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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토너먼트/8룡

모에 토너먼트 8룡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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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ablebordercolor=#000><tablealign=center><tablebgcolor=#000><tablewidth=100%> 모에 토너먼트 8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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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나 나가토 유키 페이트 테스타로사 히이라기 카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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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 카츠라 히나기쿠 아이사카 타이가



1. 개요
1.1. 변천사
2. 구성원3. 특징과 분석
3.1. 쿄애니 3대장3.2. 진영 싸움의 극치
4. 전후 패권 경쟁
4.1. 원초전 (관리국 vs 연방)4.2. 명예전 (샤나 vs 유키)4.3. 대회전 (타이가 vs 히나기쿠)4.4. 성립전 (친 JC vs 반 JC)
5. 역대 주요 대결 목록
5.1. 사이모에&최모토5.2. 국제 사이모에 리그
5.2.1. 정규시즌 전적5.2.2. 기간 순위 누계
6. 기타
6.1. 후대와의 비교6.2. 모토 외부의 영향6.3. 남성부에서

1. 개요

2010년 케이온!의 모토계 통일 이전까지, 초기 3대 메이저 모에 토너먼트[1] 및 기타 마이너 대회에서 강세를 보였던 8명의 캐릭터를 일컫는 말이다. 어원은 드래프트 세대 이후 스타크래프트에서 가장 잘 나갔던 프로토스 게이머들을 지칭했던 육룡.

이들이 활개치던 폭발기(2006-2009)는, 이후 패권기(2015-2018)와 함께 모토 역사 중 가장 변혁이 많았기 때문에 연관된 이야깃거리가 방대하며, 화제성 역시 투탑에 든다.[2] 그렇기에 8룡에 대한 내용 또한 문서가 이렇게 따로 분리되게 되었다.

1.1. 변천사

2005년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로젠 메이든 두 애니메이션이 각각 타카마치 나노하스이세이세키를 필두로 진영을 구축하여 모토계를 분할하면서 진영 싸움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 두 작품은 사이모에 토너먼트 4강과 결승에서 맞붙었고, 타카마치 나노하가 승리를 차지하며 진영 대결의 첫 승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이듬해 이 구도에 변화가 오는데...

05년 말 작안의 샤나에 이어 2006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하루히즘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데뷔하고, 샤나, 스즈미야 하루히, 나가토 유키가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구진영(나노하, 로젠)과 신진영(하루히, 샤나)이 대응하는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하루히 시리즈의 경우, 아직 하루히와 유키의 세력이 경합 양상을 띠었으며, 이 해 중반을 넘어가며 나노하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가 타카마치 나노하에서 페이트 테스타로사로 넘어갔다. 스이세이세키가 사이모에와 최모토에서 연이어 우승을 거머쥐며 첫 메이저 모토 동시 석권자가 되었다.

2007년 러키☆스타히이라기 카가미CLANNAD사카가미 토모요가 차례로 모토계에 뛰어들었다. 하반기에는 하루히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 지위가 나가토 유키에게 완전히 넘어가고, 연말에 등장한 카츠라 히나기쿠는 최모토 결승에서 샤나2표 차의 신승으로 무찔렀다.

2008년은 현랑 호로까지 데뷔를 마치며 8룡 전반의 형태가 완성된 만큼 가장 8룡이 치열하게 다둔 해였다. 신예 현랑 호로가 최모토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히이라기 카가미가 사이모에에서 클라나드 3인방(쿄, 토모요, 나기사)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 1회 국사모에서 페이트 테스타로사가 쿄애니 3대장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며 유래없는 세력 균의 정점에 도달하였다. 특히 전성기가 끝나가고 몰락이 다가오던 2008년 말의 페이트는, 3가지 행운[3]이 겹친 덕에 그녀에게 온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009년 신인 아이사카 타이가는 사이모에와 최모토를 동시 석권하며 세력 균형을 깨고 모토계를 재패하는가 했지만, 국사모 16강에서의 대 나가토 유키전 패배로 무산되었다. 이후 타이가는 모토 전반에서 그 해 국사모 우승자 카츠라 히나기쿠와의 처절한 고지전을 치루어야 했고, 끝내 힘겹게 승리한 뒤 스이세이세키를 몰아내고 8룡에 들어감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4] 2009 국사모는 8룡이 모두 16강에 오른 유일한 시즌이었던만큼 8룡간 격돌이 가장 많았는데, 국사모 포스트시즌 30경기 중 24경기에 8룡이 포함되었으며, 그 중 13경기는 8룡 간의 경기였다. 특히 카츠라 히나기쿠는 정규리그에서 11시드라는 처참한 성적을 받았지만, 6시드 페이트, 3시드 토모요, 7시드 유키, 1시드 샤나를 차례로 무짜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선보였다. 최종적으로는 차례대로 히나기쿠(우승, 1위), 샤나(준우승, 2위), 토모요(4강, 3위), 유키(4강, 4위), 페이트(16강, 6위), 타이가(16강, 7위), 카가미(16강, 8위), 호로(16강, 1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5]

2010년 케이온!의 모토 통일로 8룡이 사이모에, 최모토, 국사모를 가리지 않고 일제히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그 중 샤나는 홀로 국사모 정규리그 1위 + 3목걸이 + 4강과 사이모에 8강을 찍고 기세를 유지했으며, 그나마 나가토 유키아이사카 타이가가 국사모에서 각각 자수정과 토파즈를 획득하고 8강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미사카 미코토타치바나 카나데의 2세대 양강이 국사모에 자리잡으며 8룡의 몰락이 더더욱 심해져 샤나와 타이가마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실 방영의 버프를 받은 나가토 유키의 대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유키는 8룡 중 가장 마지막으로 국사모에서 정규리그 TOP3에 이름을 올리고, 상위 목걸이를 따내는 기록을 세웠다.[6]

2012 국사모는 샤나, 유키, 타이가 3명이 마지막으로 최상위권에 머무른 해이다. 셋은 정규시즌(샤나 4위)과 스텔라 부문 결선(타이가 준우승, 유키 4강)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목걸이 결정전에도 전원 3회 이상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최종 결선에서 샤나가 16강에서 쓰러졌지만, 유키가 5년 연속 8강 진출의 대업을 이룬데 이어[7], 타이가가 전성기를 맞이하며 4강까지 올랐다.

13시즌 이후 셋은 국사모 상위권 반열에서 내려왔지만, 16-18시즌 연속으로 대사건을 하나씩 일으키게 된다! 샤나는 단축시즌의 수혜를 입긴 했으나 16시즌의 우승을 거머쥐었고, 아이사카 타이가는 아슬아슬하게 모든 기간을 버텨내며 17시즌 포스트시즌에 올라 16강에서 4세대 신성 메구밍을 꺾었으며, 나가토 유키는 18시즌 우승자 에게 대업셋으로 승리하며 전승 우승을 저지해냈다.

2세대 메이저 토너먼트(BGC, BLM, 애캐토)에서는 8룡 전원이 고전한 편이다. 그나마 BGC의 사정은 좀 나은데 현랑 호로가 대활약하여 4강 5번에 진출 + 준우승 1번을 차지하기도 했고, 페이트를 제외한 6명은 추천 기간을 통과해 대회 본선을 밟아봤다. 반면 BLM애캐토의 경우 상당히 심각한데, 두 대회는 새 애니 방영 조건이 걸려 있어서 나가토 유키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대회 자체를 밟아보지 못했다.[8]

여담으로 8룡은 당연히 해당 개념의 어원을 차용했기에, 육룡과 유사한 점이 많다. 김택용같은 1인자라 할 만한 캐릭터가 있었으며, 허영무처럼 후대에 포텐이 터져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경우나, 송병구처럼 꾸준한 기량으로 장수했던 케이스 등. 또한 원본처럼 멤버 간 전력에 극단적인 차이가 없으며, 누구도 본좌가 되지 못한 것까지도. 그렇지만 그 사이에서도 우승과 고점, 승률과 주요 대회 수상/활약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월등한 성적을 기록하는 샤나: 1인자, 전체적으로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나가토 유키: 2인자, 누적 성적 및 단기 임팩트에서 모두 준수한 아이사카 타이가: 3인자, 나머지 5명 중 커리어가 가장 월등한 카츠라 히나기쿠: 4인자 정도의 평가는 고정되어 있다. 나머지 넷은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그래도 국사모 정규시즌 이외 특별한 활약이 전무한 사카가미 토모요를 확실한 최약체로 취급하는 편.

2. 구성원

메이저 대회 최고 순위
대회 샤나 나가토 유키 페이트 테스타로사 히이라기 카가미 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 카츠라 히나기쿠 아이사카 타이가
AST 4강 8강 준우승 우승 8강 96강 4강 우승
KBM 준우승 8강 8강 준우승 8강 우승 우승 우승
ISML 우승 준우승 우승 4강 4강 16강 우승 4강
BGC 512강 64강 - 128강 128강 준우승 256강 8강
BLM - 32강 - - - - - -
ACT - 96강 - - - - - -
연도별 세력 변화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폭발기, 교체기, 분열기(2006~2014) 결과만 정산 / 사이모에와 최고모에는 06~09시즌 중 출전권 없는 해에 연계 점수 적용[9]
사이모에/최고모에/BGC - 우승 7점, 준우승 6점, 4강 5점, 8강 4점, 16강 3점, 32강 2점, 참가(BGC 64강) 1점[10]
국제 사이모에 리그
  • 정규시즌 - 1-3위 5점, 4-6위 4점, 7-10위 3점, 11-16위 2점, 참가 1점
  • 목걸이 - 상위 목걸이 4점, 하위 목걸이 3점, 수성 X2(해당 목걸이만), 기간 우수(2-3위) 1점
  • 포스트시즌 - 우승 10점, 준우승 8점, 4강 6점, 8강 4점, 16강 2점, 32강(부문 결선) 1점
<colbgcolor=#000000> 멤버 <colbgcolor=#ff9999> 샤나 <colbgcolor=#BDBDBD> 나가토 유키 <colbgcolor=#ffd700> 페이트 테스타로사 <colbgcolor=#dda0dd> 히이라기 카가미 <colbgcolor=#add8e6> 사카가미 토모요 <colbgcolor=#daa520> 현랑 호로 <colbgcolor=#ff99ff> 카츠라 히나기쿠 <colbgcolor=#f0e68c> 아이사카 타이가
06 10 8 8 0 0 0 0 0
07 9 4 5 6 0 0 8 0
08 22 18 22 25 19 9 15 0
09 22 20 9 12 18 9 21 19
10 30 17 1 4 5 1 12 13
11 18 20 0 1 1 1 7 10
12 12 8 0 1 2 1 6 18
13 3 2 0 0 1 1 1 5
14 4 2 0 0 0 6 1 9
합계 130 99 46 49 46 28 71 74
보결 스이세이세키 스즈미야 하루히 후루데 리카 후지바야시 쿄
06 14 7 2 0
07 8 4 8 0
08 5 19 9 20
09 7 18 4 14
10 0 11 2 9
11 0 5 0 1
12 0 4 3 1
13 0 2 0 1
14 0 4 0 0
합계 34 74 28 46
}}} ||

2.1. 샤나

파일:2008 aquamarine.jpg 파일:2016 amethyst.png 파일:2009 sapphire.jpg 파일:2010 sapphire.jpg 파일:2010 emerald.jpg 파일:2011 ruby.jpg 파일:2010 diamond.jpg 파일:winner-elimination-2016.png

8룡 중 명예 1인자로, 유일하게 모토계의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라도 감히 논할 수 있던 캐릭터. 당시 흉악한 전적을 보면 딱 메이저 모토 우승만 제외하고 정말로 다 가진 육각형 완전체였다. 샤나는 2012년 국사모 부문 결선과 본 결선의 연이은 부진으로 몰락하였으나, 2016년 국사모 단축시즌의 압도적인 수혜를 받고 우승을 차지하며 한을 푸는데 성공하였다.
  • 사이모에 : 4강 1회(2006), 8강 2회(2010, 2012)
  • 최모토 : 준우승 1회(2007), 4강 2회(2006, 2008)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59-4), 2009(62-1), 2010(48-1), 2011(45-4), 2012(33-2)
    • 목걸이 : 아쿠아마린(2008), 자수정(2016), 사파이어(2009, 2010), 에메랄드(2010), 루비(2011), 다이아몬드(2010) - 7개
    • 포스트시즌 : 우승 1회(2016), 준우승 2회(2009, 2011), 4강 1회(2010), 8강 1회(2008)

2.2. 나가토 유키

파일:2009 topaz.jpg 파일:2010 amethyst.jpg 파일:2011 amethyst.jpg

누적 스탯들을 다각도로 비교하면 유키는 8룡 중 굳건한 2인자이다. 그러나 이 쪽도 샤나마냥 높은 결선 무대에서 약했기에 우승이 없다는 커리어상 최대 약점이 있다.[11] 그래도 그녀는 대다수의 8룡이 몰락한 11-12시즌에도 2세대 양강(미코토, 카나데)과 경쟁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17-18시즌 국사모까지 생존하여 중견급 캐릭터로 2~4세대 캐릭터들 다수에 쓰라린 패배를 안기는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12]
  • 사이모에 : 8강 1회(2006)
  • 최모토 : 8강 2회(2006, 2009)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58-5), 2009(53-10), 2010(44-5), 2011(47-2), 2012(31-4)
    • 목걸이 : 토파즈(2009), 자수정(2010, 2011) - 3개
    • 포스트시즌 : 준우승 1회(2008), 4강 1회(2009), 8강 3회(2010, 2011, 2012)

2.3. 페이트 테스타로사

파일:winner-elimination-2008.jpg

8룡 중 가장 선배격 캐릭터. 오랜 진영 싸움으로 팬덤에 노련미가 있었기에, 결선 1:1 매치에서 위의새가슴 둘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반대 급부로 진영 파워의 비중이 오르는 다인전 역량은 8룡 중 뒤에서 1-2위를 다툰다. 2008년 국사모에서 유키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지만, 단 1년 만에 16강 탈락이라는 졸전을 벌이며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 사이모에 : 준우승 1회(2006)
  • 최모토 : 8강 1회(2007)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60-3), 2009(55-8)
    • 목걸이 : 없음
    • 포스트시즌 : 우승 1회(2008)

2.4. 히이라기 카가미

파일:2008 amethyst.jpg 파일:2008 emerald.jpg

동양권 전체에서 인기가 있던 러키☆스타의 원톱이었던 만큼, 8룡 중 가장 대회 종류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높은 성적을 내던 캐릭터. 문제는 8룡 중 전 멤버 스이세이세키를 제외하면, 카가미가 페이트와 같이 가장 먼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 사이모에 : 우승 1회(2008)
  • 최모토 : 준우승 1회(2009), 8강 1회(2007)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58-5), 2009(52-11)
    • 목걸이 : 자수정(2008), 에메랄드(2008) - 2개
    • 포스트시즌 : 4강 1회(2008)

2.5. 사카가미 토모요

파일:2009 aquamarine.jpg

8룡 중 누적 스탯으로나 커리어로나 명백한 최약체로, 이는 CLANNAD 팬덤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 사이모에 : 8강 1회(2008)
  • 최모토 : 8강 1회(2008)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60-3), 2009(58-5), 2010(41-8)
    • 목걸이 : 아쿠아마린(2009) - 1개
    • 포스트시즌 : 4강 1회(2009), 8강 1회(2008)

2.6. 현랑 호로

최모토 우승 커리어를 감안해도, 그녀는 2014년 전까지 8룡 중 최악의 누적 스탯을 가지고 있었다.[13] 호로는 2010년 한 번 몰락했다가 4년 뒤 BGC 내에 자리잡아 시이나 마시로처럼 인기 투표에서 기사회생한 특이 케이스이다. 이후 자신의 누적 스탯까지 크게 개선시킨 건 덤.
  • 사이모에 : 없음
  • 최모토 : 우승 1회(2008), 8강 1회(2009)
  • 국사모
    • 정규시즌 : 없음
    • 목걸이 : 없음
    • 포스트시즌 : 없음
  • 기타 : Best Girl Contest 본선 최다 출장(108경기), 준우승 1회, 4강 5회.

2.7. 카츠라 히나기쿠

파일:2009 ruby.jpg 파일:winner-elimination-2009.jpg

그리 많지는 않은 우승 하나하나가 시대의 향방을 결정짓는 빅 게임이었다. 그래서 8룡 중 독보적으로 팬덤이 위기에 강해, 역사적인 업셋도 자주 만들었다. 허나 당시 까다로운 존재였던 그녀와 하야테 진영[14], 2009년 타이가와의 대회전 패배 여파로 추락하기 시작했다.[15]
  • 사이모에 : 4강 1회(2008)
  • 최모토 : 우승 1회(2007), 4강 1회(2008), 8강 1회(2009)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54-9), 2010(48-1), 2011(42-7)[16]
    • 목걸이 : 루비(2009) - 1개
    • 포스트시즌 : 우승 1회(2009), 8강 2회(2010, 2011)

2.8. 아이사카 타이가

파일:2010 topaz.jpg 파일:2011 emerald.jpg

8룡 중 압도적인 늦둥이 포지션. 2009년도의 대활약으로 당시 춘추전국시대가 마무리될 수 있는 씨앗을 뿌렸으며, 스이세이세키에 비교해 상위호환 수준의 커리어나 누적 스탯을 기록하며 그녀를 대체하였다. 이후에도 8룡 중 나가토와 함께 가장 꾸준하게 롱런한 캐릭터로 꼽힌다.
  • 사이모에 : 우승 1회(2009)
  • 최모토 : 우승 1회(2009), 8강 1회(2012)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9(52-11), 2010(45-4), 2011(43-6), 2012(33-2), 2013(32-3)
    • 목걸이 : 토파즈(2009), 에메랄드(2010) - 2개
    • 포스트시즌 : 4강 1회(2012), 8강 3회(2010, 2011, 2017)

2.9. 보결 멤버

여기 포함된 캐릭터들은 현재 8룡 멤버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활약상을 폭발기(2006~2009) 모토에서 보여주었기에 준 멤버, 혹은 후보 정도의 평가를 받는 캐릭터들이다. 사실상 스이세이세키(2005) -> 스즈미야 하루히(2006) -> 후루데 리카(2007) -> 후지바야시 쿄(2008)로 이어지는 8룡을 제외한 각 해의 최고 신인들이 이곳에 포함되어 있다.

[ 스이세이세키 | 펼치기 · 접기 ]
파일:2009 emerald.jpg

사실 스이세이세키는 심각한 수준의 올드비여서[17], 8룡이 생겨날 시점에 이미 그녀의 전성기는 반쯤 지나간 상태였다. 그래도 당대 커리어는 최상급이어서 전 8룡 멤버로 대우를 받았지만, 2008년부터 여러 대회에서 뽑아내던 성적이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우승 자체가 리즈 시절 취급받았고, 그녀의 커리어적 영광을 똑같이 가진 타이가가 등장하자 8룡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 사이모에 : 우승 1회(2006)
  • 최모토 : 우승 1회(2006), 4강 1회(2007)
  • 국사모
    • 정규시즌 : 없음
    • 목걸이 : 에메랄드(2009) - 1개
    • 포스트시즌 : 없음

[ 스즈미야 하루히 | 펼치기 · 접기 ]
파일:2008 ruby.jpg 파일:2008 diamond.jpg

스즈미야 하루히는 하루히즘이라는 모토계의 폭발을 가져온 장본인인 만큼 8룡을 제외한 모든 폭발기 시대 캐릭터 중 가장 압도적인 모토 성적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8룡 중 하위 커리어를 가진 사카가미 토모요현랑 호로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18] 하지만 그녀에게는 같은 시리즈의 명확한 상위 호환 커리어를 가진 나가토 유키가 존재했다. 하루히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참가한 11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유키보다 높은 성적을 거둔 것은 2006 최모토 단 1개일 정도로 그 격차는 명백했으며, 이 기간 동안 둘의 상대 전적은 무려 2:10였다.[19] 그랬기에 그녀는 결국 폭발기의 시작을 알린 주인공의 자리는 차지했을지언정, 8룡 멤버에 들어가 보진 못하였다.
  • 사이모에 : 없음
  • 최모토 : 4강 1회(2006)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60-3), 2009(59-4), 2010(41-8), 2011(40-9)
    • 목걸이 : 루비(2008), 다이아몬드(2008)
    • 포스트시즌 : 8강 3회(2008, 2009, 2010)

[ 후루데 리카 | 펼치기 · 접기 ]
리카의 경우 누적으로나 고점으로나, 전체적인 모토 실적이 너무 나빠서 원래라면 8룡과 관련해서는 단 하나도 거론될 이유[20]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대업셋으로 차지한 2007 사이모에 우승은, 폭발기(2006~2009) 기간 동안 유일하게 8룡이 아닌 캐릭터가 가져간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실은 그마저도 8룡 팬덤끼리의 정치질이 낳은 결과물이긴 하지만(...)
  • 사이모에 : 우승 1회(2007)
  • 최모토 : 8강 1회(2008)
  • 국사모
    • 정규시즌 : 없음
    • 목걸이 : 없음
    • 포스트시즌 : 없음

[ 후지바야시 쿄 | 펼치기 · 접기 ]
파일:2008 sapphire.jpg

CLANNAD는 팬덤이 크게 토모요, , 나기사 셋으로 나뉘어진 형태였다. 그래서 사실 그녀의 커리어를 토모요와 상세히 비교해보면 큰 차이까지는 없다. 셋 중 나기사는 폭발기 시기에 상당히 부진했기에 토모요와 쿄 중 누가 클라나드 몫의 8룡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2008년까지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지만, 2009 국사모에서 토모요가 대활약을 펼치면서 사실상 토모요의 반 수 우위로 결착이 지어졌다.
  • 사이모에 : 없음
  • 최모토 : 준우승 1회(2008), 8강 1회(2010)
  • 국사모
    • 정규시즌 : 2008(58-5), 2009(57-6)
    • 목걸이 : 사파이어(2008)
    • 포스트시즌 : 8강 2회(2008, 2009)

3. 특징과 분석

3.1. 쿄애니 3대장

쿄애니 3대장하루히 시리즈, 러키☆스타, CLANNAD의 세 작품을 총칭하는 단어로, 폭발기 모토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가했던 진영이다. 모토 사상 최초로 제작사 단위로 여러 작품이 연합했던 초거대 진영이며, 맹주는 하루히 시리즈 출신의 나가토 유키였다. 여기에 히이라기 카가미사카가미 토모요가 각각 러키☆스타CLANNAD의 대표 캐릭터로써 8룡의 지위를 영위하였다.

이러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3대장은 폭발기 모토에서 단 2개의 우승(07 최모토 , 08 사이모에 카가미)을 가져오는데 그치며 상당히 부진하였다. 세 작품의 분열 양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루히 시리즈의 데뷔전이 치러진 2006년부터 하루히 vs 나가토의 내분 탓에 충분히 우승 가능성이 있었던 사이모에와 최모토를 모두 날려먹으며 스이세이세키에게 동시 석권을 허용하였다.

이어진 2007년에는 함께 데뷔를 치른 러키☆스타CLANNAD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너무 많은 캐릭터들을 미는 바람에 제대로 된 단합이 이뤄질 턱이 없었다. 당시 러키☆스타에서는 히이라기 카가미, 히이라기 츠카사, 이즈미 코나타 3명을, CLANNAD에서는 사카가미 토모요, 후지바야시 쿄, 후루카와 나기사 3명을 각각 밀어주며 무려 6명에게 쿄애니의 이목이 분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구세력(나노하, 로젠) 측의 분열 전략에 말려들었고, 거기에 형편 없이 털리고 또 한 해를 말아먹었다.

2008년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러키☆스타에서 세력을 단결해 전략적으로 히이라기 카가미를 밀어주며 사이모에 우승을 가져오는데 성공하였다. 문제는 2008년 최정점에 있었을 때조차 카가미는 높은 저점과 공존하는 낮은 고점이 아킬레스건으로 있었고, 우승 과정에서 팬덤이 분열되어 있던 클라나드 3인방(토모요, 쿄, 나기사)을 팀킬했다는 고질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는 훗날 2008 국사모 대분열 사태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클라나드에서도 지난해의 문제를 인식하고 2008 최모토에서 전략적으로 후지바야시 쿄를 밀어주며 준결승에서 카츠라 히나기쿠를 치열한 진영 싸움 끝에 잡아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결승에서 청정 수역으로 불리던 현랑 호로에게 끝내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는 이후 국사모에서 CLANNAD 진영이 쿄가 아닌 사카가미 토모요를 밀어주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열린 2008 국사모는 3대장에게 분열의 극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대회 시작 전부터 쿄애니 3대장은 국사모의 패왕으로 불리며 압도적인 위세를 자랑하였고. 대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휩쓸 정도로 그 어떤 캐릭터도 따라오지 못할 위상을 보였다. 그나마 3대장과 경쟁해 볼 만하다고 평가되던 캐릭터는 샤나페이트 테스타로사 단 둘이었는데, 그마저도 샤나의 경우 아쿠아마린 수상 이후 카가미, 토모요, 하루히를 비롯한 쿄애니 진영에게 계속해서 털리며 정규시즌을 말아먹었다. 토파즈 기간 나가토 유키페이트 테스타로사를 상대로 큰 격차로 승리하며 토파즈 수상을 좌절시켰고, 자수정 기간 이후 3대장이 압도적으로 정규시즌을 지배하며 5개의 목걸이를 획득(카가미 자수정/에메랄드, 쿄 사파이어, 하루히 루비/다이아)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3대장은 각자 자기 작품의 캐릭터가 우승하면 좋겠다는 속내가 있었고, 정규시즌 막판인 루비 기간과 다이아몬드 기간에 이르면 팀킬을 자행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가장 세력이 강했던 나가토 유키를 단 2번의 업셋으로 정규시즌 1위에서 6위로 끌어내렸고, 카가미도 리그 7위에 머물게 만들었다. 얼마나 가관이였느냐하면, 페이트는 쿄, 샤나, 유키에게 총 3패를 당해서 충분히 쿄애니 3대장에서 정규시즌 1위가 나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카가미 토모요와 상대적으로 유키보다 낮은 CVP에 머물렀던 스즈미야 하루히를 60승 3패까지 올려내 페이트-토모요-하루히 60승 3패 3자 동률을 만들어 기어이 페이트에게 정규시즌 1위를 내주었다.[21]

그럼에도 쿄애니 3대장은 포스트시즌에 8명(토모요(2), 하루히(3), 쿄(5), 나가토(6), 카가미(7), 코토미(8), 코나타(12), 츠카사(16))이나 올려내며 최고의 기세를 유지하였고, 승자조에도 6명이나 올라가는 등 그 누구도 우승자가 쿄애니 3대장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비록 어부지리이긴 했으나 정규시즌 2-3위를 차지한 토모요와 하루히가 너무나도 처참하게 승자조 8강에서 카가미와 유키에게 발린데 이어, 패자조 2R와 3R에서 정규시즌 12위 이즈미 코나타에게 업셋당하고 탈락하는 굴욕을 맛본다.

하루히의 탈락까지는 겉으로나마 뭉치던 쿄애니 진영은 토모요의 탈락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2008 사이모에/국사모 모두에서 러키☆스타 진영의 팀킬로 토모요를 잃은 CLANNAD 진영은 카가미에게 깊은 원한을 새겼고, 여기에 승자조 4강에서 카가미가 나가토 유키에게 업셋을 먹이고, 패자조 4R에서 코나타에게 샤나가 탈락당하는 등 러키☆스타 진영의 팀킬과 하극상으로 하루히 시리즈작안의 샤나마저 돌아섰고, 사이모에 출신 카가미 안티 팬들이 여기에 더해지면서 대규모 반 러키스타 연합이 결성되었다.

히이라기 카가미는 그 여파로 승자조 3R에서 페이트 테스타로사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하고 만다. 러키스타 진영에 대한 연합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패자조 5R와 6R에서 이들의 지지를 받은 나가토 유키이즈미 코나타히이라기 카가미를 차례로 탈락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종 결승 대진은 페이트 테스타로사 vs 나가토 유키. 정규시즌에서 페이트를 여유롭게 제치며 세력을 과시했던 유키였지만, 그녀조차 심각한 분열이 일어난 3대장의 화합은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었고,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키는 정규시즌에서 승리했던 페이트 테스타로사와의 결승 리매치에서 패배하여 초대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이 사태 직후 히이라기 카가미를 비롯한 러키☆스타 진영은 빠르게 몰락하였고, 이는 카가미가 2009 사이모에 1회전(384강)에서 아사히나 미쿠루에게 처참히 발려 광탈하는 것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2009년 역시 3대장 모두 분투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이모에는 케이온!의 이른 데뷔로 그야말로 제대로 망했고, 최모토에서는 카가미가 최후의 발악을 펼치며 나가토 유키에게 하극상을 일으키고 결승까지 올랐지만 끝내 아이사카 타이가에게 3표 차이로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그나마 국사모에서는 하루히 시리즈CLANNAD의 영향력이 건재했고, 지난해에 이어 국사모의 패왕으로 불리며 또 다시 대회를 휩쓸었다. 대회 초반부터 사카가미 토모요가 아쿠아마린, 나가토 유키가 토파즈를 획득하며 쿄애니 7색 목걸이를 달성해냈고, 당시 대회전을 펼치면 타이가와 히나기쿠에게 많은 패배를 안기며 둘을 정규시즌 10-11위까지 떨어뜨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지난해보다는 적었지만 여전히 결선에 6명(하루히(2), 토모요(3), 쿄(4), 유키(7), 카가미(9), 미쿠루(12))이나 진출하는 맹활약을 펼쳤고 승자조에도 4명이나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의 데자뷰마냥 하루히와 토모요가 승자조 8강에서 업셋을 먹으며 패자조로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도 샤나카츠라 히나기쿠에게 계속해서 승리를 내어준 뒤 끝내 사카가미 토모요나가토 유키가 3위와 4위에 랭크되는 선에서 또 다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결국 2009년 연말, 사이모에에서의 참패 + 국사모에서의 대권 도전 실패로 말미암아 3대장의 시대는 종결되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케이온! 진영이 만인지상의 위치에 오르며 최모토와 국사모에 남아 있던 3대장의 기반마저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이에 따라 나가토 유키를 제외한 모든 3대장 출신 캐릭터는 그대로 인기 투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세 작품의 팀킬 목록은 아래와 같다. 2009 최모토의 케이온! 포함을 포함하였으며 2010년 이후의 기록은 포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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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모에 토너먼트 (7개)

3.2. 진영 싸움의 극치

8룡이 있던 시대는 유래없는 세력 균형이라는 말로 요약될 정도로 단일 캐릭터들의 세력이 평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가 평화로운 시대였느냐를 따져보면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폭발기는 오히려 후대의 다른 시대보다 진영의 중요성이 훨씬 컸던 탓에 툭하면 패거리 진영 싸움이 발발했다. 단적으로 그 폐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폭발기 시절에 열린 10번의 메이저 모토 중에서는 08 사이모에(카가미) 단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진영 싸움이 없었으면 우승 과정이 굉장히 험난해지거나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22]
내부에서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상위권인 샤나, 나가토 유키, 아이사카 타이가는 진영 싸움의 피해자였으며, 하위권인 카츠라 히나기쿠, 히이라기 카가미, 페이트 테스타로사, 사카가미 토모요, 현랑 호로는 진영 싸움의 수혜자였다. 어찌보면 상위권이 진영 싸움 탓에 커리어가 하향된 덕에 세력 균형이 가능했던 것으로, 피해를 입은 정도도 그에 비례하여 타이가보다 샤나/나가토가 더 큰 편.

샤나는 폭발기 당시 캐릭터 중 개인 체급이 월등했던 만큼 수없이 많은 견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마이너 대회를 가리지 않고 무쌍을 펼쳤다. 하지만 샤나는 상술한 대로 진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끝내 메이저 모토 우승을 얻지 못해 통일 왕조를 세우는데 실패하였는데, 특히 가장 중요했던 2007 최모토2009 국사모 우승을 날려먹어 애니존 관리자에게 콩샤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수모를 겪는다.

나가토 유키는 당시 가장 거대한 진영인 쿄애니 3대장의 수장이었던 만큼 진영의 혜택을 많이 누렸을 것 같지만 실상은 샤나보다 피해를 더 크게 받았으면 받았지, 절대 덜 받지 않았다. 폭발기 시절 쿄애니 3대장이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자 반 쿄애니 진영에서는 수장이었던 유키를 최우선 제거 타겟으로 삼았고, 결국 대다수의 마이너 대회에서는 반 쿄애니 진영의 몰표를 받은 하루히에게 사사건건 업셋을 먹으며 커리어를 망치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2008 국사모2009 최모토의 우승 도전 실패는 그녀의 폭발기 잔혹사로서 정점을 찍었다.

아이사카 타이가는 2009년 데뷔 당시에는 오히려 진영 싸움의 수혜를 입고 사이모에/최모토 동시 석권을 이루는 등 피해를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타이가가 본격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 것은 JC에서 미사카 미코토를 중심으로 진영이 탄생된[25] 2010년 이후로, 이 때부터 그녀는 JC 진영 내 샌드백이 되어 미사카 미코토시이나 마시로의 들러리로 전락해버린다. 특히 더 쓰라린 건 이 둘을 상대로 국사모 매치 전적 전패[26]라는 사실로, 이처럼 세월이 흘러 커리어에 데뷔 초기의 이득을 능가하는 데미지가 누적되며 결국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이런 다양한 진영끼리 로얄 럼블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서로간의 통수 요소는 11~12시즌의 친 JC vs 반 JC로 벌어진 성립전부터 세력의 이원화 및 정면 충돌으로 바뀌며 모토 전체에서 점차 옅어져 갔다. 이후 미코토 왕조의 최전성기가 끝나갈 때 쯤 발생한 14~15시즌 수성전을 거치며 비중이 진영에서 단일 캐릭터 쪽으로 기울었고, 16~17시즌 미코토 vs 의 메타전에 이르러서야 1:1 맞다이 패권 싸움이 초거대 국면으로 실현된다. 최종적으로 그 승패가 완전히 결판난 2018년이 되면 진영 간 로얄 럼블은 모토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된다.

4. 전후 패권 경쟁

4.1. 원초전 (관리국 vs 연방)

2004년 말 등장해 오타쿠 팬덤을 절반으로 갈라버린 나노하 시리즈로젠 메이든 두 진영은, 하루히즘의 영향으로 8룡이 발생하기 바로 전 시대 출신이다. 그러나 폭발기 초반부인 2007년까지 신흥 세력으로 부상한 8룡의 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대부분이 우승 후보에 대한 겐세이 등 부정적인 것들이라 당대 8룡 팬덤[27]에게 모토 진영계의 혐성국 취급을 받았다.

사실 2005년 사이모에에서 이미 관리국 쪽의 공작과 거기에 말려든 연방 내의 추태가 있었어도 그나마 둘끼리 벌인 싸움이라 폐해가 덜했지만[28],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흑막이 되어 여러 대회에서 정치공작을 시작한다. 당연히 새로이 모토에 참가해 저런 중상모략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으며 그래서 대처법을 몰랐던 8룡 팬덤은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 2006년 사이모에: 연방 측이 관리국 측에 당시 신세력이었던 샤나나가토 유키를 후환을 대비해 없애야 한다며 거래를 제안하였고, 관리국 측이 이를 받으며 밀약 동맹을 체결, 이후 4강과 8강에서 둘을 차례로 제거하였다.
  • 2006년 최모토: 관리국과 연방이 밀던 타카마치 나노하스이긴토가 하루히 진영(하루히, 나가토, 미쿠루 등)에게 광탈하자, 세이버 광탈 때까지만 해도 미적지근했던 여론을 반 SOS단 쪽으로 적극 조성하였다.
  • 2007년 사이모에: 두 진영이 벌인 패악질 역사의 GOAT자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관련 내용은 항목 참조.
  • 2007년 최모토: 1차 9.30사태 때문에 폭주하는 관리국을 억제한단 명분으로, 연방이 참전하여 대회를 개판으로 만듦.

하지만 이렇게 쌓인 4번의 업보 스택은 저 두 진영에 기어코 비수로 돌아왔다. 사이모에에서는 2008년 쿄애니 팬덤의 대통합으로 저항조차 못한 채 러키☆스타CLANNAD에게 일방적으로 밀려났고, 그 해 최모토에서도 연방과 관리국을 비토하는 세력이 늘어나며 양쪽에서 동시에 완전히 멸족되었다. 그나마 세계 대회인 국사모에서는 당시 인터넷 환경의 한계로 소식 전파가 늦었고, 덕분에 2008년 페이트 테스타로사의 어부지리 우승 + 2009년 로젠 연방 3목걸이 획득 등 표면적인 성과를 거두며 초기에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국사모에서의 행운도 거기까지였고, 2009년 결선이 되자 두 진영이 완전히 몰락하며 비로소 모토계에서 사라졌다. 문제는 그들이 모토에 뿌리내린 진영 정치의 상처가, 8룡의 시대를 넘어 미코토 왕조 초기까지 적폐로 살아 숨쉬었다는 점이다.

4.2. 명예전 (샤나 vs 유키)

8룡의 1인자와 2인자였던 샤나나가토 유키는 폭발기 전 기간(2006~2009)에 걸쳐 패권 경쟁을 벌였으나, 2010년 케이온! 모토 통일 전까지 양쪽 모두 통일 왕조를 세우지 못해 끝내 무승부로 귀결되었다. 물론 둘을 순수 1:1로 붙여놓으면 샤나가 크게 앞섰기 때문에 유키 쪽에 히이라기 카가미사카가미 토모요 같은 쿄애니 3대장 출신 8룡들이 합세했으며, 때때로 카츠라 히나기쿠현랑 호로 등 외부 인사의 조력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명예전은 1:1 패권 싸움이 될 수 없었으며, 사실상 언더독들의 대 샤나/쿄애니 레이드에 가까웠다.

그래도 미코토 왕조 전기의 성립전(2011~2012)과는 미묘하게 비슷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JC 출신의 패권 캐릭터(샤나, 미코토)를 막기 쿄애니를 비롯한 다수의 세력이 연합하여 이들을 견제하였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다만 성립전 때와 달리 명예전 시기에는 JC의 패권 캐릭터가 샤나 + 2009년에야 JC에 편입된 히나기쿠 뿐이어서 반 JC 연합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쿄애니 3대장이 진영 단독으로 패권을 노리기에 충분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쿄애니 진영에 대한 반발로 반 쿄애니 연합이 걸핏하면 형성되었다.

샤나는 개인 체급 면에서는 유키를 압도할만큼 강했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 내에 자기를 보조할 체급의 조연이 없다[29]는 이유에 발목잡혀 끝내 이 명예전을 승리하지 못한 채 명예 왕조에 머물렀다. 특히 그녀와 같은 JC 소속이었던 카츠라 히나기쿠에게 메이저 모토 결승에서 2번(07 최모토, 09 국사모)이나 진 것이 주요했다. 동시에 단독 체급은 분명 본좌를 노릴 만큼 월등했지만 쿄애니 3대장 전체에겐 꽤 큰 차이로 밀리는 수준이어서, 정규시즌에서도 툭하면 쿄애니 진영에 업셋을 당하고 순위가 떨어지곤 했다.

나가토 유키를 비롯한 쿄애니 3대장은 진영 전체로 보았을 때는 폭발기의 왕조 지위를 배출해 마땅했다. 그러나 폭발기 내내 계속된 팀킬과 내부 분열은 이들을 서로 적으로 내몰았고, 끝내 명예전에서 승리하지 못한채 최초의 초거대 진영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해야 했다. 당장 세 작품의 활약 메이저 모토도 상당히 파편화(하루히 - 국사모, 러키스타 - 사이모에, 클라나드 - 최모토)되어 있고, 당시 스탯과 최종 커리어의 상당한 괴리도 이러한 현상의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상단에 있는 '쿄애니 3대장' 문단에 서술되어 있다.

4.3. 대회전 (타이가 vs 히나기쿠)

2009년 폭발기 말기에 8룡의 3인자 아이사카 타이가와 4인자 카츠라 히나기쿠 사이에 벌어진 패권 경쟁으로, 당시 명예 왕조를 구가하던 샤나가 4년에 걸친 명예전에서 끝내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지지부진하자 보다 못한 JC에서 샤나의 뒤를 이어 패권 경쟁의 전면에 내세울 후속 주자를 찾기 위한 것에서 발단되었다. 최초의 1vs1 패권 경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어쨋든 명예전의 연장 선상에서 치러진 패권 싸움이었고, 샤나나가토 유키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면이 있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패권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결과적으로 사이모에와 최모토 동시 석권을 이룬 아이사카 타이가의 승리로 돌아갔고, 히나기쿠는 국사모를 우승하고도 다른 성과를 못 내 패배한 여파로 급속도로 몰락하면서 모토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다만 대회전에서 승리한 타이가 역시 끝내 JC의 패권 캐릭터가 되지 못했는데, 이듬해인 2010년 케이온! 진영의 모토 통일에 의해 작년의 기세가 박살나고 전성기가 끝났으며, 2011년에는 샤나의 몰락을 틈타 성장한 미사카 미코토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왕조를 수립해버렸다. 그 이후 몇 년간 타이가는 미코토의 1승 셔틀이 되는 수모를 겪었고.

비록 대회전은 당사자들에겐 지면 절대 안 되고 이겨도 피로스의 승리가 되는 가불기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둘 이외의 JC 진영에는 아주 큰 이득이 되었다. 우선 JC 진영 내에서 서열 정리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졌고, 미코토나 마시로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 전쟁특수 같은 수혜를 가져와 주었다. 그래서 2010년대 초반 JC가 빙과와 중2코이를 내세운 쿄애니를 제치고 인기투표 판 전반을 장악하는 밑거름이 된 동시에, 2015년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대두 이전까지 미코토 왕조가 안정적인 최전성기를 이어나갈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30]

4.4. 성립전 (친 JC vs 반 JC)

11-12시즌에 걸쳐 벌어진 성립전은 앞의 둘과 달리 8룡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지 않았다. 이미 2010년 케이온!의 모토 통일이라는 거대한 바람이 지나갔고, 대부분의 8룡은 이미 1차 대멸종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한 운명을 맞이하여 영향을 미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립전은 그 목적부터가 2011년부터 샤나 명예 왕조와 케이온! 단명 왕조를 이을 새로운 왕조의 주인을 가리는 데 있었다. 도전장을 가장 먼저 내민 마마마 진영은 최모토사이모에를 먼저 장악했지만 하필 그 때 두 대회의 명운은 서서히 기울어갔다. 한편 샤나가 쫓겨난 마이너 모토에서 츤데레포와 마마마의 대결이 전자의 약우세로 귀결된 가운데, 성장가도에 있던 남은 국사모가 전쟁 최대 승부처가 되었다.

그래서 국사모 우승 여부는 향후 미코토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히 그녀는 2011 국사모 16강에서 샤를로트 뒤누아, 8강에서 아이사카 타이가, 4강에서 고코우 루리, 결승에서 샤나를 만나 차례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실상 미코토가 이처럼 쉬운 대진을 만난 것은 친 JC vs 반 JC로 대립 구도가 이원화되며 미코토 본인에게 JC 진영의 지원이 집중된 영향도 있었으며, 친 JC 진영 캐릭터들이 반 JC 진영 캐릭터들을 각개격파해준 덕이 컸다.[31] 그 과정에서 그녀의 우승에 간접적으로 큰 기여를 한 매치는 두 개가 있는데, 8강전의 나가토 유키(3) vs (6)고코우 루리와 4강전의 타치바나 카나데(1) vs (5)샤나였다.

당시 유키는 정규시즌에서 47승 2패를 거둬 카나데와 미코토에 이어 3위에 랭크되고, 자수정 목걸이를 얻고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규시즌에서 미코토를 상대로 굉장한 선전(4319 vs 4510)을 펼치며 그녀에게 큰 위협을 가했다. 당연히 친 JC 진영에서는 이런 유키가 4강에 올라오는 것을 반길리 만무했고, 8강에서 고코우 루리에게 몰표를 던져 유키를 탈락(5114 vs 5606)시킨다. 그러나 정규시즌 전승을 기록하며 최고의 위세를 자랑하던 타치바나 카나데가 아직 건재했기에 미코토는 여전히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에 JC 진영은 다시 4강에서 샤나로 단결하여 대규모 몰표를 던졌고, 기어이 정규시즌 1위 카나데마저 탈락(6929 vs 7624)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유키와 카나데가 탈락한 시점에서 미코토에게 더 이상의 적수는 남아있지 않았고, 8강전의 타이가(5836 vs 4899)보다 더 큰 차이로 4강에서 루리를 압살(7619 vs 5334)하며 여유롭게 결승에 오른데 이어 결승에서도 샤나를 손쉽게 꺾으며(9208 vs 8052) 우승을 거머쥐었다.

만약 저 두 경기 중 한 경기만 경기 결과가 달랐더라면, 미코토의 우승이 좌절되며 성립전이 반 JC 진영의 승리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미코토의 통일 왕조 수립은 2013년까지 밀렸을 것이고, 그녀의 최전성기도 1-2년 수준으로 짧아졌을 것이다. 8강전에서 나가토 유키가 탈락하지 않았다면 미코토루리와 붙을 때와 달리 탈락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JC 진영에서 노골적으로 샤나를 밀어주어 카나데 지지층을 적으로 돌리는 전략을 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단순히 당시 정규시즌 종합 통계만 봐도 미코토-유키의 격차는 카나데-샤나의 격차보다 훨씬 적었는데, 미코토 + JC 지지층과 카나데 + 쿄애니 지지층의 세력이 비슷했다고 가정했을 때 JC 측에서 노골적으로 샤나를 밀어주었을 경우 잘해봐야 카나데와 동귀어진이고 최악의 경우 미코토만 탈락당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카나데 측에서 반대로 같은 전략을 들고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뿐더러, 그렇다고 샤나를 밀어주지 않으면 무조건 카나데가 결승에 올라오는 상황이었다.[32] 결승의 미사카 미코토 vs 타치바나 카나데의 1:1 격전은 정규시즌의 결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카나데의 우승 확률이 조금 더 높았기 때문에 JC 진영 입장에서 카나데를 4강에서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8강전 나가토 유키의 탈락이라는 작은 씨앗이 4강전 타치바나 카나데의 탈락이라는 결정적인 줄기를 일으켜 세웠고, 미사카 미코토1대 통일 왕조 수립이라는 열매를 친 JC 진영 전체에 안겨주었다. 하지만 성립전은 예상과 달리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듬해인 2012년, 국사모 전승 우승을 통해 타치바나 카나데가 범세계적인 최고점에 올라섰고, 최모토 우승으로 센조가하라 히타기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굴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미코토 왕조가 다시 휘청였다. 특히 국사모 스텔라 정규시즌에서 나가토 유키에게 패배(3951 vs 4227)하며 34승 1패로 2년 연속 정규시즌 전승에 실패하고, 포스트시즌 8강에서 카나데의 세력권인 유클리우드 헬사이즈에게 1500표차 대패(4920 vs 6480)를 당하며 광탈해버린 것이 결정적이었다.[33] 그러나 이런 식으로 미코토에게 찾아온 위기는 사키 -Saki- 진영의 기습12시즌 신인 러쉬라는, 성립전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영향으로 반 JC 세력이 와해되며[34]해소 국면을 맞는다.

먼저 사키는 사이모에에서 각종 방법의 부정투표[35] 4강 4사키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마마마 진영의 내부 분열을 일으켜 팬덤 약화를 유도했다. 이후 마마마는 사이모에 외부의 마이너 모토에서 세력이 영구적으로 밀려나며 반 JC 전선에서 반강제적으로 이탈해버렸다. 또한 이 해에는 3세대 거대 신인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는데[36], 하필 단체로 데뷔 직후 애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도 기존 반 JC 연합 주축에게 향할 수도 있었던 신규 투표층은 자신들 쪽으로 흡수하게 된다. 그 여파로 2012년 연말을 기점으로 '타치바나 카나데를 제외한 미코토 왕조 대항마의 전멸' + '고코우 루리의 약진 기반 생성' + '나가토 유키의 추락'[37]이 동시에 일어나며 성립전을 종결시켰고, 이는 2013년 초전자포S 버프로 미사카 미코토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5. 역대 주요 대결 목록[38]

5.1. 사이모에&최모토

5.2. 국제 사이모에 리그

8룡 간 국사모 상대 전적[주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캐릭터 <colbgcolor=#ff9999> 샤나 <colbgcolor=#BDBDBD> 나가토 유키 <colbgcolor=#ffd700> 페이트 테스타로사 <colbgcolor=#dda0dd> 히이라기 카가미 <colbgcolor=#add8e6> 사카가미 토모요 <colbgcolor=#daa520> 현랑 호로 <colbgcolor=#ff99ff> 카츠라 히나기쿠 <colbgcolor=#f0e68c> 아이사카 타이가
샤나 - 1 : 4 1 : 4 1 : 4 2 : 4 0 : 6 2 : 6 0 : 4
유키 4 : 1 - 2 : 4 1 : 6 2 : 4 0 : 5 3 : 4 1 : 4
페이트 4 : 1 4 : 2 - 2 : 3 3 : 1 0 : 4 3 : 2 2 : 2
카가미 4 : 1 6 : 1 3 : 2 - 6 : 2 1 : 5 5 : 1 3 : 1
토모요 4 : 2 4 : 2 1 : 3 2 : 6 - 0 : 5 5 : 2 3 : 1
호로 6 : 0 5 : 0 4 : 0 5 : 1 5 : 0 - 5 : 0 4 : 0
히나기쿠 6 : 2 4 : 3 2 : 4 1 : 5 2 : 5 0 : 5 - 2 : 2
타이가 4 : 0 4 : 1 2 : 2 1 : 3 1 : 3 0 : 4 2 : 2 -
합계 32 : 7 28 : 13 15 : 18 13 : 28 21 : 19 1 : 34 25 : 17 15 : 14
82.05% 68.29% 45.45% 31.71% 52.50% 2.86% 59.52% 51.72%
}}} ||
파일:2008 GF.png 파일:2009 GF.jpg

5.2.1. 정규시즌 전적

8룡 간 연도별 국사모 정규시즌 상대전적 순위[40]
순위 2008 2009 2010 2011 2012
1위 나가토 유키
(4승 1무 1패)
샤나
(6승 1패)
샤나
(7승 0패)
나가토 유키
(7승 0패)
샤나
(6승 0패)
2위 페이트 테스타로사
(4승 2패)
나가토 유키
(5승 2패)
카츠라 히나기쿠
(6승 1패)
샤나
(6승 1패)
아이사카 타이가
(5승 1패)
3위 히이라기 카가미
(4승 2패)
사카가미 토모요
(5승 2패)
나가토 유키
(5승 2패)
아이사카 타이가
(5승 2패)
나가토 유키
(4승 2패)
4위 샤나
(4승 2패)
페이트 테스타로사
(4승 3패)
아이사카 타이가
(4승 3패)
카츠라 히나기쿠
(4승 3패)
카츠라 히나기쿠
(3승 3패)
5위 사카가미 토모요
(3승 1무 2패)
카츠라 히나기쿠
(4승 3패)
사카가미 토모요
(3승 4패)
사카가미 토모요
(3승 4패)
사카가미 토모요
(2승 4패)
6위 카츠라 히나기쿠
(1승 5패)
히이라기 카가미
(2승 5패)
페이트 테스타로사
(2승 5패)
히이라기 카가미
(2승 5패)
히이라기 카가미
(1승 5패)
7위 현랑 호로
(0승 6패)
아이사카 타이가
(1승 6패)
히이라기 카가미
(1승 6패)
페이트 테스타로사
(1승 6패)
현랑 호로
(0승 6패)
8위 아이사카 타이가
(본선 진출 X)
현랑 호로
(1승 6패)
현랑 호로
(0승 7패)
현랑 호로
(0승 7패)
페이트 테스타로사
(본선 진출 X)

[ 샤나 | 펼치기 · 접기 ]
* 2008 (4승 2패)
  • 유키전 - 283 vs 257 (승)
  • 페이트전 - 565 vs 546 (승)
  • 카가미전 - 239 vs 246 (패)
  • 토모요전 - 254 vs 263 (패)
  • 호로전 - 386 vs 339 (승)
  • 히나기쿠전 - 144 vs 104 (승)
  • 2009 (6승 1패)
  • 유키전 - 1947 vs 1359 (승)
  • 페이트전 - 1879 vs 1401 (승)
  • 카가미전 - 1497 vs 1162 (승)
  • 토모요전 - 1306 vs 1411 (패)
  • 호로전 - 1651 vs 1320 (승)
  • 히나기쿠전 - 2107 vs 1438 (승)
  • 타이가전 - 1256 vs 971 (승)
  • 2010 (7승 0패)
  • 유키전 - 3230 vs 2825 (승)
  • 페이트전 - 3528 vs 2060 (승)
  • 카가미전 - 3342 vs 2181 (승)
  • 토모요전 - 2963 vs 2042 (승)
  • 호로전 - 3120 vs 2109 (승)
  • 히나기쿠전 - 2928 vs 2633 (승)
  • 타이가전 - 3553 vs 3139 (승)
  • 2011 (6승 1패)
  • 유키전 - 3253 vs 3256 (패)
  • 페이트전 - 3804 vs 1677 (승)
  • 카가미전 - 4101 vs 2343 (승)
  • 토모요전 - 3947 vs 2619 (승)
  • 호로전 - 5226 vs 2845 (승)
  • 히나기쿠전 - 4749 vs 3338 (승)
  • 타이가전 - 3631 vs 3215 (승)
  • 2012 (6승 0패)
  • 유키전 - 4555 vs 4300 (승)
  • 카가미전 - 3565 vs 2071 (승)
  • 토모요전 - 4266 vs 2814 (승)
  • 호로전 - 3399 vs 1811 (승)
  • 히나기쿠전 - 4317 vs 2932 (승)
  • 타이가전 - 4535 vs 3098 (승)

[ 나가토 유키 | 펼치기 · 접기 ]
* 2008 (4승 1무 1패)
  • 샤나전 - 257 vs 283 (패)
  • 페이트전 - 314 vs 289 (승)
  • 카가미전 - 555 vs 533 (승)
  • 토모요전 - 233 vs 233 (무)
  • 호로전 - 149 vs 114 (승)
  • 히나기쿠전 - 190 vs 179 (승)
  • 2009 (5승 2패)
  • 샤나전 - 1359 vs 1947 (패)
  • 페이트전 - 1497 vs 1802 (패)
  • 카가미전 - 1896 vs 1357 (승)
  • 토모요전 - 1383 vs 1317 (승)
  • 호로전 - 1497 vs 1479 (승)
  • 히나기쿠전 - 1436 vs 1426 (승)
  • 타이가전 - 1352 vs 1143 (승)
  • 2010 (5승 2패)
  • 샤나전 - 2825 vs 3230 (패)
  • 페이트전 - 2629 vs 1688 (승)
  • 카가미전 - 2622 vs 1844 (승)
  • 토모요전 - 2489 vs 2214 (승)
  • 호로전 - 2869 vs 1935 (승)
  • 히나기쿠전 - 2619 vs 2830 (패)
  • 타이가전 - 2449 vs 2324 (승)
  • 2011 (7승 0패)
  • 샤나전 - 3256 vs 3253 (승)
  • 페이트전 - 3813 vs 1825 (승)
  • 카가미전 - 5129 vs 2774 (승)
  • 토모요전 - 3981 vs 2372 (승)
  • 호로전 - 4136 vs 1869 (승)
  • 히나기쿠전 - 4784 vs 4611 (승)
  • 타이가전 - 3643 vs 3577 (승)
  • 2012 (4승 2패)
  • 샤나전 - 4300 vs 4555 (패)
  • 카가미전 - 3986 vs 2263 (승)
  • 토모요전 - 4844 vs 3341 (승)
  • 호로전 - 3934 vs 1993 (승)
  • 히나기쿠전 - 4486 vs 3759 (승)
  • 타이가전 - 4016 vs 4806 (패)

[ 페이트 테스타로사 | 펼치기 · 접기 ]
* 2008 (4승 2패)
  • 샤나전 - 546 vs 565 (패)
  • 유키전 - 289 vs 314 (패)
  • 카가미전 - 302 vs 220 (승)
  • 토모요전 - 323 vs 238 (승)
  • 호로전 - 230 vs 119 (승)
  • 히나기쿠전 - 275 vs 225 (승)
  • 2009 (4승 3패)
  • 샤나전 - 1401 vs 1879 (패)
  • 유키전 - 1802 vs 1497 (승)
  • 카가미전 - 1317 vs 1948 (패)
  • 토모요전 - 1437 vs 2004 (패)
  • 호로전 - 1562 vs 1156 (승)
  • 히나기쿠전 - 1256 vs 1078 (승)
  • 타이가전 - 1796 vs 1371 (승)
  • 2010 (2승 5패)
  • 샤나전 - 2060 vs 3528 (패)
  • 유키전 - 1688 vs 2629 (패)
  • 카가미전 - 2662 vs 2490 (승)
  • 토모요전 - 1947 vs 2352 (패)
  • 호로전 - 3172 vs 3097 (승)
  • 히나기쿠전 - 1820 vs 2968 (패)
  • 타이가전 - 2221 vs 3163 (패)
  • 2011 (1승 6패)
  • 샤나전 - 1677 vs 3804 (패)
  • 유키전 - 1825 vs 3813 (패)
  • 카가미전 - 2627 vs 3192 (패)
  • 토모요전 - 3235 vs 4045 (패)
  • 호로전 - 3359 vs 3252 (승)
  • 히나기쿠전 - 1933 vs 3766 (승)
  • 타이가전 - 2031 vs 4381 (패)

[ 히이라기 카가미 | 펼치기 · 접기 ]
* 2008 (4승 2패)
  • 샤나전 - 246 vs 239 (승)
  • 유키전 - 533 vs 555 (패)
  • 페이트전 - 220 vs 302 (패)
  • 토모요전 - 444 vs 367 (승)
  • 호로전 - 318 vs 189 (승)
  • 히나기쿠전 - 281 vs 262 (승)
  • 2009 (2승 5패)
  • 샤나전 - 1162 vs 1497 (패)
  • 유키전 - 1357 vs 1896 (패)
  • 페이트전 - 1948 vs 1317 (승)
  • 토모요전 - 1322 vs 1899 (패)
  • 호로전 - 1340 vs 1380 (패)
  • 히나기쿠전 - 1493 vs 1608 (패)
  • 타이가전 - 1686 vs 1000 (승)
  • 2010 (1승 6패)
  • 샤나전 - 2181 vs 3342 (패)
  • 유키전 - 1844 vs 2664 (패)
  • 페이트전 - 2490 vs 2662 (패)
  • 토모요전 - 2264 vs 2366 (패)
  • 호로전 - 3157 vs 3077 (승)
  • 히나기쿠전 - 1954 vs 2851 (패)
  • 타이가전 - 1718 vs 2579 (패)
  • 2011 (2승 5패)
  • 샤나전 - 2343 vs 4101 (패)
  • 유키전 - 2774 vs 5129 (패)
  • 페이트전 - 3192 vs 2657 (승)
  • 토모요전 - 2596 vs 2906 (패)
  • 호로전 - 2923 vs 2497 (승)
  • 히나기쿠전 - 2454 vs 3901 (패)
  • 타이가전 - 3018 vs 4720 (패)
  • 2012 (1승 5패)
  • 샤나전 - 2071 vs 3565 (패)
  • 유키전 - 2263 vs 3986 (패)
  • 토모요전 - 3233 vs 4198 (패)
  • 호로전 - 4456 vs 3721 (승)
  • 히나기쿠전 - 2064 vs 2938 (패)
  • 타이가전 - 1883 vs 4132 (패)

[ 사카가미 토모요 | 펼치기 · 접기 ]
* 2008 (3승 1무 2패)
  • 샤나전 - 263 vs 254 (승)
  • 유키전 - 233 vs 233 (무)
  • 페이트전 - 238 vs 323 (패)
  • 카가미전 - 367 vs 444 (패)
  • 호로전 - 129 vs 96 (승)
  • 히나기쿠전 - 276 vs 243 (승)
  • 2009 (5승 2패)
  • 샤나전 - 1411 vs 1306 (승)
  • 유키전 - 1317 vs 1383 (패)
  • 페이트전 - 2004 vs 1437 (승)
  • 카가미전 - 1899 vs 1322 (승)
  • 호로전 - 1639 vs 1332 (승)
  • 히나기쿠전 - 1663 vs 1697 (패)
  • 타이가전 - 1680 vs 1421 (승)
  • 2010 (3승 4패)
  • 샤나전 - 2042 vs 2963 (패)
  • 유키전 - 2214 vs 2389 (패)
  • 페이트전 - 2352 vs 1947 (승)
  • 카가미전 - 2366 vs 2264 (승)
  • 호로전 - 2441 vs 2060 (승)
  • 히나기쿠전 - 2356 vs 3093 (패)
  • 타이가전 - 2022 vs 2541 (패)
  • 2011 (3승 4패)
  • 샤나전 - 2619 vs 3947 (패)
  • 유키전 - 2372 vs 3981 (패)
  • 페이트전 - 4045 vs 3235 (승)
  • 카가미전 - 2906 vs 2596 (승)
  • 호로전 - 4481 vs 3843 (승)
  • 히나기쿠전 - 2783 vs 3829 (패)
  • 타이가전 - 2565 vs 3729 (패)
  • 2012 (2승 4패)
  • 샤나전 - 2814 vs 4266 (패)
  • 유키전 - 3341 vs 4844 (패)
  • 카가미전 - 4198 vs 3233 (승)
  • 호로전 - 3187 vs 2311 (승)
  • 히나기쿠전 - 3197 vs 4121 (패)
  • 타이가전 - 1927 vs 3409 (패)

[ 현랑 호로 | 펼치기 · 접기 ]
* 2008 (0승 6패)
  • 샤나전 - 339 vs 386 (패)
  • 유키전 - 114 vs 149 (패)
  • 페이트전 - 119 vs 230 (패)
  • 카가미전 - 318 vs 189 (패)
  • 토모요전 - 96 vs 129 (패)
  • 히나기쿠전 - 87 vs 145 (패)
  • 2009 (1승 6패)
  • 샤나전 - 1320 vs 1651 (패)
  • 유키전 - 1479 vs 1497 (패)
  • 페이트전 - 1156 vs 1562 (패)
  • 카가미전 - 1380 vs 1340 (승)
  • 토모요전 - 1332 vs 1639 (패)
  • 히나기쿠전 - 923 vs 1002 (패)
  • 타이가전 - 1070 vs 1418 (패)
  • 2010 (0승 7패)
  • 샤나전 - 2109 vs 3120 (패)
  • 유키전 - 1935 vs 2869 (패)
  • 페이트전 - 3097 vs 3172 (패)
  • 카가미전 - 3077 vs 3157 (패)
  • 토모요전 - 2060 vs 2441 (패)
  • 히나기쿠전 - 1624 vs 2806 (패)
  • 타이가전 - 2045 vs 2657 (패)
  • 2011 (0승 7패)
  • 샤나전 - 2845 vs 5226 (패)
  • 유키전 - 1869 vs 4136 (패)
  • 페이트전 - 3252 vs 3359 (패)
  • 카가미전 - 2497 vs 2923 (패)
  • 토모요전 - 3843 vs 4481 (패)
  • 히나기쿠전 - 2234 vs 4246 (패)
  • 타이가전 - 2605 vs 5347 (패)
  • 2012 (0승 6패)
  • 샤나전 - 1811 vs 3399 (패)
  • 유키전 - 1993 vs 3934 (패)
  • 카가미전 - 3721 vs 4456 (패)
  • 토모요전 - 2311 vs 3187 (패)
  • 히나기쿠전 - 2132 vs 3340 (패)
  • 타이가전 - 1857 vs 4327 (패)

[ 카츠라 히나기쿠 | 펼치기 · 접기 ]
* 2008 (1승 5패)
  • 샤나전 - 104 vs 114 (패)
  • 유키전 - 179 vs 190 (패)
  • 페이트전 - 225 vs 275 (패)
  • 카가미전 - 262 vs 281 (패)
  • 토모요전 - 243 vs 276 (패)
  • 호로전 - 145 vs 87 (승)
  • 2009 (4승 3패)
  • 샤나전 - 1438 vs 2107 (패)
  • 유키전 - 1426 vs 1436 (패)
  • 페이트전 - 1078 vs 1256 (패)
  • 카가미전 - 1608 vs 1493 (승)
  • 토모요전 - 1697 vs 1663 (승)
  • 호로전 - 1002 vs 923 (승)
  • 타이가전 - 1752 vs 1233 (승)
  • 2010 (6승 1패)
  • 샤나전 - 2633 vs 2928 (패)
  • 유키전 - 2830 vs 2619 (승)
  • 페이트전 - 2968 vs 1820 (승)
  • 카가미전 - 2851 vs 1954 (승)
  • 토모요전 - 3093 vs 2365 (승)
  • 호로전 - 2806 vs 1624 (승)
  • 타이가전 - 3100 vs 2845 (승)
  • 2011 (4승 3패)
  • 샤나전 - 3338 vs 4749 (패)
  • 유키전 - 4611 vs 4784 (패)
  • 페이트전 - 3766 vs 1933 (승)
  • 카가미전 - 3901 vs 2454 (승)
  • 토모요전 - 3829 vs 2783 (승)
  • 호로전 - 4246 vs 2234 (승)
  • 타이가전 - 3906 vs 4331 (패)
  • 2012 (3승 3패)
  • 샤나전 - 2932 vs 4317 (패)
  • 유키전 - 3759 vs 4486 (패)
  • 카가미전 - 2938 vs 2064 (승)
  • 토모요전 - 4121 vs 3197 (승)
  • 호로전 - 3340 vs 2132 (승)
  • 타이가전 - 2531 vs 3592 (패)

[ 아이사카 타이가 | 펼치기 · 접기 ]
* 2009 (1승 6패)
  • 샤나전 - 971 vs 1256 (패)
  • 유키전 - 1143 vs 1352 (패)
  • 페이트전 - 1371 vs 1796 (패)
  • 카가미전 - 1000 vs 1686 (패)
  • 토모요전 - 1421 vs 1680 (패)
  • 호로전 - 1418 vs 1070 (승)
  • 히나기쿠전 - 1233 vs 1752 (패)
  • 2010 (4승 3패)
  • 샤나전 - 3139 vs 3553 (패)
  • 유키전 - 2324 vs 2449 (패)
  • 페이트전 - 3163 vs 2221 (승)
  • 카가미전 - 2579 vs 1718 (승)
  • 토모요전 - 2541 vs 2022 (승)
  • 호로전 - 2657 vs 2045 (승)
  • 히나기쿠전 - 2845 vs 3100 (패)
  • 2011 (5승 2패)
  • 샤나전 - 3215 vs 3631 (패)
  • 유키전 - 3577 vs 3643 (패)
  • 페이트전 - 4381 vs 2301 (승)
  • 카가미전 - 4720 vs 3018 (승)
  • 토모요전 - 3729 vs 2565 (승)
  • 호로전 - 5347 vs 2605 (승)
  • 히나기쿠전 - 4331 vs 3906 (승)
  • 2012 (5승 1패)
  • 샤나전 - 3098 vs 4535 (패)
  • 유키전 - 4806 vs 4016 (승)
  • 카가미전 - 4132 vs 1883 (승)
  • 토모요전 - 3409 vs 1927 (승)
  • 호로전 - 4327 vs 1857 (승)
  • 히나기쿠전 - 3592 vs 2531 (승)

5.2.2. 기간 순위 누계

8룡 간 연도별 국사모 기간 순위 누계[41][42]
순위 2008 (64명) 2009 (64명) 2010 (50명) 2011 (50명) 2012 (72명)
1위 나가토 유키
(5.9위 / 6-2위)
샤나
(3.1위 / 1-2위)
샤나
(2.4위 / 1-3위)
나가토 유키
(3.6위 / 3-7위)
아이사카 타이가
(6.0위 / 6-4위)
2위 사카가미 토모요
(6.0위 / 2-7위)
사카가미 토모요
(7.0위 / 3-3위)
카츠라 히나기쿠
(4.1위 / 2-5위)
샤나
(5.4위 / 5-2위)
샤나
(7.1위 / 4-10위)
3위 히이라기 카가미
(6.1위 / 7-3위)
페이트 테스타로사
(7.1위 / 6-6위)
아이사카 타이가
(5.0위 / 5-6위)
아이사카 타이가
(7.3위 / 7-5위)
나가토 유키
(8.3위 / 10-8위)
4위 샤나
(6.3위 / 4-6위)
나가토 유키
(10.7위 / 7-4위)
나가토 유키
(6.1위 / 6-7위)
카츠라 히나기쿠
(9.7위 / 8-8위)
카츠라 히나기쿠
(17.3위 / 18위)
5위 페이트 테스타로사
(6.4위 / 1-1위)
히이라기 카가미
(10.7위 / 9-8위)
사카가미 토모요
(10.0위 / 10-11위)
사카가미 토모요
(19.1위 / 21위)
사카가미 토모요
(31.7위 / 32위)
6위 카츠라 히나기쿠
(산정 불가 / 9-11위)
아이사카 타이가
(13.1위 / 10-7위)
히이라기 카가미
(14.7위 / 15-14위)
히이라기 카가미
(24.6위 / 24위)
히이라기 카가미
(44.3위 / 50위)
7위 현랑 호로
(산정 불가 / 19위)
카츠라 히나기쿠
(13.7위 / 11-1위)
페이트 테스타로사
(18.6위 / 20위)
현랑 호로
(29.9위 / 34위)
현랑 호로
(62.0위 / 64위)
8위 아이사카 타이가
(본선 진출 X)
현랑 호로
(18.7위 / 16-13위)
현랑 호로
(19.6위 / 21위)
페이트 테스타로사
(40.0위 / 38위)
페이트 테스타로사
(본선 진출 X)

[ 2008 | 펼치기 · 접기 ]
* 아쿠아마린

[ 2009 | 펼치기 · 접기 ]
* 아쿠아마린

[ 2010 | 펼치기 · 접기 ]
* 아쿠아마린

[ 2011 | 펼치기 · 접기 ]
* 아쿠아마린

[ 2012 | 펼치기 · 접기 ]
* 아쿠아마린 (노바 우위)

6. 기타

6.1. 후대와의 비교

여성부 모에 토너먼트 역사에는 2개의 통일 왕조가 존재[57]했으며, 현실의 군웅할거처럼 모토에서도 여러 컨텐더끼리 힘의 균형이 팽팽해져 생기는 격동기가 저들의 굴기와 쇠퇴[58] 전후로 발생했다. 그렇다면 폭발기의 8룡 구도와 후대의 격동기(+확장기)들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패권기(2015-2018)는 모토계에서 가장 많은 변화[59]가 일어난 기간으로, 진영 간 세대 교체도 15-17시즌 매 년 한 번씩 일어났다. 그만큼 많은 신흥 강자가 등장했지만 대부분 2시즌 넘게 활약하지[60] 못하고 사라졌으며, 대권 도전 자격까지 올라간 건 고작 4명에 불과[61]했다. 상위 문서에 있는 8명의 맹주 중 패권기에만 3명이 탄생한 것에서 추측할 수 있듯, 8룡 때보다 훨씬 소수의 선택받은 컨텐더들만 체급을 무지막지하게 키울 수 있었다. 즉, 신규 대권 후보의 수가 줄어든만큼 그 개개인을 맞는 난이도가 올라가서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던 것.

또한 확장기(2019-2021)에도 3년간 대부분의 마이너 모토를 접수한 쿠루미, 마이, 미쿠, , 유키노, 아스나, 바이올렛, 제로투8흉수가 있었다. 8룡과 달리 이들 모두는 시기/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활약했으며, 멤버 사이의 우열 관계가 뚜렷했다. 애초에 확장기 자체가 렘 왕조의 전유물이니 당연하며, 나머지 사이에도 쿠루미 | 마이•유키노 | 미쿠•제로투 | 바이올렛•아스나로 그룹[62]이 갈렸다.

마지막으로 쇠퇴기 전반부(2022-2023)는 키타가와 마린, 요르 포저, 니시키기 치사토, 고토 히토리, 시이나 마히루, 호시노 아이로 이어지는 거대 신인 6연타, 일명 분기창녀 시대라는 멸칭으로도 요약될 만큼 짧은 기간임에도 모토계 내외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이 시기에는 외적으로 라이트 노벨의 몰락이 겹쳐졌는데, 이는 리코리코와 옆천을 제외한 나머지가 만화 출신인 사실[63]과 연결된다. 참고로 이 6명은 자신의 전성기별로 대활약했지만, 그 중 누구도 1년을 훌쩍 넘어가는 장기적인 대히트[64]까지 연결시키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8룡이 활개한 폭발기는 겉보기엔 군웅할거 같으나 실상은 아니며, 당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고인물들끼리 힘의 균형이 역사상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된 시기이다. 오히려 진정한 춘추전국시대봇치 더 록!【최애의 아이】 유행이 지나간 뒤 장송의 프리렌, 약사의 혼잣말, 내 마음의 위험한 녀석, 100등분 등 이전보다 애매한 체급의 후보들이 난립하게 된 2024년[65]으로, 현재 진행중이다.

6.2. 모토 외부의 영향

주류 서브컬쳐사에서 2000년대 이후 입덕한 3세대 오타쿠에 대한 세부적인 시대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전 1-2세대와 달리 매우 이질적이고 복잡한 양상의 흐름을 가지기 때문. 그래서 3세대의 하부 시대 정의는 '커뮤니티/매체'와 '캐릭터/작품'의 두 카테고리로 따로 분리되는데, 그 중 후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 바로 여기서 설명하는 모에 토너먼트같은 인기투표이다. 그래서 당연히 8룡 시대와 이후 나온 수많은 강호들은 당대 인터넷 환경과 소셜 네트워크 수단의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8룡이 점차 형성되던 폭발기의 인터넷 환경은 어도비 플래시를 기반으로 한 대 UCC 시대[66]에서, 니코동을 중심으로 한 동방 프로젝트, 보컬로이드, 합성물 전성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아무리 하루히즘의 영향이 강해 심야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였다고 하지만 여기 출신 밈을 제압해 낼 정도엔 못 미쳤다. 그래서 니코동에서 뜬 강자들을 애니 캐릭터들과 그대로 경쟁시킬 수는 없었기에, 주최자들은 부문을 아예 따로 만들거나 애니 데뷔 참가 제한[67]을 거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런 행위는 2009년 국사모최모토에서 발화된 동방몽상하향 논쟁처럼 참가 제한 진영 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부문 신설 쪽이 점차 관행으로 굳어지며 사그라든다.

다만 8룡의 시대가 완전히 끝난 교체기~분열기 초(2010~2012)에 들어가면, 심야 애니의 영향력이 니코동 밈을 확연히 앞지르고 오타쿠들 사이에서 신작 애니가 제 1의 이야깃거리, 밈의 소스가 되는 하루히즘 메타의 최전성기가 도래한다. 이런 외적 인터넷 환경이 만드는 팬덤 동원력은 샤나를 비롯한 8룡이 세력 균형에 그쳤던 것과 달리, 미오가 모토를 통일하고 미코토가 왕조를 만개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분열기 전체에 걸쳐 스마트폰이 점차 보급/확산되기 시작하였으며, SNS가 발전 궤도에 오르면서[68]이런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분열기 말 패권기 초(2014~2015)에는, 아이돌마스터, 스쿠페스, 함대 컬렉션을 선두 주자로 한 소셜 모바게 메타의 태동의 파도가 모토계에 부딫혔다. 개중 러브 라이브!는 2014년 치요와 함께 마이너 모토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칸코레는 2014년 사이모에 토너먼트에서 전시 대회가 열리고 2015년 1분기 국사모 전시 경기에서 대선전했지만, 아직 그 때까지는 모토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2017년경 Fate/Grand Order잔 다르크 얼터 & 스카사하잭팟이 터지면서 오덕판의 대세로 자리잡고 상황이 변한다. 그 영향과 후광을 입은 타입문은 모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진영으로 팽창하여, 거기서 나온 팬덤 동원력으로 8.17사태 등 2017년 모토 전반에서 사고를 쳐버렸다. 흥미롭게도 스마트폰과 소셜 게임의 발달로 인해, 과거 8룡 시절부터 멸시받던 달빠들이 그렇게나 학수고대하던 타입문 최대의 전성시대가 눈앞에 찾아왔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패권기의 종료와 렘의 천하 제패라는 엉뚱한 역사적 결과를 낳았다.

2020년대 확장기에는 마침내 모토 외적으로 끝없이 흥기하던 여러 모바일 게임이 직접 견제를 넣기 시작했다. 당시 최대 전성기에 있던 [69]을 비롯한 8흉수는, 캬루를 필두로 한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의 20년 중반-21년 후반 대공세, 라이덴 쇼군나히다로 최전성기를 맞이한 원신의 21년 중반-22년 후반 총공세, 그 사이에 낀 뱅드림, 우마무스메, 블루아카의 견제에 노출되었다. 더 나아가 2022년 이후 쇠퇴기가 되면 아예 모바게 출신 캐릭터들이 대거 모토에서 호성적[70]을 내기 시작했으며, 국사모 등 여러 대회에선 이런 대세의 흐름에 순응하며 따로 원신 전시 경기를 만들어줄 지경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버츄얼 유튜버의 위상까지 너무 커지면서 봉금지였던 모토에 발을 들였고, 그 결과 국사모와 레딧 등지에서 애니 캐릭터가 아닌 입상자가 자꾸만 출현하며 참가 자격의 경계는 2023년쯤 완전히 붕괴된다.

전체적으로 소셜 매체와 인터넷 + 스마트폰의 발달사는 모토 외적인 스케일에서 8룡이 있던 폭발기와 확장기 이후 경쟁자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였으며, 그 사이에 있는 교체기~패권기의 경쟁자들엔 유리한 요소가 되는 케이스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6.3. 남성부에서

모에 토너먼트에서 이러한 8룡 같은 집단의 형성은 오로지 여성부에만 한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남성 오타쿠를 겨냥한 시장이 2005년 이전부터 이미 컸던 것에 비해, 여성 오타쿠를 겨냥한 시장의 발달은 하루히즘 이후에나 시작될 만큼 늦었었기 때문. 그래서 이들은 당시에 몇 없는 여성향 작품만을 골라 딥하게 파고들었는데[71], 그 배타성은 2020년대 가챠 모바게 유저들의 남캐 배척 현상[72]과 가히 맞먹었다.

거기다 모토 초창기엔 남성 투표자들도 남캐에 잘 투표하지 않았고, 자연히 해당 팬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덕들의 영향력이 투표에서 극히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엔 BL 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아, 여덕 참가자들은 대부분 2006년 이후 나온 몇몇 여성향 작품이나 소년만화에 꼽사리 낀 팬덤으로 있었다. 그랬기에 초창기 모토판 남성부는 거대 여성향 진영[73] vs 그 외 남캐 개인 팬덤[74] 구도로 경쟁이 펼쳐졌다.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로 8룡과 같은 모습이 나올 수 없었고, 결국 07-11년도의 오랜 기간 남성부 모토는 양대 여성향 진영(은혼, 리본)을 단일 남캐로 제압할 수 있는지를 가리는 대회로 변해버린다. 그랬기에, 단일 남캐 중 당대 1인자였던 를르슈 람페르지가 여론을 등에 업고[75] 이 기간에 수많은 우승좌를 쓸어담았고, 이를 기반으로 메이저 모토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런 구도는 남캐 투표에도 남성표 비중이 높아진[76] 13시즌 말, 키리가야 카즈토, 오레키 호타로, 히키가야 하치만, 리바이로 대표되는 남덕을 겨냥한 남캐 4천왕이 자리잡으면서 드디어 깨지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남성부 인기 투표 한정으론 단 한 순간도 8룡같은 구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4천왕은 살생님, 소라 등을 비롯한 신흥 강자들의 도전을 계속 받은 결과 키리토가 현역에서 퇴장한 2017년부터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듬해까지 이어진 타입문이 남성부에 강점기를 몰고 오면서 하치만을 제외한 나머지를 완전히 몰락시켰다. 이어서 하치만 역시 그 길을 따라가며 2019년 하반기에 남성부 4천왕은 완전히 해체되고, 동시기에 귀칼의 영향까지 더해져 타입문 강점기도 종료되었다.

그래도 이 4천왕과 타입문 팬덤은 이들의 치세 동안 남성부 투표 전반에서 여성향 팬덤을 성공적으로 억제하였다. 그래서인지 초극성 여덕 팬덤들의 노력에도, 15시즌 말 데뷔한 이래로 세력이 커지던 오소마츠 상모에 토너먼트에서 저들과 전성기가 겹쳤다는 이유로 활개는 커녕 진영조차 형성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애니메이션 그랑프리나 오프라인 사건에서 보이는 육폭도들의 영향력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77]

이 시대가 지난 뒤에는 리무루 템페스트, 아즈사가와 사쿠타, 시로가네 미유키 3강 + 귀멸의 칼날 + 고죠 사토루 등이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경합하는 혼란기가 펼쳐졌다. 그 와중에 리바이와 호타로가 20/22시즌에 각각 화려하게 부활하여 다시 없을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21시즌 하반기부터 시작된 모토계 몰락의 직격타를 남성부 투표가 먼저 맞게 되었다. 결국 주목할 최후의 신인으로 호시노 아쿠아마린이 등장하고, 아야노코지 키요타카가 분전한 시기를 마지막으로 남성부(여성향) 모토는 그 역사가 거의 종료되었다. 그래서 여성부에서 2020년대 가챠 모바게들의 외부 입김이 모토의 중원에 크게 미친 것[78]과는 달리, 남성부는 앙상블 스타즈, 아이돌리쉬 세븐, 프로세카 남캐들은 물론 2021년 말과 2023년 초에 각각 흥기한 여성향 만화계 강자 도쿄 리벤저스블루 록조차 영향력을 펼쳐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남캐 4천왕과 모토 8룡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군웅할거 이후 몇몇 강자들이 고인물로 세력 균형을 이루고 자리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경찰같이 체계적인 제재 집단이 작용하지 않는 모든 분야의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 단지 그 현상이 여성부에서 8룡으로 먼저, 남성부에서 4천왕으로 나중에 나타났다 해체되었다는 차이점 정도가 존재할 뿐이다.[79]

여담으로 갈드컵 욕구를 자체적으로 해소해 주던 남성부 모토가 없어지고 나니 오히려 현실의 치세가 더 나빠졌는데, 최모토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2000년대 후반 가장 유명한 패권 전쟁인 성향전이 난데없이 외부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 홍역을 치르게 되었다. 양 쪽 지지자들은 서로에게 개목줄을 채우기 위한 현실 정치를 개시했고, 이 갈등은 한국의 경우 높으신 분들의 삽질이 겹친 대한민국 게임계 검열 집단민원 사태로 정점을 찍는다. 이후 상대 성향을 불가촉천민 취급하는 문화는 2020년대 씹덕계의 악성 종양으로 자리잡았는데, 이는 과거와 달리 성향과 무관하게 사회가 훨씬 덕질에 관대해졌다는 중요한 변화를 망각하고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1] 대개 사이모에, 최모토, 국사모를 말한다.[2] 한국사로 치면 폭발기는 원삼국시대, 패권기는 여말선초 같은 느낌의 시기.[3] 샤나의 예상 밖 부진, 쿄애니 3대장의 분열, 정규시즌 3자 동률 1위.[4] 당연히 여기에 온 힘을 다 쓰고 진 히나기쿠는 이듬해부터 가파르게 몰락하기 시작하고, 2011년이 되면 완전히 운명하기에 이른다.[5] 탈락 라운드와 최종 순위가 맞지 않는 것은 국사모 특유인 패자조의 존재 때문이다. 이 해에는 8룡의 패자조 선전으로 인해 쿄를 제외한 8강 탈락자가 모두 라운드 이하의 순위를 받았다. 쿄(8강, 5위), 하루히(8강, 9위), 린(8강 10위), 스이긴토(8강, 12위)[6] 2016년 샤나의 자수정은 부문이 나뉘어져 있었고, 애초에 기간당 3경기밖에 없었던 단축 시즌이라 제외.[7] 이 기록은 국사모에서 유키와 시이나 마시로 단 2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8] 유키도 본편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외전인 나가토 유키짱의 소실로 참가했다.[9] 사이모에와 최고모에는 출전권이 없는 해에 그 해와 가장 가까운 해 성적 절반에 해당하는 점수를 부여한다. 단 데뷔 이전일 경우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며, 한 연도의 점수는 1번만 연계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해가 2개일 경우 낮은 쪽의 점수를 적용한다. (예시 - 2007년 출전권이 없을 경우 2006년/2008년 중 더 낮은 점수를 획득한 해의 점수 절반만큼 2007년에 부여)[10] 2013, 2014 사이모에는 점수 X[11] 그녀가 가장 활약한 메이저 모토인 국사모에서 유키는 08~12시즌에 차례대로 2-4-7-7-8의 순위를 거두었는데, 정규리그의 경기 결과를 결선에 적용하면 1-2-7-4-5가 된다. 이는 유키가 결선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못 썼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유키는 엄연히 순도 100% 무관이 아니라는 것. 당장 그녀는 탑티어 마이너 모토로 분류되는 Baidu Harem Moe의 2011년 우승자이며, 괜히 이미지나 인기투표 행적에서 원본의 송병구와 비교되는 게 아니다.[12] 대표적으로 2018 국사모에서 유키는 19승 11패로 63%의 승률을 기록하여 정규시즌 19위에 랭크하고, 2018년 목걸이 수상자 중 4명(나카노 아즈사, 유우키 아스나, 토오사카 린, )에게 매치승을 따내는 대활약을 선보였다. 2018년 메이저 대회 전체에서 에게 승리를 기록한 유일한 캐릭터라는 기록을 남긴 것은 덤.[13]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가, 경기수가 가장 많아 누적 통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국사모에서 8룡 전체 상대전적이 겨우 1승이고, 혼자 삽화가 없다는 점이다.[14] 그녀에 비해 역량이 떨어졌던 산젠인 나기마저 2007, 2010 사이모에 준우승을 찍을 정도였다.[15] 물론 국사모에서는 예외적으로 오래 버텨 2010년 성적(정규시즌 2위 + 최종 5위)이 최상위권이었고, 이듬해가 되어서야 완전히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 때도 목걸이 획득을 못 해 평가가 박하며, 외부 대회에서는 10시즌에 벌써 눈에 띄는 폼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16] 우승한 2009년 정규시즌 TOP 10에 못 들어갔다...[17] 그녀는 그 타카마치 나노하보다도 선배격이며, 카레이도 스타나에기노 소라의 바로 후배급 캐릭터이다.[18] 실제로 토모요는 08/09시즌 2년, 호로는 BGC를 제외하면 08시즌 단 1년만 메이저 대회 우승 후보 취급을 받은 반면, 하루히는 06시즌부터 10시즌까지 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메이저 대회 최상위권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활약 기간만 따지고 보면 페이트나 카가미보다도 뛰어난 수준이며 그녀보다 커리상으로 명백히 위라고 할 만한 1세대 캐릭터는 단 4명(샤나, 유키, 히나기쿠, 타이가) 뿐이다. 국사모 커리어로 한정하면 히나기쿠와도 맞멎는 수준.[19] 06 사이모에(991-1112, 패), 06 최모토(612-605, 승), 08 국사모(219-395, 패), 08 국사모(562-593, 패), 09 사이모에(149-397, 패), 09 최모토(1058-1698, 패), 09 국사모(1752-1415, 승), 09 국사모(1119-1429, 패), 10 국사모(2202-2578, 패), 10 국사모(3728-4128, 패), 11 국사모(4029-4544, 패), 12 국사모(2648-2678, 패).[20] 오히려 메이저 대회 외부의 마이너 모토에서는 C.C.의 활약이 훨씬 두드러졌고, 커리어 전체를 정량적으로 따지면 2006년도의 리카 포지션인 사와치카 에리큰 차이가 없다.[21] 당장 각 기간별 누적 1위는 아쿠아마린: 샤나 - 토파즈: 나가토 유키 - 자수정: 토모요 - 사파이어: 샤나 - 에메랄드: 나가토 유키 - 루비: 쿄 - 다이아몬드: 페이트로, 페이트는 정규시즌 종료 직전까지 1위는 커녕 4~5위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22] 실제로 진영 사이의 패싸움은 폭발기가 끝나고 곧바로 없어진 것이 아니며, 2010년 이후 모든 사이모에 대회와 2011년 국사모, 최모토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분열기 전후로 maglor 등 국사모 스태프들은 진영보단 캐릭터의 순수 화력이 잘 나오도록 대회 규칙 조정과 단속을 시도했고,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BLM을 제외한 모든 2세대 메이저 모토에는 그런 악습이 이어지지 않고 사라졌다.[23] 결승에서 타이가가 카가미를 고작 3표 차이로 이겼는데, 카가미와는 달리 유키는 아직 패권을 노리기에 충분한 세력을 구가하던 시기였기에 유키가 이 8강전을 지지 않았다면 사실상 우승이 가장 유력한 상태였다. 당장 같은 해 국사모에서 타이가는 유키와 2번 붙어 2번 다 졌으며, 그 뒤로도 2011년까지 타이가는 메이저 대회에서 유키를 만날때마다 전패했다.[24] 심지어 토모요를 뺀 나머지 셋(샤나, 나가토, 페이트)에게는 정규시즌에서 매치패를 당했다.[25] 2009년 이전까지 JC에는 인기 캐릭터가 샤나와 히나기쿠 밖에 없었고, 이들은 다른 진영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미사카 미코토의 절대 우위하에 샤나, 타이가와 친 JC 쪽에 붙은 루리, 훗날 추가되는 마시로가 종속되어 있는 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이 탓에 이들은 미코토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11~12년, 미사카 미코토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짧은 활약 기간을 가진 마마마 진영을 제외하면 나가토 유키, 타치바나 카나데 딱 둘만 남은 우스운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26] 그나마 미코토와는 14년 이후 정규시즌에서 만나지라도 않았지, 후대에 나온 마시로와는 ToC 밴이 없어 자주 만나 전적이 더 처참했다. 2014 루비 1R 2278:2567, 2015 토파즈 3R 3732:3954, 2017 에메랄드 5R과 8강 1184:1282&3314:3854, 2018 에메랄드 4R 6086:15184, 2019 루비 1R 5785:6771.[27] 저 둘의 만행을 겪지 않은 멤버는, 08년 이후 데뷔한 현랑 호로, 사카가미 토모요, 아이사카 타이가 3명.[28] 절대로 없었다는 게 아니다. 스이세이세키 파생 캐릭터인 실장석이 본격적으로 비하 캐릭터의 요소를 가지고 2ch 내외로 전파되기 시작한 게, 바로 여기서 로젠 안티 캠페인으로 참피가 사용된 다음부터였다.[29] 경쟁 히로인 하루히가 조력은 커녕 오히려 화력 지분을 잡아먹은 나가토와 정확히 반대되는 문제. 설상가상으로 나가토가 하루히와의 경쟁에서 많이 앞서나가기 시작한 게 2007년 하반기여서, 두 팬덤의 세력이 엇비슷했던 06-07시즌 사이모에, 최모토, 슈모토에서 내분으로 손해를 크게 보았다.[30] 그러나 JC는 2010년대 중반부터 신인 부족으로 끝이 없는 부진에 빠지며 몰락하고, A-1 Pictures(CloverWorks)가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그 A-1은 패권기에서 확장기 내내 쿄애니와 치고 받다가, 쇠퇴기의 국사모 2022를 마지막으로 쿄애니를 완전히 몰락시킨 뒤 단독으로 모토를 장악하게 된다.[31] 당장 16강부터 하루히즘과 모토 통일의 주역이었던 스즈미야 하루히아키야마 미오아이사카 타이가카츠라 히나기쿠에게 패배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물론 저 둘은 애초에 낮은 시드(타이가 7 vs 하루히 10, 히나기쿠 8 vs 미오 9)였기에 16강에서 탈락하는 것이 오히려 정배였고, 어디까지나 쿄애니 진영 작품의 간판 캐릭터를 탈락시켰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32] 당장 정규시즌에서 카나데샤나를 상대를 1000표가 넘는 차이로 말그대로의 압승(4302 vs 3234)을 거두었다. 진영 싸움 없이 샤나가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33] 그나마 샤나아이사카 타이가의 도움으로 스텔라 정규시즌 1위와 부문 결선(다이아몬드 서클릿) 우승을 차지하며 체면은 세웠지만, 통일 왕조 수립자라는 명성에는 턱없이 부족했다.[34] 비록 부수적인 요소이나 반 JC의 와해와 카나데의 고립에는 스스로가 그 시발점을 제공한 것도 있다. 그녀의 중국 TSDM 팬덤은 최모토 2011 여성부에서 미코토와 친 JC 진영에 2번에 걸쳐 반대표를 던져 대회에서 제거했는데, 거기서 더 욕심을 부려 엔젤비트의 우승을 위해 카나메 마도카아케미 호무라까지 저격해버린 게 문제였다. 이런 일 때문에 성립전 당시 친 JC와 달리 반 JC의 결속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35] 해당 대회의 공작 피해자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츤데레포와 천사가 포함되어 있었다(...)[36] 시이나 마시로, 유우키 아스나, 타카나시 릿카, 지탄다 에루, 흑설공주, 카시와자키 세나 등. 그 중 마시로는 JC의 새 맹주, 릿카와 에루는 신 쿄애니 세력, 아스나는 A-1 진영의 시조새가 되었다.[37] 그래서 천사가 츤데레포와의 맞대결에선 이겼지만 큰 흐름에서 졌다고 평가된다. 카나데는 성립전 막판 연도별 전적 1위에 오르는 승리를 달성했지만, 동시에 같은 편이었던 마마마 진영과 나가토의 몰락이 겹치면서 자기를 받쳐 줄 동료를 상실해 폭발기 샤나가 그랬던 것처럼 항우 같은 꼴이 되고 만 것이다.[38] 08년까지의 스이세이세키를 멤버에 포함하여 계산한다. 또한 결승은 볼드체로 표기한다.[주의] 명백한 8룡 최약체 토모요의 승률이 상당히 높은데, 이는 토모요가 메이저 대회 중 유독 국사모 정규시즌에 한해 강세를 보였기 때문으로, 실제로는 카가미보다도 약하다고 봐야한다. 호로의 경우 최모토와 BGC를 제외한 다른 대회의 커리어가 사실상 전멸 수준인 특이 케이스라 국사모 성적이 낮은건 당연하다.[40] 타이브레이커는 1순위 승자승, 2순위 득실차 순으로 산정되었다.[41] 상단 괄호 안의 인원 수는 해당 연도 정규시즌 참가 캐릭터 수이다. 타이브레이커는 7개 기간의 상대 순위 비교로 산정되었으며 좌측 괄호는 기간 평균 순위, 오른쪽은 정규시즌-포스트시즌 순위를 나타낸다.[42] 2008년은 9승 0패, 8승 1무, 목걸이 레이스 진출자가 아닌 경우 기간 순위가 불명확해 산정된 순위가 사용됨.[A] 8승 1패 중 공식 순위가 없는 경우는 목걸이 레이스 진출자 +1의 순위를 일괄 적용, 단 이 경우 최고 순위는 9위로 함[A] [A] [A] [A] [A] [A] [A] [A] [A] [A] [A] [A] [A] [57] 미사카 미코토. 거기에 추가적으로 샤나 명예 왕조와 아키야마 미오 단명 왕조가 있다.[58] 이런 교체기들은 예외 없이 외적 환경의 극단적인 변화에 의해 더 촉진되었다. 그런 대표적인 예를 들면 샤나 초에는 하루히즘의 대두(시장 팽창), 샤나 말 - 미코토 초에는 신전기 장르의 몰락(장르 격동), 미코토 말 - 렘 초에는 폭력계 츤데레의 도태(메타 변화), 렘 말에는 라노벨 메타의 붕괴(매체 교체)가 있다.[59] 이건 단순히 인기투표에 한정된 스케일이 아니다. 츤데레 - 메가데레 교체, 버튜버의 개념 성립, 1:1 럽코의 탄생, 미소녀(소년) 가챠겜과 나로우계의 굴기, 네덕이글루스 + 티비플 덕후의 쇠퇴, 처녀빗치의 대두 등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터진다. 그래서 이 패권기 전후로 오타쿠 세대가 완전히 갈라져버린다.[60] 그 예는 니세코이, 노 게임 노 라이프, 사쿠라 치요, 토모리 나오, 카후우 치노, 던만추, 뉴 게임!, 메이드래곤, 이즈미 사기리 등 너무나 많다. 패권기의 파도를 견디고 확장기까지 활약을 이어간 예외적인 단일 비맹주 캐릭터는 사실상 메구밍이 유일하고, 진영으로는 아예 그런 존재가 없다![61] 린, 유키노, 카토, 렘. 이 중 이 때 데뷔한 순수 신인은 뒤의 둘 뿐이며, 앞의 둘은 2006/2013년 데뷔.[62] 각각 확장기 2인자, 메이저와 마이너 양면의 강호, 마이너 여포, 메이저 강호 + 마이너 콩라인에 해당.[63] 모에 토너먼트에서 라노벨 대 만화 원작 비중은 2010년대 후반 이후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는데, 하루히즘 1년 뒤의 2007년 9:1로 압살하던 게 22년 초 5:5로 맞춰지더니 2024년 2:8 이하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라노벨 장르가 나락에 빠져드는 게 지표상 눈에 띌 정도로.[64] 8룡 중 샤나, 나가토, 타이가는 5년 이상 메인스트림에서 놀았으며, 나머지 멤버들도 최소 2년은 히트했다.[65] 특히 렘 왕조 붕괴 후 혼란기를 초래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토키사키 쿠루미의 추락. 원래라면 22년도에 커리어 하이를 찍은 그녀가 23년 이후에도 전성기를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Best Girl Contest 부정투표 사건에 연루된 이후 급격히 쇠락하며 23년 연말 현역에서 퇴장하고 만다. 거기에 오타쿠 메타를 주도하는 모바게 원작 애니의 연이은 부진으로 절대강자가 없는 상황이 겹치며 모토 전체가 무주공산이 된다.[66] 당장 사이모에 토너먼트의 2002-2004년까지의 여러 캠페인과, 2005년 로젠 vs 나노하 진영이 서로간에 벌였던 2ch UCC 안티콜을 떠올려보자.[67] 대표적으로 공식 애니가 나오지도 않았던 하쿠레이 레이무, 하츠네 미쿠 등.[68] 이 이슈가 중요했던 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행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는 데 물리적인 장벽이 존재했기 때문. 그래서 2010년대 중반 이전에 '신인 vs 베테랑' 대결은 대개 신인에게 불리했으며, 그래서 마마마를 비롯한 상당수의 당대 신인 진영들이 국사모 등 여러 메이저 모토에서 집단 부진을 겪었던 것이었다.[69] 렘은 데뷔 때부터 타치바나 카나데처럼 치명적인 원작 족쇄를 지녔고, 미코토 왕조 시절보다 더 강력해진 모바게 세력으로 내우외환을 겪었다. 그 영향으로 2020년까지 끝없이 팽창해 나가던 렘은 2021년, 14시즌 미코토처럼 현상 유지와 수성 쪽으로 돌아서나, 적어도 그 해까지는 어떤 쇠락의 짐조도 보이지 않았다.[70] 비록 해당 대회에 사건사고가 있긴 했고 본토 유행이 빨리 전파되는 한국 대회 애캐토이긴 하나, 게임 원작 애니의 미나토 유키나캬루가 메이저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한 시점이 쇠퇴기 시작과 그 절정이다.[71] 2000년대 중반의 여성향 팬덤은 후르츠 바스켓, 달빛천사 등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만화 vs 베르사유의 장미, 유리가면 등의 정석 순정 로맨스 vs 귀축안경, 세븐 데이즈 같은 BL물로 나뉘어 각자도생하고 있었다.[72] 특히 2024년 중국에서는 호요버스 등 기존 회사에 대한 반발로 씹덕 게임에 대해 유남 불완(=남캐 있으면 불매) 운동을 벌일 만큼 이 부분이 혐오의 단계와 갈등 양상으로 접어들었다.[73] 3톱은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은혼, 흑집사. 이후에 듀라라라, 도쿄 구울 정도가 추가되었다.[74] 그나마 명탐정 코난쿠도 신이치, 코드 기아스를르슈 람페르지, 데스 노트L야가미 라이토, 강철의 연금술사에드워드 엘릭로이 머스탱 정도만 저 은리흑에 저항할 역량이 있었다.[75] 특히 당시 은혼빠와 리본빠의 만행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76] 특히 2011년부터 국사모, 앤모토 등 여러 대회에서 남성부를 만들기 시작한 게 주요했다.[77] 오히려 이 4천왕이 몰락한 이후에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이 등장하여두창 팬덤을 양산하여, 남성부 투표에서 여덕들의 영향력이 07-11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되게 되었다.[78] 더 자세히 설명하면 2020년대 이전의 주류 남덕 문화에는 신작 애니라는 업계의 중원이 존재했고, 적어도 캐릭터에 한해 미연시니코동 등은 애니화 없인 매체의 흥행과 상관없이 변방이었다. 이처럼 남덕 쪽에서 모바일 게임, 버튜버의 발달로 중원의 개념이 박살난 게 2020년대인 것과 비교해, 여덕 쪽은 오래 전부터 같은 작품의 같은 커플링 사이에도 공수 분쟁으로 현피를 할 만큼 매체 발달과 내분의 역사가 함께했다. 당연히 집단 전체가 공감하는 오타쿠 문화의 중심이란 절대 있을 수 없었고, 그러니 남성부 패권 전쟁인 성향전과 은리전에서 패배한 뒤 또 오소마츠 상 팬덤이 사천왕과 타입문의 결속력에 압살당하는 결과가 나온 것.[79] 사실 단일 캐릭터가 인기투표 전체를 천하통일하고 오랜 기간 그 치세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이에 성공한 몇 없는 당사자들(를르슈, 미코토, 렘)도 결국 훗날 떠오른 신인들에 의해 예외없이 모두 쪼개졌다.