던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을 뜻한다.통계청[2] 86세대는 대학 학번을 세대명으로 정해서 다수의 비대학 진학자들에게는 동의를 받지 못하는지 대대적 세대 설문 조사에서는 스스로를 베이비붐 세대로 정의했다.#

인구학적으론 전기(1차) 베이비 붐인 1955년~1963년[3]생, 중기(1.5차) 베이비 붐인 1964년~1967년[4], 후기(2차) 베이비 붐인 1968년~1974년[5][6]생으로 나눌 수 있다. 전기를 1차 베이비부머, 후기를 2차 베이비부머라고 한다.통계청 이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전후 세대로서의 베이비 붐 세대는 1차 베이비 붐 세대인 1955년~1963년 출생자를 뜻한다.#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는 1955~1960년생은 산업화세대 또는 유신세대로 보수에 가깝고 1964~1975년생은 베이비붐세대로 진보에 가깝다.[7]

특히 베이비 붐 세대를 상징하는 58 개띠가 유명한 편이다. 평균적으로 전반기는 에코세대, 중후반기는 에코붐, Z세대 초기를 자식으로 두고 있다.

하위분류로 86세대를 두고있으며 86세대와 구분하는 의미로 쓸 때는 베이비 붐 세대를 전반기 베이비 붐인 1955년생부터 1960년생까지를 의미하는 편이다. 이들과 86세대를 합치면 대략 1400만 명 정도로 202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4 수준이다.

X세대도 베이비부머의 하위분류에 해당한다. 특히 1993년 X세대 수입과 수용을 주도한 동방기획에서는 인구의 10%가 넘는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인구와 1990년대 초반 호황에 따라 이들의 가처분 소득이 높아진 데 주목하였다. 동방기획의 의도대로 2차 베이비 붐 세대들은 X세대에 열광하였으며 이들의 엄청난 인구 덕분에 사회현상이 되었다. 이 유행은 1997년 외환 위기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 1977년생부터 1979년생은 X세대란 소속감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즉, X세대 유행을 주도한 핵심층과 아이콘[8]들은 대체로 제2차 베이비부머와 겹쳤다.

베이비 붐 세대까지는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으나 갈수록 급격히 줄어들었다. 5세 이하 사망률은 1955~1957년생은 10~11% 안팎이었으나 1960년대 후반생부터 5% 미만으로 줄었다. 게다가 현재는 50~60대의 50플러스 세대로 고령층으로 진입했으며 일부는 노인이 되어서 사망률이 높아졌다.[9]

2.1.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강조하는 세대

이 세대의 사람들은 대학 진학률은 높지 않았지만[10] 이 세대의 자녀들은 2022년 기준으로 남녀 모두 대학 진학률 70%를 넘겼다. 이들이 공업고등학교상업고등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이 회사 임원이나 은행 임원으로 분포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반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현재 노년층에 진입했고 부모는 대개 191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생이며[11] 자녀는 대개 1980년대~1990년대 중반생, 손주는 대개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이다.

후반기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는 대개 1920년대 후반~1950년대 극초반생이고[12] 자녀는 대개 1990년대 초반~2000년대 중반생이며[13] 1980년대 후반~1990년대 극초반생,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생도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베이비부머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나 전쟁으로 망가진 국가의 재건을 책임졌다는 것이다. 사실 베이비부머들이 성공과 부를 갈망하는 것은 세대 전체의 숙명과 다름없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후 빈곤 때문에 굶어죽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등 일부 과감한 개도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도시화와 생산능력의 강화를 추구했고 농경사회의 관습이 남아있던 이전과 달리 구시대적인 관념 속에서 자랐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도태될 위기의 전후 세대는 그렇게 관념과 현실의 격차를 둔 상태로 일하고 또 일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농경사회의 관념이었던 가족주의, 가부장제를 버리지 못한 채 산업사회의 제1 성공요건인 교육 = 정보화 능력주의 사회를 체감하고 이미 늦어 성장이 불가능한 자신의 교육보다는 가족의 유지 및 성공을 위해 자녀들의 교육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었다. 특히 전반기 베이비붐 세대는 교육열이 매우 강한 편이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에서 대학 진학은 곧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의미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서 부모가 된 베이비 붐 세대는 거의 모두가 자녀에게 대학 진학을 절실하게 갈구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베이비 붐 세대 사람들도 이런 인식은 마찬가지라 학력의 정도가 생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학 진학 여부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때문에 대학 입학의 기준이 되는 시험인 수능은 이 시험 하나를 위해 한국 사회의 교통이 올스탑 할 정도의 대사건, 연례행사다.[14] 본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수능에 지각하는 학생을 위해 움직일 정도로 한국 사회는 때로 기묘하고 극단적으로 학력을 위해 움직인다. 자세한 것은 입시 위주 교육 문서 참조.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국가다.

물론 학교를 잘 나오면 나쁠 것은 없으나 학력 인플레, 혐오에 가까운 중소기업 비선호 현상[15], 실무 역량 위주의 채용 문화가 생기면서 대학을 잘 가면 다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고졸, 전문대졸이 틈새시장으로 낮은 경쟁률로 더 취직이 쉽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어차피 대졸자들도 취직이 힘들어서 고졸, 전문대졸이랑 비슷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럴 바엔 빨리 졸업해서 어린 나이로 연차쌓는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대의 자녀들은 이를 알아도 부모의 반대로 인해 4년제 대학에 억지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2.2. 기성세대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에 대학생으로서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긴급조치 세대'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으나 제5공화국 때 데모를 많이 한 세대로 '운동권 세대' 내지 '모래시계 세대'라고 불린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면서 점차 기성 체제에 타협, 순응하면서 다수가 정치 성향이 보수 쪽으로 기울었다. 6.25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부모 세대인 노년층은 대개 강성 보수 성향을 보인다.

경제-사회-정치적으로 대세인 기성세대다. 사람이 많아서 이들의 성향에 따라 정치권은 움직일 수밖에 없고 투표율도 청년층보다 훨씬 높다.[16] 경제적으로도 청년 및 노년층보다 안정화, 보수화되어 있다.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큰 인구 비율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성장시켰고 한국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대표적 기성세대로서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다만 전후 세대라는 어려운 성장 환경과 헝그리 정신, 보상 심리의 부작용으로 여러 악습을 만들기도 했으며 이들이 노년층으로 접어들 날이 다가오는 탓에 청년층의 부담 중 하나가 되어 청년층에게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국민연금 문제가 있는데 국민연금은 베이비 붐 세대가 다 받아가고 청년층은 돈은 돈대로 냈는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크다.[17]

2.3. 투기 신봉

전후 세대가 노년층이 되었을 때 청년이 짊어지는 부담이 크긴 하지만 오히려 전후 세대가 만들어내고 고착화시킨 한국의 악습이 훨씬 큰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부동산 문화가 있는데 베이비 붐 세대가 너도나도 부동산에 투기하면서 전국적으로 일어난 집값 폭등 현상은 한국의 암 덩어리다. 오르기는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마구 치솟는데 내리는 건 1990년 말 이후 주택 200만호 공급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을 때 정도다. # 1988 서울 올림픽 이후에도 전세금이 모자라 목숨을 끊는 사례가 빈번했다. 집을 사는 곳(live)이 아니라 사는 것(buy)으로 만들어 버린 세대가 전후 세대다. 특히 집값 폭등은 서울 어딘가에 있는 원래 엄청나게 외딴 섬이었던 곳이 레전드였다.

물론 그 세대 사람들이 원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이들은 태어나고 성인이 되자마자 전후 복구를 마치고 대한민국 경제를 지금의 선진국으로 부상시키는 데 최일선에서 일한 세대다. 기존의 농업중심 경제구조를 깨고 공업화로 이들을 공장노동자로 바꾸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지가 필요하고 거의 빈손으로 시작해 은행의 개념도 취약하고 자본이라곤 하나도 없던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에서 근면성실만 가지고 밑바닥에서 다수를 차지하며 열심히 일한 이들에게 줄 보상은 일자리에서 나오는 노동임금과 가족을 먹이고 재울 집이 전부였다. 이것을 보장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은 원주민과 전쟁을 치러서라도 신도시를 개발해 아파트를 대량공급해 노동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정책을 밀어붙였고 경제정책에 따라 열심히 일한 대가로 베이비붐 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을 가지고 은퇴를 맞게 되는 세대가 되었지만 투자할 수단 자체가 매우 부족하며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이라는 현물로, 주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돈을 벌 수 없는 경제수단인 데다 시대의 변화와 의학의 발전으로 당시의 사회상식과 달리 은퇴할 나이가 되면 다 늙어서 곧 죽을 것 같던 평균수명이 극적으로 연장되어 베이비붐 세대들이 생존해야 할 기간이 20년 이상 연장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베이비붐 세대는 일자리는 진작에 은퇴한 상태에서 오직 자산만 가지고 길고긴 은퇴 후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자산가치에 극도로 민감하고 자산의 증식과 안정적인 증여에 남은 인생 모두를 걸어야할 상황이 되었다. 그것이 많은 인구라는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과 영합하여 대한민국의 경제 피라미드와 국민 노후 포트폴리오를 부동산 몰빵이라는 기형적인 상태로 만들어 외줄타기하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

아파트의 값은 서울 기준으로는 5~6억원[18], 어느 정도 일자리가 있는 지방도 1억 중반을 기본으로 한다. 대기업에 취직해 저축을 이어가더라도 필수 생활비를 제외하고 한 푼도 쓰지 않아야 5~6년 정도에 지방에 있는 아파트를 부채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월세를 살자니 월세 비용이 치명적이다. 가뜩이나 취업난에 시달리는데 바늘 꽂을 공간만 겨우 마련된 쪽방에서 월세를 30~50만원 씩 내면서 사는 청년층이라면 기성 세대에 대한 분노와 회의감이 안 생길 수 없다. 집세로 이익을 볼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여 확실히 본인의 재산이 된 집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것이니 '목돈 내고 집 산 다음, 별다른 지출 없이 고정적인 불로소득을 벌기 위해', '재테크' 하기 위해 청년층의 경제력을 노동 생산성만 남겨놓고 싹싹 긁어먹고 있는 것이다. 기성 세대 입장에선 돈이 돈을 버는 것인데 '돈이 돈을 버는' 부동산 수익이 당장 거처가 필요한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짓을 빚까지 져가며 하느라 하우스 푸어가 양산된다. 사실상 베이비붐 세대가 자기 목을 걸고 부동산을 쥐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건드리기도 힘들다. 정부가 버블을 터뜨리려 하면 죽는다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싸구려 언론을 보면 알겠지만 광고로 가장 많이 나오는 멘트가 충격! 로또 당첨번호의 비밀! 같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확천금 하겠다는 심리가 광고로 걸을만큼 높은 수요가 있다는 것.

펀드를 비롯한 은행 파생상품도 정확한 조사 없이 하나쯤 들어놓자는 식으로 선호하며 심지어 투자가 붙어 있는 보험상품까지 나오는 등 베이비 붐 세대는 투자를 빙자한 투기를 정말 선호하는 세대이다. 주식, 비트코인 등 온갖 투기 상품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수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개미떼처럼 모여들어서 관심을 갖는다. 돈이 돈을 벌어다 준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냐만, 무엇보다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도 아니고, 경제적 지식도 전문인이 아닌데 자칭 전문가들의 사탕 발린 말에 혹해 마냥 도전해보는 경향이 강하다. 겁도 없이 돈 놓고 돈 먹기를 믿는 것이다.

주식 투자(펀딩)는 '너한테 돈을 줄테니, 나중에 성공하면 내가 준 돈 이상으로 갚아야 해' 개념으로 투자 대상의 경제적 활동력을 넓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부동산 투기는 '내가 가진 집을 빌리는 대가를 줘야 해. 난 이 집을 사는데 많은 돈을 투자했어. 그만큼 많은 돈을 내.' 개념이다. 자본의 흐름이 일방적이며 청년의 잔고를 빨아서 이득을 볼 뿐 청년의 경제적 활동력을 거세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순기능이 없는 착취다. 다른 투자와는 질적으로 다르며 국가 경제에 악순환을 일으킨다. 기성 세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들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투자 환경상 부동산 이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형적인 산업 환경상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는 완전히 도박이나 다름이 없고 대기업들도 오너 리스크가 매우 심해서 무턱대고 한국 기업에 투자했다가 돈 말아먹기 딱 좋으며 직장의 근속연수가 너무 짧은 데다 후술할 고령층에 대한 복지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겹쳐 이들은 부동산 재테크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거의 필수가 되어 버렸다. 괜히 이들이 부동산 투기에 목을 매는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주식시장 활성화와 재취업 시스템, 노인 복지의 3박자를 소홀히 한 한국의 잘못된 경제구조가 가져온 문제점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살자 수가 가장 많은 세대다. 특히 남성은 여성의 2배 수준으로 자살한다. 인구가 워낙 많은 데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성은 나이 및 이전의 경력과 무관하게 사실상 무가치한 존재로 평가받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며[19][20] 무한경쟁적 사회 특성상 복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쩡쩡한 사전조사와 부족한 안목으로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함부로 고위험 투자 상품에 거금을 투자하거나 사업을 크게 불리다가 폭삭 망해서 죽음을 택하는 사례는 흔해빠진 이야기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남성 자살자 수는 무려 여성의 2.6배나 되었다. 이는 경제적 무능력함에 대한 압박감과 상실감, 경제력 저하에 따르는 가정, 사회의 외면 때문으로 보인다. # 2020년대 중반 들어 70대에 접어든 탓에 대학 교수, 연예인, 정치인 같은 순도 높은 두뇌노동이 아닌 이상 취업이 완전히 틀어막혀 있어 젊은 시절에 기댈 곳[21]도 없으면서 돈을 모으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활고 문제로 자살할 확률이 매우 높다.

2.4. 파도처럼 다가오는 은퇴


베이비 붐 세대는 그 이름만큼 특정 시기에 인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세대다. 시간은 공평하기에 이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예외 없이 늙고, 이는 대규모의 생산인구 상실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베이비 붐 세대는 이제 60대에 서서 노년층을 바라보는 세대가 되었으며 당연히 노동 전선에서 은퇴할 날을 준비하는 세대들이다. 이들이 마치 썰물처럼 노동 전선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국가 경제에 상당한 혼선을 가져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늦어도 20년대 중후반 정도면 상당수의 베이비 부머들이 노동 전선에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55년 이전 출생자들은 이미 70대로 은퇴 후 국가에서 세금이 소요되는 상태다.

사회를 지탱하는 대규모의 기성세대가 빠져나가 신참들 위주로 남게 되고 그들이 은퇴하며 순식간에 대규모의 자금 유통망인 세대로부터 대규모의 부양 요구 세대로 전환되는 만큼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사회적인 파란이 한 번 몰아칠 것은 자명하다. 이러니 저러니 욕은 많이 먹는 세대지만 엄연히 사회의 베테랑들인데 이들이 한꺼번에 생산 인구에서 퇴출된다는 것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3.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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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boomers

영어 위키백과 문서 참고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22] 1946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의 영향으로 합계출산율이 전년의 2.49명에서 2.94명으로 급증하였고 1947년에는 출산율이 3명대로 올라가 1964년까지 3명대 베이비붐이 이어졌다. 소련을 넘어뜨리고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호황을 이끌었던 세대이기도 하다.[23] 이때 아이들이 얼마나 태어났는지 어떤 병원에선 복도에서 분만을 했을 정도다. 다만 세대 권역이 굉장히 넓어서 앞의 사람(1940년대 후반~1950년대 초반)들은 징병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지만 뒷세대들은 징병제 폐지로 군대에 안 가기도 했다. 히피들의 상당수가 베이비부머들과 겹치고 펑크도 많다. 여담으로 1946년미국 대통령이 세 명이나 있다.[24]

2010년대에 은퇴했어야 했지만, 하필 미국에서 직전에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이어진 대침체로 인해 이들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크게 무너지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은퇴를 미루고 있어 미국의 취업난을 가중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지탱하던 각종 연금 등도 이들이 빠지면 엄청난 손실이 예정된다고 할 정도다. 코난 오브라이언2011년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식 강연에서 베이비부머들 덕분에 졸업생들의 취직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25]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당선 직후부터 트럼프가 주도한 미국-중국 무역 전쟁도 본질적으로는 당선을 위해 끌어모은 댓가로 받은 영수증인 셈이다.

2019년 들어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청소년 사이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에게 고압적으로 굴 때 "OK Boomer" 라고 쏘아붙이는 밈이 떴는데 예상되겠지만 한국의 틀딱 드립과 1대 1로 대응된다.[26] 게다가 '부머는 세대가 아니라 마음가짐(mindset)'이라며 단지 정말 베이비 붐 세대에 해당하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나이가 젊더라도 이들과 다름없는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boomer'라 불린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OK Boomer 문서로.

현재까지도 인구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오히려 젊은층보다 인구 비중이 작다. 이들은 태어날 당시에는 부모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 규모를 가졌지만 이후 결혼해 평균 2명의 자녀를 낳고 이민자를 많이 받아 젊은층 인구는 이들보다도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4. 일본의 단카이 세대

[ruby(団,ruby=だん)][ruby(塊,ruby=かい)]の[ruby(世,ruby=せ)][ruby(代,ruby=だい)]

단카이는 덩어리라는 뜻으로, 일본에선 단카이 세대라는 명칭을 주로 쓴다. 1차 베이비붐 세대라고도 하는데 종전 후인 1947년부터 1949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1947년에 267만 8792명, 1948년에 268만 1624명, 1949년에 269만 6638명이 태어나 3년 동안 806만명이 태어났다. 다만 타 국가와는 다르게 베이비붐은 3년 정도로 짧게 끝났고 좀 넓게 봐도 1953년생부터는 출생자 수가 200만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27] 이후로는 베이비붐 세대에 끼어들지 못한다.[28] 한국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전체 인구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단카이 이후 세대인 시라케 세대 중 1950년대 후반 이전에 태어난 세대를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묶기도 한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오래 애니메이터, 연출가 등으로 몸담던 야마구치 야스오의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따르면 이들은 어릴 적부터 TV 보급의 혜택을 겪어 <철완 아톰> 같은 TV 애니메이션을 즐겼고 대학 진학 시에는 각목을 들고 헬멧을 쓴 채 정치투쟁에 나서며 <아사히 저널> 류의 진보 시사잡지들을 많이 읽었고 만화도 짬내서 읽었기 때문에 '한 손엔 아사히 저널, 다른 한 손에 소년 매거진'이란 말이 붙었으며 치바 테츠야와 시라토 산페이, 츠게 요시하루 등 만화가들도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내일의 죠>, <나사식>, <카무이전> 같은 아웃사이더풍 작품들을 창작해냈다. 86세대와 비슷한 점이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1940년대생 단카이 세대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다만 대학 진학률이 15% 수준이라 모든 단카이 세대가 전공투 등의 운동권에 동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29]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권자가 된 후에 자민당의 득표율이 상당히 떨어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다란 정치적인 변혁이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30] 비운동권에 해당하는 논포리(ノンポリ, Non-Political)도 많았다. 다만 다른 세대에 비해 리버럴한 경향이 비교적 강하기는 하며 아사히 신문을 많이 읽는다.[31]

1980년대에 회사의 중간관리직에 오를 중장년 시점에 이들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겪었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춘 나이대에 버블까지 겹쳐서 소비는 실컷 해보고 금융자산까지 쌓아 놓은 세대이고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면서 버블경제의 종결과 사회의 우경화를 바라보게 되는 세대도 되었다.

2019년 들어 단카이 세대는 모두 70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5. 중국의 베이비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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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베이비붐은 1950~1958년, 1962~1975년, 1985~1997년 세 번에 걸쳐 일어났다. 이 중에서 1차 베이비붐과 2차 베이비붐은 출산율은 이전보다 높아졌는데 영아사망률이 급속히 감소한 영향으로 발생한 반면 3차 베이비붐은 1, 2차 베이비붐 때보다 중국의 출산율이 2명대 초반대 정도로 현저히 낮아진 상태에서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한창 출산해서 발생했기 때문에 베이비붐 에코세대로 취급된다.

마오쩌둥이 다산을 장려해 베이비붐이 발생하고 무상 의료 정책으로 사망률이 급감하고 평균수명은 급증하면서 1982년에 3차 인구조사와 계획생육정책 도입 당시에는 인구가 1950년 5억 5천만 명에서 10억명으로 증가했고 특유의 분배 시도와 집단화를 통한 생산력 증가가 수반됐다. (대약진 운동과 같은 대참사 시기의 감소만 제외하면) 당시 세계 인구 대비 비율은 23%였다. 즉, 마오쩌둥이 1976년에 사망해서 약간 오차는 있지만 그가 집권할 동안 인구는 30년만에 2배가 되었다. 대약진 운동 직후 베이비붐이 정점일 때 1963년 출산율은 자그마치 6.50명까지 증가했고 1950~70년대 초반까지 출산율은 4~6명, 출생아수는 2천 5백만명~ 3천만명 좌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60년대 후반에는 출생아 수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0~4세 인구가 1억 4천만 명에 근접하던 시절도 있었다. 인도가 현재 출생아수가 2천 5백만명인데 중국은 인구 규모가 현재의 인도보다 작았을 때 더 많은 출생아 수를 기록한 것이다. 출산율 7~8명대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일부 중동 이슬람 국가와 사하라 이남 나이지리아와 같은 일부 다산 문화가 장려되었던 국가들이 기록한 수치였다. 중국 베이비붐 포스트


[1]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쟁 중에 임신-출산을 미루는 경향"과 동시에 "전쟁 이후 회복기의 성장세", "산아장려 정책" 등이 합쳐져 발생한다.[2] 단, X세대에 포함되지 않는 1955년생부터 1963년생까지를 오랫동안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불러와 그 관습이 남아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1964년생이나 그 이후까지도 포함하는 등, 범위가 오락가락한 경우가 더러 있다.[3] 조출산률이 매우 높았던 시기[4] 전후 맨 끝자락 세대인 1964년생을 제외하고 X세대가 시작된 시기다.[5] 86세대 끝자락 세대와 겹치며 5공화국 말기에 대학에 진학한 1968년생을 제외한 나머지 1969~1974년생은 민주화 이후에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X세대다.[6]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나 1933-1951년생 가임 여성의 수의 증가로 출생아 수가 증가했다.[7]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이 출범한 1981년부터 5공화국 마지막 해인 1987년까지 대학에 진학한 1962~1968년생으로 보기도 한다. 1960년생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9년에, 1961년생은 최규하 대통령 시절과 제4공화국 마지막 해인 1980년에, 1960년대생의 막내인 1969년생과 1970~1973년생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1992년에 대학에 진학했다. 여기서 차이점은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 최규하 정권이 물러나고, 신군부가 정권을 완전히 잡은 1980년 9월에는 1961년생 이상은 이미 대학생이었지만 1962년생부터 1973년생은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는 점이다.[8] 서태지, 이병헌, 최진실, 장동건, 김원준, 김민종, 박진영, 신은경 등[9] 이 중 1956년생의 사망률은 30% 이상이다.[10] 통계청에 따르면 1979년 기준으로 남성 29%, 여성 20% 수준이었다. 그 뒷세대긴 하지만 진학률에서 그리 큰 변화는 없는 86세대는 대학생이 아닌 사람이 많아 86세대 담론이 엘리트적이란 얘기도 있다.[11] 생존 중일 경우 80대 중반에서 100세가 조금 넘은 사람들이다.[12] 현재 생존 중일 시 70대 중반~90대 중반이다.[13] 현재 10대 후반~30대 초반[14] 이 날에는 대부분의 직장의 출근시각이 10시 내외로 늦춰지고 정상수업을 하는 초중고등학교의 등교 시각이 1~2시간 늦춰지거나 휴교하며 대학도 1~2교시 수업은 웬만해서 휴강이다.[15] 이는 정부와 중소기업의 잘못이 굉장히 큰데 둘 다 청년층의 요구 복지수준을 따라갈 재정적 능력 자체가 안 되면서 그러한 현상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일절 하지 않고 오로지 "청년 더 뽑아라 → 그럴 돈 없으니 지원금 좀 달라 → 지원금 줄 돈 없으니 알아서 해라 → 배째라"의 루트를 반복하고 자빠져 있으니 청년실업 문제가 개선될 리가 없다.[16] 다만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청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고 전후 세대의 표만을 바라고 그들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어 당장에 필요한 진보적인 정책 실시와 만연해 있는 악습과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악법 폐지에 소극적으로 나온다. 이로 인해 한국은 세대 갈등이 심하며 청년층의 기성 세대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심하다.[17] 더 큰 문제는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보니 직업이 없는 청년층이 많아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대남의 본질을 20대 남성 vs 20대 여성 경쟁으로만 보는 건 20대의 구직 문제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 20대 남성은 극소수의 정규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계약직, 아르바이트 같은 하층 노동시장에서 실제로는 자산이 없어 노동에 기대야할 가난한 60대 남성들과 경쟁하는 판국이다. ###[18] 그나마도 재건축도 안 된 상태로 노도강 등 서울 외곽 지역에 있는 주공들 이야기지만 이런 주공들도 건축연한이 30년을 넘으면서 뼈대는 어떻게 보수해서 유지한다 쳐도 은마아파트처럼 거주 공간으로써의 인프라는 수명이 다해가고 있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재건축 혹은 리모델링을 위한 안전 진단을 추진중이다.[19] 그렇다 보니 20~30대에 취직을 못 하는 자식들을 부끄럽게 대하여 집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나마 딸은 30대까지는 시집을 보낼 수 있다는 이유로 유예가 허락되기도 하지만 아들은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장애라도 없는 한 정규직에 취업하지 못하면 진짜 부모와의 관계를 파탄내지 않기 위해 짐싸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자식들과의 불화가 커져서 가정불화와 패륜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을 제공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발생하는 패륜 범죄는 가정 내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취업 문제로 폭언에 가까울 정도의 질책을 하다가 역으로 폭행당하거나 살해되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이게 워낙 심각해지다 보니(실제로 한국의 존속범죄가 서양권보다 몇 배나 높다.)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20] 가장 큰 이유는 축의금 회수 문제와 부모가 결혼식의 혼주라는 점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자신이 은퇴하기 이전에 결혼을 해서 그동안 뿌리고 다녔던 축의금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21] 자녀가 부양해 주거나, 연금 대상자 등.[22] 이 시절에 미국의 신생아 숫자는 연간 400만을 넘었다. 참고로 1980년대 이후로는 400만명 이상을 웃돌았는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으로 이후에는 350만명대로 떨어졌다.[23] 그 당시 30~40대[24]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도널드 트럼프[25] 오브라이언 본인도 1963년생으로 베이비부머의 끝물이다.[26] 좀 더 정확한 어감은 네다틀에 가깝다.[27] 이후에 1971년부터 1974년생까지 출생아수가 다시 200만을 넘기게 되었다.(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2차 베이비부머, 이전의 단카이 세대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단카이 주니어"라고 불린다.) 이후에는 출생아수는 대체적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고 2000년대 중반에 출산율이 저점을 찍은 이후에도 이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28] 1949년부터 시행된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매우 단시일내에 떨어졌다. 1950년대 후반 들면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는 헝가리 정도 수준이다.[29] 사실 이건 86세대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인데 1980년대에는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30%는 커녕 10% 후반~20%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수준이라서 대학에 간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지방이나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고등학교가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었다. 가난해서 대학교를 못 가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고등학생만 돼도 공부를 하는 학생 취급받았고 가난해서 일반계를 못 가고 상고, 공고에 가는 소년들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재학 중에도 사상공부를 하여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이들 중 일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대학생들과 교류하며 사상공부를 하면서 좌파 성향을 갖게 된다. 이들이 실질적인 대한민국 1세대 노동조합운동의 시작이었다. 단, 일본도 마찬가지로 전공투 등의 운동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고등학생 이하도 존재했다. 애초에 대학교 진학이 필수가 아닌 시절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정도만 나와도 고학력 취급받기도 했다.[30]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지방선거에서 혁신지자체장이 상당히 탄생하기도 했고 자민당이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만 야당들이 (따로 놀아서 정권이 교체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그나마 당시 유일하게 정권교체 기회가 있었던 1980년 중참 동시선거도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 사망으로 날려먹었다. 오히라 총리의 사망으로 자민당 동정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31] 예를 들자면 2014년 도쿄지사 선거에서 좌파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60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